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공장이 호황기를 맞아 이전하기로 결정됐다. 엽은 전학을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엽이 자취하는 것에 반대했지만 어머니는 찬성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누나도 엽의 편을 들었다. 내가 기숙사에서 퇴사한 소식을 전하자 누나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얘랑 둘이 살면 되잖아. 그렇게 방 두 개짜리 집을 계약하고 부동산에서 나오던 날 엄마들끼리 오래 통화했다. 가구와 식기 등의 살림살이는 엽의 부모님이 마련했다.
집은 학교까지 이십 분 정도 걸어가면 도착할 거리에 있었다. 집 앞에 초등학교가 있어서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았다. 엽은 나더러 큰방을 쓰라고 말했지만 결국 우리는 작은방에 짐을 몰아넣고 큰방에서 함께 지냈다. 엽은 수학여행 온 것 같지 않느냐고 우스갯소리로 말했다.
그즈음부터 나는 학교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슬슬 진학과 취업 중 하나를 정해야 하는 시기였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교과목이 바뀌었고 학교 일과에 변화도 생겼다. 나는 그 무엇도 정하고 싶지 않아 진학과 취업을 묻는 설문지를 매번 백지로 제출했다. 담임선생님은 면담 시간에 이유를 물었는데 사실 이유랄 게 없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칠판에 몸을 기댄 자세로 엉덩이를 세 대 맞았다. 선생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다음 번호 들어오라고 해.
꼭 정해야 될까?
매점에서 만난 엽과 현에게 말하자 시답잖은 소리를 한다는 듯 쳐다봤다. 엽은 진학을, 현은 취업을 결정한 상태였다.
유급하지 마.
최악이지, 그건.
둘은 언젠가부터 친해져서 죽이 잘 맞았다.
중창 대회에서 입상한 후로 학교 교무처는 이전보다 더 나은 지원을 약속했지만 예상 밖의 문제가 생겼다. 대회에 참가하려면 파트별로 한 명씩은 있어야 했는데 새로 가입을 희망하는 단원이 없었던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라 학교 행사에만 참가했다. 선배들이 졸업하고 나서 중창단은 나를 포함해 세 명뿐이었고 그마저도 연습실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텅 빈 연습실에서 피아노 건반에 내려앉은 먼지를 닦으면 선배들과 연습했던 나날들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옛일처럼 느껴지곤 했다. 3학년 선배들은 졸업하는 날 연습실에 모여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평소 감정 표현이 없던 단장 선배도 연습실 열쇠를 내게 쥐여주며 눈물을 보였다.
엽은 하교 후에 입시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신 성적이 상위권이라 조금만 더 공부하면 실업계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엽은 다른 도시에 있는 공대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따 집에서 봐.
엽은 교문을 빠르게 빠져나가며 말했다. 집에서 보자는 말이 익숙하지 않아 대답 없이 손만 흔들었다.
나는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당구장으로 향했다. 당구를 친 적도, 배운 적도 없었다. 언젠가 엽이 당구를 가르쳐주겠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잊은 듯했다. 혼자 집으로 가는 게 싫어 무료한 시간을 달랠 겸 당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마자 매캐한 담배 냄새와 공이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정신을 아득하게 했다. 대부분 중년 아저씨들이었는데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여럿 보였다. 팔 토시를 낀 사장이 큐대를 내려놓으며 내게 다가왔다. 혼자 왔다고 말하자 잘못 듣기라도 한 것처럼 재차 물었다. 당구를 배운 적이 없다고도 말했다. 당구장을 운영한 지 십 년 만에 이런 손님은 처음 본다면서 나를 흘깃 바라보는 다른 아저씨들과 함께 헛웃음을 지었다. 사장은 말만 퉁명스럽게 할 뿐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주며 잠깐만 기다리라고 말했다.
저 게임만 이기고 올 테니까 여기 있어봐.
요구르트를 다 마실 즈음 사장은 게임에 져서 돌아왔다. 한참을 씩씩거리다가 내게 큐대를 잡아보라고 말했다.
