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Freeway

일주일 동안 로스앤젤레스의 우리 집에 머물던 윌이 뉴욕으로 돌아가는 아침이었다. 

 

LA답지 않게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6월의 끝인데 스웨트셔츠를 걸쳐야 할 정도로 선선했고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매일 지겹도록 맑기만 한 도시에서의 흐린 아침은 어딘가 비극적이다. 

 

고작 며칠 전 구입한 차로 윌을 로스앤젤레스국제공항(LAX)까지 데려다주기로 했다. 아직은 운전석에 앉아 느껴지는 차의 크기도 감각도 아슬아슬할 정도로 낯설었다. 그래도 나와 함께 일하기 위해 뉴욕에서 LA까지 와 준 윌을 적어도 공항까지는 내가 직접 데려다주고 싶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우린 매일 뒷마당에 앉아 사이좋게 글을 쓰고, 까다로운 이메일들을 함께 처리했다. 그런 윌과 작별 인사를 택시에 태워 보내며 하기는 싫었다. 그런데 막상 윌의 슈트케이스를 트렁크에 싣고 출발하니 긴장된 나머지 음악조차 틀 수 없었다. 옆에 앉은 윌도 당연히 함께 긴장한 듯 보였는데, 프리웨이 101번을 지나 405번에 올라 한참을 달리자 러시아워가 지난 프리웨이의 잔잔한 흐름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서서히 운전에도 여유가 생겼다. 

 

“Do you know the way to San Jose?” 

어느새 윌이 노래를 작게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버트 배커랙과 할 데이비드가 만든 노래. 윌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송라이터 콤비다. 이미 둘 다 세상을 떠났지만. 윌은 지금 이렇게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으니 이 노래의 ‘LA는 거대한 고속도로 같은 도시야’라는 가사가 생각났다고 했다. 그래서 공항까지 한 시간 남짓 우린 아주 오랜만에 이 콤비의 노래들을 함께 듣기로 한다. 

 

산호세로 가는 길 아니?

너무 오래 떠나 있었더니, 길을 잃고 헤맬지도 모르겠어

산호세로 가는 길 아니?  

난 산호세로 돌아가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해*

 

윌은 무의식적으로 노래를 흥얼거리는 습관이 있다. 난 윌의 그 습관이 때때로 얄밉게 느껴지곤 했다. 우리 둘이 함께 글을 쓰다가 피곤하고 지칠 때, 이야기를 앞으로 전진시킬 대사나 장면이 떠오르지 않을 때, 한동안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 내가 꾸물거리며 조용히 있을 때, 윌은 우리가 작업 중인 노래의 멜로디, 혹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어떤 것이든 작게 흥얼거리고는 했다. 마치 작업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턱을 손에 괴고 괴로워하고 있는 나의 무능함도, 나의 고통도 결국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란 것처럼. 

“그렇게 노랠 흥얼거리니까 집중을 못 하겠잖아.” 

나의 짜증에 윌이 흥얼거림을 멈추고 나면, 조용해진 방 안의 공기가 더 무겁게 나를 조르는 것 같았다. 침묵한다고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르는 것도 아닌데, 난 왜 윌에게 친절하게 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까. 내가 뭐 그렇게 재능이 있다고, 내가 뭐 그렇게 대단한 작품을 쓴다고, 근데 나는 정말 이런 일을 할 자격이나 있는 사람일까, 내가 윌의 재능과 기회마저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이어지면서 참을 수 없을 만큼 신경이 곤두선 내가 결국 랩톱 스크린을 닫아버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적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았을까. 

