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

우주에서 가장 신분 차이 나는 짝사랑―(2/2)

차라리 그때 죽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한 적 있다. 나는 스스로를 비교적 삶의 의지가 강력한 사람이라 생각했고 지금까지도 그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누구라도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볼 것이다. 나보다 훨씬 억척스러운, 예를 들어 나의 어머니 같은 사람이라 해도 말이다.

카구섬은 작았다. 비교하자면 지베이(吉貝)섬보다 조금 큰 정도가 아닐까. 해안을 따라 걸으면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기까지 한나절이 채 걸리지 않는 섬이었다. 해안선 끝에서는 로열티 제도, 다른 쪽 끝에서는 바누아투 제도의 일부를 육안으로 관측할 수 있었다.

물론 그때는 카구에서 보이는 섬들이 정확히 어떤 곳인지 몰랐지만, 적어도 이보다는 큰 섬들이라는 것만은 알았다. 그쪽에는 가족들에게 연락을 취할 수단이 있을 것으로 추정할 만했다. 카구섬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장거리 연락 수단뿐일까, 체류 기간 동안 서구 문명의 흔적이랄 것을 거의 발견할 수 없었다. 유일하게 이질적인 것은 집집마다 기르는 돼지뿐이었다. 이 또한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뉴칼레도니아에 사는 포유류는 박쥐류와 고래류가 거의 전부라고 한다. 나머지는 전부 인간에 의해 전래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고깔 모양이라고 할까, 섬 중심부에 해발 삼백 미터가량의 꼭대기가 있고 해변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는 지형이었다. 때문에 이론상 중심부에서는 로열티 아일랜드와 바누아투를 동시에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빽빽한 숲 때문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주민은 해변과 숲의 경계부에 살았다. 내가 파악한 바로는 2001년 당시 섬 전체에 오십여 호의 가구가 있었고, 총인구수는 사백여 명 내외.

나는 토리에모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그의 조부모와 부모, 여동생 둘과 함께. 토리에모가 장남은 아니었다. 위로 가정을 이루어 독립한 형이 두 명.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토리에모도 형들과 같은 여자와 결혼할 예정이었다. 그것이 카구섬의 풍습이니까.

첫 며칠, 어쩌면 몇 주 정도는 날마다 울었다. 살아남았고, 마침 사람이 사는 섬에 흘러든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섬을 벗어날 방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나절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는 섬 전체 해안 그 어디에도 현대적인 배가 정박할 시설이 없었다. 물론 섬의 전통 방식으로 만든 낚시용 보트 정도는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었지만, 그 배로 저 섬까지 갈 수 없겠느냐는 물음을 전달할 방법이 없었다. 가슴을 치며 모래 위에 그림을 그리고 몸짓으로 저 먼 곳을 가리켜도 카구인들은 나를 멀뚱멀뚱 볼 뿐이었다. 모두 친절하고 마음씨 좋은나처럼 말도 안 통하고 생김새도 확연히 다른 사람에게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아낌없이 제공했다는 점을 생각하면사람들인데도, 또한 가야 할 곳이 버젓이 눈앞에 보이는데도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점이 나를 더욱 미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해변에 앉아 훌쩍거리던 나는 문득 마거릿 미드를 떠올렸다. 이 섬에서 그리 멀지 않은알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멀었다사모아에서 필드워크를 하고 세계사에 길이 남을 명저를 써낸 인류학자를. 내 전공은 인류학이 아니었지만, 카구섬이 학술적으로 흥미로운 환경임은 분명해 보였다. 어쩌면 이곳에서의 체험들이 내 커리어에 좋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런 생각을 하셨어요?”

내내 말없이 듣고 있던 샤시가 갑자기 물었다. 나는 웃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위인전 같은 데서 나오는 전환점 같죠? 나중에 끼워맞춘 것 같은. 강한 의지를 가졌더니 결국은 그 의지대로 되더라, 그런 말처럼 들리죠.”

샤시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말 그랬어요. 그런 생각이라도 안 하면 미쳐버릴 것 같아서.”

말마따나 그런 생각을 했다고 해서 나의 마음가짐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었다. 이 체험이 나중에는 의미를 갖게 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생각은 언젠가 구조될 거라는 믿음을 전제할 때에만 의미 있는 것이어서. 그대로 어디로도 가지 못한 채 그 섬에서 일생을 마치게 될 것이 두려워 자주 울었다. 다만 그 생각을 하기 전보다 울음의 빈도가 줄어든 것만은 확실하다. 머리카락을 모으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날부터다.

