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은 예정된 시간을 십이 분 넘겨 끝났다.
박수갈채 앞에서 내가 취한 행동은 손목을 틀어 시계를 보는 것이었다. 청중에게 무례해 보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은 시간을 확인함과 동시에야 들었다. 하지만 먼저 무례를 범한 건 주어진 시간을 넘기고도 질문을 멈추지 않은 쪽이 아닌가, 끝이 머지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질문자를 일으켜세운 진행자에게나 답변을 적당히 간추려 말하지 못한 나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나는 가벼운 묵례를 덧붙인 후에 콘퍼런스 홀을 빠져나왔다. 손뼉 치는 소리, 이어질 프로그램과 다음 연사를 소개하는 진행자의 목소리가 두꺼운 방음문에 가로막혀 회장 안으로 빨려들듯 끊어졌다.
대기실로 향하는 복도에서는 누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오기 직전에 시간을 확인한 까닭은 다음 연사를 의식해서나 이후에 긴요한 일정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다만 만날지도 모르는 사람은 있었는데, 나는 복도에 서 있던 젊은 여자가 아마 그 사람이겠거니 짐작했다.
“인상 깊은 강연이었습니다.”
여자는 꼿꼿이 선 자세로 말했다. 겉보기로 예상한 것보다 훨씬 낮고 중후한 목소리였다.
“미스 말릭?”
“샤시라고 불러주세요.”
그때까지 상대와 내가 주고받은 상호작용은 메일 몇 통 주고받은 것이 다였다. 만나자마자 이름으로 불러도 좋을 만큼 친밀한 관계는 결코 아니었고, 상대방 역시 나와의 거리를 잘못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성별을 특정하는 존칭을 듣고 싶지 않은 것이겠거니. 요즘 젊은 사람들 중에는 드물지 않지, 이런 요청을 하는 유형이. 돌이켜보면 상대방이 보낸 메일에도 연령이나 성별을 추정할 단서가 없었다. 보낸 이의 이름을 보고 인도계인가 생각하기는 했는데, 인터넷으로 좀더 찾아보니 샤시는 여자 이름이기도 남자 이름이기도 했다.
“알겠습니다. 실례했어요.”
“별말씀을요. 저야말로 불쑥 찾아온 결례에 사과드립니다.”
메일에서와 같이 정중한 태도였다. 마침 나는 속으로 샤시라는 청년의 차림새를 평가하고 있었기에 그 사과에 필요 이상으로 관대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는 연푸른색 셔츠와 쑥색 리넨 바지를 입었는데, 무릎 부근이 해져서 완두콩으로 쑨 죽처럼 색이 변해 있었다. 물론 우리는 고급 사교 모임을 할 게 아니었고, 연사가 아니라 청중으로서 강연에 참석한 샤시에게 대단한 드레스 코드가 필요한 것 또한 아니었지만, 우리가 만난 장소가 콘퍼런스 홀을 갖춘 대형 호텔이라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 좋게 말해 무심하고, 있는 그대로 말하면 실례가 될 만큼 허술한 옷차림과 우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깍듯한 태도의 괴리가 내게서 일면 무방비한 웃음을 짜낸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은 미소는 샤시라는 청년에 대한 무장해제를 의미하지 않았고, 그보다는 차라리 당신을 무심코 평가해버렸다는 죄의식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방어적 제스처에 가까웠다. 나는 내가 곧잘 취하곤 하는 이러한 관점, 혹은 습관이 속물적으로 보이기 쉽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잘 떨치지 못했다. 변명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교육과 경험을 통해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나 자신의 나 자신스러움—확장해서 말하자면 내 또래 동아시아 여성다움이기도 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의 어머니는 늘 내게 옷을 잘 차려입을 것을 당부하고 주문했다. 훈육이라고 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강요에, 그 자신의 강박을 나에게도 감염시키는 방식에 가까웠다. 물론 나는 어머니가 그러는 이유를 알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쩌면 어머니가 알려주려 한 것보다 더욱 정밀하게 이해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가령 내가 이 샤시라는 젊은이와 같은 차림으로, 그와 똑같이 부슬부슬한 검정 곱슬머리를 장식도 없는 머리끈 하나로 대강 묶은 모습으로 이 호텔의 복도를 걷다가 투숙객들을 마주치면 그들은 내가 청소부 내지 청소부로 취직하고자 면접이라도 보러 온 장년의 아시아 여성이라 생각할 것이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피해의식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나 자신의 공명심 혹은 허영심에 비추어 쾌적하다고 느낄 만한 명성을 얻은 이후에도 그러한 종류의 해프닝은 종종 실제로 일어났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떠한 업적을 쌓았는지에 대한 구구한 설명보다는 격식 있게 갖춰 입은 옷 한 벌이 언제나 몇 배는 더 효율적이었다. 여기에는 이해보다 체화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일단 같이 가죠.”
