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여행에서 축제 사이(마지막)

극장 문을 조심스럽게 연 연우는 사람이 꽉 찬 객석에 당황해 허리를 숙이고 황급히 뒤쪽으로 들어갔다. 수안이 눈에 띄었지만 안쪽에 있어 가지 못하고 통로 빈자리에 앉았다. 입구에서 받은 노란 리본이 달린 키링과 볼펜을 잃어버리지 않게 가방에 넣었다. 키링은 제가 만든 거예요, 펜은 제가 있는 생존자 모임에서. 여자가 키링을 건네며 말할 때, 당황한 걸 티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잘 안된 것 같았다. 연우는 세월호 생존자를 처음 봤다. 세월호 십 주기를 며칠 앞두고 열린 북토크였다.

연우가 많이 늦었는지 패널들이 대화를 끝내고 청중의 질문을 받고 있었다. 한 남자가 유가족과 시민단체가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물었다. 무대에 있는 유가족이 답했다.

처음에는 왜 접근하는지 의심했어요, 그때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고, 사람들도 너무 많이 왔었어요. 그런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보도자료 쓰는 것도, 언론사랑 인터뷰하는 것도. 저흰 다 처음이었으니까요. 슬픈데, 할일이 계속 닥쳐왔어요.

유가족이 옆에 앉은 활동가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유가족은 평범한 일상을 살다 갑자기 참사를 겪고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상황이 됩니다. 상대는 국가인데 유가족은 정보가 없습니다. 시민단체는 경험과 정보가 있고요.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있었습니다. 그 경험으로 이태원 참사 때는 더 빠르게 지원할 수 있었습니다.

연우는 고개가 끄덕여졌다. 질문이 이어졌다.

참사가 계속 일어나는데 그때마다 저도 일반 시민으로서 충격을 많이 받아요. 유가족이나 생존자분들은 다른 참사가 일어나면 어떤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을 때 너무 괴로웠어요, 저희가 더 잘했다면 이런 일이 또 안 일어났을 텐데……

유가족이 이야기하는 동안 청중석이 고요했다. 괴롭다는, 죄송하다는 말을 연우는 포스트잇에서도 많이 봤다. 세월호 때 잘했다면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연우는 생각했다. 유가족이 책임감을 느끼지 않고 편안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걸 바라는 것만으로는 그 바람이 실현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알았다. 내가 엄마를 병원에 더 일찍 데리고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쓸모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 생각을 멈출 수 없었고 누가 옆에서 그 생각을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서 그만하게 된 게 아니었으니까. 미란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으로 연우는 죄책감 느끼는 시간이 줄었다. 사회를 보는 활동가가 마이크를 받아 또 질문 받아볼게요, 라고 하자 청중 가운데서 누군가 손을 들었다. 참사가 일어나고 십 년의 시간이 흘렀는데요,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해오셨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못 극복했어요.

연우는 망설임 없이 나온 대답에 놀랐다. 질문한 사람이 무안했을 것 같아 쳐다봤지만 뒷모습만 보였다. 유가족이 지내온 시간을 말하고, 활동가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트라우마가 있지만 잘 지낸다가 아니라, 트라우마가 있고 잘 지낸다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활동가는 유가족과 시민을 연결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지난 10월 이태원 참사 북토크에 갔을 때도 연우는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사람들이랑 얘기해보면 왜 안 움직이는지 모르겠어요. 회사 사람들도 친구들도 이태원 사건에 대해 말을 안 하려고 해요. 너무 답답해요.

청중석에서 한 사람이 심정을 토로하자, 무대에 있던 패널이 답했다.

저는 그 사람들 이해돼요. 저도 생활이 힘들고, 떠올리면 힘든데, 그 사람들도 사는 게 버거운 거 아닐까요. 저도 이렇게 나와서 얘기하지만 그때 영상을 못 보거든요.

패널의 말이 끝나자 활동가가 말을 덧붙였다.

어쩌면 용기를 내는 게 가장 쉬운 일인 것 같습니다.

연우는 깜짝 놀랐다. 용기 내는 게 쉬운 일이라고? 온 세상이 용기 내는 사람을 멋있다고 하는데. 용기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쉬우니까 한번 내보라고 용기를 주는 것 같았다. 용기 못 낸 사람을 다독여주는 것 같았고, 용기를 못 내는 상황을 이해받은 것 같았다.

