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도넛에 관한 농담 (마지막)

바람이 불 때마다 등지고 앉은 옥상 철문에서 뻑뻑한 경첩 소리가 났다. 떨어져나온 우레탄 방수 페인트 조각이 발에 계속 밟혔다. 윤재에게 캠핑 의자를 내어준 콜라 작가는 탁자로 사용하던 소주 궤짝에 앉아 전기 포트에 물을 채웠다. 공용 전기를 끌어 쓰고 있는지 계단실 안쪽 소화전까지 길게 늘어진 전선이 눈에 걸렸다.

“아, 가끔 라면 물 끓일 때 쓰는 게 전부예요.”

눈치 준 것도 아닌데 콜라 작가는 괜히 겸연쩍어했다. 궤짝에 비스듬히 앉은 자세가 편안해 보였다. 그 적의 없이 투명한 태도가 불편하면서도 신기했다. 어디에 붙여놔도 쉽게 적응할 것 같은 사람. 낡은 아파트 옥상에 살림을 차릴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이지 않을까.

“계속 여기 계셨던 거예요?”

“그냥 취미 같은 거예요. 가끔 야경 보면서 멍 때리는.”

윤재는 그 매끄러운 대답이 왠지 모르게 의뭉스럽게 느껴졌다.

“머리 좀 식힐 겸 같이 저녁도 때우면 좋잖아요. 저녁 안 먹었죠?”

콜라 작가는 유쾌하게 말을 이으며 궤짝 밑에서 납작한 종이상자를 꺼내들었다. 열두 개들이 도넛 상자였다.

“그런데 갑갑하진 않으세요? 매번 그렇게 푹 빠져 계시는 거 보면 신기하더라고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윤재도 모르게 말이 공격적으로 튀어나왔다. 콜라 작가가 화들짝 놀랐다.

“별다른 의도가 있지는 않았는데…… 그냥 가끔은 좀 버거워 보여서요.”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그는 상자에서 도넛 하나를 꺼내 윤재에게 건넸다. 한입 베어 물자 겉면의 설탕 코팅이 힘없이 바스라졌다. 단맛이 입안에 퍼지며 몸에 긴장이 풀렸다. 조금 전 날 세운 태도가 민망해진 윤재는 자리에서 일어나 난간 앞으로 걸어갔다. 주차장에 세워진 네 개의 구조물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큐브, 망루, 캣 타워, 천칭. 탁 트인 조감에 머리가 가벼워졌다.

“작가님은 지금 상황이 억울하진 않나요?”

“그건 무슨 뜻인데요?”

벌써 도넛 하나를 전부 입에 넣은 콜라 작가가 우물거렸다.

“원래 계획했던 게 있을 거 아니에요. 여기 와서 하려던 것.”

윤재는 저 느긋함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싶었다. 콜라 작가 역시 몇 달째 102동 노인에게만 매여 있는 상황은 마찬가지였는데도 그에게선 조급해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몇 달 지낸다고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겠어요.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죠.”

그에게서 느껴지는 건 회의나 냉소 같은 게 아니었다. 마냥 가볍지만도 않으면서 자유로운, 윤재가 이해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태도. 콜라 작가는 잠시 뜸을 들이다 옆에 끼고 있던 가방을 뒤졌다.

“이것 좀 보실래요?”

그는 가방에서 태블릿 PC를 꺼내 윤재에게 건넸다.

“사진 촬영이 뭐 대단한 준비가 필요한 작업은 아니라서요. 틈틈이 찍고 싶은 거 찍으러 다녀도 시간은 충분해요.”

담담한 말투였지만 윤재의 반응을 기대하는 기색이었다. 태블릿 화면엔 신축 아파트 단지의 공사 현장을 찍은 사진들이 가득했다. 바닥 포장이 덜 깔린 보도, 깊이 파인 구덩이 옆으로 뿌리를 드러낸 채 식재를 기다리는 조경수, 아파트 이름이 적힌 표지판과 소형 크레인. 사람 한 명 없이 덩그러니 드러난 공간엔 기이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콜라 작가의 건조한 미감이 그대로 묻어나는 사진이었다.

“여긴 어디예요?”

“농담하는 거죠?”

