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그 시절을 기보할 수 있다면 아마도 썰물 때의 모래밭처럼 펼쳐질 것이다

10.

그 시절을 기보할 수 있다면 아마도 썰물 때의 모래밭처럼 펼쳐질 것이다. 최대한 천천히 연주해야 하는 구간. 발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는 걸 느끼면서도, 점점 키가 작아지는 걸 느끼면서도, 사람이 무너지지 않을 만큼만 땅이 꺼질 거라고 믿고 싶었던 날들.

우리가 함께 듣던 사라 강의 노래에는 2063년이라는 시점이 나온다. 먼 훗날 중에서도 왜 하필 그해일까에 대해 오래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그러다 2063년에 초승달과 금성 사이가 가까워지다못해 달이 금성을 완전히 가리는 엄폐 현상이 관측될 거라는 소식을 뉴스 틈에서 찾아냈다. 5월 31일이래, 육안으로 볼 수 있대. 2023년에도 그랬대. 이 노랫말은 그때 태어난 걸까, 사십 년 후를 다시 기약하면서? 노래의 발표 시점까지 찾아보며 우리는 작게 동요했다. 노랫말을 만들 때 그 우주적 우연을 고려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는 그 시점이 하나의 힌트처럼 느껴졌다. 달과 금성이 하나가 된 듯이 겹쳐지는 시간, 그게 2063년이어서, 지금이 아니라 한참 후여서 아찔하게 좋았다. 2063년을 기다리는 마음이 됐다. 지금이 빨리 지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어서 이 터널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바라고 또 바라는 상태였는데 내 마음이 간절할수록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어떤 악기로든 목소리로든 그렇게 기보된 날들을 보면 따라갈 의욕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나왔지? 생각할 때마다 아득해지는.

안주임은 기자가 연락을 해오더라도 당황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혹시 한태오가 약을 먹는다거나, 회사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다거나, 불합리한 현실에 대해 호소한 것은 없었는지, 최근에는 집안에만 있는지…… 이런 질문을 기자가 할 거라고 했다. 대응을 안 하는 편이 좋겠지만― 하면서 그가 안전실을 뒤집어놓고 갔다고 했다. 그 기자가 이미 내게 두 번이나 연락을 해왔다는 것을 안주임은 몰랐다. 기자는 러닝 대회를 준비할 때, 혹은 그후에라도 한태오에게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느냐고 물었다. 그후라니, 우리가 연인 사이라는 것을 아는 듯한 질문에 설마 안주임이 우리 관계를 흘린 것은 아니겠지,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우리가 연인이라는 사실은 내부의 균열이 아니라 외부의 할큄에 의해 갈기갈기 찢겼고, 그 과정에서 우리를 가장 괴롭게 한 건 한 번도 우리와 말을 나눠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익명의 처마 아래 숨어서 남기는 몇 줄의 말들이었다. 태오와 내가 거래처 협력 관계인 동시에 연인이었다는 사실은 더 자극적인 논조로 언급되었다. 한쪽이 다른 쪽의 정규직 전환 심사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은 상황을 더욱 지저분하게 만드는 먼지 보풀이었다. 우리가 연애 초반에 이미 고민한 후 털어버렸던 그 먼지들을 외부에서, 익명의 관람자들이 다시 몰고 왔다. 얼굴 없는 댓글들이 한 사람을, 나아가 그 사람을 둘러싼 세계를 갉아먹었다.

태오는 회사에서 보내온 서류에 서명했다. 남은 인턴 근무 기간은 유급휴가로 채우기로 했다. 유급휴가는 정상 근무의 틀을 깨지 않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안주임은 어찌됐든 정상 근무 상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상 근무, 그건 누구 입장에서 중요하다는 것인가. 회사로서는 확실히 그랬다. 회사가 태오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그게 많은 이들의 관심사였으니까. 한태오에게 유급휴가를 지급하니, 회사의 별도 지침이 있을 때까지 회복에 전념할 것. 그것이 회사가 제안한 깔끔한 방식이었는데, 별도 지침이 언제 내려올지는 알 수 없었다.

