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도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혼곤한 낮잠이었다.
무슨 잠이 이렇게 깊이 들었는지. 아주 긴 꿈을 꾼 것 같은데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서글픈 감각만이 가슴을 짓누르듯 남아 있었다. 대체 무슨 꿈이었을까.
애영이 몸을 일으키자 열려 있는 현관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 정신 좀 봐.
저녁으로 생선을 굽고, 환기를 한다고 문을 열어둔 채 깜빡 잠이 든 모양이었다. 서둘러 문을 닫고, 정신을 차릴 요량으로 물을 한 잔 들이켰다. 고요한 집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그 원인을 찾듯 이리저리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는 문득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뭉이가 보이질 않았다.
설마 문밖으로 나간 걸까.
이름을 부르며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지만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래도 문이 열린 틈에 밖으로 나간 듯했다. 눈앞이 하얘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허둥지둥 신발에 발을 꿰어 넣었다.
*
애영의 하루는 늘 규칙적으로 흘러갔다.
새벽 다섯시면 일어나 물을 두 잔 마셨다. 첫 잔은 장 건강을 위해, 두번째 잔은 얼굴의 부기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다. 그다음 미지근한 물로 세수를 한 뒤, 보습 크림을 얼굴에 꼼꼼히 펴 바르고 머리를 핀으로 깔끔하게 고정했다. 거울 속 그녀의 얼굴은 이렇다 할 특징 없이 단정하고 정갈한 인상이지만, 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안에 생기와 자신감이 넘실거리고 있다는 걸 누구나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그 은근한 자신감이 그녀를 나이보다 젊어 보이게 만들었다.
용모를 손본 뒤에는 정해진 루틴대로 움직였다. 주말엔 라디오로 아침 예불을 들으며 거실에서 명상을, 평일엔 전날 싸둔 도시락과 손가방을 챙겨 출근을 했다.
다섯시 사십이분 열차를 타기 위해 매일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파리한 형광등 아래 비슷한 얼굴들과 함께 열차를 기다렸다. 새벽을 여는 노동자들의 안색은 수배 전단 속 몽타주가 떠오를 만큼 험악했다. 그녀는 매일같이 마주치는 이름 모를 동지들에게 내심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스크린 도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늘 놀랍도록 무심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열차를 탄 후엔 노약자석에 앉아 뇌 인지력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게임을 했다. 같은 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뒤집어 맞추는 게임으로, 그녀의 기록은 육십대 상위 10% 아래로 떨어져본 적이 없었다. 부지런히 눈과 손을 움직이다보면 어느새 삼십 분이 훌쩍 지나갔다. 광화문역 정차 안내 방송이 나오기 시작하면 내릴 준비를 했다. 뒤에 누가 서는 걸 싫어하는 그녀는 늘 가장 마지막으로 내리는 승객이었다.
역사를 빠져나와서는 도심 한복판, 지상 삼십층 높이의 대형 오피스 타워로 향했다.
저층부에는 은행과 카페, 대기업 홍보관이, 그 위로는 외국계 컨설팅 회사, 로펌, IT 기업, 스타트업 등이 층층이 입주해 있는 건물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지나쳤을 그 건물에서, 그녀는 청소 노동자로 일했다.
청소 일을 시작한 지는 오 년. 이곳에서 일한 지는 이 년째였다.
그녀는 출근한 이래 단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그 성실함이 그녀가 가진 자부심이었다. 출근 시간보다 이십 분 빠른 여섯시 십분에 출근 체크를 한 후, 작업복으로 환복하고 보관실에서 필요한 물품을 챙겨 나오면 본격적인 일과가 시작됐다. 그녀의 구역은 본관 A동 공용 공간과 일층부터 삼층 화장실까지였다. 사람들이 출근하기 전에 로비, 엘리베이터, 복도, 화장실 청소를 모두 마쳐야 했다.
하루치의 흔적을 남김없이 닦아 누군가의 아침을 기분좋게 만드는 것. 그것이 애영의 일이었다. 그녀는 구역마다 알맞은 도구와 약품을 사용해 얼룩 한 점 보이지 않도록 완벽하게 업무를 수행했다. 육안으론 깨끗해 보이더라도 지나치지 않고 매뉴얼대로 작업을 마쳤다. 천성이 깔끔하고 꼼꼼한 탓에, 사소한 일도 대충 하는 법이 없었다. 그 융통성 없음에 답답함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지만, 막상 도움을 청할 일이 생기면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다들 그녀를 찾았다.
점심으론 휴게실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체하지 않도록 교근을 사용해 꼭꼭 씹었다. 커피도 한 잔 마셨다. 깨끗하게 양치하고 복장과 체취를 점검했다. 독한 약품 때문에 혹시라도 몸에 불쾌한 냄새가 밸까봐 항상 휴대용 스프레이 탈취제를 주머니에 넣어 다녔다.