카구섬에서 지낼 동안 나는 토리에모의 여동생들에게 빌린 옷을 주로 입었다. 표류 당시 내가 입고 있던 옷들은 담수에 헹구고 말린 채로 그대로 갖고만 있었는데, 어느 날부터는 바지 주머니에 내 머리카락을 하루 한 가닥씩 넣기 시작했다. 체류 일수를 헤아리고 싶지만 변변한 필기도구가 없고, 몸에 새기자니 문신 기술이 없거니와 매일 고통을 무릅쓸 자신도 없고, 기록에 사용한 도구를 챙길 가방 같은 것도 따로 없어서 고심 끝에 짜낸 궁여지책이었다. 머리카락은 부패 속도가 매우 느리다. 수백, 수천 년 된 미라 중에서도 풍성한 모발을 그대로 간직한 표본이 발견될 정도다.

후일 섬을 떠나 내가 모은 머리카락을 세어보니 202가닥이었다. 체류 초반 몇 주와 깜빡 잊고 지나간 날들을 빼도 대략 칠 개월에 달하는 시간을 그 섬에서 보낸 것이다.

 

 

나는 긴 숨을 한번 몰아쉬었다. 그동안 내가 가장 깊이 숨겨온, 동시에 언제나 털어놓고 싶었던 부분을 이야기할 때가 됐다.

토리에모는 형들의 아내와 결혼하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카구섬에 체류할 동안에는 그랬다. 나는 그 섬을 떠난 이후 다시 방문하지 않았고, 현장에서의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은 전부 다른 연구원에게 맡겼기에 이후에 그가 결국 정해진 혼처로 갔는지 아닌지 모른다. 결혼 적령기의 청년이었던 그가 결혼을 거부한 이유는 물론 나 때문이었다. 그는 내가 여신이라고 생각했다. 비유나 과장 같은 것이 아니라 정말 그랬다.

체류 초반 몇 주간 나는 섬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명사 수십 가지를 익혔고 그것으로도 어느 정도의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지만, 당연하게도 그것만으로는 매우 제한적인 범위의 소통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 내가 배운 어휘 중 상당수가 인간의 3대 욕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것이 생존 본능에 따른 습득이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카구어 회화는 그 수준에서 답보할 뿐 잘 늘지 않았다. 후속 연구에 따르면 카구어는 피지어의 크레올 언어로 추정되는데, 내가 이전에 학습한 다른 언어들과는 공통점이 전혀 없고어순마저 완전히 달랐다문자를 사용하지 않아서 체계적인 학습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런데 이렇게 말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토리에모의 열렬한 호감은 아주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는 나를 위해 물고기를 낚았고, 낚은 물고기 일부를 팔아 내게 줄 옷과 장신구를 샀다. 내가 해변에 앉아 울면 울음을 그칠 때까지 옆에 앉아 있었고, 나 때문에 다른 가족들과 싸웠다.

그러던다시 한번어느 날 토리에모가 나를 산으로 데려갔다. 관찰 결과 토리에모에게 싸움을 거는 사람은 주로 그의 조모였는데, 그날도 조모와 다투고 집을 나온 김에 숲에 들어선 것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알기로 카구인들은 좀처럼 숲에 들어가지 않았기에 조금 이상하다 싶었지만, 토리에모가 내게 해되는 행동을 시킬 것 같지는 않아서 순순히 뒤따랐다.

그리 크지도 않은 섬이건만 산에 들어가니 수령이 상당한 나무들이 어깨를 다투며 자라 있어서, 밝고 뜨거운 해안가와는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토리에모는 가고 싶은 곳이 분명한 듯했지만 길을 조금 헤맸다. 얼마나 걸었을까, 나무 한 그루 없이 바닥에 이끼만 가득한 작은 공터가 나왔다. 공터 한구석에는 서로 이마를 맞댄 듯한 모양의 크고 넓적한 바위 셋과 그 사이에서 솟아나는 작은 수원이 있었다.

그것이 부레니칼루일라, 즉 여신의 샘이었다.

토리에모는 그것을 양손으로 떠서 마시는 시늉을 거푸 했다. 나는 토리에모가 내게 시범을 보이고 있음을, 내가 자기를 따라서 그 샘물을 마셔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가만히 있었다. 뭐가 들어 있을 줄 알고 마시라는 거야?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균이 분포해 있으면 어떡하라고, 원래 이 섬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항원이 있을지 몰라도…… 내가 멀뚱멀뚱 서 있자 토리에모는 자기 손을 샘에 담가 그 물을 내 어깨로 옮겼다. , 차가워. 뭐하는 짓이야. 나는 모국어로 그를 나무랐다. 그는 아랑곳 않고 계속 내게 물을 붓고 뿌렸다. , 그만해. 그가 손을 멈추지 않아서 나도 그에게 샘물을 끼얹었다. 적당히 하라고!

