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싱크로나이즈드 클럽(2)

*

 

과수원으로 가기 전까지 길도는 정육점 셔터를 내린 후 뒤편의 작은방에서 지냈다. 그는 벽에 딱 붙여 설치한 야전침대 위에 누워 얇은 담요로 몸을 감쌌다. 한 손에 깁다 만 점퍼와 반짇고리를, 다른 손에는 얼마 전 제가 범재에게 선물한 것과 같은 워키토키를 쥔 채였다. 그 방은 몹시 캄캄할뿐더러 미닫이문을 닫고 커튼을 치면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암실처럼 변했다. 저녁에는 일을 마친 범재가 정육점 셔터를 반쯤 올리고 들어와 사골을 끓였다. 분절된 뼈가 더미째 쌓여 있었고 그걸 해치우는 건 범재의 몫이었다. 다 끓인 사골은 젤리처럼 변할 때까지 식혀두었다가 조각조각 나누어 팔았는데 수입이 꽤 좋았다. 남은 것은 길도의 주식이 되었다. 길도는 네모반듯한 도시락통 안에 담긴 사골을 아이스크림처럼 떠먹었다. 티스푼으로 조금조금 떠서 혀 위에 올려두고 녹여 먹었다. 뼈를 아주 많이 넣어야 해, 그리고 가루가 되도록 끓여버려야 해, 오버. 워키토키를 입가에 가져다댄 길도가 말했다. 알겠다, 오버. 펄펄 끓는 냄비 앞에 선 범재가 대답했다.

어두컴컴한 그 방을 두고 길도는 뭐라고 하였더라, 그의 말대로라면 그 방은 시네마였다. 영화를 틀어두는 건 아니었고 대체로 길도가 좋아하는 영상들을 반복해서 보고 또 보는 식이었다. 침대 맞은편에 벽면을 가득 채우는 스크린을 설치했고 천장에는 빔 프로젝터를 달았는데 헐값에 마련한 것이어서 그런지 명암비가 몹시 낮았다. 다른 빛이 조금이라도 침범하는 순간 희끄무레한 이미지가 되었다.

종종 정육점 셔터 사이를 비집고 자미가 들어오기도 했다.

누구야? 자미야?

그래, 나다.

천장을 보고 반듯하게 누워 있던 길도가 스크린을 향해 몸을 돌렸다. 리모컨을 몇 번 건드리자 영상이 재생되었다. 러닝화를 신은 아이들이 구시가지의 시멘트 바닥 구석구석을 누볐다. 코치로 보이는 남자가 오층 건물 옥상에 서서 호각을 불었다. 뒤질 때까지 뛰어 이 자식들아! 아이들은 계속 뛰었다. 민소매 유니폼의 가슴팍이 다 젖을 만큼 달렸다. 어때? 묻는 길도에게 자미는 구려, 그리고 이상해 하고 대답했다. 어느 부분이 구린데. 이게 뭔지부터 모르겠어, 드라마인가. 이건 광고야. 공익광고인가, 참된 공교육 뭐 그런 거. 땡, 이건 신발 광고야. 쟤네들이 신고 있잖아. 야, 육상선수들은 저런 신발 안 신어. 알아, 그러니까 이건 망한 광고야. 길도는 헤벌어진 얼굴로 스크린을 쳐다보았다. 저건 우리 아버지가 만든 신발이고.

들어간다, 오버.

길도의 워키토키가 지직거렸다. 일순간 화면이 희미해졌다. 커튼을 열고 들어온 범재가 바닥에 바구니 하나를 두고 나갔다. 작게 조각내 튀긴 돼지비계가 가득 쌓인 바구니였다. 고소한 기름냄새가 났다. 자미가 길도의 입안에 비계 조각을 넣어주었다. 음, 기름진 맛이야. 한참 우물거리던 길도가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다고 말했다. 네가 일어난다고, 정말? 으음, 음. 길도가 음미하듯 대답한다고 자미는 생각했다. 아닌가. 대답하듯 음미한 건가.

너 방금 대답한 거야 음미한 거야.

대답을 음미한 거야.

