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Our House

안개가 짙고 차가운 비가 내리는 로스앤젤레스의 아침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벤투라 대로변에 있는 ‘아트네 식료품점 & 식당(Art’s Delicatessen & Restaurant)’에 가서 아침을 먹었다. 캘리포니아의 겨울, 그것도 거의 끝 무렵인데도 날씨가 아주 춥다는 것 말고는 지극히 평범한 아침이었다. 남자와 여자는 둘 다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스물일곱인 남자는 영국에서, 그보다 두 살 어린 여자는 캐나다에서 왔다. 1년 전쯤, 남자가 속한 꽤 유명한 밴드가 캐나다의 어느 도시에 공연을 하러 갔을 때, 역시 그곳에서 공연하고 있던 여자와 처음 만나게 됐다. 옅은 푸른색 드레스를 입은 여자의 무릎 위에는 오르골이 놓여 있었다. 오르골이 낡아서 음 하나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데, 여자는 그 음이 나올 때마다 조금 창피한 듯 작게 웃었다. 그 밤, 여자는 자신이 만들어둔 노래들을 남자에게 들려주었고, 남자는 노래와 그리고 그 노래들의 주인과 깊은 사랑에 빠졌다.

 

‘아트네’에서 나온 두 사람은 근처에 세워 둔 차로 향하다가 어느 골동품 가게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여자가 마음에 드는 화병을 발견한 것이다. 여자는 평소 자신을 위해 돈 쓰는 걸 그다지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음에도, 길이가 30센티미터쯤 되고 입구 가장자리를 따라 손으로 그린 꽃무늬가 새겨진 오래된 화병을 사고는 기분 좋아했다. 여자는 그 화병을 품에 안았고, 둘은 산을 가로질러 굽이굽이 이어지는 로렐 캐니언 대로를 따라 여자의 집으로 돌아왔다. 경사진 길에 위치한 소박하고 포근한 집. 산 근처에 있어 뒷마당에는 나무와 풀꽃이 무성하고, 오늘같이 추운 아침에 꼭 필요한 벽난로가 있는 집이다. 칼리코와 헌터라 이름 붙인 고양이 두 마리가 집 안과 뒷마당을 자유롭게 오갔다.

“난 벽난로에 불을 붙일게. 자긴 뒷마당에 가 꽃을 따서 그 화병에 꽂으면 어때?”

집 안에 들어서며 남자가 여자에게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여자가 고양이들과 함께 뒷마당으로 나간 사이, 남자는 벽난로에 불을 붙이고는 거실 한편을 차지한 여자의 피아노 앞에 가 앉았다. 곧 심플하고 따뜻한 코드 몇 개를 치면서 남자는 머릿속에서 나오는 대로 멜로디와 노랫말을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난 벽난로에 불을 붙일게, 넌 오늘 산 그 화병에 꽃을 꽂아줘.”

 

이 흥얼거림은 〈Our House〉라는 제목의 노래가 되어 밴드 크로스비, 스틸스, 내시 & 영 의 1970년 앨범 〈Déjà Vu〉에 실리게 된다. 이 밴드의 네 멤버 중 내시, 그러니까 그레이엄 내시가 이 이야기 속의 남자다. 여자는 그 평범한 아침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포크 음악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가 되는 조니 미첼이다. 멤버들의 포근한 하모니가 인상적인 이 소박한 발라드 곡은 발매된 해에 빌보드차트 30위까지 올라갔고,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때때로 TV나 라디오에서 들려올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아끼는 노래가 되었다. 이제 여든을 훌쩍 넘긴 그레이엄 내시는 지금까지 수많은 인터뷰에서 이 노래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젊은 시절 조니 미첼과의 로맨스를 숨기지 않고 말하는 게 인상적이다. 둘이 함께한 오래전 어느 아침을 놀랍도록 디테일하게 회상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그 시절에 대한 향수와 조니 미첼을 향한 애정이 함부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깊고 진실하게 배어 있다.

 

내가 언제 처음 이 노래를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난 어린 시절 라디오를 그 어떤 친구보다도 가깝게 여겼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는 꽤 익숙했는데,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노랫말에 처음 귀 기울였던 순간은 정확히 기억에 남아 있다. 20대 후반부터 30대 내내 살았던 브루클린의 작은 아파트에서였고, 그 무렵 난 무척 혼자였다. 나에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 몇을 잃고 나서였고, 뉴욕의 춥고 긴 겨울에 힘이 부치기 시작하던 때였다. 소박하고 따뜻한 멜로디로 “우리 집은 매우 근사해. 마당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있지. 전에는 삶이 어렵다고만 여겼는데, 네 덕분에 모든 게 쉬워졌어”라고 노래하는 후렴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는데, 난데없이 눈물이 터졌다. 그 무렵 나를 떠나간 사람들이 갑자기 더 그립다거나 원망스러워서가 아니었다. 이 노래는 내가 그때까지 한 번도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무언가를 간절히 갖고 싶게 만들어 버렸다. 말하자면, 사랑하는 사람과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보내는 지극히 평범한 아침,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 화병에 꽃을 꽂으며 느끼는, 삶이 고된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둘이 함께하니 그럭저럭 참을 만하다는 감정. 그런 감정을 내가 얼마나 느껴보고 싶은지, 이 노래가 깨닫게 한 것이다.

