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체크아웃 날이 되었다. 내게 오렌지를 건넸던 남자애가 이번엔 전자담배를 건네며 한번 빨겠냐고 권했다.
“아냐, 괜찮아.”
I’m good. 간단한 영어, 단순한 뜻, 그리고 빛나지 않는 미소를 내밀었다. 그애는 새하얀 김을 뿜으며 답했다.
“영어 좀 웃기지 않아? 싫다는 말을 좋다고 말해.”
“한국어도 비슷해.”
나는 햇빛을 맞으며 간판에 태양이 그려진 홍콩 마트로 향했다. 물 한 병, 빵 하나를 사서 다시 집을 보러 갔다. 이번에는 버스 창밖에 매혹되지 않고, 그저 이 앱 저 앱 지겹도록 눌러보며 이틀, 사흘, 나흘 정도 묵을 숙소와 좀더 오래 머물 집을 탐색했다. 그때, 린다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 친구랑 잘 지내고 있어? 별문제 없었으면 좋겠네. 요즘 코로나가 다시 유행이래. 조심하렴.
의중을 알 수 없었다. 예의상 묻는 안부일까. 당신도 내가 그리운지 물어보고 싶지만 답장하지 않았다.
*
린다의 연락을 무시하고 몇몇 숙소를 전전하며 집을 보러 다니는 동안 보름이 지나갔다. 나는 나를 눈여겨보던 바텐더의 소개로 민디와 리오라는 예술가 커플의 스튜디오 아파트에 들어가기 위해 면접을 보기도 했다.
민디와 리오가 보여준 방은 참으로 아늑하고 알록달록하고 좋았다. 창턱 위에 향초를 올려두었고 방 한가운데 놓인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는 금색 리본, 빨간 방울, 하얀 천사 범벅이었다. 곳곳에 프라이드 깃발과 트랜스젠더 상징색의 물건들이 놓여 있고 민디가 내게 내어준 물컵에는 ‘트랜스 인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처음으로 이 집이 통째로 내게 옮아왔으면 좋겠다고 소망하며 탄식했으나 한편으로 두 사람과 나 사이에는 공유된 세계가 없다는 감각도 선연하게 느껴졌다. 동성 연인과 함께 살기를 원하는 것과 퀴어의 삶을 사는 것은 아주 다른 것으로 보였고 민디와 리오는 내가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공백을 만끽하는 사람들 같았다. 나처럼 아무런 색깔도 없는 사람이 그들의 찬란한 공간에 살게 된다면 민폐가 될 것 같았다.
사실 무엇보다 나를 두렵게 한 건 그들이 던지는 질문이었다. 뭘 좋아해요, 여가 시간에는 무슨 활동을 즐기나요, 일하지 않는 시간의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평소에 어디서 무슨 ‘의견’을 개진하나요.
“관심사가 궁금해요.”
예술 분야나 하다 못해 커피에 관심이 있다고 해도 되었을 텐데, 나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어서 머뭇거렸다. 함부로 거짓말했다가 금방 들통나고 싶지는 않아서 솔직하고 재미없는 헛소리를 지껄였다.
“집에 관심이 많아요. 먹고, 자고, 쉬고, 씻고, 가만히 천장이나 벽을 바라보는 거요. 사는 거요. 생존이요. 그런 거 말곤 관심 없어요.”
나는 껍질을 벗은 오렌지처럼 날것이 되어 고개를 잠시 숙이고 있다가 그들에게 집을 보여주어 고맙다고 인사한 뒤 빠르게 아파트를, 동네를, 도심을 빠져나갔다.
린다도 내게 관심사, 생각, 의견, 내 관점 같은 것들을 물어본 적이 있었나? 한국에서의 삶과 과거 같은 것을 궁금해하긴 했지만 그건 내가 어떤 사람인지 평가하려고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린다는 본능에 충실하고 별생각 없이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내는 나도 괜찮은 사람으로 대해주었다. 린다 앞에서는 내 삶에 아무런 패턴도, 비전도, 가치도 없는 것을 숨기지 않아도 되었다.
