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망각 (1)
어떤 날에는 브랜든이 살아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고, 또 어떤 날에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승재는 말했다. 그는 매일 무사 귀환을 비는 기도를 하면서 가슴을 치며 흐느꼈다. 주아는 지금껏 집을 나갔던 아이 중 무사히 돌아오지 않은 아이를 본 적이 없다고 하며 승재를 안심시켰다. 승재도 집을 나왔다가 돌아갔던 전적이 있었고, 자연산과 태규를 비롯해 주아의 집에 함께 있던 아이들 모두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영주 또한 처참한 모습이긴 해도 집으로 돌아갔다. 그 모든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지는 못했지만, 주아는 확신에 차서 이야기했다. 주아는 자신 역시 집으로 돌아오기 싫어 밖을 배회한 적도 있었고, 완전히 집을 떠나기도 했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결국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냐고 했다. 모든 길은 집을 향해 뻗어 있더라고, 집이 사라지지 않는 한 돌아오게 된다고 개똥 철학을 읊어댔다. 승재는 자신도 돌아갈 곳이 없다고 느끼는데, 브랜든이 돌아갈 곳이 있다고 생각할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주아가 보기에 승재가 브랜든이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단서를 찾아가며 희망을 지우고 있는 것 같았다.
주아는 집을 나간 누군가가 돌아오지 않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고 말하며 유재를 떠올렸다. 아니, 유재는 내내 주아의 머릿속에 있었다. 브랜든이 살아 있을 거라고 승재를 위로하는 동안에도 주아는 유재를 생각했고, 그럴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다. 유재에게는 돌아올 가능성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살아 있는지 아닌지 모를 불확실성 속에서라도 돌아올 확률이 단 일 퍼센트라도 있다면, 아무리 오랜 세월이 걸리더라도,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유재는 명확히 이 세상에 없었다. 돌아올 가능성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 건지 승재가 모르는 것 같아서 주아는 속이 뒤틀렸다. 주아는 누군가 돌아오는 일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모든 것을 잃고서야 알았다.
주연이는 늘 주아에게 돌아왔다. 어린 시절 주연이는 매일 경미 이모와 함께 대문을 열고 들어오며, 언니 와따, 라고 소리치곤 했다. 주연이는 주아보다 늦게 태어났지만 가연이의 언니였기에, 언니가 당연히 자기를 지칭하는 호칭인 것처럼 생각했다. 언니가 줄게, 언니랑 같이 하자. 주연은 자기보다 키가 한 뼘이나 큰 주아를 가연이처럼 대했다. 주아는 자기가 먼저 태어났고 키도 크니 언니라고 매번 정정했지만 주연이는 세상에 언니라는 호칭을 가질 수 있는 게 자기뿐인 것처럼 우겼다. 가연이에게 둘 중 누가 언니냐고 물어보곤 했는데, 가연이는 난처해하며 그냥 쌍둥이 하면 안 되겠냐고 헤실헤실 웃어댔다. 둘은 팔짱을 끼고 거울 앞에 서서 어디가 닮았는지, 또 어디가 다른지 들여다보곤 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둘은 닮은 데가 없었다. 주아는 언제나 주연이보다 한 뼘 정도 컸고 손발도 컸다. 주연이는 쌍꺼풀이 있는 커다란 눈을, 주아는 쌍꺼풀이 없는 작고 매서운 눈을 가지고 있었다. 주연이는 하얀 얼굴에 가느다란 갈색 머리카락, 주아는 노란 얼굴에 굵고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둘이 닮은 곳은 오른쪽 눈꼬리 밑에 있는 점 말고는 한 군데도 없었다. 