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초조한 마음으로 아파트 단지를 헤매기 시작했다. 놀이터와 재활용 분리수거장, 자전거 거치대, 화단까지. 뭉이가 갈 만한 곳을 샅샅이 살폈지만 허탕이었다. 행방을 물어볼 만한 사람도 없었다. 오늘따라 유독 단지가 텅 빈 듯했다. 그러고 보니 초여름이 시작되는 이맘때에 인근 천변에서 축제가 열리곤 했는데, 다들 축제 구경이라도 간 걸까. 이 시간이면 으레 마주치던 개 산책자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녀만 빼고 모두 꼭꼭 숨어버린 것만 같았다. 뭉이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 자신이 버림받은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태영에게 전화를 해볼까. 그래도 혼자 찾는 것보단 둘이 낫지 않을까. 태영이라면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해낼지도 모른다. 그녀로서는 결코 생각해낼 수도, 실행할 수도 없는 마법 같은 방법을. 휴대폰만 있으면 못할 게 없는 세상이니까. 하지만 그녀가 손에 쥔 건 그저 전화기에 불과한 물건이었다. 같은 기계지만 아들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제품처럼 느껴졌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휴대폰을 도로 집어넣었다.
언제부턴가 태영은 애영의 많은 부분을 불신하거나 불안해했다. 때로는 불길하다고까지 여기는 것 같았다. 그는 애영이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한다고 했다. 저녁 먹었냐는 질문에 새로 산 신발 자랑을 한다거나, 주아의 생일 선물을 고르다가 뜬금없이 트로트 가수 이야기를 꺼내는 식으로. 애영의 입장에서는 그저 떠오르는 걸 바로 말하지 않으면 까먹을 것 같아서 한 얘기일 뿐인데, 태영은 좀처럼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해서 단답형으로만 대답했더니, 이제 표현력도 떨어지고 의욕도 없는 게 이상하다며 병원에 가보자고 성화였다. 혼자 남은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은 알지만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했는데, 태영은 정말로 진지하게 이것저것 알아보는 모양이었다. 흘리듯이 주간보호센터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는가 하면, 집에 상조 카탈로그를 놓고 가기도 했다. 급하게 나가느라 깜빡 두고 간 거겠지만, 그날 밤 그녀는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홈쇼핑에서도 본 적 있는 유명 상조 회사의 고급스러운 카탈로그에는 단정한 서체로 ‘예와 정성을 다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펼치자 ‘프라임’ ‘프리미엄’ ‘노블’ 같은 상품명과 그 옆에 적힌 가격이 보였다. 프라임 400, 프리미엄 650, 노블 1000. 그냥 봐선 가격 말곤 무슨 차이인지 알기가 어려웠다.
주용이 워낙 갑작스럽게 떠난 탓에 경황없이 장례를 치렀었다. 그때 태영은 오롯이 슬퍼할 틈도 없이 장손의 역할을 다했다. 겪어보니 그것도 경험이 됐는지, 이번엔 미리 준비하려는 모양이라고 그녀는 짐작했다. 그 마음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론 씁쓸했다. 내 인생에 남은 이벤트는 이것뿐인가 싶어서.
카탈로그에는 가입시 사은품으로 가족사진 촬영권과 크루즈 여행 상품권이 제공된다고 적혀 있었다.
그 촬영과 여행에 나도 포함되는 걸까.
그녀는 거실 벽에 걸린 가족사진을 바라보았다. 벌써 십 년도 더 된 사진 속 자신은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과하게 웃고 있었다.
그날 밤 애영은 오래도록 카탈로그를 뒤적였다. 태영은 이중 어떤 상품에 가입했을까. ‘노블’은 바라지도 않고, ‘프라임’은…… 괜히 서운했다. 그럼 남은 건 ‘프리미엄’뿐인데 그 단어 앞에서 애영은 자꾸만 고꾸라질 듯한 기분을 느꼈다. 어쩐지 삶의 값어치나 격을 따지는 표현들처럼 느껴졌다.
당신의 인생은 프리미엄합니까?
되물을수록, 삶이란 것이 너무나 납작하고 볼품없이 느껴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참 열심히 살아왔는데. 남에게 폐 끼치기 싫어서 돈 한 번 빌린 적 없고,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이 편한 쪽을 택했다. 손해를 감수하기도 했다. 옳다고 믿는 쪽에 빠짐없이 투표했고, 소액이지만 기부한 적도 있다. 아름답고 의미 있는 순간을 남기는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일생의 목표라면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좋을, 빛나는 순간도 분명 있었다. 그런데도 도무지, ‘프리미엄’에는 못 미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결국 태영이 어떤 상품에 가입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그런 걸 직접 물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꼴이 우스워질 게 뻔하니. 그후로 그녀는 태영을 대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어쩐지 ‘프리미엄’다워야 할 것 같았다. 내색하진 않아도 무슨 말과 행동을 하든 하나하나 채점당하는 기분이었다. 상상 속의 태영이 빨간 색연필을 든 채 엄중한 눈으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태영에게 문단속을 제대로 못 해서 뭉이를 잃어버렸다는 말을 도무지 하고 싶지 않았다.
