9회

Everything is gross but you―(1/3)

5. Everything is gross but you

 

알렉스 또는 마담, 마담 툴루즈(Madame Alejandra Toulouse)

알레한드라 툴루즈는 어느 날 사랑의 비밀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에 지체 없이 사랑의 진리Verdad del Amor’라는 이름의 명상 모임을 만들었다. 때는 스페인에서 로로마 일반 공급이 시작되기 대략 일 년 전. 농장 경영인이자 요가 인스트럭터 자격증 보유자였던 알렉스는 자기의 농장을 명상 공동체의 터전으로 삼았다. 얕은 산등성이에 오렌지 나무가 가득하고 일꾼 숙소 맞은편에 작은 호수를 끼고 있는 알렉스의 농장은 우퍼들에게 인기가 높았고 우프(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 봉사자와 유기농 농부를 연결하며 교육적, 문화적 교류를 촉진하고 생태적 농업의 중요성을 지향하는 글로벌 커뮤니티) 프로그램은 호스트와 우퍼의 상호 합의를 전제로 종교색을 제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요가 기반 명상 수련을 권장하는 사랑의 진리가 수도회나 다른 종교 사찰에 소속된 농장들보다 종교색이 강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리하여 사랑의 진리는 농장을 찾아오는 우퍼들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알렉스는 사랑받는 지도자였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자기가 받은 바 이상의 사랑을 베풀었다. 그것이 사랑의 진리의 요체였기 때문에. 모임이 해산되기 직전 공동체에는 육십여 명의 성원이 있었고 알렉스는 파산 직전이었다. 후에 찾아온 경찰은 알렉스가 공동체의 누구에게도 금전을 요구한 적 없고 다른 많은 신흥종교 단체의 교주들처럼 사상 사고를 일으킨 적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펠리페(Felipe)

펠리페 크뤼거는 많은 몸을 안다. 키와 피부색과 몸피와 예민한 곳과 그렇지 못한 곳과 돌기의 크고 작음과 단단함의 정도와 체모의 색과 양,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몸을 안다. 이 사실에 대해 펠리페는 우쭐거릴 생각이 없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펠리페 크뤼거는 사랑을 하는 존재, 그건 그저 소금이 짜고 설탕이 단 것처럼 당연한 일. 다만 지금껏 거쳐온 모든 몸을 기억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차라리 자기를 거절한 사람이라면 그 아쉬움 때문에라도 기억에 남는데, 그 사람과 사랑을 했다는 사실만 생각나고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는 어떤 짧은 사랑들이 펠리페에게는 적잖이 있는 것이다.

이런 펠리페라도 처음 접촉한 몸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희고 둥근 어깨와 조금 늘어진 유방과 배와 허벅지의 조글조글한 쐐기 무늬출산을 경험한 여성 특유의그리고 놀라울 만큼 맑고 아름다운 눈망울.

공동체는 그 여자를 마담이라 불렀다. 마담의 나이는 당시 펠리페의 딱 두 배, 그러니까 스무 살 위. 증조부가 프랑스인이었다는 걸 좀 지나칠 정도로 자랑스러워한다는 점을 빼면 별 특이할 것도 없는, 생긴 것처럼 수더분하고 너그러운 시골 여성 같다는 것이 애초의 인상이었으나, 섹스는 놀라울 만큼 정열적이었다. 만 스무 살의 펠리페가 느낀 감정은 거의 감격에 가까웠다. 섹스 자체에 대한 것이기도 했지만 주로는 펠리페가 이십 년간 독실한 교인으로 살며 다져온 불안과 강박이 해체됨에 따른 감격이었다.

, 나는 게이가 아니었구나.

유년 시절 몸담았던 축구팀 동료들의 몸을 힐끔힐끔 훔쳐본 나날들을 몇 번이고 회개한 펠리페에게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다행스럽게 여겨졌다. 펠리페가 알기로 스페인인이자 가톨릭 교인이면서 게이인 사람은 많았지만 그중에 축구선수는 없었다. 적어도 자기가 알 만큼 유명한 선수는. 성향을 바꿀 수도 축구를 계속할 수도 없어 방황하던 펠리페는 자신이 여자와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을 확인한 게 몹시 기뻤다. 동일한 행위의 또다른 결과로서 생겨난 죄의식을 압도할 만큼이나.