그 점마저도 중학교 시절 주연이 경미 이모와 함께 피부과에 가서 빼버려 둘의 공통점은 사라졌다. 누가 봐도 서로 다른 집 아이였고, 자매라고 우긴다면 부부 중 한쪽이 데리고 온 자식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래도 둘이 늘 함께 다녔던 탓에 눈썰미가 없는 사람들은 자매나 쌍둥이냐고 묻기도 했는데, 둘은 이란성 쌍둥이라고 거짓말을 하곤 했다. 그럴 때면 둘은 정말 가까워지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조금 자란 뒤 둘은 서로의 집을 자기 방처럼 드나들었다. 주연의 집에 종일 있다가 저녁까지 먹고 집에 돌아온 주아가 혼자 있다보면 주연이 어느새 달려와 대문을 삼삼칠 박자로 두드렸다. 그것은 둘 사이의 암호였다. 주아는 누구인지 묻지 않고 한달음에 대문까지 뛰어나가 문을 열어주었다. 둘은 아무도 없는 집 마당에 전등불을 켜놓고 고무줄놀이를 했다. 날벌레가 입으로 들어와도 둘은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뛰었다. 경미 이모는 노는 데 미친 애들이라고 쯧쯧 혀를 차며 주아와 주연이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곤 했다. 둘은 주연이의 방에서 인형놀이나 공기놀이를 하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주아는 엄마나 아빠가 데리러 오면 자는 척하며 가지 않으려 했지만, 번번이 번쩍 들려서 끌려가곤 했다. 가끔 자고 가는 데 성공했지만 대체로 실패했고, 그럴 때면 다시 못 만날 사람들처럼 울며 헤어지곤 했다. 둘은 헤어지지 않는 방법을 생각해보았는데, 자매가 되거나 결혼을 하는 것 방법 말고는 찾지 못했다. 주아는 경미 이모의 딸이 되고 싶었던 것인지, 주연의 자매가 되고 싶었던 건지 분간하지 못하지만, 어쨌건 그 가족에 편입되고 싶었던 것만은 확실했다.
주아의 엄마가 집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지자 주연은 매일 주아를 찾아왔다. 주연이는 아빠가 거실을 차지하고, 엄마가 부엌에서 덜그럭거리고, 가연이가 하는 일마다 방해하는 자기 집보다 아무도 없는 주아네 집을 더 좋아했다. 주연이는 늘 그랬듯 삼삼칠 박자로 문을 두드리며 찾아왔다. 주아가 없으면 담을 넘어 들어왔고, 대문이 잠겨 있지 않으면 열고 들어왔다. 아무도 없으면 이 방 저 방 기웃거리다가 주아 침대에 누워 책을 읽었다. 주아가 자고 있으면 이불 속에 들어가 몸을 부볐고, 라면을 먹고 있으면 젓가락을 들고 덤볐다. 주아는 그런 주연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둘은 함께 마루에 엎드려 숙제를 했고, 라디오 프로그램에 엽서를 함께 썼다. 공테이프에 녹음할 노래의 리스트를 만들어 라디오에 그 노래가 나오길 기다리다가 레코딩 버튼을 누르기도 했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함께 따라 불렀고, 가사를 받아 적었다. 비가 오면 같이 빗소리를 들었고, 눈이 오면 마당에 나가 눈을 맞았다. 번개가 치면 이불을 함께 뒤집어쓰고 소리를 질렀고, 태풍이 오면 거실 유리문에 테이프를 붙였다. 둘이 있으면 해가 지는 줄도 몰랐고, 전화벨이 울리는 줄도 몰랐다. 집에 오지도 않고 전화를 걸어도 받지 않는 주연에 화가 난 경미 이모가 잡으러 오면 주연은 골방이나 장롱에 숨곤 했다. 속을 리 없는 이모는 문 안쪽에서 나는 킥킥거리는 웃음소리를 못 들은 척하며 엉뚱한 문을 열어보다가 마지막에 주연이 있는 문을 벌컥 열어젖히곤 했다. 매번 자고 가겠다고 하는 주연과 매번 여자애는 집밖에서 자는 게 아니라며 허락하지 않는 이모의 팽팽한 싸움이 있었다. 주연은 늘 져서 울었고, 주아는 어쩔 줄을 몰랐다. 다음날도 보는데 헤어지는 게 뭐가 그렇게 슬프냐고 묻는 이모의 말을 듣고, 둘은 그런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에게는 그날이 중요했고, 그날의 헤어짐이 가장 슬프고 긴 이별처럼 느껴졌다. 다음날이 아침이 되면 주연은 다시 돌아왔다. 전날 울어서 퉁퉁 부은 얼굴로 대문을 열고 언니 와따, 학교 가자, 하고 소리치며 들어오곤 했다. 주아는 주연이 늦게 와서 학교에 늦겠다며 툴툴거렸지만, 밤새 어두웠던 집에 다시 빛이 든 것처럼 마음이 놓였다.
