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창 대회 날 아침, 현은 응원하러 가지 못해 미안하다며 대추차를 끓여줬다.
엄마가 알려줬는데 목에 좋대.
나는 군말 없이 들이켰다.
맛은 없어.
연습실에 도착해 악보를 챙기고 선배들이 오기 전까지 거울을 보며 입 모양을 교정했다. 담당 선생님이 먼저 연습실에 도착해 출석 인정 신청서를 내밀며 서명을 해두라고 말했다. 그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연신 닦아냈다.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어서 대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쓰러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들었다. 선배들에게도 서명을 받아두라 이른 뒤 대회장으로 먼저 출발하겠다며 연습장을 나섰다. 창밖으로는 이제 막 등교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대회 이틀 전, 누나는 청주에 올 일이 있다고 연락했다. 학교 근처로 갈 테니까 나와. 누나가 보낸 문자를 읽다가, 나는 하는 수 없이 중창 대회에 나간다고 얘기했다. 누나는 재밌겠다며 구경을 오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오지 말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누나는 뭔가를 하기로 마음먹으면 꼭 그것을 해내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교회 위치를 마지못해 알려줬다. 정말 올지는 알 수 없었다. 가족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가 싫어 잠을 뒤척였다.
대회장에 가기 전 연습실에서 선배들과 함께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창했다.
이렇게만 부르고 내려오자.
단장 선배는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교회로 향했다. 여느 학생이라면 교실에 있을 시간이라 그런지 다른 승객들이 의아하게 바라봤다.
단복 맞추자니까.
한 선배가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우리 나가면 너네는 꼭 맞춰. 옷에 중창단이라고 크게 박아.
2학년 선배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버스는 어느덧 교회 앞에 도착했다.
어떻게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우리 차례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무엇을 잘했는지보다 무엇을 틀렸는지 떠올려봤는데 아무도 실수하지 않았다고, 자기가 듣기엔 연습 때보다 잘했다고 담당 선생님이 말했다. 그는 울 듯한 표정으로 한 명씩 차례로 껴안았다. 대회에 참가한 모든 학교의 합창이 끝나고 시상식에서 2등으로 호명됐을 때, 우리는 기쁘다기보다 얼떨떨했다. 단장 선배가 무대에 올라 상패를 받고 내려왔다. 대회를 구경 온 단원들의 가족이 다가와 수상을 축하해주었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 있다 집에 전화를 할까 하다가 말았다. 함께 밥을 먹으러 가자는 담당 선생님의 제안을 거절하던 중에 누군가 등을 툭 쳤다. 엽과 다이키였다.
얘가 몰래 오재.
엽은 다이키를 가리키며 말했다. 다른 선배에게 꽃다발을 빌려 셋이 사진을 찍었다. 다이키는 사진을 꼭 보내라며 메일 주소를 알려줬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보니 좋았다. 고맙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대회장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누나가 멀리서 황급히 뛰어오고 있었다.
끝났어?
엽은 누나를 향해 인사했다. 다이키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
친구들이 있었네.
내 생각을 미리 읽은 것처럼 누나가 말했다.
아빠가 너 밥 사주러 가라고 했어. 자기들은 못 온다고.
누나는 지갑을 꺼내 흔들었다. 택시를 타고 다 함께 시내로 향했다. 다이키는 방문단과 함께 저녁을 먹어야 한다며 학교 정문에서 내렸다. 엽은 시내에서 제일 맛있다는 경양식 식당으로 누나를 안내했다.
