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서 꽝 꽝 하는 천둥소리가 시작되고, 이번에는 빛이 없다.
Y의 옆에 앉은 여자친구는 움찔움찔 놀란다. 비명을 지르지는 않는다.
우박의 크기가 점점 커진다.
창에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해진다.
밖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유리창 쪽으로 다가간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렬로 전면 유리 앞에 선다.
Y는 자기 옆에 서 있는 남자가 원탁의 말이 많은 남자인지 말이 없는 남자인지 알 수 없다.
비바람에 유리창이 떨린다.
Y의 여자친구는 유리창에 손바닥을 지그시 가져다댄다.
Y는 여자친구를 따라 유리창에 손바닥을 얹는다.
사람들은 말없이 새카만 밖을 열심히 본다.
Y는 뭔가 보이는 것도 같다.
촛불 빛에 유리 앞에 선 사람들의 얼굴이 반사된다.
Y는 한 명 한 명의 표정을 본다.
몇 살이에요? 원탁에 앉아 있던 남자가 Y의 여자친구에게 묻는다.
두 남자 중에 말수가 적었던 남자다.
Y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여자친구는 자기 나이를 대답한다.
Y는 여자친구의 손목을 세게 붙잡는다.
여자친구는 가볍게 뿌리친다.
유리 밖의 거리에서 빛과 굉음이 내리친다.
바닥으로 내리꽂히는 우박은 위협적인 크기가 되어 마구 창을 친다.
사람들이 피할 새 없이 전면 유리에 굵은 금이 간다.
유리에 굵은 금은 순식간에 실금으로 거미줄처럼 번진다.
믿을 수 없어요. 여직원이 말한다.
이쪽으로 오세요. 유리 깨지면 위험해요. 사장이 모두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더듬듯이 홀 안을 걸어 카페의 가장 안쪽, 카운터 너머로 간다.
촛불은 같은 방향으로 흔들리고, 벽과 천장에 비치는 거대한 그림자가 겹겹이다.
카운터는 Y의 허리 높이다.
사람들은 카운터 너머에 서서 전면 유리의 처참함을 본다.
왜 저렇게까지 된 건지. Y는 이해할 수 없다.
균열에 또다른 균열이 반복적이고, 균열마다 촛불 빛이 어른거린다.
밖에서 유리 해체해주실 수 있는 분 있는지 알아볼게요. 사장이 말한다.
사장은 몇몇 지인에게 전화를 건다.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는다.
전화가 안 되네요. 사장이 말한다.
뭔가 끊어졌나봐요.
뭐가 끊어진 걸까요.
카운터 뒤에 서 있던 누군가 그 자리에 쭈그려앉는다.
한 명이 앉자 차례대로 모두 푹푹 주저앉는다.
사장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초 몇 개를 카운터 뒤로 가져온다.
사람들의 앞에 작은 초 여섯 개가 놓인다.
나도 갈래. Y의 여자친구가 말한다.
조용한 가운데 여자친구는 말을 한 것이다.
모두 그녀를 향해 고개 돌린다.
어디에? Y가 여자친구에게 묻는다.
위리도. 여자친구가 대답한다.
고마워. Y가 말하자 여자친구는 무엇이 고마운지 묻는다.
같이 간다니까 고맙지. Y는 대답하고, 진심이다.
여자친구가 원한다면, 아이스박스 가득 냉동 양갈비를 넣어 섬으로 떠날 것이다.
우박은 쉬지 않고 튄다.
끊임없이 타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있을 수 있는 일이에요. 카페를 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지만.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안 다치셨으면 저는 그걸로 족해요. 사장이 말한다.
사장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촛불과 빗소리 때문인지 사장의 말은 고백 투로 들린다.
네. 저는 안 다쳤습니다. 원탁에 앉아 있던 남자 중 누군가 말한다.
저도 안 다쳤어요. Y의 여자친구가 말한다.
