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도넛에 관한 농담 (2)

해는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했다. 차 안으로 깊게 들어온 빛이 윤재의 이마와 코 사이를 간지럽혔다. 눈을 얕게 뜬 윤재는 졸음운전을 할까 싶어 운전대를 더 꽉 쥐었다.

창밖으로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상점들이 줄지어 지나갔다. 거리의 인상은 날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단독주택이었던 건물은 카페로, 화원으로, 얼마 후엔 와인 바로 금세 바뀌었다. 노출 콘크리트 외벽과 여기저기 금이 간 나무 간판, 유리관에서 흘러나오는 자주색 네온사인. 간혹 그 사이에 허름한 모텔이 끼어 있었다. 거리엔 사람 하나 다니지 않았다.

점심도 거른 채 원도심을 헤매봤지만 이번에도 윤재는 쓸 만한 의자를 찾지 못했다. 지난 세 달간 원도심에 버려져 있던 의자란 의자는 전부 주워왔으니 이제는 씨가 말라버렸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사실 장 주무관 말처럼 꼭 의자일 필요는 없었다. 노인은 부러진 각목이나 녹슨 파이프 같은 부속들도 곧잘 사용하는 편이었고 지금 원도심엔 어딜 가나 버려진 집과 공사 현장이 즐비했다. 실제로 3호와 4호를 이루는 재료 대부분은 의자를 구하기 힘들었던 윤재가 공사장 근처에서 가져온 폐자재였다. 하지만 그런 손쉬운 방법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고, 윤재는 이미 몇 번이고 마음을 다잡아왔다.

투박하고 정직한 1호와 2호. 기하학적인 조형이 돋보이는 3호와 4호. 노인의 작품은 점점 추상적으로 변해갔지만 그 본질은 의자였다. 가장 단순한 형태에서 비롯된 변치 않는 기능과 원형. 그로부터 확장되는 가능성. 윤재는 늘 그런 것에 끌렸고 노인의 작업은 분명 윤재와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지난 네 번의 작업을 통해 충분히 숙련된 지금이라면, 노인은 더 완전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 터였다.

때로 윤재는 노인이 작업을 멈추고 두문불출하는 게 자기 탓은 아닐지 자책했다. 벌써 삼 주째였다. 플라스틱 편의점 의자부터 사무용 회전의자, 대형 빈백, 그리고 어제 찾은 패브릭 소파까지. 4호가 완성된 후로 윤재가 구해온 의자들은 모두 노인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엄밀히 따지면 빈백과 소파는 의자라 하기엔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그럼 편의점 의자와 회전의자는? 혹시 윤재가 모르는 노인만의 기준이 더 있는 게 아닐까? 장 주무관이 채근할수록 마음이 조급해졌고 그럴 때면 그의 논문 계획서를 두고 지도 교수가 했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직장까지 그만두고 대학원에 온 열정은 알겠지만, 의자 프로젝트라는 거,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시대착오적이에요.

윤재는 시대착오적이란 말보다 낭만적이란 말이 더 아팠다. 직장에서도 늘 비슷한 말을 들어왔다. 순진하다거나 너무 진지하다는 말. 반발심에 몇 차례 같은 논문 계획서를 들고 다시 찾아갔지만 결과는 매번 같았다.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안전벨트가 가슴팍을 조여왔고 컵홀더에 꽂아둔 커피가 넘쳐 바지를 적셨다. 윤재는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직장에서 있었던 몇 번의 마찰과 퇴사. 대학원에 입학하고 일 년도 되지 않아 오게 된 청령시. 이런 식으로 밀려나기만 할 수는 없었다. 윤재 자신을 위해서도, 그리고 노인을 위해서도. 핸들을 돌려 지금까지 왔던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명확했다. 윤재가 애써 무시했던 곳. 노인을 움직이게 할, 어쩌면 청령시에 남아 있을 마지막 의자가 있는 곳.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골목 초입에 다다랐다. 윤재는 차에서 내려 골목 안으로 곧장 걸어들어갔다.

세 면이 담벼락으로 둘러싸인 쌈지 공간이 나왔다. 그늘진 한쪽 구석에 눈이 얕게 쌓여 있었고 늦봄의 초원을 그린 벽화 속에는 잎이 무성했다. 의자는 그 앞에 놓여 있었다.

월넛 색상의 원목 프레임이 다리부터 좌판, 손잡이를 거쳐 등받이까지 매끄러운 곡선으로 이어졌다. 각 부분의 이음매가 치밀하게 맞물려 원목을 통째로 조각해낸 것처럼 보였다. 가죽 커버 하나 덧대지 않았는데도 좌판과 등받이에 얕은 굴곡이 있어 앉으면 아늑하게 느껴졌다. 가공도 디자인도 모두 훌륭했고 무엇보다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물건이었다. 의자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노인의 작업에 완벽히 어울리는 의자.

 

자유롭게 이용하되 가져가지 마세요.

 

매직으로 큼직하게 글씨가 적힌 종이가 팔걸이에 붙어 있었다. 언젠가 윤재가 직접 쓴 경고문이었다. 기획이 실패했음을 인정한 후에도 이 의자 하나만큼은 남겨놓고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윤재는 틈날 때마다 이곳에 들러 의자를 확인했지만 지난 삼 개월간 의자에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윤재는 경고문을 떼어냈다. 의자를 집어들자 묵직하고 단단한 물성이 손끝에 전해졌다. 골목을 빠져나와 트렁크에 의자를 실었다.

