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죽으면 현장에 와서 추모하고 메시지 써서 붙이잖아. 그거 보존하는 거야.
잭과 운미는 방금 나온 김치전과 녹두전을 찢어 친구들 접시에 올려주며 수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사이와 정아도 휴대용 버너 불을 켜고 칼국수를 휘저으며 차례로 물었다. 그 모임은 얼마나 자주 가? 나도 갔을 때 포스트잇에 썼어. 왜 가는 건데? 손을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수안의 일에 관심을 표현하는 걸 잊지 않았다. 친구들은 추모 메시지 보존을 왜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이 활동을 낯설어했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고 수안은 느꼈다. 그래서 수안도 간단히 말하고 넘어가려고 내가 왜 슬픈지 모르겠어서, 라고 했는데 정아가 다시 물었다.
왜 슬픈지가 왜 궁금해?
수안은 얼마 전 버스 정류장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버스 노선을 묻는 할머니에게 반대쪽에서 타야 한다고 말하고 할머니가 횡단보도 쪽으로 절뚝이며 걷는 걸 보고 있었다. 횡단보도도 혼자 뒤쳐져서 걸어서 힘들겠다, 저러다 신호 바뀌고 사고라도 나면…… 이렇게 생각하다 깜짝 놀랐다. 할머니가 차에 치여도 울 것 같지 않았다. 놀랄 거 같은데, 슬플 것 같지는 않았다. 며칠 전에 추모 메시지 보면서는 울었는데. 그리고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을 둘러봤는데, 이 사람들이 지금 죽어도 슬플 것 같지 않았다. 이 얘기를 하자 운미가 의아해했다.
그럴 수 있지. 모르는 사람들이잖아.
난 세월호 아이들도 아무도 몰라. 그런데 추모제에 가서 통곡하듯이 울었단 말이야.
세월호가 바다에 빠지고 한동안 수안은 바다에서 아이들을 끄집어내는 상상을 했다. 목덜미든 손목이든 어디든 잡아서 물속에서 아이들을 끄집어냈다. 물 밖으로 나온 아이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땅에 살포시 내려앉아 모여 웃고 떠들면 수안은 그 아이들의 숫자를 셌다. 아직 남았어. 바다 한가운데서 다시 물속에 손을 넣어 헤집고 손끝에 뭔가 닿으면 더 깊게 팔을 넣고 어깨를 넣고 머리를 넣다가 숨이 막히는 느낌에 고개를 흔들며 상상에서 빠져나왔다. 가끔은 꿈을 꿨다. 배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등짝을 때리며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고 나가라고 소리쳤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아이들에게 이러다 다 죽는다고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고통스러울 거라고 제발 빨리 나가라고 애원했다. 어느 날은 학교 교실에 물이 차올라서 얼굴이 천장에 붙고 코에 물이 들어와 꺽꺽대다 잠에서 깼다.
기억이 더 선명한 건 배가 침몰하고 며칠 뒤 콩나물국밥집에서 나눈 대화였다.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동료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 벽에 걸린 텔레비전에서 세월호 수색 소식이 나왔다. 기자가 다급하고 상기된 목소리로 배 안에서 생존자를 수색하고 있다고 전하는 동안 화면에는 찍어놓은 영상이 반복해서 나왔다. 배가 바다 위에 있다가, 기울어졌다가, 사라진 장면이 반복됐다.
수안은 고개를 숙이고 괴로운 얼굴로 속삭였다.
이미 죽은 거 아니에요? 며칠이 지났는데.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무도 그 말을 안 하고……
동료가 놀란 얼굴로 수안을 봤다가 고개를 숙이고 젓가락을 집으며 말했다.
그렇죠 뭐.
국밥이 나와 식탁에 놓였다. 수안은 수저를 내려놓고 텔레비전을 봤다. 숨이 가빴다. 살아 있을까. 숨이 가빴다. 죽었겠지. 숨이 가빴다. 죽었을 것 같은데, 위에서는 지시하고, 잠수사는 바다로 들어가고, 기자는 보도하고, 수안은 보고 있었다. 수안은 이 상황이 부조리극처럼 느껴졌다.
왜 친하지도 않은 동료에게 속마음을 말했는지 수안은 아직도 이해되지 않았다. 날씨가 화사한 날이었고, 카페에 손님이 많아 정신없이 커피를 뽑아댄 날이었다. 국밥집이 손님들로 가득차 시끌벅적했다.
얼마 뒤 수안은 분향소에 가서 삼백 개 넘는 희생자 사진을 보고 펑펑 울었다. 끝없이 늘어져 있는 얼굴 사진을 보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물속에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숨을 못 쉬고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상상됐고 코로 물이 들어가고 꺽꺽대며 죽어가면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상상하면서 내 동생이, 내 아이가 이렇게 죽으면 나는 못 견딜 거 같은데 하면서 아이가 죽는 걸 상상하고 너무 슬플 거 같은데 미쳐버릴지도 모르는데 하면서 한참을 울다가 정신이 들었다. 이 고통을 음미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수안은 그뒤로 추모제에 가지 않았다.
세월호 세대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이 흐느껴 울 때, 수안은 그 사람 얘기를 듣는 것에 몰두하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아이들을 꺼내는 상상과 국밥집에서의 대화와 희생자 사진 앞에서 울던 자신이 떠올라 그 사람 얘기와 수안의 얘기가 머릿속에서 엉켰다. 수안은 차례가 돌아왔을 때 그 얘기를 하고 싶었다. 나도 세월호가 생각난다고. 국밥집에서의 감정을 모르겠다고. 화가 났는데, 나라가 구조를 못해서만은 아니었다고. 그런데 말하지 못하고,
추모를 뭔가 하고 싶었는데 같이 하니까 좋았어요.
하고 소감을 말하고 톡톡톡, 박수를 쳤다. 이 말이 거짓은 아니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어땠을까. 박수와 고개 끄덕임과 침묵 아래 있을지 모를 말이 수안은 궁금했다. 침묵 아래 있는, 어쩌면 근데, 로 시작하는, 그런 말이 쏟아져나올 걸 상상하면 긴장됐다. 수안 얘기를 듣고 친구들이 한마디씩 했다. 그래, 우선 계속 가봐, 나도 한번 가봐야 하는데.
*
재이_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번주 기억 담기 활동 신청자가 1명밖에 없네요 ㅜㅠ……
2023.7.5.
자원 활동가 채팅방에 재이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유가족 간담회도 진행하니 많은 분이 참여하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수안이 처음 간 날 재이는 채팅방에 초대해도 될지 물었다. 일정이랑 활동 사진이 올라와요, 많이 올라오진 않을 거예요, 부담 갖지 말고 언제든 나가셔도 괜찮습니다, 하하하. 맑고 편안한 초대였다. 재이의 글에 OK 모양의 이모티콘과 우는 얼굴 이모티콘이 찍혔다. 못 가서 미안하다는, 신청을 깜빡했다는 메시지도 연달아 올라왔다.
토요일 두시, 넓고 긴 테이블에 빈자리 없이 사람들이 둘러앉아 포스트잇을 쌓아놓고, 먼지를 털고, 읽고, 붙였다. 조금 늦는다는 연우의 메시지가 채팅방에 올라왔다. 네시에 희생자의 언니가 오기로 되어 있었다.
