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머리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노인이 물었다. 내가 어쩌다 이 이발소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는 마지막 손님으로 나를 받았다. 문 앞에 서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문 닫을 시간이 코앞이지만, 찾아와주셨으니 서둘러 잘라주겠다며 나를 이 거울 앞에 앉혔다.
이발소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지도 앱을 켜고 유무라에 있는 이발소를 검색했다. 모던한 분위기의 미용실이나 바버숍을 제외하자, 생각보다 많은 가게들이 소거되었다. 결국 세 곳 정도만이 남았다. 한 곳은 이미 폐업한 상태였고, 한 곳은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남은 이발소를 로드맵으로 확대해보았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황토색 석벽. 녹슨 미닫이 철문. 쇠창살이 설치된 창 틈새로 내부가 비쳐 보였다. 벽 곳곳에 걸린 인상주의풍의 그림 액자. 그리고 한쪽 선반 위에 놓인 낡은 축음기. 언뜻 봐도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하지만 소박하고 고풍스러웠다.
그날은 유독 가는 곳마다 만석이었다고 「미소녀」에서 다자이는 썼다. 그 문구를 생각하면, 이발소가 꽤 좁은 골목에 위치해 있다는 점, 다자이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점도 이곳을 그 이발소라 믿기에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큰할머니가 일을 도왔다는 외삼촌의 이발소. 비록 맞은편에 있었다는 욕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여기저기 잡초가 자라나 있는 공터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당연한 일이다. 시간이 그렇게나 지났는데 있는 게 더 이상하지.
여행중이신가보군요.
남자가 구레나룻 끄트머리를 양 손가락 끝으로 집었다. 그러고는 길이와 밸런스를 가늠해보려는 듯 아래쪽으로 길게 늘어뜨렸다.
고후시가 여행을 하기 좋은 도시는 아닌데 말이죠.
나는 할머니의 고향이 이곳이라고 했다. 외증조모라고 하면 괜히 성가신 대화가 이어질 것 같았다. 사람들은 늘 그랬다. 증조모까지 거슬러올라가는 나의 이야기를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난감한 기억 때문에 반사적으로 할머니라고 이야기했으나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그 말을 내뱉자마자 생각했다. 어쩌면 이 사람은 나의 먼 친척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걸 확인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나. 그런 생각에 가닿자 순간 허탈해졌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일본인이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대 정도를 흘러내려오면 핏줄이라는 것도 꽤나 옅어질 테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까.
오늘 오신 건가요?
아니요, 그저께 왔습니다. 친구를 만나러 나고야에 들렀다가요.
호오, 며칠 동안 있으실 예정이신지?
내일 아침 떠날 생각입니다.
고후시는 하루나 이틀이면 충분할 텐데 나흘이나 계획한 것이냐고, 그동안은 어디를 둘러보고 왔는지 이발사가 물었다.
그냥 다케다 신사랑 성터, 근처에 있는 묘지 정도……
그렇다면 이미 고후시 여행은 끝나셨군요!
주인장이 호쾌한 목소리로 웃었다. 거기까지 보고 왔으면 풍림화산도 보고 왔겠지요? 그렇게 묻고는 자신의 이발 정신도 바로 그 사자성어에서 왔다고 덧붙였다. 바람처럼 빠르게. 숲처럼 고요하게. 어떤 손님이 와도 순식간에 잘라버린다며 뜬금없는 농담을 던졌다.
이상한 노인네가 틀림없다. 하지만 호방한 성격과 눈 밑에 짙게 깔린 푸르스름한 그림자를 보니 어쩔 수 없이 큰할머니가 생각났다. 큰할머니도 남의 눈치 따위는 전혀 보지 않는 사람이었지. 가족 앞에서도 뭐든 가리지 않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눈동자를 굴려 내부를 둘러보았다.
왼쪽 벽에는 이용사 면허와 상장이 걸려 있었다. 오른쪽에는 작게 샴푸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맞은편에 걸린 거울 아래에는 긴 선반이 설치돼 있었는데, 그 위로 작은 스탠드형 액자가 있었다. 사진에는 교복을 입은 ‘미소녀’가 보였다. 중학교 2학년, 아니, 1학년 정도일까. 나는 이쪽을 향해 은은히 미소 짓고 있는 소녀를 바라보았다.
오묘한 눈동자다. 왼쪽 눈은 큰할머니를, 오른쪽은 나를 닮아 있다니. 만약 큰할머니의 어린 시절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분명 이런 모습의 소녀였겠지. 틀림없다. 세월의 주름에 가려지기 전, 분명 이런 눈빛으로 다자이를 쳐다봤을 것이다.
제 손녀입니다.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남자가 말했다.
귀엽지요? 제가 업어 키운 거나 다름없는 아이입니다.
남자가 미소를 짓더니 다른 가위를 집어들었다.
아이가 한국 아이돌을 참 좋아합니다. 이름이 뭐였더라…… 아무튼 한국에서 아이돌이 될 거라고 어찌나 속을 썩이는지. 작년에는 춤을 배우고 싶다고 하더니, 몇 달 전엔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조르더군요.