회사의 제안이 태오의 대중적 인지도를 고려한 특수한 결정이라는 안주임의 말을 나도 믿어보고 싶었지만, 사실은 약속된 시간이 모두 끝나면 태오가 K선과 영영 상관없어진다는 걸 태오도 나도 어느 정도는 예감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태오가 서류에 서명한 것은 그 혼자만을 위한 결정이 아니었다. 나는 비겁했다. 전혀 몰랐던 창문이 열리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그 순간을 모면했던 거니까.

 

노숙인 사망 사건이 발생한 지 삼 개월째 되던 날, 경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를 토대로 사망자가 신고 접수 시점 이전부터 이미 비가역적인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학적 소견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역무원의 출동 지연과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으며 참고인 조사 결과 형사 입건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보고 사건을―”

종결했다. 그렇게 종결되었다. 사무실 사람들은 이 정도면 비교적 결과가 빨리 나온 거라고 했지만 나는 원망스러웠다. 국과수 조사 결과는 며칠이면 나왔을 텐데 왜 이렇게 시간을 끌었지, 여론에 힘입어 타이밍을 조율한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자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 더 치밀어올랐다. 어쨌든 이 결과를 기다리며 마음을 졸였던 사람들은 안도했고, 그들 중 하나가 나였다. 마침내 문제의 생존배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망한 노숙인과 함께 발견된 그 생존가방 말이다. 히든포켓의 지퍼는 불량이 아니었고, 애초에 그 안의 모든 물품이, 포도당 캔디를 포함해 모든 내용물이 빠져 있었다고 했다. 또 울화가 치밀었다. 그랬다면 애초에 선을 그어줄 수도 있었던 것 아닌가. 우리의 생존배낭은 껍데기만 있었던 것인데, 우연히 사진에 찍힌 행인처럼 그 자리에 있었던 것뿐인데.

“세상 무서운 게 뭐 어제오늘 일입니까. 마음 푸시죠. 아니, 워낙 국민적 관심이 중대하니까 우리도 예외를 둘 수가 없어서 규정대로 안내드린 것뿐이고요. 아이구우우우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담당 형사는 그렇게 말했다. 사건은 서서히 희미해져갔다. 급히 올라왔다가 조용히 묻힌 기사 속에나 그 얘기의 꼬리가 남아 있었다. 이를테면 대중교통의 인력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안전 지침이 잘 지켜지고 있는가, 노숙인 문제와 지하철 역사 개방 문제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등등 이전에도 꾸준히 논의되었던 주제들로. 역사의 한 귀퉁이가 가볍게 누락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몇 안 되는 사람처럼 나는 그 기사들의 꼬리를 따라갔다. 태오를 조리돌림했던 이들은 다음 타깃을 찾아 떠났다. 태오는 “나 이제야 겨우 잊힌 사람 되겠네!” 하면서 웃었는데 휴대폰 너머 목소리만으로도 표정이 읽혔다. 해방감과 자조가 섞인 듯한 표정. 그러나 법적으로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해서, 대중이 그 일을 잊어간다고 해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었다. 복면 차림의 행인들이 우르르 들어와 그의 미래를 가볍게 구긴 후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나는 일주일 휴가를 냈다. 팀장은 내게 마음고생이 심했다면서 편히 쉬고 오라고 했다. 그날 간단히 짐을 싸서 태오에게로 갔다. 태오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였다. 그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으니까.

우리는 일주일간 함께 살았다. 나는 태오의 집 곳곳에 생겨나는 빛그림자의 지도를 그릴 수 있게 됐다. 빛의 발자국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어떤 무늬는 특정 시간대에만 볼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서쪽 창을 통해 왔다. 오후 한나절 무언가를 태울 수도 있을 만큼 빛이 모이는 곳이었지만 오후 다섯시쯤 거기 앉으면 이제 빛이 곧 사그라든다는 것을 아니까 마음이 차분해졌다. 태오와 나란히 앉아 빛이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것을 지켜보는 게 좋았다. 태오의 책상 위에는 조잡하게 만든 미니 미러볼이 하나 있었는데 충전하면 화려한 조명처럼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진짜 용도는 따로 있었다. 충전하지 않아도, 오후 햇살이 길게 들어오면 미러볼이 반사판 역할을 해서 빛을 천장으로 쏘아올렸다. 다이아몬드 모양의 빛그림자를. 별처럼.

