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음악이 중간에 뚝 끊긴 거예요

9.

“음악이 중간에 뚝 끊긴 거예요, 그래서 무대 위의 댄서들이 일순간 동작을 멈췄고. 두 팔을 앞으로 뻗은 채로―”

태오는 잠의 무게에 눌린 채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웅얼거렸다. 제대로 말했는데 내가 놓쳤을 수도 있다.

“뻗은 채로. 그다음은?”

우리는 비몽사몽 그대로 하나로 엉킨 채 잠들었고, 끊긴 이야기는 다음날 아침에 다시 이어졌다. 마치 막차가 지나가고 첫차가 다시 오는 것처럼.

태오의 숨소리로 그가 깨어났다는 것을 알아챘는데, 그가 어쩐지 현실과 잠의 문턱에 서서 망설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커튼을 살짝 젖히자 발치에 도사리고 있던 빛이 쏟아지듯 안으로 들이쳤다. 태오의 등이 마치 파도에 휩쓸린 널빤지처럼 보였다. 큰 파도가 일어나면 바로 산산조각날 만큼 얇은.

그의 등을 훅 껴안았다. “아침이야! 얘기해줘야죠!”

“아아. 어디까지 했죠?” 그가 돌아눕지 않은 채 말했다.

“음악 끊기고, 댄서들이 팔을 앞으로 뻗었는데― 거기까지. 댄서들 지금 팔 뻗은 채로 몇 시간째 기다리고 있다고요.”

“들어갔어요. 무대 뒤로.”

“뭐야, 그게 다예요?”

음악이 끊기면 들어가야죠, 라고 말하며 태오는 내 쪽으로 돌아누웠다. 무대에서 춤추던 사람들이 음악이 끊기자 퇴장한 이야기. 정말 별것 아닌 일상의 절단면. 결말을 듣고선 “싱겁네!” 했지만, 그 싱거운 이야기를 나는 그 이후로도 종종 떠올렸다. 어쩐지 오래전에 들었던, 닳아 없어지는 음악 비누와 이어지는 면이 있었다. 음악이 정말 비누처럼 닳아 없어지는 거라면, 조금씩 부피가 줄어드는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차라리 덜 슬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태오가 들려준 무대 위 이야기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뚝 끊기는 방식보다는 낫지 않을까.

아니, 그게 더 슬플까. 나는 어느새 음악을 사랑으로 바꿔 부르고 있었다. 생의 마지막에 들을 음악을 남겨두듯이 사랑을 대하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하고. 내 사랑의 총량이 얼마인지도 알지 못하고 지금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도 알지 못하는데. 설령 안다고 해도 나중을 위해 사랑을 남겨둘 수 있나? 사랑은 바라봄과 풍덩 사이의 낙차, 그 힘으로 나아가는 것 아닌가. 나중 같은 것이 있을 리 없고, 모든 것은 현재형의 파도뿐인데.

그날 아침 태오의 집에서 나올 때 하늘이 유독 새파랬는데 동네를 조금 벗어나자 전혀 다른 세트장으로 들어온 것처럼 하늘빛이 달라졌다. 지하철로 일고여덟 정거장 떨어진 곳은 폭우에 휘말린 상태였다. 열차는 젖은 땅 아래로 달리다가 침수된 역 한 곳을 무정차 통과했다. K3이었다. 마치 그 역이 없는 것처럼, 없으니까 아무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거기에 뭘 두고 온 것 같아. 자꾸 생각나.”

태오에게 메시지를 보냈더니 “나도” 하는 답이 왔다.

“태오씨, 우리는 음악이 끝나도, 무대 뒤로 들어가지 말자.”

“춤춰요, 무반주로.”

“응.”

 

몇 달 새 인원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 우리 팀은 과적 차량처럼 아슬아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부서 간 구획이 흐트러져서 관련 업무자가 아닌데도 오발송된 메일을 받는다거나 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리모델링은 다 마무리되었지만 여전히 어떤 부분에서 구조적 진통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누군가는 기묘한 방식의 휴식을 누리기도 했다.