그날, 마지막으로 소감 나눠주실 분이 있는지 물었을 때, 객석의 뒤쪽에 앉아 있던 사람이 손을 들었다. 저는 생존자인데요, 이런 자리는 처음이에요, 그날 일을 처음으로 말해봐요…… 참사 현장에 있다 일 년이 지나 용기 내어 이 자리에 온 생존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날의 이야기를 했다. 생존자의 이야기가 끝나자 활동가가 말했다.

아직 우리에게 길어올릴 이야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연우는 몇 달 전 그 말을 떠올리며 용기를 내보고 싶어졌다. 아직 길어올려지지 않은 이야기와 연우가 모르는 이야기가 얼마나 더 있을까. 궁금했고, 알고 싶었다. 나 혼자 힘들었다는 생각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북토크가 끝나가고 있었다. 가장 쉬운 일이니까. 이야기를 나눠준 세월호 유가족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도 뭔가를 같이하고 싶어졌다고 십 년 만에 봄을 마주하게 됐다고, 그 짧은 말을 하고 싶었는데 자신이 없었다. 주저리주저리 말하다 딴 얘기를 하게 될까 걱정이 됐다. 세월호 때는 무엇을 해볼 생각도, 무엇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했다. 기억 담기 모임을 하기 전까지는 활동가의 존재도 몰랐다. 손을 들까 망설이는데, 객석 중간에 앉아 있던 사람이 손을 들고 일어났다.

저도 십 년 만에 이제야 봄을 마주하는 것 같습니다……

 

북토크가 끝나고 연우는 객석에서 수안을 찾았다. 무대에서 내려온 유가족과 활동가 주위로 사람들이 다가가 인사하고 포옹했다. 연우가 갔던 추모 행사 자리에는 활동가와 변호사와 예술가와 다른 참사의 유가족이 있었다.

연우는 수안과 함께 강당을 빠져나왔다. 수안이 통화 좀, 하고 떨어져 걷는 사이, 연우는 핸드폰을 꺼내 스텔라데이지호를 검색했다. 유가족이 말했던 참사였다.

2017년에 화물선이 침몰했는데, 건져올리지 않아서 아직도 바닷속에 배와 사람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삼 년 후의 일이었다. 세월호 때 잘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까. 연우는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줄도 모르고 있었다. 연우는 기사에 나온 다른 참사를 찾아보다 재난피해자권리센터 홈페이지로 흘러들어갔다.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의 인터뷰가 있었다.

‘우리가 잘했으면, 세월호는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 미안합니다. TV에 나오고 장관이 약속하는 것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서명까지 받았는데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대구 시장이 사건을 축소하려고 희생자가 72명이라고 발표하고, 불에 탄 지하철을 물청소해버려서 현장도 버려놨어요. 저희가 하수구하고 사고 날 나온 쓰레기 몇백 포대를 뒤져서 시신 찾고 유품 찾았어요. 희생자가 140명인 거예요. 저희는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읽는데 수안이 왔다. 쓰레기봉투에서 시신 찾았다는 말을 하자 수안이 놀랐다.

삼풍백화점 참사 때도 유가족이 난지도를 뒤졌다는데. 시신 수습이 안 끝났는데 무너진 건물 잔해를 쓰레기장에 버렸대요. 시신하고 유품을 쓰레기장에서 찾으셨대요.

연우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수안이 말을 이었다.

삼풍백화점은 위령탑도 어디 구석에 세웠잖아요. 백화점 무너진 자리에는 아파트 짓고.

연우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911은 빌딩 무너진 자리에 추모하는 곳 만들지 않았어요? 그 자리에.

맞아요. 뉴욕 한복판에. 빌딩 두 개 자리라서 넓고, 거대해요.

가봤어요?

예전에. 지하랑 지상이 있는데 지하 전시는 되게 슬프고 참혹하고 지상의 분수는 예뻐요. 사람들이 흘린 눈물을 모티브로 만든 거라는데, 물줄기가 햇빛 받아서 반짝거려요. 사람들도 사진 많이 찍고.

유가족들도 많이 찍겠네요. 희생자 생각하면서.

그렇겠죠. 근데 저는 예뻐서 찍었어요. 물줄기에 홀려서.

