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대마법사 에시이르의 은퇴식(1)

두 눈을 감아 니키 황은 키스를 받아들였다. 침대에 앉은 니키의 입술 가득 부드러움이 젖어 넘칠 동안 옆자리에서는 사랑하는 망드외가 잠들어 있었다. 밤을 이끌고 천장에서 내려온 듯이 어두운 벽에 반사되는 신음 귓바퀴 좇아 나선으로 엉키는 혀와 침의 덩어리처럼 입안 끝까지 벗겨내는 살냄새가 두 눈알을 스칠 때마다 액체가 흐르는 옆자리에서는 사랑하는 망드외가 베게 위에 눈을 감아 연약한 코골음 이으며 꿈에 봉인되고 있었다.

 

햇빛만큼 빌딩들 ‘내 코트 입고 나갔어?’ 번져오는 전철 안에 기대서서 ‘어제도 혼자 부엌에 앉아 있는 꿈을 꿨어’ 니키는 망드외가 보내오는 문자 읽으며 ‘누가 닦아놓았는지 상아색 타일 벽이 깨끗하고’ ‘커튼을 바라보면 커튼이 흔들리고 있었어’ ‘나도 있었어?’ ‘너는 보이지 않았어’ 시청역 플랫폼에 내려 다시 반대 방향으로 되돌아가는 방향의 전철을 기다리고 ‘그러다 베란다의 천장을 거닐며 눈알이 세 개인 고양이가 걸어들어왔어’ 망드외가 꿈 이야기를 보내올 동안 니키는 접어둔 책을 펼쳤다. 리투아니아의 트럭 운전수가 주인공인 소설이었는데 니키가 추적하고 있는 자가 지난 260년간 출판한 책 중 유일하게 일인칭으로 쓰인 소설이었다. ‘빗속에서 뒷모습의 두 남자가 담배를 나눠 피우고 있었다. 어깨 해진 양복 사이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처럼 나는 살아 있었다. 일 초 일 초마다 과거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을 위안삼아 나는 숨을 쉬었다.’ 문장 너머 전철이 도착해 문이 열리면 니키는 다시 네 정거장을 더 지나 되돌아가고 ‘거꾸로 천장을 걸어오던 고양이가 두 발로 서서 내려오더니 내 무릎에 기대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했어’ 또 내려 반대 방향으로 일곱 정거장, 되돌아 다섯 정거장 좀전과 같은 창밖의 빌딩들 햇빛들, 다른 노선으로 갈아타 발소리 공사 소음 목소리. 세 정거장을 더, 또 일곱 정거장 니키는 책을 덮고 노약자 좌석에 붙은 포스터 안의 광고모델과 눈을 마주친 채 일 초 이 초 삼 초 또다시 시청역에 도착해 문이 열리자 아까와 달리 아무도 보이지 않는 플랫폼, 깨끗한 유리 천장에서 풍경 없이 숲냄새 풍겨오는 아케이드 홀로 지나 걸을수록 오래되어 낡아져가는 텅 빈 기차역의 에스컬레이터 오르면 니키의 정면 벽 가득 푸른 휘장이 펼쳐진 기사단 로비가 나타났다.

 

저 높은 기둥 끝 여러 곡선으로 천장 장엄하게 펼쳐지는 보자르 양식의 중앙홀에 에시이르의 은퇴식을 위해 소집된 기사단원들이 모여 있었다. 부단장 리지은과 벤지앙이 개회사 원고를 수정하는 동시에 섭외 담당자들로부터 걸려오는 전화 받고 있었고 투엉, 즈, 스는 탁상 위에 평면도를 펼쳐놓곤 에시이르 은퇴식 당일 경비병들의 동선 체크했다.

—페라리가 또 리타이어했던데

—동지.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 돼. 80년간 경주차만 만들어온 팀이 어떻게 음료수 만드는 놈들한테 맨날 발리는 거지?