희생자의 언니와 사람들이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사람들이 유가족협의회를 궁금해했다. 희생자가 젊은 사람이 많아서 형제자매 유가족도 이삼십대가 많아요, 사회생활 시작하는 때라 유가족 활동할 시간이 부족해요. 언니는 조곤조곤 말했지만, 동생 얘기를 하면서는 울먹였고, 지쳐 보였고, 안쓰러웠다. 진상 규명에 힘을 너무 많이 쓰는 거 아니냐고 누가 물었다. 국회 앞에서 시위하고, 삼보일배하는 유가족을 보면 수안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차라리 여기 와서 이 작업을 같이 해요, 와서 위로받았다는 사람도 많았어요, 라고 수안은 말하고 싶었다. 가족이 죽은 슬픔만으로도 힘들 텐데. 남은 사람이 회복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았다. 언니 대신 호연이 답했다.
진상 규명이 안 되면 싸우게 되거든요, 원인을 모르고 책임자가 없으니까 생존자도 유가족도 서로 탓하고, 자신을 탓하고.
희생자의 언니가 포스트잇 작업을 물었고, 재이가 설명했다. 언니가 감사 인사를 했다.
유가족도 아니신데 이렇게 와주시고. 어떻게 하게 되셨는지…… 돈이 되는 일도 아닌데 이런 자본주의 시대에.
언니는 거듭 말했다. 할일도 많고 생계로 바쁘실 텐데, 이렇게 돈도 안 되는 일을, 저도 이 일을 겪기 전에는 이런 걸 몰랐어요. 유가족이 해야 되는 일인데 대신 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거듭되는 감사 인사에 사람들은 입을 떼지 못했다. 호연이 말했다.
저희가 좋아서 하는 거예요, 이걸 해야 살 것 같아서.
수안은 몸 둘 바를 몰랐다. 작업을 할 때마다 궁금했다. 유가족은 왜 안 올까. 왜 이건 유가족의 일이 아닐까.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쓴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가 이렇게 많은데.
추모 메시지 보는 걸 유가족이 아직 힘들어해. 언니가 돌아간 뒤 호연이 말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희생자가 진짜 159명인지 알 수 없어. 수안은 머릿속에 숫자를 띄웠다. 확인된 사망자 159, 골목에 끼어 있던 사람은 몇 배, 가까운 골목에 있던, 목격한, 구조하던 사람을 더하면 몇천…… 여기에 가족과 친구를 곱하면. 숫자가 계속 커졌다. 호연이 중얼거렸다. 살아서 돌아간 사람을 파악을 안 했어, 160번째 희생자가 없을 거라고 어떻게 장담해.
죽음 직전까지 간 공포가 있고,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수안은 처음 목격한 죽음을 떠올렸다. 열일곱 살에, 염할 때 본 할아버지 하얀 얼굴, 불 속으로 들어가는 관, 그 안에 할아버지가 있다고 통곡하던 자신. 수안은 한동안 그때 본 죽음의 광경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좋은 기억이 더 많았고, 할아버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알고 난 뒤 더 자주 할아버지를 보러 갔던 기억과 할아버지와의 추억과 가족들과 나눈 얘기를 뒤섞으며 천천히 이별했다. 열심히 살겠다고 약속했다. 기억하겠다고 다짐하지 않았다.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우리 강아지 왔느냐며 두 팔 벌려 안아주던 할아버지를. 생각하지 않는 순간은 있어도, 망각하지는 못할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없는 건 수안의 현재니까, 수안은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걸 잊을 수 없었다. 사람은 죽게 되어 있고, 수안도 죽을 것이었다. 할아버지도 자신의 할아버지가 죽었을 때도 살아갔고, 그러다 수안의 할아버지가 된 거니까, 할아버지가 죽었어도 자신은 살고 있다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걸 수안은 받아들였다. 그런데 이태원에서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은.
오늘 활동 후기 써주실 분 계실까요. SNS에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요.
재이의 물음에, 서울에서 먼 지역의 학교에서 일하게 되어 앞으로 오기 힘들다고 했던 민아가 손을 들었다. 제가 쓸게요, 그리고 휴가 때 올게요. 와, 하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연우도 박수를 치며 연우의 이십대를 생각했다. 언니 오빠 동생이 죽고 혼자 남으면 어떨까. 미란이 죽으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후기를 기꺼이 맡았다. 작업할 땐 별로 말이 없으니까, 후기를 읽으며 다른 사람 마음을 알게 돼서 연우는 좋았다. 연우도 언젠가 후기를 써보고 싶었지만 자신 없었다. 희생자의 언니가 계속 감사하다고 한 이유를 연우는 알 것 같았다. 자원봉사라는 말을, 자신만 쓰고 있는 걸 어느 순간 알아차렸다.
몇 주 뒤에 희생자의 언니가 작업을 하러 왔다. 언니는 메시지를 읽으면서 자꾸 울었다. 사람들은 언니를 보지 않고 작업을 이어나갔고, 호연은 휴지를 건넸다. 언니가 한참 울다가 하, 왜 자꾸 눈물이 나지, 하고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럴 땐 외국어 메시지를 하면 돼요.
호연이 명랑하게 말하며 가지고 있던 외국어 메시지를 건네자, 사람들도 기다렸다는 듯이 모아둔 외국어 메시지를 언니에게 건넸다. 여기 아주 많네요, 하고 재이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재이의 양손에 가득 담긴 포스트잇을 사람들이 받아 옮겼다. 테이블 위로 바쁘게 종이가 전달됐다. 영어, 일본어, 태국어, 중국어, 아랍어가 적힌 포스트잇.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메시지였다. 한참 동안 외국어 메시지를 붙이던 언니가 웃으며 말했다.
이게 진짜 효과가 있네요.
호연이 말했다. 눈물을 흘릴 수가 없죠?
작업이 끝나자 사람들이 하나둘 소매를 걷고 싱크대로, 화장실로 갔다. 연우가 우두커니 서 있는 언니에게 다가가 말했다.
손 씻어야 돼요.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올리던 민석이 지나가다 말을 보탰다. 포스트잇이 길에 오래 붙어 있어가지고, 먼지랑 곰팡이랑 균을 손으로 계속 만진 거예요. 언니가 양손을 내려다보고 놀라며 싱크대로 갔다. 밖에서 통화를 하고 들어온 호연이 안을 둘러보고 말했다.
다영씨 어디 갔어?
연우가 손으로 싱크대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손 씻으러. 돌아가며 소감을 말한 뒤, 시간이 되는 사람은 같이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호연이 말했다. 활동가들 밥은 먹여야지, 다영 씨 시간 괜찮아요? 요즘 보고서 마감 기간이라 다시 들어가서 일해야 돼요. 연우는 아쉬웠다. 연우는 활동가라는 호칭이 익숙해졌다. 사무실을 나서며 포스트잇이 담긴 박스를 세어봤다. 일 주기까지 할 수 있을까? 일 주기가 석 달 남았다. 7월의 햇볕이 따가웠다.