블로그에서 사진 많이 봤어요. 관광 명소라고.

연우는 인터넷에서 911 메모리얼을 찾았다.

설계를 국제 공모했네요. 63국에서 참가해서 5,200대 1 경쟁률로 당선됐대요.

5,200팀이요? 수안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많이 모였네, 하고 연우가 말했다. 목적이 뭘까, 수안이 중얼거렸고 연우도 중얼거렸다. 참사가 많잖아요. 맞아요. 작년 산재 사망자가 2,000명이래요, 건설 현장에서 죽은 사람은 350명인가. 너무 많아. 참사 리본이 노란색, 보라색, 하늘색, 하얀색, 주황색 있죠. 어느 색까지 생길지. 색깔 없는 참사도 너무 많아요. 색깔이 다 붙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연우는 문득 아까 찾아놓은 기사가 생각나 수안에게 보였다.

KAL858 진실 규명 세미나에 세월호 유가족이 가셨대요. 기사에 세월호 유가족이 세미나에서 했던 말이 있어요.

‘다른 재난 참사에도 연대를 계속해왔던 터라 가볍게 연대하는 마음으로 함께하겠다고 했지만 자료를 찾아볼수록 마음이 무거워졌다고 고백했다.’

이태원 참사 추모제에 스텔라데이지호 유가족이 왔고, 스텔라데이지호 행사에 세월호 유가족이 오셨더라고요. 오송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다른 참사 유가족들이 찾아갔다던데.

유가족들은 서로 연대하고 있었네요.

그러니까, 제가, 생존자나 유가족이 죽는 뉴스를 덜 보고, 덜 슬퍼할 수 있었던 건, 이분들이 서로 챙기고 있어서일지 모르겠네요. 보기 좋지 않아요?

연우는 수안의 말에 미간을 찡그렸다. 저도 그렇긴 한데, 그게 좀 그래요. 어려운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사는 걸 멀리서 보면서 아름답다고 안도하는 느낌?

연우는 수안의 당황하는 표정을 보고 말을 덧붙였다. 수안님이 그렇다는 게 아니라 저도 사실 그랬고요, 아니 제가 그랬다는 게 아니라. 그러면서 연우는 자신도 모르게 엄마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했다. 제가 엄마 간병을 오래했는데 사람들이 저에게 기특하다고 보기 좋다고 그랬거든요. 그 말 들을 때마다 숨이 막힐 것 같았어요. 수안님 말뜻은 그게 아닌 거 알아요. 그냥 제가 그 말에 예민해서…… 미안해요.

 

*

 

아침 내내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올 때마다 봄 공기가 가게 안으로 함께 밀려들어왔다. 김밥 주문이 많은 날이었다. 급하게 들어온 손님이 도시락통을 내밀고 옆에 서서 연우의 손이 김에서 밥으로 단무지로 움직이는 걸 눈으로 좇았다. 문이 열리고 또 손님이 들어왔고, 먼저 와 있는 손님을 발견하고 인사했다. 현장학습 있는 날은 자주 이랬다. 아이 김밥을 사러 온 엄마들이 가게에서 마주쳤다. 얼마나 기다려야 돼요? 바로 돼요. 연우의 답에 손님은 서로에게로 눈을 돌리고 속닥였다. 놀이공원 가면 도시락 안 싸도 되는데. 내년엔 그러겠지. 그런데 왜 날짜를 이렇게 잡았대? 4월 16일에 현장학습 가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연우는 밥을 말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연우는 천천히 칼질을 했다. 달력 보고 너무 놀랐잖아. 학교에 민원 넣을까 하다 말았어. 엄마들이 말을 너무 천천히 했다. 김밥을 도시락통에 담을 때까지 연우는 좀 그렇다는 게 무슨 뜻인지 듣지 못했다. 꺼려진다는 걸까? 손님이 나가면 얘기할 기회가 사라졌다. 가끔 미란이 손님들 대화에 참견하려고 하면 연우는 눈짓을 보냈다. 손님이 나가면 변명했다. 동네 장사 하려면 어쩔 수 없어.

물어볼까. 연우는 고민했다. 지금 할 말은 김밥집 사장과 손님의 대사가 아니었다. 김밥집 세트장의 주어진 각본에 없는 말이었다. 연우는 나중에 온 손님이 주문한 김밥을 천천히 말았다. 칼질을 천천히 했고, 도시락통에 천천히 담다가 흘리듯이 말했다.