오후엔 반장의 지시에 따라 건물을 돌며 작업을 이어나갔다. 불쾌한 얼굴로 저기요, 하고 부르는 이용자의 요청에 따라 화장실 휴지를 채워주거나 흥건해진 바닥을 닦는 것도 그녀의 몫이었다. 간혹 그녀를 정중하게 여사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늘 상대의 인중쯤에 머물러 있던 시선을 들어 눈을 맞췄다.
세시가 되면 옷을 갈아입고 퇴근 체크 후 빌딩을 나왔다. 피곤할 법도 했지만 아직 하루가 창창한 시간에 퇴근한다는 사실이 그녀의 신경을 기분좋게 깨웠다.
간소하게 장을 보고 돌아와 이른 저녁을 차렸다. 남편 주용이 당뇨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뒤로 식단에 더욱 신경을 쓰게 됐다. 잡곡을 불려 밥을 짓고, 생선을 굽고, 나물을 무쳤다. 섬유질이 풍부한 채소와 통곡물 섭취. 고지방·고탄수화물 식단 피하기. 그녀는 이 두 가지를 신념처럼 지켰다. 신념이 향하는 곳엔 인류의 원대한 꿈이 있었다. 그렇다. 무병장수였다. 다만 마냥 오래 살기만을 꿈꾸는 건 아니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었다. 그러려면 이 정도 노력은 필수라고 여겼다. 주위를 둘러보면 이만큼의 노력도 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운동도 식단도 하지 않고, 심지어 종교도 없는 사람들이. 그들은 믿을 구석이라고는 콩알만큼도 없으면서 병이 자신을 피해 가길 바랐다. 애영은 진심으로 그들의 양심과 건강을 걱정했다.
남편과 아들이랑 함께 썼던 사 인용 식탁을 이제는 혼자 차지하게 됐다. 거실 창 맞은편에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공들여 음식을 씹어 삼켰다. 익숙하고 편안한 저녁이었지만 가끔은 아들 태영이 며느리와 같이 손녀 주아를 데리고 집에 와서 이 심심한 평화를 깨주길 바라기도 했다.
저녁 외출에는 두 가지 코스가 있었다. 하나는 천변에 가서 생활 체조를 하는 것, 다른 하나는 뭉이와 산책을 나가는 것.
천변에 갈 땐 메시 재질의 분홍 조끼를 걸쳤다.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십 분 거리에 있는 천변이었다. 건널목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엔 제자리걸음을 하며 건강 박수를 쳤다. 자투리 시간도 그냥 허비하지 않았다. 손뼉을 치면 노궁혈이 자극돼서 피로 해소, 집중력 상승, 치매 예방, 스트레스 감소, 행복 호르몬 분비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고작 박수일 뿐인데.
마음 같아서는 앉아서 하루종일 손뼉만 치고 싶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천변 광장에는 늘 분홍 조끼 무리가 모여 있었다. 생활 체조 회원들이었다. 애영의 자리는 앞에서 두번째 줄. 그녀가 다가가면 몇몇 분홍 조끼들이 알은체를 했다. 그 사이에서도 그녀는 조금 특별한 존재였다. 조끼를 잘 보면 조금씩 채도가 다른데―재작년 버전은 인디언 핑크, 작년 버전은 핫핑크였다―그녀의 조끼가 자홍색이었기 때문이다. 자홍색은 생활체육사업 초기 버전 컬러로, 그 조끼를 지금까지 착용하고 있는 사람은 애영이 유일했다. 이른바 고인물 스킨인 셈이었다. 고인물답게 실력도 남달랐다. 모든 안무 레퍼토리를 꿰고 있을뿐더러―최애 곡은 싸이의 <어땠을까>와 버즈의 <겁쟁이>였다―결코 동작을 틀리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일사불란하게 몸을 흔드는 홍학 무리 속에서 홀로 우아하게 움직이며 고인물의 저력을 가감 없이 뽐냈다.
뭉이와 산책할 때는 동네를 크게 한 바퀴 돌았다. 뭉이는 흙이나 잔디보다는 포장된 길을, 강아지 친구보단 사람을 좋아했다. 열세 살 노견인 뭉이는 하얗고 부드러운 장모를 가졌는데, 왼쪽 귀부터 목까지의 색이 어둠이 쓰다듬은 듯 검었다. 특징이 뚜렷해서 데리고 나가면 바둑이라고 불리는 경우가 잦았다.
뭉이예요.
그때마다 애영은 끈질기게 교정했다. 뭉이. 바둑이가 아니라 뭉이. 그런 사소한 오류를 수정하는 일에 뿌듯함을 느꼈다.
