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주를 영주라고 부른다. 영주는 영주. 이영주. 영주를 떠올리면 많은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잘되지 않는다. 영주는 그저 나와 한때를 같이 보낸 사람일 뿐이고, 이제 나에게 더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우리는 언젠가 눈 속에 갇힌 적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헤어져 두 번 다시 만나지 않았다. 온통 눈으로 가득한 곳이 보고 싶다는 영주의 말에 무리해서 간 곳이었다. 이륜구동인 차는 눈이 쌓인 길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보닛 위로 고개를 내밀자 아래가 새하얬다. 차 안에서도 눈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바퀴가 몇 번이고 헛돌았다. 영주는 조수석에 앉아 고개를 힘없이 기울이고 있었다. 정오가 조금 지난 무렵이었다.
“……왜?”
한참 후에 영주가 다시 물었다.
“왜?”
“더는 못 가.”
이게 끝이야. 나는 우리 앞에 놓인, 숲으로 들어가는 오르막길을 보며 말했다. 검은빛을 띤 앙상한 나무들이 일제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쓸쓸하고 황량한 곳이었다. 오랜 시간 아무도 찾지 않은 곳 같았다. 아주 오랫동안. 아무도. 나는 영주가 기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영주는 한여름 날 길 한복판에 서 있었다. 뉴스에서는 사십 년 만의 폭염이라는 보도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가만히 있어도 미칠 것 같은 더위가 계속됐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창밖을 내다보면 검은 아스팔트 위로 끊임없이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를 볼 수 있었다.
“김우진.”
점심시간이 되어 사람들과 함께 횡단보도 앞에 있는 파라솔 아래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불쑥 영주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키가 작고 얼굴이 까무잡잡했다. 얼굴은 나이가 들어 보였는데 양산을 쥐고 있는 작은 손이나 굽은 등 때문에 어린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묘하게 거부감이 들었다. 김우진. 비스듬히 나를 보는 눈빛이 담담하고 서늘했다. “누구세요” 하고 묻자, 영주는 그저 “영주” 하고 대답했다. 이영주. 그리고 잠깐이지만 빤히 나를 바라보았다. 화를 내거나 슬퍼하는 기색도 없었다. 오히려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으로 나를 보고, 차분히 대했다. 영주는 “여기서 기다릴게” 하고는 눈을 두 번 깜박였다. 때마침 신호가 바뀌어서 나는 사람들과 함께 길을 건넜다.
“누구예요?”
누군가 묻자 나는 “고등학교 친구예요”라고 답했다. 그리고 사람들과 웃으며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와 사무실에서 커피를 내려 마셨다. 비상구 창가에 아무도 모르게 숨겨둔 담배도 찾아 피웠다. 다시 업무를 보기 위해 자리로 돌아와 앉았을 때 나는 영주를 생각했다. 영주는 다른 어떤 곳도 아닌 바로 그 자리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고개를 든 채 내가 어디쯤 있는지 노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퇴근 후에 건널목으로 가보니 영주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우리는 근처 스타벅스로 갔다. 영주와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또 요즘 계속되는 무더위에 관해 드문드문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둘 다 마흔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았고 함께 살던 동물이 얼마 전 죽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영주의 고양이는 장폐색을 앓다 죽었다. 영주는 고양이가 온몸을 떨다 숨이 멎고, 딱딱하게 굳어갈 때까지 지켜보았다고 했다.
“힘들었겠다.”
“별로.”
영주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더는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침묵이 흘렀다. 한참 후 영주는 “네 글을 읽었어”라고 말했다. 나는 소설을 썼다. 육 년 전 작은 신문사를 통해 등단했고 그해에 주목을 조금 받았지만, 그후로는 청탁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엑스나 인스타그램, 블로그에 내 소설을 몇 문장 인용하는 사람들이 있긴 했다. 아마 영주가 나를 찾게 된 것도 그런 경로를 통해서가 아닐까 하고 짐작했지만, 내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대화를 끝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조심히 가. 응. 영주는 어두컴컴한 거리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을 남기지도, 내 연락처를 묻지도 않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물로 몸을 씻었다. 그리고 미지근한 물로 입을 헹군 다음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면서 오래오래 영주를 생각했다. “영주, 이영주” 하고 소리 내어 이름을 불러보기도 했다. 나는 영주가 섬뜩하고 두려웠다.