물론 이러한 인식의 맥락에서, 샤시 또한 아시아인 여성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었다. 샤시는 나를 청소부처럼 보이게 할 낡고 볼품없는 옷을 걸치고 있는 당사자였으니까.
“연사 대기실에는 다른 분들도 있으니 내가 가방을 들고 나올게요.”
샤시는 미소를 지었다. 나는 별 내심이 없어 보이는 샤시의 표정이 매우 서구적인 인상이라 생각했다.
샤시에게서 첫 메일을 받은 것은 대략 반년 전, 행사 섭외에 수락의 뜻을 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샤시는 내가 조만간 텍사스에 방문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고 그래서 나는 얼마간 겁에 질린 채 답장을 망설였다. 메일 주소야 내가 재직하는 대학교 홈페이지에서도 금세 알아낼 수 있다지만, 아직 공표되지 않은 스케줄을 정확히 알고 그때 만날 수 있을지를 묻는다는 것은 어떻게 보아도 범상한 일이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결국 나는 답장을 쓸 수밖에 없었다. 첫째, 내가 반년 후 지구 어디에 있을지를 당신이 도대체 어떻게 아는지를 간절히 묻고 싶었기 때문. 둘째, 보낸 이의 성씨가 말릭(Malick)이었기 때문. 설명하기에는 사소하면서도 복잡하며 개인적으로는 심란한 몇 가지 우연의 중첩으로 서로 별개였던 두 가지 이유는 하나의 답을 가진 수수께끼로 합쳐졌다. 내가 수락한 행사는 이전에 이미 두 차례 나를 초청해 인연을 맺었던 메이-오스터 과학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대중 강연으로 나 외에도 여러 학자들이 연단에 오를 예정이었는데, 그중 천문학 관련 프로그램을 맡은 사람이 샤시의 아버지이자 존스 우주 센터 연구원인 닥터 말릭이었던 것이다. 샤시는 예지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나 영매는 아니었고, 연예인도 인플루언서도 아닌 내게 오랜만에 붙은 스토커나 파파라치도 아니었다.
물론 나는 안도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샤시를 만날 마음이 든 것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은가, 내가 왜? 얼굴이 지나치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해 젊은 시절에는 언론 인터뷰도 수락할 수 없었던 내가, 같은 이유에서 메이-오스터 심포지엄과 같은 대중 강연 섭외를 거절하지 않게 된 지 겨우 삼 년밖에 안 된 내가, 이렇듯 나름의 주의를 기울이고도 스토킹과 파파라치 피해를 면치 못한 내가 왜 낯선 사람과 만나 대화를 나누어야 하는가.
두번째 회신에서 나는 상대방이 가장 위험한 유형의 스토커가 될—이 유형의 스토커는 스스로를 스토커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베푼 호의에 마땅한 대우를 돌려받지 못하면 ‘정당한’ 분노에 휩싸인다—가능성을 상정하고 거절의 의사를 가능한 한 우회적으로 표현하려 노력했다. 샤시는 내가 전하고자 한 뜻을 어렵지 않게 간파했지만 그에 승복하지는 않았다. 대신에 매우 길고 세심하게 쓴 메일을 통해 자신이 안전한 인물임을 소개하고 나와 면담하는 일이 자기에게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려 했다.
이 메일이 내 뜻을 바꾸는 데에 주효했다고 평가하기에는 다소의 무리가 있지만, 적어도 샤시를 만나야 할 이유가 없는 만큼이나 그를 절대 만나지 말아야 할 이유 역시 없다는 점을 일깨워주었다는 점에서는 적지 않은 효과를 발휘했다. 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샤시가 그 긴 메일에서 단 한 번도 내가 그를 만나는 것이 나에게도 좋은 일이 될 거라는 감언이설을 늘어놓지 않아서였다. 이 사람은 정중할 뿐 아니라 정직하군, 그렇다기보다 겸허하다고 할까.
때문에 세번째 회신은 보다 직설적으로 썼다. 나는 딱히 당신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만나게 되면 만나지 않을 생각도 없다. 샤시는 이 말장난 같은 소리가 내 나름의 긍정임을 알아보았다. 이후로는 레스토랑에서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이 있는 재료를 확인하듯 내가 대답할 수 있는 화제, 결코 물어서는 안 되는 화제 등을 묻고 답하며 조율하는 메일을 몇 통 더 주고받았다.
이 시기의 메일 내용은 대체로 건조한 질의응답에 불과했지만 이즈음 나는 이전보다 몇 배는 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느꼈다. 이를테면 좀더 젊은 시절 내가 거절했던 인터뷰와 그 기자들, 그들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지구 반대편의 낯모르는 누군가가 쓴 메일 대여섯 통에 넘어가 대화의 가능성을 시사하는—을 안다면 어이없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내가 샤시를 만나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요인이 그가 기울인 노력보다는 그의 성씨가 말릭이라는 점에 있다는 것이 우습기도 했다.