*
뭉이는 원래 태영의 개였다. 어릴 적부터 동물을 좋아했던 태영은 틈만 나면 강아지를 키우자고 졸라댔는데, 주용이 완강하게 반대해 아무것도 키우질 못하게 했더니 그 한을 풀려는 듯 독립하자마자 강아지를 들였다. 그게 뭉이였다.
태영한테 일이 생길 때마다 짧게 맡겨지던 뭉이는 주아가 태어난 뒤 결국 애영에게 떠맡기듯 보내졌다. 그애에게 개털 알레르기가 있다고 했다.
처음에 뭉이는 곁을 내주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태영이 곧 자기를 데려갈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 애영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애영도 갑자기 삶에 끼어든 생명체가 달갑지 않긴 마찬가지였다. 마음 주지 말자. 서로가 같은 생각인 듯했다. 행여 거실에서 마주치기라도 하면 싸우고 토라진 연인처럼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고 각자 갈 길을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뭉이가 이제껏 들어온 적 없던 애영의 방 앞에서 서성였다. 허락을 구하듯 한 발을 들이밀고 한참 눈치를 살피더니, 곁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그녀의 무릎 위에 턱을 얹었다. 긴 탐색기가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이자 무자비한 선전포고였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당신의 마음을 빼앗겠다는.
그리고 그 경고대로 뭉이는 땅따먹기 하듯 애영의 마음을 점령해나갔다. 출퇴근할 때 배웅과 마중은 기본이고, 애영이 어딜 가든 껌딱지처럼 따라다녔다. 잠깐 화장실 가는 틈도 못 참고 따라와서 애영을 당황시킬 정도였다.
산책을 나가면 작은 호위 무사처럼 애영보다 조금 앞서 걷다가, 종종 뒤를 돌아 그녀를 바라봤다. 여기까진 내가 먼저 가봤는데 안심해도 좋아! 라고 말하는 듯한 의기양양한 얼굴. 그 얼굴을 보고 있자면 웃음이 터졌다.
누가 누굴 지켜. 쪼끄만 게.
유난히 심신이 지치는 날이면 뭔가 다르다는 걸 알아챈 뭉이가 그녀의 무릎에 턱을 괴고 엎드리곤 했다. 그러면 마음 어딘가가 찌르르했다. 그게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된다는 걸 아는 듯했다.
뭉이의 맹목적인 애정과 관심을 받으며 그녀는 자신이 외로웠다는 걸 깨달았다. 하루를 성실하게 살아내도 채워지지 않던 헛헛함의 정체. 그건 외로움이었구나. 그리고 지금 이 작고 하얀 강아지가 그것을 채워주고 있구나.
결국 애영은 뭉이에게 푹 빠져버렸다. 사진첩은 자연스레 뭉이의 사진으로 도배되었고, 밖에 나가면 보고 싶고 눈앞에 있으면 별게 다 대견스러웠다. 어쩌면 그렇게 밥도 잘 먹고 똥도 잘 싸고 잠도 잘 자는지!
잠깐 쓰레기만 버리러 나갔다가 돌아와도 꼬리가 떨어져라 자신을 반기는 뭉이를 볼 때마다 애영은 생각했다. 말년에 참 드문 복을 받았다고.
어딜 가든 기회가 되면 주변에 뭉이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하기 바빴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뭉이의, 나아가 개라는 존재의 장점이 더욱 도드라졌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 오가는 이야기 속엔 언제나 인간이 빚어내는 갈등과 불화가 있었다. 우리집 아저씨가, 마누라가, 자식이 어쩌고저쩌고. 그런 얘기를 듣고 있을 때면, 애영은 포교하는 신자처럼 열렬하게 개를 전도하고 싶어져 어쩔 줄 몰랐다. 개라면 말다툼할 일도, 서로 다른 의견을 조율할 필요도 없다고. 내가 일부를 내줘도 전부를 돌려주는 존재라고. 이 세상에서 있는 그대로 나를 사랑해주는 존재는 신과 개뿐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그러니 뭉이를 잃은 지금 애영은 신에게 간절히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제발 뭉이를 찾게 해달라고.
내가 뭉이라면 어디로 갔을까.
