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역을 알리는 지하철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던 수안은 전광판에서 역 이름을 확인하고, 다시 고개를 숙여 핸드폰 속의 지하철 노선도를 들여다봤다. 이태원까지 다섯 정거장. 남은 시간 십일 분. 수안은 화면을 이리저리 움직여 노선도에 있는 역을 모두 외울 것처럼 읽어나갔다. 사고가 난 뒤 처음 가는 이태원이었다. 다시 안내 방송이 나왔다. 네 정거장. 세 정거장. 두 정거장. 이번에 내려.
수안은 1번 출구를 찾아 빠른 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뉴스에서 본 아수라장 같던 현장이 순식간에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길에 사람들이 누워 있다. 이곳에, 저곳에? 구조하는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누워 있고. 사이사이로 쪼그리고 앉아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지금 이곳에 있는 것 같아 수안은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들과 뛰어다니는 사람들과 소리와 불빛 모두 사라지고 멋스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보도블록을 하나씩 밟아야 골목 입구까지 갈 수 있으니까 밟으면서도, 마치 밟지 않는 것처럼 빠르게 걸었다.
골목 입구에 다다르자 포스트잇이 붙어 있는 벽이 보였다. 활동가 재이가 다가와 인사하고 작업 방법을 안내했다. 천천히 숨 돌리고 하세요. 수안은 숨을 들이쉬고, 고개를 돌려, 골목 입구에서 끝을, 끝에서 다시 입구를 훑었다. 골목이 정말 좁았다. 이곳에 끼어 있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숨쉬기가 힘들어 벽으로 눈을 돌렸다.
벽에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는데, 겹겹이 붙어 있는 포스트잇 사이사이로 바람이 들어가 포스트잇을 허공으로 퍼올려 아랫자락이 펄럭였다. 종이들이 스치며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색색의 작은 종이가 펄럭이는 벽의 풍경에 사로잡혀 수안은 홀린 듯 걸어가 포스트잇에 적힌 글을 읽었다.
젊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어 참담합니다.
수안은 벽에 붙은 메시지들을 계속 읽어나갔다.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을게요. 미안합니다. 하늘에서는 아프지 마시고 이루시지 못한 꿈 다 이루길 바라요.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곳도 언젠가 일상으로 돌아가고, 모두들 아픔과 슬픔을 잊어버린 듯 보여 속상하고 실망스럽다면, 염려 마세요. 제가, 우리가, 영원토록 맘에 기억하며 살아가겠습니다. 명복을 빕니다. 너무너무 괴롭습니다. 여러분들의 경험과 지식으로 더 나아간 대한민국을 만들겠습니다! REST IN PEACE. 극락왕생 기원합니다. 위아래로 빠르게 메시지를 읽던 수안의 눈이 한 메시지에서 멈췄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우리 딸을 기억해주는 걸 보니 안심이 돼. 엄마가 너무 미안해. 우리 딸. 보고 싶다.
이 말들에 안심이 됐다고? 수안이 방구석에서 맞는 말을 생각하는 동안 사람들은 무슨 말이든 하고 있었고, 이것이 유가족에게 위로가 되었다니.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찾아가서 우는 게 어색해.
수안의 말을 운미가 받았다. 야 별게 다 어색하다,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 안 슬프니. 그 말은 정아가 받았다. 어색할 수 있지. 사이와 잭도 한마디했다. 왜 왜 그런데? 왜 그럴까. 분향소에 가서?
지난 연말 십년지기 대학 친구들과의 송년회에서였다. 진짜 친한 친구는 일 년에 한 번 만난다는 잭의 말에 우리는 안 친하니까 일 년에 두 번 보자고 해서 6월과 12월에는 어떻게든 만나는 친구들이었다. 이태원 참사가 화제에 올랐다. 참사가 일어나고 두 달이 지났을 때였다. 잭이 분향소에 갔다 왔다고 말하자 사이가 나는 언제 갔다 왔다고 사진을 보여줬고, 운미는 현장을 보니 마음이 안 좋았다고 했다. 그렇게 한 명씩 돌아가며 갔는지 못 갔는지 얘기하며 슬픈 마음을 꺼내놓다 수안의 차례가 돌아왔을 때 수안은 고개를 저었다. 안 갔다고 하면 관심 없어 보이니까 못 간 것처럼 “나는 아직……”이라고 말했다. 다녀오면 뭔가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서 가지 않았는데, 안 가고 싶은 건지 못 가겠는 건지 알 수 없었고, 안 가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서 가려고 해봤지만, 구경하러 가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어 가지 못했다. 어머나, 여기가 그 자리구나, 여기서 그 사람들이. 이 골목에서, 이렇게 좁은데. 사고 현장을 볼 텐데, 그때 느낄 감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태원 얘기가 나오자 케이크와 와인을 앞에 둔 송년 모임이 숙연해졌다. 정아와 운미는 젓가락을 손에 쥐고만 있었다. 수안은 어색하다는 느낌을 더 설명할 자신이 없어 “가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고 말을 돌렸다. 수안처럼 분향소에 갔다 오지 않은 정아가 수안을 물끄러미 보고 말했다. “명복을 빌면 되잖아. 상주에게 할말 없다고 장례식장 안 가지는 않으니까.” 사이가 조언했다. “그냥 솔직하게 진심을 담으면 되지.”
