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은주의 호수(1)

  사무용품 물류 창고는 공동주택지구 입구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은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진 간이 건물로, 주변에는 오리구이나 백숙을 파는 허름한 식당들과 국내 최저가라는 현수막이 걸린 주유소, 쇠문에 녹슨 자물쇠가 달린 기도원, 온갖 폐품이 쌓인 고철 적치장 같은 곳이 있었다. 창고에서 불과 한 정거장만 더 가면 센트럴이니 포레 같은 단어가 들어간 고층의 신축 아파트 단지가 이어졌고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엔 사무실과 상가들이 들어선 건물도 제법 많았다. 낙후된 소읍 같은 창고 주변과 모든 것이 새것인 공동주택지구 사이가 시간의 비연속적인 통로 같다고 은주는 생각하곤 했다. 공동주택지구가 건축되면서 팔천이 넘는 세대가 이주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사람 사는 곳이 그러하듯 학교와 병원, 은행과 공공기관이 들어섰고 상권도 형성됐다. 그렇다고 공동주택지구가 도시처럼 규모가 큰 건 아니었다. 그저 서울과 일산 사이에 자리한, 산으로 둘러싸인 아파트 단지들의 집합체에 가까웠다. 
  창고로 가려면 서울 서북부까지 지하철로 이동한 뒤 서울과 공동주택지구를 이어주는 순환 버스―일반 버스보다 조금 작은 노란색 버스였다―를 타야 했다. 은주는 서울 동북부 끝에 살았다. 한여름을 제외한다면 동트기 전에 집에서 나와야 했고 어둠이 내린 뒤에야 귀가할 수 있었다. 출퇴근에 네 시간씩 할애하게 되면서 먹고 자고 쉬는 시간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지만, 은주는 창고에서 가능한 오래 일하고 싶었다. 창고 일은 이전의 일들과 달랐다. 은주는 대학 입학을 포기한 뒤부터 쉬지 않고 일했는데, 모두 은주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맡아 해도 아무 상관 없는 일들이었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정해진 매뉴얼대로 음료를 제조하는 일이라든지 마트 시식 코너에서 냉동 음식을 조리하거나 화장품 편집숍 앞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시향지를 들이미는 일 같은…… 무슨 상품을 수출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무역회사에서 한 달 내내 복사만 한 적도 있었다. 은주는 그 모든 사업장에서 계약서를 쓰지 않고 최저 시급만 받으며 일했는데, 그 이상의 대우를 받기 위해 애쓰지는 않았다. 할머니와 함께 살던 임대주택의 사업자와 계약을 갱신하려면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유지하는 게 유리했고, 그러기 위해선 건실한 근로 의지를 보여주면서도 가난을 증명할 수 있을 만큼만 벌어야 했다. 
  창고 일은 달랐다.
  창고의 선반은 문구와 탕비 용품, 전산 소모품, 책상과 의자 같은 사무용 가구로 분류됐고 그 안에서도 세부 품목별로 정리되어 있었는데 그 모든 분류와 정리는 은주가 한 일이었다. 본사에서 사무용품이 입고되면 선반을 채우고 주문이 들어오면 내보내며 그 종류와 물량을 조절하는 것도 은주의 몫이었다. 사십오 평 창고에 규칙과 질서를 부여한 자신만이 이곳을 관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창고 밖의 세상—언제나 대체 가능한 사람으로 존재했던 곳—으로부터 보호받는 듯 느껴졌다. 때로는 창고 안이 세상의 전부이고 창고 밖은 암흑뿐이라는 착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샌드위치 패널에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날엔 특히. 창고를 떠나게 되더라도 창고에서 일했던 날들을 잊지 못하리라, 은주는 그렇게 확신했고 그럴 때면 조금은 슬퍼지기도 했다. 더이상 창고로 출근하지 않는 날을 가정하는 것만으로도 그랬다.
  하루종일 고요한 창고 안을 혼자 떠돌며 선반 위에 사무용품을 올리거나 빼거나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호수 생각이 났다. 호수는 열 살 이후 만나지 못했고 소식도 모르는 김호수이자 진짜 호수처럼 은주 안에서 일렁이는 감정이기도 했다. 그 감정은 아무에게도 설명한 적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오직 은주만이 감각할 수 있는 호수 모양의 죄책감이었다. 호수가 일렁이면 슬픔이든 기쁨이든 그 어떤 감정이 밀려와도 무감해졌다. 마치 호수가 은주의 다른 모든 감정을 흡수하는 것만 같았다. 죄책감은 분명 무거운 감정이었지만, 은주는 가끔 자신이 호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느꼈다. 죄책감이 있는 한, 그 어떤 나쁜 감정도 스스로를 용서하는 방향으로 중화될 수 있었으니까. 아빠와 자신은 다른 사람이라는 안도감마저. 그 안도감에 조금의 환멸이 용해되었을지라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은주는 창고라는 작은 세계에서 깨달았다. 