*
정오의 직사광선을 맞으며 한 부촌에 도착했다. 스티브가 살 법한 예쁘고 세련된 주택들을 관찰하며 아침에 산 빵을 꺼내 먹었다. 이번에는 한국인 남자와 백인 여자 부부의 집이었다. 집 매물 사이트가 아니라 보모를 구하는 사이트에서 발견했는데, 남자가 올린 글은 다음과 같았다.
‘입주 보모를 구합니다. 2살, 4살 아이들이 있고 가사도우미가 일주일에 네 번 방문하기 때문에 청소나 요리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이들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울 수 있게 한국인이면 좋겠습니다. 영어를 잘 못해도 괜찮습니다. 사용하실 방은 별채에 있고, 저희가 보모님에게 외출이나 외박을 요청드릴 때는 급여와 별도로 비용을 지불하니 걱정 마세요.’
안내받은 주소지에는 간결하고 모던한 방갈로 양식 주택이 있었다. 새하얀 벽과 전면 테라스를 둘러싼 가늘고 빽빽한 목재 기둥들, 넓고 평평한 정원에서 압도적인 세련미를 느꼈다. 나는 길에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켠 뒤 초인종을 눌렀다. 이 부부의 집에서 살게 되면 카페 일은 그만두어야 하지만 부부가 제시한 기본 급여가 카페 월급보다 월등히 높기 때문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린다의 집에서처럼 집도, 일자리도, 잔고도 크게 걱정하지 않으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한국 분이시죠? 반가워요.”
여자아이를 안은 남자가 나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으리으리한 다이닝룸에는 백인 부인과 남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집주인 진모는 아내 세라와 아이들을 소개해주며 퍽 친절하게 굴었다.
“저희는 대학 시절 유학하면서 만났어요. 만난 지 10년째가 되는 날 결혼했죠. 저는 건축 디자이너고, 세라는 은행원이에요.”
두 사람은 나를 키운 세대와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이 웅얼거리고 칭얼거리고 꽥꽥 소리를 지르고 먹고 있던 과일을 뱉고 물건을 던지는데도 부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개를 이어갔다.
“제가 부모님과 사이가 나빠요. 그래서 한국에 거의 가지 않지만 제 문화와 언어를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문제는 출장이 너무 잦아졌다는 거예요. 앞으로도 한동안은 1년에 절반 이상 해외에서 보내야 해서 골치가 아프네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휴지를 뽑아 테이블에 늘어진 과육을 치우고 두 사람의 아들 입에서 흘러나온 끈적한 침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이런 장면이 내 몸에 설계되어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오늘은 손님으로 오신 거라 안 그러셔도 되는데. 고맙습니다. 우리 애들이 익숙한 환경에선 조용하고 침착한데, 모르는 사람이 와서 조금 흥분한 것 같아요.”
부부는 아이들이 무엇을 하든 어떤 소란을 피우든 전혀 말리지 않았고, 나는 생생한 소란 속에서 또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문자 나누었을 때 아이들을 돌본 적이 있다고 하셨죠. 무슨 일을 하셨어요?”
“성인이 되기 전까지 보육원에서 자랐어요. 동생이 되게 많았고, 위탁도 몇 번 됐었는데 제가 갔던 가정 중 두 군데에 1살, 3살짜리 애들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기저귀 가는 거 배우고, 밥 먹이고, 울면 달래고…… 그랬어요.”
“그렇구나. 한국어 그림책도 많이 읽어줄 수 있어요? 세라도 한국어를 하긴 하지만 평일엔 출근하니까 애들 돌보는 게 쉽지 않거든요. 피곤할 땐 글자가 잘 안 읽히잖아요.”
“책 읽어주는 것도, 재우는 것도 자신 있어요. 동생들이라고 생각하고 챙길 수 있어요.”