솔직하게? SNS에서 참사 소식을 접하고 처음 든 생각은 ‘압사?’였다. 무슨 상황인지 이해되지 않아 감정도 들지 않았다. 사전에서 뜻을 찾아보니 더 알 수 없었다. 사람이 눌려서 죽을 수 있어? 사람이 밀집되어 있는 현장 사진을 보고서야 이해됐다. 이런 사고가 날 수 있다는 걸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떻게 서울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 서울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어? 수안은 이렇게 되뇌다 깜짝 놀랐다. 서울에서, 라는 말을 왜 생각했을까. 서울은 이런 일이 안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이런 생각을 추모의 말로 쓰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금의 슬픔은 서울에서 사고가 났기 때문이 아니었고.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건가? 한 번에? 사망자 수에 놀랐지만 많이 죽어서 슬픈 게 아니었다. 아닐까? 평소에도 사람은 죽고 있었고 하루 사망자가 이보다 많아도 수안은 슬프지 않았다. 희생자가 거의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한창 예쁠 때 죽어 안타까웠는데, 이건 나이든 사람의 죽음은 덜 안타까워하는 마음 같았고. 꿈을 펼쳐보지 못해서 슬픈 것도 아니었다. 꿈을 펼치고 죽었다면 괜찮은 게 아니니까. 하나씩 따지기 시작하니 끝이 없었다. 지금의 충격과 슬픔을 설명하는 말이 모두 이상했다. 수안은 할 수 있는 말을 끌어모았다. 죽음이 헛되지 않게 당신 대신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도 이상한 것 같았다. 죽은 사람이 뜻을 펼치고 싶어 죽은 게 아닌데. 미안하다는 말도 미안했다. 들을 사람은 없으니, 슬픈 나를 위한 사과 같았고. 기억하겠다는 말은 공허했다. 이렇게 많은 참사를 어떻게 다 기억한단 말인가.
친구들과 얘기하며 수안은 더 복잡해졌다. 오래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이러지 않았다. 장례식 내내 빈소에 앉아 중얼거렸다. ‘저 열심히 살게요. 지켜봐주세요.’ 할아버지는 수안이 잘살기를 바랐으니까 이상할 게 없는 다짐이었다. 내 새끼 왔느냐고 반겨주고, 우리 강아지 먹으라고 과자를 내주던 할아버지가 세상에서 없어진 게 너무 싫었다. 그때는 왜 슬픈지 고민하지 않았는데, 이 참사에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정확히 말하지 못할 거라면 안 하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몇 달을 보냈고.
하지만 가끔 SNS에서 이태원 소식을 찾아봤고, 기억 담기 모임을 발견했다. 참사 현장에 붙어 있는 추모 메시지를 보존하는 모임에서 자원활동가를 모집했다. 이걸 하러 가는 거니까 구경하러 가는 것도 아니었고 가서 뭘 쓰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껏 앞으로 가려는 것보다 뒤에서 잡아당기는 힘이 더 컸는데, 오늘은 모임에 신청했다는 이유로 앞으로 가고 있었다. 생각 없이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참사 현장에 왔다.
수안은 이곳에 붙은 메시지가 위로가 됐다는 말이 적힌 노란색 포스트잇을 한참 들여다봤다. 방구석에서 맞는 말을 찾으며 내가 안 틀리는 것에만 몰두하고 있었던 것 같아 멍해졌다. 수안은 메시지들을 다시 읽었다. 어떤 건 눈을 뗄 수 없었지만 훔쳐보는 것 같아 그만 읽었고, 어떤 건 곱씹어 읽었다.
