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 (마지막)

*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한나절 내내 부슬비가 내리는 월요일이다. 나는 거실 창가에 서서 목련차 한 잔을 조금씩 아껴 마시면서 앞마당이 비에 젖는 모습을 바라본다. 파란 대문이 더 파랗게 보인다. 장미나무 이파리가 흔들거린다. 까마귀가 까아악, 깍 운다. 비 오는 날에는 왼발이 저릿해서, 내가 완전히 낫지 않았다는 각성과 함께 이만큼 회복된 게 천만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동시에 찾아온다. 오른발로만 나를 지탱해본다. 왼발로도 서본다. 오른 발목을 천천히 돌리고, 왼 발목도 천천히 돌린다. 발끝으로 여러 개의 작은 원들을 그리고, 목련차의 마지막 한 모금을 입에 머금었다가 삼킨다. 호흡을 고른다. 미지근한 물이 발바닥까지 내려가는 감각을 느껴볼 수 있을 듯하다.

어느 사이 고민진이 가만가만 다가와 내 등뒤에서 선 모양이다. 낭랑한 목소리가 끼어든다.

“소하씨, 나 부침개 얼마나 잘하게?”

고민진은 내 요리 솜씨가 형편없다는 걸 확인한 후로 얄밉게도 놀리는 어투로 이렇게 묻기를 좋아한다. 양배추를 찌거나 감자를 삶는 등의 간단한 조리를 하는 데에도 ‘나 얼마나 잘하게?’ 하고 빙글거리면서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구경하려고 든다.

“아이고, 저보다야 잘하시겠죠.”

나는 성가시다는 듯 대꾸하지만, 시장기가 돌아 이미 그를 뒤따르고 있으므로 상냥한 한마디를 보탠다.

“뒤집는 건 제가 할게요.”

비 오는 날 고민진과 단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건 처음이다. 고대휘는 이른 점심식사를 마친 후 택시를 잡아타고서 조카와 짧은 여행길에 나섰다. 언젠가 드라마 촬영지였던 대형 수족관이 있는 카페가 오늘 삼촌과 조카의 새 탐험지대다. 이 정도의 소소한 이벤트를 위해서 고대휘는 하루 휴가를 냈고, 함이삭은 학교에 결석했다. 둘이서 카페 벽면 한쪽을 가득 채운 대형 수조를 배경으로 기막힌 사진을 찍어보겠다며 명랑하게 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내가 따라나서지 않은 이유는 고민진마저 외출하고 나면 간만에 빈집에서 호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듯해서였는데, 아무래도 예상이 빗나갔지 싶다.

“미용실에 안 가시나봐요?”

“원장이 손가락이 안 좋대서 좀전에 전화로 날짜를 미뤘어. 직업병이라지 뭐야. 건초염. 오랜만에 스타일 좀 바꿔볼까 했더니만.”

고민진과 나는 김치부침개 넉 장을 부쳐낸 뒤 막걸리를 곁들이기로 한다. 내가 한때 술을 엄청나게 많이 마셨다는 사실을 슬쩍 흘리는데도 고민진은 그걸 농담으로 치부하곤 흐흐 웃어넘긴다. 그러니 나도 나직이 웃고 만다. 소반에 부침개를 담은 접시와 술잔 두 개를 내려놓을 때, 고민진이 원한다면 차를 마셔도 좋다며 선심을 쓴다.

“소하씨는 차를 좋아하잖아. 내가 목련차를 소하씨 덕분에 처음 알았잖아.”

고민진은 그러고서 우리가 서로 많이 다른 사람이라는 걸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왠지 그렇게 못박아둔다. 비가 잠시 그친 듯하다. 거실 창가에 고민진과 내가 소반을 내려놓고 마주보고 앉는다. 젖은 창밖 풍경에 겹쳐 보이는 고민진의 화장기 없는 얼굴이 새삼스레 고와 보인다.

“소하씨는 대휘가 영원한 짝꿍 같고 그래? 아니, 아니, 지금 대답하지는 마. 나는 내 동생도, 소하씨도 좋아. 지난해보다 올해가 좋고. 겨울보다는 봄이 좋고.”

