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의 집에서 쫓겨났다. 펑펑 내리는 눈이 아스팔트 바닥의 자잘한 균열들을 채우고, 조그만 함정으로 가득해진 땅 위에 캐리어를 끌며 생각했다. 원망하지 말자. 어차피 얼마 안 가 나와야 했던 집이니까. 엄밀히 말하면 쫓겨난 것도 아니잖아. “나가줄래?” 하고 물어보았을 때 순순히 알겠다고 답했고 스스로 짐을 쌌으니 말이다. 며칠 더 지내겠다고 했으면 린다도 허락했을 텐데 요청도 협상도 하지 않고 나왔으니 억울할 것 없다. 난처하지만 허공에 화를 낼 바엔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합리화하는 편이 나았고, 정처 없이 걷는 동안 바퀴가 어딘가에 박혀 콱 하고 깨졌다. 나는 힘껏 손잡이를 당겼다. 캐리어는 머리채를 잡힌 듯 달달 끌려오는데 괜히 내 몸이 휘는 듯했다. 바지 밑단에 구정물이 튀어 화끈거렸다. 차가움과 뜨거움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분주하게 걸었다.
*
나보다 스무 살 많은 나의 여자친구 린다. 우리가 단순하고 평범한 연인 사이가 되기엔 애초부터 글렀다. 린다에겐 자기보다 열 살 많은 남자친구 스티브가 있었고, 나는 내 주제와 분수를 알아서 한동안 린다가 남자를 사귀든 노인을 사귀든 관여하지 않았다. 캐나다에서 고작 1년 버티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워킹 홀리데이 비자 신분에 내 한몸 건사할 돈도 없어 무엇도 주지 못하고 받기만 하였으므로 린다에게 절대 개기지 않았다. 그저 임시보호를 받는 들개처럼 린다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린다가 출근하기 전이나 퇴근한 후에 함께 거실에 누워 장난을 치고, 린다가 잠든 사이 베란다로 나가 밤하늘에 총총 박힌 별을 구경하고…… 그게 전부였다. 린다가 내 목덜미에 키스를 퍼부으며 스티브가 선물한 향수를 자랑해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받기만 하는 사람이 더 구걸하면 벌을 받기 십상이다.
만약 린다가 약속을 지켰더라면 결코 갈등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술기운에 젖어 사랑을 맹세하고 린다의 집에서 지내기로 했을 때, 린다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스티브가 이곳에 종종 와. 난 그이 없이는 살 수 없어. 널 만난다고 해서 헤어지지 않을 거란 뜻이야. 하지만 널 배려해서…… 너무 자주 초대하지는 않을 거야.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자고 가게 할게.”
그래놓고 스티브는 매주 서너 번 꼴로 린다의 집에 나타났고 나는 소파에 앉아 린다의 수양딸인 척, 린다의 집에 세 들어 사는 가난한 유학생인 척하며 스티브가 늘어놓는 따분한 이야기를 억지로 들었다. 갓 뽑은 자동차를 주차장 벽에 박았다가 수리비로 찻값의 절반을 더 썼다는 이야기, 오랫동안 단골이었던 파인 다이닝이 문을 닫아 새로운 식당을 찾고 있다는 이야기, 처남에게 태그호이어 시계를 선물했더니 답례로 루이비통 지갑을 받았다는 이야기. 그는 전 아내와는 거의 연락하지 않지만 처남과는 여전히 가족처럼 지낸다면서 함께 골프를 치는 사진도 보여주었다. 금발 벽안의 중년 남자 둘이 잔디 위에 서 있는 사진에서 무슨 흥미를 느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린다와 관련된 이야기였다면 어디 목을 매달고 싶을 정도로 지루하지는 않았을 텐데.
“전에 여기 세 들어 살던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어요? 집주인에게 잘 보일 팁 좀 알려주세요.”
한번은 린다가 자리를 비운 사이 스티브에게 물었다. 린다가 나를 만나기 전에도 이런 식으로 스티브를 속인 적이 있나 궁금했다.
