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당신 집의 오렌지(2)

아침 8시.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는 버스에서 창밖을 바라봤다.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이 죄다 린다의 딸과 닮아 보였다. 만난 적도 없고, 그애가 더는 어린이가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나는 린다의 딸이 쓰던 방에서 지냈고 눈을 뜰 때마다 그애의 삶을 상상했기에 이제 웬만한 어린이들이 다 그애로 보였다. 린다가 매일 딸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여주며 “참 예쁘지?” 하고는 새까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던 게 떠올랐다.

“내 딸은 날 싫어해. 잘 만나주지도 않아. 그애가 어릴 때 팬티를 억지로 벗겼거든. 피가 나는 것 같아서 확인하려고 그런 건데 걔는 그 일로 정신병이 생겼지. 넌 너희 엄마와 친하니?”

“뭐, 그럭저럭 괜찮아요.”

부모가 없지만 거짓말을 쳤다. 엄마와 친한 것도, 엄마를 싫어하는 것도 어떤 느낌인지 잘 모른다. 어릴 땐 엄마를 싫어할 수 있는 기회가 부럽기도 했지만 크면서 그건 엄마가 있는 사람들이 나를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나는 사실 엄마와 딸, 서로를 싫어하고 사랑하고 원하고 차단하는 관계 따위에 관심도 없고, 감흥도 느끼지 않는다. 엄마가 있는 사람들한테나 엄마가 중요하지.

“네 엄마는 어떤 사람이야?”

“주부예요. 그냥…… 평범해요.”

이미 뱉은 말을 번복하지 못해 두루뭉술하게 눙치자 린다는 자신이 엄청난 사실을 눈치챈 것처럼 손가락을 휘저으며 웃었다.

“사이가 나쁜가 보네. 알겠다! 자주 혼났니? 걱정하지 마. 여기엔 내가 있잖아. 난 너희 엄마와는 다르게 아주 상냥하고, 다 알려주고, 너를 혼내지 않아. 너를 극진히 돌보는데다 심지어 연애까지 해주고. 세상에 어떤 엄마가 딸이랑 연애를 해주겠니. 어때, 너무 좋지?”

여자를 만나러 온 바에서 마주쳐 몇 번 데이트하고 내가 부모가 있는지 전과가 있는지 하나도 모르면서 자기 집에 데려가 재워주기로 한 주제에 갑자기 엄마 행세를 하는 것이 우스웠다. 그래도 나는 린다가 엄마이고 싶을 때 엄마가 되게 해주고 싶었고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좋아요” 하고 얼버무리기만 했다.

사실 린다의 엄마 노릇은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린다의 소개로 카페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수 있었는데 한인 마트에서 캐셔 일을 할 때보다 급여도, 환경도 훨씬 나았다. 린다보다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해서 빨래를 돌리거나 미리 요리를 해둘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한인 마트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교인들이라 나를 포교하려고 노력해서 부담스러웠던 반면 카페 동료들은 서로 국적이 다른 외국인노동자뿐이라 근무시간 외에는 서로 만나려고 애쓰지 않는다는 점도 좋았다.

나는 친구를 사귀는 데 재능이 없다. 하루에 몇 번씩 누군가가 갑자기 떠나는 곳에서 자랐고 학교에 성실히 다니지 않았으며 대학에 진학하지도 않았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면 매번 상대는 내 마음을 버리거나 박살냈다. 처음 만난 이에게 매력적인 척하는 데는 익숙했지만 관계를 유지, 보수하는 하는 방법은 도저히 알지 못했다. 태생적으로도 조금 운이 나빠서 어딜 가나 이상한 사람 눈에 잘 띄었다. 마트 일을 가르쳐준 상사를 따라 한인 교회에 간 날이 떠오른다. 거기서 만난 삼십대 남자가 나를 기특해하며 물었다.

“보육원에서 자랐으면 초기비용 같은 거 마련하기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워홀 생각을 다 했어요?”

나는 그와 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별로 말을 섞고 싶지 않아 일찍부터 일을 많이 했다고만 답했다.

“그래도 돈이라는 게 좀처럼 모이지가 않잖아. 큰돈이 아니면.”

“그렇긴 하지만 초기비용이 아주 많이 드는 건 아니라서요.”

“아닌데, 내가 알기로는 600만원 이상 필요하다던데.”