올해가 십 년이 됐네요.

도시락통을 받으려고 기다리던 엄마가 조금 놀란 눈으로 연우를 보고 말했다.

그러니까요, 벌써 그렇게 됐더라고요, 그래도 저희는 박물관으로 가요, 놀러가는 건 아니니까 좀 낫죠.

옆에 있던 엄마가 나가며 말했다. 학교가 신경을 좀 쓰지,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철렁한데. 연우는 마음이 놓였다.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손님은 나가고 없었다. 좀 그렇다는 건, 엄마들도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걸까.

‘생명안전공원이요, 지하에 아이들 유해를 모아놓고, 공원을 만들 거예요. 그 공원에서 시민들이 즐겁게 놀다 가면 좋겠어요. 그런데 시민분은 그렇게 못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느 행사에서 유가족이 했던 말이었다. 즐겁게 놀길 바라는 유가족과 그렇게 못하겠다는 시민은 어디서 만나고 어긋나는 걸까. 연우는 그 말을 하던 유가족의 표정이 한동안 아른거렸다.

연우도 놀 수 없을 거 같았다. 놀아도 즐겁게는 안 될 것 같았다. 수안은 911 메모리얼에서 반짝이는 분수가 예뻐서 물줄기의 반짝거림이 잘 나오게 찍은 수십 장의 사진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했다. 지하 전시실에서 얻은 거대한 슬픔과 무거움이 분수를 보며 물줄기처럼 흩어져 홀가분하게 밥 먹으러 간 기억이 뒤돌아보니 좋지 않았다고 했다. 세월호로부터 마음이 편해져야 할까? 세월호를 슬프게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유가족의 바람을 연우는 알 것 같았다. 사람들이 연우를 불쌍하면서도 대단하게 보는 무거운 눈빛에 연우는 외로웠다. 엄마를 간병할 때, 나는 너처럼 못할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 외로웠다. 찬양받고, 고립됐고, 찬양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세월호에 대해 차마 할 수 없는 얘기가 있다고 하는 건 부당했다. 세월호를 거대하게 만들어 성에 가두고 외롭게 하는 것 같았다. 쉽게 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라고 자꾸자꾸 말해서, 말을 안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입을 닫으면. 누구에게 좋지? 유가족과 시민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을까. 연우는 그다음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 있어……” 언젠가 호연에게 이 말을 듣고 생각했다. 학생만 타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왜 세월호를 얘기할 때 늘 세월호 아이들이라고 했을까. 배에 탄 노동자와 생존자, 지역 주민, 상인, 기자, 잠수사. 기억 담기 모임을 하며 알게 된 세월호는 파도 파도 끝이 없었다. 아이들이잖아요, 하고 슬퍼하는 것으로 덮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세월호가 백 년 후에는 낭만적이게 되거나 또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아니니까, 끝까지 가는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얘기를 많이 하면 좋겠어요.” 이태원 북토크에 참석했던 희생자의 오빠가 시민들이 무엇을 해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한 말이었다. 장례를 치르고 집에 와서 부모님과 식탁에 앉아서 동생 얘기를 계속했어요. 그다음날도 하고 다음날도 하고 술 마시고 하고 밥 먹고 하고.

연우는 엄마 얘기를 하고 싶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고 싶지 않은데 잘 안됐다. 사람들이 보이는 하나의 감정이 너무 거대할 때 다른 것은 뚫고 나오기 어려웠다. 연우는 그랬다. 서울에서 난 참사니까 추모도 이렇게 커진 거잖아요. 어느 지역 북토크에서 누군가 했다는 말을 연우는 속으로 맞다고 생각했다. 커다란 추모제에 가면 왜 이 죽음에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애를 써줄까 생각했다. 복잡한 마음을 말할 수 없어서 감정이 불쑥 나갔고, 뒤돌아 후회했다. 연우는 ‘이태원을 기억하는 호박 랜턴’이 마련한 이야기 자리를 떠올렸다. 작은 카페에서 진행한, 열 명 남짓 모인 자리였다. 젊은 여자가 말했다. 중학생 때는 세월호 사고가 나서 현장학습이 모두 취소됐고 대학생이 되니 이태원 참사가 나서 한동안 뉴스도 못 봤어요. 흐느껴 울다가 힘주어 말했다.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근데 저는 기억하겠다는 말도 이제 되게 공허해요.