*
일 주기까지 안 되겠네요. 테이블 가운데 수북하게 쌓인 포스트잇을 보고 수안이 말하자 연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 세번째 참여인 지윤도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일 주기가 다가오니 1번 출구 벽에 붙는 메시지도 많았다. 기억 담기 참여자도 늘었다.
수안은 자리에 앉아 앞에 가져다놓은 포스트잇에서 핑크색과 민트색을 골라 집었다. A4에 핑크와 민트를 지그재그로 붙이면 보기 좋았다. 모래와 흙이 포스트잇에 말라붙어 지저분했다. 톡톡톡. 손가락으로 튕겨도 모래가 떨어지지 않아서 칼끝으로 모래 알갱이를 긁어내고 흙가루도 살살 긁는데, 긁다보니 종이 표면이 일어났다. 잉크도 벗겨졌다. 흙을 더 긁어낼까 글씨를 살릴까. 지난번에는 칼로 긁다가 종이를 찢었다. 수안은 칼을 놓고 볼펜을 들어 글씨에서 잉크가 벗겨진 곳을 칠했다. 맞은편에 앉은 연우가 눈을 질끈 감고 눈물을 흘렸다. 수안이 쳐다보자 변명했다. 우는 거 아니고 먼지 불다가 눈에 뭐 들어간 거예요. 연우가 계속 재채기를 해서 수안은 가방에서 마스크를 꺼내 건넸다. 수안은 처음보다는 깔끔해진 포스트잇의 구깃구깃한 모서리를 손끝으로 폈다.
제가 복수해줄게요
지켜봐요 편하게
숨통 트이는 곳에서 항상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
기도해줄께요
2022년 11월 5일
그곳에선 행복하세요. ―민이의 서울 나들이 세번째 날에. 이태원 참사 현장에 들르다
다섯번째 와봤습니다.
상권이 죽었네 난리친다는 사람. 녹사평에 있는 그 차량. 현수막. 신자유연대니 하는 그 인간들 천벌받을 겁니다.
나도 그날 이곳에 있었어. 두세 시간 남짓한 차이로 나는 살아남았어. 단순한 우연으로 너희들을 핑계 삼아 내가 삶에서 도망치려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어. 내가 너무 비겁하고 후진 것 같아서 너희들을 마주하기도 참 미안해. 그래도 그냥 꼭 와 봐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왔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무 말도 그 어떤 말도 건넬 자격이 없는 것 같아서 나는 그냥 눈에 담고 갈게. 너희들을 우리가 감히 교훈 삼아야 할까. 나는 그냥 너희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윤석열 김건희 일당을 단죄해 억울함을 풀어드리겠습니다.
미안해. 너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아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일마저도 결국 남은 우리를 위한 일뿐인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
그러니 이제 이곳의 일은 남은 우리의 몫이니까 그날의 일들 그날의 고통들 다 남김없이 미련없이 잊고 부디 좋은 곳에 가서 아무 일 없던 듯 웃고 있으면 좋겠다. 날이 점점 추워져…… 그러니까 이제 미련 없이 떠나 그곳에선 잘 지내. 우리도 우리를 위해 이제 남은 일을 할 테니까…… 잘 가 안녕.
그곳에선 재밌게 놀아요.
매일이 축제처럼.
당신들의 고귀한 희생을 발판 삼아
더 좋은 곳일 수 있게 잊지 않고 싸우겠습니다.
억울하게 돌아가신 영혼들이여.
그들을 벌하여 주시옵고.
나라를 구해주소서.
돌아가신 분들에게 나라를 구해달라고 하는 걸까? 영혼들이여 뒤에 마침표가 있으니까 뒷말은 신에게 하는 걸까, 수안은 생각했다. 포스트잇을 깨끗이 하는데 정신이 쏠려 있다가도 메시지를 읽으면 자주 멈추게 됐다. 당연한 건데 새삼 깨달았다. 이 슬픔은 하나가 아니구나. 사람들은 각자 다른 이유로 슬퍼하고 화내고 뭘 느끼고 있었다. 이 생각을 하며 포스트잇을 A4에 붙이는데 연우가 포스트잇 한 장을 내밀었다. 이 말 되게 좋은 거 같아요, 정직하게 분노하고 슬퍼하겠다는 말.
미안합니다.
당신들을 조롱하고 탓하고 자극적으로 소비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목소리가 당신들이 있는 곳에는 닿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상은 점점 더 위험하고 혼란스러운 곳이 되어가고 아무래도 지금보다 좋아지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그래도 조금만 다시 아기로 이 세상에 돌아오셔서 그날 밤에 느끼셨던 공포와 고통은 다 잊고 잃어버렸던 남은 생을 다시 온전하고 걱정 없이 찬찬하게 누리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가실 수가 있는지…… 말도 안 되는 일이 자꾸 일어나지만 절대 무뎌지지 않고 정직하게 슬퍼하고 분노하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안전한 세상이 되길. 안전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렇게 무거운 것인 줄 미처 몰랐어요.
그 무엇을 해도 떠나간 당신은 돌아오지 못하시지만,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또 다른 당신들을 돌보고 지키겠습니다.
고통 없는 곳에서 행복하세요.
그러네요, 하고 수안은 연우를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 A4에 붙여놓은 포스트잇들을 다시 읽었다. 수안이 하고 싶던 말과 피하고 싶던 말과 수안에게 필요한 말이 엉켜 있었다. 사람들은 이미 다른 얘기를 조금씩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색깔을 맞춰 붙인 종이가 빠르게 쌓였다. 네모 모양의 포스트잇을 다 붙이니 모양이 제각각인 종이가 남았다. 줄이 쳐진 큰 포스트잇과 별과 하트 모양 포스트잇, 그림이 있는 메모지와 편지지, 출력해온 종이와 코팅해온 종이들…… 수안은 이 종이들을 A4에 이리저리 배치했다.
압사 관련 예방 교육을 실시해주세요.
제가 그 상황에 있었더라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도움을 주세요.
수안은 호연을 불러 물었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쓴 메시지인데, 학교하고 이분 이름도 쓰여 있는데, 그대로 붙여? 호연이 답했다. 이름 가려달라고 메모되어 있는 것만 가리고 다른 건 그대로 붙이기로 한 거 같아, 글쓴 사람이 공개된 장소에 붙인 거니까.
수안은 이 메시지를 A4에 붙이고 사진 찍어 채팅방에 올렸다. 사람이 많으니 속도가 붙었다. 끝날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 쏟아놓은 포스트잇을 다 끝냈다. 사람들이 재이를 쳐다보자 재이가 벽에 기대 세워놓은 우드록 무더기를 가리켰다.
연우는 고개를 들어 재이가 가리키는 곳을 봤다. 흰색의 커다란 스티로폼에 포스트잇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재이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이걸 떼어야 할 거 같아요.
