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성 아파트의 주차장은 윤재가 묵고 있는 101동 4층에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조경수들과 띄엄띄엄 주차된 차들 사이로 102동 노인이 만든 구조물 네 개가 간신히 윤곽을 드러냈다. 큐브, 망루, 캣 타워, 천칭. 윤재는 콜라 작가가 붙인 이 직관적인 이름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처럼 어두운 새벽에는 앙상한 조경수들 사이에서 노인의 작품을 분간하는 데 꽤 도움이 됐다. 둔탁한 정육면체 프레임을 가진 1호. 높게 치솟은 2호. 정글짐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3호와 고고하게 양팔을 흔드는 4호. 모두 버려진 의자와 폐자재를 조립해 만든 구조물이었다.
주차장 끝에 있는 놀이터를 보기 위해 싱크대 위로 몸을 뻗었다. 부엌 창에 닿은 이마로 늦겨울의 한기가 전해졌다. 어제 그가 구해온 베이지색 패브릭 소파는 미끄럼틀 옆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소파를 차에 싣고 돌아오던 길 내내 윤재는 들떠 있었다. 버려진 물건치고 상태가 무척 훌륭했으므로 누군가 먼저 채가기 전에 찾아낸 게 운명 같기도 했다.
시간은 이미 새벽 두시를 넘기고 있었고 노인은 나올 기미가 없었다. 패브릭 소파는 선택받지 못했다. 며칠 전 빈백에 이어 벌써 네번째였다. 허탈했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라고 여겼다. 노인 역시 윤재만큼이나 최선을 다해 의자를 선별하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우선은 오늘 장 주무관에게 댈 핑계부터 생각해내야 했다.
*
콜라 작가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세 잔과 함께 이번에도 도넛을 추가로 주문했다. 혼자만 먹기는 눈치가 보였는지 물어도 보지 않고 윤재와 장 주무관 몫까지 꼭 세 개를 시켰다.
“계산은 나중에 오시는 분이 해주실 거예요.”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직원도 군말 없이 돌아서서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콜라 작가는 민망한 듯 윤재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청령시에 내려와 함께 작업한 지도 벌써 세 달이 지났지만 민망해하면서도 늘 뻔뻔하게 구는 콜라 작가의 속을 윤재는 여전히 파악하기 어려웠다. 윤재는 남쪽 골목을 향해 시원하게 나 있는 통창 앞에 먼저 자리를 잡았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카페는 손님 하나 없이 한적했다.
“저 사람 좀 재밌지 않아요?”
뒤따라 앉은 콜라 작가가 창밖을 가리켰다. 반바지 차림의 한 남자가 슬리퍼를 끌며 골목 끝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계절과 맞지 않은 옷차림은 물론이고 한껏 들뜬 얼굴 탓에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 남자는 곧장 맞은편에 있는 부동산 문을 밀고 들어갔다. 남자의 발걸음 뒤로 흩어지는 눈을 보며 윤재는 언젠가 장 주무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별장도 아니고 세컨드 하우스라나? 머리에 피도 안 말라 보이는 애들이 돈은 다들 어디서 나는 건지 모르겠어요.
최근 들어 원도심의 빈집 매매를 문의하는 외지인들이 많아졌다며 못마땅한 말투로 중얼대던 그는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췄다. 저희야 누구든 와주기만 해도 고마운 일이긴 한데……
윤재가 청령시에 내려와 처음으로 원도심을 둘러봤던 때는 세 달 전인 11월이었다. 최근 오 년간 인구감소율이 가장 높은 도시라든가 조만간 인구 10만이 깨질 수 있다든가 하는 어두운 전망을 내놓은 기사들을 읽고 온 터였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원도심은 사람들로 붐볐다. 낡은 주택을 더 낡아 보이게 개조해 연 로스터리 카페나 조향 체험 공방 같은 곳들이 골목마다 관광객을 맞았다.
하필 주말이라 이런 거지, 평일엔 휑해요.