물론 샤시는 좋은 사람 같았다, 메일을 주고받았을 뿐이지만 그 사실은 그리 의심스럽지 않았다. 내가 하려는 말은 오히려 말릭이라는 성이 내게 미치는 영향이 그 인상을 상회할 만큼 강력하다는 쪽에 가깝다. 다름이 아니라 내 예전 약혼자의 성이 샤시의 성과 철자까지 똑같은 말릭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천(陳)씨인 것을 보면 짐작 가능하겠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내게 그리 흔쾌하지 않은 영역에 있는데, 오랜 시간이 흘러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을 알게 되니 호기심이 동한 것쯤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 말릭과 이 말릭 사이에 모종의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하고 자의적인 상상을 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우리는 호텔 지하 이층에 있는 바에서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나는 샤시에게 잠시 내 방에 다녀올 테니 올리브를 뺀 마티니를 주문해달라고 청했다. 구두를 스니커즈로, 정장을 스웨트 셔츠와 스트레치 팬츠로 바꾸어 입고 돌아와보니 샤시는 휴대전화 화면을 보며 붉은색 음료를 마시고 있었다.
“블러디 메리인가요?”
“버진입니다.”
나는 샤시 앞에 앉았다. 내 몫의 마티니가 놓인 자리에.
“보드카 없는 메리는 토마토수프 아닌가요?”
“올리브 빠진 마티니는 그냥 진 아닙니까?”
내가 건넨 농담에 샤시는 웃지도 않고 대꾸했다. 웃은 건 내 쪽이었다. 나는 내가 그에게 웃어‘준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의식하며 아주 조금만 웃었다.
“입에 올리브를 물면 짭짤하고 느끼한 고무를 씹는 느낌이에요. 레몬 제스트면 충분해요.”
게다가 마티니에는 다른 재료도 한 가지 더 들어간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게 무엇이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마티니를 한 모금 머금었다. 아, 베르무트. 나는 베르무트라는 이름을 소리 내서 말해보았다. 샤시는 반응하지 않았다.
“그럼 이제 대화를 나눠볼까요.”
나는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대략 한 시간 뒤에 공식 프로그램이 끝나고, 그 삼십 분쯤 뒤부터는 네트워크 파티가 시작될 터였다. 사적으로 꼭 만나보고 싶은 다른 연사가 있는 게 아니라도 파티에는 참석할 계획이었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다른 연사들 쪽에서 나를 사적으로 꼭 만나보고 싶어하지 않을까 해서. 나는 주목받을 기회를 마다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성격이 내 또래 아시아인 여성답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이제는 나이를 충분히 먹었다. 자의로든 아니든 이십 년 넘게 본성을 억누르고 살았으면 이제 충분하지 않은가.
“녹음은 안 돼요. 우리 약속했죠?”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기억. 내가 한 말을 기억해서 쓰는 건 괜찮지만 녹음은 안 돼요.”
샤시는 가방에서 메모 패드를, 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만약 당신이 쓴 책이 내 마음에 안 들면 어떡해요. 녹취 파일이 있으면 내가 나중에 빠져나갈 구멍이 없잖아요.”
샤시는 웃었다. 내 말이 농담이라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안 맞는군, 유머 감각이. 나는 마티니를 마시며 생각했다. 웃으라고 꺼낸 말에는 웃지 않고 진지하게 건넨 말에 웃는 점이 내가 예전에 알던 다른 말릭을 연상시켰다.
“제가 쓴 원고를 메일로 보내드릴 테니 삭제나 수정을 원하는 부분을 검토해주세요.”
“그래요.”
“시간 많이 빼앗지는 않겠습니다. 사실 만나주신 것만으로도 영광인데요……”
샤시는 볼펜 버튼 부분으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메모 패드에 질문해도 되는 내용과 그렇지 않은 내용을 적어둔 모양인지 왼손으로는 그것을 꼭 붙들고 있었다.
“천이쥔(陳怡君) 교수님 이야기를 포함한 원고라면 출판 기회를 얻기도 쉬울 것 같아요. 즉 이 책이 나오느냐 마느냐는 천교수님께 달려 있는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화를 수락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요.”
샤시의 말이 빈말이나 겉치레가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알았다. 그리고 그 점이 퍽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의외로, 가장 예민한 부분이라 예상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하신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맞아요.”
