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태생
그는 악인의 자식이다. 그 사실은 평생 그를 짓눌렀다. 자기 얼굴에 부모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도 아닌데 그는 누가 부모의 정체를 알게 될까 노심초사했다. 그의 부모를 아는 사람들은 그들을 인간 말종이라 불렀고, 그들이 천벌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을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게 진심이 아니라 자신들의 악행이 부끄러워 합리화하는 것이라 생각했고, 아무리 그래도 약간의 양심은 남아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자서전을 쓰겠다며 그에게 대필 작가를 알아봐달라고 했을 때, 그는 양심이 누구에게나 선천적으로 장착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들의 내력을 모른다면 모를까, 모든 걸 아는 그로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들이라고 부모의 인생을 다 알지 못할진대, 그가 부모의 인생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은 그들이 자신들의 인생 역정을 틈만 나면 자랑스러운 듯 떠벌렸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는 세끼도 배불리 먹지 못하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여러 남매 사이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전쟁도 피해간 고립무원의 산골 출신이었고, 어머니는 광역시에 자리 잡은 피란민 가정 출신이었으나 찢어지게 가난하긴 마찬가지였다. 사실 둘은 52년 출생인 동갑내기였지만 법적으로는 세 살 차이였다. 아버지의 부모는 출생신고를 따로 하지 않고 전쟁통에 죽은 형의 호적으로 살게 했다. 어머니의 부모는 앞서 태어난 두 아이가 연달아 죽자 딸이 태어난 지 일 년이 지나 이 애가 죽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든 뒤에야 출생신고를 했다. 그들의 부모는 중간에 애매하게 낀 자식의 이름을 한 번에 맞게 부른 적이 별로 없었다. 그들은 종종 다른 형제자매들과 헷갈렸고, 없어져도 금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다. 둘은 자신들의 학력이 국민학교 졸업에서 끊긴 이유를 거기서 찾았다. 첫째는 집안의 대들보여서, 막내는 다 자란 형제자매의 원조로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지만, 중간에 낀 아이들은 공부를 잘하지 않고서는 중학교 문턱을 밟기도 어려웠다. 그의 부모는 밥상머리에 앉아 삼시세끼를 배불리 먹여주고, 마음껏 공부하게 해주며, 좋은 집에서 편히 잘 수 있게 해주는 부모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각인시키기 위해, 그들의 내력을 반복 주입했다. 어렸던 그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부모가 세상에 흔치 않은 극빈층 출신인 줄 알았고, 거기서 탈출하기 위해 무슨 짓을 해도 용서가 되는 줄 알았다.
그의 아버지는 막노동꾼으로, 어머니는 버스 안내양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들은 음악 감상실에서 처음 만났고 서로를 대학생으로 착각했다. 그날 둘은 통금 단속을 피해 골목을 필사적으로 뛰어 함께 도망다녔다. 그것은 본의 아닌 생존력 테스트, 위기 극복 능력 테스트가 되었다. 어머니는 다람쥐처럼 발 빠르게 골목을 달렸고, 담과 맞닥뜨리면 아버지가 어머니를 번쩍 들어 가볍게 뛰어넘었다. 밤거리를 달리면서 둘은 서로가 있다면 이 세상을 무사히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밤 여인숙에 찾아 들어간 둘은 상대가 대학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오히려 안심했고, 해가 뜨는 줄도 모르고 서로의 짧은 인생사를 이야기하며 울고 웃었다. 그는 과연 처음 만난 사이의 남녀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는데, 아무 반응하지 않는 자신에게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매번 자기 인생사를 늘어놓는 부모를 보면 수긍할 수 있었다. 둘은 너무 닮은 한 쌍이어서 그들의 자기 연민은 상대를 사랑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켰고, 결혼까지 생각하게 했다. 둘은 돈이 없었기에 어머니가 버스 회사의 기숙사를 나와 아버지의 단칸 사글셋방으로 들어가 함께 사는 것으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이 시절에도 그들이 악인이었을지 궁금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언제부터 그들에게 악이 자라났는지 알고 싶었다.
