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소작 (1)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내비게이션 음성. 아버지는 시동을 끈 뒤 창문을 살짝 내리고 눈을 감았다. 창 사이로 새는 찬바람을 조심스레 호흡하다 보니 어느새 그녀가 창문 너머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내리는 대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는 반대편 문을 통해 옆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내 앙다문 입과 힘을 풀어 늘어뜨린 팔을 주시하다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나는 방금 잠에서 깨어난 척 깊게 숨을 토해내며 말했다. 오셨어요? 그녀는 희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래. 할미다.

할머니의 자세를 따라 허리를 세우고 가슴을 폈다. 할머니는 목에 두른 목도리를 풀어 내 무릎에 얹어두고는 중얼거렸다. 조기, 고사리, 도라지에 대추. 밤과 유과도. 설이 한 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할머니의 중얼거림이 멈추었음에도 아버지가 출발하지 않자, 할머니는 운전석을 손등으로 두드렸다. 아버지는 그제서야 엑셀을 밟았다. 부드럽게 울리는 엔진소리, 차창 너머로 스쳐지나가는 신도시의 풍경들. 무언가 분리된 기분. 나는 도로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한산하네요.

평일에 노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냐.

할머니는 아버지의 뒤통수를 보며 덧붙였다.

네 할아버지가 사람을 잘못 봤지. 장서방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나?

아버지는 아무런 대꾸 없이 핸들을 꼭 붙잡았다. 손등에 박인 굳은살이 덜렁거리며 떨어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저 굳은살. 사라지기는 하는 건가. 생각하며 조금 열려 있던 창문을 닫았다. 차 안에 적막이 흘렀다. 할머니는 신도시의 풍경을 눈에 채워넣었다. 고구마가 뿌리를 뻗어나가던 땅 위에는 영화관이 생겼고 고추와 가지가 열리던 밭 위에는 아울렛이 들어섰다. 할머니는 그 사실을 항상 떠들고 다녔다. 이 모든 것을 견디는 이 땅이 얼마 전까지 그녀의 땅이었다고.

아버지는 소작을 치던 농부의 아들이었다. 그 땅의 주인이던 외할아버지는 두렁에 앉아 남의 밭만 훔쳐보던 어린 아버지에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았고, 아버지가 성인이 되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후 아버지는 외할아버지를 도와 소작농들을 관리했다. 그러나 외할아버지의 병환과 함께 3기 신도시 계획에 외할아버지 소유의 토지 대부분이 포함되면서, 아버지는 직업을 잃었다. 그뒤 아버지는 대부분의 시간을 외할머니와 함께 보냈다. 아버지는 사위가 아니라 아들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걸 용납하지 못했다. 매일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으며 자주 할머니를 탓했고 그보다 가끔 토했다. 대부분 외할머니 혹은 외갓집에서의 식사 이후였다. 아버지는 원치 않는 식사를 한 뒤면 남몰래 토했다. 화장실일 때도 있었고 인적 드문 수풀 뒤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식사를 거부한 적은 없었다. 언제나 고개를 꼿꼿이 들고 그릇을 비웠다.

아버지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구토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지 않았다. 불규칙적으로 들썩이는 어깨와 팔뚝을 타고 흐르는 타액. 그런 건 나만 알아야 하는 비밀이었다. 나는 종종 그걸 유대라는 이름으로 읽어냈다. 아버지는 종종 말했다. 이건 일종의 가보 같은 거라고, 누군가 알게 된다면 그건 아직 세상에 없는 네 아들이어야 할 거라고. 아버지는 항상 나에게 어떤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었으나, 나는 그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외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서 봤던 가능성을 내가 짐작할 수 없는 것처럼.

 

*

 

외가 식구들은 대체로 살집이 있는 편이었다. 이모들은 만나기만 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먹고 치우고 다시 상을 차리며 보냈다. 갈비를 먹기 위해 모였다가 주문한 떡을 나누며 헤어지는 식이었다. 그들은 속쓰림과 소화불량을 호소하면서도 양을 줄이지 않고 소화에 좋다는 매실액과 나물을 추가로 주문하곤 했다. 아버지는 외가 식구들이 없는 자리에서 그들이 미련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자주 흉봤고, 그럴 때마다 항상 내게 미련해지지 말라고 당부했다. 미련하게 먹지 말라고. 몸이 굼뜨면 마음도 굼떠지고 그러면 결국 말 그대로 우리 안의 돼지가 되는 거라고.

이 집안의 마지막 돼지는 몇 년 전, 외할머니의 생신을 맞아 도축되었다. 할아버지가 병석에 누워 있을 때였다. 다른 사촌들은 돼지를 두려워했으나 나는 아니었다. 돼지의 등에 손을 얹으면 따뜻하고 냄새나는 피부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돼지는 내가 손을 얹거나 말거나 고개를 아래로 내리깔고 사료만 먹었다. 원래 그런 녀석은 아니었는데, 같이 지내던 돼지들이 점점 사라지니 활력을 잃었다는 게 할머니의 설명이었다. 그날 할머니는 내게 슬프진 않냐, 물었고 나는 어차피 제 것도 아닌데요 뭘, 할머니 거 아닌가요, 대답했다. 그러자 외할머니는 살짝 감탄하며 내게 강단, 선우 네가 강단이 있구나, 말했다.