때아닌 물장난을 한참 하고 나서 토리에모가 나를 안았다. 몇 주 전 해안에서 내가 부탁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그때 나는 산길을 한참 걸은 뒤여서 몸이 잘 데워져 있다고, 땀이 난다고 느꼈지만 장소는 어둡고 습한 숲속이었고 물장난도 꽤 했기에 피부는 차가웠다. 그래서 오랜만에 토리에모를 안은 느낌에는 분명한 기시감이 있었다. 이 사람은 불이야. 나는 그의 가슴에 귀를 붙인 채 생각했다. 사람의 심장이 이렇게 되어도 죽지 않는가 싶을 만큼 심박이 빨랐다. 그는 천천히 내게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정수리에, 이마에, 눈꺼풀 위에, 코에, 뺨에, 입술에. 밀어낼까, 하는 생각은 정수리와 눈꺼풀 사이를 떠돌다 옅어졌다.

나는 삼십대 초반이었고, 불과 그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활발하고 규칙적인 성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섹스를 안 한다고 죽지는 않는다는 것을 잘 알지만, 할 수 있을 때 해두는 편이 낫다고 믿기도 했다.

, 토리에모라는 분과 연인 관계가 된 건가요?”

샤시의 물음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 로로마의 효과를 어떻게 알았겠어요.”

효과는 즉발적이었다. 로로마와 토리에모의 몸, 둘 다. 나는 토리에모가 열의는 있지만 요령은 모른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어디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끙끙거리는 그의 얼굴이 몹시 사랑스럽게 느껴져 나도 깜짝 놀랐다. 나는 이런 사람이었나, 몸을 엮고 나서야 사랑을 느끼는 사람? 아니, 그보다는 현저하게 미숙한 누군가에게 뭔가를 베풀 수 있는 상황을 선호하는 사람이 아닐까. 이전까지 토리에모는 나의 구조자, 보호자였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는 그가 나를 안내자로 여기며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토리에모의 정확한 나이를 지금도 모르고 그때도 몰랐지만, 그가 나보다 훨씬 어리다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우리 둘은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나의 모국어도 그의 모국어도 아니지만 그 둘 모두이기도 한 언어.

조금 후에 토리에모가 내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나의 여신.”

나는 이렇게 반응했다.

?”

내가 그의 말을 이해한 후에 그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대답했다는 사실을 우리 둘은 조금 늦게, 동시에 알아차렸다.

그것이 내 몸에 유입된 로로마가 최초로 나타낸 효과였다. 경이로울 정도의 언어능력 향상. 때문에 내가 세운 첫번째 가설은 이러했다이 샘물에는 언어능력을 발달시켜 주는 힘이 있다. 물론 매우 엉성한 가설인지라, 문제의 현상을 최초로 발견한 그 자리를 벗어나기도 전에 충분히 반박이 가능했다. 토리에모가 샘물의 효과를 알고 이용할 수 있었다면, 그는 왜 여태껏 내가 구사하는 언어를 이해하지 못했나? 또는, 왜 그동안 아무도 내게 이 샘물을 가져다주지 않았나? 이 샘물에 언어능력을 향상시켜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 카구섬 거주민 보편의 상식이라고 가정할 때, 내게 이 물을 사용하는 편이 그 반대의 이득을 상회하지 않나?

이에 즉각 보완과 수정을 거친 두번째 가설. 이 샘물의 효능은 무작위의 능력을 성장시키는 것인데 그 효과가 체질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나타나지 않기도 한다.

그때 이미 거의 실제에 가까운 가설을 세우신 거군요.”

논리적인 사고가 가능하다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결론이니까요. 거기서 알기 어려운 건 효과 발생의 트리거 정도였죠. 카구인들은 전부 어릴 때부터 로로마에 노출되어 있었고, 그때 거기에 실험군이라 할 만한 대상은 나 하나밖에 없었으니까.”

완벽한 가설이 아니라고 해도 성분 정밀 조사와 실험을 진행해볼 가치는 충분했다. 마거릿 미드 맙소사, 내가 정말 뭔가를 발견하다니. 마침 내게는 토리에모에게 이 섬을 떠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말할 언어능력까지 생긴 참이었다. 나는 전례를 찾기 힘들 만큼 흥분한 상태로 산을 내려왔다.