“조금 이따 한 권 같이 읽어봐주시면 좋겠어요.”
“그럼요.”
나는 내게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아이를 안아 들고 부부의 안내를 따라 내가 살게 될 별채로 향했다. 작은 모형 집처럼 생긴 임시 구조물, 그곳에는 침대는 없지만 긴 소파에 아늑한 이불이 놓여 있고, 창틀이 죽어라 흔들리지 않으며 난로도 있고 가습기도 있었다. 안전해 보이는 방을 구경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울며 내 가슴과 어깨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진모는 아들이 가끔 그런 장난을 친다고 말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거의 모든 조건이 마음에 들지만 진모의 아들이 작은 주먹으로 내려친 부위가 화끈거렸다. 이곳에서 보모로 지낸다는 건 퇴근이 없다는 뜻이고, 휴일을 정기적으로 갖기 어렵거나, 미리 정한다고 해도 잘 지켜지지 않을 것이었다. 휴일이니 뭐니 가릴 처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힘이 빠졌다.
나는 아이를 진정시킨 뒤 부부가 요청한 대로 그림책을 하나 골라 아이들을 붙잡고 구연을 시작했다. 길에 떨어진 사과, 체리, 유자가 만나 친구가 되는 이야기였다. 사과는 열매 친구들을 그리워하고, 체리는 나무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살구는 화분 할머니를 그리워했다. 과일들은 여정 끝에 한 과일바구니에 들어가는데, 안에서 각자의 뿌리를 그리워하던 파인애플, 오렌지, 포도가 새 과일들을 반겼다. 여섯은 모두 친구가 되고, 길 잃은 존재에서 ‘선물’로 탈바꿈했다. 나는 오렌지가 그려진 페이지를 빤히 보다가 정중히 인사를 하고 나왔다.
“마음 정하시면 연락 주세요.”
“네, 시간 내줘서 고마워요. 곧 전화할게요.”
세라가 말하길 면접을 보러 오는 사람이 세 명 정도 더 있다고 했다. 나는 이번에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고, 진모는 내 건조한 반응을 보며 잠시 머뭇대다가 “조카 같아서 그런데 역 근처까지 태워줄게요” 하며 따라 나왔다.
그는 주머니를 뒤져 차 키를 꺼내더니 성큼성큼 앞장서 걸었다. 나는 차고에 들어가는 그의 뒤에서 이웃집들을 바라보았다. 건너편 집에서 한 중년 커플이 까르르 웃으며 나왔다. 서로의 얼굴을 붙잡고 키스하고 잠시도 떨어질 수 없다는 듯이 구는 두 사람은 스티브와 린다를 닮았다. 나는 그들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린다를 더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위해 한 걸음, 두 걸음 내디뎠다.
우습게도 그 남자는 정말로 스티브였다. 스티브에게 팔짱을 낀 여자는 린다도, 스티브의 전 아내도 아니었지만.
그제서야 어렴풋이 남았던 의문이 해소됐다. 그렇게 돈이 많다고 과시했으면서 왜 자기 집에 린다를 초대하지 않고 늘 린다의 아파트에 직접 찾아왔는지, 왜 수없이 많은 밤과 낮을 린다의 방에서 보내야 했는지. 심지어 유학생이 세 들어 살기 시작했는데도 계속해서 찾아오며 꽤나 몰염치했던 이유를 이제 알 수 있었다.
찬 공기가 시린 콧등을 쓸고 콧속을 얼리는 동안 나는 스티브의 이름을, 놀란 진모는 내 이름을 힘차게 불렀다. 나는 진모가 나를 붙잡기도 전에 거리로 뛰어가 길을 건넜다. 스티브가 당황한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아, 너구나. 안녕. 왜 이런 곳에 있어?”
“면접을 보러 왔어요. 이분은 누구예요?”
“면접? 주택만 있는 동네에 무슨 일자리가 있다고?”
“이 여자 누구냐고요.”
그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내려다보며 버벅거리자 여자가 입을 열었다.