공고? 거기 애들 많이 오는데 처음 보네.
나는 다른 사람들의 자세를 훔쳐보며 엉성하게 큐대를 잡았다. 사장은 한숨을 쉬면서 기본적인 자세를 알려줬다. 그러고는 ‘4구 스피드 당구’라는 제목이 적힌 책을 내게 한 권 내밀었다.
틈틈이 알려줄 테니까 읽고 와.
사장은 이용료의 반값만 받았다. 나는 그날부터 학교를 마치면 시간이 날 때마다 당구장으로 향했다.
당구장을 나서자 어느새 사위가 어둑했다. 달리 갈 곳이 없어 집으로 향했다. 집주인 할머니가 사는 마당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에는 장독대가 놓여 있었다. 할머니는 장독대에 간장과 된장이 담겨 있으니 계단을 오르내릴 때 항상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주인 할머니는 엽의 어머니와 교회에서 알고 지낸 사이였다. 이층에 살던 신혼부부가 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우리가 살게 됐다. 어머니는 할머니가 일층에 있어서 그나마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장독대에 대한 당부만 할 뿐 우리 생활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가끔 반찬이나 과일이 든 그릇을 문 앞에 놔두곤 했다. 엽의 아버지는 전세 계약서를 쓴 뒤 인사를 할 겸 찾아와서는 할머니에게 우리를 손주처럼 생각해달라고 말했다.
젊은 사람이 싱거운 소릴 다 하네. 나 손주 없어.
그 집에 사는 동안 할머니는 우리를 한 번도 손주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창문 너머로 티브이 소리가 들려왔다. 할머니는 보이지 않았고 사과가 담긴 바구니가 문 앞에 있어 두 개를 주머니에 넣었다. 계단을 오르는데 옆집 개가 나를 보고 짖었다.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거실 불을 켠 뒤 엽이 벗어놓은 반바지를 세탁기에 넣었다. 엽은 저녁을 먹지 말고 기다리라고 문자를 보내왔다. 우리는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어서 매 끼니 라면을 먹었다. 신라면 한 박스, 짜파게티 한 박스를 사서 번갈아 끓였다. 교복에 라면냄새가 밸 지경이었다. 당구장에서 받아온 책을 꺼내 읽었다. 그러다 잠이 들었고 엽이 계단을 오르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엽은 용돈을 받았다며 치킨을 사왔다. 기름냄새를 맡자 허기가 일었다. 우리는 상도 없이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살점을 발라 먹었다. 당구장에서 받아온 책 위에 닭 뼈를 쌓았다.
이 책은 어디서 난 거야?
학교 근처 당구장에 다녀왔다고 말하자 엽은 젓가락을 내려놨다.
거기 가지 마.
별다른 설명 없이 무작정 가지 말라고 하기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입으로는 다른 말이 나왔다.
너 학원 가면 나 할 거 없어.
같이 학원 다니자. 대학교도 같은 곳으로 가고.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엽과 함께 대학교를 다니면 즐거운 일이 많을 것이다. 대학교가 아니어도, 공장을 다녀도, 아니 그 어디가 됐든 내내 웃을 것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런 미래가 내게 허락되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한번 자리잡은 불안은 떨치려 할수록 분명한 형태로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17
준의 집에서 소설 원고를 쓰던 중에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외출을 하고 돌아온 준은 곧장 옷방으로 가지 않고 거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할말이 있는 건가 싶어 노트북을 닫았다. 준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요새 통 대화를 안 했잖아.
준은 단정하게 묶은 머리를 풀며 말했다. 조금 지쳐 보였는데 밖에서 어떤 일을 하고 왔는진 물어보지 않았다. 먼저 무슨 말을 꺼내면 좋을지 고민하는 사이 준이 물었다.
오늘 뭐했어?
학교 다녀왔어.
수요일마다 수업 있지. 말해줬는데 까먹었네. 그리고?