모든 것을 오프 상태로 두고 지내는 동안 우리는 마치 아무 일도 겪지 않은 사람들처럼 편안했다. 농담을 회복했고, 서로를 장난스럽게 놀렸고, 주문한 재료들로 함께 밥을 해 먹었다. 영화, 노래, 그리고 거장들의 연주 영상을 돌려봤다.

“베테랑 연주자들도 악보 속에서 길을 잃는대. 고의인지 실수인지 알 수도 없대.”

리흐테르나 클라우디오 아라우 같은 베테랑 연주자들이 종종 악보 밖으로 벗어나는 이유를 찾아보기도 했다. 글렌 굴드나 말러까지 거슬러올라가면서…… 그들이 악보 밖으로 이탈한 순간이 언제인지 우리가 직접 찾아낼 수는 없었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이 우리에겐 꽤 위안이 됐다. 음악은 악보에 있는 게 아니니까, 삶이 이력서에 있는 게 아닌 것처럼.

“생각해보면 그 마라톤 역주행도 악보 밖으로 벗어나는 사건이었잖아.”

“거꾸로 뛰게 한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아직도 몰라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씨는 거기 안 왔지? 확실하지?”

“나는 알리바이가 너무 확실한데. 나랑 닮기를 원하는 거야?”

그의 얼굴을 양 손바닥으로 감싸 꾹 누른 다음, 나는 말했다. “어우, 못생겼다! 안 되겠네.” 그러자 태오가 똑같이 따라 했다. 우리는 친밀 행동을 하는 낯선 생물체들처럼 함께 있었다. 서로가 되려 애쓰면서.

 

그러다 태오가 잠들면, 나는 깨어나 잠시 꺼두었던 세계에 접속했다. 전혀 다른 방으로 옮겨가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딱 한 번 같이 갔던 극장의 구조와 비슷했다. 태오는 극장에서도 늘 통로 좌석을 좋아했고 가장 선호하는 자리는 옆으로 툭 튀어나와 앞이 훤히 트인 곳이었다. 내 앞에는 좌석이 있었지만 태오 앞에는 계단만 있었다.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그에게 “안전벨트 했어요?” 하고 장난을 걸었을 때 그는 “깜빡할 뻔했네!” 하면서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오른쪽 어깨 끝에서 왼쪽 허리춤으로 벨트를 끌어당기는 시늉을 하면서. “거긴 없대요” 했더니, 그는 “없다고?”라고 금시초문이라는 듯이 되물었다. 나는 키득거리며 속삭였다. “거긴 벨트가 없는 자리예요. 급정거하면 아래로 굴러떨어져요. 조심해요.” 그러자 태오가 내 팔을 두 손으로 꼭 잡았다.

연인 사이의 농담이었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소름 끼치는 현실이기도 했다. 그는 안전벨트도 없는 채로, 고속으로 달리는 차에 앉아 있는 셈이었다. 칼바람을 고스란히 ‘얼굴’로 다 맞아버린 사람이 태오였고, 태오를 앞세우고 뒤로 숨은 사람들이 있었고. 태오가 약자인 걸 알면서도 재미삼아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법적으로 결론이 난 후 세상은 태오를 잊어가는 중이었지만, 과거에 그들이 남긴 기록은 여전히 존재했다. 그들이 기사며 영상을 삭제할 수도 있으니 서둘러야 했다. 어서 증거를 박제해두어야 했으니까. 내 폴더 안에.