 

*

 

  오늘 오전에 은주가 해결해야 하는 주문 명세서는 여섯 장이었다. 주문 명세서는 공동주택지구 중심에 위치한 오프라인 매장에서 채매니저가 보내온 것이었다.
  은주는 목장갑을 양손에 낀 채 접이식 핸드 카트를 펼쳤고 명세서에 적힌 펜과 보드 마커, 서류함, 프린트 용지, 제도용 칼과 스테이플러, 커피믹스와 현미녹차와 둥굴레차, 마우스와 유에스비를 차곡차곡 담았다. 멀티탭은 2단짜리 이동 사다리에 올라가 꺼내야 했다. 멀티탭 상자를 들어올린 순간 먼지가 일었다. 한차례 기침을 하고 나자, 멀티탭 상자가 있던 자리에 납작하게 눌려 있는 매미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여름 내내 거주지이자 은신처인 나무에 붙어 그 수액을 빨아들이며 반질반질 윤이 났을 매미는 물류 창고의 가장 높은 선반 한구석에서 손끝만 대도 바스러질 것처럼 바짝 말라 있었다. 한순간 죽음을 맞은 것이 아니라 조금씩 흡수한 듯한 모습이었다. 
  은주는 사다리에서 내려와 문구류 선반에서 클립이 들어 있는 투명한 플라스틱통을 꺼냈다. 자신의 카드로 계산한 뒤 포장을 벗겼고 통 안의 클립을 비우고는 반듯하게 접은 티슈를 깔았다. 다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최대한 상하지 않게 매미를 들어 플라스틱통에 넣었다. 뚜껑을 닫자 매미의 한 생애는 비밀이 된 듯했다. 매미가 보낸 여름은 어디로 갔을까. 사랑의 신호를 주고받은 횟수랄지 그 눈동자에 저장되었을 몇 겹의 여름하늘 같은 것…… 그런 생각들 끝에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할머니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할머니로 살기 이전의 얼굴을 은주는 전혀 알지 못했고 할머니 역시 예전 이야기를 그리 자주 꺼내지는 않았다. 은주의 기억 속에서 할머니가 그나마 옛날얘기를 하며 즐거워하던 순간은 어린 시절 명절에 고향 동네에서 소주를 만들어 먹던 장면을 묘사할 때였다. 은주가 편의점에서 사다준, 가장 도수 높은 소주를 안주도 없이 비우면서였다. 쌀을 쪄서 명주 위에서 말린 뒤 그 누룩을 다시 끓여 증류하는 방식이었는데, 할머니는 어른들이 한 모금씩 마시게 했던 그 소주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소주를 끓이고 남은 물로 동네 여자들끼리 목욕하던 밤에 대해서도 할머니는 이야기해줬다. 뜨거운 물로 목욕한다는 것, 그건 일 년에 몇 번밖에 누릴 수 없는 특별한 호사였다. 첫딸―은주에게는 고모였는데, 고모는 은주의 아빠가 구속된 이후부터 연락을 끊었다―을 낳고 죄인인 양 시부모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피로 물든 이불 위에서 딸에게 처음 젖을 물린 날에도 뜨거운 물로 목욕하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부터 은주는 할머니와 살았다. 아빠의 사기 행각이 드러나고 일 년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은주의 아빠는 전통 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운영했는데, 그곳은 그저 사기를 위한 발판이었는지 모른다. 곧 완성될 호텔에 투자를 하면 매달 수십만원에서 수백만원까지 배당금을 받을 수 있게 해주겠다는 그의 조약한 사기는 그가 십 년 넘게 시장 사람들과 어울린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테니까. 그는 돈을 빌린 시장 사람들에게 늘 후한 이자를 치렀고 약속된 날짜에는 정확하게 상환하는 사람이었다. 가끔 은주가 엄마를 따라 시장에 가면 엄마의 장바구니에는 사지도 않은 사과 한두 알, 혹은 고추라든지 양파가 낱개로 담기곤 했다. 엄마와 은주를 향해 웃어주는 시장 사람들 속엔 호수분식 아주머니도 있었다. 호수의 엄마, 그녀는 아빠에게 사기당한 열세 명의 시장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아빠는 처음부터, 그러니까 사기를 구상할 때부터 시장 사람들에게 돈을 돌려줄 의지나 계획이 아예 없었던 듯하다. 