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은주의 호수(2)

 

*

 
  환기를 위해 창고 문을 살짝 열어놓은 뒤 편의점에서 사온 김밥과 생수를 빈 박스 위에 올려놓고 있는데 중년의 여자가 창고 문밖에서 서성이는 모습이 보였다. 여러 번 본 적이 있는 여자였다. 은주보다 열 살 이상 나이가 들어 보이는 여자는 찬송가나 목사의 설교가 높은 볼륨으로 흘러나오는 작은 라디오를 옆구리에 끼운 채 휘적휘적 걸어다니곤 했다. 큰 키에 비쩍 마른 체형이었고 묶지 않은 머리칼은 헝클어져 있긴 해도 길고 풍성했다. 한여름에도 긴 소매와 긴 치마 차림이었고 가을 이후부터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코트를 곧잘 입었는데,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느슨하게 늘어뜨린 직물 같은 인상을 풍겼다. 산이 가까워 바람이 성급하게 사나워지는 날이 많은 이곳에서 옷이며 머리칼이 유독 바람에 휘날리는 길쭉한 여자는 언제나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찬송가를 따라 흥얼거리거나 허공을 보며 아멘을 외치다가도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면 고개를 푹 숙인 채 걸음을 빨리했다. 은주와 눈이 마주친 방금 전처럼. 여자가 어디에 살면서 이 근방을 자주 기웃거리는지 알 수 없었지만, 폐쇄된 기도원에서 어느 한 시기를 보낸 사람일 거라고 은주는 짐작했다.     
  여자도 기도원에서 정죄를 강요당한 적이 있을까.
  임종 전의 할머니가 그랬듯이.
  할머니는 은주가 만 스무 살이 되었을 때부터 아프기 시작했다. 고관절이 먼저 문제를 일으켰다. 할머니는 고관절 수술 이후 기나긴 회복기를 보냈고 건강을 되찾은 듯 보인 적도 있었지만 그 기간은 길지 않았다. 앉을 때나 일어날 때, 무언가를 들고 옮겨야 할 때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곧이어 무릎과 허리도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할머니는 수술을 포기하고 대신 간간이 침을 맞으러 다녔다. 그렇게 오 년이 흘렀다. 할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날 저녁, 은주는 구립도서관의 명사 초대 행사에서 커피와 생수를 나르고 있었다. 구립도서관 일은 기초생활수급자 같은 저소득층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의 자활 근로였는데, 은주가 한동안 일을 찾지 못하자 구청에서 연결해준 것이었다. 반납된 책, 카트에 쌓인 책, 자료실 책상이나 바닥에 방치된 책, 그런 책들을 모아 청구 번호에 맞게 정해진 자리에 꽂아두는 것이 주된 업무였지만 행사가 잡힌 날엔 은주도 사서들을 도와 잔일을 하곤 했다.
  그날, 은주는 할머니가 응급수술을 받기 위해 수술실에 들어간 뒤에야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튿날 할머니의 의식은 돌아왔지만 회복은 더뎠다. 일어나 걷는 것조차 힘에 부칠 만큼 척추와 무릎뼈가 약해져 있던 탓이었다. 할머니가 요양 병원으로 거처를 옮긴 뒤에도 은주는 도서관 일을 그만두지 못했다. 자활 근로를 해야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이 유지됐으니까. 요양 병원 비용에서 본인 부담금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그뿐이었다. 
  요양 병원에서 할머니의 상태는 가파르게 나빠졌다.
  병원 생활이 일 년을 채워가던 늦겨울, 은주가 할머니의 속옷을 챙겨 찾아간 날, 할머니는 배변 실수를 한 채였고—은주가 올 때까지 아무도 할머니의 몸을 씻겨주지 않았다—은주뿐 아니라 스스로가 누구인지조차 의식하지 못했다. 요양 병원에서는 그제야 할머니의 임종이 임박한 듯하다고 알려주었다. 은주는 공동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 어렵게 할머니를 씻긴 뒤 할머니가 다니던 교회에 임종 예배를 신청했다. 그날 저녁 목사는 신도 세 명과 함께 요양 병원을 방문했다. 은주는 교회에 다니지 않았고 교회의 십자가를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이 빚은 조형물로 바라보는 부류였지만 그들 곁에서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로마서 8장을 읊은 목사는 할머니의 배에 손을 올리더니 죄인이 모든 죄를 씻고 성령의 힘으로 구원받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수난도 비애도 사랑으로 승화시켰던, 오직 자애로운 그의 신에게…… 은주는 눈을 뜨고는 저마다 기도에 몰두한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그 누구도, 목사가 기도 중에 언급한 죄인이라든지 정죄라는 단어에 토를 달지 않았다. 할머니가 왜 죄인인가. 은주는 이해할 수 없었다. 할머니가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번 삶의 마지막 임무가 정죄라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할머니가 정죄라는 무거운 형구를 끌며 죽음의 언덕을 넘어가는 장면을 상상하는 건 고통스러웠다. 은주는 결국 목사의 기도를 끝까지 듣지 않고 병실을 나왔다.  