—300년 동안 소설을 발표했지만 한 번도 중쇄를 못 찍은 자도 있어

캔버스 펼쳐 3층 높이의 중앙 계단 오르며 고바야시는 은퇴식에 쓰일 장식들 스케치하고 니키는 홀 안에 퍼지는 소리의 잔향을 지켜봤다. 추적은 잘되고 있어? 고바야시의 질문에 니키는 어깨 슬쩍 들어올려 노력이야 하고 있긴 한데 작은 한숨, 층계 위로 떠오르는 먼지 멀리 관현악단이 걸어들어오는 발소리 두 가지의 색채처럼. 7년 전, 당시 수색조장이었던 리지은이 콘스탄차 해안가에서 다크 엘프의 두 귀를 찾아냈지만, 자신의 손아귀로 두 귀를 뜯어내고 사라진 다크 엘프의 흔적은 더이상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러다 2년 전, 니키가 지난 300여 년간 남몰래 이름을 바꿔가며 소설을 출판하고 있는 한 명의 소설가를 찾아냈는데 니키는 번역자 없이 십여 개의 언어로 소설을 써내는 이 작가가 각기 다른 언어들로 적은 문장에 동일하게 나타나는 비문의 형식, 상징을 다루는 습관과 이따금 돌출되는 탈신체적 시선에게서 다크 엘프라 의심되는 정황을 발견해 리지은에게 보고했고, 마침 부단장으로 취임하게 된 리지은에게 추적 권한을 전면 양도받았다. 천장 근처 유리창에서 햇빛이 아픈 새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입구에 다다라 빛 앞에 멈춰 서 있던 관현악단이 투엉의 안내 따라 리허설 연습실로 이동했다. 추가 지원 요청하려면 미리 은퇴식 전에 해둬. 고바야시가 캔버스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스케치해둔 천 장식을 빼내자 손짓대로 천장 높이 날아올라 늘어뜨리며 풍성히 이어지는 시폰 천들 커다랗고 우아한 에시이르가 공식적으로 은퇴한 그 순간부터 듣도 보도 못한 지옥이 쳐들어올 테니까. 니키는 고바야시가 입고 있는 페라리 팬 유니폼을 지켜보며, 벌써 두 달째 새벽마다 니키를 찾아와 입술을 벌려 니키의 성기를 삼켜내던 악마의 피부가 무슨 색이었는지 떠올렸다. 서로의 조여짐으로 오르가즘이 절정에 이르는 악마의 신음을 따라 니키의 몸안에서 끝없이 솟아오르던 피가 마지막 한 순간 온 모공 바깥으로 달콤하게 쏟아지는 느낌을 되뇌며, 서큐버스도 아닌 이 악마는 누구인지 왜 니키를 찾아온 것인지 어떻게 결계를 열고 침실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인지 땀인지 피인지 질액인지 액체로 흠뻑 젖은 니키의 알몸 옆에서 꿈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망드외의 숨소리 새근새근 계단을 내려가는 고바야시의 발걸음 위로 시폰 천과 바람의 미세한 뒤틀림, 속삭거림 성가대의 말소리와 관현악단의 악기 가방들 흔들리고 부딪치는 소리 쌓여가는 가운데 저기 멀리서 오래된 경적이 기차역으로 110년 전의 기차를 이끌고 들어오고 있었다.

 

커튼 부풀어오르면 속눈썹 안쪽에서 퍼져오르는 망드외의 파란 눈동자. ‘이름이 버려진 해안가의 주유소에서 죽은 개를 만났다. 나는 개의 영혼을 볼 수 있었고 사유를 잃은 개의 어리둥절함을 느낄 수 있었지만 죽은 개를 돌볼 줄은 몰랐다. 주유소에서 우리는 서로를 응시했다. 인간을 시도하듯이. 주유를 마치고서 다시 트럭에 올라타기 전에 나는 잠시 서 있었다. 혹여나 개의 영혼이 트럭 안으로 뛰어들어오진 않을지, 기대를 부정하면서 우리가 함께 도로 위에서 지내는 생각을 물리치면서 개의 영혼은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나를 올려다봤다. 슬픔보다 높이 바다가 밀려오자, 바다가 데려온 시간에게서 개의 시체 냄새가 풍겼다. 나와 같은’ 부엌에 앉아 책을 읽던 니키는 고개를 들었다.