집에 돌아온 내가 카구섬 말로 인사를 건네자 토리에모의 할머니는 대경실색해서 건강에 무리가 갈까봐 걱정이 될 정도였는데, 이내 평정을 되찾더니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네가 이 집에 온 게 언제인데, 너는 왜 밤낮 울기만 하고 쓸모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느냐, 밥을 먹고 싶으면 일을 해야 한다는 것도 모르느냐. 나는 그간 토리에모와 그의 가족들이 싸운 이유가 바로 그것임을 알고 웃음을 터뜨렸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를 학습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실력 없는 통역가가 된 것 같은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머릿속에서 모국어 표현을 먼저 떠올린 다음 의식적인 번역을 거쳐야만 외국어로 말할 수 있는, 그 언어를 배우고 익히기는 했으나 자신 있게 구사할 수는 없는 단계. 이에 언어 학습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강조하는 바는, 모국어 사용 환경을 축소 혹은 차단하고 학습할 언어의 노출 기회와 면적을 최대한 확장하라는 것이다. 언어 학습은 지식, 언어 구사는 기술이다. 머릿속의 지식을 구강의 기술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 언어가 사용되는 환경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어야 한다. 그러나 필요한 노출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한두 달 사이에 새로운 언어에 적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육 개월, 일 년 이상 머릿속 통역가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내 경우, 누적된 언어 노출의 경험이 폭발적인 속도의 이해로 전환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던 카구어, 그것도 치아가 네 개밖에 남지 않은 노인의 발화를 완벽하게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게 너무도 신기해서 말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자꾸 웃음이 났다. 물론 토리에모가 밥값도 못하는 객식구를 집에 데려와 내내 혼이 났다는 것을 알고 나니 미안했지만, 몸 둘 바를 모를 만큼 송구하지는 않았다. 나라고 신세를 지고 싶어지는 것은 아니었고, 무사히 본가에 돌아갈 수만 있다면 섭섭잖게 보상을 치러줄 용의도 있었다.

괜찮아요, 저는 곧 떠날 거니까.

나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바지 주머니에 모은 머리카락이 서른 가닥을 채 넘지 않을 때였다.

 

 

여신의 샘을 피지어로 직역하면 이렇다. 마타 니 와이 니 칼루 야레와(Mata ni wai ni kalou yalewa), 마타는 근원을, 니는 ‘-, 와이는 물을 뜻한다. 마타 니 와이, 물의 근원. 칼루는 신, 야레와는 여성이다. 카구에서 같은 뜻의 말은 부레--칼루-일라. 원본 언어와의 유사성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변형도 상당히 일어난 형태임을 확인할 수 있다.

카구어는 카구섬의 공용어이며, 전 세계의 카구어 사용자 수는 카구섬 인구수와 동일하다. 뉴칼레도니아의 다른 섬의 경우 카구어는커녕 피지 크레올 언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카구섬의 문화는 주변 섬들과 비교해 배타적인 편이다. 이미 언급한 가족 문화도 그렇지만, 전승이나 설화, 민간신앙 모두가 주변 섬들과 공유되지 않는다.

언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된 후로 카구섬 생활은 문화적으로 보다 풍요로워졌다. 카구섬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무인도를 찾아온 삼 형제와 인간 여성으로 변신한 카구새라 믿었고나는 이 설화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사이에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다숲을 신성시했으며 숲에서든 그 밖에서든 죽은 카구새를 발견하면 반드시 땅에 묻어주었다.

부레니칼루일라는 여신의 샘이라는 이름대로 사랑의 여신을 상징했다. 여신의 축복이 깃들어 사랑하는 이들에게 복을 내리는 것이라 전해지기도 했고, 샘 자체가 여신이 취한 다양한 형상 가운데 하나라는 전승도 있었다. 사랑의 여신은 변덕스러우며 모습도 곧잘 바꾸어, 카구섬에서 구전되는 모든 설화의 여주인공은 시대에 따라 모습을 달리한 사랑의 여신이라 여겨졌다. 사랑하는 여자를 여신이라 일컫는 것은 카구섬 사람들이 가진 언어에서 최대의 애정 표현이었다. 그들은 그것을 단순한 수사적 표현으로만 여기지 않았다. 신통한 효능을 보이는 여신의 샘이 있으니 여신의 실존을 의심할 이유가 없고, 사랑하는 이가 그의 화신이라 믿지 않을 이유 또한 없는 것이다.