사람 키만한 우드록을 휙 들어 테이블에 올려놓고, 두세 명씩 달라붙어서 포스트잇을 뜯어냈다. 딱 붙어 있어 잘 뜯기지 않았다. 연우는 포스트잇을 칼로 도려내고, 손으로 파냈다. 손끝이 아렸다. 포스트잇에 붙어 뜯겨나온 스티로폼조각을 칼로 긁어내다 종이에 구멍이 나면 손끝으로 긁어내다 손이 아프면 다시 칼로 긁었다. 종이 찢어지는 소리, 한숨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한 시간쯤 흘렀을 때, 지윤이 물었다. “도대체 이 포스트잇은, 왜 우드록에 붙어 있는 거예요?”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리고 시민대책위에서 활동하는 호연을 쳐다봤다.
저희도 몰라요, 초기에 시민들이 이렇게 모아주신 거예요.
호연이 말끝을 흐리자, 사람들이 눈을 가늘게 뜨고 연우를 쳐다봤다.
저도 몰라요, 저보다 먼저 한 분이 계세요. 저는 중간에 같이한 거예요, 하고 연우가 억울한 듯 변명하자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웃고, 하나둘 다시 고개를 숙여 포스트잇을 뜯어냈다. 세 시간 동안 떼어낸 포스트잇을 제습제와 같이 상자에 담고 작업을 마무리했다. 연우는 처음으로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가게로 돌아와 마감을 하는데 채팅방이 울렸다. 호연이 찍은 작업하는 모습과 단체 사진과 메시지가 주르륵 올라왔다.
―저 왤케 찐빵같이 나왔나요.
―재이 옆에 있어서 + 카메라 왜곡 + 알 수 없는 그 무엇
―ㅋㅋㅋㅋ
―초록 종이에 싸인 찐빵 같이 만화처럼 나왔어.
―진정하시고
―ㅋㅋㅋㅋ
―잘 나오신거 같은데
―화낸거 아녀요... 미안합니다 ㅠ
―:) 노력할게요!
―감사합니다(이모티콘)
2023.9.4.
연우는 웃음이 났다. 대화에 낄까 하다 핸드폰을 놓고 빠르게 청소한 뒤 집으로 들어갔다.
이 주 후, 포스트잇을 담아둔 상자를 재이가 들고 와 테이블에 쏟았다.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연우는 작은 글씨가 빼곡하게 적힌, 두 장을 이어 붙인 포스트잇을 집었다.
현장에서 구조활동을 했던 생존자입니다. 저를 생존자로 칭해도 될지 모르겠네요.
눈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혼자 살아나온 것 같아 미안합니다. 눈동자가 옆으로 아래로 글을 따라 움직였다. 생존자가 아닐 수 있어서 읽은 건 아니었다. 눈이 다음 문장으로 가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제가 cpr을 더 잘했더라면, 기도 확보를 좀더 했더라면, 아수라장이 된 곳에서 도망쳐나오지 않았더라면,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좀더 했더라면. 그런 생각을 계속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제대로 사과를 하고 싶었는데 이때까지 모른 척해왔어요. 몇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지 계속 생각하는 생존자가 그려졌다. 도망친 것이 아니고 당신 잘못도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듣고 싶은 말이 이것일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연우는 글을 거슬러올라가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고, 얼마나 힘들었냐고 묻고 얘기를 더 듣고 싶었다. 이제 마주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늘나라에서 평안해질 수 있도록…… 그러면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이마저도 욕심이라면 그것도 미안합니다. 며칠 전에 가족분들을 뵈었어요…… 제 몸 하나 가누느라 바쁘단 핑계를 댔습니다. 이것도 용서해주시겠어요? 이기적으로 보이겠지만 저도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합니다. 일상을 보내고 웃어도 보고 이제 그럴려구요. 그러니 저를 잘 살펴봐주세요.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을 돕는 마음으로 행동하는지 감시해주세요. 저 정말 잘 살아가겠습니다. 연우는 잘 살아가길 바란다고 속으로 말하며, 포스트잇의 구겨진 모서리를 폈다. 테이프를 뜯어, A4에 붙이고, 떨어지지 않게 꾹꾹 눌렀다.
연우는 사람들을 둘러봤다. 사람들도 이런 메시지를 읽을 텐데. 무슨 생각을 할까. 연우는 이제야 유가족과 생존자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이태원 참사를 뒤늦게 겪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 나라면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처음 본 사람을? 내가 죽으면 혼자 남아 힘들어할 사람이 먼저 생각나지 않았을까? 살아남으려고 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그 순간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발버둥쳤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이렇게 미안해할까.
혜리야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졸업 축하하고 행복해야 해
끝내지 못한 졸업 작품도 너무 멋졌어
한국이 좋아 왔던 나의 카자흐스탄 동료에게
그곳은 부디 편안하길
1년이 지나 처음 온 이태원에서 나는 기억합니다
진상 규명, 유가족의 애환을 풀어주세요
사랑해 ♡
내일 보러 갈게 !
보고 싶다 ㅠoㅠ
혜리의 졸업 작품과, 카자흐스탄 동료의 삶이 궁금했다. 많이 죽었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떤 메시지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 하는 인사 같았다. 연우는 포스트잇 사이에 있는 편지지를 집어들었다.
누나, 하고 시작하는 글이었다. 글씨가 구불거렸다. 집에 누나가…… 읽어내려갈수록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사고 나고 엄마가 서울에…… 나는 누나가…… 글자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구불거렸다. 글자가 울먹이고 있었다. 말하지 않을 수 없어서 말하다가 말할 수 없게 되어버린 거 같았다. 글자는 구불거리면서 이어지다 구불거리는 선이 되어버렸다.
복원이 될까요?
연우는 편지를 호연에게 내밀었다. 호연은 편지를 손에 들고 한참을 들여다봤다.
유가족 같은데, 맘이 너무 안 좋네요.
그냥 붙일까요?
그러죠.
연우는 편지지를 A4에 붙이며 처음부터 다시 읽다가, 구불거리는 선이 되어버려 읽히지 않는 곳부터는 읽지 않았다.
‘그날’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요. CPR 했던 여자분 살았나 모르겠네요. 모두 영면하세요.
연우는 이 메시지를 생존자 메시지를 모은 곳에 놓았다.
그때 출동 나갔던 구급대원입니다.
미안하고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이 메시지도 생존자 쪽에 놓았다.
죄송합니다. 편히 쉬세요……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구경하고 있던 제가 너무 미안합니다.
너무 힘들게 돌아가셨네요. 죄송합니다.
현장 가까이에 있었던 분 같은데. 그날 이태원에 있었다면 연우도 다르지 않았을 것 같았다. 사이렌소리와 불빛에 무슨 일이냐고 구경하려다 잘 안 보인다고 돌아섰을지 몰랐다. 연우는 이 포스트잇을 생존자 메시지 쪽에 놓았다.
그날 뉴스로 소식을 접한 가족들의 안부 전화에
“나는 당연히 안 갔지”라고 답했던 게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미안합니다.
어떤 위로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고인 한 분 한 분 소중한 가족이자 친구이신데 제가 한때는 상처 될 말을 했습니다. 너무나도 미안합니다. 돌아가신 모든 분들 이 생에 못다 한 거 다음 생에는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미안해할까.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인데. 이제 그만하라는, 조국 통일을 바란다는, 어느 장관님 가족의 명예 회복을 소망한다는 말이 적힌 포스트잇도 있었는데, 그런 건 아카이빙하지 않았다. 그래놓고 그것도 추모 메시지였나 싶어 뒤돌아 찜찜했다.