“그 정도는 아니에요. 그리고 유학이나 이민이면 몰라도 워홀은 추첨으로 뽑히고 나면 1년 정도 준비 기간도 줘요.”

남자는 갸웃거리며 “그래도……” 하고 중얼대다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나한테는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뭘요?”

“여기서 사는 게 참 힘들죠? 식당 가면 팁도 줘야 하고, 기름값도 난리고, 다 비싸잖아요. 어학원도 좀 다녀야 할 테고. 용돈 필요할 거 아냐.”

그는 속닥거리며 내 손가락을 톡톡 건드렸다. 나를 교회에 데려온 상사는 남자의 의도를 눈치챈 듯했지만 나를 힐끔거리기만 하고 대화에 끼어들진 않았다. 그는 기도를 하느라 바빴다. 나는 두 사람을 잠깐씩 노려보다가 떠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생각했다. 떠나는 것, 도망치는 것, 모르는 척하거나 잊어버리는 것은 내게 조금도 어색하거나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매번 쫓겨나는 기분이 든다고.

 

*

 

내가 처음 캐나다에 도착하여 머문 곳은 린다의 집과 먼 동네에 있는 아파트였다. 온라인에서 찾은 중국계 캐나다인의 집이었는데, 네 명의 세입자가 거실에 칸막이를 쳐놓고 함께 살았다. 안방에는 집주인과 집주인의 노모가 지냈고, 현관문 바로 옆 작은방에는 집주인의 중학생 아들이 주말마다 기숙사에서 돌아와 머물렀다. 그애는 바닥에 비스듬히 누워 밤새 게임하거나 공책에 시 같은 것을 썼다. 나는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갓 만료된 잡채나 닭죽을 들고 돌아가 그애와 나눠 먹곤 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지낸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거실 메이트 중 한 명이 집주인의 현금을 1만 달러나 들고 달아나는 바람에 나머지 세입자도 모두 내보내졌다. 우리가 무섭다고, 신뢰가 깨졌다고, 다른 결정을 내릴 여지가 없다고 했다. 나는 억울하다며 뭉개다가 결국 종종 가던 레즈비언 바에서 사귄 여자들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 내가 질린다고 말할 때까지 기생하기를 반복하던 중 린다를 만나 같이 살게 되었다.

20평 남짓의 공간에서 일곱 명이 함께 살았다고 말하면 대부분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며 비위 상한 표정을 짓는데, 린다는 깔깔 웃기만 했다. “다 여전히 그렇게 사는구나!” 하면서.

 

린다는 뭄바이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본명은 라타. 10대에 한 늙은 남자와 원치 않은 결혼을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집을 떠났고, 스무 살에 우연히 만난 미국 남자와 밀워키로 도망쳤다. 린다는 호텔과 유람선에서 객실 청소 일을 했고, 남자는 호텔 주변 술집을 전전하며 서버로 일했다. 돈도 없고 집도 없는 두 사람은 뜨끈한 연기가 피어오르는 하수구 옆이나 천막이 덮인 테니스코트 끝자락에서 손을 잡고 자야만 하는 날도 가끔 있었지만 알콩달콩 사이좋게 지냈다. 린다는 부지런히 돈을 모아 한 스튜디오 아파트에 네 명의 멕시코 이민자들과 함께 세 들어 살 수 있게 되었으나 남자친구를 데려오지 말라는 경고를 수차례 어겨서 계약을 연장하지 못하고 거처를 옮기기도 했다. 남자는 린다가 번 돈으로 하루 세 끼니를 해결하면서도 린다와 결혼해주지 않았다. 속절없이 미뤄지는 결혼 약속에 속이 상한 린다는 일터에서 만난 캐나다 남자에게 눈을 돌렸다. 그는 린다에게 절대로 혼자 두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두 사람은 비바람이 부는 어느 가을밤, 함께 밴쿠버로 떠났다.

빌딩과 빌딩 사이로 눈 덮인 산맥이 보이는 도시.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정착한 린다는 스물여섯에 두번째 결혼을 하고 스물여덟에 첫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부부는 또다른 남자 문제로 이혼에 합의했다. 집은 린다에게 남았지만 양육권은 남편에게 넘어갔다. 아이는 린다를 배신자라고 부르며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고, 린다는 죽고 싶은 충동을 견디며 잔뜩 생긴 시간을 공부하는 데 썼다. 간호조무사 준비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병원에서 일하게 된 린다는 계약기간이 끝날 때마다 병원을 옮기며 여전히 돌봄 일을 하고 있었다.