그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십장이었다. 어머니는 그를 임신해 안내양을 그만두었고 그가 사람 꼴을 갖출 때까지 육아에 전념했다. 아버지는 지방의 공사판을 전전하느라 집에 잘 들어오지 못했기에 어머니는 그를 혼자 키운 거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외벌이로 근근이 살다가는 단칸방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 같아 불안했던 어머니는 그를 집에 놔두고 일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배운 게 없는 그녀는 식당일도 청소일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벌어도 살림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노력한 만큼 수당이 돌아오는 방문판매를 시작했다. 옷, 화장품, 그릇, 냄비까지 팔아보지 않은 것이 없었고, 가보지 않은 지역이 없을 정도로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녀에게 한 번이라도 물건을 사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그녀가 가져가는 것이라면 뭐든 샀다. 심지어 그녀가 입은 옷까지 벗겨갈 정도로 그녀가 선택한 아이템은 인기였다. 부부는 휴일도 없이 쉬지 않고 돈을 벌었으나 그들이 가진 포부에 비해 너무나 적은 돈이었다.
부부의 첫 꿈은 자기 명의의 집에서 가족이 매일 함께 지내는 것이었다. 사글세에서 전세로 옮겨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둘 다 지방을 오가느라 함께 지내기는 쉽지 않았다. 둘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집 장사를 시작하고서야 함께 살 수 있었다. 헌 집을 싸게 사서 아버지가 새것처럼 고치면, 어머니는 그 집을 비싸게 팔았다. 그들이 만지는 돈의 단위가 전보다 커지면서 아버지의 명의로 마당이 딸린 주택을, 어머니 명의로 초등학교 앞 작은 상가를 매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울로 가고 싶었고, 더 좋은 집과 더 많은 돈을 원했다. 잔디 깔린 넓은 정원이 있는 이층 주택과 대단지 아파트를 사고 싶었고, 각각 수입차를 몰고 싶었다. 서울 요지의 빌딩과 바닷가 휴양지의 별장을 가지고 싶었고 요트도 하나 있었으면 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업은 그 욕망을 채우기에 턱없이 보잘것없었다.
아버지는 일하면서 알게 된 공무원을 통해 토지 개발 정보를 미리 얻게 되었고, 그와 공모하여 땅투기를 계획했다. 더 큰돈을 벌기 위해 자본이 필요했으므로 그는 친척, 친구, 지인들에게 고이율의 배당금을 미끼로 투자금을 끌어모았다. 폰지 사기가 다 그렇듯, 처음 일 년간은 배당금을 제대로 지급하면서 투자자를 유혹했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놀라운 금액을 본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빌려다 투자했고 자신들의 지인들까지 소개해 끌어들였다. 투자자는 점점 늘어나 마을 사람 중 그들과 돈으로 얽히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아버지는 투자자들에게 자신이 하는 주택 보수 사업 확장 명목으로 투자를 받았을 뿐, 토지 개발 사업 투자에 관해서는 함구했다. 애초에 그는 개발로 얻게 될 막대한 이익을 나눌 생각이 없었다. 그는 투자 받은 돈을 모두 차명계좌로 빼돌리고 개발 예정 지역의 땅을 매수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사업을 부도내고 가족과 함께 야반도주하는 수순을 밟았다. 그들은 외국도 지방도 아닌 서울로 상경해 재개발이 확정된 허름한 동네에 숨어 살았다. 그들을 도운 건 주민등록 전산화도 금융실명제도 되지 않았던 그 시대 자체였다.
