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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료칸 입구를 통과하자, 다자이의 모습을 본떠 만든 전신 패널이 보였다. 그 옆에 다자이의 책들과 사진이 전시돼 있었다. 아무래도 관광객들을 위해 꾸며놓은 자료실인 듯했다.
나는 그 앞으로 다가가 전시용 사진과 도록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실제로 다자이는 신혼 시절, 도쿄로 가기 전까지 고후에 체류했다. 도쿄로 돌아간 후에도 유무라 온천만큼은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이곳에서 장기 체류를 하며 「정의와 미소」와 「우대신 사네토모」를 썼다. 구석에는 「미소녀」의 도입부도 짧게나마 인용되어 있었다.
‘욕탕은 최근에 지은 모양인지 아주 깨끗했고, 새하얀 타일이 깔려 있어 밝은 느낌이 났으며, 햇빛이 가득 흘러넘쳐 청초한 분위기였다.’
나는 그 문장을 되뇌면서 욕탕 입구로 향했다. 그러고 보면 나의 목적지도 결국 도쿄가 아닌가. 욕탕 입구를 지나 탈의실로 들어가자, 선반에 놓인 등나무 바구니들이 보였다. 당시에는 혼욕이었다고 들었지만 지금은 남탕과 여탕이 분리돼 있는 것 같았다.
망할 할망구.
나는 중얼거리면서 옷을 벗고 탕 안으로 들어갔다.
이제는 일본도 혼탕이 아니잖아……
네 개의 유리창을 통해 눈부시게 밝은 햇빛이 번져 들어왔다. 왼쪽에 두 개, 오른쪽에 다섯 개의 샤워기가 있었고, 각 자리마다 사각형 거울이 벽에 붙어 있었다. 그 앞에 선뜻 앉기 꺼려질 정도로 검은 물때가 낀 플라스틱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온천물에 몸을 담그자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렸다. 목 안쪽에서 긴 숨이 새어나와 흩어졌다. 소설에서는 욕탕이 세 평 정도라고 했지만, 이곳의 욕탕은 그것보다 조금 더 큰 것 같았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부분 오십대 이상의 노인들이었다. 미소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사이에 앉아 있었다고, 다자이는 썼다. 살이 축 처진 노인들밖에 없는 욕탕에서 미소녀의 존재는 한 알의 진주라고 했었지. 큰할머니의 몸을 보면서 한 알의 진주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어릴 때 큰할머니와 동네 목욕탕에 갔을 때도 그랬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아홉 살 때까지 여탕에 들어갔다. 또래보다 워낙 키가 작고 몸체가 왜소했던 탓이다. 큰할머니는 내가 유치원에 다니던 무렵부터 나를 목욕탕에 데리고 갔다. 일본에서는 혼탕이 이상한 게 아니라고, 어차피 시골 마을이니 내가 여탕에 따라 들어간다고 해서 놀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고 나를 꼬드겼다.
실제로도 그랬다. 욕탕 주인이나 노인들이나 다들 알면서도 그냥저냥 넘어가는 분위기였다. 욕탕에는 늘 큰할머니 나이대의 노인 두어 명만이 낡은 거울 앞에 앉아 있었다. 조용히 자신의 피부를 닦아내던 그들은 가끔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걸기도 했다.
세상에, 얼굴만한 반점이 있구나, 중얼거리며 내 엉덩이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할머니랑 눈이 똑같이 생겼네. 근데 왜 이렇게 느낌이 다르지? 정말 친손자가 맞느냐고, 다리 밑에서 주워온 거 아니냐고, 별로 웃기지도 않은데 자기네들끼리 서로 맨살을 찰싹찰싹 때려가며 웃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두 손으로 아래쪽을 가리고는 탕 안으로 도망가곤 했다.
천장을 올려다보자, 둥근 물방울들이 다소 기이할 정도로 두껍게 매달려 있었다. 어깨를 모으고 온몸의 근육을 이완시켰다. 가슴부터 목, 입술까지. 나는 천천히 몸을 물속으로 가라앉혔다.
지금 내가 아는 큰할머니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욕탕에서 들은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욕탕에 올 때마다, 큰할머니는 옛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지만 그때는 그 이야기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어릴 적에도 눈만 간신히 내놓은 채 잠수 놀이에 열중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면 큰할머니의 목소리는 소리보다 진동에 가까워졌다.