영주는 다음날에도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그다음날에도. 영주는 근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고 했다. 무엇 때문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반대로 나는 영주가 묻는 말에 꼬박꼬박 대답했다. 더는 연락하고 지내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없다는 것과 그동안 누구와 사귀고 헤어졌는지, 내 일상과 읽고 쓰는 것들에 대해 대답해주었다. 말하고 싶지 않아도 영주가 묻는 말에 자꾸만 대답하게 되었다. 영주는 묘한 데가 있었다. 집요하기도 했다.
“있잖아.”
“응.”
“그때 나 괴롭혔을 때 기분이 어땠어?”
“……”
“좋았어?”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앞만 보며 걷던 영주가 문득 멈춰 서서 나를 빤히 보았다. 나는 간신히 “그렇진 않았어” 하고 대답했다. 영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웠다. 밤이었는데도 목덜미와 반팔 아래로 드러난 팔이 끈끈했다. 영주는 목이 높은 밤색 카디건을 입고 있었지만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가로등 아래서 크고 작은 벌레들이 웅웅거리는 소리를 내며 부딪히고 있었다. 영주는 반듯하게 등을 폈다.
“나…… 죽으려고.”
영주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네 옆에서 죽으려고.”
영주는 가까이 다가와 땀으로 번들거리는 내 얼굴에 붙은 머리카락을 천천히, 하나하나 떼어주었다.
“그리고 그때.”
영주는 잠깐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내가 죽는 순간에, 네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처음으로 영주가 웃었다.
다음날 우리는 함께 저녁을 먹었다. 영주는 간장라멘 국물을 몇 번 떠먹고는 더 먹지 않았다. 밥을 다 먹은 후에는 우리집으로 갔다. 영주는 창밖의 마천루를 말없이 잠깐 보다 이내 거실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근처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아무렇게나 꺼내 읽기 시작했다. 까딱거리는 영주의 발바닥이 새카맸다.
“재미없다.”
영주는 책을 제자리에 꽂지 않고 바닥에 툭 던지며 말했다. 그리고 음악이 듣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유튜브에서 음악을 골라 핸드폰을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했다. 영주는 두 눈을 감았다. 얼핏 잠든 것처럼 보였다.
“싫어?”
한참 후 영주는 두 눈을 감은 채 물었다.
“뭐가.”
“내가 이러는 게.”
영주는 계속해서 발을 까딱거렸다.
“상관없어.”
나는 영주의 새카맣고 더러운 발이 까딱까딱 움직이는 것을 보며 대답했다. 잠시 후 영주는 발을 멈췄다. 영주는 내 소설을 읽고 싶다고 했다. 나는 빼곡히 꽂힌 책들 위로 아무렇게나 박아둔 책을 꺼내 건넸다. 그해의 등단작을 모아놓은 앤솔러지였다. 영주는 무표정한 얼굴로 천천히 책을 읽어 내려갔다.
“좋다.”
다 읽은 후 영주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내 글이 시작되는 페이지를 펼쳐 아랫배에 올려두고 “좋다” 하고 다시 중얼거렸다. 나는 영주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일전에 말했던 그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영주도 내 얼굴을 마주보았다. “어쩔 수 없지” 하고 영주는 덤덤하게 말했다. 영주는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모든 것을 알리겠다고 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그런 짓을 하고도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
“그래도…… 괜찮아?”
마치 나를 걱정하는 사람 같았다.
영주는 자신의 계획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굴었다. 자신이 아닌 제삼자의 일인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왔고, 바랐던 차에 유일하게 함께 살던 고양이가 죽자 이제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생활고에 시달린다거나 병을 앓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왜?”
영주는 눈을 크게 치켜떴다.
“그때는 나보고 죽어버리라며.”
“……”
“죽었으면 좋겠다며.”
나는 “그때는……” 하고 얼버무렸다. 나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영주의 미래에 대해, 그리고 윤리적인 문제와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영주의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조금이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도 물었다. 그리고…… 내가 그다지 유명한 작가가 아니라는 점에 대해서도 말했다.
“상관없어.”
영주는 완강했다.
“내가 원하는 건 그것뿐이야.”
죽어버리는 것. 그리고 그걸 네가 지켜보는 것. 영주의 목소리가 조금씩 떨린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어딘지 묘하게 달뜬 것처럼 느껴졌다. 영주는 서서히, 스스로 죽을 테고 나는 영주의 숨이 멎는 순간,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네가 나한테 해줄 수 있는 건 그것밖에 없어.
“사과 따위 하지 않아도 좋아. 진짜 좋아.”
영주는 느긋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