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거짓말
‘수요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악행일기를 써야 한다. 쓰라고 하니 쓴다만 잘 쓸 자신은 없다. 왜 일기를 쓰라는 건지도 잘 모르겠는데, 내가 저지른 악행에 관해 쓰라니 쉽게 쓸 수 없을 것 같다. 센터의 간사에게서 악행일기를 써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가 무슨 일기라고 말하는 건지 단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자기가 저지른 악행에 대해 쓰면 된다는 이야기에 반성문을 쓰는 거냐고 되묻자, 반성은 하지 않아도 되고 자기가 한 나쁜 짓을 쓰면 된다고 했다. 무슨 내용을 쓰건 전혀 상관없으니 쓰고 싶은 대로 써도 된다며, 초등학교 때 쓰던 일기보다 더 쉬울 거라고 장담했다. 검사하는 선생님도 없고 맞춤법이 틀려도 괜찮으니 마음 편하게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악행과 일기라는 단어가 붙으려면 얼마나 많은 악행을 일상적으로 저질러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누군가를 해치거나,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법을 어기거나, 폭력과 욕설을 쓴 적이 없다. 살기 위해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애썼다. 내가 착해서가 아니라 남에게 피해 받는 것이 싫었기에 나 또한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만약 나를 나쁘다고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거나, 진실과는 관계없는 소문을 믿은 경솔한 인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악행일기를 쓰기 위해서는 일부러 악행을 저질러야 할 판이다. 악행을 저지르지 않았으면 어떻게 하냐고 내가 묻자 간사는 악행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나쁜 짓 한 번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고, 생각하다보면 뭐라도 나올 거라고 단언하는 간사의 말에 나는 머쓱해졌다. 그는 악행의 종류도 크기도 상관없고, 과거, 현재, 미래, 시제도 상관없으니 사실만 담겨있으면 된다고 편하게 쓰라고 했다. 조금 마음을 놓으려는데 그가 시점을 삼인칭으로 써야 하는 규칙이 있다고 덧붙였다.
기억을 쥐어짜내서 내가 저지른 악행의 부스러기를 찾아내거나 진짜 일부러 나쁜 짓을 한다 해도 그걸 일기로까지 쓸 자신은 없다. 그냥 쓰는 것도 힘든 마당에 삼인칭으로 쓰라니 할말을 잃었다. 삼인칭이라는 말 자체를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 처음 들었다. 그런 건 글을 좀 써본 사람들이나 가능한 거지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쓸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제대로 글을 써본 적이 없고, 글쓰기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긴 글이라고는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나 대학 시절 리포트 말고는 없었다. 게다가 솔직하게 쓰라는 것은 벌칙에 가깝다. 한때 신이 나서 썼던 일기는 거짓말투성이였고, 리포트 역시 남의 글을 짜깁기한 것이었기에 진실하게 글을 쓸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나는 오늘’로 시작해 ‘참 즐거웠다’로 끝내곤 했던 초등학교 일기는 대부분 거짓이었다. 나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해보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쓰곤 했다. 예를 들자면 있지도 않은 큰아빠나 외숙모를 출연시키고, 사진으로만 본 할머니 집에 가서 본 적도 없는 사촌들과 놀았다거나, 있을 리가 없는 스무 명도 넘는 대가족이 모여 바닷가로 피서를 떠났다거나, 엄마 아빠와 스키장에 다녀왔다는 이야기 같은 것 말이다. ‘오늘’도 ‘즐거웠다’도 모두 거짓말이었고, 인물이나 사건, 배경 중 단 하나도 진짜가 아니었다. 일기에서 진실은 ‘나는’뿐, 집에 혼자 앉아 일기를 쓰고 있는 나만 진짜였다. 일기 끝에 선생님이 파란 볼펜으로, 정말 행복했겠구나, 가족들이 화목해서 정말 좋겠다, 선생님은 친척이 많지 않아서 너무 부러워, 라고 감상을 달아주는 게 좋아서 그런 일기를 열심히 썼다. 선생님은 가끔 아이들에게 재미있거나 본보기가 될 만한 일기를 읽어주곤 했는데, 내 일기가 자주 뽑혀 으쓱한 기분도 들었기에 일주일에 두 번만 써도 되는 일기를 매일 심혈을 기울여 썼다. 일기를 쓰다보면 밤늦게 집에 혼자 있다는 것을 잊을 수 있었고 시간도 빨리 흘러 엄마가 늦게 들어와도 무섭지 않았다.