그래서 나는 그 음성들을 자세히 기억할 수 없다. 틈만 나면 온천 신세를 져야 했던 병약했던 고후 시절에 관해서도. 몸이 약한 자신을 외가에 버려두고 일찍이 조선으로 향했던 고조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1939년, 조선으로 입국했을 때의 심경에 대해서도 대부분 기억할 수 없었다.
어떤 이야기는 나의 기억 속에 흘러들어왔으나 금세 사라졌고, 어떤 이야기는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귓바퀴를 한 번 훑고는 물방울처럼 떨어져내렸다. 큰할머니의 이야기는 그랬다. 탕에 스며들거나 바닥에 고여 있다 메말라간 수많은 액체처럼. 내 이마를 톡, 하고 건드리고는 순식간에 흡수됐다. 기억이 아닌 몸의 일부로.
큰할머니는 가끔 아버지에 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럴 때면 나는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아 큰할머니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산만하게 굴지도, 물속으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물론 좋은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솔직한 성격 탓인지, 아버지란 사람 자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이라 해서 미화해줄 생각은 없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고개를 저었다.
외모만 번듯하게 생겼지 하는 짓은 망나니나 다름없었다는 이야기, 허구한 날 개 시장에서 술을 마셔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다는 이야기, 섬세함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어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을 까먹는 바람에 늘 엄마의 푸념을 들어줘야 했다는 이야기, 사실 딸을 원했는데 내가 태어나고 말았다는 이야기, 그렇게나 술을 좋아하더니 갑자기 가버린 것도 그놈의 술 때문이었다는 이야기, 그래도 가족 중에 음악을 듣는 놈은 그놈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도 그때 들었다.
하여간 이시미 같은 놈이었어.
그럴 때마다 나는 번번이 실망감을 느꼈다. 아버지에 관해서라면, 이미 엄마나 작은 할멈의 태도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엄마는 아무리 물어도 아버지에 관해서라면 입을 꾹 다물었고, 작은 할멈은 아버지의 이름만 나와도 개 같은 놈, 이라고 읊조리며 흥분했으니까.
그러니 기왕 들을 거라면 큰할머니가 나았다. 어떤 이야기는 감추는 엄마나 어떤 이야기는 과장하는 작은 할멈과 달리, 큰할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려주었다. 어떤 때는 청자가 초등학생이라는 것을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사람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점 때문에—아버지를 개 같은 놈이라 마냥 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시미 같은 놈이라 부르는 목소리에서 묘한 감정의 어른거림을 느꼈기 때문에—큰할머니의 목소리를 신뢰할 수 있었다.
노래 한 곡 불러봐라.
큰할머니가 다라이에 담은 물을 내 머리에 끼얹으면서 일본어로 말했다. 나는 갑작스러운 일본어에 놀라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순간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욕탕 안이 텅 비어 있었다. 언제 바깥으로 나간 것인지 조금 전까지 때를 밀고 있던 노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큰할머니가 손바닥으로 나의 등을 찰싹 내리치며,
안심해라,
웃으면서 말했다. 욕탕에 큰할머니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퍼졌다.
그 사람들, 아까 전에 나갔어.
그걸 왜 이제야 말해요.
그렇게 소리치며 뒤돌아본 나는 다시 앞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바깥에선 일본어 하지 말자고 했잖아요.
그 순간, 나의 머리를 감겨주던 큰할머니의 손짓이 멈췄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큰할머니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 수 있었다. 앞에 놓인 커다란 거울 너머로 큰할머니의 가슴이 보였다.
부끄럽니?
큰할머니가 다시 대수롭지 않은 척 등을 밀어주기 시작했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저었지만 거짓말이었다.
당시 나는 부산 대표로 독립 기념 전국 학생 백일장 대회에 출전한다는 사실에 묘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지역 예선에서 장원을 했고, 우리 동네에서 그 일은 큰 경사였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한 학년에 두 반밖에 없는 조그마한 시골 학교였다. 학교 정문에 떡하니 축하 현수막이 걸렸고, 나는 그 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얼마쯤 도취되어 있었다. 어느 날은 시를 쓰는 독립운동가가 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는 사람들 앞에서 잘도 불렀으면서.