오늘 곰팡이가 많네.
재이가 작은 상자에 곰팡이 핀 포스트잇을 담았다. 오늘은 민석이 오지 않았다. 민석이 집에서 곰팡이 닦으면서 보잖아, 혼자 하면 운다고 하더라고, 여기서는 같이 하니까 안 그런데. 호연이 안쓰러워하며 말했다. 혼자 울어? 연우는 곰팡이를 나눠서 같이 하자고 할까 하다가 집에서 혼자 한 장 한 장 들여다볼 걸 생각하니 아찔해서 말도 꺼내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여섯시였다. 가게는 별일 없겠지. 김부장과 미란은 연우가 나가면 연락하지 않았다. 연우는 쌓아놓은 박스를 세어봤다. 작업할 양이 줄기는커녕 계속 늘었다.
일 주기 지나고 벽 철거할 거예요.
호연의 말에 연우가 물었다. 그럼 추모 메시지는 어디 붙여요? 사람들이 손을 놓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벽을 철거해? 우선 일 주기까지는 둘 거야. 일 주기 행사가 있어. 다큐도 상영해. 일 주기에 호박 랜턴이랑 퍼레이드도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 호박 랜턴? 이태원을 기억하는 모임이 있어. 생존자들하고 핼러윈 분장하고 파티같이 할 거야. 같이 가자. 다큐도 같이 보러 가자. 추모제를 축제처럼? 응 놀아야지. 축제는 잘못이 없어.
*
연우는 핼러윈에 가지 못했다. 10월은 놀러가는 사람도, 현장학습도 많아 김밥 주문이 많았다. 장사 끝내고 갈 기운이 없었다. 수영도 쉬다가 11월이 되어 간신히 나왔다. 연우는 설거짓거리를 놓고 온 게 미안해서 다른 때보다 일찍 물에서 나와 샤워하고, 소보로빵과 커피를 사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미란에게 가게에 와 있다고 문자가 왔다.
채윤이도 오늘 생존 수영 수업 있어.
연우 머리에 물기를 보고 미란이 말했다. 채윤이는 수영을 너무 싫어해. 학교 가기 싫다고 난리 치는 걸 어르고 달래서 보냈어. 수영을 배워야지 무슨 일 생길 줄 알고.
그치 생존 수영, 세월호 때문에 생긴 거잖아. 채윤이는 모르지?
미란은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답했다.
채윤이 2013년생이야. 그리고 나는…… 채윤이에게 말해야 되는지 모르겠어. 안 그래도 겁도 많은데. 나 애 잘못되면 미쳐.
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영장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탈의실에서 리본 떨어졌는데, 할머니가 노란 거 세월호 아니냐고, 나보고 착하대.
친구가 유가족이라고 해버려.
연우는 속이 시원했다. 채팅방 알람이 울렸다.
재이_여러분, 어제 PD수첩 잘 보셨나요? 방송 전에 작가님께 받은 문자 공유드려요 ㅎ_ㅎ
2023.11.1.
연우는 내용을 빠르게 훑었다. 유가족이 보낸 일 년에 집중해 책임자들의 재판을 다루다보니 편성 시간이 촉박해서 포스트잇 아카이빙 활동에 대한 재이 인터뷰는 편집됐다는 내용이었다. 죄송하다는, 시사 프로그램 작가로서 시민 사회단체 활동가분들에게 항상 감사함과 부채감을 느낀다는 정중한 문자였다. 연우는 이렇게 채팅방에 올라오는 메시지가 좋았다. 핼러윈도 호연이 채팅방에 올려준 사진으로 분위기를 느꼈다. 연우는 채팅방을 닫고 핸드폰을 내려놨다. 김부장의 아메리카노가 식어가고 있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간 김부장이 여태 오지 않았다.
미란이 계약을 어떻게 할 거냐고 다시 물었다. 독립하고 내년 여름에는 휴가를 꼭 유럽으로 가자고 했다. 독립하면 여기저기 행사도 더 잘 다닐 수 있을까. 평일 저녁에 있는 행사가 많았다. 직장인 퇴근 시간에 맞춘 거겠지. 연우는 채팅방으로 상황을 알 수 있어 좋았고, 자꾸 뭘 못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이 쌓였다.
호연_오늘…… 권작가와 많이 시든 꽃과 벌레 꼬일 만한 상한 음식을 좀 정리했어요. 새벽엔 민석 활동가가…… 이번주 안으로 여럿이 가서 함더 정돈해야 할 듯요 : )
2023.11.2.
*
공부하러 가.
일 년 전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분향소에 안 간다던 수안이 추모 메시지 기록 작업을 계속하는 걸 친구들은 신기해했다. 친구들은 수안이 하는 학원 알바보다 기억 담기 활동에 관심이 많았고 수안도 친구들에게는 이 일에 대해 할말이 많았다. 조명이 아늑한 수제 맥주 집에서 나눠 먹을 피자 네 판을 고르고 취향에 따라 맥주를 주문했다. 도서관에서 겨울 인문학 특강을 하는 정아는 강의 계획을, 운미는 운영하는 여성 러닝 모임을, 사이는 최근 다녀온 인도 여행을 얘기했고 영화판에 있는 잭은 수안이 근황을 말할 때 도착했다. 지난 모임에서 수안이 한 말을 기억하는 정아가 물었다.
왜 슬픈지 공부하러?
수안이 맥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메시지가 비슷하면서 달라. 내가 살면서 만날 일 없는 사람들이 거기 있어. 내 세계는 좁고 한 발짝만 나가도 다른 세계가 있는 걸 매번 깨달아. 메시지를 쓴 사람들은 어쩌면 나와 같은 세계잖아. 참사를 애도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달라. 기억하겠다는 말 같은 건 자국이 희미해도 짐작이 되니까 알아맞히기 쉬운데 개인사나 익숙하지 않은 맥락으로 흐르는 건 가늠이 안 돼서 복원도 어려워.
추모 메시지에 생각지 못한 내용이 많다는 걸 친구들이 이해 못하는 것 같아서 수안은 보여주기에 딱 맞는 메시지를 사진첩에서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사진이 많아 너무 오래 걸려서 포기하고 잭에게 근황을 물었다. 시나리오 시작하려고. 자기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는 잭을 친구들이 반가워했다. 잘 생각했어. 무슨 내용? 잭이 흘리듯이 말했다. 이태원. 이태원? 어, 참사 얘기로. 잭에게는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수안은 생각했다. 잭의 인생 영화는 <타이타닉>이고, 별칭 잭도 디카프리오가 맡은 주인공 이름이었다.
이르지 않은지 운미가 물었다.
시나리오 준비하고 찍는 데 몇 년 걸리고, 영화제 내고 그럼 십 주기쯤 될 거야. 내가 원래 참사 문제 관심 있잖아. 올해 세월호 영화도 나왔어. 십 년이면 이태원도 잊혀. 기억할 게 필요해.
수안은 기억이라는 말에 꽂혔다.