이어서 나는 육 년 전 한국을 뜬 고민진의 전남편 이름이 함묘욱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함씨 성을 지닌 사람이 그리 흔치는 않다는 사실을 내가 완전히 간과했다는 걸 비로소 깨닫는다. 고민진의 말에 따르면, 함묘욱은 LA 한인타운에서 케빈이라는 이름으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있는 중년의 교포 2세와 재혼했고, 고민진과 마지막 연락이 닿았던 오 년 전에는 스포츠 마사지사로 일할 거라고 했단다.

“내가 더 좋아했어. 나랑 다른 사람이었거든. 서로 맞춰가려고 무지하게 노력했는데, 어느 날 둘 다 그만하기로 했어. 십대 때 처음 만나서 별별 꼴을 다 본 사이야. 미워하는 마음은 없어. 백년해로 못할 사인데, 서로 눈이 멀어 욕심을 많이 냈지. 아버지가 결혼을 뜯어말리려고 속을 많이 끓이셨어. 둘이 갈라서고 나니까 이 집을 나한테 물려주곤 고향으로 내려가셨고.”

고민진과 함묘욱은 구청 근처에서 일 년 남짓 사무용품점을 같이 운영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함묘욱이 권투 선수로 뛰다가 허리 디스크로 그만두고 이런저런 모색을 해보던 때에 찾은 돌파구 중 하나였다. 고민진에게는 남편의 행보를 가까이서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그 시기가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함묘욱이 워낙 낙천적인 사람이라서 타고난 기질이 예민한 고민진에게 힘이 되기도 했지만, 고민진은 그 거침없는 낙천성을 감당하는 데는 궁극적으로 제 역량을 뛰어넘는 담력이 필요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함묘욱은 속초 바다에서 익사할 뻔한 청년을 전력을 다해 구조한 적이 있다. 한편 귀농한 친구를 만나러 원주에 갔다가 친구의 새 트랙터를 과감하게 몰아 그곳 주민 두 명을 칠 뻔하기도 했다.

직박구리 한 마리가 담장에 내려앉는다. 이어 또 한 마리가 내려앉는다. 몸을 푸르르 푸르르 떤다. 서로 무슨 신호를 보내는 건지 삐이익 삐익 번갈아 운다.

“대휘가 요새 행복해하는 건 그냥 얼핏 봐도 아주 잘 보여. 한량이 일을 구했으니 말 다 했지.”

“한량치곤 넘치게 성실할걸요. 열심이에요.”

고대휘는 요사이 사촌이 운영하는 자전거 정비센터에 일을 배우러 다닌다. 공구의 위치를 익히고, 입고된 자전거를 닦고, 부품의 규격을 확인하고, 타이어를 교체한다. 짬짬이 온라인 강의로 자전거 정비사 필기시험도 준비한다. 그는 새로 시작하는 일과 사랑과 생활을 기록하려 일기도 쓴다. 이 모든 게 극적인 변화라는 생각에 고무되어 피로할 때도 나이보다 가볍게 움직이며 아이처럼 웃는다.

“우리 식구들은 좀 얼치기 같은 데가 있어. 독한 데라곤 약에 쓰려 해도 없다니까. 뭔가 순애보적인 유전자만 강력한가봐. 난 사실 걔가 공부를 더 했으면 좋겠어. 책임감을 느껴. 대휘가 클래식을 좋아하는지도 최근에야 알았어.”

나는 이제 고대휘와 내가 만난 건 고민진 덕분이라는 걸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힐 차례라고 느낀다. 첫 만남에 내가 넘겨받게 된 티켓 한 장이 고대휘가 자기 누나랑 조카를 위해서 준비한 선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일화를 화젯거리 삼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어서, 나는 고민진의 다음 말이 무엇일지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동생과 데면데면하게 지낸 지난날을 뒤늦게 깊이 후회하게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고대휘가 무슨 바람이 들어 갑자기 이러나 하는 생각만 커다래져서 대수롭지 않게 약속을 어겼다고 고백할 것이다. 어린 이삭이 좋아라고 신바람내며 따라나설 줄은 까맣게 몰랐기에 반성했다고 하고는, 티켓은 다 제 주인을 찾아간 것 같으니 잘되었다고, 그게 실은 솔직한 자기 속내라고 당부하듯이 덧붙일 것이다.