—느껴져?

—미안 뭐라고 했어?

—봄이 쳐들어오고 있어

그라인더 쥐고 일어서서 치즈를 갈고 있는 망드외 뒤로 베란다가 커튼만큼 펄럭이고,

—병원에 연락해서 상담 좀 미리 잡아둬야겠어. 곧 환자들이 죄다 자살하고 싶어할 테니까

바람에 물드는 망드외의 곱슬머리 스쳐지나가며 니키는 유리잔에 수돗물 받아와 식탁 위에 올려두고, 휴지에 물을 적셔 망드외 앞에 놓인 재떨이에 깔아줬다.

—선물은 정했어?

—네가 말한 시계는 도저히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고 골프를 치실 것 같지도 않아

—아니면 차라리 양아치들 옷은 어때, 스카잔 같은 걸 드리면 재밌고 멋질지도 몰라

식탁에 마주앉아 그들은 바게트 몇 조각 곁들어 마늘과 베이컨 기름으로 요리한 파스타 한 접시씩을 먹었다. 단골 식당의 수석 셰프가 지역 인플루언서의 생일 파티에서 조리복을 입은 채 인플루언서의 새어머니와 그 짓을 하다 걸렸다는 이야기, 고교 동창이 신혼여행을 떠나 2년째 돌아오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 망드외의 연극단이 새로 올릴 연극 ‘신기동전기 건담W’의 원작 저작권이 가까스로 해결됐다는 이야기와 니키가 연극의 음악감독으로 추천한 신이치 아토베가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는 이야기. 노을이 식탁을 가로지르면 창틀 따라 직선 바깥으로 밀려나는 그늘을 지켜보며 망드외와 니키는 서로의 시선 경계에 희미하게 걸쳐 있는 서로의 얼굴에 마음을 기댔다. 함께 산 지 511일. 니키와 망드외는 독서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첫 모임 때 참석하지 못한 니키는 두번째 모임에서 자신의 직업이 번역가라 소개했다. 이사벨 아옌데를 읽는 세번째 모임이 끝나고 회원 전부가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던 중 망드외와 니키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간은 놀라고 약간은 어색하게 함께 술집을 나온 둘은 막차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버스 정류장까지 나란히 길을 걸었다. 실은 자신이 심각한 워크숍 중독자라고 고백하며 요즘 번역하고 있는 책은 무엇이냐 묻는 망드외의 질문에 니키는 최근에는 책이 아니라 소리를 번역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소리? 소리. 소스 얼룩진 접시 위에서 반짝이는 초파리들 헤치며 다시 그들은 망드외가 니키의 번역원 선임 원장으로 알고 있는 대마법사 에시이르의 은퇴식 선물에 대해 의논했고, 해 길어 어두워지지 않는 창에 기대서서 망드외가 담배를 꺼낼 동안 니키는 의자에 앉은 채, 종이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가 빠져나오는 소리와 담배 문 망드외의 입술 끝에서 끝없는 바다가 불타오르는 소리를 감상했다.

 

인류 최후의 대마법사 에시이르는 청나라에서 나타났다. 태어나지 않고 나타나는 일이 대마법사의 소양인 만큼 1895년, 에시이르는 지금의 홍콩 북부 신계에서 벚나무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나타났다. 흑사병이 퍼지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고 마을 주민들은 대지로부터 솟아오른 갓난아이가 저주의 징조라 생각해 아기의 사지를 갈라 마을 어귀에 묻어 방위진을 세우려 했으나, 주룽반도에서 모셔온 주술사가 영국인의 피를 받아 갈아낸 칼을 세워 에시이르의 배를 가르려는 순간, 칼을 쥔 주술사 그리고 모여 있던 마을 주민들은 모두 벚나무로 변했다. 정찰병을 통해 한겨울에 벚꽃이 핀 마을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영국군 왕립 슈롭셔 경보병 연대의 어니스트 그랜트 중장은 직접 말을 타고 마을로 향했는데 그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벚나무 위에 잠들어 있던 아기는 사라진 후였다.