그렇다고 펠리페의 죄의식이 가벼웠다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동성애자일까봐 시름할 만큼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 혼전 성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렇지 않게 생각할 리가. 더구나 마담은 마담이라는 호칭답게 기혼자였다. 기쁨과 고뇌의 혼돈 속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펠리페에게 마담은 말했다.

잘했어요, 펠리페.”

그 순간 마담이 얼마나 아름다워 보였는지를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 오직 자기뿐이라는 사실은 펠리페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고독감을 선사했다.

나는 알고 있었어요. 당신이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이에 더 어떤 말을 보탤 수 있을까? 이때부터 펠리페의 종교는 사랑이 되었다.

사랑은 능동적인 행위라는 것, 그것이 마담의 첫번째 가르침이었다. 호숫가에 둘러앉은 공동체 사람들을 다정하게 둘러보며 마담은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기다리지요. 사랑은, 나를 찾아오는 것이라 믿고요. ‘사랑의 진리는 이러한 수동적 태도를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나는 오늘 밭에 나가 오렌지를 한 바구니 따겠어, 이렇게 생각하는 것처럼 사랑을 목표로 움직여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나는 오늘, 아나를 사랑하겠어.”

아나는 공동체에 소속된 삼십대 초반 여성이었다. 망설이는 아나에게 마담이 손짓했다.

이리 와요, 아나.”

마담이 아나를 껴안자 공동체는 갈채를 보냈다. 나란히 선 두 사람의 얼굴이 찬연한 기쁨으로 빛났다. 마담은 아나의 손을 잡고 이어 말했다.

우리는 사랑을 할-수-있-는 사람들이 될 거예요. 그것이 우리의 힘이 될 거예요.”

마담이 펠리페의 방에 찾아와 자기를 사랑해보라고 말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의 일이었다. 마담은 아나라는 여자와도 섹스를 했을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펠리페는 자기가 그 답을 모른다는 사실에 조금 당혹감을 느꼈다.

 

 

우물(El Pozo)

당시의 펠리페는 자신감이 충천한 상태였다. 모두가 자신의 사랑을 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펠리페는 그저 우물가에 서 있기만 하면 됐다. 숙소와 과수원 사이 오솔길 옆에 위치한 소박한 우물은 공동체의 성원들이 오전 일을 마치고 돌아오며 한 모금씩 목을 축이는 쉼터였고, 우물 벽에 쓰인 것과 같은 재질의 돌을 쪼아 만든 조각상인 양 그 곁에 선 펠리페를 허투루 보아 넘기는 사람은 없었다. 눈썹뼈의 단호한 융기와 날렵하고 강렬한 콧날과 적절한 높이의 광대뼈, 귀밑 턱선은 남자다운가 하면 입술 아래 턱선에서는 섬세한 소년미가 엿보이는 펠리페. 아름다운 펠리페. 무엇보다도 한낮에는 녹색으로, 해가 기울 무렵에는 푸른색으로 보이는 오묘한 눈동자와 추수철의 밀밭처럼 일렁이는 금빛 머리칼의 조화가 시선을 붙들어 맸다.

아무도 펠리페를 거절하지 않았고 펠리페 역시 누구든 받아주었다. 마담과 나눈 최초의 관계 이후 첫 남자를 알게 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어느 한쪽을 골라야 한다면 난 역시 남자를 더 좋아하는 걸지도? 펠리페는 생각했으나, 다가오는 여자를 거절하는 일은 없었다. 자기에게 사랑받는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상대라면 남자든 여자든 사랑스러웠고, 누군가를 그토록의 희열로 달뜨게 할 수 있는 스스로가 또한 사랑스러웠다.

