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싱크로나이즈드 클럽(1)

그 점퍼는 패치워크의 형상이었다. 길도는 틀어박혀 지내는 동안 범재가 입는 작업용 점퍼에다 요란한 무늬의 원단 조각을 하나씩 덧대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 길도가 와식을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종일 놀고먹으면서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고, 누운 자리에서 삶은 달걀을 까먹고 튀긴 돼지비계를 팝콘처럼 주워먹고 물을 마시고 티브이를 보고 라디오를 듣고 용변을 보겠다고 결심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건 코바늘이었다. 칼집. 부드러운 칼집을 만들 거야. 가죽처럼 질기거나 플라스틱처럼 시시한 게 아니라 말이지. 털실로 된 칼집 들어봤어?

하지만 매일 고기를 끊어 팔고 돈가스를 망치로 두드리고 골절기 사이로 뼈를 집어넣는 둔탁한 일들을 해오던 길도가 뜨개질 같은 데 솜씨가 있을 리가. 길도의 뜨개질은 실을 사슬 모양으로 뜨는 데서 더 나아가지 못한 채 오직 사슬 사슬 사슬……만이 맹렬하게 이어졌다. 이것은 사슬이 틀림없다, 부드러운 척하지만 부드럽지 않은 사슬일 뿐이야, 그는 곧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반면 해진 옷에다 얼기설기 천을 기우는 일은 어렵지 않았으므로 바닥에 굴러다니던 범재의 전파사 점퍼를 주워 들어 바느질을 해댔던 것이다.

와식을 끝낸 길도는 이제 과수원에 산다. 사과를 기르고 맛보며 지낸 지 좀 되었다. 그곳에서 자라는 사과는 붉은색이 아니다. 황금사과라고 불리는 그 품종은 더운 날 수확하는 여름 사과이며 언뜻 보면 사과가 아니라 작은 배처럼 보일 만큼 노랗다. 길도는 그 점이 좋다고 했다. 수확철이 되면 돈을 벌러 온 아이들이 종일 사과를 딴다. 그러고 난 뒤에 직사각형의 좁은 방 안에서 테트리스처럼 서로의 몸을 꿰맞추고 잠든다. 입에는 꼭 못난이 사과를 껍질째 물고들 있다는데 지금이 바로 그 시기였다. 키 작은 아이들과 키 큰 아이들과 또 키는 애매하지만 몸피가 커서 울룩불룩한 공처럼 생긴 아이들과 호리병 같은 아이들. 떠날 경비가 필요한 아이들과 월세가 밀린 아이들과 너는 머리가 조금 모자라니 반복 작업이 제격이라는 소리를 오래 들어온 아이들과 매일 혼잣말하는 아이들을 장판 위에 이리저리 배치. 그것이 탁탁 들어맞을 때 희열이 온다고 했던가. 수화기 너머로 길도는 범재더러 제가 손본 점퍼를 잘 입고 다니는지 물었다. 어지러운 문양으로 뒤덮인 점퍼를 내려다보던 범재는 사람을 가로세로 집어넣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 테트리스. 그런데 길도는 그 많은 조각을 어디에서 가져왔을까?

 

*

 

는개가 내렸다. 한번 쏟아붓고 마는 게 낫다고 여겨질 만큼 가느다란 물줄기가 끊임없이 떨어졌다. 사위가 흐리고 축축했다. 외진 골목 상가 지하에 범재의 전파사가 있고 바로 가까이에 자율방범대 초소가 있었다. 컨테이너로 된 초소 모퉁이를 돌면 사다리처럼 가파르고 위태로운 계단이 나오는데, 방범대장 계정숙은 그것이 초소 옥상에 지은 망루로 이어지는 길이라고 했다. 초소의 높이는 이 미터가 채 되지 않았으므로 망루라고 칭하기는 우스웠다. 계정숙은 틈만 나면 그곳에 올라가 망원경으로 거리를 살폈다.

도대체 뭘 구경하는 거죠.

구경이 아니라 관찰.