린다는 나를 만나 자주 자신의 일생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뭄바이에서 보낸 유년이나 청소년 시절의 일화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린다는 첫번째 결혼을 ‘혼수상태’였던 나날이라고 표현했고, 미국 남자와 야반도주한 때를 ‘청춘’이라고 칭했다. 캐나다 남자와 만나 한 집에 머무르며 아이를 돌보던 시절을 말할 때는 ‘그림 같은 가족’ ‘사랑스러운 세 영혼’ 같은 말을 썼다. 린다의 삶을 병원 침대, 고속도로와 야자수, 벽에 걸린 액자의 모습으로 상상하고 또 상상하는 동안 린다의 입과 거기서 흘러나오던 호칭들을 떠올렸다. 스티브를 부를 때는 내 사랑, 나를 부를 때는 스위트하트, 스위트피, 허니, 버니, 베이비, 달링……

 

집을 보러 다니는 것보단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정욕을 자극하고 사랑을 빌미로 그 집에 눌어붙는 게 내게는 더 쉬운 선택지인데도 자꾸만 린다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며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방해했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지금이야 네가 젊으니 어지간히 노력하면 관심받을 수 있겠지만 미래엔 도저히 네 마음대로 되지 않을 텐데, 나중에는 어디에서 누구와 어떻게 살아가려고? 의리인지 미련인지 모를 감정이 남아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았다. 간도 쓸개도 내줄 수 있을 것처럼 헐떡거리는 것도 귀찮고, 구걸하는 것도 지치고, 무엇보다 린다와 지낸 나날을 생각할수록 떳떳하고 어엿한 무언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자꾸만 불어났다. 린다처럼 자기 공간에 불쌍하거나 사랑스러운 존재를 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싶었다. 기생하지 않고 사는 기술을 얻고 싶었다. 그 때문에 모은 돈을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나눠보며 어디에서 몇 개월이나 살 수 있을지를 계산했다. 오늘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숙소로 바로 돌아가는 대신 집을 보러 다니기로 했다.

 

*

 

어느 한인 홈스테이 가정에선 “우리 집은 어린 학생들이 많이 살아요. 아가씨보다 어린 애들이요. 한국에 있는 보호자들이랑 원활하게 소통하는 분위기라 아가씨와는 맞지 않을 것 같아요” 하고 거절했고, 어느 한국인 유학생은 “입학 증명서를 보여줄 수 있는 대학생에게만 방을 공유합니다” 하고 거절했고, 어느 한국인 부부는 “6개월 이상 지낼 사람만 받습니다” 하고 거절했다. 나는 도시를 떠돌며 몸과 정신에 모두 눈보라를 맞았다. 공간과 허락을 얻는 일이 나에게만 유독 어려운 걸까? 자리를 탐하는 마음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필요한 것을 찾는 것뿐인데 어째서 늘 탐욕스러운 사람이 된 것 같고, 스스로 역겨울까.

나를 받아주려는 곳도 있었다. ‘급하게 귀국한 학생이 있어서 방이 빕니다! 2개월만 가능해서 싸게 내놔요’라는 제목의 글을 쓴 주인은 문의 연락을 보낸 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환영 인사를 보내왔다. 크리스티역 주변 한인타운에 위치해 있는데도 내가 감당할 만한 가격을 제시한데다 방이나 샤워실 사진은 지나치게 광각으로 찍은 듯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아주 평범해 보이는 매물이었다. 만약 실제 집 상태가 아주 엉망이라고 해도 내가 자란 곳이나 처음 살았던 거실 칸막이만큼 북적이진 않을 것 같아 나는 퇴근하자마자 크리스티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키가 작고 얼굴이 동그란 집주인 아저씨가 소개해준 집은 홈통이 모두 부식되어 있고 차고와 현관의 조명이 깨져 있으며 죽은 잡초가 무성한 마당을 낀 라벤더색의 낡은 주택이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이라 위험해 보이진 않았지만 확실히 불길했다.

“학생이 쓸 방은 2층이라 뒷문 안 써도 돼.”