AI로만 꾸려진 T 전략3팀의 팀원은 모두 열다섯 명이었는데 정확히는 열네 명이라고 봐야 했다. 최가 그중 하나로 들어갔으므로. 그가 자신의 소속이 T 전략3팀으로 뜬다는 걸 알게 된 건 8월 말 즈음이었다. 거의 두 달 만에 팀 배속이 확정된 거였다. 그사이 그는 팀 두 개에 이중으로 속한 상태였는데 어느 쪽에서도 그를 정식 팀원으로 대하지 않았다. 아니, 의식하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우리 팀에서 최가 맡고 있던 업무는 실질적으로 몇 주 전부터 중단된 상태였다. 곧 다른 팀으로 옮길 거라고 들었기 때문인데 정작 최가 가기로 한 팀에서는 아직 준비중이니 기다리라는 메시지만 왔다는 거였다.

업무 시스템이 개편되지 않았다면 더 일찍 감지했을까? 해안 절벽이 침식되듯 최의 이동이 성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을. 그 기류를 제때 감지하지 못한 건 메일 오발송이 흔한 오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어느 순간부터 최는 그것이 오류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팀 통폐합이 거듭 번복되는 통에 우리는 자주 뒤섞였다. 원래 소속되어 있던 팀에서는 그의 부재를 인지하지도 못했다. 최는 여러 번 이 오류를 바로잡으려고 시도하다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이게 일시적인 혼란이라는 것, 그리고 당장은 자신에게 나쁠 게 없다는 것. 처음에는 뭔가 잘못된 구역에 놓인 듯 초조했지만, T라는 걸 받아들이자 많은 것이 가뿐해졌다고 했다.

어쨌든 최는 그 상황을 꽤 즐기고 있었다. 한 공항의 출국장을 떠나 다른 공항 입국장에 들어서기 전 누리는 진공상태 같았고, 뭐랄까 좀 숨어 있는 기분이라고 했다. 거대한 나무 그늘에서 폭우를 피하는 셈인데,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아볼 여력까지는 없고, 일단은 비가 긋기를 기다리며 한숨 돌리고 싶을 뿐. 그사이에 그에게 확실한 소속감을 주는 곳은 AI로 채워진 팀뿐이었다. 그렇게 최는 T 전략3팀의 임시 인간이 되었다.

나 역시 T가 아닌데도 T 전략3팀의 메시지를 여러 번 받았던 터라, 그리고 그런 메시지를 받아본 사람이 나와 최 둘만은 아니었던 터라 그의 말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저는 그 팀 소속이 아닙니다’와 같은 방식으로 내가 인간임을 증명하는 과정이 꽤 수고롭게 이어졌는데, 결론이 어떻게 났더라? 그냥 내가 그 메일을 스팸 처리해버리는 것이 실질적인 해결법이었다. 그런데 최는 그들의 회식 장소가 궁금해서 스팸 처리를 하지 않았고, 이제는 회의까지 참여하고 있었다.

T 전략3팀과의 회의가 끝난 후 최가 티타임을 하자고 했다. 사무실을 가득 채운 모니터 속에는 향기로운 커피와 차, 케이크 등의 이미지가 주기적으로 떴다. 잠시 쉬라는 얘기였는데, 그럴 때 사람들이 실제로 휴게실에 와서 티타임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휴게실의 비품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T의 도입으로 젊고 유연한 분위기를 만들겠다더니, 곳곳에서 희망 퇴직을 유도하는 분위기가 깔리고 있었다. 우리 팀장도 좀 기구한 사례 축에 속했다. 한때 차기 상무로 이야기되던 사람이었는데 T의 도입 이후 입지가 애매해졌다. 신설 부서가 생길 때마다 이리저리 실속 없이 동원되기만 했다. 최가 본인 사번 여덟 자리를 시스템에 입력하면 자동으로 T로 시작하는 낯선 번호로 전환된다고 말했을 때, 팀장은 최가 AI 관리 업무를 맡으려나, 하고 대답했다. 따로 아는 바가 있는 건 아니었고 단순 추측이었다. 최와 나는 팀장의 정보력을 걱정했다.