훗날 그가 전학한 초등학교를 찾아낸 투자자들이 학교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그를 앞세워 집으로 쳐들어갔다. 그의 집은 산동네에 있었는데 곧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낡아 있었다. 그의 부모는 지방을 돌아다니며 투기에 열을 올리고 있어서 밤늦게 돌아오곤 했기에 낮에는 그가 혼자 집을 지키곤 했다. 화가 난 어른들은 그런 집에서 밤늦게까지 밥도 못 먹고 혼자 있는 그를 불쌍히 여겼고, 그의 부모가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망했다고 믿었다. 늦게 돌아온 그의 부모는 투자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잘해보려 했지만 운이 따라주지 않아 이렇게 됐다며 미안하다고 읍소했다. 그리고는 채무가 아니라 투자금이라 법적으로 갚을 의무는 없으나 인도적 차원에서 힘이 닿는 한 갚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의 부모는 마지못해 그들에게 푼돈을 주고는 다시 다른 곳, 그러니까 그들이 사놓은 다른 재개발 지역으로 숨어들어갔다. 그들은 빼돌린 돈으로 땅 투기를 반복하며 큰 부를 일궈나갔다. 결국 그가 중학생이 되던 해 부모는 그들이 갖고 싶었던 것들을 거의 다 가질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그는 궁지에 몰린 부모가 불쌍했고, 그들을 몰아세우는 사람들이 나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 자란 뒤 부모가 자신들의 사기 행각을 무용담처럼 늘어놓는 것을 듣고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고,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혐오감을 느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감방에 갈 각오까지 하고 가족을 위해 일을 벌인 거라고 하면서 그의 용기와 희생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아버지는 서울로 올라와 개명하고 외모까지 갈아엎어가면서 익명의 군중 속으로 숨어버리자고 한 것이 어머니라며 그녀의 판단력과 대범함을 칭송했다. 둘은 통행금지 단속을 피해 달아나던 모험담을 말할 때처럼 신나 보였고, 죄책감이나 양심의 가책 따위는 조금도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속은 이유가 쉽게 일확천금하고자 하는 욕심 때문이었다면서 자신들과 다를 바 없다고 하는 것을 보고 그는 두려움까지 느꼈다.
그는 부모가 싫었고, 그들의 자식인 자신도 싫었다. 그들의 자식이라서 좋았던 적은 없었고, 부모와의 즐거운 기억도 거의 없었다. 그는 유아기를 단칸방 안에서 보냈다. 어머니는 그가 혼자 밖으로 나갈까봐 그의 다리와 화장대에 다리를 끈으로 묶어놓고 출근하곤 했다. 그럴 때면 그는 어머니가 상에 펼쳐둔 음식을 먹고 혼자 놀다 잠이 들었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어머니가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목이 다 쉬고 눈물과 콧물이 허옇게 말라 있었다. 스스로 끈을 풀 수 있을 정도로 자랐을 때는 밖에서 문을 걸어 잠가놓고 나갔는데, 어느 날 창문으로 탈출한 적도 있다고 했다. 사실 그는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어머니가 아이를 두고 돈을 벌러 다니며 고생하던 시절을 회상할 때 딸려 나온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어린 자신에 대한 안쓰러움이나 연민 같은 것을 전혀 느낄 수가 없어 서운했다. 그리고 자라는 동안 늘 혼자인 기분이 들었던 이유가 방치된 경험 때문이 아니라 어머니의 그런 태도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기억에도 없는 그 시절 이후에도 그는 내내 혼자였다. 집은 점점 더 넓고 좋아졌지만, 부모는 그 집을 누릴 여유도 없을 정도로 바빴다. 그는 넓은 집에 혼자 있는 게 싫어서 밖을 돌아다니며 하루를 보냈다. 그는 시간 대부분을 골목이나 대문 앞, 남의 집 마당에서 지냈다. 유치원에 간 친구, 학교에 간 누나와 형들을 기다렸다가 함께 놀았다. 이웃은 해가 져도 집에 들어가지 않는 그를 데려다가 밥을 먹이고 씻겼고, 부모가 올 때까지 그를 돌봤다. 그는 이웃의 집에서 처음으로 가정의 따뜻함을 경험했는데, 아예 그 집에 눌러살고 싶을 정도로 행복했다. 이웃들의 형편은 대체로 좋지 않았으나 방치된 아이를 돌봐줄 정도의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그들은 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도 혼자 밥을 굶고 있는 건 아닌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자는 건 아닌지 자주 들여다보았다. 그는 이웃 사람들을 이모, 삼촌 같은 친근한 호칭으로 불렀고 그들도 그를 친조카처럼 대해주었다. 그의 부모도 형님, 동생 하며 친분을 쌓긴 했지만 인간적인 감정 때문이 아니라 자기들이 써먹을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기 때문 이었다. 서울로 찾아온 사람들은 친구의 부모, 옆집 아줌마, 슈퍼 아저씨처럼 그를 잘 돌봐주던 이웃들이었다. 부모의 사기 행각을 몰랐던 어린 그는 다시 볼 수 없을 줄 알았던 그들이 반가웠고, 여전히 혼자 있는 자신을 그들이 다시 구제해주길 바랐다. 