이 비천한 내가 당신처럼 고귀한 존재를 감히 사랑합니다……

물론 이는 사랑에 빠진 이들이 즐기는 문법 가운데 하나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보편적인 경향이다. 자신과 상대 사이의 가상의 낙차를 설정한 후에 그 낙차를 거침없이 침범함으로써 사랑의 크기를 확인하고 그 사랑의 성격을 더욱 극적인 것으로 만드는.

물론 나는 숭배받을 기회를 마다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카구섬에서 지낼 동안 나는 섬사람들 모두와 두루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이 모든 이야기의 주된 구술자는 토리에모였다. 서구식의 현대적 교육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했어도 토리에모는 총명한 청년이었다. 그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조녀설화(鳥女說話)와 유사한 것도 있었다. 카구섬의 건국신화라 할 수 있는 삼 형제와 카구새 이야기의 후일담 격으로, 삼 형제 중 막내가 아내의 정체를 형들에게 폭로하자 아내가 깃털 옷을 입고 카구새의 형상으로 돌아간다. 카구새는 원래 날지 못하는 새인데카구새가 아직 날아다니던 시절에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야기가 몇 있다삼 형제의 아내는 본래 여신이기도 했기에 가볍게 섬 밖으로 날아가버린다.

삼 형제의 막내. 토리에모는 자기와 그 설화의 어리석은 주인공의 공통점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 또한 그 이야기에 단순한 옛이야기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카구섬의 전통적인 일처-형제다부 결혼 형태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여성과 남성 중 막내인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일처다부제라 하면 언뜻 여성에게 더 많은 권한이 주어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지만 남성들이 서로 혈연이고 결국 같은 씨족의 후손을 남기는 것이 이 가족 형태의 목적임을 감안하면, 주도권이 어느 쪽에 있는지가 분명해진다. 그렇다면 남편-형제들 가운데 누가 아내에 대한 우선권을 가장 많이 행사할 것인가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다행히 카구섬에는 삼 형제의 막내가 행복해지는 이야기도 있었다. 먼저 장가든 두 형이 가장 잘난 막내에게 아내의 사랑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며 막내의 결혼 전날 그를 죽여 바다에 버리는데, 이를 딱하게 여긴 사랑의 여신이 막내를 되살린 뒤에 몸소 그의 아내가 되어주는 것이다. 토리에모는 이 이야기가 그와 나의 사연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삼 형제의 막내가 바다에서 여신을 발견한 이야기라서. 그때는 나야말로 죽기 일보 직전이었고, 내가 그를 구한 것이 아니라 그가 나를 구한 것이었다는 결정적 차이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이렇듯 많은 이야기를 내게 들려준 토리에모는 정작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자기가 늘어놓은 것과 비슷한 옛이야기는 그럭저럭 흥미롭게 들었지만, 섬 밖의 세계를, 오늘날의 저 너머를 묘사하는 이야기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참다못해 대체 왜 그러냐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그렇게 모른 척하며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 할 수 있느냐고 따진 날이 있었다. 그러자 토리에모는 나를 쪽배에 태웠다.

저기.”

섬 둘레를 반 바퀴 돌아 토리에모는 바누아투를 가리켰다.

저기.”

한참 만에 토리에모는 로열티 제도를 가리켰다.

카구 사람들이 가면 죽어.”

그렇게 말하고 그는 노를 저어 집 앞 해변으로 배를 몰았다.

이어진 설명에 의하면 카구섬 사람들이 주변 다른 섬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것은 특유의 이질적인 문화 때문인 듯했다. 다른 섬 사람들이 보기에 카구 여자는 남자를 여럿 거느려야 하는 음녀, 카구 남자들은 여럿이서 한 여자를 욕보이는 놈들이었다. 토리에모의 조부모가 젊을 때만 해도 주변 섬과의 교류가 전혀 없지는 않았던 모양이지만, 카구섬 남자와 결혼했던 여자가 친정 섬으로 달아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그건.”

샤시는 실례되지 않을 말을 고르느라 고심하는 듯했다.

말씀대로 이질적이지만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된 문화라면, 외부인으로서는 옳다 그르다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나한테 제일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었어요. 카구섬 사람들이 주변 섬으로 가는 게 용인되지 않는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그 섬을 탈출하지?”

내 말에 샤시는 짧게 탄식했다. , ……그러네요.

