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시기 (2)
이모를 닮는 것은 주아의 오랜 염원이었다. 주아는 경미 이모의 딸로 태어나지 못해 슬펐다. 가까운 곳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사람도, 자신을 사랑해주고 보살펴준 사람도 경미 이모인데, 왜 이모가 자신의 엄마가 아닌 건지 원통했다. 경미 이모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남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사람, 뭐든 더 주려 하는 사람,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사람인 것에 반해 엄마는 자신의 이야기 외에 관심 없는 사람, 남에게 멋져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 뭐든 더 가지려 하는 사람, 자신의 감정을 망설임 없이 드러내는 사람이었다. 주아는 엄마와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고, 경미 이모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었다. 그게 안 된다면 생김새, 행동, 버릇이라도 닮고 싶었다. 앞으로 튀어나온 앞니를 닮고 싶어서 혀로 자신의 앞니를 밀어내곤 했고, 이마에 흘러내린 가느다란 잔머리를 닮고 싶어서 자신의 굵고 긴 앞머리의 숱을 조금씩 쳐내곤 했다. 부드럽고 우아한 말투와 서두르지 않는 태도를 닮고 싶었으나, 주아의 타고난 성정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했다. 주아는 집중했을 때 입을 앙다물고 미간을 찌푸리고, 긴장했을 때 오른쪽 다리를 달달 떠는 이모의 행동을 따라 했다. 엄마는 그 행동을 볼 때마다 주아의 찌푸린 미간에 주름이 자리 잡는다고 딱밤을 놓고, 복 나간다고 허벅지를 찰싹찰싹 때렸다. 그 탓에 그 행동들이 바람에 버릇이 된 것을 깨달은 주아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엄마는 삐죽거리며 말했다. ‘너는 경미의 나쁜 점을 모조리 따라하는구나.’ 주아는 경미 이모에게 단 한 군데도 나쁜 점이 없는데도 엄마가 비뚤어져서 그렇게 보는 것일 뿐, 이모의 좋지 않은 버릇마저도 그녀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했다.
주아는 왜 하필 이모에게 딸이 둘이나 있는 건지 원망스러웠다. 자식이 하나였거나, 둘이어도 모두 아들이거나, 적어도 남매였다면 좋았을 것 같았다. 하나인 자식의 피붙이와 같은 존재가 되어줄 수 있고, 아들만 키우던 이모의 기쁨이 되어줄 수도 있었을 거고, 하나뿐인 딸의 친구이자 자매가 되어주면서 가족 안으로 파고들어가는 것이 쉬웠을 것이다. 그러나 딸만 둘을 가진 이모에게 흔해 빠진 여자애는 별 감흥도 없고 도움도 안 되는 사마귀 같은 존재일 뿐이었다. 주아는 이모에게 유일해지는 방법을 찾으려 안간힘을 썼지만 매번 실패했다. 주아는 이모의 온전한 딸은 못 되더라도 0.5나 0.3 정도라도 되고 싶었다. 결국 주아가 찾아낸 방법은 주연, 가연이와 진짜 자매처럼 지내는 것이었다. 주연이와 가연이를 보면 매일 투닥거리고 싸우는 것이 자매의 일인가 싶었으나, 주아는 이모를 위해 그 두 자매와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삼았다.
주아는 그 자매를 사실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주아는 처음부터 주연이 싫었다. 주아는 주연과 만난 순간을 실제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사진을 보고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진짜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었다. 주연이 속싸개에 싸여 얼굴이 시뻘겋게 울고 있고, 주아가 그 옆에 앉아 주연이를 얼굴을 검지로 가리키고 있는 것이 둘의 첫 사진이다. 첫 만남에서 주아가 주연이의 얼굴을 손가락으로 찔렀고, 주연이 울음을 그치지 않아 겨우 달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주아는 그때 자기가 주연이의 눈을 찌르고 싶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주연이는 아기답지 않게 아주 커다란 눈을 갖고 있었는데 마치 인형처럼 예뻤다. 어른들이 귀엽다며 안아주고, 예쁜 눈을 칭찬했다면 분명 주아는 그러고 말았을 것이다. 그다음 사진에서는 주연이가 엎드려 울고 있고, 주아는 장난감 말을 의기양양하게 타고 있었다. 주연이는 자기 장난감 말에 누가 손대는 것을 싫어했는데, 주아가 허락도 받지 않고 올라타서 내려오지 않아 오래 통곡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 주아는 아마 주연이가 모두 자기 것인 양 위세를 떨어서 자기가 타고 싶지 않아도 기어이 탔을 거라고 생각했다. 또 다음 사진에서는 주연이와 주아가 빨간 풍선을 사이에 두고 끌어안고 있었다. 드물게 울지 않는 사진이었는데, 사진을 찍자마자 주연이가 울기 시작했다고 했다. 사실 둘이 사이좋게 안고 있었던 게 아니라, 서로 갖겠다고 싸우는 거였다. 이모와 엄마는 주연이가 가위바위보에서 이기자 주아가 풍선을 쥐어뜯어 터뜨렸다는 이야기를 잊을 만하면 말하곤 했다. 주아는 어쩌면 그때 자기가 웃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뒤늦게 듣는 것만으로도 통쾌했으니 말이다.