윤재와 콜라 작가에게 길을 안내하던 장 주무관은 오해하지 말라는 투로 말했다. 그럼에도 윤재는 청령시가 그의 의자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적합한 곳인지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여름 윤재는 청령시 도시재생과의 문자를 받고 나서야 언젠가 별 기대 없이 써 넣었던 ‘청년 활동가 지원 사업’의 지원서를 기억해냈다. 젊은 예술가와 활동가들에게 11월부터 네 달간 현지 숙소와 활동비를 제공해주는 프로그램이었다.
엔지니어 출신이셔서 그런가? 윤재 샘 지원서는 담백해서 좋더라고요. 왜 보통 예술한다는 사람들은 좀 난해하잖아요.
장 주무관은 윤재의 지원서를 유난히 마음에 들어했다. ‘엔지니어 출신이셔서’란 말이 그리 달갑지 않았지만 가볍게 웃고 넘겼다. ‘의자 프로젝트’라는 제목과 프로젝트 개요까지, 지원서에는 그의 초기 논문 계획서 내용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1. 외지고 방치된 도심 공터에 의자들을 놓아둔 후 사람들이 이용하는 행태를 기록합니다. 공간이 변화해가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영역을 확장해나갑니다.
2. 의자는 그 도시에서 버려진 것들만 활용합니다. 쓸모를 잃은 것들을 이용해 도시가 자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지원 사업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문자를 확인한 윤재는 곧바로 휴학을 신청했고 청령시로 내려왔다. 당시 그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서, 102동 할아버지는 만나보셨어요?”
뒤늦게 도착한 장 주무관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윤재에게 물었다. 양손엔 카페 직원에게 받아온 쟁반이 들려 있었다.
“요즘도 계속 작업하러 나오시질 않네요. 뵙고 싶어도 뵐 수가 없어요.”
“기다리지만 말고 집으로도 찾아가보시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선생님. 이제 몇 주만 지나면 3월이에요.”
평소엔 ‘윤재 샘’이라고 부르다가도 좀 딱딱하게 굴어야겠다 싶으면 어김없이 ‘선생님’이었다. 장 주무관이 한숨을 쉬며 커피와 도넛을 각자 앞에 하나씩 놓아주었다. 윤재는 조심스럽게 다시 말을 꺼냈다.
“촬영 날짜를 좀 미루는 건 어떠세요? 작품이 네 개뿐이라 화면이 좀 비어 보일 것 같기도 하고요.”
동조를 구할까 싶어 콜라 작가를 슬쩍 쳐다봤지만 그는 여전히 창밖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는 PD님 통해서 이미 다음달 방송 날짜 다 잡아놨어요. 그리고 말씀드렸잖아요. 저희 시장님도 샘 프로젝트에 관심 많이 갖고 계시다는 거.”
달래보려는 건지 그새 호칭이 ‘샘’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답답한 건 윤재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의자 프로젝트가 정말 그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조차 확신이 없었다. 콜라 작가가 SNS에 찍어 올린 사진들은 모두 102동 노인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구조물이었다.
애초에 윤재가 기대했던, 그러니까 원도심 공터에 놓아둔 의자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는 이상적인 그림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골목 구석구석에 설치해둔 의자들은 어느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다. 그가 받은 피드백이라곤 장사에 방해되니 의자를 치워달라는 장 주무관을 통한 민원이 전부였고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윤재는 의자들을 전부 회수할 수밖에 없었다. 해성 아파트 놀이터에 잠시 모아둔 의자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버려진 의자 구하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네요.”
“꼭 의자일 필요도 없잖아요. 안 그래요?”
윤재의 말에 이번엔 장 주무관이 콜라 작가를 쳐다보며 동의를 구했다. 윤재의 말엔 딴청만 피우던 콜라 작가가 이번엔 난처한 웃음을 지으며 끄덕였다.
“윤재 샘 기획에서 좀 벗어나게 된 건 저도 안타깝지만, 지금은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셨으면 좋겠어요. 일단 할아버지 인터뷰 요청부터요.”
장 주무관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윤재의 귀가 화끈거렸다.
“바쁘시면 오늘은 먼저 가보셔도 돼요. 저는 작가님이랑 따로 할 이야기가 있어서.”