산책을 마치면 함께 미지근한 물로 발을 닦고 말랑한 간식을 나누어 먹었다. 라디오로 불교 방송을 들으며 내일의 도시락을 싼 뒤, 씻고 자리에 눕는 시각은 대체로 저녁 아홉시. 곁에 누운 뭉이의 목덜미를 쓰다듬다보면 어느새 잠이 아득히 밀려들었다.
이것이 애영의 보통의 하루다.
그녀가 애초부터 규칙적인 사람이었던 건 아니다. 그녀는 노력하고 있었고, 그것은 세월의 무자비함에 무방비로 당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의지에 가까웠다. 침입자를 잡기 위해 덫을 설치하는 마음으로 애영은 규칙을 세웠다. 일상이 삐끗 어긋날 때를 빠르게 감지해 더 큰 혼란을 막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 견고한 규칙들이 자신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되리라, 애영은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일상은 건강하고 순조롭게 흘러가는 듯했다. 매일 밤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 오늘이 그랬듯, 아마 내일도 별문제 없을 거라고.
그런데 뭉이가 사라졌다. 현관을 나서던 애영은 신발장 옆에 덩그러니 남은 리드 줄을 집어들었다. 손으로 전해지는 감촉은 분명 익숙한데 이 낯선 기분의 정체는 무엇일까. 머릿속이 안개가 낀 듯 흐렸다. 너무 깊이 잠들었던 탓일 거라고, 애영은 자신을 달랬다.
*
그녀의 집은 복도식 아파트 팔층이었다. 뭉이는 복도에도, 엘리베이터 안에도 보이지 않았다. 설마 하는 마음에 층계참 너머로 목을 빼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아래로 뻗어 있는 격자 모양의 소용돌이가 아찔했다. 뭉이는 조심성 많은 강아지다. 길가의 배수구도 뛰어넘지 않고 돌아가는 그애가, 저 까마득한 곳으로 향했을 리 없다고 애써 마음을 다독이며 그녀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평소였다면 좀처럼 걸어서 내려갈 생각은 하지 못했을 터였다.
층마다 유모차와 자전거, 우산 꽂이와 분리수거함, 캐리어 등의 온갖 크고 작은 꾸러미들이 묘석처럼 우두커니 놓여 있었다. 아파트에서 이웃이란 존재는 그런 물건들을 통해 감각되기 마련이다. 유모차가 있는 걸 보니 아기를 키우는구나. 세발자전거와 훌라후프라니 활동성이 좋은 아이겠구나 하는 식으로.
일층에도 뭉이는 보이지 않았다. 건물 밖으로 나갔으리란 생각에 이르자 쥐어짜는 것처럼 마음이 괴로워졌다. 그녀는 일단 경비실로 가보자고 결심하고, 현관문을 열어둔 자신을 탓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태영이 어릴 적, 다세대주택에 살던 시절엔 동네 사람들 모두가 으레 현관을 열어두고 살았다. 그 시절에 문이라는 건, 닫혀 있기보다는 주로 열려 있는 것이었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집은 더더욱. 아이들이 이 집 저 집을 넘나들며 뛰어노는 바람에, 젊은 엄마들도 금세 친해져 간식이나 반찬을 들고 서로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여자들은 한쪽 다리를 세우고 동그랗게 모여 앉아 홍시를 갈라 먹으며 본처를 버리고 재혼한 탤런트를 흉보거나 옷매무새가 성긴 슈퍼 사장 험담을 했다.
먹을 것도, 욕할 것도 넘쳐나던 시절이었다. 한바탕 웃고 떠들다가도 저녁이 되면 굼실굼실 흩어지고, 다음날이면 또 삼삼오오 모여 한쪽 다리를 세우고 앉아 누군가 가져온 과일을 깎기 시작했다. 그런 일상이 매일 반복되었다. 열린 문, 저쪽에서 이쪽으로 무람없이 넘어오는 여자들. 그들의 얼굴엔 환대를 당연하게 여기는 강건한 믿음이 미소처럼 번져 있었다.
좋은 시절이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애영은 그 풍경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젊고 쾌활한 여자들의 웃음, 열린 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던 잡다하고 평화로운 소리들. 하지만 태영이 고학년이 되고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자연스럽게 열린 문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제 문으로 나고 드는 건 몸에 딸려온 먼지와 피로뿐이었다.
경비실에는 ‘순찰중’이란 팻말만 붙어 있고 아무도 없었다. 불투명한 시트지가 발린 창문 너머로 TV 불빛과 컵라면 용기가 희미하게 보였다. CCTV를 확인하려고 기다렸지만 오 분, 십 분이 지나도 경비는 돌아오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뭉이를 찾을 수 있으리란 확신이 마음속에서 조금씩 옅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