이제야 와서 죄송합니다. 제가 그날 더 구해드렸어야 했는데 바보같이 상황 파악도 못하고……
현장에 있었던 사람 같은데, 이걸 쓰러 왔다가 당신 잘못이 아니라는, 잘 지내길 바란다는 말이 적힌 수많은 포스트잇을 봤을까. 수안은 다른 사람들을 따라 포스트잇을 떼어냈다. 참사가 있고 일곱 달이 지났는데 사람들이 계속 추모 메시지를 붙이고 있었다. 포스트잇 위로 포스트잇이 붙고 또 붙어서, 사람들이 계속 붙일 수 있게 자리를 만들어야 했다. 사람들이 읽기도 하니까 다 떼지는 않고, 수북한 곳에 있는 것들을 훼손되지 않게 떼어주시면 돼요. 비바람에 많이 떨어지니까 그전에 떼서 아카이빙하는 거예요. 재이가 안내하며 했던 말을 상기하며 수안은 위쪽에서 포스트잇을 톡 떼어냈다.
먼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고 현장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얼마나 그 순간이 괴로웠고 힘들었을지 잘 압니다. 부디 지금 있는 곳에서는 평안하길 바랄게요.
당신들의 잘못이 아니고 당신들의 잘못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의 말을 다 무시해도 돼요.
22.11.5.
수안은 이 메시지를 잘 보이는 곳에 다시 붙였다. 두 시간 동안 떼어낸 포스트잇을 재이가 박스에 담았다. 참가자들이 빙 둘러서서 소감을 나눴다. 수안처럼 처음 온 사람도 있고, 두번째, 세번째인 사람도 있었다. 재이와 함께 모임을 이끄는 호연이 중얼거렸다.
오늘 연우도 온다고 하지 않았나?
오후 작업에 온다고 했어요. 사무실로요. 재이가 답했다. 몇은 가고 남은 사람은 근처에서 밥을 먹었다. 식당 메뉴에 대해, 한낮의 이태원에 대해, 알바하고 있는 곳에 대해, 가벼운 대화가 오갔다. 수안의 머리를 보고 민아가 말했다. 노란색 너무 예뻐요. 수안이 손으로 머리를 넘기고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학교 탈출 기념으로 했어요. 사람들이 오, 하고 박수를 쳤다. 사무실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재이는 의자에 앉아 포스트잇을 담은 박스를 무릎에 올려놓고 꾸벅꾸벅 졸았다. 버스 창문으로 5월의 햇볕이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다.
*
연우는 김 네 장을 나란히 깔고, 밥을 한 덩어리씩 올려 고르게 펴며 되뇌었다. 유부, 김치, 샐러드 여덟 줄씩. 유부를 한 움큼 집어 밥 위에 올리면서도 되뇌었다. 유부는 당근, 깻잎, 우엉, 단무지. 연우는 순서대로 스테인리스 통에서 재료를 꺼내 밥 위에 빠르게 올렸다.
김밥 손님을 보내고 연우는 시계를 봤다. 미란은 어디쯤일까, 이제는 출발해야 하는데. 토요일이라 김부장 혼자 두고 나갈 수 없었다. 주말에는 사람들이 밥을 너무 아무때나 먹었다. 연우는 안쪽 테이블로 가서 앉아 창밖을 내다봤다. 김부장이 주방에서 데워 온 국물을 면에 부었다. 이제 좀 손님이 끊기나 싶어 점심을 대충이라도 먹으려고 국수를 한 젓가락 뜨려고 할 때 손님이 들어와서 김밥 스물네 줄이요, 했고, 그 말을 듣자마자 김부장은 연우의 잔치국수에서 국물을 따라내고, 마지막 줄을 쌀 때에야 다시 데웠다. 연우는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미란에게 연락해볼까, 생각하며 국수를 한 젓가락 입에 넣는데 본사에서 문자가 왔다. 결제 금액. 현장학습 때문에 김밥 주문이 많아 금액이 컸다. 김밥은 재료는 비싼데 단가는 낮고 손은 제일 많이 갔다. 평일에 점심 장사 끝내고 가던 수영도 삼 주째 못 가고 있었다.
부장님, 수영을 그만할까봐요.
연우가 힘없이 중얼거리자 젓가락을 하나씩 양손에 쥐고 김치를 찢던 김부장은 단번에 그러지 말라고 했다.
젊을 때 해. 팔다리 힘 있을 때. 맘대로 어디 가지도 못하는데 그거라도 해야지.
연우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서 괜히 면을 휘휘 젓고 있었는데, 손님이 들어와서 재빠르게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라면 물을 올리고, 그릇을 세팅하고, 물이 끓기를 기다리며 생각했다. 미란이 무슨 일이 있나. 어느새 주방으로 들어온 김부장이 옆으로 쓱 다가와 말했다.