노인이 그렇게 말하며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요즘은 아이돌이 되려면 악기 하나 정도는 우습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나 뭐라나. 이런 촌 동네에서 무슨 가수를 하고 싶다고.
주인장이 거기까지 말하고는 말을 끊었다. 그가 이동식 선반에서 무언가를 찾더니, 잠시만 기다려달라고 말하고는 샴푸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뒤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가 다시 이쪽으로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나이가 드니 자꾸 뭔가를 깜박하게 돼서.
괜찮습니다.
그럼 손님은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시나요?
아뇨, 우선…… 도쿄로 갈 생각입니다.
호오, 얼마나 머물 예정이신지?
나는 잠시 망설였다.
사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남자가 그게 무슨 뜻이냐는 듯 가위질을 멈추고 나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는 거울 속 의문스러워하는 눈빛을 향해 말했다.
경우에 따라 오래 머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 못할 사정이라도 있으신 모양이군요.
그와 동시에 주인장이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물었다.
면도도 하시겠습니까?
남자가 목에 감았던 수건과 흰 커트보를 걷어냈다. 그가 내 발 아래에 있는 페달을 밟자, 의자가 천천히 뒤로 넘어갔다. 주인장이 내 목과 턱, 구레나룻 아래까지 하얀 면도 크림을 골고루 펴 바르기 시작했다.
눈을 감자, 턱밑에서 사각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느끼는 시원한 감각이다. 구십 년 전쯤 세상을 놀라게 할 운명이 정해져 있었으나, 본인은 알지 못했던 한 작가가 이곳에서 똑같이 머리를 자르고 면도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묘한 감정이 들었다.
큰할머니는 상상이나 했을까.
내가 당신이 자란 도시를 홀로 찾아올지도 모를 미래를. 도시 곳곳을 둘러보고, 마침내 큰할머니가 유년 시절을 보낸 동네의 이발소에서 머리칼을 자를 미래를.
*
참 박하게 살다간 여자였어. 큰할머니가 코트를 벗으며 말했다.
늦은 밤, 부엌에서 세 여자가 작은 탁상 앞에 둘러앉았다. 나는 방안으로 흘러드는 호토 냄새에 잠에서 깨어났다. 방문을 살짝 열자, 문 틈새로 소주병을 따는 손이 보이더니 이어 큰할머니가 소주를 병째로 들이켜는 옆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뱃일을 소개해준 사람도 하나코였어.
그래, 기억난다. 작은 할멈이 말했다.
나 어릴 때 엄마 배 타고 놀았던 거.
엄밀히 말하면 내 배는 아니었지. 큰할머니가 코웃음을 쳤다.
빌린 거였으니까. 그래도 그 덕에 한동안 돈을 벌었지.
아줌마는 언제까지 배를 탔더라?
엄마의 물음에 큰할머니가 잠시 침묵했다.
몸이 망가질 때까지. 애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자가 하루가 멀다 하고 노를 젓고, 강을 건너다녔으니. 몸이 남아나나. 남편이란 인간은 아들 하나만 덜렁 남긴 채 일 년 만에 떠나버리고, 그렇게 고생하며 키운 아들도 핏덩이 같은 나이에 죽어버렸으니. 다시 시집가기 전까지 자살하려던 것을 몇 번이나 말렸는지 모른다고, 참 복도 없는 인생이었다며 큰할머니는 소주를 들이켰다.
나는 너희가 부럽다. 큰할머니는 말했다.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너희처럼 엄마가 있었으면. 이렇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엄마가 있었으면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거야.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거라고.
큰할머니는 이따금 같은 문장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그건 큰할머니의 말버릇이자 언어 습관이었다. 한 번이었다면 한 시절에 대한 회상으로 여겼을 것이고, 두 번이었다면 사무치는 그리움 정도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큰할머니는 늘 세 번 이상 반복해서 말했다. 그래서 나는 그 습관을 분노의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한테 그림을 계속 그리라고 한 사람도 하나코였어. 자기도 요즘 외국말을 배운다고, 뭐라도 배워야 살 힘이 나지 않겠느냐고.
나는 큰할머니의 작업 현장을 지켜봤던 시간을 기억한다. 큰할머니가 화방에서 공수해온 수십 가지의 선지와 한지를 잘게 자르거나 찢었다. 밑그림을 그린 캔버스 위에 선지와 한지를 겹쳐 발랐다. 원하는 색이 있을 때는 직접 염색을 했다. 촘촘히 이어붙인 한지 위에 아크릴 물감을 칠한 뒤에는 산수화의 준법을 활용해 명암과 질감을 더했다. 흰 여백 위로 기모노와 한복을 입은 소녀들의 형상이 나타났다.
한일 수교 소식을 들었을 때도 하나코랑 함께였어.