천국이 정말 있다면 바로 이런 곳일 거야. 펠리페에게는 실로 꿈같은 생활이었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성숙을 모르던 몸이 공동체의 누구나가 원하는 사랑의 화신으로 거듭났다. 당시 서른 명 남짓이던 공동체의 성원 중 과반이 펠리페의 몸을 알았고 펠리페도 그들에 대해 그랬다. 게다가 농장에는 계속해서 우퍼가 찾아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자리에 앉아만 있어도 사랑할 사람이 끊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대로 영원히 이 모두를 사랑하며 지내고 싶은 것 같다……, 펠리페는 막연히 바랐는데, 물론 이는 정말이지 막연한 감정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주제를 진지하게 고찰할 기회가 있었다면,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임을 금세 알아차렸을 테니까. 펠리페가 아무리 낙관적인 남자라 하더라도.

펠리페의 막연한 소망이 산산조각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어느 아침 과수원으로 가는 길에 한 여자가 펠리페의 손을 잡았고 그건 일과가 끝난 저녁에 자기 방으로 찾아오라는 신호였는데, 그날 오후 우물가에서는 또다른 여자가 말을 걸어왔다. 미안해, 나는 오늘 선약이 있어. 펠리페는 부드럽게 웃으며 아침의 여자를 가리켰다. 너희만 괜찮다면 모두 함께 밤을 보내는 게 어떨까, 제안하려던 참에 오후의 여자는 아침의 여자의 목덜미를 움켜쥐더니 우물 벽에 대고 밀었다. 쾅(¡Boom)! 오후의 여자는 반가운 사람과 악수라도 나누듯 스스럼없는 태도로 그렇게 했고, 때문에 별것 아닌 타격처럼 보였지만, 무방비 상태로 돌벽에 머리를 박은 아침의 여자는 크게 다쳤다.

이제 나하고만 잘 수 있겠지?

오후의 여자가 그렇게 말하듯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볼 때에야 펠리페는 자기의 막연한 소망을 깨달았다. 누구에게나 깨어지고 나서야 그것이 존재했음을, 심지어 소중했음을 알게 되는 무언가가 있는 법이다.

 

 

하나(Hana)

하나가 아는 스페인어는 올라(Hola: 안녕), 페르돈(Perdon: 실례), 노 아블로 에스파뇰(No hablo español: 스페인어 못 합니다) 정도가 전부였지만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데에 큰 지장은 없었다. 많은 우프 농장들이 그러듯 사랑의 진리도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스물한 살에 여행을 시작한 하나는 우프에서 우프로, 예를 들면 아시시 농장에서 알렌테주 농장으로 건너가는 식으로 지구의 허리를 조금씩 기어나가는 느린 세계일주 중이었다. 농장의 명칭이 사랑의 진리로 바뀌기 전에도 하나는 이곳에 머무른 적이 있는데, 워킹 홀리데이 비자 승인을 계기로 프랑스에 갔다가 돌아와보니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하나는 일본어로 꽃이라는 뜻이지?”

그러니까 펠리페가 말을 건네왔을 때 하나는 어처구니가 없다고 느꼈다. 농장에 돌아오자마자 누가 우물에 머리를 박고 기절하는 꼴을 봤는데 그 사태의 원흉이 된 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플러팅을 걸어오다니. 맞겠지, 플러팅이? 하나는 황당한 기색을 숨기지도 않으며 퉁명스레 답했다.

하나는 일본어로 코라는 뜻도 있어.”

2외국어가 일본어이긴 했는데 잘하진 못했기 때문에, 용케 이걸 떠올렸네, 하나는 생각했다. 다 까먹은 일본어가 절로 떠오를 만큼 펠리페의 접근이 불쾌하다는 생각.

이거?”

펠리페가 장난스레 검지를 내밀어 하나의 코를 건드렸다. 하나는 호숫가에 출몰하는 날파리떼를 쫓듯 팔을 크게 휘둘러 펠리페의 손을 쳐냈다.

미안해.”

그제야 펠리페가 사과했다.

기분 나빠할 줄 몰랐어.”

몰랐다고? 그럼 뭐 자기가 만져주면 누구나 숨넘어가게 기뻐할 줄 알았단 말인가. 공동체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하나도 펠리페의 인기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여자 하나를 병원에, 또 하나는 경찰서에 보내버린 인기. 하지만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하나는 여자에게 끌리는 여자였다. 그렇다고 해서 덮어놓고 남자를 질투하는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펠리페에게만은 아무래도 호의를 품을 수 없었다. 마담은 왜 펠리페를 내보내지 않는 걸까? 우물가 사건의 두 여자는 공동체에서 쫓아냈으면서.