연우는 행사가 끝나고 용기 내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포스트잇을 볼 때마다 생각했다. 기억하겠다는 다짐이 이렇게 많은데 왜 참사는 계속 일어날까. 잊는다고 의미가 없어지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희생자들은, 연우가 몰랐을 때도, 생생하게 있었다. 연우에게만 기억된다고 엄마의 삶이 의미 없는 게 아닌 것처럼. 그럴까.

다시 손님이 몰려왔다. 연우는 김밥을 싸는 지금으로 정신을 끌고 왔다. 한바탕 손님이 지나가고, 의자에 앉아 텔레비전 뉴스를 틀었다. 산이 불에 훨훨 타고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봄이면 산불이 크게 났다. 이번 산불은 이 주가 넘게 잡히지 않았다. 사망자 숫자가 보도됐다. 연우는 멍하니 뉴스를 봤다.

이번주 토요일에도 미란이가 와?

네.

미란이가 별나도 애가 착해. 반찬도 싸주면 와서 얼마나 어떻게 맛있었는지 꼭 말해.

네.

토요일에 가는 게 뭐라고 했지?

연우가 기억 담기 모임을 설명하자 김부장이 그런 건 어떻게 알고 다니느냐고 물었다.

저는 이태원역에 가서 봤는데, 인스타랑 페이스북에도 올라와요.

그런 건 당근에 올려야지.

부장님도 다음에 같이 가실래요?

나는 됐어. 사장이 나 대신 가. 국수 어서 먹어.

연우는 그제야 김부장이 테이블에 내려놓은 칼국수를 들여다봤다. 큰 대접에 손가락만큼 두꺼운 면발이 구불거렸다. 연우는 이런 칼국수는 처음이어서 김부장을 쳐다봤다.

횟집에서 일할 때, 새벽에 와서 칼국수 먹고 가는 여자가 있었어. 해장하는 것처럼 해물 빼고 면만 달라고. 버섯 넣어줬더니 너무 좋아했어. 그러다 어느 날은 면을 아주머니가 미느냐고 물어보길래, 참 지랄 맞은 집이었지, 시중 면으로 하면 되는데 무슨 횟집에서 면을 밀어서, 반죽 내가 한다고 했더니, 면을 두껍고 넓게 잘라달라는 거야. 면이 열 가닥 들어갔나. 젓가락으로 한 가닥씩 들어서 입에 호로록 넣고 끊어 먹는 거야. 나도 먹어봤는데 별미야. 칼국수는 후루룩 먹는데, 그건 한 가닥씩 꼭꼭 씹어 먹으니까 다른 생각이 안 나고. 그 여자 먹는 거 보는데, 슬프고, 고단해 보였어. 새벽에 부장, 과장 퇴근하고 나 혼자 두 시간 있는데, 그때 꼭 그 여자가 왔어. 단둘이 있었지. 그 여자 먹고 있는 거 보는 데 좋더라고.

네.

연우는 면을 한 가닥 집어 입에 넣고 꼭꼭 씹어 먹었다. 한 가닥 먹는 데 한참 걸렸다. 고소하고 쫄깃하고 맛있었다. 김부장이 물었다.

그런데 사장 오늘은 수영 안 가?

오늘은 못 갈 것 같아요. 기력이 없어요. 저녁 장사도 해야 하는데. 다음주에 갈게요.

그래, 어서 먹어. 다음주에는 꼭 가.

 

*

 

9월이 왔다. 이 주기를 앞두고 핼러윈 퍼레이드, 추모 메시지 낭독 문화제, 학술제 일정이 채팅방에 올라왔다. 연우는 갈 수 있는 게 없어 아쉬웠는데, 온라인으로 하는 행사 하나가 점심 장사 끝난 시간이라 표시해놨다. 기억 담기에도 참여자가 많아졌다. 오래전에 수거한 포스트잇을 테이블 위에 쏟아놓고, 읽고, 분류하고, 붙였다. 이렇게 몇 번 더 하면 얼추 정리될 것 같지 않아요? 수안이 말했다. 왠지 아쉬워서 연우는 메시지를 천천히 읽었다.