나 다 먹었어, 앉아서 더 먹어. 아니면 그냥 가던지. 미란이 곧 오겠지.
김부장은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이러니까 내가 사장 같다 그치?
연우는 이 말이 싫지 않았다. 늦어도 괜찮다고 김부장에게 말하는데, 가게 문이 벌컥 열리고 미란이 가쁘게 숨을 쉬며 들어왔다. 미안해 애아빠가 늦어가지고, 캠핑을 데리고 갈 거면 진작 짐을 싸놨어야지. 연우는 앞치마를 벗으며 물었다. 채윤이는 좋아해? 좋아하지 뭐, 오늘 자고 내일 데리고 온대. 연우는 채윤이 먹으라고 잡채 해둔 거 이따 꼭 가져가라고 말하고 빠르게 가게를 나섰다.
*
포스트잇이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 작은 종이들이 쏟아지며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공간에 퍼졌다. 종이들이 스치고 섞이며, 테이블 위로 쌓였다. 테이블을 빙 둘러 서 있는 사람들은 포스트잇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재이가 박스를 높이 들어 포스트잇을 털어낸 뒤 박스를 내려놓자, 사람들은 손을 뻗어 포스트잇을 한 움큼씩 쥐었다.
포스트잇을 조금씩 가져다놓고 작업해주시면 돼요. 처음 온 정민을 위해 재이가 안내하는 걸 연우는 같이 들었다. 그러고는 포스트잇더미에 손을 훅 집어넣고 한 손 가득 집어올렸는데, 손 아래로 포스트잇이 우수수 다 떨어졌다. 옆에서 포스트잇을 집어올린 정민 손도 비어 있었다. 연우는 정민과 마주보고 웃고, 다시 포스트잇 더미에 손을 훅 밀어넣었다. 낙엽을 가득 쥐는 느낌. 김밥을 쥘 때와 느낌이 달랐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버스럭거리는 종이의 느낌이 좋았다. 움켜쥐면 구겨지니까, 연우는 사람들을 따라서 포스트잇을 양손으로 퍼오고, 바닥에서 쓸어오고, 조금씩 집어 옮겼다.
네 개로 분류해주시면 돼요. 희생자 이름이 적힌 메시지, 생존자가 쓴 메시지, 시민들 메시지, 번역해야 하니까 외국어는 따로.
늦게 온 연우를 위해 재이가 분류 방법을 다시 설명했다. 연우는 화들짝 놀랐다.
이태원 골목에서 한 건 분류 안 하고 막 붙였는데 어떻게 해요.
나중에 다시 하면 되죠.
재이가 허허 웃고 말을 이었다. 이렇게 한 움큼 가져가서 앞에다 놓고, 지저분한 것을 떼어낸 다음에 A4 용지에 붙이면 돼요. A4 한 장에 포스트잇 여섯 장 정도 붙어요. 포스트잇을 집어서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재이의 손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연우는 포스트잇더미로 눈을 옮겼다. 쪼글쪼글하고 구겨진 종이들이 수북했다. 곰팡이 핀 포스트잇이 눈에 띄었다.
이런 건요?
그냥 붙이면 곰팡이가 다른 포스트잇에 퍼져서 따로 모을 거예요.
체계적이 됐네요.
연우는 감탄했고, 재이는 생글생글 웃으며 자리로 돌아가 작업을 시작했다. 사람들의 손이 사부작사부작 움직였다. 기다란 나무 테이블에 여덟 명이 둘러앉아 포스트잇에 적힌 메시지를 읽었다. 분류하려면 읽어야 했다.
너를 떠나보내고 월요일에 학교에 갔을 때, 네 이름이 불렸는데 너가 없어서 빈자리가 굉장히 컸었어. 작년부터 우리 매일 함께 웃고 울고 같이 공부하고 밥 먹고 지냈었던 추억들이 계속 떠올라서 내 마음이 너무 아프고 고통스러워.
너 분명 내가 서울 산다고 할 때 부럽다고 난 언제쯤 서울 가보냐 했잖아. 지난주 금요일 점심시간에 우리 수업 늦게 끝나서 너가 먹고 싶다 했던 떡볶이 못 먹어서 나한테 투덜대고 월요일에는 같이 먹자고 약속해놓고 왜 떠났어?