한번은 놀이터에서 놀다가 알게 된 다섯 살 꼬마 애의 집에 초대받아 놀다 온 이야기를 쓴 적이 있었다. 근처에 사는 아이들은 인형처럼 예뻤던 제시라는 이름의 혼혈 아이를 대부분 알고 있었다. 제시가 놀이터에 나오면 아이들은 모두 달려가 인형 놀이 하듯 그 꼬마와 놀아주었다. 아이의 아빠는 영국인이고, 엄마는 일본인이라는 소문이 있어 아이들은 한국말이 전혀 안 통하는 줄 알고 벤치에 앉아 있는 엄마에게는 말을 걸지 않았다. 나는 그 집에 비디오 플레이어와 빔 프로젝터가 있었고, 그 시절 여자애들이 열광했던 만화영화 비디오가 마지막 회차까지 있어서 그걸 끝까지 보느라 밤늦도록 그 집에 있었다는 내용을 일기에 썼다. 내가 늦게까지 귀가하지 않자 부모님은 내가 실종된 줄 알고 한바탕 소동을 벌였고, 뒤늦게 집에 돌아온 나를 혼내다가 끌어안고 함께 울었다. 나는 앞으로 늦게 귀가해 부모님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 것이며 어디를 가든 가는 곳을 꼭 알리겠다는 반성으로 일기를 마무리했다. 선생님은 자기반성이 묻어 있는 나의 일기를 반 아이들에게 읽어주었다.
아이들은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 아줌마가 제시와 나이 차이도 많이 나는 나를 집까지 초대할 리가 없다며 다른 일로 늦게 들어가 혼나놓고는 거짓말로 일기를 썼다고 야유했다. 사실 아줌마는 소문과는 달리 한국인이었는데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어 아이가 놀이터에서 놀 때 옆에서 지켜보는 것 말고는 이웃과 따로 왕래가 없었다. 아줌마는 제시와 잘 놀아주고 자신에게도 살갑게 굴던 나를 집으로 초대해 감자튀김과 핫케이크를 만들어줬고 제시가 좋아하는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흰 벽에 가득차게 틀어주었다. 나는 종이접기와 고리 던지기를 하며 제시와 놀아주다가 해가 진 뒤에 집으로 돌아갔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귀가였지만 엄마는 더 늦게 들어왔기에 내가 늦게 들어온 줄도 몰랐고 아빠는 지방에 살고 있었으므로 아무도 나를 혼내지 않았다. 거의 매일 집에 혼자 있고 가끔 학원만 오가던 나에게 그날의 초대는 특별한 일이라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아이들이 부러워하도록 약간의 과장을 섞었고,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 자기반성과 교훈을 담아 열심히 꾸며냈다. 그러니까 아이들이 거짓이라고 한 부분은 진짜였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뒷부분만 가짜였다. 내 일기장에서 보기 드문 진실을 부정당하고 나니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뒤로 나는 다시는 진실을 써서 수모를 당하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매일 새로운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데 열중했다.
내가 쓴 거짓말은 한 번도 들통난 적이 없었다. 그게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우리 식구밖에 없는데, 셋밖에 안 되는 우리 식구는 내 일기장에 큰 관심이 없었기에 나는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 밤늦게 왔다가 눈을 잠깐 붙이고 새벽에 다시 지방으로 갔다.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라고 해봤자 눈 한 번 맞추고 용돈을 받을 때가 다였기에 아빠는 내 일기장이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못했고 들춰볼 시간도 없었다. 문제는 같이 사는 엄마였다. 엄마도 집에 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일기장을 찾고자 하면 다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거짓말투성이 일기장을 엄마가 보게 되면 왠지 혼날 것 같아 난 늘 조마조마했다. 일기를 쓰다가 잠이 들지 않도록 조심했고, 자기 전에 가방 속 다른 책 사이에 일기장을 끼워두고 잤다.