그래요 관찰, 그럼 무얼 지키는 거죠, 아니 어떻게 지킨다는 거죠. 이런 곳에서. 묻는 범재에게 계정숙은 이런 곳에서야말로 진짜 사고들이 일어난다고 했다. 진짜 사고라. 이렇게 구석진 곳에 방범대를 두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쓸모없는 일이라고 범재는 줄곧 생각해왔다. 계정숙은 범재의 행색과 전파사가 있는 작은 상가 건물을 가리키며 저런 건 정상으로 보이느냐고 묻고는 했다. 뭐가 문젠데요. 네 꼴은 꼭 놀이공원 광대 같지, 저 아래는 전파가 터지기는 하는지. 이 알록달록한 녀석아.

범재는 느릿느릿 발을 휘저으며 자율방범대 초소를 향해 걸었다. 전진인가. 앞으로 가고 있나, 내가 지금? 그의 발걸음에 따라 허리춤에 찬 공구 가방이 작게 덜컥였다. 방범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자미와 계정숙이 목욕 바구니를 사이에 둔 채 라면을 먹고 있었다. 사기그릇 위로 붉은 기름이 둥둥 떠다녔다. 조금 전과 달리 범재는, 저들은 매운 것을 좋아한다 그건 어쩐지 방범대다운 입맛처럼 보이고 역시 방범대는 방범대로군 그럴 자격이 있어 안심이 돼 안심이, 하고 생각했다.

목욕 가시나봐요.

다녀온 건데.

범재의 말에 자미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자미와 계정숙에게서 비누 향과 짭짤한 라면수프 향이 섞인 미묘한 냄새가 스멀스멀 풍겼다. 계정숙은 소파 옆에 놓인 브라운관을 슬쩍 쳐다보더니 망원경을 들고 일어섰다. 비가 오는데요. 범재가 말했다. 나도 알아. 대꾸한 계정숙이 카무플라주 판초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이들의 브라운관은 낡고 오래되어서 시도 때도 없이 문제를 일으켰다. 채널이 제멋대로 돌아가기 일쑤인데다 갑작스레 전원이 꺼지거나 귀가 떨어질 만큼 소리가 커졌다가도 어느 순간 작아졌다. 그럴 때마다 범재는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 정말이야, 하며 공구 가방을 챙겨 들었다. 브라운관 앞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바닥에서 눅눅한 기운이 올라왔다. 그는 작은 플래시를 입에 물고 퓨즈를 교체했다. 가늘고 어렴풋한 불빛이 브라운관 내부로 흘러들었다. 퓨즈는 아주 작은 눈금실린더처럼 보였다. 고작 그것 하나 때문에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난다든가 화면이 픽 나가버린다는 게 늘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전파상이 그런 말을 뱉지는 말아야지 하며 참았다. 또 한편으로는 역시 보잘것없는 것으로 인해 끝장나는 일들이 정말 많다고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끝장이란 것은 왜 그리도 주먹구구식인가.

전원을 켜고 삼 초가량이 지난 후에 서서히 화면이 밝아졌다. 스노클을 착용한 외국인 남자가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물살을 헤치며 먼 곳까지 나아갔다. 중간 광고로 수도 파이프, 작은 어항, 거대한 수조까지 어디든 붙이기만 하면 물 새는 자리를 막아버리는 강력 테이프가 송출되었다. 바다에서 수영하는 사람 다음으로 방수 테이프 광고라. 이건 영리한 건지 멍청한 건지 모르겠다 생각하던 범재는 조금 전까지 계정숙이 앉아 있던 의자에 몸을 붙였다. 의자에 깔린 쿠션은 제대로 앉기도 전에 푹 꺼졌다.

둥근 유리 탁자 위로 초소의 내부가 반사되었다. 태극기를 프린트해서 끼워넣은 나무 액자가 자미의 머리 바로 위 벽면에 걸려 있었다. 그 옆으로 방범대원들이 한데 모여 촬영한 단체 사진이 있었는데, 계정숙은 오른쪽 끝에 서서 정면을 바라본 채였고 자미는 왼쪽 끝에 무릎을 굽히다 만 자세로 서 있었다. 해체 위기에 놓인 방범대에 자미와 부영이 함께 입단한 날 근처 공원에서 기념으로 촬영한 것이었다. 그날 자미와 부영은 가정집에서 탈출해 공원 바닥을 뛰어다니던 동물을 잡아 주인에게 돌려보내는 것으로 방범 활동을 시작했다.