떡볶이가 먹고 싶어했던 너의 모습이 자꾸 내 머릿속에서 맴돌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이거밖에 없다니 참 마음이 쓰리다. 너가 원하던 떡볶이를 가져왔으니 맛있게 먹고……
연우는 메시지를 읽으며 두 사람이 토닥거리며 사이좋게 걸어가는 모습이 상상됐다. 희생자에게 쓴 편지는 읽다가 자꾸 눈물이 나서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은 조용히 손을 움직였다. 호연이 간식 좀 먹고 하라고 말해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끝까지 읽고도 분류하기 어려운 메시지가 많았다.
이거 생존자가 쓴 걸까요?
수안이 옆에 앉은 멍우에게 포스트잇을 건네며 조용히 물었다. 멍우가 포스트잇을 한참 들여다보고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현장에 계셨던 분 같은데.
연우는 메시지 내용이 궁금했지만 쳐다보지 않았다. 연우는 현장에 있었던 것 같은 메시지는 뭘까, 생각하며 앞에 쌓아놓은 포스트잇을 집어 읽었다.
모두 구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부디 행복 그곳
썼다가 죽죽 그어버린 마지막 줄을 연우는 한참 들여다봤다.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고 쓰려다 지운 걸까. 마음이 좋지 않았고, 현장에 있었다는 말은 없었지만, 현장에 있었던 사람 같았다. 수안이 본 메시지도 이랬을까. 연우는 포스트잇을 계속 집어 읽었다.
아직도 분노가 치밀고 미칠 듯이 화가 납니다.
안녕히 가세요. 쓰고 보니 안녕이란 말이 영 어울리지 않지만, 가시는 길만큼은 평안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2022년 10월 29일 밤을 잊지 않을게요.
마음이 너무 좋지 않아 오게 되었어요……
너무 미안해요……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히 쉬시길.
나는 놀다 가서 미안해. 호야. 다음에 같이 보자 미안해.
it was a pleasure meeting you Stine. see you one day. hugging you tight. ♥ -Maria
그때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그때 상황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이렇게 술이라고 드리러 왔어요. 곧 빼빼로 데이라 이렇게라도 드시라고 가지고 왔어요. 부디 그곳에서 고통과 아픔 없이 편안하시길……
아이들아 미안하다 늙으니들 우리가 대신 죽어주어야 하는돼
영원에서 편히 쉬어라 천당과 천국에서 잘 지내주거라
이 땅의 젊은이들이여 잘 가시게…… 미안하고 또 미안합니다.
남은 이들이 여러분을 기억하고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들겠네. 좋은 곳으로 가시게……
세월호 때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는데……
지금 또……
연우는 작업을 처음 하는 기분이었다. 이태원 골목에서 할 때는 춥고 바람이 많이 불어 포스트잇을 빨리 붙여야 한다는 생각에 메시지들을 제대로 읽지 못했다. 편의점 사장님이 내준 음료수도 마시지 못했다. 연우는 쏟아지는 말들에 정신이 없었다. 이 메시지를 쓴 사람들이 지난겨울 무심하게 길을 걸어가던 사람 중 한 명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12월. 점심 장사를 끝내고 수영 가방을 들고 가게를 나선 날이었다. 코로나가 끝나고 사정이 조금 나아지자마자 연우는 주방에 사람을 구하고 브레이크 타임을 제안했다. 점심 장사가 끝난 세시부터 다섯시까지.
낮에 나가고 싶었다. 김밥 작업대에 서서 전면 유리로 밖을 보면 나가고 싶었다. 연우는 그 유리가 스크린 같았다. 사람들은 오른쪽에서 나타나 왼쪽으로 사라졌고, 왼쪽에서 나타나 오른쪽으로 사라지며 뭔가를 했다. 가게 앞을 얼쩡거렸고, 서로 토닥거리고 손을 잡고 킥보드를 타고 신나게 어디론가 갔다. 사람들을 구경하다보면 저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가게에 있으면 드라마 세트장에 있는 것 같았다. 연우는 혼자 가게 안을 빙글빙글 돌고, 손님은 계속 문을 열고 들어온다. 뭐 드릴까요, 라면 하나요, 맛있게 드세요. 뭘 먹으려는 사람들이 하루종일 들어왔다. 허기진 손님은 앉아서 눈으로 연우를 좇았고, 연우는 시선을 느끼며 음식을 만들었다. 몸도 정신도 가게 안을 빙글빙글 돌았다. 뉴스에서 본 게 떠올라 생각에 잠기다가도 손님이 오면 주방으로 갔고, 아득한 기분이 들다가도 손님이 부르면 정신을 가게 안으로 끌고 왔다. 밤에 불을 끄고 밖으로 나오면 그제야 긴장이 풀렸다.