샤시는 영민한 젊은이였다. 내가 하는 말과 하려는 말의 맥락을 읽어낼 능력이 충분한—유머 감각이 부족한 게 흠이지만. 나 또한 샤시가 무엇을 의아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이십 년도 넘게 함구해온 사연을 이제 와 밝히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걸 다른 인터뷰어나 르포 작가들, 다큐멘터리 감독들이 아니라 하필 자신에게 말하려는 건 또 어째서인지.
“이제 말하고 싶어요. 너무 오래 숨겼으니까.”
나는 솔직한 심정을 고백한 것이었지만 이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 할 수는 없었다. 샤시의 역할에 대한 나의 생각은 말하지 않았으니까. 샤시가 나의 사연을 필요로 하듯, 내게도 마침 샤시 같은 사람이 필요했다. 영민하지만 경력은 없는 사람, 완전히 무명에 가까운 사람. 후일 그가 성공했을 때, 그의 성공에서 나의 영향력이 차지하는 지분이 거의 100%라고 말해도 좋을 사람.
말하자면 나는 한 영민한 젊은이를 운좋은 젊은이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맡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면 나 자신에게는 그 역할을 능히 맡을 수 있다는 권능감이 주어지니까. 만일 샤시가 끝내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나는 다른 젊고 재능이 있으며 경력이 없는—또한 아마도 말릭 씨(氏)가 아닐—누군가를 찾아 그 영광을 누리게 했을 것이다. 내가 아직 아무에게도 털어놓은 적 없는 이야기를 듣는 영광.
“그럼……”
샤시는 심호흡을 했다.
“2001년이었던가요? 교수님께서 미코박테리움 부레니칼루이아(Mycobacterium Vuresnikalouia), 소위 로로마라고 하는 미생물을 발견하신 때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발견한 것은 사랑의 묘약이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사랑과 관계된, 강력한 힘을 가진 물질이라는 점이 착시를 일으키는 듯했다. 지식이라는 것의 속성이 그러하다. 확산될수록 단순화되고 그만큼 오인의 가능성이 커진다. 가령 수은이 몸에 나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성질을 띠는지, 그래서 인체에 어떻게 해로운 영향을 미치는지는 관련된 교육을 받은 사람들만 아는 것처럼. 또한 사랑이라는 정서 활동의 속성이 원체 그렇다, 그것에 연루된 현상들은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로로마가 사랑에 빠지게 해주는 물질이라고, 그것의 존재를 세간에 알린 나 천이쥔은 사랑의 전문가일 거라고 믿고 싶어했다. 로로마의 효과는 될 수 있으면 사랑을 하는 쪽이 하지 않는 쪽보다 낫다고 느낄 만한 것이기에 ‘사랑에 빠지게 해준다’는 미신이 아주 틀린 것이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나에 관한 오해는 분명한 오류였고 내게는 그에 따른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했다. 애정을 갈구하거나 살해 협박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가 하면 불특정 다수에게 내 근황을 알리는 글과 사진이 비정기적으로 인터넷에 올라왔다.
그런 소동들이 잠잠해진 지도 몇 년 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로로마를 발견했다는 건조한 사실과 연구에 따른 학술적인 정보만을 공개했을 때에 그토록 흥분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조용해진 이유. 크게 두 가지를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을 것이다. 로로마 사용이 공식화된 지역이 늘어나면서 그에 대한 오해가 불식된 것, 그리고 충분히 나이를 먹은 내가 더는 매혹적이고도 위험한—마녀 같은—존재로 보이지 않게 된 것. 나는 이제 말할 수 있지만, 사람들은 전처럼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금이 말하기에 가장 적절할 때라고 나는 생각했다.
어째서 지금까지 주저해왔고 또 어째서 이제는 괜찮은지를 더 해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논리적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로로마의 발견 경위가 당연히 발견자 본인의 사랑 이야기일 수밖에 없음을 짐작할 테니까.
그러나 그해 내게 주어진 경험 중 가장 큰 일이 무엇이었는지 손꼽기는 쉽지 않다. 다만 그 모두가 분명한 인과로 이어져 있으므로 먼저 일어난 일부터 앞세우는 편이 좋을 것이다.
당시에 내가 지내던 곳은 시드니. 박사과정 중이었고 현지에 자리를 잡은 친척이 내준 방에 공짜로 살았으며 따라서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내가 알던 다른 유학생들, 즉 한 주에 한 번씩 부과되는 호주식 방세를 감당하려니 생활비가 부족해 학생비자로 허용되는, 혹은 그 이상의 파트타임 잡을 병행해야 했던 사람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엄청난 특혜였지만, 정작 나로서는 불만이 더 컸다. 나는 약혼자와 함께 살고 싶었는데, 그랬다가는 고모와 사촌들이 바로 어머니에게 일러바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말할 나위 없이 엄한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라난 덕에 나로서도 동거라는 개념 자체는 다소 부담스럽게 느끼기는 했다. 다른 유학생들은 방세 절약 차원에서 비교적 가벼운 관계여도 금세 동거를 시작하곤 해서 내가 시대에 뒤떨어졌거나 지나치게 겁이 많은 건 아닌지 자문해볼 때도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뒤처지거나 소심했다기보다—그 또한 맞을 수도 있지만—그저 부유했던 것이다, 그때껏 학습받은 생활과 문화의 방식을 바꾸지 않아도 될 만큼.