영상마다 남의 불행을 삽니다, 라고 강조하는 유튜버 하나가 이렇게 말했다. B선 인턴 말이죠. 화면에 그 인턴의 실루엣과 함께 신상 정보가 떴다. 우리는 무조건 실명이야, 실명. 사실이 아니면 고소하라고 해. 김지훈, 김지훈이 자살을 시도했잖습니까. 죽다 살아났죠. 그때 만약에 죽었다, 그러면 어떻게 됐을까. 궁금하죠. B선이고 K선이고 어디든 간에 일하던 사람이 죽으면 대응 매뉴얼은 일맥상통합니다. 판박이야, 판박이. 일단 회사에서 말을 따죠. 가정 내 불화가 있지는 않았는가, 최근에 연애하다 헤어진 건 아닌가, 빚 문제라든가 주거 문제. 뭐, 다 있죠. 유가족 전담반이 하는 일이 그거예요, 그거. 뭔가 이상한 낌새는 없었는지. 아우 정 떨어진다, 진짜…… 그는 태오 이야기를 다룬 적도 있었다. 그 영상에는 나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복수의 관계자에 따르면, 이라는 말을 하면서 그는 태오의 이성 관계가 복잡했으며 심지어 거래처 직원과도 엮여 있었다고 말했다. 내 이름이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한참 연상의 유부녀라는 둥 우리가 주고받았던 지극히 개인적인 농담까지―“사랑보다 의전이야!”와 같은―도 외부의 힘에 의해 뜯겨나가 끔찍한 흉기처럼 거기 놓여 있었다. 러닝 대회 프로젝트 참여 자체가 연인의 입김이 작용한 결과 아니냐,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얼굴 믿고 까부는 SNS 스타만 승진시키느냐는 말도 있었다. 이런 영상을 태오가 볼까 겁이 났다. 대부분 허무맹랑한 얘기였지만 그래도 태오가 그런 영상을 보지 않았으면 했다.

그 채널을 구독하는 사람도 낚이는 사람도 경멸했지만, 적을 알기 위해 정보를 계속 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마침내 그 유튜버의 실명을 알아냈고, 사업자등록 여부를 조회해 몇 가지 사실을 더 확보했다. 그는 생각보다 허술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국세청 홈택스에서 사업자등록번호를 넣어 상호와 대표자명, 사업장 주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다음엔 사업장 주소를 넣어 건물 임차인 정보까지 메모했다. 모든 것을 차곡차곡 폴더에 담았다. 이 폴더가 생존배낭이라면 이미 한 사람이 짊어질 무게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지 않고 견딜 수가 있나? 견디기 위해 우리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알아야 했다. 엄밀히 말하면 복수도 아니었다. 복수심에 불타올랐지만, 저주하고 싶었지만, 결국 내가 놓쳤다고 느끼는 통제력을 이런 방식으로 일부 회수하는 행위 정도였다. 여차하면 나도 다 까발릴 수 있다고, 온라인에 다 유포해버릴 거라고 생각하면서.

태오와 나의 일상을 짓밟으면서 따라다니던 그 기자는 어느 영상에서 취재의 윤리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과열된 취재 경쟁으로 인해 사생활을 침해받은 시민이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들을 언급하면서 윤리적인 고민 없는 취재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눈을 피할 줄도 몰랐다. 그 기자의 다른 기사들을 하나씩 읽어보았다. 어떤 패턴이 보이는지 알고 싶었다. T처럼 말이다. 언론중재위 사이트에 들어가 기자의 이름을 넣어보았다. 정정보도 권고를 받은 건이 적지 않았다. 본인이 하는 건 공익을 위해서고, 남들이 하는 것은 클릭 수 경쟁인가. 그가 최근에 취재중인 건은 우리 시대의 마녀사냥에 관한 것이었다. 어떻게, 내가 한번 익명의 제보자가 되어봐? 이미 그의 행적을 많이 모아두었는데.

“안 자?” 태오였다.

너무 놀라서 나도 되물었다. “안 자? 자는 줄 알았는데.”

태오가 다가와 책상 옆에 붙어 있던 코알라 모양의 집게 하나를 꺼내서 내 팔을 집었다. 반사적으로 몸을 뺐다. “아, 아파!” 아파서가 아니라 당황해서 나온 말이었다. 보고 있던 휴대폰 화면을 황급히 껐다. 태오가 코알라 집게를 내 팔에서 빼면서 말했다.

“일시정지 집게. 이걸 집으면 그대로 멈추고, 자는 거야. 코알라처럼. 다른 거 하지 말고, 검색도 그만하고.”

“몇시지?”

알면서 괜히 그렇게 물었다. 새벽 두시 반이었다. 창 너머로 불 켜진 창문이 하나, 둘 보였다. 사각의 별처럼.

