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를 먹어보렴.”
이연이 말했다. 어쩌면 이런 어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준일은 생각했다. 마음속에서 오랜 반감이 희미하게 일었다. 저렇게 이상한 문어체로 말하는 게 지식인인가. 하지만 준일은 이런 감정을 참으로 오랜만에 느낀다는 걸 알았다. 오랜만이라고 생각하니 이런 감정조차 어딘지 정겹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식탁에는 두툼하게 자른 스테이크가 플레이팅되어 있었다. 진한 빛깔의 연어회가 타원형 접시에 담겼고, 작은 종지에는 케이퍼와 올리브도 있었다. 준일은 연어와 스테이크를 적당히 먹는 체했다. 맛있다고, 고맙다고 준일은 말했다. 성철이 있었을 때는 집에서 와인과 스테이크 같은 것을 거의 먹지 않았다. 소주와 맥주가 있었고 추어탕이 냉장고에 쟁여져 있었다. 집안에는 성철의 사진만 없는 것이 아니었다. 성철의 흔적이라 할 만한 것이 소거된 느낌이었다. 무언가 새로 세팅된 장소라는 기분.
그림을 그리다 포기하고 큐레이터이자 평론가로 활동하고 모 예술단체의 일을 맡게 되고 구설에 휘말리고 문득 세상을 뜨고…… 그 모든 성철의 일들을 준일은 먼발치에서 바라보았다. 먼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했을 뿐 따로 대화한 적은 없었다. 세상을 뜨기 직전에야 성철은 준일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안부 전화였다.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고 먼 곳에서 아주 먼 말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어쨌든 그냥 안부 전화를 한 거라고 성철은 말했다. 그렇게 말해놓고는 종잡을 수 없는 얘기를 했다. 잘 지내라. 너무 열심히 살지는 말아라. 네 이름이 노마 아니냐. 마릴린 먼로는 잘살고 싶었다. 아름다움 뒤에 깊은 슬픔을 거느린 사람이었다. 앤디 워홀이 그이를 오브제로 삼은 건 그이의 이미지가 곧 상품이라서만은 아니다. 너는…… 잘살기 바란다.
이런 전화를 해서도 앤디 워홀이니 마릴린 먼로니 하는 말을 하는 게 성철이었다.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겠고 뭐라 대꾸할 수도 없는 말만을 남기고 성철은 전화를 끊었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준일은 알았다. 너는 잘살기 바란다라는 말 뒤에는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란다 같은 말이 생략되었다는 것도 준일은 알았다. 이상해. 낌새가 느껴지잖아. 희라면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전화가 끊어진 후 준일은 낌새, 하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낌새 때문에 무언가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성철을 직접 찾아가지도 않았고 이연에게 메시지를 남기지도 않았으며 경찰에 연락하지도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이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성철에게는 성철의 선택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처음 구설에 휘말렸을 때 성철은 억울하다고 했고, 정치적 모함이라고도 했다. 모든 것은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라고 했다. 아니, 아버지, 그게 문제라고요. 자연스럽다는 게 더 문제라고요. 자연스럽게 느낀다는 바로 그 점이 가장 큰 죄인지도 몰라요. 준일은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무언가가 준일의 입을 막았다. 성철이 ‘억울한 일’을 당한 것인지 어떤지 준일은 알지 못했다. ‘맥락’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어쩌면 성철 자신도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일은 희에게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희와 이별할 때까지 성철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는 이미 희의 마음이 먼 곳에 가 있을 때였다. 준일은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되어가고 있다고 느꼈다.
식사를 마쳤는데도 뉴스에서는 관공서 난입 사태에 대한 보도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들이 집기를 부수고 소화기로 유리를 박살내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이연이 텔레비전에 눈을 둔 채 말했다.
“……널 텔레비전에서 본 것 같구나.”
무심한 듯 침잠해 있는 어조였다. 텔레비전 어디서 보셨는데요, 하고 물을 수도 있었지만 준일은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텔레비전에 나온 적이 없는데. 아니, 나온 적이 있을지도 모르지.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곳에 간 적이 있으니까. 사건이 발생했을 때 저 관공서 근처에 있기는 했으니까. 그런 생각이 준일의 입을 막았다.
그날 준일은 자신이 운영하는 테이크아웃 커피점에 침입 경보가 울렸다는 연락을 받았다. 경비업체로부터였다. 시위대가 준일의 가게 유리를 깼다고 했다. 준일은 급하게 집을 나와 가게로 달려갔다. 입구의 대형 유리가 파손되었고 내부 인테리어에도 피해가 있었다. 결정적으로 에스프레소머신까지 훼손된 것 같았다. 어느 쪽 시위대인지는 더 알아봐야 한다는 게 경비업체 직원의 말이었다. 준일은 경비업체 직원과 함께 사진을 찍고 CCTV를 체크하고 임시 보안 조치를 했다.