문방구에서 자물쇠가 달린 민트색 양장 커버 노트를 본 순간, 나는 그것이 내 일기를 엄마로부터 지켜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용돈을 모아 비싼 일기장을 간신히 손에 넣은 날 나는 두 다리를 뻗고 잘 수 있었다. 어린 마음에 자물쇠만 잘 잠그면 엄마가 볼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그렇게 허술한 줄은 몰랐다. 자고 일어난 나에게 엄마는 자물쇠를 망가뜨릴 생각은 아니었고 살짝 당긴 것뿐인데 툭 하고 빠졌다며 투덜거렸다. 이렇게 요란한 표지에 자물쇠까지 달리지 않았으면 굳이 읽어보지 않았을 텐데, 쓸데없이 자물쇠를 걸어놓아서 이걸 기어이 읽게 했냐고 투덜거렸다. 엄마는 거짓말 천지인 내용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글씨를 휘갈겨쓴 부분이나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잘못된 것은 지적했다. 비문이라도 발견되면 듣기 싫은 소리를 했다. ‘얘가 누굴 닮았을까? 무식하게 이런 기본적인 것도 틀리는 걸 보면 누굴 닮았는지 알겠네.’ 나는 잘못 적은 문장을 다른 노트에 다섯 번씩 고쳐써야 했다. 거기서 끝났더라면 괜찮았을 것을, 얼마 뒤 학교에 찾아간 엄마에게 선생님이 ‘주아가 글쓰기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아요. 주아가 쓴 일기가 재미있어서 늘 기대됩니다.’ 하고 말한 것이 더 문제였다. 엄마는 신이 나서 대답했다. ‘얘가 없던 일들을 진짜처럼 썼더라니까요. 저도 깜빡 속았을 정도예요.’
옆에 앉아 있던 나는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었지만 아주 수치스러운 기분이 들어 더는 그런 일기를 쓰지 않게 되었다. 매일 별다른 일 없이 지낸데다 휴일이나 방학에도 집에 혼자 있었기에 일기의 내용은 특별할 게 없었다. 내가 생각한 것들에 대해 써볼까 하다가도 엄마가 들여다보는 게 싫어 진짜 있었던 일만 쓰다보니 일기가 거의 똑같아졌다. 선생님은 진짜 일기에는 성의 있는 코멘트를 해주지 않았다. ‘아무리 쓰기 싫어도 이렇게 짧은 글을 매번 똑같이 쓰면 안 되겠지?’ 선생님 역시 짧은 글을 반복해서 써줄 뿐이었다. 일기 쓰기가 시들해지면서 나는 일주일에 한 번 간신히 일기를 쓰다가 나중에는 아예 쓰지 않게 되었고 글쓰기 자체에 정이 떨어져버렸다. 나는 마치 파블로프의 개처럼 빈 공책이나 원고지를 보면 수치심을 느끼는 경지에 이르렀고, 글쓰기 대회라도 있는 날이면 급체한 것처럼 배가 아파 결석하거나 양호실에 누워 글을 써야 하는 상황을 모면했다.
센터에서 일기를 써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배가 살살 아파지기 시작했다. 내 표정이 좋지 않았는지 규칙을 깐깐하게 설명하던 간사는 일기를 매일 쓰지 않아도 되고, 한 번만이라도 쓰면 된다고, 삼인칭 같은 건 아예 생각하지도 말고 쓸 수 있을 때 시도해보라고 했다. 한 장만 써도 괜찮으니 부담 없이 참석해도 된다며 갑자기 느슨한 태도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엔 어려워도 시간이 지나면 매일 안 쓰고는 못 배기고 노트가 모자랄 정도로 쓰게 될 거라고 장담했다. 그때는 그가 나를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써보니 생각보다 술술 잘 써지는 것 같긴 하다. 거짓말이라는 악행 하나로 일기 비슷한 것 한 편을 뚝딱 썼으니 어쩌면 곧 삼인칭으로 쓸 수 있는 날도 올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규칙이 많아 보이긴 해도 일기의 분량도 자유인데다 내용을 검사하는 것도 아니어서 모임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어지간하면 다 가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내가 마지막까지 가입을 망설인 이유는 일기를 발표해야 한다는 규칙 때문이었다. 간사는 일기의 일부만 발표해도 되고 한 달에 한 번 아니면 분기별 한 번이라도 하기만 하면 된다며 또 융통성을 발휘해주었다. 다른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영 부담스러워 끝까지 미적거리는 내게 간사는 가족 중 한 명만 발표해도 되니 일단 참여해보라고 했다. 하다보면 자기 이야기를 남에게 읽어주고 싶어 서로 발표하려고 한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걱정이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센터에 동행해준 승재가 발표는 자기가 하겠다고 해서 함께 가입신청서를 쓰고 나왔다. 집에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모든 게 이상했다. 나는 그날 바로 모임에 가입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관계없는 승재까지 끌어들이게 된 건 예상 밖의 일이었다. 승재에게 그 모임이 뭐라고 생각하고 함께 하려는 건지 물으니, 뭔지 몰라도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내게 도움도 주고 싶어서라고 했다.