고민하던 그녀는 평소의 산책 코스를 따라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낯선 상황에 저도 모르게 익숙한 길로 갔을지도 모르니까.
편의점을 지나 골목 입구에 다다랐다. 속도를 늦춰 주위를 샅샅이 훑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건물 틈새, 쓰레기봉투 옆 상자 더미, 무심히 열린 상가 출입문, 주차된 차의 하부까지. 겁이 많은 뭉이가 이중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만 같아서 그녀는 쭈그려앉아 이곳저곳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길 위에는 잃은 건지, 버린 건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낯선 궤도 위의 부유물처럼 떠돌고 있었다.
그때 그녀 앞으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젊은 남자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살짝 굽힌 무릎 위에 두 손을 짚은 채로. 여차하면 손을 내밀어 일으켜줄 듯한 태세였다. 그녀가 넘어졌거나 혼자 힘으론 일어설 수 없는 상태라고 생각한 듯했다. 분명 도와주려는 마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역시 이런 오해는 달갑지 않았다.
그녀가 경험한 호의는 대체로 견인의 형태로 이뤄졌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안전을 가장한 무용의 영역으로, 치워진다는 느낌으로. 평소의 애영이었다면 괜찮다며 손사래를 쳤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도와준다고 하면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도움을 청해도 모자란 지경이 아닌가. 그런데 어째서 입이 떨어지지 않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애영의 목소리가 작은 웅얼거림으로 새어 나왔다.
“내가, 개를, 잃어버려서……”
“네?”
잘 안 들리는 듯 청년이 성큼 다가섰다. 그의 그림자가 다시금 애영의 위로 겹쳐졌다. 그 좁혀진 거리만큼 기대가 커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뭉이는 낯선 곳을 헤매고 있을지 모른다. 지체하지 말자. 애영은 개를 찾고 있다고, 이름은 뭉이라고 휴대폰으로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혹시 같이 찾아줄 수 있어요?”
청년이 난처한 얼굴로 웃었다. 약속이 있어서 그건 힘들 것 같다며 민망한 듯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저만치로 물러났다. 그녀는 멀어지는 청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일으켜줄 수는 있어도 시간을 써서 함께 개를 찾아봐줄 정도의 호의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 그건 봉사지.
염치없이 너무 많은 걸 바랐다. 민망함과 쓸쓸함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그녀도 한때는 받기보다 주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그럴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일방적으로 ‘받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대체로 그녀에게 친절했다. 자리를 양보하고, 묻는 말엔 크고 또박또박하게 대답해주었으며, 무거운 짐도 선뜻 들어주는 식이었다. 처음엔 고마웠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호의가 묘한 불편함으로 다가왔다. 마치 그녀가 더이상 제 몫을 해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 같았다. 보답을 바라지 않는, 아무 대가 없는 친절. 기브만 있고 테이크는 없는 관계. 그 관계 안에서 애영은 점점 작아졌다.
한때는 그녀도 젊었다. 젊었을 적부터 꼼꼼하고 부지런했던 애영은 그 기질을 살려 뜨개방을 운영했다. 수입 원사와 직접 만든 소품을 파는 곳이었다. 실을 다루는 일은 단순하고 정직했다. 시간을 들인 만큼의 결과가 고스란히 손 위에 남으니까. 실 한 줄기가 손끝에서 모양과 쓰임을 얻어 새롭게 태어났다. 애영은 그 세계가 주는 정직한 보상이 좋았다.
애영의 뜨개방을 찾는 여자들은 비싼 원사를 휴지 쓰듯 썼다. 생산력이 무시무시해서 반나절이면 앉은자리에서 조끼며 장갑이며 가방까지 뚝딱뚝딱 만들어냈다. 대체 못 만드는 게 없던 그들은, 시간과 실만 허락된다면 국회의사당 돔 싸개도 뜰 수 있다며 진담인지 농담인지 모를 소리를 하곤 했다. 아마 주용이 빚까지 내가며 코인인지 뭔지를 사들이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직도 그 폭신한 왕국의 주인으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보이지도 않는 가상의 돈 때문에 평생 모은 재산이 눈처럼 녹아 사라지는 마술 같은 일을 겪었다.
하여튼 남자들이란!
그녀는 이 한마디로 상황을 일축해버렸다. 그리고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일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고 부르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갔다. 그러나 삶은 파도처럼 들이쳤고, 물살이 바뀔 때마다 그녀의 손에 쥔 것도 달라졌다. 코바늘과 실에서 칼과 냄비로, 보험 상품 설명서에서 페인트 롤러와 풀 먹인 붓으로. 그녀가 쥔 것들은 고스란히 물살을 가르는 노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