  할머니는 바로 숨을 거두지 않았다. 의식이 흐려지고 호흡은 느려진 상태였지만 숨은 이어졌다. 출근하지 못한 지 엿새째가 되자 도서관에서 사람을 새로 구했다는 연락을 해왔다. 그 전화를 받고 열네 시간 뒤에 할머니는 아빠 이름만 두 번 부른 뒤 임종을 맞았다. 요양 병원 근처에 있는 사설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렸지만 도서관 사람들은 아무도 방문하지 않았다. 은주는 이미 해고됐고, 해고되지 않았더라도 배가(排架) 담당 아르바이트생의 조모 장례식까지 챙기는 것은 그들의 사회생활에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을 터였다. 엄마에게는 아예 연락조차 하지 않았고, 고모는 둘째 날 입관 때 나타났다. 고모부와 사촌언니들 없이 혼자였는데, 고모는 동생이 사기죄로 구속되어 감옥에서 병사한 것을 가족에게 밝히지 않았을 테니 장례식장에서 생길 난처한 상황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할머니 영정 앞에서 혼절할 듯 가슴을 치며 서럽게 울던 고모는 저녁 즈음에 남편 밥을 챙겨줘야 한다며 말짱한 얼굴로 돌아갔다. 자신의 일상이 훼손되지 않을 만큼, 딱 그 분량만큼 슬퍼하고 떠난 셈이었다. 교회 사람들이 그나마 간간이 얼굴을 비치긴 했지만 임종 예배를 맡았던 목사는 그들 중에 없었다. 한 신도가 대신 목사에게 외부 일정이 있다고 설명했는데, 목사가 오지 못한다는 소식이 은주는 차라리 반가웠다.  
  조문객이 거의 찾지 않는 적막한 빈소에서 은주는 아픈 몸에서 해방된 할머니가 영혼이라는 배를 타고 죄와 죄 아닌 것이 마구 뒤섞이고 정죄도 구원도 없는 담소한 마을 같은 곳에 정주했기를 바랐다. 그곳에서 소주를 증류하고 남은 뜨거운 물로 실컷 목욕을 하는 할머니를 상상하고 또 상상했다.   
  다만, 그뿐이었다. 
  할머니의 장례식이 끝난 뒤, 은주는 주민센터를 방문하여 사망신고를 하면서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을 중지한다는 신청서도 함께 제출했다. 임대주택이나 의료 혜택을 위해 성실하고도 가난한 사람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는 것에 은주는 지쳐 있었다. 질리도록, 질릴 정도로 충분히. 교무실에서 여분의 참고서를 받을 때나 식당 계산대에 선 채 아동복지카드를 내밀 때 무방비로 맞닥뜨려야 했던 껄끄러운 연민의 시선을 기억하는 것만큼이나. 임대주택을 나온 뒤엔 버스정류장에서 십오 분은 걸어올라가야 하는 구옥의 원룸 하나를 구했다. 앞뒤에 높은 건물이 바짝 붙어 있어서 낮에도 형광등을 켤 수밖에 없는, 어둡고 작은 상자 같은 방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팬데믹이 시작됐다. 일주일에 한두 번만 배달 일을 나가고 나머지 날들은 방안에 칩거하며, 할머니가 폐지를 줍고 수급비를 아껴 쓰며 모아놓은 돈으로 꾸역꾸역 그 시기를 지나갔다. 창고에서 일하면서부터 그 시기가 암흑뿐인 우주처럼 떠오르곤 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암흑 속에 묻혀 있고 누군가를 만난 하루라든지 일을 한 날의 실수 같은 것만 무한히 텅 빈 우주에서 섬광처럼 번쩍였다가 가뭇없이 사라졌다.