애초에 센터에 찾아간 것은 모임에 가입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뒤늦게 찾은 엄마의 휴대폰에서 규칙적으로 전송되던 ‘수요모임’ 공지를 발견했다. 엄마가 ‘센터’라는 이름으로 저장해 둔 발신자에게 온 문자 메시지 십여 개를 읽어봤지만 ‘센터’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추측할 수 없었다. 엄마가 다닐 만한 센터라면 문화센터 말고는 없을 것 같은데, 무슨 센터건 간에 가는 곳마다 노인들이 잔뜩 모여 있어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던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엄마가 마지막까지 어디를 오갔는지, 거기서 무엇을 하고 지냈는지 궁금했다.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센터에서는 ‘기억과 빛’ 재단에서 운영하는 기관이라는 것만을 이야기해주었을 뿐, 모임에 대해서는 직접 방문해야 안내받을 수 있다고 했다. 추천인을 묻는 말에 엄마의 이름을 말하자 상담사는 엄마가 ‘수요모임’의 회원이라는 것을 확인해주었다. 모임에 가입하려는 거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모임의 정체를 알고 싶을 뿐이라고 말할 수 없어서 그렇다고만 대답했는데, 그게 아무래도 실수였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센터를 방문했을 때 나는 모임 날짜와 장소, 과제와 준비물, 주의사항만 안내받았을 뿐 정작 그게 무슨 모임인지는 듣지 못했다. 그들은 모임의 목적을 설명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원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이름과 전화번호만 써놓고 가게 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참여 조건에 부합하는지도 묻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모임에 관심을 보이자 가입을 유도하려고 규칙을 조금씩 바꿔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가입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일기를 많이 쓸거냐 적게 쓸거냐, 일인칭으로 쓸거냐 삼인칭으로 쓸거냐를 흥정하는 식이라 가입하는 것을 전제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간사가 나에게 베풀어준 융통성과 아량이 고마워서 홀린 듯 가입하게 됐다.
그곳에 다녀온 뒤에도 나는 여전히 ‘수요모임’이 어떤 모임인지 모른다. 다만 ‘기억과 빛’ 재단이 자녀를 잃은 부모의 일상 회복을 돕는 재단이며, 그곳에서 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요모임’은 수요일에 하는 워크숍이며, 요일마다 다른 워크숍이 운영되고 있었다. 워크숍의 이름에 요일만 붙인 것은 참여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나는 재단을 설명하는 글을 본 순간 내가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내뱉었던 독한 말이 생각나 가슴이 철렁했다.
‘자식을 잃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생각해보니 그 말은 나의 명백한 악행이므로 나중에 쓸 수 있도록 간략히 써둔다.
2. 싸움
집에 돌아오고 난 뒤부터 얼마 전까지 이웃과 매일 싸웠다. 그전까지 나는 남과 큰 소리를 내며 싸워본 적이 없었다. 난 애초에 싸움이 일어날 만한 일은 하지 않았다. 웃는 얼굴과 상냥한 말씨로 사람들을 대했고, 듣기 나쁜 말은 하지 않았다. 혹여 내 행동 때문에 의도치 않게 싸움이 벌어질 상황이 되면 먼저 사과하고 오해를 풀었다. 주변 사람이 싸울 것 같으면 분위기를 전환하거나 대화의 주제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래도 분위기를 바꾸기 어려울 땐 그 자리를 훌쩍 떠났다. 남의 싸움은 구경도 하지 않았고, 괜히 신고하다 엮일까 멀리멀리 도망쳤다.