그 돼지는 외할머니가 오래전부터 거래해온 도축업자가 부위별로 깔끔하게 해체했다. 그는 외할머니의 생신날 새벽부터 찾아와 고기를 날랐다. 부산스러운 소리에 일찍 일어난 나는 외할머니와 함께 그를 맞이했다. 외할머니는 그와 반갑게 안부를 나누었는데 이런 이야기가 들려왔다. 어르신이 안 계시니 일이 많이 줄었다고. 신도시에 가게라도 얻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고. 외할머니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래, 이제 떠날 때가 됐지. 대답하며 명함 하나를 건넸다. 도축업자는 명함을 손에 꼭 쥐고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는 가만히 서서 아침이 밝아오는 걸 지켜보다가 자리를 떠났다. 도축업자가 떠나고 나자 언제 일어났는지 아버지와 이모부들이 졸린 눈을 비비며 천천히 걸어왔다. 그들은 잠도 깨지 않은 채 할머니의 지시 아래 고기를 마당으로 날랐다. 아버지는 앞장서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뒤를 쫓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곁에서 고기가 옮겨지는 걸 구경하다가 아버지가 다가왔을 때 물었다.

그런데 아버지.

할머니가 있는데, 왜 어르신이 없다고 해요?

없지…… 이놈아. 할머니가 대답을 가로챘다. 어르신은 네 할아버지를 말하는 거다. 이 동네에서 어르신, 하면 다 네 할아버지를 찾는 거야. 그런데 네 할아버지는 지금 몇 해째 병원에서 죽네 사네 하고 있지 않느냐. 아버지는 대답하려 반쯤 벌린 입을 다물고 고기를 날랐다. 어느덧 해가 완전히 떠올랐다. 마을 전체를 감싼 새벽안개는 햇빛의 경계를 따라 천천히 산을 향해 물러났고 햇살을 받은 할머니의 얼굴에는 주름을 따라 그늘이 드리웠다. 할머니는 해를 바라보며 허리를 길게 뽑아 폈다. 늙은 허리가. 곧고 길쭉이. 아주 천천히. 어느 오래된 목조건물의 기둥처럼. 무른 줄만 알았던 몸속의 굳은 심지가 드러나는 순간.

늦은 오후부터 마당에서 불을 피우고 솥뚜껑을 달궜다. 이모들은 구석에서 채소를 씻었고 이모부들은 연기 가운데에 서서 고기가 타지 않게 눈을 부릅떴다. 아이들은 식탁에 모여 앉아 고기를 기다렸다. 할머니는 대문 앞에서 집안의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접시 위로 쌓이는 잘 익은 고기들은 아이들이 순식간에 먹어치웠다. 이모부들은 쉴새없이 고기를 구워 나르며 각자가 손에 쥔 집게로 솥뚜껑 위의 고기를 한 점씩 집어먹었다. 나는 별로 먹지 않았다. 아버지는 고기를 먹지 않는 내게 다가와 그것 또한 책임지는 태도라고 속삭이며, 타지 않은 고기를 탄 고기들 사이에 슬쩍 밀어두었다.

해가 저물자 마을의 노인들이 찾아왔다. 노인들은 직접 담근 막걸리나 밭에서 캔 고구마 같은 걸 할머니께 선물하고 고기를 얻어 갔다. 그들은 할머니 품에 안긴 아이의 터질 듯한 볼을 꼬집고는 문 앞에 서서 크게 손을 흔들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문 너머 마을의 전경을 응시했다. 그때, 문밖에서 개 한 마리가 달려왔다. 맹렬한 기세로 대문을 넘자마자 목에 매여 있던 목줄이 팽팽해져 바닥에 고꾸라졌다. 뒤이어 들어온 노인 하나가 그 개의 목줄을 붙잡고 있었다.

강자야.

형님이 많이 안 좋으시다며?

이모들은 그를 아는 눈치였다. 할머니는 입을 다문 채 노인을 쏘아보았다. 노인은 할머니의 시선을 무시한 채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는 마당 구석의 화장실 문에 목줄을 단단히 묶어두며 말했다.

얘 이름은 아직 없다. 네가 지어줘. 예전에 형님이 얻어왔던 개 있지?

그놈 새끼다. 내 마땅히 줄 게 없어서……

여기까지 말하고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마당을 둘러보았다. 이모들과 아이들이 둘러앉은 식탁, 불 앞에 선 이모부들. 이모부들은 그를 경계하면서도 조금씩 뒤로 주춤거렸다.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하여간 남자복은 많지.

그 말을 남기고 노인은 떠났다. 그의 아들로 보이는 중년 남자 하나가 들어와 고개를 꾸벅 숙이고 그를 부축했다. 노인이 비틀대며 아들의 손에 의지해 문밖으로 나서자마자 마당이 웅성거렸다. 이모들은 노인네 드디어 노망이 났는지 왜 남의 집에 와서 시비를 걸고 가냐,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들은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집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품 안의 아기를 막내 이모에게 건네며 읊조렸다.

소작이나 치던 놈이……

할머니는 묶어 놓은 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침 흘리며 꼬리를 흔들던 개는 할머니의 손길이 닿자마자 순식간에 배를 까뒤집었다. 할머니는 개의 배를 쓰다듬으며 노인이 떠난 자리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분명 이글거리던 할머니의 눈빛이 차츰차츰 사그라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시선을 돌려 눈치를 살피는 아이들과 이모부들을 천천히 훑어봤다. 집안 모두가 할머니의 시선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