수안은 같이 보고 싶은 메시지를 사진 찍어 채팅방에 올렸다. 메시지에는 수안이 피하고 싶던 말과 피하지 못한 말이 엉켜 있었다. 수안은 메시지와 이걸 썼을 사람의 얼굴이 같이 그려졌다. 벽을 철거하던 날. 칠십대로 보이는 남자 셋이 여기, 하고 멈춰 서서 골목을 가리키고 얘기하다 메시지를 써서 붙이고, 핸드폰을 들고 두리번거렸다. 수안은 다가가 핸드폰을 받아 들고, 가을 점퍼를 입고 모자를 쓰고 경건한 표정으로 서 있는 남자 셋과 벽에 붙은 포스트잇과 골목이 잘 나오게 사진을 찍었다. 수안은 이 셋과 이들을 대한 자신을 오래 생각했다.

지나가던 아이 둘이 엄마 손을 잡아끌고 벽을 가리키기도 했다. 엄마가 허리를 굽혀 말했다. 핼러윈에…… 이 골목에서…… 너도 쓸래? 아이 둘이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려 붙였다.

 

순식간에 일어나서 마음의 준비도 없었을 언니, 오빠, 좋고 행복한 곳으로 가서 여기서 못 이뤘던 꿈, 거기 가서는 아무 걱정 없이 꼭 이루길 바랄게.

 

놀러오셨다가 돌아가셨으니 그곳에서는 재밌게 노세요!

 

포스트잇을 다 떼어갈 무렵, 아이와 엄마가 방향을 돌려 지나가다가 휑한 벽을 보고 멈춰 섰다. 아이가 침울한 표정을 짓자 엄마가 다가와 물었다. “자기가 쓴 거 버린 거냐고……” 수안은 급히 아니라고 설명했다. 아이가 발길을 돌려 걸어가면서 자꾸 뒤돌아봤다.

10월 29일에 이태원 골목에 가면 메시지를 쓰려고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수안은 그 분위기가 좀 기이했다. 사람들이 얼굴을 가만히, 아주 가만히 두는 것 같았고, 메시지를 읽는 사람도 골목 여기저기 서 있는 사람도 표정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아카이빙하러 처음 올 때 이렇게 계속 오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고, 끝내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왜 계속 오는지 알 수 없었다.

 

*

 

재이_10·29 이태원 참사 추모 메시지를 기록‧보존하는 활동 ‘이태원 기억 담기’가 첫 허들을 넘고 있습니다. 몇만 장에 달하는 메시지를 분류하고 보존하는 작업이 곧 마무리되어요. 수많은 시민들이 자원 활동을 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이 기억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체계적이고 튼튼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사회적으로 알리는 일을 계획하고 있어요. 오는 10월 19일, 자원 활동가 만남의 자리에 초대합니다.

2024.10.14.

 

이 주기를 앞두고 자원 활동가들이 모였다. 민석이 서류 박스를 가리키며 계획을 말했다.

저 박스에 A4 용지가 이백에서 삼백 장 들어가 있어요. 그게 서른 박스 있고, A4 한 장에 여섯 장씩 붙었다고 계산하면 포스트잇은 사만 장 정도예요. 우선 A4 용지를 모두 스캔한 다음, 그 이미지 파일을 보면서 타이핑하고, SNS 계정 만들어서 인터넷에 게시하는 것까지 하면 끝나요.

사람들이 걱정과 의견을 쏟아냈다.

포스트잇을 사람들이 나눠서 타이핑한다고요? 모여서 안 하고?

네. 원본은 보관해야 되니까 이미지 파일로 전송하고요. 각자 편한 시간에 하면 돼요.

이 인원으로는 못할 거 같은데. 시민들하고 해야 해. 근데 타이핑한 거 오류 많지 않을까? 잘못 적거나 오타도 있을 거고. 작업에 익숙해지는 시간도 필요하고. 우리도 글씨 안 보여서 애먹었잖아요.

사람들의 걱정에 민석이 말했다.

매뉴얼을 만들 거예요.

타이핑한 뒤에 확인해야 할 거 같은데.

해야죠.

네?

작업 한 다음에 검수해야죠.

사만 장을 다요?

네.

