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소작 (2)

할머니가 이전에 살던 집을 떠나 신도시에서 맞는 네번째 구정이었다. 구정 전야에 세배를 올리고 받아든 봉투에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 있었다. 할머니 대신 돈봉투를 전한 막내 이모는 할머니가 대학 합격한 거 축하한대, 덧붙였다. 할머니가 자리에 앉아 사촌들을 바라보며 자네들이 자식 농사 하나만큼은 참 잘 지었어. 모난 데가 없으니, 중얼거리자 큰이모부는 크게 웃으며 다 장모님 텃밭에서 자란 거죠, 대답했다.

돈봉투를 손에 들고 아버지를 바라보자 아버지는 시선을 피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봉투를 전달한 뒤에 창가에 바싹 붙어 앉았다. 아버지의 옆자리였다. 신축 아파트라 그런지 외풍이 들지 않아 창가였음에도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아파트 앞에는 매끈한 외관의 아울렛이 들어섰고 뒤로는 인공 폭포가 조성된 공원이 펼쳐져 있었는데 원래는 전부 밭이었다. 할아버지가 죽고 난 뒤에 할머니의 몫이 된 땅. 고구마가 자라고 비닐하우스가 빽빽하게 들어차 있던 곳 위에 아파트와 아울렛이 지어졌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얼마간 아찔하기도 했다. 이런 집은 얼마 정도 할까요. 아버지에게 속삭였는데 그는 뚱한 표정으로 너는 살 수 있을 거야. 꼭 사라. 네 명의로. 대답하곤 눈치를 살폈다. 나는 휴대폰으로 이 아파트의 시세를 검색했다. 평생을 일해도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을 만큼 아득한 액수였다.

창문 너머, 강이 있는 방향에서 새해를 기념하는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밤하늘에 새겨지는 불꽃들은 일순간 번쩍이다 사라졌다. 거실 한편에 모여 앉은 아이들의 얼굴에는 기름기가 번들거렸다. 이 집안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비만이었다. 거실 가운데에서는 이모부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그들은 매년 남은 명절음식을 안주 삼아 취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아버지는 예외였다. 아버지는 창밖, 먼 곳의 불꽃에 매료되어 있었다. 매년 큰이모부는 아버지에게 끈질기게 술을 권유했으나, 아버지는 한사코 거부했다.

아들도 다 키웠는데, 이제 한 잔 정도는 괜찮지 않아?

큰이모부였다. 아버지는 나와 술상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모들과 대화를 나누던 할머니 역시도 이쪽을 흘긋 바라보았다. 나는 술상 위에 올라가 있는 안주들을 살폈다. 다른 건 다 괜찮았지만 아까 먹다 남긴 붉은 동태탕이 문제였다. 아버지는 이전에 동태탕을 먹고 토한 적이 있었다. 오랜 기간 구토를 해와서 정확한 시기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할머니가 신도시로 이사한 뒤였을 것이다. 신도시는 할머니가 이전에 살던 곳보다 교통이 편리했다. 자연스레 할머니는 이전보다 더 자주, 멀리 떠나려고 했다. 따라서 아버지는 못 먹는 걸 먹어야 하는 일이 늘었고 그만큼 구토도 많이 했다. 아버지는 몇 해 전과 비교해 몰라보게 늙어 있었다. 나는 잽싸게 큰이모부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다 큰 게 저면, 제가 마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말하자 주방에서 이모들과 떡을 집어먹던 엄마는 말없이 내 앞에 술잔을 내려놓았다.

할머니는 조금 당황하면서도 반기는 눈치였다. 너 먹고 싶은 거 없느냐, 좋은 거 사주마, 말했고 나는 식탁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죠, 제가 할머니 음식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할머니는 크게 웃으며 지팡이를 짚고 일어서서 말했다.

역시 선우 네가 강단이 있구나.