 

내가 악을 쓰고 꾸렸던 그 생존배낭은 없던 일로 만들 수 없는 규모로 거기 덩그러니 있었다. 그 안에 담긴 것들이 과거형이라고 해서 유통기한을 넘겼다고 말할 수 있나? 그럴 리는 없었다. 나는 그 폴더를 매일 열어보면서 그 안의 것들이 여전히 유효한지 살폈다. 고통스러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불안했다. 그 폴더는 어떤 복수에도 쓰이지 못했고, 그저 그 자체로 흉물스러운 기억이 되었고, 그러다 태오의 눈에 띄었다. 폭풍이 거의 지나갔다고 믿었던 시점에.

이게 뭐냐는 질문에 나는 대수롭지 않은 듯, 별것 아니라는 듯 대꾸했으나 당연히 별것 아닐 리가 없었다. 너무 화가 나서 모아뒀던 거라고. 그렇지만 의미 없는 거라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태오가 손을 내밀었다. 휴대폰을 보여달라는 뜻이었다. 그는 이미 알았던 것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모아둔 것인지를, PDF로 정리해둔 그 자료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거기 도달한 것인지를. 나는 그 순간에도 태오가 폴더의 오물들을 모두 보고 있다는 것이 괴로워서 결국 휴대폰을 다시 낚아챘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너 보라고 모은 거 아니야. 이렇게 보여주려고 모은 게 아니라고. 그냥 견딜 곳이 필요했고, 그래서 모았어. 직업병 같은 거야. 이걸로 더 큰 문제를 만들려고 한 게 아니라고. 내가 함부로 행동하겠어? 날 못 믿는 거야?”

“믿어.” 태오가 말했다. “그런데, 이러면 내가 잊고 싶어도 잊을 수가 없잖아, 이러면.”

아니, ‘있고 싶어도 있을 수가 없잖아’였을까? 태오가 화를 내는 건 처음이었다. 그는 낮고 작게 읊조렸지만 분명히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고, 치밀어오르는 화를 가까스로 참고 있다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결과적으로 나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고 외부로부터 태오를 보호하지도 못했으며 오래된 오물을 차곡차곡 모아서, 그것도 가장 끔찍한 오물만을 모아서 태오에게 보여준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의도가 아니었다 해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 위기에서 우리를 구할 생존배낭이 아니라, 우리의 발목에 묶인 돌덩어리처럼, 거대한 해머처럼 그 폴더는 거기 있었고 뭔가에 균열을 냈다. 그래서 화가 났다. 태오도 그랬겠지만, 나도.

그날 우리 사이에 아주 많은 말들이 오갔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대화를 재구성할 수는 없다. 지우고 싶었나? 그래도 딱 한순간만은 잊히지 않는다. 싱크대 하부장의 서랍 속에 유리잔이 들어 있었는데, 그 대화 끝에 내가 서랍을 열어 물컵을 하나 꺼냈고, 아주 세게 닫았고,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힘이 실렸고, 그 안의 것들이 와르르 소리를 냈고, 다시 서랍을 열었을 땐 유리잔들이 죄다 깨져 있었다는 것.

우리의 짧은 동거는 그렇게 끝났다.

 

무심코 올려다본 벽등의 그림자가 대관람차의 한 칸처럼 보인다. 칠 년째 같은 자리에 붙어있는 조명인데도 이런 그림자는 처음 보는 듯 생소한 느낌. 늘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같은 각도로 눕지만 한 번도 같은 꿈을 꾼 적은 없고, 실은 꿈 없는 잠이 태반이다. 어쨌든 눈 감기 직전이나 눈 뜬 직후는 늘 낯설다.

누운 채로, 태오와 대관람차를 탔던 걸 생각한다. 대관람차의 속도로 올라가 어느 도시를 내려다봤던 저녁을. 지면과 거리를 두고 위로 올라가며 크게 원을 그리는 시간, 하나의 동그라미 안에 갇힌 시간. 우리는 이미 고민을 끝냈고, 대관람차는 그저 커다랗고 동그란 마침표일 뿐이었다. 태오는 인턴 기간을 다 채운 후 마치 거기 없었던 사람처럼 회사를 떠났다. 나는 그가 내 삶에서 완전히 떠나지 않았음을 계속 부여잡고 있었다. 그 사실에 기대고 있었다. 우리는 그 이전만큼 자주는 아니지만 얼마간 더 만났다.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급브레이크를 밟을 수는 없는 것처럼.