“글쎄, 내가 알기론 네가 처음이야. 린다의 집은 언제나 비어 있었어. 집세를 받아야 할 정도로 재정난인 것도 아닌데 왜 갑자기 라이프스타일에 변화를 준 건지는 잘 모르지만…… 어쩐지 알 것도 같아. 린다가 예전에 길고양이를 주워다가 키운 적이 있거든. 마이키와 진저, 발리, 버터까지 네 마리나. 세 마리가 모였을 때 이미 지출을 감당하기 어려워져서 더는 데려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공원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버터를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대. 네가 길고양이 같다는 건 아냐. 단지 린다가 마음이 따뜻하다 못해 아주 뜨거운 여자라는 거지. 옛 친구의 딸인 네가 기숙사 신청에 실패했다는 사연(린다가 지어낸 설정이다)을 들었을 때도 청춘을 낭비하며 이 비싼 토론토 도심을 떠돌게 놔둘 수 없었겠지. 전에 세 들어 살던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전에 사귀던 남자친구에 대해서는 하나 알아. 버터를 데려온 날, 그 망나니가 넌더리를 내면서 고함을 쳤대. 그만 좀 주워 와! 당신이 쓰레기 수거차야? 하고. 그래서 헤어졌다더라.”
나는 스티브가 들려준 이야기를 명심하며 린다에게 무엇도 반대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음치인 스티브가 샤워하며 흥얼거리는 소리를 잠자코 들었고, 그가 씻고 나온 화장실에서 욕조와 바닥에 산재한 그의 털을 쓸어 치웠다. 스티브가 얼마나 자주 오든 린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계속 린다의 사랑을 받으려고, 한 푼도 내지 않고 얹혀 살 수 있는 안온한 집에서 퇴거하지 않으려고 순종했다.
더 많이 원하게 되는 것과 더는 바랄 것이 없어지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사랑에 가까울까? 나는 린다를 사랑하게 될수록 고분고분한 성질을 조금씩 잃어갔다. 린다는 일부러 나를 자극하려는 것처럼 이따금 스티브와 몸을 섞으며 야릇한 신음을 냈다. 내가 방에서 멍하게 천장이나 바라보며 누워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 사랑…… 내 사랑…… 하고 끝도 없이 속삭였다. 삶기 직전의 생닭 같은 남자와 린다의 광노화한 피부가 검질기게 맞붙었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소리가 들리면 즉시 방문을 열고 들어가 방망이로 남자를 내려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가 할 수 있는 반항이라곤 스티브가 가자마자 린다의 침대에 기어들어가 보채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마다 린다는 한참이나 나를 쓰다듬으며 아주 피곤해진 몸으로도 최선을 다해 스티브와 했던 모든 행위를 나와 똑같이 나눠주었다. 공평하게 배를 맞대고 누워 잘 참고 기다렸다며 상을 주듯 입술을 맞춰주었다. 하지만 이런 생활도 두 달이 넘어가자 린다는 돌변하여 내가 다가가도 깊이 잠든 척하며 손도 잡아주지 않았다. 오늘은 할 만큼 했다며 문턱에서부터 거절하기도 했다. 린다가 나를 더는 필요로 하지 않을 때마다 집은 한 평씩 줄어드는 것 같았고 나는 스티브를 밀어내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다.
“스티브가 집에 오는 게 불편해요. 매일 자고 가는 게 신경쓰여요.”
창틀 먼지를 박박 닦던 린다가 행주를 내려놓고 팔짱을 끼며 물었다.
“난 그와 헤어지지 않을 거라고 말하지 않았어?”
“약속한 바와 다르잖아요. 집에 아주 가끔 오게 할 거라고 했잖아요.”
“지금까지 잘 지냈잖아. 왜 갑자기 불편한데?”
“항상 불편했는데 이제 못 참겠어요. 쓴 물건 다시 정리하지도 않고 린다와 너무 오래 붙어 있고 밤마다 너무 시끄럽고…… 무엇보다 그 사람 좀 의심스러워요.”
“혹시 그이가 너를 만졌니?”
린다는 정색하더니 스티브가 얼마나 ‘좋은 남자’인지 열을 내며 설명했다. 그러고는 다음날 평소보다 일찍 출근해 아침잠에 취해 있는 내게 문자를 보내왔다.
― 그렇게 불편하면 이제 슬슬 나가주면 좋겠어.
― 나도 곧 나갈 생각이었어요. 친구와 함께 집을 구할 거예요.
― 아주 잘됐네. 그 친구 집에서 지내는 편이 훨씬 편할 테니 오늘밤이나 내일 아침까지 나가줄래?
돈도 친구도 정처도 없으면서 나는 한참 씩씩거리며 짐을 쌌다. 린다를 기다렸다가 직접 열쇠를 반납하고도 싶었지만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무작정 밖으로 나가 칼바람을 맞았다. 에어비앤비 앱으로 며칠 묵을 숙소를 잡았으나 당장 그곳에 가고 싶지는 않아서 가장 가까운 버스 정거장을 지나쳐 다음 정거장까지 걸었다. 그다음 정거장, 또 다음 정거장까지 계속 걸었다. 망가진 캐리어가 달그락거려도, 바람이 얼굴을 찢을 것 같아도 내가 바보짓을 했다고 후회하지는 않았다. 가끔은 알량한 자존심이 생존보다 중요한 법이니까.