당연한 걸 묻느냐는 민석의 말에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민석은 강조했다. 타이핑한 건 원본하고 대조해야 해요. 삼 주기에 맞춰 아웃풋을 내려면 5월까지는 검수를 마쳐야 하는데, 가능할까? 연우는 빨리 작업이 끝났으면 했고, 끝나지 않길 바라기도 했다.

 

*

 

연우는 수안 편에 김밥을 보내고 유튜브 생중계와 트위터를 들여다봤다. 해를 넘기고 몇 달이 지났지만 디지털 작업은 시작도 못했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해서 작업이 중단됐다. 활동가들이 광장에서 살고 있었다. 연우도 상황이 바뀌었다. 미란 남편이 채윤이를 일요일에 만나서 미란이 토요일에 가게를 봐줄 수 없었다. 탄핵 집회도 12월에 한 번, 밤에 미란과 여의도에 갔고, 경복궁 앞으로 옮긴 뒤로는 가지 못했다. 여의도에서 사람에게 떠밀려 걸으며 연우는 긴장됐다. 앞에서 뒤에서 사람들이 천천히 가자고 소리쳤다. 밤에 집으로 돌아와서 연우는 ‘호박 랜턴’이 여의도 밀집 상황을 염려해 만든 ‘안전 가이드라인’을 꼼꼼히 읽었다. 경복궁 근처에 있는 ‘별들의 집’을 시민들 쉼터로 개방하고 컵라면도 준다는 소식을 SNS에서 보고 연우도 뭔가 하고 싶었다. 독립하면서 개발한 곤드레 김밥을 김부장과 말아 수안에게 부탁했다. 신메뉴에 곤드레 비건 김밥을 넣은 것도 수안 아이디어였다. 이게 요즘 트렌드예요! 독립하면 마음대로 쉴 줄 알았는데. 이 년은 애를 써야 안정될 거 같았다. 그래도 미란과 여름휴가 계획은 길게 잡았다. 수안이 광장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보내줬다. 천막이 수없이 늘어서 있는데, 그 가운데 한 천막에서 세월호 유가족이 주먹밥 나눔을 했고, 다른 천막에서 이태원 유가족이 간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돌아다니다 만난 재이와 호연과도 사진을 찍어 보냈다. 탄핵이 되고 몇 달 지나 채팅방에 글이 올라왔다.

 

재이_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활동 공지 드립니다. 환절기가 다가오면서 감기와 장염이 유행이라고 해요. 모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3주기를 앞두고 여러분들이 만들어오신 아카이브를 한 매듭짓는 활동을 시작하려 합니다. 돌아오는 9월 1일 월요일, 포스트잇을 디지털화하기 위해 스캔 작업을 하려 합니다.

2025.8.28.

 

다정하게 안부를 물으며 올라온 공지에는 할일이 많아 보였다. 월요일이라 갈 수 없어 연우는 글과 사진에 열심히 하트를 찍었다. 월요일마다 밤늦도록 작업하는 사진이 올라왔다.

 

민석_작업 현황 공유

총 29개 상자 중

넘버링: 25상자 완료

스캐닝: 17상자 완료

2025.9.15.

 

재이_빠띠 캠페인 시작

이태원 기억담기 데이터톤 🌟 기억과 애도의 힘을 함께 모아요!

2025.9.19.

 

호연_오늘, 스캔은 일단락 :) A4 5800여장 분량.

기록보존팀 퇵은합니다! :)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흙!

2025.9.22.

 

호연_반가운 소식 남겨두어요🙏

동네 서점에서 함께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신 참여자분이 기억 담기 캠페인 참여 인증을 지도로 모아보는 페이지를 만들어주셨어요. 참여를 인증하면 지도 위에 별로 표시됩니다.

(동네 서점 커뮤니티에도 공유했는데) 20개 정도 서점에서 모임을 열어 참여한다고 하네요

2025.10.19.

 

태훈_기억과 안전의 길에 들렀는데, 비가 엄청 쏟아지다가 이제 조금 그치고 있어요ㅠ 빌보드하고 벽에 사람들이 붙인 메시지 다 젖고ㅠㅠ 포스트잇이랑 리본 담긴 박스 물에 잠겨서 다 젖었습니다 ㅠ

2025.11.1.