수영도 다시 하고 싶었다. 새벽 수영을 가려고 해봤지만 매번 실패했다. 그래서 김부장에게 브레이크 타임을 갖자고 한 건데, 김부장은 그러지 말라고 했다. 동네 장사인데 그러면 손님 다 놓쳐, 점심시간 끝나면 내 혼자 볼 수 있으니까 미안하면 간식 하나 사다주고. 그렇게 연우는 일주일에 두 번, 낮에 수영장에 갈 수 있었다.
한낮에 밖으로 나가 쨍한 햇살을 받고, 사람이 많은 길을 걷고, 물속에 들어가는 모든 순간이 가슴 벅찼다. 바람이 느껴지고,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눌러놓은 생각들이 올라왔다.
새벽에 재료 준비할 때 틀어놓은 팟캐스트에서 이태원 얘기가 나온 날이었다. 점심 장사를 마치고 수영 가방을 들고 나와 길을 걸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사람들이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둘, 셋 무리 지어 웃으면서, 통화하며 빠른 걸음으로, 먹을 걸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연우는 갑자기 이 순간이 연극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이 인도를 바쁘게 지나가는 역할을 맡은 배우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지? 한 달 전에 사람이 그렇게 죽었는데. 서류 가방을 들고, 마트 봉투를 들고 사람들은 바삐 걸어갔고, 길가에는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모두 자신의 일상을 살고 있었다. 말끔하게 머리를 손질하고, 예쁜 옷을 입고, 바람에 옷깃을 여미고, 어디론가 걸어가는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무심하게 생생했다. 참사를 잠깐 잊은 게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연우는 세상의 진짜 모습을 본 것 같았다. 사물함 열쇠를 받으며, 그 생각을 하며 자신도 걸어서 수영장에 왔다는 걸 깨달았다.
연우는 그날 밤에 미란에게 연락해 이태원에 다녀왔다. 미란은 참사가 일어나자마자 다녀왔다. 미란은 늘 생각한 건 빠르게 행동으로 옮겼다. 결혼도, 아이도, 이혼도.
가서 뭘 하지? 걱정하는 연우에게 미란은 그런 건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미란 말이 맞았다. 남들이 해놓은 것처럼, 포스트잇에 추모 메시지를 쓰고, 편의점에서 음료를 사다놨다. 그후로도 연우는 가끔 이태원에 갔다. 미란이 떨어진 포스트잇을 주워 분향소에 가져다줄 때 같이 가기도 했고, 골목 바닥에 앉아 포스트잇 정리하는 사람들을 우연히 마주쳐 돕기도 했다. 근처 편의점 사장님이 내어준 테이블에서 작업하다가, 한동안 못 가고 장소를 사무실로 옮긴 뒤로는 처음 온 것이었다.
이런 마음들로 살고 있는 걸까. 서류 가방을 들고, 코트 깃을 여미고, 마트에서 장을 보는 사람들도 버티고 있는 건지 몰랐다. 이태원 골목이나 이곳에 와야만 이 마음을 볼 수 있는 게 안타까웠다. 비난의 말은 인터넷에서 한없이 퍼지는데, 추모의 말은 벽에 붙어 있었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속으로는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른다는 느낌을 계속 받고 싶었다.
네시가 되자 재이가 기지개를 켜며 마무리하자고 말했다. 연우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아침 열시에 이태원에서 만나 수거하고 지금껏 작업한 사람도 많았다. 연우는 더 빠르게 손을 놀렸다. 손님이 밀렸을 때 김밥을 싸는 것처럼. 늦게 와 얼마 하지도 못했는데 테이블에 쏟아놓은 거라도 끝내고 싶었다. 테이블 위에 흩어져 있는 포스트잇이 아직 많았다.
사람 많아서 다 할 줄 알았는데. 수안이 중얼거리자 민아가 말했다. 종이가 겹쳐 있어서 양이 많아요. 사람들이 손을 놓지 않자 호연이 사무실 구석을 가리키며 명랑하게 말했다. 우리 어차피 할 거 아직 많아요. 쌓여 있는 박스를 본 사람들이 아, 하며 정리를 시작했다.
곰팡이 핀 거.
수안이 곰팡이 핀 포스트잇을 민석에게 건네자 여기도, 이것도 하며 대각선 끝에서부터 시커먼 종이들이 민석에게 전달됐다. 연우가 모아놓은, 곰팡이가 핀 포스트잇 뭉치를 들고 물었다. 이걸 저분에게 줘요?
곰팡이는 민석 활동가에게 주면 돼요.