집주인이 선심 쓰듯 말하는 동안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내부를 탐색했다. 색이 바랜 꽃무늬 벽지와 퀴퀴한 냄새가 나는 목재 구조물, 실내에서 빨래를 말릴 때와 유사한 눅눅한 공기. 1층에는 방이 세 개 있고 그중 하나는 문고리가 없었다. 고리가 박혀 있어야 할 구멍 옆에 ‘고쳐주세요’라는 메모가 너덜너덜하게 붙어 있을 뿐이었다. 집 제일 안쪽에 부엌과 칙칙한 다이닝룸이 있는데 백팩을 맨 남자애가 냄비에 뭔가를 끓이고 있어서 집주인이 “야, 야! 가방이라도 내려두고 먹어!” 하고 소리쳤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밟고 위층에 도착하자 곧 깨질 것처럼 흔들리는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달려온 길, 차도의 불빛, 건너편 주택들이 전부 진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 방이 두 칸, 학생 방은 여기. 저쪽 건너편에는 미대 다니는 여자애가 쓰고. 오캐드(OCAD) 알지? 거기 다니는 애야. 사진 전공이라고 했던 것 같아. 학생은 뭐 공부해?”

집주인이 몰래 무언가를 발로 툭툭 차서 구석으로 밀어내는 것을 보았냈지만 나는 못 본 척하며 순순히 대답했다.

“아, 전…… 아직 입시 중이에요.”

“스물둘이라며?”

“삼수하다가……”

“도피유학이구나.”

“뭐…… 네.”

어차피 두 달 보고 말 사이. 거짓말이 절로 나왔고 단어 몇 개 던졌을 뿐인데 청자가 멋대로 공백을 채우며 이야기를 완성해주었다.

나는 집주인이 가리킨 방으로 들어갔다. 정말로 누군가가 급히 나간 모양인지 구석에 쓰레기가 모여 있고 방 한가운데 청소도구가 쌓여 있었다. 옷장 안에도 고데기, 잠옷, 책 몇 권이 어지럽게 놓여 있어서 급히 나간 게 아니라 살해당하고 옮겨진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천장엔 곰팡이가 피어 있고, 문 위에는 한번 걷어내고 남은 듯한 거미줄 가락들이 보였다. 치우고 닦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을 하는 동안 실시간으로 체력이 깎여나갔다. 방이 온몸으로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당장 나가라고.

“물건들은 이 방 쓰던 애가 두고 갔어. 학생 가져도 돼. 쓰레기는 아저씨가 치워줄 거니까 걱정 말고. 오늘밤에 바로 들어와도 되는데, 내일 아침에 오면 더 좋아.”

집주인은 내가 방을 둘러보는 동안 계속 말을 걸었다. 방안을 자세히 보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는 듯했다. 나는 다시 복도로 나가 공용화장실과 샤워실까지 확인한 뒤 이 집에 총 몇 명이 사는지 물었다.

“2층에 두 명, 1층에 네 명. 왜냐하면 가장 큰 방에 두 명이 같이 살거든. 그리고 밑에 네 명. 우리 학생이 들어온다고 치면 총 열 명이지. 근데 이 가격에 이런 위치 없어. 이렇게 조건 다 괜찮은 집 없었지? 내 집 사는 애들 밑에서 밥 먹고 있는데 만나서 얘기 좀 나누고 가도 돼. 물어보고 싶은 거 있으면 물어보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때쯤 복도 구석에 작은 덩어리가 눈에 띄었다. 집주인이 내 눈치를 살피며 발로 치우던 것은 오렌지 한 조각만 한 쥐였다. 꽥 하고 죽은 그 녀석이 어디로 다녔을지 궁금해 두리번거렸지만 이 폐가 같은 곳에 쥐가 어울리지 않는 통로나 구석은 딱히 없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버스에 올라타며 이 집은 지나치기로 했다. 참 이상했다. 집이라는 것이…… 자긴 살지도 않는 곳에 사람들을 욱여넣고도 ‘내 집’이라는 것이. 문손잡이도 안 고쳐놓고 생색을 낼 수 있다는 것이.

하지만 갈 곳도 없는 주제에 나를 받아주려는 곳을 마다하는 게 웃기기도 했다. 기준을 세울 뿐인데 욕심을 부리는 꼴이 되는 건 어쩐지 서글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