나는 회복 불가능할 것만 같은 충격에 휩싸였다. 듣기 싫다는 토리에모에게 자꾸만 섬 바깥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 것은 그를 꼬드겨 카구섬을 탈출해보려는 계획의 초반 단계에 해당했는데, 제대로 실행에 옮겨보기도 원천 차단 및 완전 차단 처분이 내려진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곧장 다음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믿었던 토리에모가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음을 확인한 이상, 자력구제만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토리에모에게 의존한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하고 숭배하니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힘껏 도와줄 거라 생각했지만, 그 사랑이 진정으로 크고 순정하다면 내가 섬을 떠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그만큼 클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구조선을 소환하는 계획을 떠올렸다. 내가 죽지 않고 떠내려온 것이 운만은 아니라면, 섬은 사고 지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추정해볼 수 있었다. 사고 지점은 본래의 운항로와도 크게 떨어져 있지 않을 것이었고, 그렇다면 운항을 재개한 여객선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도 있을 듯했다.

어째서 이런 계획을 바로 떠올리지 못했을까? 그때껏 섬에서는 큰 배가 지나가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배는 왜 한 척도 보이지 않았을까? 그건 장거리 크루즈선이 대체로 밤에 운항하기 때문이다. 내가 탔던 문라이트 가닛호도 오전에는 기항지에 승객들을 내려주었다가 저녁나절에 다시 태워 밤 동안 다음 기항지를 향해 움직였다. 사고가 한밤중 바다 한가운데에서 일어난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가 아니었나.

나는 밤마다 해변을 순찰하기 시작했다. 카구섬의 밤바다는 너무 어두워 멀리까지 보이지 않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밤이 어두울수록 오히려 여객선이 밝힌 불이 잘 보일 거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북돋웠다. 내가 예상한 방향에서 배가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을 고려해 남쪽 해안과 북쪽 해안을 번갈아 살폈다. 며칠 밤 내내 허탕을 쳤지만 배가 매일 한 척씩 지나가는 것은 아니어서 그럴 거라고, 내가 반대편 해안을 보고 있을 때 지나갔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순찰 계획을 다시 짰다. 남쪽 사흘, 북쪽 사흘. 한 밤에 한 군데만.

순찰을 시작한 지 대략 열흘째 되는 밤에 먼바다에서 불빛을 보았다. 나는 몹시 흥분했지만 배를 발견한 조건을 기억하려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섬 남동쪽 해안, 달의 모양과 방향으로 미루어 자정 무렵이었다.

나는 그 불빛이 수평선을 따라 쭉 미끄러져 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불빛은 잠깐 나타났다가 점차 멀어지고 작아졌다. 구조를 요청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짧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나는 기뻤다. 그것이 내가 카구섬에서 발견한 최초의 희망이었으니까.

추가 관찰을 통해 나는 남동쪽 해안의 불빛이 사흘 간격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매번 같은 시각은 아니었다. 첫번째 배가 자정에 지나갔다면 두번째 배는 새벽 두시, 세번째 배는 다시 자정, 네번째 배는 역시 두시, 홀짝 패턴의 반복이었다. 하나는 가는 배, 다른 하나는 오는 배로 추정되었지만, 두 배의 항로 모두 카구섬에 가깝지는 않았다.

다음 문제는 그 배가 나를 어떻게 발견하게 할 것인가였다. 낮이라면 거울을 쓰면 된다. 거울에 반사시킨 태양광은 기대 이상으로 먼 거리까지 닿는다. SOS 신호를 정확히 모르면 거울 앞면과 뒷면을 빠르게, 반복적으로 뒤집어 반사광이 깜빡깜빡거리게 하면 된다. 그것이 인위적인 현상임을, 즉 누군가 일부러 보내는 신호임을 알 수 있도록. 하지만 섬에는 거울이 없었고 배는 밤에만 지나갔다.

모닥불. 그보다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배에 빛이 닿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은 알아도, 배에서 내가 피운 불을 발견한들이쪽 섬들에는 사람이 산다는 것을 알기에캠프파이어 같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극한상황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사람들은 사건 이후 생존주의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지만 언젠가 그런 일이 또최초 체험은 예상된 것이었던가?일어날지 모르고, 과연 그때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를 알고 싶기 때문에 생존에 도움이 되는 정보와 도구를 절박하게 수집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구조 요청을 보낼 목적으로 불을 피울 경우 세 개의 모닥불을 동시에 피우는 게 좋다고 한다. 내 모닥불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이유는 그래서였을까? 하나뿐이었기 때문?