그러자 뜻밖에도 아버지가 몸을 일으켰다. 그래도 처음은 제가 가르쳐야 할 것 같아서요. 아버지는 나를 밖으로 이끌었다. 단호한 몸짓이었다. 거실을 가로지르는 동안 이상하게 적막이 흘렀다. 아무도 밀지 않았지만 스스로 열리는 문을 보는 것처럼. 모두의 시선이 아버지를 향해 있었고 현관문이 닫히기 직전, 누군가 말했다. 결혼할 때만 해도 저렇게 용감했는데 말이야.

문이 닫힌 뒤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는 복도의 센서등이 꺼지고 나자 숨을 죽이고 움직였다. 움직이자마자 등뒤에서 센서등이 다시 켜졌고, 나와 아버지가 나아가는 방향으로 길게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버지와 함께 공원을 천천히 걸었다. 꽤 늦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들이 많았다. 아버지의 얼굴은 이전까지 본 적 없는 형태로 일그러져 있었다. 아버지가 손가락으로 인공 폭포를 가리키며 저기까지 가는 건 어떠냐, 물었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경사가 가파르고 공기가 차가웠다. 폭포의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는 완전히 지쳐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아버지가 숨을 고르기를 기다리며 고개를 들었다. 여전히 먼 곳에서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폭죽이 올라가고 있는 곳을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저기부터 여기까지 전부 장인어른 땅이었지. 나도 그분처럼 되고 싶었다. 언젠가는.

아버지는 외할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를 자주 회상했다. 그중 특히 내가 새겨들었던 건 그의 투병생활이었다. 외할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진 적이 있었다. 온 가족이 찾아 나섰고 그는 의외의 장소에서 금방 발견되었다. 외할아버지를 찾다 허기를 느끼고 호떡을 사 먹기 위해 시장을 찾은 큰이모부가 시위 행렬을 이끄는 외할아버지를 발견했다. 그는 붉은 머리띠를 하고 ‘평당 40만원이 웬 말이냐! 주민 죽이는 헐값 보상 당장 중단하라!’라는 글씨가 쓰인 피켓을 들고 있었다. 외할아버지는 해가 저물 때까지 맨 앞에서 시위를 이끈 뒤에 제 발로 걸어서 병실로 복귀했다. 그뒤 그의 상태는 급속도로 나빠졌다. 막내 이모는 그의 손을 붙잡고 아빠, 왜 그랬어, 하고 물었는데 외할아버지는 점점 꺼져가는 눈빛으로 말했다.

다 니들 돈이야 그게……

계속된 시위 끝에 토지보상금은 큰 폭으로 인상되었고 외할아버지는 그해를 넘기지 못했다. 그는 강원도 깊숙한 곳의 선산에 묻혔다. 외가의 선조들이 대대로 묻혀 있는 곳이었다. 선산은 당시에 평당 팔만원으로 평가됐고, 지금도 크게 오르진 않았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외가의 가훈을 들을 수 있었다.

成人이 되어라.

추운 겨울이었고, 내 곁에는 사촌들이 늘어서 있었다.

장례 이후 모두가 감기를 심하게 앓았다.

아버지는 최대한 그의 생명력을 묘사하려 노력했다. 투병생활 중에 그렇게 힘을 내는 노인도 있다면서.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생명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언제나 병석에 누워 있었고 피부는 검었으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는 유산에 관해 이야기할 때만 정신을 차렸다. 그러니까 죽은 뒤의 일들만 말하던 가망 없는 사람. 그는 할머니에게 분할은 무조건 공평해야 할 것이라고 일러두며 덧붙였다. 얼마간 현금은 꼭 쥐고 있으라고. 그래야 빠지는 애들 없이 죽을 때까지 잘한다고. 그러나 할머니는 병실을 나오며 선언했다. 나는 그럴 생각 없다. 내가 공평하게 살질 않았는데. 공평은 죽을 놈의 공평.