 

기록실 테이블에 리지은의 조사 보고서를 올려두고서 니키는 책 펼쳐 ‘개 영혼의 주유소’ 파트를 다시 읽었다. 7년 전, 리지은이 다크 엘프의 귀를 찾아낸 해안가 주위에는 총 세 곳의 주유소가 있었는데, 니키가 추적한 바에 의하면 소설에서 등장하는 ‘개 영혼의 주유소’의 서술과는 셋 모두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니키는 지금 읽고 있는 이 소설, 트럭 운전수의 여정을 다룬 이 소설이, 다크 엘프가 혈통의 분명한 증거이자 고귀하기 그지없는 종족의 상징인 두 귀를 자기 손으로 찢어낸 이 해안가에서 시작된 것이리라 확신했다. 구할 수 있는 대로 다크 엘프가 출판한 소설 대부분을 읽은 니키는 유독 이 소설에서 사실을 느꼈다. 독서라는 행위가 늘 그렇듯이, 단순히 니키의 기분과 이 소설의 정서가 우연히 겹치면서 생긴 감각의 착시일 수도 있었으나 니키는 그런 우연에 자신이 있었다. 여기 수십 개의 필명을 가진 다크 엘프 소설가는 본인의 손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폐기하던 순간 절망의 배경에서 바다를 적시는 비처럼 풍요롭게 쏟아지는 외로움을 거부할 수 없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기사단 문양이 그려진 판초 우의를 펄럭이면서 리지은이 한쪽 무릎을 꿇어앉아 해변의 모래사장에서 다크 엘프의 귀를 파내는 모습을 떠올리며 니키는 책에 귀를 기울였다. 조금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 가까이 누군가의 숨소리가 섞여오고 창밖으로 볼보 불빛이 지나갔다. 20인치 휠이 지면을 긁고 지나갈 때, 니키는 트럭 운전석에 앉아 있는 다크 엘프의 얼굴이 보이는 것 같았다. 거의 그늘 그 자체와 같은. ‘찬성’ 리지은이 에시이르의 은퇴 선물로 스카잔을 드리자는 의견에 답신했다.

 

바람 넓은 길을 걸어가는 코스튬 플레이어들 틈에 망드외가 있었다. 나른한 걸음 위로 높이 떠다니는 웃음과 말소리 곁에서 오후에 흔들리는 옷들을 보며 망드외는 기절했다. 아스팔트에 찧어 다섯 바늘만큼 찢어진 머리를 봉합한 망드외가 응급실에서 눈을 떴을 때는 니키가 침상 옆에 앉아 있었다.

—또 꿈을 꿨어

—괜찮아?

—꿈속에서 길을 걷고 있는데 옆에 있는 친구의 어깨 옆에서 친구의 눈알에 손톱을 쑤셔넣는 악령들이 보였어

꿈이 아니라 너 실제로 길에서 쓰러졌다고 니키는 말하지 않았다. 니키는 오래전부터 망드외에게서 영기를 느꼈고 망드외의 감응력은 가끔 니키의 청각보다도 앞서 있어, 망드외가 본 환영들이 세계에 닥쳐오고 나서야 기사단이 뒤늦게 반응했던 경우도 더러 있었다.