근데 기억이 중요한지 모르겠어. 십 년 후에 영화 보고 아, 하고 떠올리는 게 의미가 있어? 기일에 뉴스 보고 아, 하고, 영화 보고 아 그 일, 하고 기억하고 슬퍼하는 거. 그렇게 보면 참사 뉴스에 몰려와서 비난 댓글 다는 사람도 기억하는 거고, 유가족 단식하는데 치킨 먹방 하는 사람도 기억하는 거잖아. 일 년에 한 번 추모하는 사람보다 더 강하게 온 마음을 다해서.
정아가 수안의 말을 중화시켰다.
좋은 쪽으로 기억하게 영화가 도와줄 수 있지.
올해 세월호 모티브로 나온 영화도 평 좋았어.
잭의 말에 수안은 깜짝 놀라 평을 검색했다. 수안도 얼마 전에 본 영화였다.
올해 최고의 로맨스, 진지한 주제와 어둠 속에서도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은 올해 가장 사랑스러운 영화.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그려진 눈물나도록 가슴 미어지는 이야기.
무상하다가도 조급해지고, 기진하다가도 안달이 나는 십대 고유의 왕성한 감각도 영화 전체에 생생히 살아 있다.
꿈에서 깨어 쓴 일기에 적힌 슬픈 모험담. 잠시 네가 되었어.
노골적으로 눈물 흘릴 자리를 마련하기보다 모두가 공통되게 알고 있는 경험과 기억을 은유하면서 시나브로 슬픔에 젖어들게 한다.
그 흔한 사랑해라는 말을 이처럼 간절하고 사무치게 전하는 영화가 또 있을까.
수안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정아와 운미가 영문을 모르는 표정을 지었고, 잭이 영화 내용을 말했다. 여학생 둘이 주인공. 둘이 친구인데, 수학여행 전날 서로 좋아한다고 고백해. 한 명은 수학여행 가는 배에서 죽고, 한 명은 수학여행을 안 가고 살아.
수안이 읊조렸다.
세월호 얘기에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로맨스라는 말은 좀 받아들이기 버겁다.
그런 관계가 진짜로 있었을 수 있잖아. <타이타닉>처럼.
사이의 말에 수안이 있겠지, 근데 잘 모르겠다, 하고 중얼거렸다. 잭이 끼어들었다.
나는 <타이타닉> 좋은데 참사가 이용된 느낌은 있어. 나는 참사를 영화적 스펙터클로 이용하는 데 윤리적인 거부감이 있어. 그래서 이태원 참사도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언급은 안 하고 싶어. 희생자와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를 할 거야. 그들이 했던 사랑을. 희생자로만 기억되면 안 돼. 살아 있었던 한 존재의 얘기를 할 거야. 참사는 언급 안 해. 이태원 참사로 죽은 걸 은유적으로 알 수 있게. 생전의 아름답고 빛나는 순간을 보여주고 싶어. 생생하게.
아름답고 빛난 순간이 있겠지. 근데 실재적인 고통이 있잖아. 참사로 죽었잖아. 포스트잇 메시지 보면 괴로워하는 사람이 천지야. 그런 고통과 분노와 슬픔이 있어.
한 사람을 들여다보고 싶은 거야. 고통이 없다는 게 아니야. 친구와 애인과 밥을 먹고 사랑하고 토라지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았을 거잖아.
그럼 이태원 참사가 아니어도 되잖아. 매일같이 죽는 사람이 한가득인데. 거기 왜 이태원 참사를 갖다붙여야 돼?
이태원 참사에서도 평범한 사람이 죽었으니까. 진상 규명이나 책임자 처벌 같은 요구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부신 한 존재의 얘기야.
왜 슬픈 걸 아름답고 눈부시게 보고 싶어? 슬픈 건 슬픈 거지. 지저분하고 복잡한 사건을 필터 끼워서 몽환적으로 만들면. 아름답고 슬퍼서 눈물이 앞을 가리니까 문제는 안 보게 되잖아.
카메라 렌즈 뿌옇게 하면 기미 안 보이는 것처럼? 뽀얗고 예쁘게.
정아가 수안의 말을 받아치며 대화의 열기를 낮췄다. 그리고 잭에게 물었다.
왜 이태원으로 하고 싶어?
잭이 진지하게 말했다.
핼러윈 데이였잖아. 축제를 경유해 삶과 죽음을 얘기하고 싶어. 젊고. 외국인 있고. 퀴어도 있고. 친구나 애인이랑 왔는데 죽고 사는 게 그 안에서 갈렸어. 안타깝잖아. 이야기가 많아. 묻히는 것보다 영화로 오래 기억되면 좋잖아. <타이타닉>처럼. 평범한 사람의 특별한 사랑 이야기. 세월호 영화도 여고생 둘의 로맨스였거든. 요즘 시류에도 맞고.
잭의 말에 나머지는 생각에 잠겼다. 친구들을 쓱 둘러보고 잭이 말을 이었다.
십 년 후면, 이 참사로 뭔가 나와줬다는 것도 의미 있지 않을까.
자기만족인 것 같아.
수안이 받아치자 잭이 말했다.
네가 하는 것도 자기만족이야. 메시지 아카이빙도. 세상 모든 일은 다 자기 좋아서 하는 거.
맞아. 근데 최소한 피해 주진 않잖아.
확신할 순 없지. 그럼 영화는, 문제를 만드나?
사이가 분위기를 식히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끼어들었다.
근데 난 솔직히 이태원은 잘 모르겠어. 세월호는 생각하면 미쳐버릴 거 같거든. 나 매년 기일마다 뉴스 보면 눈물나. 나도 그 영화 애인이랑 봤어.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는데. 우리 내년에는 꼭 여행 가자. 우리 여행 가자고 하면서도 일정 못 맞춰서 계속 미뤘잖아. 영화 보고 더 미루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우리도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몰라. 나중에 우리 중에 누구 죽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 하자.
애들 죽은 영화 보고 지금 우리는 죽기 전에 여행 가자고 하는 거야?
운미가 그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너 영화 안 봤지?
사이가 물었고, 운미가 고개를 끄덕이자 영화를 추천했다.
여자들의 이야기야. 네가 좋아할 거야. 소녀들 이야기.
소녀? 아, 여고생, 하고 운미가 뒤늦게 이해하자 잭이 말을 보탰다.
여자들이 너무 많이 죽어. 이태원도 여자들이 훨씬 많이 죽었어.
세월호도?
세월호는 모르겠다.
잭이 말을 흐리자 그럼 왜 여고생 둘이 나오냐고 운미가 물었고, 사이가 얘기를 이어갔다.
영화에서 죽은 여자애가 마지막에 사랑해 사랑해 하고 속삭여. 내 마음을 흔들고 홀연히 떠나버려. 난 그 장면이 너무 좋았어. 위로가 되더라고.
죽은 애한테 사랑한다는 말까지 들어야 되니. 지인은 그럴 수 있지만. 너도?
나는 애들이 내 옆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믿어.
애들이 왜 너 옆에 살아. 살아도 친했던 사람 옆에서 살겠지. 그리고 애들은 죽었어.
운미는 사이의 추천에 넘어가지 않았다. 운미는 수안에게도 사이에게도 일관되게 냉정했다. 사이는 흔들리지 않았다.
