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미소녀(1)

올해 봄부터 야마나시현 고후시 변두리에 있는 작은 집을 빌렸다. 내가 도쿄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열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십 년 전에 돌아가신 큰할머니 때문이었다. 부산을 떠난 비행기가 나고야 상공에 들어섰다. 기내 전등이 모두 꺼지자, 손에 쥐고 있던 소설집을 덮었다. 동체가 흔들리는 거친 소음과 함께 승무원의 안내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온몸을 휩싸는 하강기류를 느끼면서 천천히 눈을 감았다.

「미소녀美少女」에 관해서라면, 이미 통째로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읽었다. 하지만 나의 큰할머니—정확히 말하자면 증조할머니—가 다자이 오사무의 그 미소녀라니, 그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누가 믿겠는가. 어디선가 아기의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소음과 혼란에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던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원서를 쥔 두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실렸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열두 살이었다.

우리집에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두 명의 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외증조모와 외조모. 1921년에 태어난 큰할머니와 1944년에 태어난 작은 할멈. 내가 언제부터 증조할머니를 큰할머니라고 부르기 시작했는지, 어째서 그녀를 그렇게 부르게 됐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들과 함께 살면서도 그 생활이 특이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남들의 눈에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외가든 친가든 간에, 다른 아이들은 일반적으로 한 명의 할머니와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도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야 깨달았다.

큰할머니의 책장에는 온갖 일본어 원서들이 가득했다. 그 방에 들어설 때마다 느꼈던 감정을 생생히 기억한다. 창밖에서 스며든 햇빛이 가지런히 정렬된 책등 위를 비스듬하게 비추었다. 길게 늘어진 빛의 평행선 속에서 크고 작은 먼지들이 부유했다. 고동색 원목 책장에 꽂혀 있던 그 책들을 볼 때마다, 앵그르와 마티스의 그림엽서―그 헐벗은 여자들―를 볼 때마다, 나는 항상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일본어를 제대로 배우려면 원서를 많이 읽어야 한다.

큰할머니는 늘 그렇게 말했다.

나는 너덧 살 무렵부터 큰할머니에게 일본어를 배웠다. 솔직히 그 시간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다. 내가 조금이라도 딴청을 피우거나 귀찮은 기색을 내비치면, 큰할머니는 예의 ‘무적자無籍者’로 태어나 자라야 했던 자신의 유년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야기는 언제나 쇼와시대를 거쳐 다이쇼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갔다. 서양 문물과 교육제도가 정착되고 전쟁이 일어나면서 모든 것이 격변하던 시대였다.

지금 네가 얼마나 축복받은 시대에 사는지 아느냐로 이어지는 일장 연설을 듣다보면, 아무래도 거실 마룻바닥에 누워 마냥 다리를 꼬고 있기는 어려웠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켰다. 한숨을 내쉬고는 책을 펼쳐 활자를 읽어내려갔다.

여름의 파밭에서는 늘 그랬듯 작은 할멈과 엄마의 선캡이 크고 무성한 파초들 사이로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곳에서 불어온 바람을 타고 알싸한 향이 콧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보통 사람이라면 잘 감지하지 못할 희미한 냄새였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강서의 파밭을 걸어다닌 나에게는, 콧잔등에 남는 톡 쏘는 잔향의 농도와 흙내의 습도가 계절마다 다르게 느껴질 정도로 익숙한 냄새였다.

큰할머니가 호토ほうとう가 담긴 그릇을 내어왔다. 내가 먹는 둥 마는 둥 하자, 아예 그릇을 들고 내 곁에 앉아 음식을 먹였다. 나는 책장을 넘기며 큰할머니의 눈을 이따금씩 슬몃 흘겨보았다. 주름진 눈이 어느새 내가 읽고 있는 『인간 실격』의 표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큰할머니가 약간 화색이 도는 얼굴로 몸을 바짝 붙였다. 혹시 자신의 책장에 있던 책이냐고 묻기에, 괜히 맞다고 맞장구를 쳤다가는 귀찮은 관심을 받게 될 것 같아서,

그럴걸요?

애매한 답변만을 내놓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방학 숙제로 읽는 중이라고. 그러나 사실 나는 왠지 ‘요조’라는 인물에 마음이 이끌려 숙제라는 것도 잊은 채 꽤 진지한 자세로 독서에 임하고 있었다.

혹시 「미소녀」라는 글 읽어봤니?

큰할머니의 질문이 이어졌다. 아니요, 라고 단칼에 자르고 싶었지만 큰할머니의 삼백안을 보자 이상하게 그 말이 쏙 들어갔다. 어딘가 흐릿한 인상을 주는 내 눈과 달리, 무당을 연상시키는 큰할머니의 눈매는 서늘한 느낌을 주었다. 눈 밑에 깔린 푸르스름한 그림자 때문에 더 그랬다.

무슨 글인데요, 라고 되묻자, 큰할머니의 입가에 달려 있던 주름이 일시적으로 곱게 펴졌다. 큰할머니가 잠시 기다려달라고 말하고는 뒤뚱뒤뚱 안방으로 걸어들어갔다. 그러고는 웬 낡은 책을 가져오며,

읽을 수 있겠니?