그 소식을 듣자마자, 큰할머니는 하나코와 함께 일본 친척들에게 편지를 썼다고 했다. 본토로 돌아가기 위해선 한국 호적을 정리하고, 일본 가족들이 신원을 보증해야 했다고. 남편들은 당연히 탐탁지 않아 했지. 그래서 몰래 편지를 써야 했다고 큰할머니는 말했다.
그때 많이들 본토로 돌아갔다. 하지만 도쿄에 있던 내 가족도 하나코의 가족도, 우리의 신원보증을 거부했다고 들었어. 지금도 이유는 몰라. 그래, 생각해보면 나나 그애나 참 이상한 이유로 조선에 왔어. 나는 홀로 남겨진 아버지를, 그애는 병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러 이곳에 왔으니까. 멍청했던 거지. 순진했어. 조선에 온다고 바뀐 건 없었으니까. 그게 버려진 사람의 최후란 걸 알지 못했어. 그게 버려진 사람이 붙잡을 수 있는 마지막 가닥이란 걸. 버려진 사람은 결국 버려진 사람밖에 찾지 못한다는 걸.
큰할머니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황급히 몸을 숨겨 문 뒤에 등을 마주대고 앉아 큰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차라리 버리고 싶다고.
큰할머니가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더 꺼냈다.
차라리 버리면 끝날 테니까. 차라리 버리면 자유로워질 테니까. 차라리 버리면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큰할머니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어.
*
면도가 끝이 났다.
이제 머리를 감을 차례라고 말하면서 남자의 손끝이 샴푸실을 가리켰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손님을 대하는 정중한 태도를 보니 언제, 어떻게 내 정체를 밝혀야 할지 갈수록 난감해졌다. 어쩌면 굳이 밝힐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조만간 이곳을 정리해야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남자가 현란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감겨주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풍림화산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긴 손길이었다.
정리라면?
온 가족이 요코하마로 가게 될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곤 잠시 멍해졌다.
요코하마라면 꽤 먼 거리인데.
아이 아비 되는 사람이 거기서 일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면 아버지를 따라 요코하마로 가는 건가요?
그렇지요. 사위가 워낙 바쁘기도 하고, 손녀가 몸이 좋지 않아 저희 부부가 지난 이삼 년간 고후에서 아이를 돌봐줬거든요. 그런데 손녀가 이곳을 너무 지루해하고, 사위도 딸을 보고 싶어하는데 야근이 많은 직업이라…… 이젠 저도 은퇴할 나이다보니, 이래저래 대화를 나누다가 결국 가게를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보시다시피 굉장히 오래된 이발소거든요. 제가 삼대째 물려받은 곳이니까요.
그렇군요.
그렇게 말하고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뭔가 사연이 있어 보였지만 더 물으면 실례가 될 것 같았다. 남자도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했는지 조용히 웃으면서 샴푸질을 마무리했다.
그래도 가수가 되고 싶다면 그편이 낫겠지요.
나는 눈을 감은 채 동조하듯 답했다.
네, 아무래도 도쿄와도 가까우니까.
손님은 왠지 낯설지가 않네요. 주인장이 말했다. 일본어를 너무 잘하셔서 그런 걸까요? 꼭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 같습니다.
그가 샴푸가 끝났다면서 내 몸을 일으켜세웠다. 재빠르게 수건으로 머리카락을 털고는 내 등을 탁탁, 두드렸다.
눈을 감고 있던 나는 그제야 앞쪽을 바라보았다. 테이블 앞 소파에 한 소녀가 앉아 있었다. 어라, 그 미소녀다. 조금 전에 액자에서 봤던 그 소녀. 언제 들어온 거지? 미소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손에 든 석류나무 꽃잎을 하나씩 떼어내고 있었다.
제 손녀입니다. 주인장이 말했다.
우리 이야기를 의식했는지 아이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자리로 돌아와 거울 너머로 옅은 미소를 짓자, 미소녀가 멋쩍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실제로 보니 더 오묘한 눈동자다. 큰할머니도 나도 전혀 닮지 않은 눈동자. 사진상으로 느낀 건 착각이었을까.
게다가 이상하다. 저 아이의 삼백안 아래엔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눈 아래의 푸르스름한 그늘만이 우리 관계를 증명할 수 있을 텐데…… 남자가 드라이기로 내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다.
커다란 소음이 순식간에 주변을 휘감았다. 이 소음이 멎으면 나는 이야기할 것이다. 내가 당신의 친척일지도 모른다고, 그녀가 세상을 떠났다고. 할말이 있다고. 이번에 제가 도쿄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열게 됐습니다, <이시미>라는 자작곡인데, 당신 손녀에게 이 티켓을…… 오래전에 이곳을 떠난 소리가 거의 백 년 만에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여기서 울려퍼질 소리야말로 풍림화산의 정신이 그대로 배어든 유물이 아니겠냐는 우스운 이야기를 할 것이다.
*소설의 첫 문장은 다자이 오사무의 「미소녀」(『유다의 고백』, 김재원 옮김, 도서출판b, 2012)를 참조하여 작성했다. 이탤릭체로 표기된 문장들은 해당 책에서 인용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