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영주는 종종 아무 이유 없이 나를 불러냈다. 영주와 나는 한밤중에 만나 말없이 대교의 끝까지 걸었다. 밥을 먹으러 가기도 했다. 영주는 밥을 먹다가도 가만히 나를 지켜보았다. 내가 무언가를 씹고, 삼키는 것을 골똘히 바라보았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영주의 시선을 모른 척했다. 밥을 먹은 후에는 집 근처 천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큰 부리로 무언가를 잡는 왜가리를 하염없이 구경하곤 했다. 검은 물 아래 정말 저 새가 먹을 것들이 있는지 궁금했다. 저기에도 살아 있는 것들이 있는데. 저 더러운 구정물 속에서도 우글거리는 살아 있는 것들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영주의 옆에서 가만히 숨을 내쉬었다.
영주는 자신의 계획에 대해 말해주었다. 먹는 양을 차츰 줄이다가 아무것도 먹지 않을 거라고, 물도 마시지 않을 거라고. 그때 자신의 몸이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었다. 재밌지? 응? 이게 네가 바라는 거잖아. 영주는 자신이 망가지는 과정을 묘하게 즐기는 것 같았다.
“나, 속옷도 안 갈아입었어.”
며칠이나 씻지 않았다면서 영주는 말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영주와 나를 힐끔 보았다. 영주의 몸에서 희미하게 묵은 땀냄새가 났다.
“좋아?”
나는 그런 영주를 보며 물었다.
“응, 좋아.”
전보다 조금 더 커다래진 눈으로, 아주 조금 더 야윈 얼굴로 영주가 가만히 서 있는 새를 보며 대답했다.
나는 영주가 끔찍하고 징그러웠다. 새카만 두 눈, 작은 몸과 그 몸에서 풍기는 냄새, 언뜻 손이나 어깨가 닿을 때 느껴지는 거친 살갗이 싫었다. 어쩌다 영주의 손이 내 몸에 닿으면 며칠이고 그 감촉이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았다. 영주가 계속해서 내 팔을 꼭 그러쥐고 있는 것 같았다. 영주가 뿜어내는 묘함. 그 달뜬 기운.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나는 언제나 영주의 옆에, 영주와 함께 있었다.
“왜 나야?”
나는 조심스럽게 영주에게 물었다. 그때 나만 그랬던 게 아니었는데. 아이들 모두가 영주를 싫어했다. 영주를 무릎 꿇린 채 영주의 머리 위로 침을 뱉은 사람은 화영이었다. 눈떠. 화영은 똑바로 눈을 치켜뜨는 영주를 향해 다시 침을 뱉었다.
“나는 네가 좋아.”
“뭐래.”
나는 가볍게 웃었다. 영주도 따라 웃었다.
“너는…… 글을 쓰니까.”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러니까…… 너는 알 것 같았어. 그런 건 아무나 쓰는 게 아니잖아.
“내가 왜 이걸 바라는지.”
“……”
“진짜 얼마나 바랐는지……”
나는 모른다고 하고 싶었다. 영주의 마음에 대해 알 수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영주가 메말라가다 결국 숨이 끊어지는 모습 따위 보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왜, 그게 뭔데, 그게 뭐라고. 정말 알고 싶지도,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밉지?”
“……”
“많이 밉지?”