그러나 망해서 다 쓰러져가는 집에 살게 된 자기 가족을 모질게 대하는 그들에게 그는 서운함을 느꼈고, 어린 시절의 낙원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 부모의 자화자찬과 상대방에 대한 칭송, 자신들의 삶의 긍지에 관한 이야기를 퍼즐처럼 맞춰가다보니 왜 그의 가족이 고향을 버리고 아무도 없는 서울로 야반도주를 해야 했는지, 사람들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전학을 왜 여러 번 해야 했는지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매번 재개발 지역의 허물어져 가는 집으로만 옮겨 다녔던 것도, 그가 살았던 곳이 모두 재개발된 것도 이미 계획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그가 사랑했던 이웃들 앞에서 눈물로 읍소했던 부모의 연기와 뒤돌아서 이웃을 조롱했던 말들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부모는 사춘기가 된 자식의 경멸을 느꼈는지, 늘 하는 이야기에 새로운 레파토리를 추가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 너를 위해 한 일이다. 다시 태어나도 그렇게 할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재산은 네 것이 될 것이다.’
중학생이 된 그는 부모가 원래 악인으로 태어난 건지, 자기 때문에 악을 저지르고 악인이 된 것인지 궁금했다. 그들이 그렇게 된 게 자기 탓인 것 같아서 죄책감도 들었다. 그는 부모의 자식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그들을 얼마나 닮았는지 스스로 마음속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는 반 아이들의 부모가 궁금했다. 누구의 부모가 가장 나쁜 사람인지, 인간 말종인지, 상종 못 할 인간인지 알고 싶었다. 그는 공개수업이나 학부모회의 때 참관하러 온 부모를 관찰했다. 자식과 부모가 얼마나 닮았는지, 나쁜 점은 어떻게 발현되는지 유심히 바라보았지만, 겉으로 보아서는 알 수가 없었다. 교실 뒤편에 조용히 서 있던 그의 어머니야말로 교양이 넘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가 돈만 알고 양심도 없는 사기꾼이라는 것을 겉으로는 도저히 알아볼 수 없었다. 그의 친구들은 그의 어머니가 가장 예쁘고 우아하다고 했다. 치과와 성형외과, 피부과가 합작하여 만들어 낸 새로운 어머니여서 그렇다고 하고 싶어 입이 실룩거렸으나, 제 얼굴에 침 뱉기라 혼자 생각하고 말았다.
반 아이들은 가끔, 아니 자주 자기 부모의 흉을 보았다. 아이들이 말하는 부모의 단점이나 싫은 점은 그의 부모가 가진 약점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하찮았다. 경제적으로 무능해 용돈을 올려주지 않는다거나 하나 마나 한 잔소리를 쉬지 않는다거나 자기들끼리 너무 싸워대서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면 이상하게도 가족의 깊은 정이 느껴졌다. 그의 부모는 사이가 아주 좋았는데도 마치 딱 맞는 볼트와 너트같았을 뿐, 거기에 따뜻한 감정이 섞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겉으로 보면 그들은 이상적인 부모여서 그가 욕할 구실이 없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그가 원하는 것은 모두 다 해주고 싶어했고, 용돈도 넉넉히 주었다. 그가 공부를 잘했으므로 더 잘하라고 하지 않았고, 그가 허튼짓하지 않았으므로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은 양심도 버리고 인간이길 포기하면서까지 자식을 위해 인생을 희생한 사람들이었다. 그는 부모의 추악한 과거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욕심을 욕하고 싶었지만 그건 아이들이 모여 가볍게 떠드는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아이들과 이야기해본 결과 부모 중 한 명이 이상해도 나머지 한 명은 상대적으로 멀쩡한 경우가 많다는 걸 알았다. 인성이 좋은 아이의 어머니가 나쁜 사람인 경우도 있었고, 문제아로 유명한 아이의 어머니가 사랑이 가득한 사람인 경우도 있었지만 어쨌거나 부모 둘 중의 한 명은 닮았다고 했다. 둘 다 나쁜 경우는 그의 부모뿐인 것 같았고, 그는 결국 그 둘을 똑 닮아 자신도 악인이 될 거라는 생각에 절망했다. 사춘기 소년이었던 그는 모든 게 다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살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살면서 알게 된 결론은 태생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모두를 위한 최선의 선택을 하겠다고 해놓고 결국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하곤 했고, 결국 나쁜 길을 택하곤 했다. 그는 잘못하는 줄 모르고 잘못을 저질렀고 그게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4. 기만