어느새 불꽃놀이가 끝나 있었다. 불꽃이 가득했던 자리는 뿌연 연기만 무성했다. 나는 조금 더 가까운 곳, 신도시에 빽빽하게 들어선 아파트 단지를 향해 눈을 돌렸다. 모든 집이 비슷한 빛을 내뿜고 있었으나 나는 그 빛 중에서도 어느 빛이 할머니의 집에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버지는 겨울바람이 추운지 몸을 웅크렸다. 아버지는 손등의 굳은살을 긁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선우야, 그 돈 안 받으면 안 될까?

무슨 돈이요?

아까…… 너네 할머니가 등록금 하라고 준 돈. 

 

*

 

아버지는 둘만 있을 때면 외할머니를 ‘너네 할머니’라고 불렀다. 처음 아버지의 구토를 본 건 외할아버지의 장례가 끝난 겨울이었다. 할머니는 한겨울에 장례를 치르며 감기에 걸린 아이들을 온천으로 보냈고 이모들에게 통솔을 맡겼다. 감기에 걸리지 않은 이모부들은 집으로 불러들였다. 엄마는 이모들과 함께 온천으로, 나는 아버지와 함께 그 집으로 향했다. 나도 감기를 심하게 앓았으나, 아버지가 사촌들과 온천에 가는 걸 반대했던 탓이었다. 할머니는 그날 저녁으로 아주 오랫동안 끓인 보신탕을 내놓았다. 이모부들은 모두 감탄하며 허겁지겁 보신탕을 먹어치웠다. 하나뿐인 국자로 모두가 돌아가며 시뻘건 국물을 접시에 담았다. 할머니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다가, 아버지를 지목하며 물었다.

선우 아범은 여전히 이런 걸 못 먹나?

아버지는 늙으니 입맛이 바뀌던 걸요, 대답하고는 땀을 뻘뻘 흘리며 붉은 국물과 고사리를 연신 입으로 집어넣었다. 이모부들도 마찬가지였다. 한 숟갈이라도 더 많이 입에 쑤셔 넣으려고 경쟁이라도 하는 듯했다. 나에겐 큰이모부가 근처 시장에서 포장해 온 통닭이 주어졌다. 내가 통닭을 반쯤 먹었을 때, 이모부들은 보신탕을 모두 비웠고 각자 외할머니에게 다음 휴가에 관해서 설명했다. 모두 지난주에 치른 장례는 이미 잊은 듯했다. 어머님 이번에는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아유 형님, 이번엔 저희가 모시게 해주세요, 한적한 펜션 하나를 찾았는데…… 그러면 같이 모실까요…… 이런 식의 대화는 끝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입은 반쯤 벌어져 있었으나 끝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통닭의 마지막 뼈를 입에서 뽑아냈을 때, 할머니는 휴가는 다음에 같이 의논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널린 그릇들은 설거지하지 않고 포대에 모아 버렸다. 수저도 탁자도 마찬가지였다.

집이 정리되는 동안, 나는 할머니를 도와 곳곳에 퍼져 있는 할머니의 짐을 모았다. 그 식사를 마지막으로 할머니는 그 집을 떠나 신도시 아파트의 입주일을 기다리며 큰이모부의 집에서 겨울을 날 예정이었다.

짐을 모두 챙긴 뒤 그 집을 나오며 할머니는 대문에 자물쇠를 걸었다. 철물점에 따로 주문한 물건이었다. 아버지만 숙연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할머니는 큰이모부가 모셨고 나머지는 이모와 아이들을 데리러 온천으로 향했다. 아버지는 온천으로 가다 말고 갓길에 차를 세우더니 허리를 꿀렁거리며 한데 덩어리진 붉은 음식물을 토해냈다. 아버지의 손은 붉은 침으로 범벅이 되었고 손등에는 치아 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구역질은 속에 남은 개고기를 전부 토해낼 때까지 계속되었다. 아버지가 가리는 음식이 많다는 사실도, 그 사실을 ‘너네 할머니’에게는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