대만 본가에서 상당한 금액을 지원받아 시드니에 딤섬집을 차린 고모는 집안의 큰며느리인 내 어머니의 말을 거스를 수 없었고, 덕분에 시드니 집은 타이베이 집의 축소판 혹은 식민지처럼 느껴졌다. 어머니가 원수라면 고모는 총독이었다고 할까. 결혼까지 운운할 만큼 깊은 관계의 연인과도 동거는 고사하고 외박 한 번 마음 편히 할 수 없었던 까닭은 그것이다. 기껏 어머니 곁을 떠나와서는 결국 어머니의 분신에게 몸을 의탁했기 때문.
사촌들은 내가 호주인과 사귄다는 사실을 자기들 어머니나 내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는 것만으로 꽤나 큰 은혜를 베풀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나는 어머니, 고모 내외, 사촌들, 그들 모두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가 서른하나라는 사실. 부모님 지원을 받아 공부중인 학생이라고는 해도, 빌어먹을, 십대 여학생이 아니라 내 비즈니스 정도는 내가 알아서 해도 좋을 나이.
샘, 그러니까 새뮤얼 말릭, 나의 피앙세. 그도 유학생이었다. 그의 고향인 퍼스는 시드니에서 사천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의 도시였다. 사천 킬로미터는 타이베이와 도쿄의 왕복 거리에 달한다. 타이베이와 시드니의 거리는 그 두 배에 준하지만.
샘은 수줍음이 많고 외로움을 몹시 탔고 다정다감했다. 그전까지 만나본 남자들과 비교했을 때도 물론 그랬지만, 이후에 맺었던 인연들을 비교 대상에 포함해도 압도적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샘의 외로움이 그의 다정함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스스로가 외로움을, 그 씁쓸하고 특징적인 맛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상대에게는 그것을 감각할 틈을 주지 않으려 하는 식. 그렇다고 그가 징징거리는 남자였다는 말은 아니다. 샘은 매우 섬세한 사람이었지만 과묵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 나는 매력을 느꼈지만, 내가 그에게 화를 낸 것도 주로 그 성격 때문이었다.
한번은 샘이 내게 그림책을 선물한 적이 있다. 내가 아는 책이었다. 단순히 이미 읽어본 책이라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 좋아하던 것들에 대해 나누던 대화에서 가볍게 언급한 적 있는 물건이란 의미다. 서양 전래동화 몇 편에 일본인 작가가 그린 삽화가 들어간 그 책은 1980년대 중반에 표준 중국어가 아닌 대만 민어로 간행된 것이었다. 이베이가 뭔지 몰랐던 그때의 나는 호주인인 샘이 현지에서도 찾기 힘들 물건을 구해와서 내게 건넸다는 사실에 몹시 놀랐고, 당연히 어느 정도는 감격했으나, 곧 내가 언급한 책이 바로 이것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어떻게 알았는지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샘은 내 사촌들과 주고받은 메일을 보여주었고 나는 사촌들이 쓴 답장 가운데서 ‘어릴 때 언니네 집에서 본 것 같긴 한데, 잘 기억이 안 나서 큰숙모께 전화를 걸어 여쭤봤더니’라는 표현을 기어이 찾아냈다.
쓸데없는 짓을!
샘은 자기의 로맨틱한 선물이 갈등의 단초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겠지만 나는 진노하며 길길이 뛰었다. 평소에는 굳이 안부도 묻지 않고 지내던 조카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 이쥔 언니가 어릴 때 제일 좋아하던 책이 뭐였죠? 물으면 어머니가 무슨 생각을 할까, 의심도 겁도 나보다 배는 많고 보수적이기로는 제곱도 넘을 나의 어머니가.