심지어 그에게는 돈을 대신 갚아줄 부자 부모나 형제가 없었고, 더 최악은 당시 은주 가족이 살던 작은 아파트의 전세금마저 불법 도박장의 허공에서 증발된 이후였다는 것이었다. 엄마도 사건이 터진 뒤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됐다. 시장 사람들은 아직 짐도 빼지 못한 아파트로 와서 변변찮은 텔레비전과 냉장고, 코트와 가죽구두 같은 걸 가져갔다. 저마다 피폐해진 얼굴로, 누군가는 내내 울면서. 남편의 사기에 연루되지 않았고 눈치채지도 못했던 엄마를 닦달하거나 멱살을 잡는 사람도 있었다. 은주는 그들을 무서워하면서도 호수분식 아주머니만큼은 간절히 기다렸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돈이 되는 걸 가져가기를, 가져갈 게 없다면 자신이라도 데려가서 호수가 예정된 수술을 받고 완치될 때까지 무슨 일이라도 시키기를, 이도 저도 안 된다면 아이가 필요한 사람에게 자신을 팔아버리기를. 그러나 그녀는 끝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호수분식은 곧 문을 닫았다. 아예 폐업한 것이다. 
  호수……
  은주와 같은 초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이내 학교를 그만두고 소아암 병동으로 들어가게 된, 눈이 동그랗고 앞니가 유난히 커서 아이들 속에 있어도 더 아이 같았던 그 호수를 은주는 다시 보지 못했다. 아니, 소식조차 듣지 못했다. 
  꿈에서는 종종 호수를 만났다. 
  아빠는 구속된 채 재판을 받으러 다니고 엄마는 돈을 마련해보겠다며 자주 집을 비우던 때부터 시작된 그 꿈은 할머니와 살면서 성장기를 보내는 동안에도 지속됐다. 키가 십오 센티미터 자라고 몸무게도 이십 킬로그램 가까이 늘어났던 그 시기, 재판에서 칠 년 형을 선고받은 뒤 수감생활을 하던 아빠는 간암으로 할머니보다 먼저 죽음을 맞았고, 엄마는 점점 연락에 소홀해지더니 어느 날 예고도 없이 재혼했다는 소식―결혼식을 치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은주는 초대되지 않았다―을 전했다. 은주는 성장이 즐겁지 않았다. 커가는 몸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은주가 자라는 동안에도 꿈에서 호수는 예전처럼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났는데 가끔은 그 앳된 얼굴로 은주를 올려다보며 어른인 양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했다. 옷 좀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든지 돈 아끼지 말고 꾸미고 다니라는 말, 주로 그런 말들이었다.
  그리고 또다른 날엔……
  은주는 흰 천으로 덮여 있는 호수의 몸에 상체를 엎드리고는 하염없이 울었다. 호수가 다시 깨어나지 못하리란 걸 알면서도 천 아래 호수의 몸이 자신의 체온으로 덥혀지기를 바라면서. 그런 꿈이 반복되면서 호수는 은주 안으로 들어와 호수 모양의 죄책감이 되었던 걸까. 아마도. 은주는 자신이 호수를 건너가는 배 같다고 느낄 때도 많았다. 작고 연약한 호수를 건너가는 육중한 존재, 건너고 또 건넜지만, 완전히 건너갔다고 확신할 때도 있었지만, 돌아보면 은주는 다시 호수 위를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상자 작업이 남았다. 
  매미의 죽음이 투명하게 밀봉된 플라스틱통을 작업용 책상 서랍에 넣은 뒤 카트에 담아온 사무용품을 하나하나 꺼냈다. 품목에 맞게 여러 종류의 완충재로 포장했고 발주처가 각기 다른 여섯 개의 상자에 넣어 테이핑을 했으며 수령인의 주소지와 이름, 주문 목록이 인쇄된 전표를 상자 위에 붙였다. 그렇게 작업한 상자들을 전날 오후에 작업해놓은 상자들과 함께 전담 택배 기사가 트럭에 싣기 편하도록 창고 바깥의 차양 아래에 갖다놓았다. 
  오전 근무가 마무리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