 

LA는 거대한 고속도로 같은 도시야 

계약금만 조금 내면 차를 살 수 있고 

일주일, 길어야 이 주면 스타로 만들어 주겠다고 하지

하지만 몇 주는 어느새 몇 년이 되어 버리고

끝내 스타가 되지 못한 사람들은 

주차 관리원이 되거나 주유소에서 일하고 있어*

 

배커랙의 경쾌한 멜로디와 대비를 이루는 데이비드의 씁쓸한 가사가 이 노래를 더욱 극적이고 감정적으로 만든다. 이 콤비가 20세기 중후반에 걸쳐 쓴 많은 노래들 특유의 질감-이를 테면, 갑자기 바뀌는 음조나 굽이굽이 이어지는 독특한 멜로디들, 그리고 세련된 멜랑콜리와 은유로 섬세하게 직조된 노랫말들-에 대해 윌과 나는 자주 얘기해 왔다. 아마도, 우리가 지금껏 함께한 스무 해 가까운 시간 동안 가장 즐겨한 대화의 주제 중 하나일 것이다. 원래는 취향을 공유하는 친구로서 나누던 이 대화들은, 우리가 함께 뮤지컬이란 걸 만드는 동료가 되어 아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결국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함께 헤쳐 나가야 하는 한 팀이 된 이후로는 특히 서로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할 수 있는 소중한 대화 중 하나가 되었다. 

솔직히 그건, 내가 열렬히 좋아하고 갈망하는 것들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여전히 윌뿐이라고 되새기게 만드는 대화들이었다. 나도 이런 근사한 노래를, 어떤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는 걸 완전히 이해할 뿐 아니라, 내가 하기만 한다면 그걸 현실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며 끝없이 지지해준 동료. 집에서 아주 멀리 떠나와 뉴욕이라는 험하고 외로운 도시에서 자발적으로 고아가 되어 살아가는 예술가는 너무 뻔한 클리셰지만, 그렇기에 아무하고도 나눌 수 없는 그 외로움을 기꺼이 함께해주고, 나를 위해 울어준 유일한 친구. 

그런데, 난 이제 그 친구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이 낯선 도시에서 지내기로 한 것이다. 내 기분과 상관없이 1년 내내 꽃이 피고 여름인 곳. 눈부시게 내리쬐는 햇살 속에서 과거의 불운을 잊으려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이제 삶에서 똑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찾아오는 곳. 그러니까, 아주 오래전부터 나 같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 

 

명성과 부는 자석 같아서 

사람을 집에서 아주 멀리 끌어당기지

가슴속에 꿈 하나만 있어도

혼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아

하지만 꿈은 먼지가 되어 흩어져 버리고

문득 정신을 차려 보면

곁에 친구 하나 없이

차에 짐을 싣고 떠나게 되는 거야*

 

13년쯤 전, 우리가 한국에서 올린 첫 뮤지컬로 함께 상을 받게 되었을 때, 난 새 직장을 위해 브루클린에서 워싱턴 DC로 막 이사를 가 있었다. 한국에 있는 어워즈 측에서 연락이 와 우리의 수상 여부를 미리 알려줄 수는 없다고 하면서도, “멀리에서 서울까지 오시는 수고가 헛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윌과 내가 시상식에 참여할 것을 독촉했다. 매우 심각한 건 아니지만 비행 공포증이 있는 윌이 시상식 참석 때문에 비행기를 타는 게 맞는 건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부모님이 그랬어. 인생에서 즐기고 축하할 일이 앞으로 어느 정도 더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상을 못 받더라도 즐겁게 여행 다녀오랬어”라며 말했다. 그리곤 윌은 비행기에 올랐다. 하필 내 새 직장에서의 첫날 아침, 서울에서는 시상식이 열리고 있었고, 난 사무실 내 책상에 앉아 시상식 중계를 모니터 화면 구석에 작게 띄워 놓았다. 혼자 수상하러 올라간 윌은 아마도 비행기에서 내내 준비했을 수상 소감을 한국어로 정성껏 말하다가, 마지막엔 영어로 나에게 얘기했다. “천휴, 훌륭한 친구이자 동료가 되어줘서 고마워. 우리의 다음 프로젝트가 기대돼.” **

그 뒤로, 우리는 크게 싸우고 나서 진중한 사과가 필요할 때, 혹은 기류에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서 겁이 날 때, 마치 마지막 대사처럼 서로에게 말하곤 했다. “Thanks for being such a great friend and a collaborator.” 