너무 슬프고 아름다운 영화야. 너도 꼭 봐. 네가 정말 좋아할 거야. 그날 애인하고 영화 보고 나왔는데 눈이 펑펑 내렸어. 극장 앞에서 한참 서서 눈이 내리는 걸 보고 있었어. 그 밤을 잊을 수 없어. 애들이 우리한테 선물을 보내주는 거 같았어. 그렇게 생각하니까 또 뭉클하고.
슬퍼하는 나에 취한 거 같아.
네가 안 봐서 그러는 거야. 꼭 봐. 보고 얘기해.
수안은 이 대화가 난장판이 되어간다고 느꼈다. 만날 때마다 이런 대화가 하나는 꼭 있었다. 정아도 눈치를 챘는지 처음으로 돌아가 수안에게 물었다. 그래서, 왜 슬픈지 답은 찾았어?
내 슬픔은 좀 차별적이다? 내 슬픔을 믿을 수가 없다. 지금은 여기까지.
정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안은 이 얘기를 끝내고 싶어서 쌓아놓은 생각을 주절거렸다.
아이들 죽음을 더 크게 슬퍼하는 걸로는 아이들 죽음을 막을 수 없는 거 같아. 거대한 슬픔에 크게 추모하고 거대하게 사람들이 모여 잘못을 고치는데, 아이들이 많이 죽기 전까지는 크게 슬퍼하지 않고 한 명 죽거나, 두 명 죽거나, 노인이나 외국인이 죽거나 이럴 때 적게 슬퍼하면, 문제가, 사람들을 죽게 한 문제가 그냥 있고, 그 문제 때문에 외국인이 노인이 어른이 죽다가 아이들도 죽겠지. 아이들이 죽어야 크게 슬퍼하니까, 아이들이 죽어야 끝나는 거. 어쩌면 아이들이 죽어도 안 끝나고. 아이들이 죽을 때까지 폭주 기관차처럼 세상이 달려가는 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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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이_27일 활동 참여 신청자가 아직 없어요. 흑흑 SNS나 단체 채팅방 등에 홍보해주시면 모집에 큰 힘이 될 듯해요. 부탁드립니다!
2024.1.22.
재이_여러분의 홍보와 관심 덕에, 9명까지 신청자가 늘었어요. 와와. 주말에 뵙겠습니다.
202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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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가는 동안, 한 달에 두 번 모여 색색의 포스트잇을 흰색 종이에 붙이는 일을 이어나갔다. 그러는 동안 연우가 못 간 날도, 수안이 못 온 날도, 셋이나 둘이 작업한 날도 있었다. 일 주기쯤엔 열 명 넘게 모인 적도 있는데. 가끔은 ‘찾아가는 기억 담기’를 신청한 사람들을 위해 포스트잇과 도구를 차에 싣고 서울 어딘가로, 강원도로 갔다.
다른 지역으로 일을 옮기게 되었다는 사람의 메시지가 채팅방에 올라오기도 했다.
‘참사 이후에 흔들리던 순간을 버티게 해준 곳이었어요. 모임을 하며 제가 더 많이 위로받은 것 같아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멀리서 응원하고 서울 가면 찾아갈게요.’
연우는 이런 인사가 좋았는데, 이곳은 매번 올 수 있을 때 오는 거였고, 계약을 한 것도약속한 것도 아니니까, 나오지 않아도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상황을 알려야 할 의무가 없었다. 연우는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날 수 있는 공간에 머무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은 사람들이 연우의 김밥집에 대해 묻고 오 그렇구나, 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프랜차이즈인데 친구가 자꾸 독립하라고, 하고 연우가 말하자 사람들이 왜냐고 물어서,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쌀이랑 기름을 본사에서 비싸게 사야 돼서? 매니저한테 말해야 네이버 플레이스 휴일 수정하고 쉴 수 있어서? 하고 웃으며 푸념했다. 취직 안 돼가지고 청년 창업 대출받아서 급하게 시작했는데…… 너를 고용으로 책임지진 않지만 네가 알아서 먹고살겠다면 대출은 해주겠다 뭐 이런 거였죠. 사람들은 작업을 멈추고 크게 웃었고, 씁쓸한 표정도 지었고,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수안이 말했다. 독립해요! 요즘 작은 김밥집 많잖아요, 메뉴 조금 있는 작은 김밥집이 더 좋던데.
부러워하지도 하찮아하지도 않아서 연우는 좋았다. 가게에 있으면 가끔 연우를 부러워하는 말이 들렸다. 어떤 손님은 밥을 먹다 수저를 내려놓고, 김밥 싸는 연우의 뒷모습과 가게를 둘러보며 말했다. 나도 김밥 말고 싶다. 아무 생각 없이 단순노동 하고 싶어 진짜. 머리 말고 몸 쓰는 일. 한숨 쉬며 고단함을 연기하는 목소리에는 우쭐함이 섞여 있었다. 머리와 몸을 따로 쓰는 일이 있을까. 김밥 쌀 때도 포스트잇 정리할 때도 머리를 굴려야 했고, 목과 어깨는 굳었다. 이 일은 곰팡이와 먼지 때문에 눈도 코도 매웠다. 수안이 언제 같이 연우네 김밥집에 가자고 했다.
나는 볼펜이 이렇게 취약한 필기구인 거 처음 알았어.
수안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수안의 말에 연우가 할말 많은 표정으로 말했다. 잉크 다 날아가고 번지고. 눈알 빠지게 포스트잇을 들여다보던 멍우, 지선, 태훈이 지쳐서 허리를 펴고 웃었다. 송이가 지워진 글자를 잘 알아내서 복원을 맡았는데, 한동안 나오지 못해 복원할 게 쌓여 있었다. 오늘 송이 늦게라도 온다고 하지 않았나, 쉬운 건 해놓고 어려운 건 남겨두자, 하고 다 같이 복원에 뛰어들어 고통받고 있었는데, 일을 마치고 와서 거의 보이지 않는 포스트잇을 떠맡은 송이는 오히려 태연했다. 글씨가 지워진 메시지가 너무 많았다.
볼펜보다 연필이 차라리 보존성이 높아요, 기록할 때 볼펜 쓸 거면 수성 말고 유성으로 해야 돼요. 민석이 사람들에게 말하는데, 호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형광등 불빛에 포스트잇을 비췄다. 송이가 포스트잇을 받아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 찍어 명도와 채도를 조절하며 들여다보는 사이, 호연은 다시 포스트잇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가 한참 후 들어왔다. 햇빛에 비춰보는데도 여기는 안 보이네. 거의 복원했는데 이 부분.
웃는 그대들의 모습과 다르게 눈물밖에 안 나네요. 이전에 가졌던 제 생각이 얼마나 끔찍하고 그릇됐었는지 차마 □□ □□□□□ 다만 평생 잊지 않고 마음에 품고 살아갈게요. 그곳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기도할게요.