호연의 말에 민석이 당황해 말했다. 아니, 곰팡이를 주는 게 아니고. 사람들이 웃었는데, 연우는 활동가라는 말이 낯설어 고개를 갸웃했다. 연우 표정을 본 수안이 덧붙였다. 이분이 곰팡이를 제거해서 가져오신대요. 연우는 이해한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호연이 앞으로의 계획을 차근히 설명했다. 일 주기까지 끝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될까? 연우는 의문이었다. 지금이 5월이니 일 주기까지 다섯 달 남았는데, 한 달에 두 번 만나 이 속도로 저 박스에 있는 걸?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소감을 말하고 마치자는 제이의 말에 사람들이 다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연우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어떤 사람들일까. 늦게 와서 자기소개를 놓쳤는데 기대가 됐다. 야간근무를 하고 새벽에 잠들어 늦었다는 사람은 다음에 더 많이 하고 싶다고 했고, 기록물 관리를 공부하는 대구에서 온 학생은 같이 해서 좋았다고 했다. 이태원에 자주 간다는 사람은 이태원 곳곳이 생각났다고 했고, 휴직했다는 사람은 계속 오겠다고 했다. 말이 끝날 때마다 사람들은 두 손을 모아 작게 톡톡톡, 박수를 쳤다. 내내 조용하던 사람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비슷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이 모임을 알고 있었는데, 오는 게 쉽지 않았어요, 계속 망설였는데, 오늘 메시지를 읽으면서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위로받고 가는 거 같아요.
연우는 손끝으로 박수를 쳤다. 같이 온 친구가 말했다. 오늘 처음 왔는데 또 오고 싶어요. 사람들이 와, 하고 박수를 쳤다. 말을 짧게 하면 짧게 하는 대로, 길게 하면 길게 하는 대로,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두는 분위기가 연우는 좋았다.
앳된 얼굴의 사람 차례였다.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말을 하지 않았다. 연우는 기다리지 않는 것처럼 기다렸다. 한참 침묵이 이어졌고, 앳된 얼굴의 사람이 입을 열었다.
저는 제가 세월호 세대라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세월호 사고가 나고 이십대 되니까 이태원 사고가 났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한동안은 뉴스를 안 봤어요. 여기 메시지에서 자기는 또래를 두 번 잃었다고 쓴 걸 봤는데……
앳된 얼굴의 사람이 쉬지 않고 말하다 흐느껴 울었다.
*
나는 아직도 텔레비전에서 본 자막이 선명하게 기억나. 전원 구조. 얼마나 안심했는데. 역시 대한민국. 그랬는데. 그때 내가 거실에서 한입 베어 문 사과를 들고 그걸 보고 있었어.
세월호 얘기가 나올 때마다 미란은 전원 구조라는 자막을 본 순간을 애기했다. 연우는 그 순간이 기억나지 않았다. 미란은 거듭 말했다.
2014년 4월 16일에 자신이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한국 사람이 있을까, 배가 침몰하는 뉴스를 보던 순간을 말이야.
연우는 기억나지 않았다. 미란의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난 어디서 뭘 하고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생각나지 않았다. 전 국민이 기억하는데, 이렇게까지 아무 기억이 없는 건 좀 이상한 일이었다. 뉴스를 안 보거나 보고도 충격받지 않은 건가 싶었고,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즈음 연우가 하던 일들을 떠올리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거나 병원 어디에 있었겠지, 하며 생각을 접었다. 연우에게 2014년은 엄마를 간병하다 사라진 해였다. 그해 연우는 어떤 식으로든 이 상황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기억 담기 모임에서 앳된 얼굴의 사람이 세월호 얘기를 하며 흐느껴 울 때, 연우는 자신이 겹쳐 보였다. 안쓰러워서 도닥여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어느 영상에서 세월호 희생자들이 구조하러 온 해경을 보고 배 안에서 창문을 두드리는 걸 봤을 때도 연우는 자신이 겹쳐 보였다.
그래도 네가 그 아이들 같다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언젠가 그 얘기를 했을 때, 미란은 말했다. 너는 살아 있잖아. 내가 겪을 수 있는 일이었다고 하는 건, 나를 걱정하는 말 같아. 애들이 죽었어.
연우는 갑자기 서러움이 올라와서, 내 인생이 그랬어, 나를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나는 너무 혼자야, 하고 눈물을 쏟으며 말했고, 당황한 미란은 그래도 엄마가 있지 않았냐고, 돌아가셨지만 널 이만큼 키워주지 않았느냐고 다독였다. 그날의 대화 이후, 미란은 연우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가끔 그날을 떠올리면 미란에게 미안했고, 자신의 말이 과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말해버린 걸 후회하진 않았다.