최는 “T공삼사에이팔…… 아우, 못 외우겠다” 하면서 낄낄거렸다.

“거기 누가 관리하는 거야? 왜 자꾸 돌아가면서 납치되는 거냐고, 사람들이. 볼모처럼.”

“이런 볼모라면 지원하고 싶다.”

“좋아? 숨어 있으니까?”

“말해 뭐해. 나 아까 구분됐어?”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기 들어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어. 아니, 뭐 회의까지 참여하고 그래, 그 팀도 아니면서.”

“출근 체크했더니 오늘은 회의로 자동 연결이 되더라고. 여기는 내내 회의야. AI들이잖아, 계속 회의라니까. AI가 열고 인간이 닫는다, 그것도 여긴 적용 안 돼. 팀 전체가 AI니까 그냥 내내 지들끼리 열고 닫고, 물론 최종 보고서는 관리자에게 가겠지.”

“관리자가 누군데?”

“있어. 박기훈 팀장이라고.”

“만나봤어?”

최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니” 했다.

“팀원인데 팀장을 몰라?”

“메시지는 무수히 주고받았는데, 본 적은 없어.”

최의 말로는 열다섯 명 팀원의 사번이 연결되어 있는데, 관리자급은 하나뿐이어서 대혼란이 벌어지는 거라고 했다. 박기훈 팀장은 AI의 보고서 검토도 혼자 다 하지 못할 거라고 했다. 그러니 엉뚱한 직원이 낚여들어와도 걸러내지 못하는 거고. 이른바 사각지대에서 최는 주변 분위기를 열심히 탐색했다.

“여기 어떤 소리가 나는지 알아?”

“피킹패킹피킹패킹……”

“치키치키차카차카?”

“아니, 피킹패킹피킹패킹. 포장 소리 같은 거.”

“자기 자리나 내 자리나 같은 사무실인데, 그런 소리가 들린다고?”

“모니터에서 그런 소리가 들린다니까, 그거 참 묘하데. 가만히 듣고 있으면 뭐랄까 마음이 편안해져. 여기서 없는 듯이 좀 있다가 갈래. 굳이 재촉하진 않을래. 여기 인간이 있어요! 인공지능이 아닙니다! 그렇게 증명하기 위한 노력이란 게 얼마나 가성비가 떨어지냔 말이지.”

“나머지 열네 명은 다 T이긴 한 거지? 최 과장을 의심 안 해?”

“모르지. 근데 내가 뭘 검색하든 다 데이터 수집 행위로 기록이 되더라고. 뭐라도 하면 돼, 그냥 내내.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건지도 몰라.”

그러고서 최는 미소 지었다. 최가 저렇게 낙천적인 스타일이었나 생각이 들 만큼 환한 미소였다. 나는 그의 소속이 바뀌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지만, 내가 진짜 모르는 게 하나 더 있었다. T 전략3팀의 직원으로 잘못 올라간 이후 그에 대해 동료들이 부여한 평점이 조금 높아졌다는 것. 우리의 승진이나 연봉 협상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는 동요되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T로 오해받는 편이 훨씬 나았다는 이야기다.

 

최가 들려준 말 중에 하나가 내게 오래 머물렀는데, “패턴을 읽으면 원인이 보인다”는 거였다. 박기훈 팀장이 자주 하는 말이라는데 평소 같으면 뭐 당연한 얘기겠거니 하고 지나갔을 그 말에 자꾸 마음이 쓰였다. 그들이 열심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이유는 결국 패턴을 읽기 위함인 것처럼, 내가 온라인상의 오물 뒤지기를 그칠 수 없는 마음도 그런 맥락일지 몰랐다. 데이터를 수집한 뒤에 뭘 하려고? 패턴을 읽어내려고? 그다음 원인을 찾으려고? 암담한 것은 이미 내가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알면서도 손쓸 수 없을 뿐.