  은주는 마지막 김밥을 입안에 넣은 뒤 텀블러에 뜨거운 물을 받아 커피믹스 스틱 세 봉지를 뜯어 넣었다. 출입문 바깥에는 바퀴 하나가 고장나서 반품된 사무용 의자가 놓여 있었는데, 그 의자에 앉아 다디단 커피를 마시며 맞은편 산을 보는 것이 은주에게는 휴식의 전부였다. 산에는 편백나무로 가득한 ‘치유의 숲’이 있다고 했다. 은주는 치유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만 알 뿐, 살아오면서 그 단어를 발음해본 적이 없었고 육성으로 들은 적도 없었다. 그곳에 가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퇴근하면 곧바로 순환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는데, 그렇게 해도 집에 가서 씻고 늦은 저녁을 먹으면 바로 잠들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은주는, 치유의 숲을 실제가 아니라 가상의 영역에 남겨두고 싶었다. 그 숲에 가면 아픈 마음 하나 정도는 치유될지 모른다는 것, 그 가능성을 굳이 망가뜨릴 생각이 없었다.
  커피를 다 마시는 동안 택배 기사가 오전에 마무리해놓은 상자들을 수거해갔다. 느슨한 직물 같은 여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

 

  본사 직원이 창고를 방문한 건 새로 입고된 프린트 용지를 선반으로 옮기고 있을 때였다. 가맹점들을 돌며 매장 상태와 재고를 점검하고 할인 행사나 시즌 상품을 안내하는 일을 하는 직원이었는데, 보통은 공동주택지구 안쪽에 위치한 오프라인 매장만 방문하고 창고에는 오지 않았다. 지금 직원은 일 년 전에 신입사원으로 채용되었고 은주와는 이제 겨우 두번째 만나는 거였다. 또래로 보이긴 했지만 명함만 주고받았을 뿐, 서로 나이는 묻지 않았다. 
  “곧 매니저로 승진한다고 들었어요.”
  창고를 다 둘러본 직원이 태블릿 피시에 터치 펜으로 재고 물량을 체크하며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선반으로 옮긴 프린트 용지를 크기에 따라 정리하던 은주는 직원을 건너다보며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이곳 가맹점의 매니저는 채애진님, 그러니까 채매니저였다. 채매니저는 가맹점을 운영하는 육십대 중후반의 부부가 직접 채용한 직원으로, 은주와 달리 시급이 아니라 연봉으로 급여를 받는 정규직이었다. 처음엔 채매니저가 오프라인 매장뿐 아니라 창고까지 관리했다. 창고를 전담할 또다른 직원이 필요해진 건 임대료 인상으로 창고가 오프라인 매장과 분리되어 이곳으로 옮겨진 이후였다. 은주는 채매니저에게 면접을 보았고 그녀로부터 채용 소식을 전달받았다. 오프라인 매장으로 들어온 주문을 명세서로 정리하여 은주에게 전달하는 사람도 그녀였다. 채매니저와 달리 점주 부부와는 접촉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들은 오프라인 매장의 계산대를 번갈아 지킬 뿐, 창고 일은 은주와 채매니저에게 전권을 맡겼다. 정리와 관리는 은주에게, 오프라인 매장과 이어주는 일은 채매니저에게. 창고에서 일한 지난 삼 년여 동안 그들이 창고에 방문한 횟수는 열 번도 되지 않을 터였다. 
  “혹시 채매니저님이 그만두시나요?”
  은주는 직원의 대답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그건 아니고……”
  “……”
  “모르셨어요? 채매니저가 육아휴직을 일 년 신청했는데 점주 부부가 너무 길다고 반대했어요. 채매니저는 고용노동부에 신고했고, 그 일로 본사까지 좀 시끄러웠고요.”
  “……”
  “은주씨가 일을 잘하기도 하잖아요. 여기 창고 정리가 끝내준다는 건 본사에까지 소문났는걸요.”
  “그러니까, 채매니저님을 해고하고 말 잘 듣는 저를 앉히겠다는 거네요? 두 사람 일을 한 사람이 전담하면 인건비도 줄 테고요.”
  “그, 그건 저도 잘……”
  은주가 정색하며 말하자 직원은 당황한 듯 보였지만 흐트러진 표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맹점 창고에서 일하는 시급제 직원이 감히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너무 길게 얘기했나보다. 당사자한테 아직 말을 안 한 걸 보니 확정된 것도 아닌가본데.”