지나가던 배에서는 과연 내가 피운 불을 보았을까?

나는 날마다 바지 주머니에 머리카락을 한 가닥씩 넣었고 사흘에 한 번은 밤의 해변으로 나가 불을 피우고 그 곁에서 밤을 새웠다. 내가 도시 태생인데다 부유한 편이니 고생을 모르리라 생각하는 건 괜찮지만, 끈기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는 것은 곤란하다. 나는 동아시아 출신 이공계 여성이고 유학생이었다. 누구보다도 빼어나지는 못할지언정물론 정말 빼어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꾸준함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매일의 할일을 빼먹지 않는다는 것이 내가 약하지 않다는 증거는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은 모닥불 곁에 앉아 동이 틀 때까지 울었다. 내가 소리 내서 울기 시작하자 토리에모가 내 곁에 와 앉았다. 그에게 기대 울며 나는 샘을 떠올렸다. 토리에모를 사랑하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토리에모가 나의 자력구제 계획을 돕지 않는 것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손목시계를 보았다. 네트워크 파티는 이십 분 전에 시작됐을 터였고, 나와 샤시뿐이었던 바 안에도 손님이 꽤 들어차 있었다.

교수님, 이미 시간을 많이 할애해주신 건 알지만 결국 어떻게 카구섬에서 나왔는지 말씀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샤시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는 내내 별 동요가 없어 보이던 그가 그러는 것이 조금 마음에 들었다.

그래요. 그 부분을 빼면 안 되겠죠.”

나는 빈 마티니 잔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말했다. 내가 부끄러워한다는 사실을 샤시가 모르기를 바랐다.

어머니였어요.”

어머니요?”

정말 그랬다.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나를 구했다.

동아시아 출신 딸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주장을 한다는 것을 알지만, 나의 어머니는 특별히 더 지독한 분이셨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참지 못했고 위신이 깎이느니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그게 나를 비롯한 자녀들을, 가족들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어머니에게는 어머니 나름의 방식이 있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하는.

그 일은 갑자기 일어났다. 섬 남동쪽 앞바다에 소형 크루즈선이 나타난 일. 카구섬 해안은 수심이 무척 얕았기에, 추정컨대 사백에서 오백 미터가량 바깥에서 배는 멈췄다. 이윽고 모터가 달린 고무보트가 내려왔다. 무서울 만큼 빠른 속도로 해변에 접근해오는 그 배에는 세 사람이 타고 있었다. 폴리네시안인 듯한 두 남자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나머지 하나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라니.

어머니는 울지도 않으셨다. 그래, 그렇게 지독한 분이셨다. 남국 바다에서 실종된 딸을 찾으려고 천문학적인 돈을 쓸 수 있지만, 마침내 찾아낸 딸 앞에서 눈물을 보이는 게 추태라고 생각하는 분. 물론 나는 울었다. 나는 내가 어머니를 꽤 닮았다고 생각했지만 카구섬에서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섬에서 보낸 몇 개월간 흘린 눈물이 나머지 평생 몫의 세 배는 될 듯하다. 당연하게도 가장 많이 운 것은 마지막날이었다.

어머니는 나를 당장 배에 태우고 싶어했지만 내가 만류했다.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적어도 내가 생존할 수 있게 도와준 섬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 정도는 남기고 싶어서였다. 내 뜻을 안 어머니는 침착하게 기다려주었다. 어머니에게도 그게 도리라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카구섬 근처에 그렇게 큰 배가 머무른 것은 섬사람들 대부분에게 드문 볼거리라서 거의 전부가 구경을 나왔다. 따라서 섬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도 그리 오래 걸릴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일부러 숲으로 들어갔다. 내가 표류할 때 입었던 옷을 들고 부레니칼루일라에 갔다. 샘물에 적신 옷을 들고 숲을 나왔다. 돌아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나 기뻤지만, 빈손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해안에 모인 섬사람들에게 언젠가 다시 만나면 좋겠다고 말하며 어머니가 타고 온 고무보트에 오르려던 때 토리에모가 나타났다. 누군가 그에게 내가 떠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한 모양이었다. 그는 해안 저편 끝에서부터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그가 차올린 모래가 호를 그리며 햇빛을 연신 반사했다. 대략 세 걸음 떨어진 지점에서 그는 골 세리머니를 하는 축구 선수처럼 무릎을 꿇고 미끄러져 내 팔을 붙들었다. 땀인지 바닷물인지에 젖은 손아귀가 축축했다.

누구니?”

