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워.”
나는 점퍼를 벗어 영주의 무릎을 덮어주었다. 면바지 아래로 비쩍 마른 영주의 다리 윤곽이 보였다. 우리는 차 안에서 잠시 몸을 녹이기로 했다. 해가 지기 전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있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영주는 눈이 조금이라도 녹으면 차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테고 그러면 숲을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저기 올라가면 뭐가 있다고 그래? 나는 반대했지만 영주는 입을 다물었다. 그즈음 영주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의견을 들어줄 때까지 가만히 있었고, 나는 대부분 영주의 의견에 따랐다.
“나무.”
영주는 눈을 감은 채 중얼거렸다.
“나무도 보고.”
한참 후 영주가 말했다.
“그냥 보는 거지 아래를.”
정말 끝도 없이 온통 새하얀 아래를 보는 거지. 그러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아. 나는 영주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게 보고 싶을 수 있지. 그냥.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자신도 모르게. 내가 이렇게 여기 있는 것처럼. 이제는 내가 왜 영주의 옆에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왜 여기에 있을까. 왜.
“그러고 보니 네 소설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던 것 같은데.”
영주가 눈이 쌓인 우듬지를 보며 중얼거렸다.
“여자 둘이 온통 새하얀 눈밭을 뒹구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영주는 그래서 그 여자들이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왜 몰라?”
“그냥 모르겠어. 그게 끝이야.”
영주는 잠시 생각하는 것 같다가 “어렵다” 하고 중얼거렸다. 영주는 요즘도 소설을 쓰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영주는 진심으로 궁금한 것 같았다.
“어려우니까.”
나는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 말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인지, 그게 정말 정확한 말인지. 그런 게 어려워. 그래서 그냥 아무 말도 안 해.
“그렇구나.”
영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는 잠시 가만히 있었다. 입을 오물거렸다. 침을 모으고 있는 것 같았다. 영주는 고인 침을 어렵게 삼켰다.
“나는……”
순식간에 입이 말랐는지 영주는 말하기 힘들어했다.
“네가 소설을 계속 썼으면 좋겠어.”
진심이야. 영주는 속삭이듯 말했다. 그리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주 잠시 영주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이걸 원하는 만큼 너도 그걸 원하잖아. 그래서 이렇게 내 옆에 있는 거잖아.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영주와 내가 닮은 것 같았다. 까맣고 마른 몸에 움푹 들어간 눈으로 나를 보는 영주가…… 바로 나인 것 같았다.
“우리 이야기도 써. 재밌겠다.”
영주가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바람이 불었다. 나무들이 하나같이 우르르 흔들리고 있었다. 무섭다. 그러게. 영주는 무섭다고 말하면서도 무표정했다. 귀를 가르는 날카로운 바람소리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해가 산 뒤로 넘어가는 바람에 조금 더 추워진 것 같았다. 주위가 조금 어두워졌다. 황량하고 쓸쓸한 곳이었다. 이곳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겠지. 아무도. 히터의 온도 때문에 차 안이 조금 답답했다. 나는 페달을 밟았다. 바퀴가 헛돌았다. 전보다 세게. 더 세게. 분명히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앞으로는 못 가도 후진을 해서 차를 뺄 수 있을 것이다. 영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조금만 더. 나는 망설이다 핸들에서 손을 뗐다.
“덥다.”
영주의 요청대로 히터를 끄자, 창밖이 조금씩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애써 녹였는데. 내가 안타까워하자, 영주는 이편이 더 좋다고 했다. 봐봐. 더 잘 보이잖아. 차 앞의 산과 나무들, 그 위로 쌓인 눈. 아까 보았던 풍경이 조금씩 더 깨끗하게 보였다. 멀리 있는 나무들이 조금씩 조금씩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더워.”
“히터 껐는데, 아직도?”
“그래도 더워.”