사람이 죽어나간 집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다. 작은 흠만 있어도 어떻게든 값을 깎으려는 게 사람의 욕심이라 제값을 받기 위해 굳이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나는 소문이 닿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있는, 번화가의 상가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부동산을 선택했다. 집을 떠난 뒤로 한 번도 와보지 않아 동네가 변한 것을 모르고 있었는데, 그동안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번화가가 되어 있어 집을 파는 데 큰 어려움이 있지는 않을 듯했다. 하루에 두세 번 화물차가 지나던 기찻길과 담을 맞댄 집이라 사는 동안 편치 않았으나 산책로가 생기자 가장 목이 좋은 자리가 되었다. 어차피 이런 곳에 사람이 들어와 살지는 않을 것이고 재건축하거나 개축해 상가로 쓸 것이 분명하므로 양심에 찔리지는 않았지만 쌍둥 이모가 난동 부린 걸 생각하면 누군가는 악취를 맡거나 흔적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집을 파는 것에 회의적이었다. 아직 엄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집을 어떻게 곧바로 처분하냐는 것이었다. 남편은 내가 어렸을 때부터 살았던 집이라 짐이 워낙 많고 엄마가 그렇게 된 이상 정리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니 천천히 결정하자고 했다. 남편은 부모와 사이가 좋은 아들이어서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집과 가족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팔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는 게 더 어려웠다. 남편에게 나와 내 부모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 적이 없었으므로 남편이 그렇게 말할 만했으나 정이 많아 무엇 하나 쉽게 버리지 못하는 그에게 질리는 기분이었다. 남편은 내 상태도 좋지 않은데 쌍둥 이모나 다른 사람들이 또 찾아와 시비를 걸까 걱정스럽다며 사람을 불러 정리하고 일단 함께 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더 말리지 못하도록 그가 있는 자리에서 적당한 부동산을 검색해 전화를 걸어 집을 내놓고, 혼자 남아 짐을 정리한 뒤에 집이 팔리고 나면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사실 처음부터 집을 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그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구실이 필요했다. 그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더라면 곧바로 집을 내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했으나 어쩌면 그도 어렴풋이 알아챘는지 아니면 그의 마음 한편에 나와 함께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던 건지, 더는 함께 가자고 권하지 않았다.
남편이 돌아가면 뭔가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막상 혼자 남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기온이 급속하게 상승하는 여름의 문턱에서 나는 밤새 시들어 있다가 새벽녘 쌍둥 이모가 벨을 누르면 시퍼렇게 살아났다. 골목과 대문,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싸우다보면 몸이 순식간에 뜨거워졌고 피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늙은 쌍둥 이모는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젊지는 않지만 늙지도 않은 나는 견딜 만했다. 나는 배려 차원에서 이모를 마당으로 드리워진 담 그늘 속으로 끌고 들어가 싸움을 계속했다. 싸울수록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뻗쳐 그 기세로 당장이라도 짐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그녀가 돌아가고 집안에 들어서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햇빛은 나보다 먼저 집안 깊숙이 들어가 모든 것을 뜨겁게 달궈놓았다. 안방과 거실 창에 오랫동안 달려있던 자카르 커튼을 모조리 뜯어서 버린 탓에 빛과 열기를 막을 길이 없었다. 햇빛이 닿지 않는 곳은 안방의 창문 밑뿐이었으나 그 방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나는 홑이불을 뒤집어쓰고 거실에 누워 소파나 벽이 잠깐씩 만드는 그림자를 찾아 몸을 포갰다. 땀범벅이 된 채, 자는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상태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깨어 있다고 생각하고 하루를 보냈는데 그게 다 꿈속의 일이었던 날도 있었고, 꿈을 꾸고 있는 줄 알았는데 현실이었던 날도 있었다. 꿈이 너무 생생해서 오래전에 헤어지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나 이미 죽은 사람을 만나고도 잠에서 깬 뒤에야 꿈이라는 것을 알았다. 쌍둥 이모가 찾아오는 것이 싫었지만 그녀는 나를 꿈에서 꺼냈고, 지리멸렬한 시간을 하루 단위로 끊어주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오지 않게 되면서부터 나는 시간 감각을 완전히 잊었다. 얼마간은 그녀가 오지 않은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하루가 아직 지나지 않았다고 착각했다. 햇빛이 내 살갗을 태우며 지나가도, 그 빛이 모두 사라져도 알지 못했다. 눈을 뜨면 햇빛 속이거나 어둠 속이었는데 멍청하게도 그게 그날인지, 다음 날인지 분간도 못 하고 다시 잠들었다. 배가 고파도 잤고, 배가 고팠지만 잤고, 배가 고파서 잤다.