예전에 말한 소설. 그거 쓰느라.
어떤 거?
메일 보낸다고 말했던 거. 나랑 비슷한 경험이 있는.
준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아, 하고 손뼉을 쳤다. 그러곤 웃었다. 그즈음의 준은 자주 근심 있는 눈빛이나 무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봤다. 준은 웃으며 아랫입술을 씹었다. 초조하거나 불안하면 나오는 습관이었고 꼭 그러다가 피가 났다. 나는 피가 나기 전에 매번 엄지로 준의 아랫입술을 쓰다듬었다. 그러면 준은 하던 행동을 멈췄다. 그런 과정이 자연스러웠던 날들이 떠올랐다. 준의 얼굴로 향하려던 손을 거뒀다. 만질 수 없었다. 이제 준은 내가 말리지 않아도 입술을 오래 씹지 않았다.
얼마 전 친구의 지인을 만나 아침까지 대화를 나눈 일을 이야기했다. 준은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거나 팔짱을 낀 채 상념에 빠졌다. 그 일만으로는 소설을 쓰기 어려워 다른 방법을 생각하는 중이라고 말을 덧붙였다. 준은 한참 생각하다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멀리서 찾을 필요 있어? 그 친구 있잖아.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때 말한 친구. 고등학교 때 같이 살았다고 했던.
창밖으로 오토바이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처음엔 준이 누구를 말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가 갑작스럽게 육박하는 감정과 기억에 어지럼증을 느꼈다. 나는 그를 잊고 살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를 지우고 살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 일 이후로 나의 삶은 그를 어떻게 지울 수 있을지, 다시 말해 내 삶에서 어떻게 그 기억을 덜어낼 수 있을지 혼자 분투하던 시간이었다. 그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내게는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공포스럽고 두려운 일이었다.
준은 조심스레 물었다.
가족들은 지금 어디 살아?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18
뉴질랜드 남섬에 자리한 퀸스타운공항에 도착했을 때, 서둘러 항공기에서 내리려는 승객들을 지켜보며 창문 덮개를 만지작거렸다. 햇볕이 강해 허벅지가 데일 것처럼 뜨거웠다. 비행중 창문 너머로 만년설 쌓인 산맥들이 컴퓨터그래픽처럼 펼쳐졌는데 잠깐 잠들었더니 그런 풍경들은 꿈에서 스친 것 같았다. 승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뒤 배낭을 메고 좌석에서 일어서자 문 앞에 선 승무원이 두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공항 규모가 작아서 밖으로 나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새 한 마리가 입국 심사장을 날아다녔고 그제야 외국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실감났다. 공항 주변으로는 고요하고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숨을 들이마신 뒤 길게 뱉었다. 하늘을 반쯤 가릴 정도로 높게 솟은 산을 보느라 목이 뻐근했다. 택시를 잡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등산객 무리가 떠들썩하게 언성을 높이며 지나갔다. 그들은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주변 경관에 감탄했다.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여행을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면 어땠을까. 괜한 상상을 하며 택시에 올라탔다. 턱수염이 쇄골까지 자란 기사는 주소를 보고는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무슨 뜻인가 싶어 도착지까지 가는 내내 궁금했는데 차가 멈추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집은 와카티푸 호수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었다.
엽의 누나와는 쉽게 연락이 닿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누나 역시 예전 번호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누나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마치 내 연락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문자를 보내자마자 몇 분 뒤 전화를 걸어왔다.
언젠가 한 번은 네가 연락할 것 같았어.
누나는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했다.
아니, 연락하길 바랐어.