저녁에 하나는 샤시의 방에 갔다.

질투라는 건 이상한 감정인 것 같아.”

펠리페가 말을 걸어온 일에 대해 하나가 말하자 샤시는 이렇게 반응했다. 나도 봤어. 펠리페야말로 공동체에서 사라져야 할 문제로 느껴진다고 털어놓자 샤시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신중한 태도로 말했다. 질투라는 건,

질투는 동물에게도 있어. 짝짓기 상대를 두고 목숨을 건 투쟁을 하는 건 동물적인 본능이야. 그 자체는 사랑이 아니라는 거지. 동물들의 번식 욕구는 쾌락 추구도, 사랑의 결과도 아니니까.”

내가 펠리페한테 질투를 한다는 얘기야?”

아니, 그 두 사람 말이야.”

하나가 곁에 눕자 샤시는 이어 말했다.

동물적인 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야. 그런 본능이 생긴 건 적절한 상대와 짝짓기를 해야 한다는, 그리고 그건 한정된 자원이기에 싸워 얻어낼 가치가 있다는 의미일 테니까. 그게 인간의 사랑하고 얼마나 다른가를 생각해볼 여지가 있지. 나는 동물의 생태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인간의 생애 주기에서 연애가 차지하는 비중은 수명이 십 년 내외인 동물의 발정부터 출산까지의 기간과……

피곤해.”

하나의 말에 샤시는 입을 다물었다가 잠시 후에 다시 열었다.

질투에 대한 재미있는 얘기가 생각났는데 해줄까?”

샤시를 등지고 누웠던 하나는 그 말에 꿈지럭꿈지럭 몸을 돌려 샤시를 바라보았다. 길지는 않지만 엉킬까봐 걱정이 될 만큼 숱이 맡은 속눈썹 사이에서 새까만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사랑해. 하나는 속으로 탄식했다. 시무외인*을 샤시의 가슴에 얹고 여원인**을 사타구니에 갖다댈 수 있다면 그대로 굳어 불상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하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샤시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니까.

하나가 저녁마다 샤시의 방에 찾아오는 것은 무성애자인 샤시를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호하려는 노력이었다. 이 빌어먹을 공동체인지 뭔지는 사랑거절하는 걸 죄악시하니까. 애초에 이미 한번 다녀온 농장에 되돌아온 것도 샤시 때문이었고, 돌아온 첫날 여기 있는 인간들 전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는데도 떠나지 못한 것 역시 샤시 때문이었다. 하나가 굳이 말한 적 없는 이 노력을 샤시도 알게 된다면, 샤시는 이렇게 말할 것이었다.

고마워. 그러지 않아도 되지만.

하지만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샤시에게 보답받을 길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는 그애를 사랑했고, 이 사랑에는 항상 일정량의 미움이 섞였다. 그 극미량의 미움이 사실은 열기구처럼 뜨겁고 부피가 크며 가벼운 자기의 사랑을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붙들어 매는 밧줄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하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샤시(Shashi)

옛날 어떤 나라에 난폭한 왕이 있었어. 이 얘기에선 이 왕이 폭정 때문에 처단을 당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 걸로 봐서, 난폭하다는 건 아마 성격상의 얘기겠지. 이후 전개를 고려하면 그냥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 사람이란 의미일지도 몰라.

이 왕을 이렇게 소개해보면 어떨까? 세계 최초의 퀴즈 쇼를 고안한 사람이라고. 이 사람의 왕국에서는 죄인을 처형할 때, 원형극장 한가운데 죄인을 세워. 그러고는 퀴즈를 내는 거야. 여기서 나오는 질문이 이 이야기의 제목이기도 해.