비행기에 비치된 구명조끼를 제멋대로 옮겨두는 사람들이 있다. 좌석 아래 구명조끼를 빼내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엉뚱한 좌석 앞 포켓에 넣어두는 식이다. 도난 방지용 전자 태그가 작동하지 않는 범위에서는 경보음이 울리지 않지만, 한 세계의 규칙을 헝클어놓는 이의 내부에서는 도파민이 치솟는다. CCTV가 보건 말건 그 찰나의 자극을 좇다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도 있다. 범죄인 줄 몰랐으며 그저 단순한 장난이었을 뿐이라는 말 뒤에 숨은 것은 타인을 제압하려는 욕구다. 내가 너를 헝클어뜨릴 수 있음에 도취되어, 시스템에 흠집을 내는 방식으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것.

기내 질서를 엉망으로 만드는 이들은 자신의 범죄가 들킬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한다. 그에 비하면 악플러들은 아무런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다. 통제망을 벗어나 타인을 제압하려는, 비슷한 심리에 기인하지만 자신의 존재가 노출되지 않으리라 굳게 믿는다. 혼란을 야기하고도 그 현장으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데서 오는 일그러진 희열에 중독된 이들이다. 장막이 걷히고 빛이 들이치면 그제야 바퀴벌레처럼 사방팔방으로 흩어진다.

군중은 극이 시작되면 주목한다. 끓어오르는 용암 속으로 떠밀 희생양을 늘 찾고 있으니까. 그 가장자리로부터 자신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가늠하고는 짧게 안심할 사람들을 위한 제물이나 마찬가지다. 가장자리와 중심이 말끔하게 분리되는 게 아님을 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인스턴트 안심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그늘을 비판하지만, 신경쓰기에는 생활이 바쁘다고 웅얼거린다. 나 역시 그 무리 속에 있었고, 태오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 일이 될 줄 몰랐다.

조난 상황에서 모두가 같은 지도를 보는 것은 아니다. 각자에게 익숙한 지도가 다르기에 사람들마다 세상을 보는 방식도 달라진다. 내가 신뢰하는 것은 언제나 지형도였다. 능선과 고도, 식생과 물길이 표기된 지형도는 길이 끊겼을 때 지형지물을 이용해 새 길을 낼 수 있도록 돕는다.

그에 비하면 태오는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는 사람이다. 비상시에는 변수가 너무 많은 지도다. 이를테면 쓰나미가 닥쳤을 때 고지대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등고선 정보가 필수적인데 내비게이션만으로는 땅의 높낮이를 파악하기 어렵다. 앞으로 뻗은 길이 위로 올라가는지 아래로 내려가는지 알 수 없기에 불시에 낭떠러지를 맞닥뜨릴 수도 있다. 게다가 전력이 끊기면 내비게이션은 먹통이 된다. 함께 걸을 때 태오는 빠른 길과 예쁜 길을 구분하고 경로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었지만 우리 삶에 예기치 않은 균열이 생겼을 때 그에게 허락된 선택지는 거의 없었다. 도로 자체가 사라져버렸으니까. 내비게이션은 엉뚱한 지점에서 안내를 종료한 후 더는 작동하지 않았다.

한때는 인생이 각자의 지도를 만들고 길을 잃어보는 여정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자신의 방식으로 세상의 밀도를 경험하다가 측정 도구나 기준, 혹은 대상이 어긋났음을 깨달아가는 거라고. 당연히 누구도 백 퍼센트 완벽한 예측을 할 수는 없고, 그 불완전함이 우리의 전부라고. 그렇지만 실제로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내가 간절히 원한 것은 각자의 영역을 뛰어넘는 단 하나의 것이었다. 내가 찾은 유일한 출구는 복수였다.

이 마음의 기폭제가 된 것은 편지 봉투 하나였다. 태오에게 전해주려고 했던 우편물이 그대로 내 가방에 들어 있다는 것을 집에 돌아와서야 알았다. 고지서와 광고지 틈에 손글씨 편지 봉투가 하나 있었는데 뜯어봐야 할 것 같았다. 봉투를 뜯으면 자국이 남을 모양새였지만 상관없었다. 태오에게 갑자기, 혹은 그리 친한 사이도 아닌데 뜬금없이 연락해오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그중에는 이름도 가물가물한 중학교 동창도 있었다. 그는 태오를 인터뷰하고 싶어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니 태오는 자신에게 오는 연락을 모두 피하게 되었고, 그게 회사에서도 바라는 바였다.