 

*

 

내게는 브라이언이라는 아주 상냥한 친구가 있는데―실명이다. 그가 내 글에 이렇게 실명으로 언급되는 걸 매우 반길 것을 알기에―그는 70년대 포크 음악을 비롯해 오래된 음악을 나보다도 더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친구다. 브라이언과는 내가 잠시 일했던 워싱턴 D.C.의 작은 디자인·광고 회사에서 만났다. 회사는 아담한 3층짜리 주택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브라이언과 나는 데스크 두 개로 꽉 찬 작은 방을 오피스로 나눠 쓰게 되었다. 내가 그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첫날, 브라이언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일하면서 노래 좀 들어도 될까?” 그러고는 버트 배커랙과 할 데이비드 콤비의 1960~1970년대 히트곡들을 연달아 틀었다. 〈Raindrops Keep Fallin’ on My Head〉나 〈Close to You〉 같은 노래들, 그러니까 내 페이버릿들을 말이다. 그 순간, 나는 브라이언과 내가 아주 좋은 친구가 될 거란 걸 알았다.

 

언젠가 브라이언에게 〈Our House〉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레이엄 내시가 어떻게 이 노래를 만들게 되었는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이 노래를 좋아하는지도. 브라이언은 늘 그렇듯 내 얘기에 눈을 반짝이며 깊이 공감해주었다. ‘그런 소중한 얘기를 나와 나눠줘서 고마워’라는 표정이었다. 그 무렵 우린 둘 다 첫 타투를 뭘로 할지 한참 고민하고 있었는데, 둘 다 그래픽 디자이너여서 그런지 어떤 문양도, 혹은 문자도 쉬이 타투로 선택하기 어려웠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고, 그러니까 우리 둘 다 워싱턴 D.C.의 그 디자인 회사를 그만둔 지도 한참이 지나고도, 브라이언과 나는 여전히 ‘첫 타투’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서로 그려주는 건 어떻겠냐는 얘기가 나왔다. 난 그림 그리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고, 브라이언은 ‘그림 솜씨가 훌륭하다’고만 표현하기엔 애석할 만큼 아주 훌륭한 아티스트라서, 사실 이건 나에겐 매우 좋고 브라이언에겐 바보 같은 거래였다. 어쨌든 브라이언과 나는 둘 다 비슷하게 소심한 성격이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친구 몸에 영원히 새겨질 무언가를 그리는 건 너무 부담스러워”라며 결국 포기하게 되었다. 그때 내가 브라이언에게 요청했던 그림은 아주 간단한 모양의 집이었다.

 

〈Our House〉를 듣고 펑펑 울어버린 브루클린에서의 그날 이후, 지금까지도 내 꿈은 대략 그런 것이다. 늘 가는 오래되고 소박한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주차한 곳을 향해 걷다가 무심코 들어간 빈티지 가게에서 오래된 꽃병을 하나 고르고, 고양이―실은, 고양이 알러지가 있는 나로서는 ‘강아지’―가 있는 집으로 돌아와 벽난로에 불을 붙이고 화병에 꽃을 꽂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걸 함께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 참을성이 바닥날 만큼 긴 겨울의 끝 무렵, 비까지 내려 지나치게 추운 아침이더라도, 이 평범한 순간을 함께 나누는 사람이 있어서 삶이 그럭저럭 견딜 만하게 느껴지는 것. 그런 ‘우리 집(Our House)’ 풍경.

 

첫 타투인 만큼 나에게 의미 있는 무언가를 새겨 넣고 싶었고, 고민하다 보니 그런 소박하고 작은 집이 떠올랐다. 작고 네모난 상자에 지붕과 창문과 굴뚝 하나만 있어도 되니까,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그림이어도 되니까, 그런 집을 내 몸에 새기고 싶었다.

 

어쩌면 지나치게 감상적인 내 얘기에도 상냥한 브라이언은 깊이 공감해주었고, 심지어 몇 개의 스케치를 보내왔다. 그런데 막상 스케치를 받아보니 내 주문은 갈수록 구체적이 되어갔고(“집은 이왕이면 미드센추리 양식이면 어떨까?” “옆에 야자수도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브라이언의 그림은 첫 타투로 하기엔 너무나도 거대해져 버렸다. 그래서 아직 내 몸엔 아무런 타투도 없다.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