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Camera

카메라 앞에 서서 생각한다.

카메라 앞에서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열세 시간의 비행 후 서울에 도착했다. 시차로 인한 피곤함을 견뎌내며 중요한 일들과 미뤄 둔 일들을 하나씩 소화한다. 오늘 밤에도 잠든 지 네 시간 만에 깰 것이다. 한밤중의 서울을 바라보며 익숙함과 낯섦을 함께 느끼겠지. 이 도시 속 사람들이 자전하는 속도와 나의 속도가 다르다고 느낄 것이다. 흐릿하게 외로울 것이다. 많은 걸 기억해내고 많은 질문을 하고 그 어떤 것에도 명쾌한 답은 하지 못할 것이다. 시차로 인한 불면의 밤은 보통 그렇다.

 

지난 1년 동안 패션 매거진과의 화보 촬영을 여러 번 하게 되었다. 이번 서울 일정 중에도 촬영이 있었다. 처음엔 이 낯선 세상을 경험하는 것 자체에 흥분했다. 10대의 나는 몇몇 매거진을 꽤 많이 좋아했다. 인터넷은 있었지만 스마트폰은 없던 시절. 한 달 주기로 트렌드를 선별하고 정돈해 알려주는 이 매체가 고마웠다. 패션 에디토리얼의 세련된 이미지에서부터 날렵한 문장으로 쓴 해외 영화와 팝 앨범 리뷰까지. 그때 그 매거진들은 서울의 호기심 많은 한 소년이 해외 팝 컬처의 미학을 동시대에 접할 수 있게 해주었다. 시간이 흘러 뉴욕에서 미대에 다니는 동안에는 미국과 유럽의 니치한 매거진들까지 탐독했다. 디자이너로 일하는 동안 뉴욕을 베이스로 한 새 매거진의 로고를 만들어준 적도 있다.

 

그러니, 매거진 GQ와 데이즈드 같은 곳에서 화보 촬영 제안이 왔을 때 겁이 나면서도 기꺼운 마음이 든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극작가라는 직업은 매체에서 자주 다뤄지는 직업이 아니다. 그런 내가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토니어워즈’를 수상해 뉴스 헤드라인에 실리고, 어릴 적 좋아하던 매거진들이 호기심을 갖고 선택한 새로운 피사체가 된 것이다. 작년 토니어워즈 직후 서울에 왔을 때, 데이즈드와 첫 화보 촬영을 하게 되었다. 그날 아침 호텔 욕실에서 찬물로 샤워를 하며 다짐했다. 오늘만은 내가 무대 위 배우인 것처럼, 혹은 어떤 캐릭터가 된 것처럼 해보자고. 촬영장에서 내가 부끄러워하거나 뻣뻣하게 굴면, 에디터와 포토그래퍼를 비롯해 오늘 나를 위해 모인 여러 사람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일이니까, 최대한 뻔뻔해지자고. 주문을 외듯 되뇌었다.

 

그렇게 카메라 앞에 서게 되었다.

 

플래시가 소리를 내며 계속해서 번쩍인다. 딱히 어떤 포즈를 취해야겠다는 생각을 제대로 하기도 전에 몸을 움직여야 한다. 저기 조금 멀리 떨어진 모니터 속 내 모습을 바라볼 여유가 없다. 모니터 뒤편에 모여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 어렴풋이 느껴진다. 아니다, 거기에 신경을 쓰면 자신감만 사라질 뿐이다. 카메라를 바라보며 눈빛을 바꿔본다. 순간, 포토그래퍼 옆에 반사판을 든 스태프와 눈이 마주친다. 그가 지금 속으로 나를 비웃고 있는 건 아닐까, 하며 아찔한 기분이 든다. 동시에 다시 번쩍하는 플래시에 다행히 모든 생각이 꺼지고, 난 다시 포즈를 바꿔본다. 토마토가 싫은 사람은 토마토를 피하면 될 뿐이다.**

 

난 조금 더 자신 있게 카메라를 바라본다.