네. 저도. Y가 대답한다.
사장님은 괜찮으세요? 여직원이 말한다.
원탁에 앉아 말이 많았던 남자는 앉은 자리에서 졸고 있다.
저도 다친 데는 없어요. 감사한 일이죠. 바로 유리 앞에 다들 서 있었는데.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사장이 한 번 더 고백 투로 말한다.
우박, 굉음 같은 천둥, 번개가 연이어진다.
카운터 뒤에서 사람들은 각자 다른 끝을 상상하고 비슷한 불안을 느낀다.
머지않아 카페의 전면 유리가 산산조각으로 무너지고, 비바람이 홀 안으로 들이닥친다.
사람들은 카운터 뒤에 앉아 있기 때문에 그 광경을 목격하지 못하지만, 모두가 같은 순간, 완전히 깨져버렸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거리에서 무언가 부딪히고 휘날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사장은 견딜 수 없다는 듯이 탄식한다.
사장은 터지는 울음을 참을 수 없다.
원탁의 남자는 사장의 우는 소리에도 계속 졸고 있다.
원탁의 또다른 남자는 자기 자리에 올려둔 지갑을 챙겨 카페 밖으로 나간다.
Y는 남자가 순식간에 거리의 어두움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본다.
저 남자는 왜 여자친구에게 나이를 물었는지.
여자친구는 왜 대답했는지.
Y는 생각하지만, 흘려보내기로 한다.
Y는 테이블에 올려둔 자기 물건들이 떠오른다.
우리도 나가자. Y가 여자친구에게 말한다.
어디를? 여자친구가 묻는다.
집에 가야지. Y가 대답한다.
Y는 앞에 놓인 초 하나를 들고 앉은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기 물건이 있는 테이블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
걸음마다 유리 파편이 밟힌다.
Y는 뜨거운 것에 발을 가져다대는 것처럼 조심스럽다.
우박과 비바람이 홀 안으로 들이친다.
Y는 자기가 앉아 있던 테이블 앞에 선다.
물건을 하나씩 가방에 넣는다.
노트가 보인다.
Y는 초를 비춰 여자친구가 노트에 무엇을 끼적였는지 확인한다.
얼굴이다.
눈썹과 미간이 찌그러진.
눈은 길게 찢어져 사나워 보이고 눈동자가 작다.
각진 턱과 뾰족한 귀.
여자친구가 노트에 그린 얼굴은 휘갈겨져 있다.
Y는 알아볼 수 있다. Y, 자기의 얼굴이다.
얼굴 아래에는 ‘위리’가 반복적으로 적혀 있다.
위리위리위리위리위리위리위리위리위리위리위리위리위리위리위리위리위리위리위리위리
길게 이어진 위리는 사슬 혹은 무늬가 있는 하나의 끈처럼 보인다.
죽 끌어당기면 딸려 올라올 것만 같다.
Y는 여자친구가 그린 것과 쓴 것을 더 자세히 보고 싶다.
Y의 손에 들린 초가 기울어져 촛농이 떨어진다. Y는 잠깐 놀란다.
Y는 테이블 한쪽에 초를 내려놓고 아크릴 의자에 앉는다.
테이블 위에는 Y가 주문한 위스키가 그대로다.
한번에 들이켠다.
코끝이, 이마가 찡하다. 가슴 언저리에 뜨거움이 번진다.
사장과 여직원, 원탁의 남자, 여자친구는 카운터 뒤에 주저앉아 있기 때문에,
홀 안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바닥에 즐비한 유리 파편이 촛불 빛에 번쩍이고 일렁인다.
유리 바닥이 아니라 불 바닥 같다.
Y는 여자친구에게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을 보여주고 싶다.
날이 밝을 때까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Y는 생각한다.
여기로 와볼래? 조심히. Y는 여자친구의 이름을 부른다.
전면 유리가 있던 자리는 깨끗하게 프레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