주연이에게는 수많은 어린 시절의 앨범이 있었지만, 주아에게 남아 있는 앨범은 단 한 권뿐이었고, 유년의 사진은 주연과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주아는 주연과 놀고 있으면 수시로 카메라를 들이대던 이모부를 기억하고 있다. 이모부가 아니었다면 아마 주아의 유년의 사진은 한두 장 뿐이었을 것이다. 이모부가 카메라를 들면, 이모는 그만 좀 찍으라고 말려대기 일쑤였으나, 이모부는 그 시간을 놓칠 수 없다는 듯 열심히 찍어댔다. 주연이를 중심으로 찍었고 주연이의 예쁜 표정을 포착해 찍었기에 주아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거나 구부정한 포즈를 취하거나 몸의 일부가 잘려 나간 사진도 있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모부는 그래도 주아가 중심에 찍히거나, 유독 이쁘게 나온 사진을 잘 골라서 인화해 새 앨범에 넣어 선물했다. 경미 이모는 엄마와 주아에게 그런 이모부가 사진에 미쳐 극성이라고 진저리를 치며 흉을 보았다. 듣고 보면 사진에 미친 게 아니라 딸 바보를 넘어 딸 미치광이급의 애정을 가진 남편을 자랑하는 거였다.
이모부는 주연이 태어난 날, 꼬물거리는 작은 모습을 찍어놓겠다고 거금을 들여 새 카메라를 사들고 왔다. 사진기를 만져본 적도 없었던 이모부는 그날부터 주연이의 작은 부분까지 모두 남겨놓겠다는 듯 수많은 사진을 찍었다. 머리카락이 거의 없는 정수리, 아직 뜨지 못한 눈, 작은 인중, 꼭 쥔 주먹, 이마의 주름, 처음 깎은 손톱, 모두 사라질세라 다 남겨두었다. 초점이 맞지 않거나 구도가 이상한 사진까지도 모두 인화해 앨범에 담아두었다. 주아는 그 이야기를 듣고 부러움과 두려움까지 느꼈다. 아무것도 아닌 것까지 사진을 찍어놓는 정성, 하나도 놓치려하지 않는 마음이 어린 주아에게까지 가닿았다. 어떤 애정이 인간을 저렇게 집요하게 만드는 것일까, 이모와 이모부의 저런 마음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그 마음은 주연이에게서 생겨나 부모에게로 옮겨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자기 부모가 자신을 버려둔 것 또한 자신에게서 생겨난 마음 때문인 건가. 주아는 너무도 다른 두 가정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비참함을 느끼곤 했다. 주아가 진짜 화가 나는 건, 주연이나 가연이가 자기들이 가진 게 무엇인지 모르는 맹추들이라는 거였다. 자기라면 그 넘치는 사랑을 하나도 흘리지 않고 남김없이 음미했을 텐데, 둘이 싸우기나 하면서 그 소중한 것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그 멍청한 자매를 좋아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그럼에도 주아는 그 애들을 사랑하려고 했다. 노력하다보니 놀랍게도 정말 그렇게 되었다. 주연은 둘도 없는 단짝이었고, 가연이는 언니보다 주아를 더 잘 따랐다. 주아는 눈만 뜨면 주연이네 집에 갔고, 어디를 가든 함께 다녔다. 예방접종을 하거나, 머리를 자를 때, 목욕탕에 갈 때, 주아는 늘 세 모녀와 함께 다녔다. 주아는 어떻게든 이모네 집 딸처럼 보이고 싶었지만, 옷차림이나 생김새가 전혀 달랐다. 그때는 일부러 그렇게 입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모가 산 옷들이 거기서 거기여서 주연 자매는 둘이 비슷한 옷을 입곤 했다. 프릴 장식이 달린 티셔츠나, 소매를 부풀린 블라우스, 아사면으로 만든 시원한 원피스같이 누가 봐도 여자아이의 옷을 입고 다녔던 자매와는 달리 주아는 청바지에 티셔츠나 니트 셔츠를 입었고 치마는 입지 않았다. 이모가 자기 애들의 옷을 살 때 주아의 옷을 사다준 적도 있지만, 엄마는 한쪽에 넣어두고 스타킹이 없어서, 어울리는 하의가 없어서, 허리띠가 없어서 입을 수 없는 옷이라며 그 옷을 입히지 않았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꼭 저 같은 걸 사준다는 말을 툭 뱉었는데, 주아는 그런 엄마의 태도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곤 했다. 그렇게 다니다보면 주아는 자기가 그 집 애가 아니라는 것을 광고하고 다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는 이웃들은 아이가 둘이나 되는 친구에게 딸을 늘 맡겨두는 엄마를 흉봤고, 남의 아이를 살뜰히 챙기는 경미 이모를 칭찬하곤 했다. 간혹 새로운 사람들이 관계를 물으면 주아는 모두와 혈연관계인 것처럼 ‘우리 이모예요’라고 대답했는데, 이모는 농담으로라도 자기 딸이라거나 친조카라고는 답하지 않고 친구 딸이라고 고쳐 말했다.