 

10년 넘게 극작가로 활동하면서 무대 위에 어떠한 세계를 꾸며내는 것에 익숙해졌다. 긴 시간 동안 나와 윌의 머릿속에서 세공된 것들을 배우를 비롯한 여러 명의 조력자와 함께 또다시 다듬고 꾸며서 만들어내는 세계. 그러니까, 극작가로서 내가 보여주는 건 당장 오늘의 충동이나 긴박함보다는 시간의 축적이 담긴 고심의 결과물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평가하는 건 내가 아니라 내 공연이다. 설령 내 공연에 실망한 누군가의 비난을 듣게 된대도, 내 공연을 거쳐 나에게 찾아오는 비난인 것이다. 그러니, 카메라 앞에서는 무대 뒤에 있을 때보다 내가 훨씬 연약하게 느껴진다. 아무런 안전망 없이 내던져진 기분. 아무리 열심히 포즈를 취해본다 한들, 결국 어떻게 보일지는 내가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 그렇게 데이즈드와의 첫 화보 촬영을 하고 뉴욕으로 돌아간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난 다시 서울에 가는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이번엔 어릴 적에 정기 구독을 한 적도 있는 GQ의 표지 촬영을 하게 된 것이다. 데이즈드와의 촬영도 꽤 규모가 있었는데, 이번엔 소품과 세트를 담당하는 팀도 따로 꾸려진 훨씬 더 대규모의 촬영이었다. 내가 GQ 정기 구독을 하던 시절부터 이름이 익숙한 패션 에디터님과 촬영장에서 인사를 하게 되었다. 헤어와 메이크업을 위해 거울 앞에 앉아 있는 동안, 첫 촬영 때 스스로에게 했던 주문을 이번에도 똑같이 했다.

 

1. 쭈뼛거리지 않기.

2. 절대 부끄러워하지 않기.

3. 토마토가 싫은 사람이 있다 해도 그건 토마토 잘못이 아니라는 걸 기억하기.

 

내가 카메라 앞에 서서 촬영을 시작하자 모니터 건너편에 있는 스태프들이 만족해하는 모습이 보였다. 일곱 시간의 촬영이 끝나고, 메이크업을 채 지우지 못한 채 인터뷰를 했다.

 

얼마 후 인쇄되어 나온 매거진 표지 속 내 모습은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당연한 일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의 내가 나를 응시한다. 촬영장에 모였던 많은 사람들이 공들여 만든 감각적인 이미지 속에 내가, 이제 막 시작될 시즌의 미학을 선명하게 반영한 옷을 입은 내가 인쇄되어 있다. 공연 예술과는 다르지만 이것 또한 뿌듯한 결과물로 느껴졌다. 카메라 앞에 서겠다는 결심을 한 이유를 그제야 자세히 깨닫는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방식과는 다르게 무언가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다른 환경에서 새로운 긴장감을 느껴보고 싶었다. 내가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사진 속 얼굴을 바라보면서, 저 순간에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하려고 애써보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표정이 너무 경직된 건 아닌지, 너무 작위적인 포즈는 아닌지, 아마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사진 속 나는 그런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인다. 저렇게 자신 있어 보이는 것도 나라니. 내가 저렇게 화려하게 보일 수도 있다니. 아무래도 이상한 기분이다. 문득 촬영장에서 모니터 뒤에 모여 있던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들이 보고 있던 건 이런 모습이었을까. 공연 연습실에서 배우를 바라볼 때의 내 모습을 생각한다. 내가 쓴 문장을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표정으로 말하는 배우의 모습을 발견할 때가 있다. 내가 미처 몰랐던 내 표정을 그날의 누군가도 내게서 보았을까.

 

난 무엇을 더 할 수 있는 사람일까.

시간이 더 흐르기 전에 더 절박하게 더 많은 걸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 서울의 촬영장에서도 카메라 앞에 서려니 긴장이 됐다. 이제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역시나 이번에도 최대한 뻔뻔해지자는 주문이 필요했다. 몇 번 해봤다고 익숙해질 일은 아닌 것이다. 그래도 플래시가 터지기 시작하면 카메라를 바라본다. 몸을 조금씩 움직인다. 서서히 생각을 잊는다. 어떤 얼굴이 담길지는 조금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기분으로 카메라 앞에 서서, 그저 최선을 다해 자신 있는 척 순간을 살아보려 애쓴다. 시간은 점멸하는 저 플래시만큼이나 가차없다. 내 지금의 계절이 이렇게 여기 담기고 있다.

 

 

* 잉글랜드 싱어송라이터 찰리 XCX(Charli XCX)의 곡 〈Camera〉를 들으며 이 글을 썼다.

** 시각예술가 데이비드 슈리글리(David Shrigley)의 일러스트 〈If You Don't Like Tomatoes〉를 생각했다.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