내가 막 호주에 오기 직전 어머니는 이왕 공부에 뜻을 뒀으니 결혼이 늦어지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국제결혼만은 용인할 수 없다 말씀하셨고, 그때까지 그것은 그건 농담 또는 편집증적 망상—어머니의 성격을 생각하면 후자에 가깝다—일 뿐이었지만, 내가 샘을 만난 이상 어머니의 불안이 착각에 불과하다 말할 근거는 전혀 없게 되었다. 오히려 나는 어머니가 옳았음을 몸소 증명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는 또한, 이후 나와 관련된 어머니의 모든 판단을 반박하기 어려워지리라는 전망의 일보이기도 했다. 내가 그때 그렇게 잘 알아듣게끔 말했는데도 너는 결국 외국인 사위를 데려왔잖니, 남은 평생 어머니가 곱씹을 레퍼토리가 너무도 뚜렷하게 그려진 나머지, 그렇게 말하는 음성을 벌써 들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샘과 헤어지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도리어 사랑은 그 어느 때보다도 깊고 강렬한 시기였다. 그도 마찬가지였기에 내게 깜짝 선물을 준 것이었겠지. 언젠가 준비를, 몸과 마음과 커리어의 만반을 갖추고 나면 어련히 어머니에게 그를 소개할 생각이었는데, 자칫 내가 어머니에게 통보하는 방식이 아니라 어머니가 내 과오를 들추는 방식으로 그의 존재를 알게 되면 나에게는 물론 샘에게도 전혀 이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샘은 내가 제풀에 지쳐 화내기를 그칠 때까지 기다린 후에, 웃었다.
웃어 지금? 웃음이 나와? 그렇게 따지기에는 이미 화를 너무 내서 기운이 없는 참이었기에, 나도 따라 웃었다. 하하. 웃고 보니 맥이 빠졌다. 화를 낼 동안 내가 했던 모든 생각이야말로 아직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은 일들에 대한 예단, 말하자면 어머니가 품고 사는 것과 꼭 닮은 종류의 편집증적 망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십 분에 걸쳐 악을 쓰고 머리를 쥐어뜯고 그의 방을 서성이다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침대를 주먹으로 펑펑 두드리다가, 그가 웃자 따라 웃고, 내가 너무 과민했던 것 같다고 사과하기까지 샘이 내게 한 말은 서너 마디 정도에 불과했다. 미안해. 아니, 내 생각이 짧았어. 괜찮아.
그런 사람이었다. 나와는 ‘여우와 두루미’처럼 달랐지만, 그를 만나고서 나는 다르기 때문에 가능한 공생의 형태도 있는 게 아닌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여우와 두루미의 주둥이는 서로 다르게 생겼지만 먹이도 달라서 다툴 필요가 없다. 여우에게는 두루미가 갖지 못한 풍성한 꼬리가 있고 두루미는 여우에게 없는 가늘고 우아한 목을 가졌다. 그는 나의 크고 작은 불안들을 진정시켰고 나는 그의 단조로운 생활에 리듬을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가 왜 죽음을 선택해야 했는지를 나는 모른다. 나는 우리가 달라서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달랐기 때문에, 정작 그의 생각은 어떠한지를 알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그는 외로움을 많이 타기는 해도 우울한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에게는 그럴싸한 계획도 있었다. 크게는 장래의 커리어며 가족계획부터 작게는 다가올 방학, 연말 추수감사절과 성탄절 계획까지.
교정에서 맞닥뜨린 경찰이 그의 마지막을 알려주었을 때 나는 울지도 않았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Gene), 맞죠? 경찰은 내 영어 이름이 적혀 있는 편지봉투를 건넸다. 봉투에 든 엽서 크기의 얇은 종이에는 단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I LOVE YOU
의심할 나위 없는 샘의 손글씨였다. 팔랑거리는 종이를 뒤집어보니 뒷면에도 메시지가 있었다.
YOU DON’T.
나는 반쯤 미쳐버렸다.
샤시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에 나는 시드니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어요. 약혼자가 있었죠. 큰 전조 없이 그가 자살을 했어요. 그 일로 괴로워하다가 친척들의 권유로 여행을 해보기로 했죠. 시드니는 항구도시라서 제도(諸島) 크루즈 투어 프로그램이 많아요. 어디로 가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서, 내 일정에 맞는 배 아무거나 예약해달라고 여행사에 말해뒀죠. 피지섬 크루즈라는 걸 당일에 알았어요.”
물론 여행사에서는 여행안내 카탈로그를 미리 집으로 보내줬다. 나는 그걸 뜯지도 않고 봉투 겉면에다 출발 일시만 메모해뒀다가 그대로 들고 나갔다. 투어 프로그램이나 크루즈 시설 같은 것은 그때그때, 현장에서 확인하는 편이 좀더 재미있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지만, 진심으로 흥미를 느끼지는 못한 탓이 물론 컸다. 그래도 사고가 날 것을 미리 알았다면 여행자 보험증서는 좀더 주의깊게 봐두었을 것이다. 내게서 돈냄새를 맡았을 여행사가 알아서 프리미엄 플랜을 맞춰주긴 했지만, 수혜자가 될 내가 구체적인 보장 내용을 알아둬서 나쁠 건 없으니까.
그러나 그런 일이 정말로 일어날 거라는 생각을 대체, 어느 누가, 진심으로 하겠는가.