물에 번져 글씨가 지워진 포스트잇에 지선, 하니, 하정이 달라붙었다. 수안도 미간을 찡그리고 들여다봤다. 첫 글자는 ㅇ이나 ㅁ 같아요. 다음 글자는 ‘에’나 ‘이’. 그럼 앞에? 말이? 많이? 뒤에는 못 서겠어요? ㄱ보다는 ㅇ 같은데. 그럼 말이 못 서 있어요. 많이 못 서 있어요. 다 어색해. 앞에 못 서 있겠어요? 근데 여섯 글자라서. ‘앞에 못 서겠어요’가 맥락상 맞는 거 같지 않아요? 추모하러 왔는데 미안해서 앞에 못 서 있겠는 거지. 넷은 찜찜한 합의에 이르렀다. 수안은 중얼거렸다. 근데 우리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거지? 햇빛에 변색되고 비를 맞아 알아보기 어려운 메시지가 너무 많았다. 더 훼손되기 전에 아카이빙을 빨리 했다면 읽을 수 있었을 텐데. 호연이 안타까워했다. 수안은 안 보이는 건 폐기하길 바라면서도 찜찜했다.
연우는 복원이 쉬워 보이는 포스트잇을 집어들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볼펜자국만 남은 건 연우의 몫이 아니었다.
ᅟᅩᇂ은 곳에 가서 ㄱ 없으시길 니다.
볼펜자국에 맞는 자음과 모음을 넣어 퍼즐을 맞췄다. 좋은, 고통, 바랍. 세 단어를 채워 새 포스트잇에 옮겨 적었다. 옆에서 민석이 이거 무슨 글자 같아요, 하고 연우를 불렀다.
오빠…… 벌써 설날이네. 이번 연도에는 □□도…… 전도…… 아무것도 안 했어. 요즘은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그냥 멍만 때려. 너무 보고 싶다.
연우는 민석과 머리를 맞댔다. 뭘까. 설날에 뭐뭐도, 전도, 안 했다. 전하고 뭘 안 했을까. 설에. 전하고 같이 하는 게. 두 글자. 받침은 ㅁ. 연우는 포스트잇을 한참 들여다봤다. 갑자기 ㅌ이 보였다. 튀김. 민석이 튀김? 하고 놀라며 포스트잇을 들여다봤다. 아, 그러네 튀김이네. 아…… 설에 튀김을 먹는구나.
작업은 늘 예상보다 오래 걸렸다. 일 주기까지 하자는 말은, 이 주기에 뭘 내자는 말로 바뀌었다. 책으로 내면 좋을 것 같은데. 강남역에 있던 추모 메시지도 책으로 나왔어.
이 주기까지 하려면 서둘러야 할 것 같은데.
연우의 말에 호연이 답했다.
빨리 할 필요 없어.
연우는 언젠가 호연이 한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이걸 하면서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참사 직후에 붙은 초기 메시지를 작업한 날 호연은 중얼거렸다. 우리가 놓친 게 많네. 초기 메시지에는 자신이 현장에 있었다는 내용이 많았다. 생존자들이 이태원에 다시 왔었다는 흔적이었다. 그때 챙겼어야 했는데 생존자들을.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연우는 혼자 섬처럼 있을지 모를 생존자를 생각했다. 호연이 이어 말했다.
생각이 좀 바뀌었는데, 서둘러 할 필요 없는 거 같아. 그냥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아.
이 주기에 온라인으로 공개하자면서 서두를 필요가 없다니 어딘가 안 맞는 말 같았지만, 연우도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았다.
김부장에게 가게 맡기는 걸 계속할 수 있을까. 토요일에 미란이 봐주는 것도. 이 일을 꼭 내가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작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못 나오게 되는 건 싫었다.
4월이 되니 행사가 많았다. 세월호 십 주기였다. 세월호 책 나와서 북토크 하는데 갈래요? 수안이 물었다. 이태원 일 주기에 갔던 북토크도 좋았는데. 연우는 미란에게 토요일에 가게를 봐줄 수 있냐고 문자를 보냈다.
같이 저녁 먹고 가요. 호연의 말에 운동 가려고 했는데, 하고 재이가 말했다. 수안과 하니와 민석과 하정이 무슨 운동이냐고 관심을 보이고 각자 하고 있는 클라이밍과 요가와 등산과 콘택트 즉흥을 서로에게 영업했다. 갑자기 거리감 느껴지네요. 무리에서 한 발 떨어져 지선이 말했다. 하지만 운동 얘기는 열기를 더해 급기야 수안이 사무실 문에 달린 봉에 매달렸고, 재이와 민석이 그럼 저도 하며 매달렸다. 호연이 그 모습을 사진 찍고, 나머지는 팔짱 끼고 구경하고, 연우는 박수를 쳤다. 여기는 왜 언성 높이는 사람이 없을까. 연우는 생각했다. 더 자주 보면 싸우게 될까? 운동 갈 사람을 위해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중국집으로 향했다.
음식을 기다리며 수다를 떨 때 연우는 눈치를 살폈다. 가게에서 손님들 여행 얘기를 듣고, 찾아보다 깜짝 놀라서 사람들하고 얘기해보고 싶었다. 연우는 망설이다가 옆에 앉은 수안에게 핸드폰으로 검색해놓은 화면을 내밀었다. 이거 알아요?
나무 궤짝 안에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사진들을 보고 수안이 이게 뭐냐고 물었다. 화성 행궁에 있는 뒤주 체험이요. 네? 수안은 크게 놀랐다. 그리고 이내 뒤주 안에 들어가 얼굴을 밖으로 쏙 내밀어 손으로 브이를 만들고 활짝 웃는 여자 사진을 발견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 우리나라 사람들 정말 해학의 민족이다. 수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이건 졸업 사진인가, 학생들이 뒤주도 만들고 분장도 했네. 수안의 반응에 연우는 뒤주 체험 안내문을 검색해 수안에게 보였다. 가게에서 찾아본 것이었다.
목적이 이거래요. 가슴 아프게 돌아가신 사도세자의 옛일을 체험하는 거.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었잖아요. 고통스럽게. 근데 사람들이 뒤주에 들어가서 노는 거죠. 브이 하고 기념사진 찍고.
하긴 천년을 가는 슬픔이 어디 있겠어요.
수안이 한숨 쉬며 말했다. 연우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그럼 세월호도 백 년 지나면 배에서……
수안에게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아…… 그건 좀 받아들이기 힘들다.
골똘히 생각하던 수안이 입을 열었다.
하긴 타이타닉도 사람들이 배에서……
타이타닉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연우 머릿속에 사람들이 배에서 찍은 사진들이 주르륵 떠올랐다. 연인들이 팔을 활짝 벌리고 서로를 사랑스럽게 보며 찍은 사진들. 영화에 나온 두 젊은 배우의 아름다운 얼굴과 생기 넘치는 몸과 로맨틱한 눈빛과 속삭임. 배가 침몰하고 나무상자를 붙잡고 바다에 떠 있던 남자 배우. 세월호에도 로맨틱한 사연이 없을 리가 없으니까 언젠가 타이타닉처럼 생생하고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뭔데 뭔데. 사람들이 수안과 연우의 얘기에 관심을 가졌다. 둘이 닮아가지고 둘만 뭐 심각하게 얘기해. 뭔데 뭔데. 아카이빙할 때는 보이지 않던 모습들이어서 연우의 심각한 표정이 풀려버렸다. 연우는 망설이다 수안과 보던 사진을 테이블 가운데로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