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치며

주인공이 계속 바뀌는 이야기를 쓰다가 연재를 마치며를 쓸 때를 맞이하니까 쑥스럽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자기소개를 겸해 모두 한마디씩 하는 중이었는데, 어느새 내 차례가 오고 만 것 같은 느낌이다. , 지금 여기서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뜻이지만…… 할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곤란하다. 무슨 말을 가장 먼저 꺼내야 할지 몰라 머뭇대다 분위기를 망치고 말 것 같다.

 

구상 단계에서 쓴 메모를 발견했다. ‘로로마가 없는데도 우리는 이 모든 일을 해요.’ 정말 그렇다. 이 세계에서는 사랑을 한다고 실질적으로 나아지는 게 없는데도 왠지 다들(진짜로 다는 아니지만 의외로 많이들) 그걸 한다. 가끔은 사는 게 너무 지긋지긋하지만 이 사실을 떠올리면 세상이 또 조금은 괜찮게 느껴진다. 이 세계에 사랑이 있다는, 사랑 그 자체가 목적인 사랑이 진짜로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세번째 이야기와 네번째 이야기 사이에는 이런 메모가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의 나 중에서 가장 소설을 잘 쓰는 나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고 할 때(그야 물론 나는…… 나니까……) 소설을 한 번 써본 사람하고 열 번 써본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능숙하겠는가, 라는 차원의 이야기다. 이 문장을 메모할 즈음에는 작업에 확신이 없어서 자주 울었다. 실컷 울고 나서 나는, 그래도, 이 소설 이전보다는, 조금이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졌을 거라 생각하곤 했다.

 

어떤 시점부터는 잘 쓰는 것조차 중요하지 않아진다. 중요한 건 반드시 이것이어야 하는 내적 논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대체될 수 없어지는 것이다. 진짜를 만드는 것이다.’ 이 메모를 쓰던 때는 거의 정확히 기억난다. 일곱번째 이야기를 쓰던 도중이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더 잘 쓰고 싶다. 아직 갈 길이 한참 멀다고 생각한다. 더욱, 더욱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은 평생 떨칠 수 없을 것이다. 이즈음에 내가 얻은 것은 그러나 이것이 나의 소설이라는 확신이었다. 이 단순한 사실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이 소설을 끝까지 쓸 힘이 되었다.

 

쓰는 동안 여러 일이 있었다. 많은 걸 놓치며 지냈지만 8월 초에 십 년 넘게 쓰던 작업용 컴퓨터가 고장난 것과 9월 초에 조카가 태어난 것, 두 가지는 여기에 꼭 쓰기로 마음먹었다. 긴 시간 내 작업에 동행해준 아이맥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컴퓨터 고장과 조카의 탄생을 한 문장에서 동시에 언급하게 되어서 조카에게는 조금 미안하다. 조카의 발을 만져본 뒤로 나는 아무때나 마음대로 죽을 수 없게 되었다. 그때부터의 내 삶은 적잖은 부분이 그 아이를 위한 것이 되었다.

 

사랑의 힘의 배경은 특정한 설정을 제외하면 우리가 아는 기존의 세계와 거의 동일해 작중에서 언급된 작품이나 인물 등의 출전에 부가 설명이 거의 필요하지 않았지만, 맥락상 쓴 사람 혼자만 알고 넘어간 부분도 있다. 일곱번째 이야기의 제목은 <세일러문> 시리즈의 등장인물 세이야 고의 캐릭터 송 <은하 제일 신분이 다른 짝사랑(銀河一身分違いな片想)> 제목에서, 마지막 여덟번째 이야기의 제목은 데프콘의 노래 <두근두근 레이싱>의 가사에서 빌렸다. 일곱번째 이야기 후반에는 퓨어킴의 노래 한 대목을 의식하며 쓴 문장이 나온다.

 

쓰는 동안 힘들었다. 지나고 보니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될 정도로, 이런 징징거림이 부끄러워도 어쩔 수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힘들었다. 그런데도 어떻게든 끝까지 썼다는 사실은 일종의 고백이 될 것이다. 소설 쓰는 거 너무 좋아. 돌이켜보니 살면서 내가 가장 끈질기게 사랑해본 무언가는 다름아니라 소설이었던 것 같다. 전심전력으로 사랑에 대해 쓸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사랑을 고백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성실한 것이 소설 쓰는 일이라면, 나는 결코 이 사랑이 마르게 두지 않을 것이다.

 

2025년 가을

박서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