고민진이 소리 내지 않고 활짝 웃는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챈 모양이다. 이제 우리는 부연 설명과 재확인하는 절차 없이 지난 계절을 지긋이 바라볼 수도 있다는 데 소박한 합의점을 찾은 것 같다. 서로의 잔에 막걸리를 부어준다.

“맛있네요.”

음악 없이 술을 마시는 취향이 아니라서 그런지 저절로 그리운 멜로디들이 떠오른다. 내가 처음 작곡해 돈을 받고 판 곡은 <구름과 궤도>라는 제목의 미뉴에트였는데,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 어느 감독의 초기작 옴니버스영화에 쓰였다. 영화 속 두번째 작품의 주인공인 젊은 여성이 시골길을 걷다가 달려나가기 시작할 때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의 표정과 몸짓, 풍경과 빛, 바람의 방향과 음악의 변주가 맞물리면서 시공간이 다른 색과 힘을 입고 변화한다. 나는 그 장면을 정말 좋아해서 몇 번이나 반복해 보았다. 가슴에 통증을 느낄 만큼 강렬한 감정이 올라와 벅찼던 순간도 있다. 과거 어디엔가 내가 두고 왔거나 아니면 끝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할 날들의 향수 같은 게 자극되는 건지도 모른다.

“지난여름에 저 만취해서 새벽녘에 육교에서 굴렀어요. 정말이에요. 잘 보이려고 여태 참은 거예요. 이왕 이렇게 자리를 깐 거, 오늘은 좀 마실게요. 저한테 책임감을 느끼지는 마시고요.”

나는 막걸리 두 잔을 연달아 꿀꺽꿀꺽 들이킨다. 고민진이 놀라 입을 벌린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새어 나오면서, 좀더 짓궂게 굴어보고 싶다.

“엊그제 긁는 복권을 사람 수대로 네 장 샀는데, 제가 운이 얼마나 좋게요?”

“어머, 소하씨 주사가 있네. 그만 마시고 부친 거나 다 먹어.”

내가 지난여름에 육교 계단에서 낙상 사고를 당했다는 건 지어낸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엄연한 사실이고 목격자도 있다. 그런데 목격한 행인 둘의 진술이 서로 달랐고, 내 기억력도 훼손되어 동행인이 있었는지 하는 여부가 불확실해졌다. 왜 그 시각까지 술을 마시고 여기저기 돌아다녔는지, 무엇을 얼마나 힘들어하고 괴로워했는지, 어째서 가던 길을 자주 멈추며 혼자 발을 구르고 뒤를 돌아보곤 했는지 정확히 기억해낼 수가 없다. 다리에 힘이 풀려 발을 허투루 디딘 건지, 아니면 누군가 엉망인 나를 진창에 빠뜨리듯 아래로 떠민 것인지, 혹은 자진해 추락하려는 일말의 의지가 절묘하게 작용해 몸이 주르륵 미끄러져 내린 건지 세세하게 알아낼 수가 없다. 나는 다른 기억들도 일부 잃었다. 나라는 사람을 이러저러하게 규정할 만한 크고 작은 의미의 상호작용 같은 것들이 기억력과 함께 길바닥에 함부로 버려졌을 것이다. 나는 여러모로 지쳐 있었기에 세상과 물정과 사람과 스스로에 대해서 더 복잡해지는 게 싫었다. 추정할 수 없는 것들을 더는 집요하게 파고들지 않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곧장 금주에 돌입했고 물리치료를 받으러 재활병원에 다녔다. 체중도 생각의 무게도 전보다 가벼워졌다. 언제든 더 망가지거나 완전히 끝장날 수도 있다는 자각이 생겨난 까닭일 것이다. 돌아보면 아찔해지기도 하지만. 이내 분명한 해방감이 찾아온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내게 용기를 준다.

여동생은 그런 나를 두고 잔소리가 나날이 심해지고 있다. 자주 잘못된 길을 선택하는 것 같다고, 번번이 사람을 잘못 본다고, 괜한 일들에 마음을 쓰며 에너지를 낭비하고 인생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냐면서 회의하고 근심한다. 다 언니를 생각해서 그러는 거지, 습관처럼 덧붙인다. 이 과열된 사랑을 물리치는 게 숙제처럼 느껴지는 걸 보니 나를 괴롭혔던 과거의 다른 인연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을 것 같기는 하다.