“난 이 사람과 함께 살아요. 당신은 누구죠?”
“여자친구세요?”
“연인이자 가장 친한 친구예요. 왜 묻나요? 당신은 누구냐니까요.”
“전 이 사람 여자친구의 딸이에요. 이 사람이 북창동순두부도 사다줬다고요. 바로 지난주에.”
“뭐라고요?”
스티브가 수치심에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여자는 스티브의 팔을 한 대 치더니 뒤이어 핸드백으로 스티브의 머리와 뺨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널 믿지 말았어야 했다고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나는 진모가 서 있는 곳으로 조용히 돌아갔다. 진모는 차 키를 쥔 채 어안이 벙벙해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만 보다가 까칠하게 말했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돌보다가 그렇게 갑자기 뛰쳐나갈까봐 무섭네요.”
다음 집을 보러 가며 스마트폰을 확인했다. 민디에게 문자가 와 있었다.
― 다른 세입자 후보와 살게 되었어요. 미안해요. 좋은 집 찾길 바랄게요!
나는 입술을 말아 문 채 터벅터벅 걸었다. 울음과 발악 사이를 왕복하는 미묘한 감정을 참으며 잠시 절망하다가 버스에 올랐다. 분노인지 기도인지 체념인지 알 수 없는 것이 명치를 쿵쿵 찧었다.
다른 이들의 숨과 온기로 가득한 버스 안에서 손잡이를 꽉 쥐며 생각했다. 다음 집에서도 날 받아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꽉 찬 캐리어를 세워두지 않고 마음 편히 살아갈 곳이 있기는 한 걸까. 하지만 그것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나는 린다에게, 다시는 연락할 수 없을 것 같았던 한 여자에게 급히 문자를 보냈다.
― 며칠 뒤면 크리스마스네요. 그날 뭐 해요?
솔직히 말하면 린다에게 전화를 걸어 온갖 조롱을 뱉고 싶기도 했다. 그 남자가 정말 당신을 사랑할 줄 알았어? 진심으로 그 ‘좋은 남자’가 당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어? 당신이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아도취 중독이라 당신에겐 아무런 관심도 없어. 제발 현실을 직시해. 당신을 정말로 원하고 우러러보고 걱정하는 건 나야. 아니, 어쩌면 당신이 꽤 아껴준 나조차 집 찾는 데만 급급해서 당신에겐 그다지 관심이 없었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스티브는 오죽하겠어. 번지르르한 자기 집에는 부르지도 않잖아. 고작 여행 몇 번 데려갈 뿐이지.
하지만 이런 말들을 삼킨 건 이미 린다도 진실을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린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스티브에게 다른 연인이 있어도 괜찮다고 다짐한 적이 있을까봐, 자기가 관여할 주제가 못 된다고 생각했을까봐 속이 시큰거렸다. 다 아니까, 주는 만큼 돌려받지 못한다는 걸 아니까, 몇 번이고 겪어봤으니까 계속 헤매며 자신이 영향을 끼칠 수 있고 대단한 존재가 된 것 같은 고양감을 느낄 수 있는 상대를 찾아다닌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린다가 밉지만 린다에게 안겨 다시 사랑을 요구하고 싶었다. 린다가 아직 받지 않은 상처까지 쓰다듬고 싶었다. 린다가 느끼고 싶어하는 것을 모두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린다의 집에 다시 들어가지 않아도 좋지만 여전히 린다를 사랑하기에 내가 유일하게 내어줄 수 있는 것, 껍질이 까진 오렌지 한 알 같은 마음을 주고 싶었다. 세상에 어떤 딸이 엄마와 연애를 해주겠냐고 농담을 던지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가가고 싶었다.
린다의 답장을 기다리며 펑펑 내리는 눈이 아스팔트 바닥에 내려앉는 모습을 바라봤다. 눈송이가 균열을 채우는 게 아무 의미 없을지 몰라도…… 전부 함정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