그로부터 일 년 반 뒤 졸업식에 누나는 한번 더 나를 보러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였고 엄마는 빚을 갚으라는 사람들을 피해 여기저기 거처를 옮겨다니던 때였다. 나는 엄마에게 혼자 졸업식에 가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엄마는 공중전화 수화기 너머로 조금 흐느꼈고 졸업식 소식을 괜히 전한 것 같아 서둘러 전화를 끊고 싶었다. 휴대폰 개통하면 다시 연락할게, 엄마가 말했다. 졸업식이 시작되기 전 강당으로 향하는데 동네에서 봤던 어른들이 나를 불러 세웠다. 엄마 안 왔니. 애 졸업식엔 올 줄 알았는데. 나는 강당으로 향하는 다른 친구들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네 엄마 바뀐 전화번호 알려줘. 누군가 물었다. 번호 없어요. 졸업식이 곧 시작될 것 같았다. 거짓말하지 말고, 얼른. 나는 거짓말이 아니라고 내 휴대폰을 건네며 말했다. 휴대폰을 열어 이것저것 살피던 그들은 체념한 듯 고개를 저었다. 너한테 미안하다. 네가 이해해. 졸업 축하하고 이거 가져가. 아버지와 가장 친했던 어른이 주먹만한 카네이션을 내 손에 쥐여줬다. 나는 그것을 화단에 버리곤 홀로 강당으로 향했다. 그때는 엽도, 현도 학교에 없었다. 친구들이 없어서인지 강당으로 가는 길이 무척 낯설었다.
졸업식을 마치고 나오자 운동장 단상 아래 누나가 서 있었다. 나는 잘못 본 줄 알고 그대로 지나칠 뻔했다. 누나가 꽃다발을 든 채로 내게 손짓했다.
사진은 남겨야지.
누나는 가방에서 콘탁스 카메라를 꺼내며 말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해 학교 건물을 배경으로 나란히 섰다. 카메라를 든 사람이 김치, 라고 외치며 셔터를 눌렀다. 그가 여러 번 셔터를 누르는 동안 우리는 한 번도 웃지 않았다.
15
준은 여름휴가를 맞이한 친구와 함께 며칠간 여행을 간다고 말했다. 부산 가볼 만한 곳, 부산 맛집, 부산 명소, 부산 휴가. 준은 검색창에 뭔가를 썼다가 지우길 반복했다. 나는 꽤 오래전 군 제대 직후 친구들과 다녀온 게 전부라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해줄 수 없었다. 기내용 트렁크에 짐을 싸는 준을 보면서 혹시라도 빼먹은 건 없는지 어깨너머로 확인했다.
내일 엄마 잠깐 온대.
준이 어떤 의도로 말했는지 잘 알고 있기에 별다른 대답 대신 기차표는 잘 끊었는지, 숙소는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걱정하지 마.
예약 안 했으면 내가 해줄까?
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른 새벽, 해가 뜨기 전 준을 깨웠다. 눈을 반만 뜬 채로 준은 집을 나섰다.
준의 엄마가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춰서 밖으로 향했다. 주말이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집 근처 근린공원 벤치에 앉아 운동하는 사람을 구경하다 노트북을 두고 온 사실을 깨달았다. 가방에는 반쯤 남은 생수와 전날 사용한 수업 자료, 초콜릿이 전부였다. 책이라도 한 권 넣어둘걸 후회하다 고개를 들어 공원에 심긴 나무들을 비집고 내리쬐는 햇빛을 구경했다. 어느새 땀이 났고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아주 잠깐 이마를 스쳤다. 갈 곳이 없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더 나쁜 쪽으로 기우는 마음을 밀어내며 벤치에서 일어났다.
준과 자주 갔던 산책로를 걸었다. 언젠가 폭설이 예고된 새벽, 파자마 위에 롱 패딩을 걸친 채로 산책로에 점점 쌓여가던 눈을 구경하다가, 준이 눈밭에 그대로 드러누워 배영하듯 팔다리를 움직인 적이 있다. 감기에 걸릴 거라고 일으켜세우려 했지만 일어나지 않아 덩달아 나까지 옆에 누워 눈 내리는 하늘을 바라봤다. 그렇게 누워 있으니 눈 쌓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제설하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민망해서 얼른 일어나려고 하자 준은 뭐 어때, 라고 말했었다.