나는 사이가 나쁜 부모 밑에서 자라서 평화로운 일상에서도 싸움의 조짐을 읽어내고, 불행과 파국을 예측할 수 있었다. 세 가족이 함께 살던 시절, 나는 부모님의 사소한 농담이 어떻게 싸움으로 변질되는지 보았고, 둘이 재미로 맞고를 치다가도 선풍기와 전화기가 부서지도록 싸우는 것도 보았다. 둘이 추던 탱고가 격투기로 변하는 것도, 영화를 함께 보며 웃다가 텔레비전을 박살내는 것도 목격했다. 둘이 유난히 사이좋아 보이는 날이면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어 둘이 함께 있지 못하도록 아빠에게 뭔가를 사다달라고 하거나, 마당에서 넘어지거나 책장에 손가락을 베었다며 엄마를 불러댔다. 둘이 대화를 시작하면 대문 밖으로 나가 그들이 찾으러 나올 때까지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저지레한 것을 수습할 때면 둘의 호흡이 척척 맞았으므로 나는 어설픈 척 행동했고, 그런 전략은 나에게 어느 정도 평온한 일상을 가져다주었다.
그것도 초등학생이 된 뒤에는 통하지 않았다. 나의 그런 행동은 오히려 더 큰 싸움을 불러왔다. 그들은 나의 실수를 수습하며 교육을 잘못한 탓, 서로의 나쁜 점을 닮은 탓을 하며 상대를 비난하기 시작해 싸우게 됐다. 나는 전략을 바꿔 최대한 똑똑하게 굴기로 했다. 사실 나는 또래 아이들보다 영리하고 손댈 데가 없이 야무진 편이었다. 이건 내 견해가 아니라, 엄마 친구인 영미 이모가 늘 했던 말이다. 내가 처음 반장이 되었던 날, 시험에서 올백을 맞았던 날, 운동회 달리기에서 일등을 했던 날처럼 내가 좋은 성과를 얻은 날이면 부모님은 함께 즐거워했고 적어도 그날만은 싸우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처음에나 효과가 있었지, 반복되니 점점 무의미해졌다. 괜히 나에 대한 기대치만 올려놓아 더 고달파졌을 뿐이었다. 나는 새로운 전략을 개발해야 했는데 그러기엔 너무 어려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들의 싸움을 말릴 재간이 없어진 나는 근방에 살던 영미 이모네 집으로 피신했다가 늦게 돌아오는 것을 택했다. 몇 년 더 그런 생활이 계속되었다면 나는 아예 그 집에 어떻게든 눌러앉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아빠가 남쪽의 먼 도시로 직장을 얻어 떠나게 되면서 부모님의 별거가 시작되었다. 그로 인해 새로운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그래도 둘의 싸움을 매일 지켜보는 것보다는 나았다. 적어도 편안하게 밥을 먹고 큰 소리에 잠을 설치지 않아도 됐으니까.
이런 이유로 나는 선천적으로 싸움을 싫어하고 싸울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남에게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애를 썼고, 어지간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았다. 화가 나면 참았고, 참지 못할 것 같을 때에는 싸운 뒤에 내가 수습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며 또 참았다. 싸우지 않는다고 성깔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분출되지 않은 화를 마음 깊이 꼭꼭 숨겨두었다가 앞으로 나가는 추진 에너지로 쓰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염원이었을 뿐, 내 마음속의 화는 마그마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연기를 사방으로 내뿜고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가장 가까이 있던 유재는 그것을 알아챈 듯했다. 엄마는 왜 매일 화가 나 있냐고 울먹이던 유재에게 화난 게 아니라고만 말할 것이 아니라 너 때문에 화난 게 아니라고 말했어야 했다고 자주 후회한다. 아무튼, 나도 몰랐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부모를 꼭 닮은 자식이었다.