—악령들은 얼굴이 일그러진 태아의 모습을 하고 있었어

—조금 더 쉬어

택시에서 망드외가 니키의 어깨에 고개 기대 잠들 동안 니키는 망드외의 손을 잡아줬다. 숨죽은 망드외의 머리칼 사이로 가로등 스미며 차창 밖의 색채가 변화하고 있었다. 밤이 열리고 우주가 내려오듯이 전조등 켜놓은 차들이 줄지어 나아가는 앞 차창을 바라보다, 고개 돌려 번져오르는 상가의 입구들과 각기 다른 걸음걸이의 사람들을 지켜보던 니키는 어느 순간 순식간에 눈물의 기세로 차오르는 자살 욕구를 참아냈다. 집에 도착해 망드외를 침대에 눕혀주고서 부엌에 앉아, 커튼 안으로 휘감기는 저녁을 지켜보던 니키는 다시 집을 나서 망드외가 기절했던 거리를 찾아갔다. 바람이 어지러운 음영 속에서 악령의 모습도 특별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비스듬한 나무들의 흔들림 아래 니키는 가만히 서 있었다. 길 양옆으로 흔들리는 나무들 한 그루 한 그루, 조금 더 집중하면 나무 잎사귀들에 깃든 정령의 목소리가 바람과 잎사귀마다의 속삭임을 이어내고 그렇게 재건설되어가는 시간 안에서 망드외가 땅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쓰러지는 소리 들려왔다. 니키가 망드외가 쓰러진 자리에 다가가 망드외의 시선이 향했던 곳을 향해 귀기울이자, 스러진 망드외에게 달려오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옅은 비명들 사이에서 여기의 소리가 아닌 것이 분명한 노이즈. 들어본 적 있는 소리인지, 아닌지 파악할 새 없이 너무 미세하게 나타나 차원 저편으로 사라지는 리버브. 곧 듣도 보도 못한 지옥이 쳐들어올 테니까.

—니키?

정령의 경계에서 빠져나온 니키가 균열이 감지되었던 허공에 손을 대보고 있을 때, 치카를 필두로 애니메이션 코스튬 플레이어들이 닉의 등 가까이 다가와 있어,

—누구야?

—망짱의 애인이야 인사해

치카 따라 여고생으로 보이는 코스튬 플레이어들이 고개 숙여 니키에게 인사하면 니키도 고개 숙여 서로의 눈 피하며 낯가리는 이들다운 인사를 나누고,

—회장은 괜찮아?

—덕분에. 네가 응급조치도 해줬다며. 아까 퇴원해서 지금은 집에서 쉬고 있어

치카와 코스튬 플레이어들 따라 걷다보니 밀가루 냄새 따뜻한 식당 뒷골목에 들어서서, 코스튬 플레이어들이 말보로 담배를 꺼내 피울 동안 니키는 골목의 위층에서부터 공백처럼 밤하늘을 수직으로 갈라놓는 빌딩의 모서리를 지켜보고,

—요새는 안 하지?

—뭘?

—그. 자해 예술이라고 했나

—말도 꺼내지 마. 얘네들을 봐서라도 절대 다시 하지 않아

치카와 니키는 조그맣게 웃고 떠드는 코스플레이어들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한 명은 담배 연기를 내뱉고 한 명은 저 위, 골목으로 불빛을 내리는 창 안의 방, 사람은 없이 레몬빛 조명만이 켜 있어 아무 가구도 소리도 기척과 온기, 시간조차 비어 있는 공간을 떠올리며,

—망드외도 그렇지?

—네가 더 잘 알 거야

담배 다 피운 친구들이 줄지어 만두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니키는 헤어지기 전 치카와 포옹하고 살짝 엇갈리는 고개, 주사기 멍자국과 칼로 도려내진 자국이 가득했던 두 팔 안으로 따뜻한 치카의 품, 치카의 볼, 치카의 귀, 치카의 헤어스타일 근처에서 흐느끼는 공허를 함께 눈감아냈다.