소설의 도입부를 펼치면서 물었다. 나는 거의 다 읽어가던 『인간 실격』을 덮고는 그 책을 건네받았다.

「미소녀」는 짧은 소설이었다. 어느 날, 아내의 권유로 온천에 방문했다가 한 소녀를 보고 단번에 마음을 빼앗긴 젊은 작가의 이야기는 그즈음 사춘기를 통과하고 있던 내 정서를 강하게 건드렸다.

그건 아마도 그해 여름, 같은 반 친구였던 M에게 고백했다가 차이는 바람에, 비통한 심정으로 여름의 한철을 통과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M이 자주 입곤 했던 노란 티셔츠를 떠올렸다. 미간을 찌푸린 채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며 말했다.

재밌네요.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는 감정을 애써 숨기면서 다시 자리에 누웠다. 큰할머니는 그러지 말고 제대로 좀 보라고 했다. 돌아누운 나를 콕콕 찌르더니 기어코 다시 일으켜세웠다.

여길 좀 봐.

큰할머니가 「미소녀」의 한 페이지를 펼쳤다. 그러더니 다자이가 온천에서 만난 ‘미소녀’의 알몸 묘사를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뭐하시는 거예요?

나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 물었다.

어떤 할머니가 어린 손자에게 그런 상스러운 문구를 그대로 읊어준다는 말인가. 그만 하시라는 나의 만류에도 큰할머니는 낭독을 멈추지 않았다. 기어코 미소녀에 관한 첫인상—쌍꺼풀이 없는 삼백안에 눈꼬리가 야무지게 올라가 있었다. (……) 나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졌다. (……) 커피잔에 가득찰 정도로 풍만한 가슴, 부드러운 배, 단단하고 야무진 팔다리—을 끝까지 읽어내려갔다.

그러고는 책을 덮더니 별안간 희한한 소리를 했다.

이 사람은 아직 살아 있다.

이 사람이라니요?

미소녀 말이다.

그리고 그날,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그 소녀가 바로 나다.

큰할머니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무슨 말을 들은 건가 싶었다. 그 장면이 서술된 페이지와 큰할머니를 멍하니 번갈아 보기만 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팔십오 세의 노인네. 등과 허리는 굽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해 이제는 표정조차 쉽게 파악하기 힘든 할망구가 다자이의 미소녀라고?

큰할머니가 야마나시현 고후시에서 자란 것은 사실이었다. 다자이가 그 작품을 발표한 시기를 생각하면, 소설 속의 미소녀와 큰할머니의 나이대가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큰할머니가 더위라도 먹은 줄 알았다. 그래서 와하하, 웃다가 에이…… 헛웃음을 치고는 돌아누우면서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우소うそ[거짓말].

 

 

고후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여섯시였다. 온몸에서 쉴새없이 땀이 흘러내렸고, 긴 여정이 남긴 허기에 도저히 걸을 힘이 나지 않았던 나는 휴대폰으로 급히 식당을 찾아봤다. 다행히 역 근처에 야마나시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었다. 다자이가 살았던 집과 내가 예약한 방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야 했지만, 그래도 오 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이른바 ‘미소녀 기행’이라 이름 붙인 이번 고후시 기행은 나에게 퍽 의미 깊은 여정이었다. 지난주, 나는 음대 입시생들의 개인 과외를 대부분 그만뒀다. 당분간은 내 음악에 집중하고 싶었다. 빈에서 유학을 끝낸 뒤, 거의 쉬지 않고 일을 해온지라 내심 지쳐 있기도 했다.

지도 앱을 켜고 식당 방향으로 걸어가자, 얼마 되지 않아 나무문 위에 붉은 천이 드리워진 목조 주택이 나타났다. 직원이 테이블에 놓고 간 호토를 한 입 떠먹었다. 오랜만에 아사히 생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면서 큰할머니의 「미소녀未少女」를 생각했다. 나에게는 두 개의 「미소녀」가 있다. 하나는 큰할머니가 다자이의 소설을 일본어로 필사한 청회색 노트 「미소녀」. 다른 하나는 큰할머니가 평생 취미로 그린 그림을 모은 노란색 화집 『미소녀』. 다자이의 「미소녀」와 큰할머니의 『미소녀』는 같은 미소녀를 그리고 있지만 화자도 대상에 대한 묘사도 다르다. 전자가 미소녀를 보는 작가의 시선으로 쓰인 작품이라면, 후자는 그 시선을 받던 미소녀가 수십 년이 흘러 직접 그날의 해명에 나선 작품이다. 전자가 작가의 소설이라면, 후자는 철저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그날을 다시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두 작품 모두 다른 맥락에서 신뢰하기 어려웠다. 어찌됐건 다자이의 「미소녀」는 허구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큰할머니의 「미소녀」는 그림들이 그려진 시점이 이미 그날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큰할머니가 진짜 미소녀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그랬다. 큰할머니는 왜 그런 그림을 그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