유전자의 힘을 확인한 것은 엄마의 장례를 마치고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이었다. 전날 밤을 꼬박 새운 탓에 해가 뜨고서야 겨우 잠이 들었는데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이건 오후 늦게건 찾아올 사람이 없었기에 이불을 덮어쓰고 계속 잠을 청했다. 점점 커지는 굉음에 놀라 뛰어나간 남편은 정수리가 훤하게 비치는 백발의 노파가 지팡이로 낡은 철대문을 부서져라 두드리고 있는 것을 대문 틈으로 내려다보았다. 누구를 찾아왔는지 물어도 대답하지 않고 지팡이를 계속 휘두르는 노파에게 남편이 그만하라고 소리쳤지만 노파는 말 없이 대문을 두드릴 뿐이었다. 결국 내가 문을 열고 나가자 노파는 그제서야 지팡이를 멈췄다. 나는 키가 크고 허리가 구부정한 그 노파가 누군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주아야, 하고 나를 부르는 허스키한 음성을 듣고 나서야 나는 그녀가 골목 첫 집에 사는 쌍둥 이모라는 것을 눈치챘다. 눈이 커다랗고 턱이 갸름해 아름다웠던 그녀의 얼굴은 볼과 눈구멍이 움푹 패여 해골처럼 변해버렸다. 나는 이 노파가 그녀와 동일인이라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나보다 열 살 많은 쌍둥이 형제를 키우고 있던 그녀는 쾌활하고 정이 많았다. 그녀는 아장아장 걷는 나를 데리고 이사온 엄마와 금세 친해졌다. 그녀는 교육열이 남달랐는데, 엄마가 일류대학을 나온 부잣집 딸이라는 것을 알고는 홀딱 반해버렸다. 그녀가 다른 여자들에게 어떻게 말하고 다녔는지, 며칠이 지나자 동네에서 엄마의 배경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생각도 없었던 엄마를 부추겨 영어 그룹 과외를 시작하게 한 것도, 학부모들에게 입소문을 내 줄을 서게 만든 것도 그녀였다. 그 보답으로 엄마는 쌍둥이 중 한 명 분의 수업료를 면제해주었고, 쌍둥 이모는 친정에서 보내오는 제철 과일과 갓 담은 김치를 나눠주었다. 쌍둥이가 좋은 대학에 합격하면서 과외를 그만둔 뒤로도 그녀는 엄마의 열렬한 아군이었다. 그녀는 우리 부모가 자주 싸우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그게 다 아빠 탓이라며 편들어주었고, 엄마가 늦게까지 밖에서 술을 마시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면서도 그것 또한 아빠와의 관계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이라며 이해해주려 했다. 둘은 거의 매일 우리집 거실 등나무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학생들이 오기 전까지 수다를 떨었다. 나는 거실 바닥에 엎드려 자는 척하며 그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그 시간이 오래 지속될 줄 알았다.
엄마 편이었던 쌍둥 이모가 적으로 돌변한 것은 한순간이었다. 엄마와 아빠가 별거를 시작하고 엄마가 과외를 모두 정리한 뒤로 둘의 왕래가 뜸해졌다. 그래도 그녀는 가끔 과일을 가지고 우리집에 들르곤 했는데, 어느 날 늦은 시간까지 내가 혼자 있는 것을 보고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다음날 아침에 집으로 돌아갔지만 엄마는 연락도 남기지 않았고 학교에 다녀온 뒤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 쌍둥 이모가 다시 찾아와 나를 데리고 나가려는데 마침 엄마가 대문을 열고 들어왔다. 쌍둥 이모는 엄마에게 아이를 혼자 방치하고 무슨 짓을 하고 다니냐며 화를 버럭 냈고, 자신이 잘못해도 늘 당당했던 엄마는 남의 집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늘 사이좋던 둘은 우리집 마당에서 소리소리 지르며 싸웠고, 그후로 다시 보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집은 담의 한편이 기찻길과 맞닿은 막다른 집이라 어디를 가든 그 집 앞을 지나다녀야 했는데, 둘이 싸운 뒤 나는 골목을 나설 때마다 그녀를 마주칠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를 만나면 그녀는 엄마가 집에 있는지 묻곤 했고, 그때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내 말이 거짓임을 눈치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번 거짓말을 했다. 그녀가 엄마의 험담을 얼마나 하고 다녔는지 동네 아줌마들은 나를 보면 딱하다는 표정을 지었고, 간식이라도 하나 더 챙겨주고 싶어했다.