주연은 가요를 좋아했고, 주아는 팝송을 좋아했다. 주연은 영어도 모르는 게 폼 잡는다고 주아를 놀렸고, 주아는 촌스러운 노래를 좋아한다며 주연을 비웃었다. 둘은 노래 가사를 서로 다르게 받아 적어놓고 자기가 맞다고 우기거나, 내 마이마이가 더 이쁘네, 내 워크맨이 더 좋은 거네 하며 다투기도 했다. 잘생긴 남자아이 하나를 두고 서로 자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며 언쟁한 적도 있었다. 둘은 서로 팽팽하게 싸우다가 결국 주연이가 대문이 떨어져라 쾅 닫고 나가는 것을 끝을 맺곤 했다. 주아는 먼저 사과하거나 주연이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자기가 잘못하지 않았을 때는 물론이고,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 때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주연이 얼마나 버티는지 두고보자는 심정으로 기다리곤 했다. 집에 혼자 앉아 아무렇지도 않게 숙제를 하면면서 속으로는 혹시 주연이가 안오면 어쩌지, 계속 혼자 지내야 하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곤 했다.
그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이 주연이는 반나절도 안 돼 돌아왔다. 아침에 싸우면 오후에, 오후에 싸우면 저녁에 왔다. 주연은 언니 와따, 라고 말하지 않고 슥 들어와 주아의 옆에 앉았다. 주연 역시 사과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웃기지도 않은 헛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꺼내며 말을 걸었다. 문방구 할아버지가 대답할 때 오이야, 이렇게 말하면 호박이야라고 받아치고 싶다거나, 별이 지네 하면, 거미, 전갈이라고 덧붙이고 싶어진다는 식의 썰렁한 말장난을 해댔다. 주아는 웃기지 않아도 웃었다. 그게 둘의 화해 방식이었다. 주아는 사실 주연의 그런 점이 탐탁지 않았다. 자기 말만 맞다며 우기고, 잘못한 게 뭔지 잘 모르고, 사과하는 법도 모르고,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것처럼 뭉개고 있는 주연에게 자주 화가 났다. 하지만 주아는 그런 불쾌감보다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서 그런 감정을 꾹꾹 눌러두었다.
주연에게 더 친한 친구들이 생겼을 때 주아는 소외감을 느꼈지만, 사실 주연은 계속 주아를 찾아왔다. 하루에 두세 번 오간 것을 한 번 정도로 줄인 것이라 주아는 섭섭하게 느꼈지만, 수업 시간도 길어졌고 학원도 다니기 시작했기에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했다. 언제나 어린애들처럼 지낼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주아는 서운했다. 주연이 언니 와따, 라고 하는 목소리도 듣기 싫었고, 슥슥 끄는 발소리도 듣기 싫었다. 라면 한 젓가락만 달라고 해놓고 반을 먹는 것도 기분 나빴고, 자기 숙제를 배끼는 것도 화가 났다. 주아만 빼놓고 간 생일 파티에서 가져온 초코파이를 건네주는 것도 불쾌했다. 주아는 주연이 가진 모든 걸 빼앗고 싶었다. 빼앗아서 가지고 싶었던 게 아니라, 못쓰게 만들어서 버리고 싶었다. 주아는 그 마음을 조용히 숨겼다. 그리고 주연을 되찾아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보기로 했다.