봉투 안에는 태오에게서 받은 것이 분명한 사인과 태오의 사진, 정확히는 ‘역무원의 얼굴’ 이미지가 인쇄된 A4 용지가 두 장 들어 있었다. 두 장 모두에 ‘위선덩어리, 너도 죽어라!’라고 적혀 있었다. 의자에 앉은 채였는데도 내 몸을 지탱할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이 떨렸다. 태오에게 전해주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가도 어쩌면 이건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제서야 그중 하나를 목격했을 뿐.

 

‘태오씨는 잘 있어요? 괜찮아요?’

안주임의 메시지를 새로 만들어둔 폴더로 옮겼다. 길지 않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속뜻을 모를 리 없었다. 나는 태오가 회사측의 메일을 확인했으며 비밀 유지 서약과 같은 서류에 서명할 거라는, 어쩌면 이미 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전달하지 않았다. 대신 안주임의 메시지들을, 그간 내게 보냈던, 그것이 무해하다고 여겼던 시절의 메시지까지 포함해 전부 캡처해서 남겨두었다. 지난번 K5에서 만났을 때 안주임과 나눈 대화를 녹음하지 못한 게 후회가 됐다. 안주임은 녹음했을지도 모르지. 태오는 안주임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했다. 인력 충원, 시스템의 허점 정비에 대해서 가장 크게 목소리를 냈던 선배라고. 그렇지만 이제 안주임의 입장과 내 입장은 달랐다. 지시대로 하면 태오를 구출하겠다고, 태오를 무리 속에 숨겨주겠다고 말하는 것이 회사측의 당연한 태도처럼 느껴지면서도 그것을 보는 것이 괴로웠다. 내게 전달해달라고 말한 것도.

폴더에 저장할 것들이 연달아 더 생겨났다. ‘역무원 A씨, 얼굴 있고 영혼 없다는 양심 고백?’과 같은 기사 제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글이 대중의 알 권리를 위해 작성된 거라고? 클릭 수의 노예가 아니라는 양심 고백을 그들은 할 수 있나?

어둠 속에서 무참히 휘두르는 창과 검에 찔린 사람들의 뇌에는 상처가 남는다.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끝까지 추적하기란 왜 어려울까. 공감 능력이 결여된 쪽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이기 때문에, 복수를 위한 추적이라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건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들은 움직인다. 내가 처음 이 폴더를 만들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 사람의 삶을 장난삼아 짓밟은 이들이 어떻게 고통받는지 끝까지 따라가 완전히 파멸시켜버릴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었나. 모르겠다. 그저 방해물을 치우기 위함이었다. 그의 앞길에 놓인 가시덤불을 걷어내고 싶다는 생각. 그것이 나무든 사람이든. 태오가 일하는 회사의 동료든 승객이든 드론을 띄우고 잠입하려 했던 유튜버든 저급한 기사를 쓴 기자든 악플러든 태오의 우편함에 저주를 퍼붓고 간 누구든 다 폴더 안으로 들어갔다. 긁어모아 PDF로 저장하고, 또 긁어모았다. 폴더는 점점 무거워졌다.

이것이 일종의 생존배낭 같은 거라면 내가 짊어질 수 있는 무게인지를 가늠했을 텐데,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모은 것으로 무엇을 할지는 나도 알지 못했다. 단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쑥불쑥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불안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계속했다. 이런 행위로 인해 결국 나의 일부가 마모되더라도, 설령 그게 영혼이라 하더라도 멈출 수가 없었다. 무언가를 모으는 행위만이 나를 안심하게 했다. 어쩌면 선로 위의 유실물 분실 지점을 아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흘린 지점을 알기만 한다면 다시 주울 가능성도 커질 테니까. 그런데 정말 그랬을까. 오물을 폴더로 옮기는 동안 나는 지하 2층에서 3층으로, 3층에서 4층으로, 한없이 추락했다. 그렇게 밑으로 계속 가라앉았다, 퇴역한 열차처럼. 지붕이며 벽이며 종잇장처럼 힘없이 무너져가는 열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