그녀가 아직도 이 동네에 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이십 년 만에 돌아온 동네는 카페 거리로 바뀌어 있었고 기찻길은 산책로로 변해 있었다. 신축된 건물도 있고 오래 전 주택의 외관을 그대로 보존한 채 가게를 운영하는 곳들도 있어서 간판이 없으면 가정집인지 식당인지 카페인지 한눈에 알기 어려웠다. 골목 첫 집은 우리집처럼 마당이 있는 단층집 그대로였는데 난 그곳에 여전히 쌍둥 이모가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엄마와 쌍둥 이모가 왕래를 하며 지냈을지 궁금해졌다. 나는 그녀가 대문을 무리하게 두드린 것을 금세 잊고 집안으로 들이며 그동안 잘 지냈는지 인사를 건넸다. 인사에 답하지 않고 나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는 그녀의 얼굴은 칠십대 중반이라고 하기에 심하게 주름져 있었다. 그녀는 쇳소리 섞인 음성으로 짧게 말했다.
“냄새가 너무 지독해. 당장 치워.”
나는 몰랐으나 남편은 곧바로 그 냄새가 무슨 냄새를 가리키는 것인지 알아들은 듯했다. 차마 아직 쓰기 힘든 이야기인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그 냄새는 엄마의 시신이 부패하던 냄새를 말한다. 엄마는 안방에서 고독사했다. 방에서 새어나간 지독한 냄새를 수상히 여긴 이웃들의 신고로 엄마는 한 달 만에 발견되었다. 연락을 받고 집에 먼저 왔던 남편은 특수 청소 업체를 불러 죽음의 흔적을 모두 없앤 뒤에야 나를 집에 들어올 수 있게 했다. 뒤늦게 온 나는 집에서 어떤 냄새도 맡지 못했기에 다 해결된 줄로만 알았다.
“남편이 전문가를 불러서 말끔하게 청소했어요. 이제는 냄새 안 나니 걱정 마세요.”
“그러면 이 냄새는 뭐야?”
우리는 무슨 냄새가 나는지 맡아보려 노력했지만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다. 방에 오래 있어 코가 둔해진 게 아닌가 싶어 아무 냄새도 안 난다고 장담하지는 못했다.
“저희가 느끼기에 이상한 냄새는 안 나는 것 같은데요? 들어와서 맡아보시겠어요?”
그녀에게 안방에 들어와 냄새를 맡아보라 하자 기겁을 하더니 손사래를 치며 마당에 버티고 섰다.
“이 냄새가 우리 집 거실까지 들어오는데 너희가 못 맡는다고? 이것들이 누굴 바보로 아나. 제대로 치워. 내가 매일 확인할 거야.”
“약품으로 장판이랑 벽을 여러 번 닦아냈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한번 더 업체를 부를 테니 걱정 말고 기다리세요.”
남편은 그녀가 더 화나지 않게 수습하려 했다. 평소 같았으면 나도 남편처럼 행동했을 테지만 그날따라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니,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와서 할말이 그거밖에 없어요?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았어도 그렇지, 어이가 없네.”
그녀는 희번덕한 눈으로 나를 노려보더니 소리쳤다.
“걔도 죽고 나도 죽어. 그게 뭐가 별난 일이라고 유난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서 부글부글 끓기만 하던 것이 팍 터져버리는 듯했다.
“사람이 죽었다고! 당신이 죽으면 당신 새끼들한테 가서 똑같이 유난 떨지 말라고 지랄해줄 거야. 당장 나가!”
나는 그녀를 대문 밖으로 내쫓았다. 그녀는 지팡이를 짚고 휘청거리다 대문을 나서면서도 냄새가 난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에게 치매가 온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녀가 돌아가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더 싸우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남편은 우리집으로 돌아가기 전 락스를 푼 물로 안방의 바닥과 벽을 닦아내면서 예민한 사람은 냄새를 맡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너무 화내지 말라고 나를 다독였다. 남편이 나와 함께 남아 유품을 정리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그를 돌려보내고 혼자 남았다.