솔직히 어떻게 보아도 스티브는 괜찮은 사람이었다. 내게 몰래 접근하거나 해코지하지 않았고, 내가 한국 음식을 그리워할까봐 북창동순두부에서 찌개를 포장해 오기도 했고, 주거정책에 관심이 많아서 뉴스를 볼 때마다 노숙자들의 안위를 걱정했다. 게다가 헤어진 아내에게 매달 자녀 양육비로 3천 캐나다 달러 가까이 보낼 수 있는 재력이 있어 종종 린다를 데리고 뉴욕이나 시카고에 사나흘간 여행을 다녀 오기도 했다. 그가 린다의 사랑을 독차지하니 시샘했을 뿐이다. 스티브에 비하면 난 린다를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수거차 속 쓰레기나 다름없으니 질투심을 통제할 수 없다면 내가 린다를 떠나는 게 적절했다.
*
나는 업타운에서도 북쪽에 있는 한적한 주택단지에 사흘 동안 묵기로 했다. 양옆에 은색 송전탑들이 서로의 그림자에 모서리를 기댄 채 줄지어 서 있는 큰길을 지나 곁가지로 난 작은길로 들어서자 낡은 가로등과 박빙이 깔린 지붕들이 나타났다. 잔잔한 불빛과 사납게 날리는 눈발 사이로 걸으며 그림자에 쫓기는 사람처럼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건물을 빙 둘러 별채로 이어지는 뒷문으로 향하자 낡은 도어록이 보였다. 안내받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자 내 또래로 보이는 애들 여섯 명이 식탁에 모여 앉아 떠들고 있었다. 밀려오는 웃음소리가 너무 쩌렁쩌렁해서 한순간 귀가 먹먹해졌고, 서로에게 과자를 던지며 놀던 그들은 갑작스러운 오류처럼 등장한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새로 왔어? 너도 홍콩 사람이야?”
레게 머리 남자애가 처음 들어보는 억양으로 말을 걸었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답했다.
“아냐, 난 그냥 관광객이야. 사흘 뒤에 나갈 거야.”
실내에 입성하자 대마초 냄새가 훅 끼쳐왔다. 이 유학생 하숙집의 주인은 이곳에 반나절도 머물지 않는 게 틀림없었다.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누구에게든 숙박료를 받으려고 온갖 플랫폼에 매물을 등록해뒀을 것이다. 가정집의 탈을 쓴 민영 기숙사 겸 게스트 하우스가 깨끗할 확률은 낮았다. 설거지가 쌓인 싱크대와 묵은 양념이 그대로 굳어 있는 전자레인지 앞을 지나 배정된 방으로 향했다.
구석에 짐을 내팽개친 뒤 침대에 드러누웠다. 문 너머에선 유학생들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떠들며 호탕하게 웃었다. 벌써 린다의 집이 그리워졌다. 몇 시간 전까지 내 연인이자 집주인이었던 린다가 만약 이 집의 주인이라면, 절대로 부엌이 저 상태가 될 때까지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밤에는 한없이 조용했을 것이다. 매일 쓸고, 닦고, 창틀에 먼지가 쌓이는 것을 방관하지 않는 그 여자는…… 아마 더럽힌 범인을 색출해 일찌감치 쫓아냈을 테니까.
린다와 처음 만난 날, 린다는 바 자리에 앉아 마티니를 마시며 이렇게 말했다.
“여자에게 자주 끌리는 편은 아니지만…… 예의 바른 아시안 여자들이 좋아. 집안에서 신발을 안 신으니까. 자기 머리카락 치울 줄 알고, 밤새 놀지도 않고. 대화가 통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면 사랑하고 싶어져.”
나는 뭐라고 답했더라? 맞아요, 나 깨끗하고 절대로 밤새 놀지 않아요? 당신만 바라볼 수 있어요? 나를 사랑하세요? 미러볼에 반사된 격자무늬 빛이 분홍색 벽에 아른거리는 동안 나는 린다를 몰아붙이며 나를 예뻐하라고 강요했다. 린다의 간택을 받고 싶었다. 지낼 곳을 잃은 상태라 아무나 유혹해서 상대의 집에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믿음을 주고 사랑을 받고 싶었던 마음도 거짓은 아니다.