등을 미는 큰할머니의 손에 힘이 실렸다. 거친 때밀이 수건 탓에 피부가 따가웠다. 하지만 별달리 내색하지 않았다. 얼마 전이라니요. 벌써 일 년 전인데, 라고 눈을 감은 채 응수했다.
다른 할머니들도 좋아했어.
다른 할머니들이 안 좋아한 적이 있었어요?
하여튼, 한마디도 안 지지. 한마디도 안 져.
누굴 닮아서 이러는 줄 모르겠다고 큰할머니는 말했지만, 내가 누굴 닮아서 그러는지는 큰할머니가 가장 잘 알았다.
함께 욕탕에 올 때마다 오늘은 트로트를 불러달라고, 오늘은 엔카를 불러달라고, 오늘은 독일 가곡을 불러달라고 큰할머니는 말했다. 욕탕 사람들은 우리가 독일어를 하는지 일본어를 하는지 한국어를 하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어린아이가 노래를 들려준다는 사실에 미소 지으며 손뼉 쳤다. 나는 벌거벗은 몸으로 욕탕에서 일어나 우뚝 섰다. 그들 앞에서 내 작은 엉덩이를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욕탕에서는 조금만 크게 불러도 쩌렁쩌렁 메아리가 울려퍼졌다. 한때는 그 쩌렁쩌렁한 울림을 무엇보다 좋아했다.
이제 욕탕에서 노래는 안 할 거예요.
어째서?
저 이제 초등학생이에요.
나는 대통령이라도 된 듯 야심 차게 선언했다. 그 속뜻이란 이런 것이었다. 나는 큰할머니를 사랑하지만 이제 그 말을 내뱉기에는 쑥스럽다. 나는 큰할머니의 목소리를 좋아하지만 베토벤을 향한 큰할머니의 찬양은 흘려듣는다. 나는 거실에서 큰할머니가 들을 수 있도록 베토벤을 틀어놓지만 사실 방안에서 몰래 듣는 것은 쇼팽이다. 나는 머리를 감겨주는 큰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좋아하지만, 이제는 큰할머니와 함께 욕탕에 오고 싶지 않다.
그날, 큰할머니와 욕탕을 나왔을 때였다.
탈의실에서 발가벗은 한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M이었다. M이 열쇠를 손목에 끼다가 막 욕탕에서 나온 나를, 알몸으로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의 시선은 서로의 몸에 고작 이삼 초쯤 머물렀을 것이다. 아마 그 순간, M도 내 몸의 중요 부위를—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주워 담았을 것이다.
우리는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M은 짧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떨어져 있던 수건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렸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주춤대다 다시 욕탕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탕 안으로 몸을 던진 채 한동안 잠수해 있다가 슬쩍 고개를 내밀어 탈의실 쪽을 바라보았다. M이 황급히 옷을 주워 입고 있었다. 환복을 마친 M이 가방을 메고 이쪽을 흘끗 보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탕 출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M이 나가자마자, 욕탕 안으로 들어온 큰할머니가 나를 불렀다. 여자애가 조금 전에 바깥으로 나갔다고, 이제 그만 물에서 나와도 좋다고 했다.
나는 참아왔던 숨을 토하며 물 밖으로 나왔다.
솔직히 화가 났다. 여탕에서 우연히 M을 만난 것도 화가 났지만, 무엇보다 욕탕으로 뛰어들어갔을 때 M이 나의 엉덩이에 있는 검은 반점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을 거라는 생각에 견딜 수 없었다. M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말을 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이래서 여탕엔 들어오고 싶지 않았다고, 왜 자꾸 나를 억지로 여탕에 데리고 오느냐고 괜히 큰할머니에게 따져들었다. 요즘에 누가 혼욕 같은 걸 한다고. 큰할머니가 살았던 쇼와시대에나 그랬지 지금은 쇼와시대가 아니라고, 여기는 일본이 아닌 한국이라고, 이제 다시는 여탕에 오지 않을 거라고 소리치는 음성이, 내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사람의 멍한 눈동자를 보는 순간, 멎었다.
*
다음날, 나는 조금 이른 아침에 숙소에서 나왔다.