그날 함께 누웠던 자리를 바라보다 그 자리에 혼자 털썩 앉았을 때, 불현듯 깨달았다. 울면서 매달리거나 다시 잘해보자는 말로 해결될 일이 아니겠구나. 눈 내린 자리에 눈이 녹아 사라지듯 자연스러운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런 비유가 싫었고, 쓰지 않았다. 눈 내리는 겨울을 준과 한번 더 맞이하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그 시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준과 웃으면서 남이 될 수 있을까, 좋은 이별이라는 말은 믿어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었지만 이번엔 믿어야 하나, 그런 생각들이 뒤죽박죽 머릿속에서 엉킬 때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네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한 뒤 구석으로 가 앉았다. 개들이 많이 오는 카페였는데 개도 사람도 없어서 한산했다. 엄마가 불쑥 문자를 보내왔다. 그날 몇시에 올 거야? 나는 무슨 날인가 싶어 전화를 걸었고 엄마는 아버지 기일이라고 말했다. 음력으로 셈을 하다보니 해마다 날짜가 헷갈렸는데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엄마는 일주일 전에 미리 문자를 보낸 거였다. 얼마 전부터 엄마 무릎에 물이 차서 제사는 지내지 않고 납골당에만 가기로 했다. 수술 날짜까지 잡힌 마당에 무릎에 무리가 가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괜찮다고 했지만 내가 말렸다. 누나가 잔소리할 텐데. 아이 키우느라 바빠서 신경쓰기 어려울 거라고 엄마에게 말했다.
큰아버지가 지병으로 돌아가셨을 때 가문의 모든 제사를 우리집으로 가져온 적이 있었다. 한 달에 적게는 세 번, 많게는 여섯 번 제사를 지냈다. 온 가족의 일상이 제사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일 년 내내 향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웠고, 엄마는 제사 음식을 하느라 허리가 안 좋아져 수시로 병원에 갔다. 아버지는 다른 친척들에게 전화를 걸어 제사를 나눠서 하자고 제안했다. 그런 건 큰아버지 다음으로 가장 큰어른이 맡아서 하는 거 아니냐며 친척들은 하나같이 거절했다. 아버지는 죽은 조상들 때문에 살아 있는 가족들이 고통받는 경우가 어딨느냐고 말한 뒤 모든 제사를 절에 일임했다. 친척들이 화를 내자 아버지는 앞으로 명절에 모이는 일도 없을 거라고 잘라 말했다. 명절에 모여봤자 애엄마만 일하지. 그뒤로 명절에 친척들이 찾아오지 않아 우리는 우리만의 시간을 보냈다. 명절엔 제사 음식이 아닌 다른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엄마는 건강을 점점 되찾았다.
일주일 뒤 본가에 내려가자 엄마는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에어컨을 켜지 않아 집안이 무척 더웠는데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네 누나 때문에 못살겠다. 내가 죽어야 끝나지.
누나와 싸울 때면 항상 듣던 말이라 그러려니 했지만 옷소매로 눈물까지 훔치는 엄마를 보니 상황이 심각한 것 같았다. 엄마는 누나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창을 보여줬다. 이번 아버지 기일에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하자 누나는 엄마에게 만나는 사람 생겨서 그런 거냐고 물었다.
내가 누구 만나는 게 무슨 죄라고 이렇게 말하니.
대화창을 더 읽었다. 누나는 꺼내서는 안 될 말까지 꺼냈다.
네 누나는 아직도 아빠가 죽은 게 내 탓이라고 말해.
나는 휴대폰으로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는 전화를 받는 대신 아이를 재우는 중이라며 메시지를 보냈다. 지금 엄마와 함께 있고 누나가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아니까 얼른 전화를 받으라고 답장했다. 제사를 지내는 성의라도 보여야 한다느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냐고 직접 묻고 싶었다. 엄마와 누나는 여태껏 이 일로 몇 번이나 싸운 뒤 화해했는데 또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누나는 아버지의 죽음을 엄마의 약점으로 삼지 않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었다. 하필 싸웠고, 하필 엄마가 집에 없었다고, 자식들은 모르는 관계성이 둘 사이에 작용한 거라고. 그렇게 겨우 통과한 우리 가족의 시간을 누나는 다시 되돌리려 했다. 나는 그 점이 참을 수 없었다. 엄마는 음 소거를 해둔 티브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옆얼굴에 로션이 섞인 하얀 땀이 흘러내렸고 나는 휴지를 가져와 엄마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누나가 금방 미안하다고 할 거야.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나는 매번 같은 말을 꺼냈다.