나는 영주가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징그럽고 소름 끼친다고 생각했다. 응. 나는 무서워. 그냥 네가 무서워. 많이. 정말 많이. 하지만 이상하게 목이 메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려다 작은 목소리로 “아니” 하고 대답했다. 후회했다. 영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영주는 아주 천천히 야위어갔다. 조금씩 먹는 양을 줄여가고 있어서인지, 영주가 입을 열 때면 단내가 났다. 따뜻하달까, 영주의 쿰쿰한 입냄새를 맡으면 저절로 침이 고였다. 이상했다. 조금씩 말라가는 영주를 보면 무언가를 먹고 싶었다. 영주가 보는 앞에서 무언가를 씹고, 바닥이 보일 때까지 들이켜고 싶었다. 그러다가도 영주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어느새 나는 영주가 없을 때도 영주를 생각하고 있었다. 영주는 물을 마신다. 영주는 망설이다가 무언가를 아주 조금 떼어먹는다. 아니, 다시 뱉는다. 영주. 영주. 이영주. 영주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했다. 차라리 그때처럼 영주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다. 그만해. 이제 다 그만해. 지금이라도 영주에게 달려가 모든 걸 그만하자고, 영주를 잡고 흔들며 말하고 싶었다. 무슨 짓을 해서든 영주의 마음을 돌려놓고 싶었다. 적의와 슬픔. 나는 하루종일 끊임없이 영주를 생각하다…… 서서히 지쳐갔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영주가 바라던 게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 바로 이것. 언제나 자기를 생각하고, 떠올리고, 괴로워하는 것. 그래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찾아온 게 아닐까.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이렇게 괴로워할까? 과연…… 그럴까. 나는 점점 사나운 마음이 되어갔다. 그래, 영주는 영주지. 이게 바로 영주. 끔찍하고 소름 끼치는…… 나는 영주를 떠올리며 몸서리쳤다.
그 이후로 나는 영주를 피했다. 밤늦게 오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보자고 해도 더는 만나지 않았다. 함께 갔던 곳에도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바빠? ……아니. 볼래? ……아니. 영주는 초조해했다. 내 기분과 의중을 살피다 풀이 죽은 기색을 보였다. 화를 내기도 했다. 결국 처음 재회했을 때처럼 영주는 다시 나를 찾아왔다. 나는 못 본 척 지나쳐 길을 건넜다. 나를 보는 영주의 시선이 느껴졌다.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 영주는 다음날에도, 그다음날에도 그곳에 있었다. 미칠 듯한 더위였다. 나는 그대로 영주를 지나쳐 회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창가로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바깥의 열기가 전해졌다. 수많은 사람 중에서 곧바로 영주를 알아보았다. 영주는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결국 나는 아래로 내려갔다. 멀리서 영주가 나를 보고 희미하게 웃었다. 영주는 화단 앞 벤치에 앉은 채 힘없이 한 손을 들었다. 양산을 들고 있지도, 손으로 햇볕을 가리지도 않았다. 나는 영주의 옆에 앉았다.
“이제 그만 가.”
“……”
“응?”
“잠시만.”
영주는 힘이 부치는지 눈을 감은 채 숨을 내쉬었다. 영주가 숨을 쉴 때마다 나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맡자 영주가 또렷이 내 옆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영주, 이게 바로 영주.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영주가 무언가를 쥐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은 벤치에 달린 철제 손잡이였다. 전체적으로 불그죽죽하고 군데군데 회색빛 칠이 남아 있었다. 손으로 쥐는 부분에는 넝쿨무늬가 어지럽게 새겨졌고 끝은 쇠공처럼 뭉툭했다. 한눈에 봐도 오랜 시간 동안 바깥에서 열을 받아 뜨거울 것 같았다. 닿는 순간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영주는 그것을 지그시 잡고 있었다. 오랜 시간 햇볕에 달궈진 그것을 움켜쥔 채 견디고 있었다.
“놔.”
“싫어.”
영주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놔. 싫어. 영주는 완강했다. 나는 애원했다.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하지만 영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
영주는 속삭이듯 물었다.
“왜 그래야 하는데.”
영주는 진심으로 묻고 있었다.
내가 망가지는 것.
서서히 이렇게…… 좋지 않아?
영주는 땀이 밴 얼굴로 나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
영주는 여름을 넘겼다. 그리고 가을도.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자 더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마시지도 않았다. 영주는 대부분의 시간을 잠을 자며 보냈다. 영주의 집에 가면 곤히 자고 있는 영주를 볼 수 있었다. 야위었다고 생각하다가도 어떻게 보면 그대로인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왔어? 응. 거기 있어? 응. 영주는 눈을 감은 채 물었다. 그러다 기운이 나면 일어나 창밖을 구경했다. 문득 영주가 나들이를 가자고 했다.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여기 말고 정말 온통 눈으로 가득한 곳에 가서 실컷 눈을 보고 오자고 했다. 나는 망설이다 그러자고 대답했다.