“문라이트 가닛호 사고는 저도 알고…… 제가 좀더 조사해서 쓰면 되니까 자세히 묘사하려고 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시간이 흘렀다고는 해도 트라우마가 심할 수 있으니까요.”
샤시의 말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뇨, 괜찮아요. 지금도 내가 말해도 되겠다고 생각한 만큼만 말하고 있으니까, 일단 듣고 나서 빼야겠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빼세요.”
귀환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전체 승객 중에 사망 및 실종자는 열일곱 명. 물론 최초 실종자로 기록된 사람은 그보다 많았는데, 대부분은 사고 지점 인근 섬에서 발견되었다. 그 가운데 나는 운이 조금 나쁜 편이었다. 바누아투 인근이었던 사고 지점에서 한참 떨어진 뉴칼레도니아까지 떠내려갔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숨이 붙은 채로 육지에 닿았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기적인지에 대해서는 이의가 없지만 말이다.
기절하지 않았다면 선체에서 구조될 수 있었을까? 다른 대부분의 승객들이 그랬듯이. 아니, 아마 죽었을 것이다. 사고는 밤중에 일어났고 다른 많은 승객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자고 있었는데, 잠이 얕은 나는 선체가 뭔가에 부딪쳐 울리는 굉음과 몸을 울리는 충격파를 감지하고 깨어났다.
내 몸은 여전히 침대에 접촉해 있었지만 동시에 나는 반쯤 물구나무를 선 채였다. 배가 기울어 정수리가 벽에 닿고 있었던 것이다. 중력을 따라 쏟아지듯 침대를 벗어나 구명조끼를 입었다. 불을 켰는지, 끈 채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두운 가운데 발등을 적시는 차가운 물을 느꼈던 기억이 있는 것으로 보아 미처 불을 켤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은 드는데, 그러면 구명조끼는 어떻게 찾아 입은 것인지가 모호해진다. 여하간 구명조끼 덕에 죽지 않고 표류한 것만은 분명하니 그날 밤 사고에 대한 기억과 감각의 착란을 완전히 해명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살면서 단 한 번 과호흡을 경험했는데, 그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게 정말 실제 상황인지, 실제라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심각한 상황이라면 안내 방송은 왜 나오지 않는지, 그런 일련의 생각들이 온통 물리적인 부피를 가지게 되어 목을 누르고 가슴 아래로 침범해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모두 함께 머물기에는 두개골 안이 너무 붐비기라도 하는 듯이. 멀쩡하던 갈비뼈들이 주먹 쥔 손가락들같이 안으로 구부러져 폐를 찌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와중에 안 그래도 사촌들이 여행을 추천하긴 했지만 크루즈는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한 게 떠올랐고, 그땐 그게 내가 설마 약혼자를 뒤따를까봐 걱정하는 건 줄 알고 코웃음을 쳤는데, 꼭 그런 의미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 외에도 여러 생각들, 평생을 해도 모자랄 무수한 생각들을 짧고 고통스러운 호흡 속에 이어가다가, 마치 과열된 컴퓨터가 예고 없이 꺼지는 것처럼 나는 정신을 잃었던 것이다.
“나에게 운이 정말 좋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특히 가까운 사람들이 그래요. 내가 겪은 일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 아주 틀린 말이라 할 수는 없겠지요. 나는 결국 목숨을 건졌고, 덤으로 로로마도 발견했으니까요.”
이쯤에서 나는 올리브를 뺀 마티니를 한 잔 더 주문했다.
“그건 나한테 이런 말로 들려요. 아, 당신은 도박에서 이겼군요, 목숨을 배팅해서 엄청난 걸 따낸 거예요. 그렇게 멍청한 소리가 또 있을까요.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요, 그럼 당신이 해보지 그러세요. 당신도 목숨을 걸고 요행을 한번 노려보라고요. 만약 시간을 돌려서 그 배에 탈 건지 안 탈 건지를 다시 결정할 수 있다면 나는 안 탈 거예요. 그 결과가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업적이자 인류사적으로 중대한 발견을 하나 무효로 만드는 거라 해도.”
해안에 닿을 때까지 정신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내가 목숨을 보전한 까닭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선실에 물이 어느 정도 차오른 후에 벽면이 파손되어 바깥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인터넷으로 문라이트 가닛호의 사고 사진을 찾아보면 크루즈 앞부분 60%가량이 암초 위에 얹혀 있는 꼴이다. 먼저 빠른 속도로 암초에 기어오를 때의 충격으로 선체 중앙부에 파손이 발생한 다음, 암초에 오르지 못한 뒷부분이 무게를 못 이겨 뒤로 넘어가면서 파손 부위가 더 벌어진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달걀 프라이를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양쪽으로 갈라진 껍데기 속에서 흘러나오는 알맹이. 내가 떨어진 곳은 프라이팬이 아니라 바누아투 앞바다였고, 그곳을 떠돌다 어떤 섬의 해안가에 밀려들었다는 점이 다르지만.