여자인가, 호랑이인가(The Lady, or The Tiger)?***

원형극장의 많은 문 가운데 둘 뒤에는 여자와 호랑이가 하나씩 있어. 죄인은 두 문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해. 운좋게 여자의 문을 고르면 그 문 뒤에 서 있던 여자와 결혼할 수 있어. 이쪽은 벌이 아니라 포상이기 때문에 그 여자는 특별히 고른 미인이래. 하지만 호랑이를 고르면? 문이 열리는 순간 굶주린 호랑이가 뛰쳐나오는 거지. 난폭한 왕과 구경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비참한 최후를 맞게 돼. 한쪽 문은 에로스, 한쪽 문은 타나토스라고 할까.이 얘기랑 질투가 그래서 무슨 상관인데?” 하나가 졸음이 뚝뚝 묻어나는 목소리로 물었다. “왕이 죄인을 질투했다는 거야?”얘기가 질투와 관계되는 건 이다음부터야. 아직 주인공이 안 나왔거든.

왕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어. 이전까지 아무도 사랑한 적 없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은 적 없는 공주. 그런데 한 용감한 사람이 공주에게 구애를 해. 그리고 왕은 이 사람을 원형극장에 세워. , 사실 이 대목은 잘 기억이 안 나네. 이해가 안 가서인가? 감히 낮은 신분으로 공주를 사랑해서였나, 그냥 왕의 허락도 없이 공주를 사랑해서였나, 어느 쪽이든 옛날얘기가 아니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지.

분명한 건 공주도 이 죄인을 사랑했다는 거야. 이것도 어째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냥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처음이어서였을까, 아니면 왕 모르게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의 근거가 될 만한 소통이 있었던 걸까. 아무튼 공주가 그 사람을 사랑했다는 것만은 기정사실이야. 이후에 이어질 부분에서 이 감정이 중요한 역할을 하거든.

사랑하는 사람이 처형되기 전날, 공주는 자기의 지위를 이용하고 수완을 발휘해서 다음날 퀴즈의 정답을 알아냈어. 어느 쪽 문에 여자가 숨고 어느 쪽 문에 호랑이가 숨을지. 그래서 죄인에게 어떤 문을 골라야 목숨을 건질 수 있을지 알려줄 수 있게 됐어. 왕국 전체의 엔터테인먼트일 그 처형에는 공주도 참석할 예정이고, 다른 많은 구경꾼들이 그러듯이 공주가 오른쪽! 오른쪽! 또는 왼쪽! 왼쪽! 외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테니까. 그런데 공주에게 정보를 전해준 사람이 쓸데없는 말까지 해버렸나봐. 공주는 다음날 문 뒤에 서게 될 여자가 누구인지도 알게 됐는데, 그 여자도 아마 죄인과 모종의 관계가 있었나봐. 공주에게는 사랑의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여자.

그러니까 날이 밝으면 공주는 죄인을 살릴 수 있는데, 살아난 죄인은 어떤 여자의 사랑을 이루어주게 되는 거야. 공주 자신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그런데 그러려면 공주가 죄인을 살리는 선택을 해야만 하고. 그래서 공주는 깊은 고민에 빠져.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 채로 죽게 놔둘 것인가, 그 사람이 살아서 다른 여자의 소망을 이루어주는 광경을 목격할 것인가.그게 끝이야?” 잠든 것 같았던 하나가 물었다. “그래서 공주는 어떤 문을 골랐는데?” 샤시는 대답했다

, 이 얘기는 이렇게 끝나.

이제 자자.

 

 

가르침(Una Educación)

샤시의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인도인이었지만 샤시는 요가를 전혀 할 줄 몰랐다. 요가를 잘하는 사람이 가장 많은 나라는 아무래도 인도겠지만, 일본인 중에 스시 장인이 많다고 해서 모든 일본인이 스시를 쥘 수 있는 건 아니듯이. 맨 앞에서 시범을 보이던 마담이 크게 웃으며 자리를 벗어나 샤시에게 다가가 어깨를 짚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죠?”

우티타 트리코나아사나(Utthita Trikonasana: 삼각 자세) 도중이었다. 난도가 대단한 동작이 아닌데도 샤시는 헤매고 있었다. 요가를 잘해서가 아니라 체구가 작아서 앞줄에 있던 샤시는 공동체의 다른 모든 성원과 반대 방향으로 허리를 꺾어 뒷줄 사람과 눈이 마주친 상태였다.

이러면 손이 바닥을 짚기 어렵죠.”