이게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전부다. 그런 문자와 함께 성철이 입금한 돈에 대출을 받아 시작한 일이었다. 그때까지 알바를 전전하던 준일은 유행을 따라 탕후루집을 하다 접은 뒤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을 냈다. 에티오피아인지 케냐인지 구분도 못 하고 할 필요도 못 느끼면서 하필이면 왜? 준일은 자신에게 되물었다. 여기에는 약간의 오기가 스며 있었는지도 모른다. 희 때문에 커피전문점을 낸 것인지도 모르지. 준일은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고는 순순히 수긍했다. 희와 헤어지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언젠가 희를 만나면 이렇게 얘기하리라고 상상하기도 했다. 커피 내릴 줄도 모르면서 커피전문점을 냈으니 말아먹어도 싸지 뭐야, 하하하. 가급적 우습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할 것이라고, 준일은 상상했다.
커피에 대한 관심과는 무관하게 ‘말아먹는’ 계기가 생각보다 빨리 닥친 느낌이었다. 말아먹는다는 것은 그냥 빈털터리가 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건 빚에 쫓기게 된다는 뜻이다. 장사가 안 되는 건 둘째 치고, 이젠 수리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CCTV를 확보하고 변호사를 고용하고 소장을 접수해도 가해자들을 찾아내 실제로 배상을 받는 건 쉽지 않으리라는 말을 들었다. 본사에서는 하루빨리 복구해서 영업을 재개하라고 압력을 넣어올 것이다.
그날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준일은 시위 현장을 지났다. 사람들이 담장을 넘고 있었다. 경찰은 무력해 보였다. 준일은 무언가가 제 안에서 끓는 느낌이 들었다. 화가 난다든가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이렇게 끓다가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 튀어나와서 제멋대로 날뛸 것 같은 느낌. 그게 담장을 넘는 사람들 때문인지, 거대한 관공서 담벼락 때문인지, 또는 커피전문점의 파손된 대형 유리 때문인지 준일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희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자신이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준일은 알았다.
“네가 아닌 것 같지만, 비슷해서.”
이연의 말을 듣는 순간에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이연에게 용건을 꺼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준일은 알았다. 이 집에 들어오기 전부터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마 돈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도 못하겠지. 그래도 혹시 근황을 나누다가 이연이 먼저 말을 꺼내준다면, 못 이기는 척 얘기해볼 수도. 아아, 그건 좀 치사한가. 준일은 생각했다.
뭔가 필요하면 연락하렴. 언젠가 이연이 그렇게 말했던 것을 준일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 말은 마치 투항을 하면 도와주겠다는 말처럼 들렸지만, 이제 시간이 흘러 그런 반감도 사라진 뒤였다. 게다가 스테이크와 연어회. 처음에는 고기 냄새와 연한 비린내가 거북했지만,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입이 슬금슬금 반기고 있었다. 희미한 수치심을 느끼며 준일은 생각했다. 맛이 있구나. 맛이 있어.
“맛있었어요.”
준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말했다. 진심이었다.
“다행이네.”
이연이 답했다. 좀더 있다가 가지 그러니, 하고 덧붙이지는 않았다. 준일은 그것 역시 이연의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늦겨울의 어둠이 이르게 마당을 잠식하고 있었다. 어스름에서 어둠으로. 어둠에서 밤으로. 말하자면 햇빛이 없는 시간으로. 그래도 마당에는 빛이 곱게 스며들어 있었다. 담장 한편에 설치해둔 LED 월램프에서 낮고 희미한 빛이 흘러나와 마당을 가로질러 관목 그림자를 바닥에 아로새겼다. 나뭇가지들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조명 빛을 다채로운 문양의 그림자로 바꾸었다.
“마당이 예쁜데요. 그림자가 좋아요.”
준일은 말했다. 진심이었다.
“그렇지? 저 그림자들에 대해서 나도 수학적으로 묘사를 할 수 있으면 좋겠구나.”
프랑스 소설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으므로, 준일은 이연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 말에도 이연의 진심이 담겨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현관을 나와 마당을 지날 때, 준일은 이연의 말을 들었다.
“뭔가 필요하면 연락하렴. 아니, 필요하지 않아도.”
준일은 별다른 대답을 하지는 않았다. 뭔가 필요해도, 아마 연락은 하지 않을 것이다. 뭔가 필요하지 않을 때, 그때라면 연락할 수도 있겠지. 그때는 사과나 키위가 아닌 과일을 사들고 올지도. 준일은 대여섯 걸음을 걸어 이연의 집을 나섰다. 마당에 드리운 그림자들의 각도가 오래 인상에 남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