영주는 너무 추운 건지, 더운 건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영주는 가끔 혼란스러워했다. 자신이 지금 졸린 건지, 아닌지. 배가 고픈 건지, 조금도 고프지 않은 건지. 아무것도 구분할 수 없다고 했다. 이따금 집에 있으면서도 여기가 어디지, 하고 중얼거렸다. 모든 감각이 뒤죽박죽인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더워, 더운 것 같아. 영주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답답하다고 했다. 내가 말릴 틈도 없이 영주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성큼성큼 저멀리까지 걸어갔다. 영주의 발이 눈 속에 푹푹 빠졌다. 하지만 영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마치 검은 옷이 떠다니는 것 같았다.
“이영주!”
영주는 내가 부르는 소리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치 거기에 뭐가 있는 것처럼, 꼭 그곳에 가야만 하는 것처럼 빠른 걸음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영주는 계속해서 성큼성큼 나아가다 마침내 멈췄다. 영주는 허리를 숙이고 숨을 고르는 듯했다. 습하. 멀리서도 귓가에 영주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귓가에 따뜻하고 축축한 숨도 닿는 것 같았다. 시원해. 조금 살 것 같아. 영주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오랫동안 영주는 제자리에 선 채 가만히 있었다. 한참 후 영주는 주섬주섬 옷을 벗기 시작했다. 검고 무거운 패딩을 벗었다. 모자를 벗어던졌다. 힘겹게 발을 들어올리더니 운동화도 벗었다. 그리고 니트를 벗었다. 바지도 천천히 벗더니 아무렇게나 던져두었다. 위의 속옷을 벗었다. 영주는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팬티를 한 발, 한 발 벗었다. 멀리서 영주의 가무잡잡하고 작은 엉덩이가 보였다. 영주는 뒤돈 채 서 있었다. 마침내 영주는 이쪽을 향해 곧게 섰다. 영주의 메마른 몸이 보였다. 물기 하나 없는 퍼석퍼석하고 거친 몸. 영주의 갸름한 얼굴 아래로 가는 목과 둥근 어깨가 있었다. 갈비뼈들의 윤곽이 드러난 가슴이 있었다. 영주가 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이 부풀고 다시 낮아졌다. 습하. 영주의 주변으로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졌다. 영주는 두 손으로 자신의 아래를 가리고 있다가 천천히 두 팔을 벌렸다. 곧은 팔과 마르고 죽 뻗은, 하지만 어딘지 살짝 굽은 다리. 그리고 영주의 몸 군데군데에는 검은 반점 같은 흉터들이 있었다. 짙거나 옅은 무수한 흉터들. 어떤 흔적들. 그것은 입 같아 보이기도 했다. 무수한 입이 뻐끔거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검은 구멍들 같아 보이기도 했다. 흉측하고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어딘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는 것 같았다.
나무 한 그루가 이쪽을 보고 있었다.
영주는 벌거벗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담담한 얼굴이었다. 그래, 저것이 영주. 이영주. 차마 두 눈을 뜨고 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오래오래 영주의 몸을 보았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조금도 남김없이. 그것을 봐야 할 것 같았다. 기억해야 할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영주는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영주의 표정은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저 고요했다. 나는 두 눈을 감고 싶었다. 끔찍하고…… 고통스러웠다. 역하기도 했다. 나는 숨을 참고 영주를 보았다. 영주도 나를 보았다.
“시원하고 좋았어.”
영주는 계속해서 몸을 떨었다. 그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옷을 입고 무릎 위에 내 옷을 덮었다. 나는 말없이 영주의 발을, 그리고 손을 살폈다. 히터를 다시 켰다. 창밖이 뿌옇게 보였다. 아직 해가 있었다. 해가 지면서 주위가 조금씩 노랗게 변해가는 것을 느꼈다. 영주는 부들부들 떨다 잠잠해졌다 다시 온몸을 떨기를 반복했다.
“좋아?”
내 말에 영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좀 좋아? 시원해?”
“응. 이제 좀 좋아. 살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면서 영주는 웃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히터 바람을 조금 더 영주 쪽에 맞춰주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졸려.”
“조금 자.”