영상은 반복 재생되었다. 아이들이 다시 뛰었다. 후발대로 뛰어가는 아이들 중에 길도와 범재가 있다는 걸 자미는 뒤늦게 알아챘다. 둘 중 어느 한 사람을 알아보았다기보다 가장 뒷줄에서 달리는 저 두 녀석이 길도와 범재가 아닐 리 없다, 하는 확신을 가진 것에 가까웠다. 카메라는 화각을 좁혀갔다. 뛰어가는 아이들 뛰어가는 길도와 범재 뛰어가는 길도 뛰어가는 길도의 하반신 뛰어가는 길도의 엉덩이 뛰어가는 길도의 허벅지 뛰어가는 길도의 오금……까지 보았을 때 자미는 괜히 오금이 저려 발바닥을 비비적거렸고 뛰어가는 길도의 발목 뛰어가는 길도의 발 뛰어가는 길도의 러닝화……는 그들의 아버지가 개발한 기능성 건강 신발이었다.

아버지는 개발부터 판매까지 모든 단계에 관여하며 신발을 만들어 팔았는데, 누구도 고엽제 후유증으로 다리를 저는 인간이 파는 신발에 관심을 두지 않았으므로 재고가 늘 남아돌 뿐이었다. 남아돌던 신발마저 한 켤레 두 켤레씩 뜬금없이 사라지더니 불시에 아버지까지 사라지고 빈 상자들이 뒹굴기 시작할 즈음에 길도는 요통을 앓았다. 분명 엉덩이 중앙에서 시작됐는데 이제는 볼기 전체가 쑤신다며 종일 늘어지기만 하다가 야전침대에 딱 붙어버렸다. 너 그 정도 아냐, 정신 차려. 범재의 말에 길도는 아니 맞아, 하고서 발치에 있던 빈 신발 상자를 뻥 찼다. 그것들은 다 실수야, 정말 실수였겠지. 자미가 말했다. 아니, 실수가 아니라 실패야. 그 사람은 내가 온갖 뼈들을 아작 내는 동안 날 내버려뒀어. 길도가 대답했다. 그럼, 침을 좀 맞겠어?

자미는 침이라면 좀 놓을 줄 알았다. 그건 자미 본인보다 길도가 더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했다. 요통을 막 앓기 시작했을 때 길도는 멀쩡히 서 있다가도 통증을 호소하고는 했고 시간이 조금 지나서는 커다란 짐볼 위에서 살다시피 했다. 터질 것처럼 부풀어오른 짐볼은 퉁퉁거리며 사방의 벽에 부딪혔다. 전신 마사지부터 정형외과 치료까지 모두 거친 길도가 범재와 함께 한의원에 찾아갔을 때, 자미는 이미 그곳에서 침을 놓으며 서너 해를 보낸 참이었다. 그쪽이 허준의 환생이라 불린다고요. 푸른 가운을 입은 자미는 데스크에 앉아 전방을 주시한 채 미동하지 않았다. 저기요. 그녀는 범재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길도를 치료실로 안내했다. 둘 중 길도가 환자인 건 어떻게 알았지, 그리고 허준은 남잔데요…… 범재가 자그맣게 속삭였다. 원장은 남자가 맞아요. 뒤돌아본 자미가 대답했다. 하지만 침은 내가 대신 놓아요.

암실 속 자미가 푸른 가운 대신 길도가 만든 점퍼를 걸친 채 그에게 손짓했다. 길도는 마치 한의원에 온 듯 야전침대 위에서 익숙하게 몸을 뒤집었다. 자미가 그의 등허리에 침을 놓았다.

길도 너는 바늘이 왜 좋니?

따끔거리잖아.

그러니까 그게 왜 좋은 거냐고.

그냥, 따끔하다고 말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

 

*

 