이웃들은 주아네 집에 유난히 관심이 많았다. 일류 대학을 나온 여자가 일자무식의 막노동꾼과 함께 산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들은 호기심을 가졌고, 둘이 헤어지는지 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다. 이웃들은 이모와 엄마의 관계를 일방적인 희생으로 유지되는 관계로 보았기에 둘이 대체 어떤 이유로 엮여 있는지 궁금해했다. 쌍둥 이모는 경미 이모에게 뭔가 빌미 잡혀 있지 않고서 이렇게 잘할 수 있냐고 우스개소리처럼 물었다. 경미 이모는 그런 게 어딨냐고 말하면서도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처럼 여운을 남기며 대답했다. 쌍둥 이모는 엄마의 첩자였다. 엄마에게 경미 이모가 좀 이상한 뉘앙스를 풍기며 자기 집안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고 전하는 것을 주아는 마루에 엎드려 자는 척하며 들었다. 어렸던 주아는 사람들이 으레 남의 사정에 관심이 많고 다들 속속들이 알고 지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쌍둥 이모가 전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경미 이모가 엄마를 싫어하는 것을 눈치챈 뒤로, 어쩌면 사람들이 자기 집 사정을 알고 있는 것이 경미 이모 때문일지 모른다고 의심했지만, 곧 그런 불경한 생각을 접어두었다. 경미 이모는 좋은 사람이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주아가 믿고 의지할 곳은 세상에 단 한 곳도 없기 때문이었다.
주아는 어떻게든 악착같이 이모의 가족에 붙어 있었다. 이모를 흉내내는 일은 단념하고, 이모가 사랑하는 주연이를 흉내내려 노력했다. 주연이는 웃음이 많고 매일 즐거워했다.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했고, 두 번만 만나도 오래된 친구나 이웃을 대하듯 살갑게 굴었다. 이 정도는 주아도 흉내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너무 친하게 굴면 싫어하지 않을지 신경이 쓰여서 쉽지 않았다. 주아는 주연이 자신보다 아는 게 없고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주연은 자신의 빈 부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주아는 똑똑치 않게 행동하는 것을 자존심 때문에 흉내낼 수 없었던데다 부끄러움 없이 행동하는 건 더욱 못할 짓이라 그녀를 따라하는 것을 포기했다. 주연을 주아가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주연은 욕심이 없어서 두 개를 가진 거라면 그게 무엇이든 남에게 주었고, 하나만 가진 것이라도 자기보다 남에게 더 필요한 것 같으면 그것 또한 주었다. 그런 주연 옆에서 가장 이득을 보는 것이 자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주연을 한심하게 생각했다. 이모가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주연을 흉내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주연이 딸이 아니었다면 이모가 결코 사랑할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