 

*

 

원도심 바깥 능선 너머로 어스름이 깔렸다. 가까이에 우뚝 솟은 12층짜리 아파트 두 동이 보였다. 해성 아파트는 원도심에 몇 없는 고층 건물이어서 낮에는 그 육중한 존재감이 눈에 띄었지만 해가 지면 여느 건물들처럼 어둠에 파묻혔다. 발코니로 불이 새어나오는 집은 절반이 채 되지 않았다. 허물어진 콘크리트 벽 틈새마다 잡초가 돋아 있었다.

사실 진짜 문제는 아파트예요. 집은 팔리지도 않는데 사람만 계속 나가대니…… 작년에만 벌써 일곱 가구가 못 버티고 집을 비웠어요.

청령시에 도착한 첫날,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윤재와 콜라 작가에게 숙소를 안내하던 장 주무관이 심란한 얼굴로 말했다.

오시면서 보셨잖아요. 아파트는 아파트 말고 될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러면서 해성 아파트의 빈집을 싸게 임대해 활동가들의 숙소로 쓰자는 아이디어를 본인이 냈음을 몇 번이나 강조했다. 들뜬 목소리에 다소 심취한 모습이 좀 우습긴 했지만 윤재는 이해할 수 있었다. 현장의 한가운데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저런 감정적인 몰입은 제법 흔한 일이었으니까. 하나에 꽂히면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성격이 흠이긴 해도 윤재는 기본적으로 장 주무관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파트에 도착하자 주차장을 한 칸씩 차지한 노인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윤재는 트렁크에서 월넛 의자를 꺼내들고 놀이터로 향했다.

주차장에 늘어선 작품들을 볼 때면 천장이 끝도 없이 높은 전시관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관리하지 않아 파이고 때가 탄 아파트의 외벽은 작품이 지닌 조형미를 더 선명하게 살려냈다. 인정하기 싫지만 노인의 작품들을 창고 밖으로 꺼낸 콜라 작가의 결정은 탁월했다.

1호는 부러진 의자 다리를 연결해 만든 구조물이었다. 가로 한 칸, 세로 한 칸, 높이 세 칸의 둔탁한 비례감을 가진 큐브 안에는 형태가 온전한 의자 하나가 노끈에 팽팽히 매달려 있었다. 목재 프레임에 적갈색 가죽 시트가 덧대어진 흔한 가정용 안락의자였다. 노끈으로 어찌나 단단히 고정해두었는지 의자는 윤재의 몸무게도 안정감 있게 받쳐냈다.

1호에서 두 칸 떨어진 곳에 2호가 망루처럼 솟아 있었다. 알루미늄 스툴을 엮어 만든 기단부 위로 매끈한 금속 프레임이 돋보이는 미드센추리풍 의자가 올려져 있었다. 2호에 앉으려면 2미터가 훌쩍 넘는 사각뿔 형태의 기단부를 사다리처럼 기어올라야 했다.

윤재는 노인의 초기작인 1호와 2호를 특히 좋아했다. 가끔 1호와 2호에 앉아 생각에 잠기기도 했는데 거친 마감에서 오는 날것의 느낌에 더해 앉았을 때 느껴지는 낯섦이 유머러스하게 다가왔다.

주차장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3호와 4호가 나란히 서 있었다. 3호는 두께가 비슷한 각목들을 피스로 조립해 만든 낮은 정글짐 형태의 구조물이었다. 복잡하게 엮여 있는 프레임 사이사이 낚시용 의자나 스툴에서 떼어낸 좌판들이 선반처럼 붙어 있었다. 키치한 느낌을 주는 3호는 콜라 작가가 붙인 캣 타워란 이름대로 온통 길고양이들 차지였다.

4호는 네 작품 중에서도 눈에 띄게 유려했다. 원형 금속 받침대 위에 세워진, 살짝 휜 철근. 그 끝 회전 고리에는 쇠파이프가 가로로 길게 끼워져 있었다. 양 끄트머리에는 회색 플라스틱 간이의자 두 개가 낚싯줄에 매달려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하며 흔들렸다. 거대한 천칭을 연상케 하는 4호는 노인의 구조물들 가운데 가장 정교하면서 절제된 작품이었다.

콜라 작가는 캣 타워와 천칭, 그러니까 3호와 4호를 가장 아꼈는데, 그가 ‘해성 아파트의 고요함을 닮은 작품’이라는 설명과 함께 SNS에 올린 4호의 동영상 게시물은 이만 개가 넘는 공감을 받으며 육천 번이 넘게 공유되었다.

콜라 작가에겐 고유한 시선이 있었다. 사진을 잘 모르는 윤재에게도 느껴지는 타고난 감각 같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시선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았다. 어떠한 소명도 없이 피사체의 물성만 드러내는 무책임한 해석이 윤재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해성 아파트의 고요함’같이 현실문제와 동떨어진 구호들이 그랬다. 4 대 5 비율로 잘린 프레임 안에서 3호와 4호는 의미를 알 수 없는 아름다운 조형물일 뿐이었다.

놀이터에 도착하자 노인의 선택을 받지 못한 의자들이 보였다. 편의점 의자와 회전의자, 빈백, 패브릭 소파. 윤재는 그 옆에 월넛 의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102동을 올려다봤다. 이 월넛 의자라면 노인도 분명 만족할 것이다. 어쩌면 지금 불 꺼진 발코니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윤재 선생님!”

누군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두리번거렸지만 그새 어두워진 탓에 방향을 가늠하기 쉽지 않았다.

“여기, 옥상이요!”

반대편 101동 옥상에서 휴대폰 불빛이 반짝였다. 콜라 작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