상가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참에 빨간 헬멧을 쓴 부영과 모서리에 리본이 달린 상자를 껴안은 늙은 여자가 쪼그려앉아 있었다. 부영은 헬멧이 빠지지 않는다며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결 좋은 머리칼을 포니테일로 묶은 늙은 여자는 안녕하십니까, 라고 한마디한 후에 무언가 찾는 게 있다는 말만 계속했다. 누구세요. 범재가 여자를 향해 물었다. 나랑 매일 보는 여자. 엉뚱하게도 부영이 대답했다. 늘 저러고만 있어서 데려왔지. 두 사람 다 방범대로 가세요. 순찰중이라 아무도 없어. 그럼 경찰서로 가세요. 경찰서는 무서워, 그 사람들은 날 전혀 몰라. 부영은 정말 공포스럽다는 듯 어깨를 떨었다. 부영이 범재를 찾아오는 건 드문 일이었다. 아무래도 범재에게 부영은 계정숙과 자미를 통해 알게 된 방범대원일 뿐,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었다. 그녀가 범재에게 하는 말이라고는 브라운관이 또 뻑났다든가 이상하게 며칠 동안 문자메시지가 오지 않는데 휴대폰이 고장난 게 아니냐 하는 것들이 전부였다. 그가 부영에 대해 아는 게 있다면 부영이라는 동네에서 태어나 부영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 정도였는데, 자미 곁에서 그걸 엿들었을 때 참 단순하고 웃기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공구함에서 장도리를 꺼내든 부영이 헬멧을 툭툭 쳤다. 정수리를 툭, 양쪽 관자놀이를 툭, 뒤통수를 툭, 치더니 이거 깰 수 있을까? 하고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어요? 글쎄, 머리통도 자라나, 그래서 그런가. 호옥 호우우욱 우욱 호와아아아아. 그녀가 호흡할 때마다 헬멧 창이 뿌옇게 흐려졌다. 범재는 우선 창을 떼어냈다. 찌부러지고 열이 오른 부영의 얼굴이 붉은 헬멧과 잘 어우러졌다. 이제 좀 살겠다. 부영이 숨을 몰아쉬었다. 늙은 여자가 쇠지레를 내밀며 들어, 들어올려봅시다 하더니 부영에게 바짝 다가가 그녀의 턱을 붙잡았다. 머리가 먼저 부서지면 어쩌지? 무서워요? 무섭지는 않아, 그래도 신중하게 작업해줘.

범재는 부영의 오른쪽 옆통수로 다가갔다. 살결과 닿은 헬멧의 내피 사이로 쇠지레를 조심스럽게 밀어넣었다. 그러자 작은 공간이 생겼다. 아, 시원해. 부영은 자그맣게 탄성을 틔웠다. 범재는 그 틈새로 검지를 밀어넣어 뭉친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부영은 얇고 딱딱한 귓바퀴를 가졌다. 이런 귀를 가진 사람이 헬멧을 쓰고 지내면 아프지 않을까 꽤나 아플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저기, 혹시 귀지가 묻어도 이해 좀 해줘. 아프지 않아요? 전혀. 근데 골이 좀 울려.

늙은 여자가 부영의 턱을 다잡으며 움직이지 마, 맙시다 하고 경고했다. 행동은 어설펐으나 악력은 몹시 셌다. 이번에는 부영의 헬멧 속으로 볼트 커터가 쑥 들어갔다. 범재가 커터를 잡은 손에 조금씩 힘을 주었다. 이거 다시 못 쓸 텐데요. 새로 사면 돼.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좀더 세게 힘을 가했다. 어느 순간 헬멧의 가장자리가 뿌드득 갈라졌다. 고무를 태우는 것 같은 묘한 냄새가 났다. 그와 바짝 붙은 부영의 몸은 쉴새없이 열을 내뿜었다. 더워요? 으응, 좀 덥네. 늙은 여자는 참아, 참아야 합니다 외치더니 연달아 흔들리면, 흔들리면 안 됩니다 하고 덧붙였다.

내 몸은 늘 뜨거워. 목욕탕에서 일하거든.

부영에서요?

아니, 그 동네는 지금 없어졌고. 지금은 자미와 살아.

그렇군요.

정숙씨는 옆에서 칼국수를 만들어.

방범대장이 국숫집을 해요?

아니 아니, 세신사라고. 때를 줄줄 밀잖아.