토요일에 기억 담기 모임이 끝나고 가게로 돌아와 미란과 김부장을 들여보낸 뒤 뒷정리를 하고 집에 들어온 연우는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다음날 한낮에 일어나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쉬지 못했지만, 월요일에 가게 나오는 게 힘들지 않았다. 뭔가 중요하고 좋은 일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고, 세트장을 뱅뱅 도는 느낌도 덜했다. 월요일 점심 손님들은 밥 먹으며 주말에 몰아 본 드라마나 여행 다녀온 얘기를 했는데, 그 얘기도 다른 때보다 기분좋게 들었다.
김밥 냉장고를 정리하고 한숨 돌리는데 미란이 들어왔다. 미란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와서 같이 점심 먹고 채윤이를 데리러 갔다. 난장판이 된 홀을 보고, 빈 그릇을 주방으로 옮기며 말했다.
이렇게 장사가 돼도 남는 게 없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김부장님은 어디 가셨어?
쓰레기 버리러.
너 모르지. 횟집에서 일할 때, 회 뜨는 애 부장이고 스끼 내는 애 과장인데 부장님은 설거지한다고 아줌마라고 했대, 과장 쉬는 날에 스끼도 부장님이 내고 직원 밥도 부장님이 했는데, 지들끼리 부장님 과장님, 웃기지.
미란은 정신없이 말했다. 저 얘길 김부장과 언제 한 걸까. 미란에겐 좋은 사람과 싫은 사람이 분명했다. 김부장이 나이가 많아 고민했을 때도, 미란은 잘라 말했다. 휘둘려도 경험 많은 게 나아. 안 휘둘리고 망하는 거보다.
김부장이 양념이 눌어붙은 치킨 박스를 들고 들어왔다. 미란이 박스에 고여 있는 벌건 양념을 보고 인상을 썼다. 김부장은 박스를 씻고, 대출 광고 메모지 뒷면에 글을 썼다. ‘양념 치킨에 양념 닦아서 넣으세요.’ 김부장이 말했다. 이대로 재활용에 넣으면 썩어서 분리수거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냄새 때문에 숨도 못 쉬어. 벌레 끓고 가스 나오고. 불나면 큰일나.
긴급 대출 전화번호가 비치는 흰 종이에 매직으로 쓴 글씨가 반듯했다. 연우는 추모 메시지가 적힌 색색의 포스트잇과 편지지가 떠올랐다. 김부장은 잘못된 재활용 쓰레기를 볼 때마다 뭘 써서 갖다붙였다.
테이블에 휴대용 버너를 놓고 그 위에 두부전골을 올렸다. 보글보글 끓는 두부전골과 감자전을 연우와 미란은 정신없이 먹었다. 김부장이 불을 줄이며 오늘 온 당근채가 안 좋다고 말하고, 연우가 한숨 쉬자, 미란은 계약 끝나면 독립하라며 작년에 다른 지점 김밥 식중독 걸려서 연우까지 힘들었던 얘기를 또 했고, 개인 김밥집 하면 쓸 이름도 얘기했다. 본사 지원 없이 이 많은 메뉴를 어떻게? 연우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김부장님 있잖아, 메뉴를 줄여. 미란은 거듭 말했다. 독립하고 여행 가자. 채윤이랑. 채윤이 아빠한테 가면 우리끼리 일박 이일도 가고.
연우도 여행이 가고 싶었다. 점심때 손님들 얘기를 들으며 여행지 리스트도 만들어 놨다. 프랑스 가정식 전문점에서, 타코 전문 식당에서 ‘메뉴 개발을 위한 현지 출장으로 3주간 휴무합니다’라고 써놓은 걸 보면 부러웠다. 쉴 수 있는 배짱이, 수익이, 구조가, 간섭 없음이. 김밥집을 하고 자유가 사라졌다. 연우는 미란에게 다음 토요일에 두 시간 일찍 올 수 있는지 물었다. 어, 왜? 오후 작업 시작 전에 밥 같이 먹는다고 해서. 돼, 애 보내고 바로 올게. 고마워. 네가 돈도 주는데 뭐, 그리고 나 김밥 싸는 거 좋아해, 채윤이 아빠한테 보내면 생각이 너무 많아지거든.
저녁 장사 전에 연우는 문구점에 가서 두꺼운 매직펜과 빳빳한 종이를 몇 장 사다놓고 김부장에게 말했다. 부장님, 이거 쓰세요, 그래야 오래 붙어 있고 잘 보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