*
다음날 아침, 나는 벌떡 일어나 시계를 확인했다. 옆방 여자애가 꼭두새벽부터 비욘세의 노래를 진진하게 부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척 의연하게 샤워실에 들어가 뜨거운 수증기를 들이마시며 씻은 후에도 노래는 중단되지 않았고 내가 공용 부엌으로 나갈 때까지 여자애는 거의 콘서트를 연 것처럼 메들리를 이어갔다. 지난밤 내게 말을 걸었던 레게 머리는 친구의 노랫소리에 박자를 타며 턱을 흔들다가 나를 마주치자 오렌지를 내밀었다.
“너 먹어.”
You eat. 간단한 영어, 단순한 뜻, 그리고 광채가 어린 눈. 정류장 앞에 있는 상가에서 샀다고 했다. 시고 상큼한 주황색 동그라미가 내 손으로 들어왔다. 구석에 서 있던 다른 남자애는 이렇게 덧붙였다.
“간판에 태양이 그려진 마트가 있어. 홍콩 마트야. 그 상가에 홍콩 식당도 있어. 아시안 음식 많아.”
“고마워. 근데 난 어차피 모레면 떠나.”
“너 한국인 아냐? 한국은 먹는 게 제일 중요하다던데. 인사할 때도 밥 먹었냐고 묻는다며.”
그 애들은 내가 몇 살인지, 학생인지, 왜 캐나다에 있는지 따위를 전혀 묻지 않고 지레짐작한 내용을 기정사실인 것처럼 떠들며 아침식사를 해치웠다. 나는 그 애들이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는 동안 마당에서 안으로 새는 연기를 바라봤다. 문틈으로 누가 누구인지 가늠할 수 없는 실루엣들이 움직이자 그제서야 정신이 깨끗하게 차려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내 기분이 어떤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이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어쩐지 그리움에 가까운 감정이 눈알부터 턱끝까지 알알이 맺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린다가 그리운 건지 한국이 그리운 건지 아주 먼 옛날 내가 스쳤던 몇 가지 삶의 조건이나 상태가 그리운 건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그리움을 느꼈고, 그 때문에 묘하게 불쾌했다. 좀더 오래 머물렀다면 친구가 되었을 이들이 서로를 납작한 손으로 두드리며 노는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내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파동에 잔뜩 긁히는 모래 인형이 된 것 같았다.
테이블 밑엔 과자 부스러기가 수북했다. 나는 손톱으로 겨우겨우 오렌지 껍질을 깐 후 옆방 여자애가 부르는 비욘세 노래를 들으며 과육을 씹었다.
린다의 집에서 나와 첫번째로 도착한 집은 지저분하고 시끄럽지만 아주 싫진 않았다. 사람들이 서로의 영역을 마구 침범하는 곳에는 질서가 없는 대신 유머가 깃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스티브가 침범한 린다의 집은 재미도 없고 불편하기만 했을까. 아니, 왜 나는 적당히 만족하지 못했을까. 린다는 뭘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내가 친구 집에 간다는 말을 정말 믿은 건지 아니면 내게 친구도, 무엇도 없다는 걸 알면서 일부러 모질게 장단을 맞춘 건지 궁금했다.
손톱들이 껍질이 아니라 마음을 찍어 누르는 듯했다. 직접 두 발로 나왔지만 실은 내가 버려졌다는 것을 안다고, 후회된다고, 그제야 숨김없이 자기 고백을 이어갔다. 나가라는 말에 한 번도 저항하지 않은 건 실은 자존심이 상해서가 아니라 헤어짐에 제대로 맞붙기가 싫어서였다고.
이별은 행하는 게 아니라 벌어지는 것이고 나는 그런 일에 유습하지만 이별 앞에서 늘 뼈의 자리가 모두 잘못 맞춰진 듯한 기분을 느낀다. 늑골이 날개처럼 종아리를 감싸고 무릎의 관절이 심장 부근에서 삐걱거리고 복사뼈가 광대에 붙어 오르락내리락하는데도 겉으로는 멀쩡해서, 그림자는 어떻게든 사람 모양새를 갖추고 있어서 아무도 내가 망가진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사실 눈치채고 말고는 중요하지 않다. 다들 피부 아래선 이렇게 매일 재조립되고 있을 테니까. 모두 엇비슷하게 생긴 내장으로 더러운 기분을 소화하거나 벗어버리거나 하면서 사는 거겠지.
그런데도 가끔은…… 내가 특별히 슬프거나 우울하거나 외로운 게 아니라는 진실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