콜라 작가가 신기하다는 듯 웃었다. 윤재가 멀뚱히 쳐다보자 그는 손가락으로 옥상 계단실 뒤편을 가리켰다. 윤재는 계단실을 돌아 반대쪽 난간으로 향했다. 난간 밖 멀리, 원도심 너머로 밀도 높은 빛이 가득했다.

“차 타고 넘어가면 바로예요.”

위아래로 굽이치는 능선 뒤로 아파트 단지의 짙은 실루엣이 도미노처럼 이어졌다. 일정한 높이로 늘어선 장벽은 중간중간 끊겨 있었고 그 빈자리엔 경고등을 반짝이는 타워크레인이 솟아 있었다. 촘촘하게 수놓인 빛이 원도심을 크게 둘러냈다. 윤재가 묵고 있는 4층에서는 볼 수 없던 풍경이었다.

“재밌지 않아요? 산 하나 사이에 둔 것뿐인데.”

원도심과 해성 아파트. 원도심을 두른 나지막한 산. 다시 그 밖을 감싸고 들어선 신도시. 윤재는 이제야 청령시 전체를 머리에 그릴 수 있었다. 구멍 뚫린 동심원. 비대한 가장자리.

진짜 문제는 아파트예요. 장 주무관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윤재는 다시 한번 콜라 작가가 찍은 사진을 확인했다. 결코 다가서지 않는 시선. 모든 일이 벌어진 후에야, 그럴 수 있다며 가볍게 던지는 비겁한 시선.

전기 포트 스위치가 딱, 소리를 내며 올라갔다.

“커피? 아니면 차?”

종이컵을 들고 콜라 작가가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윤재는 들고 있던 도넛을 입에 구겨넣고 곧바로 짐을 챙겼다. 당황해하는 콜라 작가를 지나 계단실 문을 열었다. 경첩에서 날카롭게 긁히는 소리가 났다. 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가슴팍 안쪽이 불쾌하게 조여왔다. 도넛을 모두 삼켰지만 속은 여전히 허전했다.

 

*

 

윤재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억지로 삼킨 도넛 때문이었을까. 맞춰두었던 휴대폰 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고 눈을 떴을 땐 이미 새벽 두시 반이 넘어 있었다. 서둘러 부엌으로 가 놀이터를 내려다봤다. 월넛 의자가 보이지 않았다.

막상 노인이 다시 나타난 것을 확인하니 심장이 뛰었다. 윤재는 대충 겉옷을 걸치고 휴대폰을 꼭 쥔 채 밖으로 나섰다. 오늘 노인의 작업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할 셈이었다. 작업의 소리, 공기의 색깔, 우악하지만 한없이 섬세할 손놀림. 그리고 월넛 의자를 품은 채 완성될 5호까지. 인터뷰가 따로 필요 없을 만큼 인상 깊은 장면이 나올지도 몰랐다. 윤재와 노인의 긴밀한 협업을, 콜라 작가의 눈으로는 절대 포착하지 못할 것들을 증명할 수 있을 터였다.

1층 공동현관을 나오자 찬 공기가 폐를 채웠다. 주차장을 곧장 가로질러 1호와 2호, 3호와 4호를 차례로 지났다. 휴대폰을 꺼내 영상 녹화 버튼을 눌렀다. 놀이터 옆 창고 앞. 이 모든 게 시작되는 장소였다.

3미터쯤 되는 창고의 철제문 너머로 무언가 세게 부딪히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리듬이라기엔 건조했고 소음이라기엔 규칙적이었다. 윤재는 마른 입술을 혀로 쓸었다. 손잡이를 잡고 안으로 밀었다. 묵직하게 문이 열렸다. 히터로 덥혀진 공기가 훅 끼쳐왔다.

침침한 형광등 빛 아래 내부는 먼지로 가득했다. 다시 한번 땅, 내리치는 소리, 뒤이어 거칠게 긁어내는 소리가 났다. 대각선 구석 끝에 경량 패딩을 벗은 채 등 돌리고 선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머리를 덮은 것이 흰머리인지 먼지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노인은 작업대 위에 놓인 물건을 왼손으로 단단히 붙잡은 채 오른팔을 앞뒤로 움직였다. 헐렁한 티셔츠 위로 어깨뼈의 윤곽이 솟구쳤다 가라앉았다. 윤재는 녹화중인 휴대폰 화면을 줌인 했다. 카메라 초점이 노인의 정수리에 맞춰졌다. 듬성듬성한 흰머리와 두피의 검버섯. 그리고,

먼지가 머리 위에 앉았다.