이제는 쌍둥 이모라고 부르기도 싫은 그 노인네는 다음날도 새벽부터 찾아왔다. 벨을 누르면 될 것을 또 지팡이로 대문을 두드려댔다. 들은 척하지 않으려 애썼지만 챙챙 울리는 쇳소리가 거슬려 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날 죽이려고 이러는 거지? 제발 저 냄새 좀 치우라고.”
그녀가 무슨 냄새를 맡는 것 같기는 했지만 나는 아무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다른 집에서 나는 냄새를 맡았거나, 착각하는 게 아니냐고 묻자 그녀는 내게 말하며 킁킁거렸다.
“너, 시체 썩는 냄새 못 맡아봤지? 한번 맡으면 잊을 수가 없어. 경찰들이 온 날 나는 너희 마당에 들어와서 확실하게 그 냄새를 맡았어. 지금 나는 이 냄새랑 똑같아.”
그녀가 정상이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이 강렬하게 들었다. 그냥 돌려보내도 되었을 텐데 그녀를 공격하고 싶어졌다.
“늙었으면 곱게 미쳐야지, 지 몸뚱이에서 나는 냄새를 어디다 치워라 마라야. 남 죽은 데 와서 패악질이나 하고 앉아 있는 노인네를 아들 새끼들이 들여다보기나 하겠어?”
아들들을 들먹이자 그녀는 지팡이를 짚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귀한 아들들을 입에 올리지 말라고 소리질렀다. 그녀가 소리를 지르면 나는 더 크게 소리질렀다. 난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아무렇게나 욕지거리를 해댔다. 그녀도 나에게 알아들을 수 없는 욕으로 맞섰다. 이른 아침 골목의 카페와 식당은 모두 영업 전이라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이라고는 우리 둘뿐이었으므로 마음 놓고 소리를 질러댔다. 하도 소리를 질러 탈진하다시피해서 돌아간 그녀는 다음날 새벽이 되자 또 찾아와 문을 두드렸다. 나는 신나게 싸울 준비를 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마당으로 들어선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중얼거렸다.
“나쁜 년, 염병할 년. 제 어미를 혼자 죽게 하다니. 천벌받을 년. 혼자 뒈질 년. 넌 니 애미 임종도 못 지켰지? 다 썩어 문드러져서 버러지가 들끓는 시체도 못 봤지? 그 냄새가 얼마나 구역질 나는지도 모르지? 애미가 아파도 코빼기도 안 비치던 년이 여기가 어디라고 돌아와?”
이 욕을 듣는 순간, 애초에 그녀가 찾아온 이유가 다른 게 아니라 나를 이렇게 비난하고 싶어서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 욕은 자기 아들들을 향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나는 마당 수돗가에 놓인 세수 대야를 발로 걷어차며 말했다.
“당신도 혼자 죽을 거야. 다 썩어 뼈만 남을 때까지 아무도 찾지 않을 거야. 온 동네가 썩는 냄새로 덮여도 아들 새끼들은 꿈에도 모를 거야. 엄마가 남긴 돈으로 희희낙락 살아갈 궁리나 하겠지. 귀찮은 혹 하나 사라졌다고 신들이 나겠지.”
나는 입에 올려본 적도 없는 지독한 말들을 찾아내 신나게 악담을 퍼부었다. 나는 싸움보다는 악담이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았다. 내 몸에 새겨진 부모의 유전자 덕택인지 나는 지치지도 않고 참 잘도 싸웠다. 그녀는 냄새로 시작해서 그녀가 아는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춰내며 나를 공격했지만 아주 오래된 이야기인데다 다른 사람이 듣고 있는 게 아니라 별 타격감이 없었다. 난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음에도 혼자 남은 자의 외로운 마음을 공격하자 그녀는 서서히 무너지며 전의를 상실했다. 매일 찾아오던 그녀는 엿새만에 발길을 끊었다. 쓰다보니 자랑처럼 보이지만 나는 이게 악행이라는 것을 알고 썼다. 그리고 이 일기는 방치가 아니라 싸움에 대한 것임을 다시 밝혀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