 

2026년 1월. 시민들이 타이핑한 걸 검수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모임이 일요일로 바뀌어 연우는 바로 신청했다. 오랜만에 오니 처음 본 얼굴이 많아 연우는 소개를 귀기울여 들었다. 새해에 갓생 살아보려고 왔어요. 탄핵 광장 자원 활동가 단톡방에서 유가족과 도심 걷기 보고 그거 하다 왔어요. 어, 저도 광장 자원 활동했어요. 광장 가서 깃발 보고 시민단체가 이렇게 많은 줄 처음 알았어요. 영화제에서 다큐 보고 방학이라 아이랑 왔어요. 김봄이에요. 빠띠 캠페인 했었어요. 은둔 청년 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박하람입니다. 멍우입니다. 연우는 채팅방에서 사람들의 프로필 사진을 눌러봤다. 이름만 말한 사람이 요괴협회 깃발을 들고 있었다. 1월에 검수를 끝내는 게 목표? 이만오천 장을? 될 것 같지 않았다. 사람들이 미간을 찡그리고 원본 글씨와 타이핑한 걸 대조했다. 조용히 포스트잇을 들여다보던 멍우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에구, 글씨 좀 잘 쓰지. 사람들이 픽, 웃었다. 별들의 집 어딘가에서 작업 안 된 포스트잇이 자꾸 나왔다. 그럼, 2월까지는 마무리하는 걸로. 목표가 또 바뀌었다.

 

 


 

1. 덧붙이는 말

2023.7.27. KAL858기 진실 규명 특별 세미나

2023.10.10. 10.29 이태원 참사 추모 문화제 ‘발 없는 말’ 추모 메시지 낭독

2023.10.24.~25. 이태원 참사 1주기 학술 대회―진실과 투쟁 그리고 공동체 회복의 과제

2023.10.25. 『우리 지금 이태원이야』 발간 기념 북토크

2024.4.6.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 북콘서트

2024.6.20.~21. 4.16 국제심포지움―세월호 참사 10년, 진실‧책임‧생명‧안전을 말하다

2024.10.25. 재난피해자권리센터 신진연구자 포럼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를 마주하는 질문들’

2024.10.27. 『참사는 골목에 머물지 않는다』 북토크

2024.11.5. 10.29 이태원 참사 2주기 축제 ‘멈추지 않는 노래를 해’ ‘애프터 핼러윈―참사 이후의 사람들’ 집담회

 

위의 자리에 참석한 활동가와 연구자와 참가자들 사이에 오고간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것에서 많은 부분 빌려왔다.

 

2. 참고한 글

희정, 「누구도 기록하지 않는 ‘작은’ 죽음」, 한겨레 21, 2025.2.6.

대구 지하철 인터뷰 내용은 ‘4.16재단 활동 소식’ 글에 나온 내용을 정리했고, KAL858에서 세월호 유가족이 말한 부분은 오마이뉴스 기사에서 인용했다.

박강성주, ‘김현희-KAL858, 왜 비극 속의 비극인가?’, 오마이뉴스, 2023.7.29., https://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948606.

4.16재단 활동 소식,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대구지하철 참사 유가족」, 4.16재단 홈페이지, 2019.3.9., https://416foundation.org/416story/activity/303529/.

본문 중 영화에 대한 평은 영화 <너와 나>에 대한 평론과 씨네21의 ‘[특집] 올해의 한국영화 베스트5’, 그리고 영화 개봉을 알리는 기사들에서 일부 인용했다.

조현나, ‘[특집] 올해의 한국영화 베스트5’, 씨네21, 2023.12.22., https://cine21.com/news/view/?mag_id=104124&utm_source=naver&utm_medium=news.

 

3. 이태원 기억 담기 모임 소개

10.29 이태원 참사를 애도하고 기억하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기억과 안전의 길 그리고 시청 앞 시민분향소에 헌화를 하고 추모 메시지를 남겨주었다. 함께 추모 메시지를 분류하고 보존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2023년 3월~).

 

4. 추모 메시지 출처

10.29 이태원 참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기억과 안전의 길에 2022년 10월 29일~2023년 11월까지 붙어 있던 메시지, 서울광장 합동분향소에 붙어 있던 메시지, 이 주기 추모제 때 시청 앞 폼포드에 붙어 있던 메시지, 별들의 집 추모 공간에 붙어 있는 메시지.

 

5. 이 글에 적힌 추모 메시지에 대해 전하고 싶은 의견이 있으시면 이메일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simplede@hanmail.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