대관람차가 있는 바닷가의 도시로 온 건 그곳이 우리가 살던 도시에서 멀리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저 긴 질주가 필요했고 동해안을 따라 쭉 내려가다가 남해안의 어느 도시에 닿았고, 계획에 없던 대관람차에 올라 석양을 보려고 했다. 그 여행을 끝으로 우리는 영원히 과거가 되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관람차가 붕 떠오르기 시작했을 때 저 아래에 낯선 골목들이 산발적으로 뻗어 있는 것, 하나둘 불 밝히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우리는 왜 헤어진 걸까, 왜 헤어지려고 하는 걸까, 지쳤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는데. 우리는 오랜만에 만난 거였다. 태오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심장이 철렁하던 날들을 지나, 내가 태오의 전화를 외면할 수도 있는 날에 이르렀고, 그렇지만 영영 외면할 수는 없는 어지러운 지점이었다. 그냥 악몽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 너무나 피로한 꿈에서 깨어난 기분, 태오가 아주 조금만 틈을 내어준다면 기꺼이 모든 것을 뒤엎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저기 길이 저렇게나 많았으니까.

“길이 많다, 진짜 많죠.” 내 말에 태오가 “정말”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앞에 펼쳐진 선택지를 내려다보며 모바일 지도에 우리의 방향을 물어보자는 농담까지 오갔다. 그건 시계를 조금 더 과거로 돌린 대화였다. 우리는 그렇게 다시 고민하는 사람으로 회귀한 것이다. 태오가 말했다. “선택지는 여럿이 아니라 하나뿐이야. 나에게는 계속 그랬어.”

나에겐 필터가 너무 많은데. 앱이 추천하는 최적 경로, 최단 경로, 최소 시간, 최저 비용. 나는 여러 가지를 모두 고려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였다. 큰길. “골목길 여기저기 들어갔다가 더 힘들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설명 없이 막혀 있기도 하고, 인적도 드물고, 불안하고. 운전할 땐 그런데 인생은 모르겠어……”

“운전과 인생이 꼭 같은 건 아니지.” 그렇게 말하는 태오의 어깨선 너머로 해가 지고 있었다. 어깨를 조금만 왼쪽으로 기울이면 그걸 타고 또르르 내려와 왼쪽 어깨 끝에 가서 붙을 수도 있을 것처럼 보였다. 그것 때문이었을까, 나는 태오를 붙잡고 싶었다. 묻고 싶었다. 태오야, 우리 왜 헤어지는 거야, 하고. 그렇지만 그 말들을 모두 꾹꾹 눌러담고 태오에게 말했다. “악보, 지도, 이런 거 다 던져버릴 수 있을 것 같아. 인생이라면. 이미 그렇게 해왔고.”

“그래서 말인데, 토요일에 시간 돼요?”

태오가 일부러 경어체를 쓰면서, 마치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얘기하는 게 느껴졌다. 시작하는 사람들처럼.

“어느 토요일이요?”

“아무 토요일이나요.”

“이번달엔 안 돼요.” 나는 마음과 다르게 말했다.

“다음달에는요?”

“글쎄. 다음 생에?”

“다음 생엔 내가 어렵고, 이번 생에서는요?”

태오는 내 농담을 그렇게 튕겨냈다. 나는 세 달 후라고 말했다. 토요일은 장담할 수 없지만 전혀 다른 계절에. 내 말이 끝나자 태오가 피식 웃었다. 나도 피식 웃었다. 태오가 “이거 꿈이야”라고 할까봐 겁이 났다. 우리는 모든 것을 정리하기 위해 대관람차가 있는 도시까지 달려왔는데 다시 무언가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끝이 뻔히 보이는데.

그 대관람차는 한 바퀴를 도는 게 아니라 두 바퀴를 도는데, 한 번은 시계 방향, 다른 한 번은 시계 반대 방향이었다. 우린 한 바퀴만 도는 게 나았을 수도 있는데, 반대 방향으로 한번 더 도는 바람에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 대관람차에서 완전히 내리기도 전에 우리는 설치 과정에 따라붙었던 비리 때문에 결국 시에서 그 대관람차를 철거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찾아내 읽었다. 우리의 발이 다시 땅에 닿았다. 우리가 그 안에서 나눈 말들도 모두 철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