아마 개였겠지.

아냐. 개, 고양이, 새 그런 게 아니라 짐승이라고 불릴 만한 거대한 동물이었어. 이상하게도 어떤 동물인지 기억이 나질 않아.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보기로는 그것이 과연 방범이 맞는가, 하는 의문도 드는 자미였다. 짐승이 일으키는 사고도 범죄가 될 수 있는가? 그보다 스스로 탈출한 게 분명한 짐승……을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 제대로 된 일인가. 하지만 밖에 두면 더워 죽거나 얼어죽거나 잡아먹거나 잡아먹혔을 테니 그보다는 나은 게 아닌가. 아니 그럴 바에는 차라리 공원 바닥에 누워 있던 다른 사람들을 일으켜…… 자미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말고 리모컨을 툭 내려놓았다. 자미를 지켜보던 범재가 물었다. 성과가 좀 있어? 무슨? 방범 말이야, 방범. 그럼, 있었지.

지난 새벽 자미는 동네 골목 어귀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무려 두 사람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순찰?

아니 아니, 술을 사러 나갔었지. 아무튼.

널브러진 두 사람 앞으로 99년식 흰색 베르나가 재빠르게 지나갔다. 살짝 열린 운전석 차창 사이로 담뱃불이 일렁거렸다. 저런 미친 꼴통 차가. 자미를 뒤따르던 부영이 베르나의 꽁무니를 쫓아 뛰어가더니 금방 헉헉거리며 되돌아왔다. 자미는 사건 현장으로 다가갔다. 그녀의 눈앞에서 한데 엉킨 두 사람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순간 그녀는 낙지 같다, 그런데 절대 먹을 수 없고 먹어서는 안 되는 낙지, 하고 엉뚱한 생각을 했다.

뺑소니였구나. 베르나가 범인이겠지.

그런 게 아니야.

범재의 말에 자미가 고개를 저었다. 쓰러진 두 사람의 생김새는 꽤 앳되었고 몸집이 작았다. 머리칼은 치렁치렁하게 길었다. 조금 더 길고 구불구불한 헤어스타일을 한 아이가 제 오른다리를 붙잡고 벌벌 떨었다. 과하게 숱을 쳐 꽁지 같아진 머리칼을 가닥가닥 날개 뼈 위로 늘어뜨린 아이는 고개를 비스듬히 숙인 채 끅끅거렸다. 치였니? 치였구나, 그렇지? 자미가 묻자 꽁지가 불쑥 고개를 들고 반문했다.

우리가, 끅 위험해 보이나봐요, 끅.

그래, 너희는 지금 정말 그런 상태야.

그러자 꽁지가 제 발목을 앞으로 내밀고 살랑살랑 흔들었다. 행동도 꽁지답구나, 자미가 중얼거리자 꽁지가 뭐라고요? 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구불구불이의 오른쪽 발목과 꽁지의 왼쪽 발목이 질긴 끈으로 묶여 있었다. 끅, 우리는 이인삼각 연습중인걸요. 뛰려면 뛸 것이지 왜 여기에 쓰러져 있니. 쓰러진 게 아니라 넘어진, 끅, 거죠. 왜? 종아리, 끅끅, 경련이 나서요, 쟤는, 끅, 자주 저래요. 그러고는 능숙한 손짓으로 구불구불이의 오른발을 휘어잡고 안쪽으로 잡아당기며 근육을 이완시켰다. 아아, 살살 해 씨발. 구불구불이가 꽁지의 뒤통수를 내려쳤다. 꽁지는 짓궂게 웃더니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상품이 무려 스타킹 백 개란 말이죠, 끅, 얼마든지 갖다 팔 수 있다고.

결국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거네.

아냐, 아주 큰일이었지. 너는 때로 참 단순해.

그런가?

그렇지, 넌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