 

별 탈 없이 프리웨이를 달려 공항에 도착한다. 늘 분주하고 정체되기 쉬운 공항 진입로들도 오늘따라 여유롭다. 너무 일찍 공항에 도착해버렸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윌이 문득 말을 꺼낸다. 

“그거 알아? 우리 일주일 동안 한 번도 안 싸웠네. LA를 떠나는 게 서운할 정도야.” 

난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라 그저 차창 밖 을 바라본다. 매일이 따뜻하고 밝은 이 도시에 꾸린 내 새 일상이 내가 그토록 원하는 행복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거라 확신한다고, 이제 더 건강하게 지내기만 하면 된다고, 윌은 말한다. 

혹시 비행기가 지연이라도 되나 싶어 확인해보니, 뉴욕에서 와 윌을 태우고 다시 뉴욕으로 돌아갈 젯블루 비행기도 벌써 터미널에 대기하고 있다. 우린 떠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문 앞에 차를 잠시 멈추고 뒤따라오는 차들에 떠밀리듯 짧은 작별 인사를 나눈다. 별다른 말 없이 그저 “잘 가”. 터미널 안으로 향하는 윌을 확인하고 혼자 다시 차에 올랐는데, 이제 배커랙-데이비드의 노래 중 The April Fools가 흐르고 있다.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죠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이제 우리는 과거로부터 백만 마일이나 멀리 와 있어요

너무도 빠르게 달려온 지금

돌아갈 길은 없어요.

우리의 달콤한 4월의 꿈이 끝나 버린다 해도

 

그리고, 난 그제서야 윌에게 충분한 인사를 전하지 못했다는 후회를 한다. 

“내 훌륭한 친구이자 동료가 되어줘서 고마워”,  오랜만에 그 말을 했어야 하는데…… 그리고, 난 궁금해. 내가 아직도 너에게 충분히 괜찮은 친구이자 동료가 되어 주고 있는 건지. 그저 날 이해하는 네가 있다는 게 무척 고마웠던 시간들로부터 이제 우리는 백만 마일도 넘게 와 버린 것 같은데. 너의 멜로디에 내가 노랫말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신기했던 그때로부터 말야. 어떤 길을 선택했든 아주 나쁜 길은 아니었을 거라 믿지만, 네 덕분에 선택한 이 길을 오래 함께 걸어오면서 우리 인생이 참 많이도 바뀐 것 같은데. 

오랫동안 내 외로움을 나보다 더 걱정해 준 너. 슬퍼도 눈물이 안 나는 나 대신 여러 번 울어준 너. 나와 함께 한밤중 응급실에 가 본 적이 있는 너. 아직도 내 비상연락처인 너. 우리가 만들고 싶은 근사한 것들을 우린 지치지 않고 끝내 만들어낼 수 있을까. 네 말대로, 그저 내가 하기만 한다면. 너무 많은 걱정이나 잠 못 드는 밤들에 잠식되지만 않는다면. 아니면, 이 모든 건 그저 인생일 뿐이고, 즐기고 축하할 일이 앞으로 얼마나 더 있을지는 모르는 거니까, 그저 최선을 다해 오늘도 즐거운 여행을 하면 되는 걸까…… 

 

그사이 로스앤젤레스답게 맑게 갠 하늘이 눈부시게 빛난다. 

그걸 가로지르는 비행기가 하나 보인다. 

난, 음악 소리를 키우고,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은 캘리포니아의 프리웨이를 혼자 달려서, 아직 집처럼 느껴지지 않는 집으로 향한다. 

 

 

 

* 곡 〈Do You Know the Way to San Jose〉(1968년)는 버트 배커랙과 할 데이비드가 만든 곡으로 디온 워윅이 불렀다.  

** [클릭하면 영상 링크로 연결됩니다] 윌 애런슨의 더 뮤지컬 어워즈 최우수 작곡·작사상 수상소감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