짧은 안부를 주고받는 동안 이런저런 사실을 알게 됐다. 엽의 누나와 부모님은 그 일이 있고 뉴질랜드로 떠나 작은 마을에 정착했다. 부모님은 식당을 오래 운영하다가 몇 년 전 퀸스타운에 펜션을 차렸다. 누나는 오클랜드에서 대학원까지 졸업한 뒤 최근에 결혼했다. 나 역시 근황을 전했는데 소설을 쓴다고 하자 적잖이 놀란 반응을 보였다. 통화를 하고 있으니 잠깐 동안 누나의 얼굴이 기억났다. 항상 거실에서 반겨주던 얼굴이 오래된 사진처럼 머릿속에 스쳤다. 나는 현재 작업중인 소설에 대해서도 말했다.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라 오랜만에 누나와 부모님을 만나고 싶다고 말을 덧붙였다. 누나는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적당한 날짜를 알려주겠다고 답했다.
엄마가 좋아하겠다. 다시 연락할게.
누나는 며칠 뒤 날짜와 주소를 보냈다. 대학교 학기 중이라 중간고사 기간에 맞춰 휴강 계획을 잡았다. 맘 같아선 더 오래 머물고 싶었으나 현실적으로 허락되는 건 일주일 정도였다.
준에게 함께 가자고 제안했지만 새로 등록한 학원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어렵다고 답했다. 준은 언젠가부터 영어 학원과 운전면허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직장을 알아보는 대신, 그간 바빠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씩 실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예전엔 여행지 사진을 보여주면 서서히 관심을 가졌는데 이번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하러 가는 거잖아, 가서 얘기 잘 나누고 와. 준은 분명하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공항으로 가는 날, 나는 키위새 인형을 사오겠다고 말하며 집을 나섰다.
누나가 보내준 문자를 다시 확인하며 열쇠가 담긴 보관함부터 찾았다. 엽의 부모님은 다른 도시에 있다가 저녁에 올 예정이었고 누나도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다고 했다. 숙소비는 받지 않았다. 그때도 집에 자주 놀러왔잖아, 누나는 말했다. 내가 머문 곳은 큰 창문 너머로 호수가 보이는 방이었다. 나는 배낭을 열어 한국에서 가져온 식료품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뒀다. 발코니에 놓인 의자에 앉아 설산을 배경으로 펼쳐진 호수를 바라봤다. 산책로를 따라 뛰던 사람들이 눈인사를 건넸다. 이름 모를 새들이 수면 가까이 날았다. 장시간 비행에 노곤해진 탓에 잠이 쏟아졌다. 준에게 연락해야지, 생각하다가 앉은 채로 잠에 들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만 잠깐씩 들렸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유람선 경적소리에 잠에서 깼다. 문득 어떤 위화감과 함께 몸에 한기가 돌았다.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준을 혼자 둬도 될까, 갑작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한 서글픈 기분이었다. 나는 엽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외투를 챙겨 입은 뒤 집을 나섰다. 해가 저물기 시작해 호수 위로 석양이 졌다. 주황빛으로 물드는 수면을 바라보며 무작정 걸었다. 텐트에서 책을 읽는 사람과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 수영을 마치고 타월로 몸을 닦는 사람을 마주쳤다. 공원을 지날 땐 갑작스럽게 강풍이 불어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보트와 카누가 보일 즈음 저멀리 관광객들이 모여 있는 시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곳까진 가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 준에게 전송했다. 멋진 곳에 있네, 준은 바로 답장했다. 산책을 마치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방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뒷모습만 봐도 누군지 알아차릴 수 있었지만 갑자기 부르면 놀랄 것 같아 한동안 바라만 봤다. 누나는 까치발을 들고 방을 들여다봤다. 초인종을 누르면 될 텐데, 누나는 내가 모습을 보이기까지 기다리는 것 같았다. 설산 너머로 해가 지자 주위는 금방 어스름해졌다. 나는 그림자가 짙어지는 땅을 바라보며 발로 툭툭 찼다.
길에서 마주치면 못 알아보겠다.
누나는 입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놀란 듯이 말했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면서 인사했다. 어릴 땐 엽과 누나의 얼굴이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누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자니 엽이 바로 떠올랐다. 이미 충분한 시간과 감정을 겪었다고 생각했다. 누나는 울었고 나는 참았다. 설산 위로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