어머니가 물었다.

친구예요.”

나는 말했다. 토리에모가 내 모국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을 의식하면서. 토리에모는 울며 내 무릎에 얼굴을 비볐다. 그가 넘어지며 내 다리에 묻힌 모래가 그와 나의 피부 사이에서 버스럭거렸다.

뭐라고 하는 거니?”

나는 당황했다.

모르겠어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한순간, 단 한 순간의 일이었다. 나는 떠나려는 나를 애처롭게 붙잡는 그가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나를 사랑한다면서, 내가 행복해지는 게 싫은 거야? 내가 영원히 네 곁에서 불행하길 바라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내게 매달린 그의 몸이 비정형의 괴물처럼 느껴졌고, 그 분명한 불쾌감 이후로는 카구섬의 언어가 전처럼 이해되지 않았다. 정확한 채널을 가리키던 라디오의 바늘이 아주 약간 옆으로 돌아가 음악이 별안간 소음으로 바뀐 것처럼.

그것 때문인가요?”

샤시가 물었다.

무엇 말이죠?”

지금까지 카구섬에서의 경험을 공식적으로 말씀하신 적 없는 이유 말입니다. 교수님이 체류 기간 동안 로맨틱한 관계를 맺었던 토착민 남성을 끝내 외면했다는 죄책감 때문인지요.”

샤시는 직설적으로 물었지만 질문에 악의나 나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나도 특별히 답변을 꾸며낼 생각 같은 것은 없었다.

죄책감은 없어요.”

적어도 토리에모에 대해서는 그랬다.

나는 나르시시스트 성향이 꽤 강한 사람이에요.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토리에모가 안됐긴 해도 내가 그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그 상황에서는 토리에모도 이기적인 요구를 한 거였죠. 그에 대해 내가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제 생각에도 양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산은 샤시가 했다. 샤시는 나를 엘리베이터까지 에스코트해주었다. 바 입구에서 엘리베이터까지의 짧은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카드키를 엘리베이터에 태그한 다음 샤시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는데,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열림 버튼을 눌렀다.

조금만 더 들어줄래요?”

샤시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엘리베이터는 내가 누른 22층을 향해 고속으로 상승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지만 남은 이야기도 길지 않았다.

아까 나를 데리러 온 어머니가 울지 않았다는 말을 했죠.”

.”

집에 돌아가자마자 어머니는 우셨어요. 왜 그랬는지 아세요?”

글쎄요.”

내가 임신을 했거든요.”

나는 샤시의 놀란 얼굴을 보는 게 좋았다. 그렇지만 내가 웃은 것은 자기방어의 의미였다.

그런데 나는 아이도 없고 결혼도 안 했어요. 무슨 뜻인지 생각해봐요.”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문이 닫히며 샤시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임신이 놀랄 만한 결과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섬에서 나의 성생활은 대단히 왕성했기 때문이다. 토리에모가 나를 사랑해서 얻은 로로마의 효과도 이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할 만했다. 그가 지녔던 성적 에너지는 그의 나무랄 데 없는 건강 상태와 젊은 나이로도 다 해명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나는 토리에모와 그 주제로 대화한 적이 없고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이제는 정확한 답을 알기 어렵지만, 그에게 주어진 능력이 그런 것이었다는 가설을 철회할 이유는 없을 듯하다.

그때 아이를 낳았다면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나조차 한 번도 울리지 못한 내 어머니를 울렸던 그 아이를. 나는 어머니가 되었을까. 내 어머니 같은 사람이 되었을까. 아니. 나는 고개를 저으며 문손잡이에 카드키를 태그했다. 아이가 있든 없든 나는 어머니였다. 내 어머니의 화신과 같은 존재였다.

시간을 확인했다. 네트워크 파티가 시작된 지 삼십육 분. 침대 위에 펼쳐두었던 정장을 다시 걸치고 구두를 신었다. 화장은 크게 손보지 않아도 될 듯했다. 립스틱만 살짝 덧바르고 화장품 파우치를 닫았다. 엘리베이터에 타서 3층 버튼을 눌렀다. 복도를 걷는 동안 마주친 사람은 호텔 직원 두 명뿐이었다. 무거운 식장 문을 오른 어깨로 밀고 들어가자 눈부신 빛과 소음이 쏟아졌다. 나를 발견한 사람들이 내 이름을 연호했다. 문 가까이 서 있던 사람들이 내가 연 문을 안에서 잡아주었다. 나는 내가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를 결코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양팔을 펼치며 식장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