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시에 가서 지내든지 가장 먼저 하게 되는 일이 있는데, 혼자 있기 좋은 카페를 몇 군데 찾는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카페의 기준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동선상 너무 멀거나 애매한 위치가 아닐 것. 아침에 일어나서 대충 스웨트셔츠나 모자를 걸치고 산책 겸 걸어갈 수 있는 거리가 이상적이다.
2. 인테리어가 번잡스럽거나 최신 유행 댄스곡들이 울려 퍼지지 않을 것.
3. 말차가 메뉴에 있어야 함. 세레모니얼 등급이면 더할 나위 없지만, 최소한 말차 가루에 이미 단맛을 추가해버리는 식의 제조법은 안 됨.
LA에서는 1번 항목과 타협할 수밖에 없는데, 걸어서 갈 만한 거리에 이런 카페가 위치할 확률은 매우 희박해서(물론, 실버레이크나 다운타운 한복판에 산다면 다른 얘기다) 운전을 해서 가야 한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대신 주차가 어렵지 않은 곳이라는 게 좋은 카페의 기준이 된다. 예를 들어, 지금 내가 앉아 있는 라밀 커피(LAMILL Coffee)도 조금 협소하긴 해도 주차장이 딸려 있고, 이지 리스닝한 음악을 틀어서 이곳에 종종 오게 된다.
카페에 혼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듯한 사람을 몇 명 발견하게 되는데, 이 전형적인 LA의 풍경 속에서 나 또한 랩톱을 펼쳐 끄적거리고 있다. 이 중에 TV나 영화 스크린으로 자신의 글이 옮겨진 적이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지난하고 외로운 글쓰기란 작업을 저들도 똑같이 지난하고 외롭다 느낄까? 한글로 채워진 내 화면을 조금 신기한 듯 힐끔거리는 사람들도 가끔 있는데, 그럴 때면 내가 마치 비밀이라도 들킨 아웃사이더 같아서 순간 외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어차피 한국어로 끄적일 거면서 어쩌자고 혼자 이렇게 멀리 와 있는 건지 회의감이 들면서, 이 카페 안에 혼자인 사람 중에서도 더 혼자라고 느끼는 것이다. 게다가, 주문할 때면 바리스타가 내 이름을 잘못 알아듣는 경우도 꽤 잦은데, ‘휴’라고 이름을 말하면 Hugh도 아니고, Hu, Ku, Q 심지어 Ju라고 받아 적는 경우도 있다. 내 이름이 그들에겐 제대로 알아듣기도 힘든 ‘이상한 이름’인 것 같아 조금 외로운 기분이 들어서 그냥 가장 흔한 영어 이름 중 하나, 이를테면 절대 잘못 알아들을 일 없는 ‘데이비드’ 정도로 해 버릴까 생각한 적도 많았지만, 그러면 너무 쉽게 내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 같기도 해서 그저 더 또박또박하게 ‘휴’라고 말하기로 다짐한다. 그러니까, ‘나는 당신들에게는 조금 낯선 이름이고, 혼자 멀리에서 이곳에 왔으며, 당신들과 다른 언어로 글을 쓰는 Hue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잘못된 건 없어요.’라고 혼자 속으로 말하면서.
생각해보면, 내가 뉴욕으로 가기 한참 전부터,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고 자란 서울에만 있었을 때도 유독 외로움은 어떠한 기질로서 늘 나의 일부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외로움 때문에 마음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고, 그게 나를 한 명의 창작자로 만들었다는 것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어쩌면 해피엔딩〉도 어느 외로웠던 겨울, 브루클린의 한 카페에 혼자 있다가 떠오른 감정에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뉴욕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건 꽤 자주, 꽤 많이 외로운 일이었지만, 어차피 서울에 돌아가도 외로울 게 나라면 차라리 내가 시작한 곳에서부터 아주 멀리 떠나와, 나와 매우 다른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외로워하는 게 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뉴욕은 나처럼 어릴 적부터 외로워하는 사람들이 모여들기로 유명한 곳이니까. 그곳에는 진짜 예술이 있고, 그걸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그러니 어쩌면 진짜 친구는 그곳에 가면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런 희망을 품고서 찾는 곳이 뉴욕이니까.
아무튼 꽤 오랫동안 혼자 있어 본 사람으로서 조금 더 얘기하자면, ‘혼자 있기’는 처음엔 불편하지만 일단 얼마간 익숙해지고 나면 일종의 고급 기술을 장착한 것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타인을 신경 쓰지 않고 혼자 낯선 도시를 하루 종일 걷는다거나, 혼자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때, 혼자 미술관 어느 그림 앞에 서서 언제까지고 원하는 만큼 바라볼 때, 나는 내가 다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오롯이 혼자서, 조금은 근사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핸드폰을 손에 쥐지 않고 혼자 가만히 있는 시간이 일상에서 사라지고 나서, 이제 우리는 혼자 있기를 전보다 더 힘들어하는 것 같다. 혼자 가만히 있을 때 찾아오는 흐릿한 외로움과 슬픔 같은 감정들을 들여다보는 건, 어쩌면 우리와 관련한 일련의 사실들을 새삼 자각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의 삶은 유한하고, 그 삶이 내내 어떠한 포만감이나 즐거움으로만 채워질 수는 없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 저마다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쓰고 나면 우린 결국 소멸하는 존재라는 그 사실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을 애써 외면하기 위해, 혼자 있게 되면 집중을 다른 곳으로 향하게 할 무언가를 자꾸만 만들어 내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손에 꼭 쥔 스크린 속에서, 끝없는 스크롤 속에서.
하지만, 우리가 삶에 대한 저 사실들을 바꿀 수는 없다. 삶은 그래서 슬프고, 어쩌면 또 그래서 아름답다. 그러니 겁내지 말고 이따금 가만히 혼자 있는 시간이, 혼자 외로움을 끌어안고 다독이는 시간이 우리에겐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을 하며 나는, 여기 실버레이크의 카페에 조금 더 혼자 있기로 한다.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가 연주하는 〈Little Person〉*이 흘러나온다. 한없이 다정하게 외로운 노래다. 지금 이 노래를 들으며 다른 언어로 무언가를 끄적거리는 내 모습을 혹여나 누군가 힐끔거린대도, 설령 내 이름을 알아듣지 못해도, 순간 이 세상에 나만 혼자인 느낌이 들어도, 실은 아무것도 잘못된 건 없다.
* 원곡은 존 브라이언의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