마담은 크게 힘들이지 않고 부드럽게 샤시의 윗몸을 일으켜세운 후에 올바른 방향으로 허리를 굽히도록 밀어주었다. 저년 저거 분명히 일부러 저러는 거야. 샤시의 위치에서 두 줄 뒤 한 줄 오른편에 선 하나는 팔을 쭉 편 채 허리를 한쪽으로 굽힌 자세를 유지하기 힘들어 부들부들 떨며 생각했다. 하나의 눈에는 마담의 속셈이 훤했다. 인도계인 샤시를 망신 주면서 인도인보다 요가를 잘하는 유러피안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 게 확실했다. 그게 아니라면 초심자인 샤시를, 부모는 인도인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애를 굳이 맨 앞줄 가운데 자리에 세울 이유가 있겠는가.

샤시는 얼굴을 붉혔지만 불평하지도 얼굴을 찡그리지도 않았다. , 무릎 굽히면서 위로 든 팔 등뒤로 돌려 우티타 파르스바코나아사나. 마담은 제자리로 돌아가 시범 동작을 다시 선보였다. 보기에는 전체적으로 둥글고 단단해서 유연성이 크게 기대되지는 않는 체형이었지만 마담에게는 전문가다운 능숙함이 있었다. 이십여 분이 더 흘러 사바아사나(Savasana: 시체 자세)에 도달하기까지 샤시는 수차례 더 마담의 지도를 받았다.

그러니까 이 모든 일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걸까. 우리가 활이 되었다가, 산이 되었다가, 또 전사였다가, 개일 때도 있다가, 쟁기가 되고 아기가 되고 결국은 시체가 되는 일에. 도저히 따라 할 수 없는 동작은 무릎 꿇고 눈만 끔뻑이며 보았는데도 온몸을 땀으로 적신 채 샤시는 골똘한 생각에 잠겼다. 요가가 끝나면 명상이 시작되었다. 요가는 어려워도 명상은 좋아, 라는 것이 샤시의 입장이었다. 마담은 가부좌를 틀고 싱잉 볼을 끌어 발 앞에 둔 채 나무 봉으로 그릇 주변을 훑었다.

사랑은 명상이에요.”

웅웅 울리는 소리 가운데 마담이 꿈꾸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배고, 번제며, 참회예요. 그러면 우리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승려입니다. 제사장입니다. 순례자입니다.”

마담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러나 마담의 발화에 신성한 권능을 부여하려는 듯 가는 바람이 공동체 성원들의 사이사이를 맴돌았다. 호숫가에 그늘을 드리운 버드나무가 바람에 스스스 사사사 수천수만의 이파리를 비비며 흔들렸다.

우리는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마담은 자신이 하려는 말에 미리 감격한 것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랑 그 자체가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순수한 사랑의 존재들이 될 때, 사랑은 우리에게 특별한 힘을 허락해줄 거예요.”

또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야, 짜증나게. 하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명상하자면서 뭔 말이 이렇게 많냐고.

특별한 힘까지 필요할까? 펠리페의 생각은 이러했다. 사랑이 주는 이득은 사랑의 기쁨 하나로도 차고 넘치는데. 사랑은 이미 그 자체로 완벽한 선물 아닌가.

한편 샤시는 마담이 처음 했던 말, 사랑은 명상이라는 명제를 여전히 곱씹고 있었다. 살면서 단 한 순간도 누군가에게 로맨틱한 감정을 품어본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전망을 가진 사람으로서, 샤시는 자기만큼 사랑을 정확하게 알고 싶어하는 사람은 드물 거라 생각했다. 체험할 수 없다면 최소한 이해는 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는 신성에 대한 감각이 이러하겠지, 아마도. 이런 생각에 샤시는 공동체의 그 누구보다도 마담의 가르침을 귀기울여 들었다. 사랑이 정말 명상이라면 그건 왜일까. 명상의 오의를 터득하면 사랑에 대해서도 알 수 있게 되는 걸까.

 


* 施無畏印. 손가락이 위로 가도록 펼쳐 세운 오른손의 손 갖춤.
** 與願印. 손가락이 아래로 가도록 펼쳐 내린 왼손의 손 갖춤.
*** 프랭크 스톡턴의 단편소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