해가 지기 전 막걸리와 약과를 사서 납골당으로 출발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엄마는 누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일을 마치고 준의 집으로 들어가던 길이었다. 준은 새벽에나 집에 들어온다고 했다. 사진 속 누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곧바로 전화가 왔는데 누나가 소고기와 미역을 사 들고 집으로 찾아간 것이었다. 며칠 뒤면 엄마 생일이었다.
용돈도 줬어.
엄마는 누나가 할말이 있다며 전화를 바꾸려 했고 말릴 새도 없이 연결되었다. 누나는 사과했다. 나는 대답 대신 아이 이름은 지었느냐고 물었다. 시아버지가 작명소에서 돈을 주고 지어왔다고 누나는 말했다. 나는 알겠다고만 말한 뒤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엄마와 누나의 일은 그렇게 해결되었지만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이제는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화분이 거실 중앙에 놓여 있었다. 고사리를 닮은 식물이었는데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었다. 예전엔 화분을 직접 사거나 선물을 받으면 준은 들뜬 얼굴로 화분을 만지작거리며 설명을 해주곤 했다. 하지만 이 화분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이 나질 않았다. 물은 이틀에 한 번만 주래, 창가 가까운 데 두면 안 된다고 하더라. 일이 바빠 준이 신경쓰지 못하면 준이 알려준 대로 식물을 길렀다.
준은 언젠가부터 그간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나씩 실행했다. 나는 그것이 차근차근 이별을 준비하는 준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이불 커버를 새로 바꿨고, 냉장고에 쌓인 음식물을 정리했으며, 의류 수거함에 버릴 옷들을 구석에 쌓아뒀다.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오는 것 같았다. 나도 곧 이 집에서 없어질 것이다.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눈치를 챘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반응하지 않는 것을 택했다. 다 알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화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준이 문을 열며 들어왔다.
화분이 있네.
어제 샀어.
준은 그대로 방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식물 이름을 알려주는 앱을 설치했다.
16
다이키가 일본으로 돌아간 다음 학기에 나는 기숙사에서 퇴사했다. 같은 구역을 청소하는 사생과 싸움을 한 게 원인이었다. 사생들은 임의로 조를 배정받아 교내 건물을 청소했는데 급식당을 함께 청소하기로 한 사생이 일주일 내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동급생이었던 그는 사흘이 더 지났을 때 청소 시간이 끝나갈 무렵에야 슬리퍼를 끌고 급식당에 나타났다. 청소는 하지 않고 건물 옆에서 담배를 피웠다. 빗자루를 건네주자 난데없이 나를 밀쳤다. 넘어지자마자 곧바로 주먹을 날려서 몇 대 맞았는데 그뒤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침 근처를 지나던 야구부원들이 모여들어 싸움을 부추겼다. 나는 셔츠가 찢어졌고 그는 슬리퍼를 잃어버렸다. 사감은 우리를 학생주임실로 데려갔다. 다음날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만 기숙사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괜찮아. 나도 나가려고 했어.
현이 대수롭지 않게 말해줘서 나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는 혹시나 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룸메이트를 만나게 될까 걱정했었다. 현은 대학생인 친형과 함께 방을 얻었다고 말했다.
부모님에게 연락을 했다간 당장 시골로 돌아오라고 말할 게 빤했다. 잠잘 곳이 없어 걱정하던 참에 현은 자취하는 친구를 소개해줬다. 교실에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눈 후 그가 사는 집으로 갔다. 상가 건물 옥탑방에 이미 열 명에 가까운 친구들이 교복을 입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발 디딜 곳도 없어 신발을 벗을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그는 괜찮다며 곤히 잠든 다른 친구의 등을 발로 툭 찼다. 우리 학교 교복이 아니었다. 나는 바닥에 겨우 몸을 구겨 누웠다.
소식을 들은 엽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들고 나온 짐이랄 것도 얼마 없어서 교실에 있는 사물함에 전부 쑤셔넣었다.
일단 우리집에 가자.
그로부터 한 달 뒤 나는 엽과 함께 자취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