  직원은 갑자기 반말을 썼고 태블릿 피시를 소리 나게 닫고는 간다는 인사도 없이 곧 창고를 떠났다. 
  은주는 작업을 중단한 채 창고 한쪽 구석에 주저앉아 창문 틈새로 들어오는 원뿔 모양의 가을 햇빛을 지켜봤다. 창밖으로는 천천히 움직이는 타워크레인과 흘러가는 구름이 보였다. 공동주택지구 어디에서나 타워크레인을 볼 수 있긴 했다. 빈 상가가 적지 않았고 통으로 비어 있는 건물도 있었지만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새 건물을 올리는 크레인이 움직였고 하나의 크레인이 사라지면 또다른 곳에서 새로운 크레인이 나타났다.  
  퇴근 전까지 채매니저는 메시지로 꾸준히 주문 명세서를 보내왔지만 은주는 카트를 펼치지 않았다. 오프라인 매장의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 건 퇴근 시간이 임박해서였다. 은주가 전화를 받지 않자 곧 메시지 알림음이 들렸다. 할 이야기가 있으니 퇴근하면 매장으로 오라는 점주의 메시지였다. 은주는 그 메시지에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선반 사이사이를 돌았다.
  흐트러진 필기류를 종류와 색깔에 맞게 다시 정리했고 공책과 메모지는 모서리가 튀어나오지 않도록 반듯하게 겹쳐놓았다. 차 티백 중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상품은 없는지 한번 더 확인했고 유에스비와 메모리카드는 제조 회사가 아니라 용량을 기준으로 재배열했다. 마지막으로 빈 박스를 모아 편평하게 펼치고는 노끈으로 묶어두었다.  
  창고에서 나온 뒤엔 무작정 걸었다. 오리구이와 백숙 식당, 주유소, 기도원과 고철 적치장을 지나갔고 어제까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용했던 버스정류장도 지나갔다. 공동주택지구와 서울 서북쪽 지하철역 사이의 8차선 도로에선 승용차와 버스, 트럭이 바람을 일으키며 달렸고 마감 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인도의 보도블록 틈새로는 잡초가 자라 있었다. 인도를 걷는 사람은 은주뿐이었다. 평소에도 보행자가 거의 없는 도로이긴 했다. 어둠은 서서히 대기로 스며들고 있었지만 도로의 조명은 이제 겨우 하나둘 불을 밝히는 중이었다. 은주는 그 적막한 길이 의지할 사람 한 명 남지 않은 자기 삶의 은유처럼 느껴졌고 그 어느 때보다 울고 싶었다. 울지는 않았다. 호수가 먼저 일렁였으니까. 언제나 그랬듯이.
  그런 날들이 있었다.
  시시때때로 쳐들어오는 시장 사람들로 집안이 늘 어지럽혀져 있던 날들, 아무도, 그 누구도, 은주가 어떻게 밥을 챙겨 먹고 학교에 가는지, 옷소매는 더럽고 바지 밑단의 실밥은 터지고 제때 씻지 않아 정수리에서는 냄새가 나는 행색으로 학교에서 무슨 일을 겪는지 알지 못했고 알려 하지도 않았던 날들이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한 학년 위의 남학생—그는 시장의 정육점 아들이었는데, 정육점 주인도 아빠에게 사기당한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이 수시로 은주를 학교 건물 뒤편으로 불러내어 등을 발로 차고 뺨을 때린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남학생에게 너무 세게 머리를 얻어맞은 날엔 며칠 동안 귓속을 날아다니는 벌 한 마리를 감각해야 했다. 한밤중에도 벌은 발작하듯 깨어나 날았고, 은주는 엄마의 귀가가 자꾸 늦어지는 빈집에서 혼자 쓰러져 있거나 토했다. 그때도 은주는 울지 않았다. 호수는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호수보다 먼저 울고 싶지 않았다. 호수보다 더 아픈 사람인 척 연기하고 싶지도 않았다.
  한참을 앞만 보며 걷다가 잠시 멈춰 서고는 뒤를 돌아봤다. 공동주택지구가 품고 있는 불빛이 어두워지는 대기로 무한히 퍼져가고 있었다. 압도적으로 높고 거대한 타워크레인이 우뚝 솟아 있었고—공동주택지구 전체가 크레인을 위한 무대장치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도로 건너편에선 새 아파트 분양을 알리는 대형 플래카드가 때가 탄 채 펄럭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