 

네르갈을 처형했으며 제8층 지옥의 문을 세 번 봉인하고, 제13층 지옥에 들어선 최초의 산 자이자, 제0세계 천사들의 제국주의적 매판에 반대하는 남반구 종족들의 비동맹 회의에서 유일하게 모두에게 중재자로 지목받았던 대마법사 에시이르에 관해 니키가 가장 흥미로워하는 소문은 에시이르가 게이 오우거들의 빅밴드를 편성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서큐버스에 홀려 남자 오우거들이 멸종 직전에 이르자, 지옥으로 쳐들어간 여성 오우거들이 악마들의 머리통과 사지를 터트리고 찢어버리며 제2층 지옥까지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을 때, 피와 분노를 뒤집어쓴 오우거들이 결국 서로를, 더 나아가 스스로의 신체까지 뜯어내며 지옥이 원료삼는 악의에 집어삼켜진 채 또다른 종, 아마 사상 최악일 악마들로 재구성되지 않게끔 에시이르는 급히 지옥으로 그들의 분노를 가라앉힐 빅밴드를 파병했는데 에시이르의 지휘로 전장에 울려퍼지던 마법과 오우거들의 싱커페이션은 후대 재즈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 성스러운 마법에 고양된 오우거들이 연주하는 그 특유의 싱커페이션, 미래의 공백을 마디 앞으로 미리 당겨옴으로써 다음 마디를 계속해서 순수한 가능성의 상태로 부풀어오르게 만드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소리들이 연주되기 이전에 미래에서 먼저 음계를 폭발시키는 리듬의 형식이 오늘날 스윙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니키는 기사단의 연줄을 통해 제3층 지옥의 행상인들을 만났으나 그 어느 악마에게서도 당시의 녹음본을 구할 수는 없었다.

 

옅은 피 냄새 비 멎은 거리에서 니키는 고개 들어올렸다. 용이 날아간 것처럼. 긁혀나간 자리에서 피가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그러나 아무 흔적 없이 개어 있는 하늘. 바라볼수록 바라보는 표정을 앗아가 저 높은 색채 속으로 빠뜨리는 하늘 향해 니키는 생각마저 잃어가며 구름을 지켜보고, 바람이 서서히 움직이고 영혼보다 커다랗고 깨끗하게 흐르던 구름 뒤에서 태양이 나타날 때, 끄트머리부터 적셔져 태양의 갈래로 갈라지는 구름 바깥으로 색소폰 소리 울려왔다. 단 한 번, 하나의 음계였으나 금속의 무겁고 뜨거운 배음이 빛에 누워 구름을 불태우고 하늘을 가로질러 나아갔다. 베개에 얼굴을 눕혀 사랑하는 망드외가 잠들어 있었다. 니키는 두 팔로 악마의 나신을 껴안으며 그날 본 하늘을 떠올렸다. 구름들, 곡선들, 정신병적으로 물들어가다 꺼멓게 꺼져버리는 하늘. 지금 그와 같은 정적 저편에서 건너온 이 이름 모를 악마와의 성교가 상상 혹은 꿈이라면, 싱커페이션, 한 손으로는 악마의 한쪽 가슴을 받쳐들어 입에 머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악마의 기다랗게 단단한 성기를 쥐어 자신의 허벅지 사이로 물리며, 두 손아귀에 넘쳐나는 흥분의 질감과 거의 온 피부 위에서 세포 단위로 진동하는 오르가슴이 단순히 가위가 눌리듯이 수면 저 아래에서 한올 한올 형체를 입으며 떠오른 꿈의 그림체일 뿐이라면, 흥분과 죄책감의 회전에 어지러움 느끼며 베개에 얼굴을 눕혀 잠든 사랑하는 망드외 옆에서 니키는 지금 이 섹스는 실제가 아닐 거라고 그저 비밀스러운 쾌감이 조금, 아주 살짝 섞인 별것 아닌 꿈 그뿐일지 모른다고, 악마가 이 땅에서 물리력을 잃은 지 벌써 37년이 되었으니 그래 꿈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해? 돌기가 너무나 아름다워 자극이 다채로운 혀가 닉의 귓속 깊이 들어서고 갑작스레 시력을 되찾은 것처럼 섹스의 선명한 체취가 눈앞의 방안, 그리고 창문에 비친 닉의 나신을 밝혀내며 악마의 목소리와 함께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