주아에게는 나쁜 마음이 생겨났다. 나쁜 마음이 원래 주아의 안에 있었다가 드러난 것인지, 새로 자라났는지 모르지만, 그 근거는 주연이의 변심이었다. 그 마음은 세상 모든 것을 뒤틀어 보게 만들었다. 주연이는 거의 매일 왔지만, 주아는 찾아온 날은 세지 않았고, 찾아오지 않은 날만 헤아렸다. 그리고 그 빈 시간이 주연이가 자신을 버린 증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과 하교하는 건 자기 같은 아이와 함께 다니는 것을 보여주기 싫어서라고 생각했고, 다른 친구들이 다니던 피아노 학원으로 옮긴 것은 자신과 방과후를 함께 보내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찾아오는 건 경미 이모가 심부름을 시켜서이지, 자기가 오고 싶어서 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주아는 나쁜 마음이 뿜어내는 독을 주연이가 새로 만든 관계들 사이에 조금씩 흘려넣었다. 아주 조용하고 소극적인 방식이었고, 주연이를 생각해서 한 이야기들이었으므로 크게 나쁜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결국 주연이는 주아에게로 돌아왔다.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언니 와따, 같은 말은 하지 않는 아이가 되어서. 주연이 돌아오게 하는 것까지는 주아의 계획이었지만, 주연이 다른 사람처럼 변하는 것은 계획에 없었다. 주아는 주연이가 돌아온 것이 자기와 함께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주연이는 아무 기분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보였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듯, 입을 앙다물고 있었다. 라디오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와도 시큰둥할 뿐 아니라 소리를 줄여주기를 원했다. 몸을 웅크리고 벽을 보고 누운 채 해가 지도록 꼼짝하지 않고 있는 날도 있었다. 주아는 그게 보기 싫어 그렇게 웅크리고 싶으면 차라리 골방으로 들어가는 게 어떠냐고 말했다. 주연이는 대답 없이 베개 하나를 들고 골방으로 들어가 저녁이 될 때까지 나오지 않았다. 주연이의 변화에 걱정이 컸던 경미 이모 부부는 한동안 주연이에게 있고 싶은 곳에 있으라고 했지만, 밤이 되면 주연이는 군말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주연이는 매일 방과후 집으로 가지 않고 주아네 집으로 찾아왔다. 그랬던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건만 주아는 주연이와 함께 있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주연이의 침묵이 집안을 진공상태로 만드는 것 같아 주아는 숨이 막혔다. 분명 주연이는 주아가 한 일을 모를 것이 분명한데, 아무 말 하지 않고 둘이 종일 함께 있는 것이 주아에게는 형벌처럼 느껴졌다. 주아가 원했던 것은 주연이가 돌아오는 것뿐이었는데,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골방에 들어가 주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아는 더는 주연과 함께 있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자신의 마음이 그렇게 바뀌어버린 것이 슬플 뿐이었다. 주아의 마음을 아는 듯, 주연이는 서서히 찾아오지 않게 되었고, 중학교에 가서는 학교에서나 이야기를 나누는 관계가 되었다. 자매 같은 관계에서 서먹한 친구로 관계가 변해버렸지만, 그래도 경미 이모라는 끈이 있어서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경미 이모네가 이사한 이후 그 가족과 완전히 헤어지게 되었다. 주아는 결국 모두가 남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실감했다. 경미 이모는 엄마나 진짜 이모가 아니었고, 주연이도 진짜 자매는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는데도, 크게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을 주아는 뒤늦게 깨달았다. 처음부터 자기 것이 아닌데 가지고자 했고, 빼앗겼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너무 우습고 불쌍했다. 그들이 떠난 자리를 채운 건 엄청난 적막이었다. 사람만 빠져나간 것이 아니라 함께 보낸 긴 세월과 그들에게 주었던 마음도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이모가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 주연이의 언니 와따, 하는 목소리, 가연이가 자기와 놀아주지 않 는다고 징징거리던 소리, 밥 먹으라고 부르던 소리, 주아를 걱정하던 소리, 그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그들이 빠져나간 자리에는 주연이가 아무데나 벗어두고 갔던 양말과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머리끈들만 수북하게 남아 있었다. 주아는 주연이의 양말을 신고, 주연이의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고 학교에 다녔다. 머리끈이 낡아가고, 양말이 해지는 것을 보고 주아는 정말 혼자 남았음을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