나는 그토록 오래 자본 적이 없었는데, 그건 죽으면 계속 자게 되기 때문에 가능한 안 자는 게 남는 거라는 엄마의 세뇌와도 같은 가르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 집에서는 도무지 깊이 잠들 수 없었다. 거실의 미닫이 전면 창이 안과 밖을 나눠주고 있지만, 미닫이만 열면 마루와 마당이 연결되고, 대문을 열면 골목과 마당이 연결되는 구조라 누군가 마음만 먹으면 쉽게 침입할 수 있었다. 어렸을 적 나는 자기 전 대문 걸쇠를 잠그고, 미닫이문의 나사를 조인 뒤, 커튼을 내렸다. 다른 방의 창문을 잠그고 커튼도 모두 내리고 나서 주방 옆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손바닥만한 환기창이 있는 그 방은 문만 잠그면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요새와도 같았다. 엄마가 집을 비울 때면 난 그 방에 들어가 불을 켜둔 채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잤다. 그렇게 자다보면 온갖 소리가 다 들려왔다. 철로에서 들려오는 취객의 주사, 골목 어귀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비명, 대문으로 다가오는 발소리, 모든 소리가 나를 향한 것 같아 자주 선잠에서 깨곤 했다. 생각해보면 내가 문단속을 잘해서가 아니라 운 좋게도 나를 타겟으로 삼은 범죄자가 없어서 죽지 않고 무사히 자랐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제 문을 열어놓은 채로 정신없이 잘 수 있는 이유는 내가 용감한 어른이 되어서가 아니라, 불운이 덮쳐올 때는 아무리 문단속을 잘해도 결국 속수무책으로 휩쓸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자는 동안 남편이 매일 전화를 걸었지만, 나는 전화를 받지 않거나 받지 못했다. 밥은 먹었는지, 집을 보러 온 사람은 있는지 묻는 문자메시지에 나는 늦게라도 답신을 보내곤 했다. 밥을 먹지 않고도 잘 챙겨 먹고 있다고, 집을 보러 온 사람이 없어도 있었다고 답했다. 며칠이 지나자 남편은 언제 돌아올 것인지 전화로 묻기 시작했는데, 나는 대답 대신 유재는 잘 지내고 있냐고 되물었다. 남편도 그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그럴 리가 있겠냐고 역정을 냈다. 내가 없으면 딸을 돌보지 못하는 거냐고 묻자, 그동안 큰소리 한 번 낸 적 없던 그가 이젠 못 참겠다고 소리치며 전화를 끊었다. 그때 나는 그와 연결된 끈이 툭 하고 끊어진 기분을 느꼈는데, 내가 원하던 게 바로 그 느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뒤로 우리는 마치 생존 보고처럼 일방적인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만 할 뿐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나는 우리가 그렇게 서서히 멀어져 아무 관계 없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다.