그는 방범대원들에게 목욕탕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곳은 활짝 개방된 곳이고 인간이 가장 취약해지는 장소니까. 어라 오히려 그러므로 그들이 필요한 건가…… 결국 어울리고 마는 건가…… 부영은 아무리 숨이 막혀도 꼭 헬멧을 쓰고 목욕탕 걸레질을 했는데, 허구한 날 사람들이 미끄러지고 자빠지는 게 목욕탕이란 곳이기 때문이었다. 알몸인 채 정신을 잃은 사람을 또다른 알몸의 사람들이 둘러싸고 웅성대는 것을 보고 있으면 머리, 오로지 머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사고들은 그렇게 일어났다, 그리고 그렇게 일어난다. 뿌드득. 헬멧의 한 면이 팔 센티미터가량 쪼개졌다. 왼쪽 옆통수로 자리를 옮긴 범재가 전과 같이 쇠지레를 밀어넣고 틈을 벌렸다. 한 손가락으로 부영의 머리칼을 정리한 뒤 도구를 커터로 바꾸어 들었다. 그러자 늙은 여자가 장단을 맞추듯 손을 한 번 풀고 다시 부영의 턱을 잡았다. 여자의 힘이 점점 더 세졌다. 할머니, 나 턱 빠지겠어. 참아야지, 참으십시오. 여자는 꽤 매서운 표정을 짓고 단호히 말했다.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이려던 부영은 턱이 잡혀 있는 바람에 그저 으으, 에 가깝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커터를 쥔 손에 힘을 가한 범재가 한 걸음 물러섰다. 상체는 앞으로 기울고 하체가 점점 더 뒤로 빠지자 우스꽝스러운 모양새가 되었다. 툭. 조금 전까지 늙은 여자가 안고 있던 상자가 그의 뒤꿈치에 챘다. 여자가 다급히 한 손을 뻗어 상자를 보호했다.

상도, 상도산업을 압니까. 거기서 만든 물건입니다.

산드? 거그 망해드어. (상도? 거기 망했어.)

부영이 웅얼웅얼 대답했다.

상도건설은 남아 있더군요.

으으. 그흐데 그거넌 건서이다나, 건서. (응응. 근데 그거는 건설이잖아, 건설.)

예전에 거기서 크리스털, 크리스털 잔을 만들어 팔았습니다. 내가 샀어요.

아이, 거거라는 다흐지! 거건 사넙!(아니, 그거랑은 다르지! 그건 산업!)

나는 그걸 찾고 있습니다.

 

*

 

상자 안에 장식적인 스타일의 고블릿 크리스털 잔 두 개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사십여 년 전, 매주 월요일 목욕탕에서 방판을 벌이던 행상에게서 여자가 직접 사들인 것인데 품질이 남다르다고 했다.

그그 때므네 여즘 맹날 목윽하러 은 거아? (그거 때문에 요즘 맨날 목욕하러 온 거야?)

청록색 봉고를 타고 다니며 잔이나 식기 같은 것부터 속옷과 러닝셔츠 거울과 돋보기 그리고 방충제까지 팔지 않는 가재기물이 없던 그에게 머리에 수건을 두른 맨몸의 여자들이 알아서 몰려들었다. 행상이 되기 전에는 고속버스를 몰았다던가, 보험회사에 다녔다던가. 둘 다인 것도 같았다. 11월 첫째 주 월요일에 행상은 목화솜 이불 딱 한 채만 가져왔다. 마루 위에 걸터앉은 행상이 아무 말도 없이 이불 커버만 매만지자 주위 움직임도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지금 어떤 말도 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아. 모두 그런 심정이 되어갔고 탈의실엔 스윽 스스슷 슥, 하고 맨살 스치는 희미한 소리만이 이어졌다. 그때 늙은 여자는 마흔을 막 넘긴 나이였는데, 다른 여자들 곁에서 한참 행상을 바라보고 있자 잊고 있었던 아주 어릴 적의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저도 모르게 행상에게로 한 발짝 다가간 여자는 그거 아세요 나는 어릴 때 무거운 솜이불에 얼굴이 짓눌려 죽을 뻔한 적이 있어요 아무리 밀어내도 소용이 없었어요, 라고 말한 뒤 목화솜 이불을 끌어당겨 덮어보았다. 따듯하고 묵직한 감각이 여자의 목과 가슴 배 그리고 다리까지 전해졌는데 이전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달까…… 그날 행상은 여자에게 한 가지 비밀을 알려주었다. 이야기, 다른 무엇보다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사람을 사귈 때도 물건을 팔 때도 하다못해 죽어가는 순간에도 이야기가 있어야지만 일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말이었다. 오늘은 아무 말도 안 했잖아요. 여자가 이불을 가리키며 말하자 행상은 그것도 이야기야, 하고 속닥거렸다. 그리고 말이야, 솜이불은 조금만 잘못 빨아도 솜이 안에서 막 뭉쳐. 허공의 공을 만지듯 손을 움직이며 행상이 말했다. 동글동글하게 자기들끼리 뭉친다고, 한 주먹 거리 만하게. 그날 이불은 사지 않았지만 얼마 뒤 여자는 행상으로부터 상도산업에서 만들었다는 고급 크리스털 잔 세트를 구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