줄톱을 따라 톱밥이 튀었다.

망치를 내리쳤고,

사포로 갈아냈다.

쩍, 소리와 함께 뜯어냈다.

짙은 갈색의 관절이 꺾여 부러졌다. 쪼개지고, 가죽이 벗겨졌다. 흘러내리는 톱밥 아래로 속살이 드러났다.

작업대에 각목들이 쌓였다. 노인은 왼손으로 조각난 목재 덩어리를 들었다. 윤재는 필사적으로 노인의 움직임을 좇았다. 무심하고 감정 없는 동작들에 소름이 돋았다. 차라리 서툰 면모가 드러나기를, 한 번이라도 머뭇거리기를. 하지만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경제적인 몸놀림은,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았다.

열린 문틈 사이로 새된 바람소리가 났다. 노인은 하던 일을 멈췄고 윤재는 도망치듯 창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놀이터에 서서 녹화된 휴대폰 영상을 재생했다. 노인 옆에는 윤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조형물이 함께 찍혀 있었다. 직사각형의 틀 안에 토막난 부속들이 매달려 흔들렸다. 잘려나간 단면. 촘촘한 목질. 형태를 잃은 의자. 아무것도 아닌 것들.

지금은 그냥 할 수 있는 걸 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해야만 하는 것들. 화면 속 노인은 영상이 끝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윤재는 지금껏 한 번도 던지지 않은 질문을 뒤늦게 떠올렸다. 노인이 작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그리고 윤재가 청령시에서 하려 했던 것들에 대해. 대체 뭘 위해서?

 

고요한 가운데 창고에선 이따금 줄톱 소리가 들려왔다. 시작과 끝이 모호한 질문들이 머리를 맴돌았고 뒷목이 뜨거워졌다. 윤재는 이곳에 서 있는 것이 문득 버겁게 느껴졌다.

 

*

 

보도자료 | 담당부서: 주택과, 도시재생과

 

압도적 속도와 규모로 주택공급1)

: 청령시, ‘지속가능성’을 핵심으로 미니 신도시 개발사업 등 도시문제 해결 나섰다.

 

지난 2월 27일, 청령시 주택과에서는 신청사 대강당에서 신규 주택공급의 성과와 비전을 공유하는 설명회를 가졌다. 이 시장은 “향후 5년 내 택지 두 곳을 추가 발굴하여 질 높은 주택 공급 및 경기 회복을 더 빠르게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총 사업비 300억원을 투입해 신도시 내 ‘거점형 커뮤니티 센터 조성 시범 사업’에 착수한다. 센터 내에는 아이 돌봄 시설, 어린이집 등이 복합되어 도시공동화 해소의 핵심 거점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인구감소 지역에 대한 정부의 세제 특례 조치도 소개됐다. 노후·미분양 주택을 매입해 ‘세컨드 홈’이나 상가로 개조하는 경우, 1세대 1주택자 자격을 유지해주는 세제 혜택이 적용되어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같은 날 도시재생과에서는 지난 11월부터 2월까지 총 4개월간 운영한 ‘청년 활동가 지원 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원도심 활력 회복을 위한 주민 간담회를 진행했다.

 

*

 

예정보다 일찍 서울로 돌아가겠다는 윤재의 결정에 장 주무관은 크게 토를 달지 않았다. 다 이해한다는 얼굴을 하던 그는 할 이야기가 많은 듯 윤재의 눈치를 보다 이내 의례적인 말로 자리를 정리했다. 저는 선생님 기획, 여전히 마음에 들어요.

서울에 돌아온 윤재는 곧바로 대학원 휴학을 연장했다. 이후로 종종 장 주무관이 계획했던 방송 프로그램을 검색해봤지만 노인에 대한 소식은 찾을 수 없었다.

 

윤재가 콜라 작가의 개인전 소식을 알게 된 건 꽃샘추위가 기승하는 4월이었다. 서울로 돌아와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휴대폰만 보던 중이었다. 무명작가들의 사진전을 홍보하는 쇼츠 영상에 익숙한 장소를 찍은 사진들이 지나갔다.