“대휘가 사귀었던 사람 중에 연상도 있었는데, 소하씨 나이가 제일 많아.”

어라. 부지불식간에 고민진이 먼저 마음놓고 취해버린다.

“돈도 좀더 많을걸요. 내가 운이 얼마나 좋게요?”

나도 술이 오랜만이라 비 오는 날의 정취에 취해가는 중이다. 아무려나. 자세가 흐트러진다.

날이 개는가 싶다가 다시 하늘이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고대휘가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온다. 조명이 떨어진 벽면의 수조 가득히 은빛 물고기들의 행렬이 반짝거린다. 수조 앞에서 헤엄치는 듯한 동작을 과장해 보이며 함빡 웃는 고대휘와 함이삭의 얼굴에도 빛이 일렁이고 있다. 눈과 얼굴과 팔다리에 광채가 돈다. 보고만 있는데도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내가 오늘을 선택하고 획득했다는 뿌듯함이 차오르며 잠시 충만해진다. 우리 모두를 비추고 움직이는 원대한 힘이, 마술 같은 힘이 있다는 걸 느낀다.

 

더 많은 사랑과 빛이 필요하다.

간결하고 단순한 행복을 찾아내길 빈다.

 

                                                     *

 

여동생에게서 선물받은 분홍색 매듭 공예품이 무척 예쁜데, 방 어디에도 걸어둘 데가 마땅치 않아 보인다. 그래서 주방과 거실 사이 벽면에 늘어뜨려보기로 한다. 매끄러운 나무 막대에 매달린 두꺼운 면 로프들이 다이아몬드 패턴을 이루며 길게 늘어진다.

“나도 꾸미는 거 좋아하는데.”

함이삭이 강아지처럼 졸졸 쫓아다니며 종알거린다. 지금 가지고 있는 수영모는 새까매서 멋이 없고 머리통에도 꽉 조여서 불편하단다. 자기도 꾀꼬리처럼 금색이면 좋겠다고 한다.

“꾀꼬리?”

나는 동작을 일단 멈추고 이삭을 내려다본다.

“저기 있잖아요.”

함이삭이 가리키는 소파 위에는 내가 보다가 놓아둔 올리비에 메시앙의 피아노 독주곡 모음집 <새의 카탈로그>가 있다. 표지에 새 여러 마리가 그려져 있는 악보집이다.

“생일에 수영모자 사줄게. 금색에 가까운 노란색으로, 잘 찾아볼게. 나한테 시간을 좀 줘.”

함이삭이 웃는다. 바라는 걸 자주 말하면 확실히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이가 근래의 경험에 비추어 파악하고 있다. 나는 함이삭이 더 떠들게 둔다. 처음 봤을 때는 이렇게 재잘대는 아이인 줄 몰랐다.

오름아트홀 옆의 스타벅스에서 고대휘의 경량패딩을 끌어안고 따뜻한 우유를 마시던 함이삭은 낯을 많이 가렸고, 매우 조용했다. 무대가 잘 보이는, 앞에서 네번째 열 맨 왼쪽 끝 좌석이 내 자리였다. 내 옆으로 함이삭, 고대휘 순으로 앉아 무대에 오른 두 피아니스트를 맞았다. 함이삭은 아이답게 초반에 호기심을 반짝였으나 인터미션 전에 잠이 들었다. 완전히 몸을 이완하고 폭 잠이 든 아이를 사이에 두고 고대휘와 내가 서로 눈을 맞추며 웃음을 나누었다. 그날 고대휘가 대학의 진입로에서 잃어버렸다가 찾은 물건이 무엇인지 나는 그뒤로 물어 확인한 적이 없다. 잠든 아이를 사이에 두고 고대휘와 눈을 맞출 때 흘러나온 음률이 내가 오래 구한 평화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 소설의 제목 '양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고'는 바흐의 칸타타 208번 중 아홉번째 곡으로, 고대휘와 송소하가 처음 만난 날 연주회장에서 피아노 듀오로 편곡, 연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