장 주무관이 말을 마치자 콜라 작가는 기다렸다는 듯 서류 꾸러미와 태블릿 PC를 꺼냈다. 해성 아파트의 홍보 포스터 시안들이 테이블에 펼쳐졌다. 노인이 만든 구조물 사진 위로 여러 버전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의자는 항상 새벽을 틈타 사라졌다.
사라진 의자 중엔 윤재가 서툰 솜씨로 직접 수리한 것도 있었다. 어디에 쓰려고 가져간 걸까. 처음엔 화가 났지만 점차 범인에 대한 궁금증이 더 커졌다. 어쨌든 처음으로 윤재의 의자에 관심을 준 사람이었으니까. 유행이 지나 이제는 촌스러워 보이는 안락의자를 가장 먼저 가져간 걸 보면 어디에 팔아버리려는 의도 같진 않았다.
하루 날을 잡아 창문 앞에 서서 새벽을 꼬박 지새운 끝에 범인을 볼 수 있었다. 새벽 두시가 조금 안 된 시간, 102동 7층 3호 라인의 거실 등이 켜졌다. 잠시 후 공동현관을 나선 노인은 주차장을 가로질러 놀이터에 있는 삼각 다리 의자를 집어들었다. 검정색 경량 패딩과 양손에 낀 회색 목장갑, 하얗게 센 정수리. 창고로 들어간 노인은 한참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고 윤재는 깜박 졸고 말았다. 해가 밝고 나서야 들어가본 창고에는 1호가 서 있었다.
윤재는 1호를 보며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무심하게 건네받는 지지와 위안 같은 것. 이후로 윤재는 계속 의자를 구해 놀이터에 가져다놓았고 두 사람의 협업은 단 한 번의 마주침도 없이 4호까지 이어졌다.
우리만 보기 아깝잖아요. 그리고 이런 건 탁 트인 데서 거리를 두고 봐야 제대로 보여요.
노인의 두번째 작품이 모습을 드러내던 날, 콜라 작가는 혼자 끙끙대며 1호와 2호를 주차장 한가운데로 옮겼다. 카메라를 메고 하릴없이 쏘다니는 게 전부인 그가 노인의 작업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 모를 일이었다. 주차장에서 찍은 작품 사진은 콜라 작가의 SNS에서 꽤 좋은 반응을 얻었고 게시물엔 청령시와 해성 아파트의 위치가 태그됐다. 그 덕분인지 최근엔 마을버스를 타고 아파트까지 찾아와 노인의 작품을 찍어가는 사람들도 드물게 생기고 있었다.
관이 나서는 모양새로 비춰지면 욕먹기 십상이라서요. 두 분이 청령시 활동가 프로그램에서 만났다는 이야기만 살짝 흘려주셔도 충분해요.
장 주무관은 알고리즘을 타기 시작한 지금이 적기라며 방송 촬영을 붙이자고 했다. 지방의 조용한 원도심. 주민의 절반이 떠난 작은 아파트 단지. 주차장에 모습을 드러낸 의문의 구조물과 새벽에만 나타났다 홀연히 사라지는 노인까지. 장 주무관은 우연히 노인의 작품을 발견하고 세상에 알리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신념 있는 청년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진행된 일처럼 보이길 바랐다. 노인에게 인터뷰 협조를 구하는 일은 그간 의자를 비롯한 재료를 구해왔던 윤재에게 넘어왔다.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의자도 찾아야 해서.”
윤재는 짐을 챙겨 일어났다. 일부러 ‘의자’에 힘을 실어 말했지만 장 주무관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이거 가져가세요.”
콜라 작가는 아직 손대지 않은 윤재 몫의 커피와 도넛을 건넸다. 가운데 뚫린 도넛 구멍엔 손으로 집을 수 있게 티슈가 감겨 있었다. 윤재는 커피만 받아들었다. 테이블에 흩어진 여러 개의 포스터 시안 중 깔끔한 명조체로 적힌 캐치프레이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쇠퇴한 물성의 재탄생, 청령시 해성 아파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