나는 영주가 이끄는 대로 차를 몰았다. 영주의 차는 낡았지만 그럭저럭 쓸 만했다. 영주가 가자고 한 곳은 처음 듣는 강원도의 한 지역이었다. 영주는 꾸벅꾸벅 졸다가도 문득 눈을 떠 여기가 어디쯤인지 묻고, 방향을 바로잡아주었다. 여기가 아니야. 좀더. 좀더 들어가야 해. 묵묵히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은 야트막한 산에 딸린 숲의 초입이었는데, 정말 끝없이 새하얀 곳이었다. 문득 영주가 어떻게 이런 곳을 알게 됐나 궁금했다. 영주는 다시 졸고 있었다. 나는 영주를 깨우지 않고 계속 달렸다. 어느 순간 차바퀴가 헛돌기 시작했다. 아주 잠시, 라고 생각했는데, 차가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이 녹고 다시 얼기를 반복했는지 길이 꽁꽁 얼어 있었다. 이게 끝이었다. 그렇게 영주와 나는 사방이 하얀 설원에 고립되어버렸다.
나는 히터의 온도를 높였다. 우듬지 위로 해가 이쪽을 향해 있었다. 눈[目]이 시리다고 생각하면서도 눈밭을 비추는 볕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편안하고 적막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렇게 가만히 숨만 내쉬고 있는 건 아주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히터 탓에 창이 뿌옇게 서리로 뒤덮였다. 하. 나는 가볍게 입김을 불었다. 손을 내밀어 창을 닦았다. 소스라치게 차가웠다. 영주는 입을 벌린 채 가볍게 코를 골고 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영주의 목에 찬기가 남은 손을 가져다댔다.
“아.”
“일어나.”
영주가 힘겹게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디지.
“눈 보고 싶다며. 봐야지.”
영주는 다시 천천히 눈을 감고는 입술을 달싹거리며 중얼거렸다. 응, 봐야지. 영주는 차 문을 열고 힘겹게 내렸다. 나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맑고 쌀쌀했다. 얼굴에 날카로울 정도로 시린 기운이 닿았다. 나는 차를 빙 둘러서 영주에게로 갔다. 걸을 때마다 눈 속으로 발이 푹푹 빠졌다. 입고 있던 청바지가 축축해졌다. 영주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힘들어?”
“아니.”
하지만 영주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기다렸다. 한참 후 영주가 끙차 소리와 함께 발을 내디뎠다. 온통 새하얀 망망대해 같았다. 그래도 영주는 어딘가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나는 말없이 영주의 뒤를 따라 걸었다. 한동안 우리가 눈을 밟는 소리만 들렸다. 재밌다. 영주가 조용히 말했다. 너는? 나도. 영주는 조금 더 걷다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영주를 기다렸다. 하지만 영주는 아무리 기다려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허리를 숙이고 눈을 한 움큼 집었다. 그리고 영주의 등을 향해 던졌다. 눈뭉치가 영주의 검은 롱패딩 위로 후드득 떨어졌다.
“아.”
영주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영주도 나를 향해 눈을 던질 줄 알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나는 성큼성큼 영주 쪽으로 다가갔다. 너도 해봐. 나는 영주의 손을 잡고 쌓여 있는 눈을 향해 이끌었다. 영주와 나는 허리를 숙이고 눈을 만졌다. 차갑고…… 어쩐지 조금 따가웠다. 나는 조금 더 깊숙이, 깊숙이 손을 넣었다. 내 손안에 있는 영주의 메마른 손이 느껴졌다. 잠시 후 우리는 눈 속에서 손을 뺐다. 영주의 손끝이 발갛게 변해 있었다. 영주는 골똘히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손에 묻은 눈이 바람에 바스스 흩어졌다.
“차갑지?”
“……모르겠어.”
영주는 담담했다. 안 차가워? 나는 영주의 손에 눈을 조금 쥐여주었다. 응. 왜? 그냥……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데. 나는 입을 다물었다.
“너 울어?”
잠시 후 영주가 물었다.
“아니.”
“그런데 왜 그래.”
영주가 웃더니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왜 그런 표정을 지어. 네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