콜라 작가의 전시관은 안국역에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길 뒤편에 있었다. 일부러 사람 없는 시간을 택해 평일 이른 오전에 길을 나섰지만 도심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외국인들로 가득했다. 대로변을 피해 골목으로 들어간 윤재는 막다른 길에서 몇 번 헤맨 끝에 전시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두 개 관으로 구분된 작은 단층 건물이었다. 입구에는 전시명도 없이 청령시 도시재생과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전시임을 알리는 팻말만 걸려 있었다. 첫번째 관에는 이미 대학생 커플 한 쌍이 관람중이었다. 청령시 여기저기를 찍은 사진들을 보는데, 윤재가 알고 있는 곳보다 모르는 곳이 더 많았다. 대학생 커플은 뭔가 재밌는 걸 봤는지 어떤 사진 앞에 서서 한참을 키득거렸다. 윤재는 그들이 충분히 멀어질 때까지 기다린 후 사진 앞으로 다가갔다.

한 신도시 아파트 단지의 상가건물 앞에 크레인 하나가 새로 설치하려는 간판을 매달고 있었다. ‘성심 노인 전문 요양원’이라고 출력된 노란색 글씨가 눈에 띄었다. 상가 벽면에는 이전 간판을 떼어낸 자리를 따라 새까만 때가 끼어 있었고 그 흔적에서 ‘키즈 카페’라는 글자를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었다.

—선생님, 무슨 생각 하세요?

익숙한 목소리에 두리번거렸지만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윤재는 소리를 따라 커튼이 쳐진 두번째 관 입구로 다가갔다. 열어젖힌 커튼 뒤로 한쪽 벽면 전체에 빔 프로젝터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선생님, 무슨 생각 하세요?

답이 없는 노인에게 콜라 작가가 다시 한번 물었다. 작업중인 노인의 옆모습이 클로즈업 됐다. 화면 속 노인의 얼굴은 윤재가 기억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작았다. 광대뼈 아래로 살이 내려앉아 볼이 움푹 꺼져 있었고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눈꺼풀 사이 흰자위에 실핏줄이 드러났다.

—이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재차 묻는 콜라 작가의 질문에 노인은 귀찮다는 듯 쯧,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의 뒤로 부서진 테이블이나 스탠드형 옷걸이, 찢어진 타이어 같은 온갖 폐자재 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노인은 옷걸이를 작업대 위에 올려 익숙하게 톱으로 잘라내기 시작했다. 그 어디에서도 윤재가 구해온 의자는 보이지 않았다.

—작업하시는 모습이 재밌어 보여요.

노인의 무심한 반응에도 콜라 작가의 목소리는 여전히 살가웠다. 한동안 톱질 소리만 불규칙하게 이어졌고 노인은 카메라를 쳐다보지 않았다.

잠시 후 화면이 바뀌며 엔딩 크레디트와 함께 첫번째 관에 걸려 있지 않은 B컷들이 천천히 나타났다. 사진들은 모두 줌을 당기지 않은 채 101동 옥상에서 주차장을 내려다보며 찍은 것들이었다. 주차장과 놀이터. 노인에게 선택받지 못한 의자들. 1호부터 4호. 그 피사체들 사이로 사람들의 머리가 작은 점처럼 박혀 있었다. 드물게 아파트 주민들이 주차장을 오갔고, 그보다 더 드물게 관광객 무리가 찾아왔다. 간혹 장 주무관으로 보이는 정수리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윤재의 것이었다. 1호와 2호에 앉아 생각에 잠기고, 3호와 4호 앞을 서성이던 정수리.

차에서 내린 정수리는 월넛 의자를 들고 주차장을 가로질러 놀이터로 향했다. 고요한 새벽, 창고로 들어가고, 떠밀리듯 나왔다.

윤재는 붉어진 그의 뒷목을 바라보았다.

 

영상이 끝난 방은 새어들어오는 빛 하나 없이 어두웠다. 사방이 공평하게 캄캄한 가운데 출구가 어디였는지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가벼운 허기가 몰려왔고 콜라 작가가 건네줬던 도넛이 떠올랐다. 윤재는 빈속 깊은 데서 올라온 신물을 삼키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그대로 자리에 앉아 영상이 다시 재생되기를 기다렸다. 눈이 차츰 어둠에 익기 시작했다.

 

1) 2025년 9월 12일 서울시 보도자료(‘압도적 속도·규모로 주택공급’ 오세훈 시장, 정비사업 시민 소통 나섰다)의 제목을 인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