“섬 이름을 밝힐 수 없는 건 이해해줘요. 로로마 발원지라고 관광객이 몰려드는 건 곤란하거든요.”
“아, 그럼요. 그런데 수몰 위기 지역이라고 하던데요.”
“연구 인력들 사이에선 꽤 알려진 편이라서 그런 얘기가 나온 모양인데, 비밀 유지 서약으로 엄연히 보호되고 있는 정보예요.”
나는 마티니 잔 손잡이를 쥐고 잔 속에 든 액체를 빙글빙글 굴리다가 말했다.
“이 정도는 얘기해도 되겠네요. 섬사람들은 자기들 땅을 카구라고 불렀어요. 행정명하고는 별도로. 카구는 새 이름이에요. 뉴칼레도니아 일대에 서식하는 희귀종인데, 그 섬에 꽤 많이 살았어요.”
그 섬 사람들이 스스로를 카구인(人)이라 부른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카구라는 새는 카구속 카구과의 유일 종으로 혈족 중심적 무리 생활을 하는 것이 특징인데, 주로 일부일처로 짝을 이루지만 한 암컷과 형제 관계의 수컷 여러 마리가 하나의 무리를 이루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러한 정보가 생태학적으로 규명된 것은 2010년대 무렵의 일이지만 그와 흡사한 형태의 혼인 관계를 맺는 카구 사람들은 훨씬 오래전부터 그 사실을 알던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런 것들을 생각할 여유는 긴 표류를 끝내고 저체온증으로 죽을 위기를 벗어난 지 한참은 더 지나서야 생겼다.
뭍에 닿은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뭔가 뜨거운 물체가 내 팔을 감싸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소스라치며 깨어난 나는 그 뜨거운 것이 다름 아닌 사람의 손이고, 내 팔이 너무 차가워 정상적인 체온을 뜨겁게 느꼈음을 알았다. 곧 정신을 잃기 직전의 기억, 그러니까 몇 시간 혹은 몇십 시간 전에 일어난 선박 사고의 기억과 인상이 한꺼번에 떠올랐고, 머리가 날카로운 것으로 찔리는 것처럼 아팠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려 하자 구역감이 몰려왔다. 나는 옆으로 반 바퀴 구르듯 엎드려 모래 위에 밝은 오렌지색 곤죽을 뱉었다. 바닷물이 많이 섞여 시거나 떫은 맛보다 짠맛이 더 진했던 그 토사물의 주재료는 전날 크루즈에서의 마지막 식사였던 호박 요리인 듯했다.
나를 발견한 이가 내 팔과 어깨를 붙들어 일으켜 앉혀주었다. 그제야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사과 과육의 색깔처럼 밝은 금발과 청금석 홍채, 황갈색 피부. 멜라네시안이었다. 사진으로밖에 본 적 없는 생김새를 한 인물이 내게 뭐라 뭐라 말을 걸고 있었는데, 그 역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다.
갑자기 막막해져서 울고 싶었지만 울 기운이 없었다. 나는 구명조끼를 잡아당겼다. 몸에 딱 맞게 조인 벨트 때문에 숨쉬기가 버거웠는데, 손아귀에 힘이 없어 버클을 풀 수 없었다. 나의 구조자가 손을 빌려주었다. 플라스틱 버클을 푸는 요령을 모르는 것 같아 내가 시범을 보여야 했다. 가까스로 구명조끼를 벗어던진 후에도 숨쉬기는 여전히 불편했다. 내가 얼굴을 찡그리자 그는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양손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토리에모.
그가 말하고 내가 따라 했다. 토리에모. 그것이 그의 이름인 듯하다고—역시 그랬다—나는 생각했다. 그의 이름을 들었으니 내 이름도 말하는 것이 옳은 순서였겠지만, 갑작스레 엄청난 오한이 몸을 덮쳤고, 나는 나의 모국어로 급히 말했다. 안아, 빨리 나를 안아.
물론 그때 내가 앉아 있던 곳은 햇살로 충분히 달구어진 모래밭 위였지만 표류의 후유증으로 심각하게 떨어진 체온을 빠르게 되찾으려면 다른 수단이 필요했는데, 그가 내게 벗어줄 여벌의 옷이나 나를 덮어줄 담요 같은 것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당연히 토리에모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몸짓을 동원했다. 팔에 힘이 없어서 내 동작은 의도와 조금 다르게 양손으로 스스로에게 물을 끼얹는 것처럼 맥없는 제스처가 되었는데, 다행히 토리에모는 내가 하려던 말이 무엇이었는지를 이해했다. 그가 나를 안자 나는 불을 안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 덕에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