나는 영주의 턱 아래까지 옷을 끌어올려주었다. 영주가 눈을 감았다.
“어땠어?”
“뭐가.”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뭐가. 영주도 무표정했다. 그냥…… 어땠어? 나는 영주가 어떤 말이든 듣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뭐든. 미안하다는 말이든 뭐든. 나는 입을 다물었다. 영주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고 싶은 말 없어?”
나는 눈을 감고 있는 영주를 빤히 쳐다보았다.
“응.”
“정말?”
“응.”
하기 싫어. 하고 싶지도 않아. 그냥…… 할말이 없어.
내 말에도 영주는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할말이 없어. 도저히.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그 어떤 말도. 내가 하는 무슨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게 뭐. 그게 어떻다고.
“그래.”
영주가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얼핏 잠에 든 것 같았다. “자?” 하고 묻자 “아니” 하고 대답이 돌아왔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후 다시 묻자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참 후 영주가 작은 소리로 뭐가 보이냐고 물었다. 나는 밖을 바라보았다. 아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해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넘어가 있었다. 조금 더 있으면 완전히 어두워질 것이다. 나는 지금 눈이 내린다고 말했다. 눈이 내리고 있어. 많이. 눈이 시릴 정도로. 새하얗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영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나는 차문을 열고 나왔다. 바람이 불지 않았다. 공기가 차갑고 깨끗했다. 발을 뻗자 다시 푹 하고 눈에 파묻혔다. 몸이 휘청거렸다. 나는 다시 무게중심을 바로잡았다. 후. 하. 내가 숨을 내뱉을 때마다 희미하게 쿰쿰한 냄새가 났다. 나는 앞만 보고 걸었다. 눈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고요하고 쓸쓸한 곳이었다. 눈을 밟으며 나는 뽀드득거리는 소리와 뜨겁고 텁텁한 숨을 내뱉는 소리만이 들렸다.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다시 발이 깊게 푹 빠졌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조금 더 있으면 주변이 어둑해질 테고 그러면 길을 잃을 수도 있었다. 얼굴이 점점 붉게 달아올랐다. 뜨거웠다. 땀이 흘렀다. 이렇게 춥고 서늘한데, 땀이 흘러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그저 기침 섞인 나쁜 숨만을 뱉을 수 있었다. 주변이 부옇게 보였다. 한참을 앞만 보고 걸었다. 어디로 가든 그곳에서 조금 더 멀어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조금이라도. 그러다 나는 앞으로 고꾸라졌다. 퍽 하고 눈이 쌓인 길에 그대로 얼굴을 박았다. 나는 눈구덩이에 얼굴을 파묻고 버둥거렸다. 일어나야 했는데, 잘 일어나지지 않았다. 한 마리 뒤집힌 벌레라도 된 듯 온 힘을 다해 온몸을 버둥거렸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얼굴을 파묻고 입을 벌린 채 울고 있었다. 울컥울컥 차가운 것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뱉을 수 없었다. 이상했다. 눈 속에서 버둥거리는 몸짓은 느껴지는데, 울음소리는 조금도 들리지 않았다. 아주 조금도.
아주 가끔 그 일에 대해 써보려고 할 때가 있다. 혼자 있는 밤이면 영주를 생각하고, 영주를 생각하면 섬뜩하고 두렵다. 영주는 아직 그곳에 있는 것 같은데, 영주에 대해 어떤 말을, 그냥 뭐든 아무 말이나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말을 잃어버렸다. 어쩌면 영원히. 이제 아무것도 쓸 수 없겠다는 예감에 사로잡힌 채 노트북 화면 속 깜박이는 검은 커서만 바라보고 있다. 어쩌면 영주는 이것을 바랐을까. 바로 이것. 이것이 영주의 복수였을까. 영주는 나를 조금은 좋아했을까. 나는 네가 좋아. 계속 글을 써. 좋다. 영주를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그저 무엇이든 말하고 싶다. 단 한마디라도. 그럴 때마다 나는 입을 벌린 채 소리 없이 운다.
나는 영주를 영주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