늦봄이지만 무더운 날씨였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온몸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오늘 계획은 북서쪽에 있는 다케다 신사로 가는 것이다. 그전에는 역 근처에 있는 성터를 둘러볼 생각이다. 시내로 접어들수록 거리는 활기를 띠었다. 고후역 광장 서남쪽으로 접어들자, 어제는 급하게 지나치느라 보지 못했던 동상이 보였다.
일본 센고쿠시대의 손꼽히는 명장. 하늘을 향해 치솟은 뿔이 달린 투구. 일명 ‘가이의 호랑이’로 불린 다이묘가 오른손에는 부채를, 왼손에는 염주를 쥔 채 근엄한 표정으로 아래를 노려보고 있었다.
큰할머니도 저렇게 엄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곤 했다. 그 삼백안으로 인해, 큰할머니는 자신과 결혼해달라고 따라다니던 조선인 남편과 결혼하게 됐다. 그 삼백안으로 인해, 시어머니에게 평생 남편을 잡아먹은 년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그 삼백안으로 인해, 속도 없는 년, 이시미 같은 년이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큰할머니는 늘 그런 이야기를 여과 없이 들려줬다. 애초부터 청자가 있는지 없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듯이.
걸음을 돌려 상점과 거리를 빠르게 지나치면서 나는 생각했다. 자신만의 눈동자를 가질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큰할머니가 세상에서 사라진 오늘날까지도 나는 자신만의 눈동자를 가지지 못했지만, 큰할머니는 고후시의 욕탕에서 다자이의 눈에 띄었던 그 무렵부터 이미 자신만의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도 내 눈동자를 묘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 적이 없지만, 그날, 다자이는 큰할머니의 눈동자를 보는 즉시 표현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렸다. 나는 큰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큰할머니의 눈동자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있고, 큰할머니의 삼백안이라는 렌즈를 껴야 비로소 무언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작은 용기를 얻지만, 큰할머니는 겨우 십 년 넘게 살았던 그때, 고작 십대의 나이로 한 분야의 거장이라 불릴 만한 예술가를 눈빛 하나로 사로잡았다.
그때는 마티스도 샤갈도, 심지어는 고갱도 몰랐어.
큰할머니는 말했다. 하지만 베토벤과 바흐, 말러는 알았지.
일찍이 도쿄에서 어머니를 여읜 큰할머니는 외가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 외조부모와 온천에 다니기도 했고, 큰할머니의 부친이 후처인 마사요 씨를 들이면서 남동생과 조선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홀로 남은 큰할머니는 외삼촌의 이발소 일을 도우며 돈을 벌었다. 외삼촌은 한때 도쿄에서 화방을 운영했지만, 가세가 기울면서 고후로 내려오게 되었다고 한다. 외삼촌이 집안 창고에 박아둔 화구와 서적, 낡은 축음기 덕에, 그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큰할머니는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음악에는 재능이 없었어. 그림에 재능이 있었지. 한때는 그림을 배우러 도쿄로 돌아가고 싶었다. 고향이 도쿄니까…… 도쿄에서 공부하고 싶었어.
하지만 큰할머니는 죽을 때까지 도쿄로 돌아가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무렵, 엄마와 작은 할멈이 도쿄로 여행을 떠난 적이 있다. 당시에도 큰할머니는 도쿄행을 거부했다. 더 늦기 전에 한번 가자고, 정말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두 사람은 말했지만, 큰할머니는 끝내 거부했다. 그곳에 가면 오래전 일들이 너무 생생하게 떠오를 것 같다면서. 이미 다 묻고 왔다. 모든 걸 묻고 왔어. 도쿄는 무덤이야. 늘 나를 배신하고 버렸지…… 도쿄에 가는 건 두 번 죽으러 가는 거나 다름없어. 도쿄는 끔찍해.
큰할머니는 왜 끝까지 도쿄를 거부했을까? 나는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없다. 짐작 가는 바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토록 많은 이야기 속에서도 큰할머니가 도쿄를 거부하는 정확한 이유를 들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도쿄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큰할머니는 도쿄를 배경으로 그린 미소녀를 모조리 태워버릴 정도로 도쿄를 경멸했지만, 나는 도쿄에 관해서는 아무 기억이 없었다. 큰할머니는 결국 도쿄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도쿄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