집을 보러 온 사람은 집을 내놓은 다음날 매물을 직접 확인하러 온 중개인뿐이었다. 그는 이런 계절에는 매물이고 손님이고 다 녹아 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며 여름 휴가철이 지나 더위가 한풀 꺾여야 거래가 진행될 거라고 했다. 그는 집을 좀 보겠다고 하더니 벽을 툭툭 치고, 창틀을 흔들어가며 지은 지 오십 년은 넘어 보인다고 말했다. 아빠의 능력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집이었던 이 집은 우리가 이사 왔을 때도 지은 지 십 년 가까이 되었지만 그래도 동네에서 튼튼하게 잘 지은 집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겉보기엔 다른 집들과 다를 바 없는 반양옥이었는데 건축주였던 은행원이 자신의 부모님에게 선물하기 위해 철근을 두 배로 넣고 콘크리트로 벽을 두껍게 친 집이라고 했다. 내가 엄마에게 들은 이야기를 중개인에게 전하자 어차피 재건축해야 할 거라 부수는 데 힘만 들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응수했다. 그는 살면서 보수를 한 번도 안 한 것 같다며, 오래 비워둔 집이냐고 물었다. 세 식구가 함께 살 때는 아빠가 집을 쓸고 닦고 철마다 고쳐가며 살았다. 아빠가 지방에 내려가고 나 혼자 지내다시피 했을 때, 수도관이 얼어 터지거나 보일러에 문제가 생기면 아빠가 올라오거나 영미 이모의 남편이 와서 고쳐주곤 했다. 내가 집을 떠난 뒤에는 어땠는지 잘 모른다. 집이 언제까지 비어있었고, 언제 엄마가 돌아왔는지, 누구와 살았는지, 어디가 고장 났었고 어떻게 수리하며 살았는지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아뇨. 사람이 계속 살았어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이 동네에 이렇게 남아 있는 집들이 거의 없는데, 혹시 비워놨다 내놓으셨나 싶어서요. 한창 개발될 때 안 파시고 지금 내놓으신 사정도 궁금하고요.”
“무슨 사정이 있겠어요. 엄마가 살던 집이고, 전 지방에서 사업하느라 신경쓸 여력이 없어서 처분하려는 거예요.”
“아, 그런 거였군요. 아까 말씀드렸듯 장이 좋지 않아서 시세보다 가격을 낮춰 급매로 내놓지 않으면 보러 올 사람도 없을 거예요. 그리고 죄송하지만, 집에서 그런 일도 있었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아마 제값을 받기 힘들 겁니다.”
“그럴 것 같으면 공동 매물로 내놔봐야겠네요. 그래도 안 팔리면 안 팔아도 돼요.”
그렇게 말하니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남편과 멀어지고자 하는 마음과 이 집을 영원히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동시에 나를 충동질한 것이므로 안 팔아도 그만이었다. 사실 한 명이 찾아온 것도 귀찮아서 다시 매물을 거둬들이고 싶은 심정이기도 했다.
“사모님, 기분 상하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그래도 내놓으신 거, 시도는 해보셔야죠. 안 팔리는 집도 파는 게 제 일이지 않습니까. 만족스러운 금액에 성사시킬 테니 저희에게만 맡겨주세요.”
“아니, 그런데 사람이 죽어나간 집에 누가 제값을 치르고 들어오려고 하겠어요?”
“말하지 않으면 알 리가 없죠.”
흥정을 하려고 한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는데 그는 금세 태도를 바꾸고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그는 집안을 둘러보다가 SNS에 매물을 올려도 되겠냐 물었다. 처음에 나는 피곤하고 귀찮은 마음에 거절했지만, 그는 그래야 매수자가 빨리 나선다느니 가격을 더 받을 수 있다느니 하면서 나를 설득했다. 기껏해야 사진 몇 장 찍을 줄 알고 동의하고 말았는데, 동영상을 찍겠다며 휴대폰을 켰다. 그는 집에 들어서서부터 거실과 주방, 두 개의 방과 주방 옆의 골방까지 동영상에 담을 거라고 했다. 심지어 롱테이크로 찍겠다며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잡동사니를 치워달라고 했다. 그를 내보내는 것과 집을 치우는 것 중 무엇이 덜 귀찮은지 생각해보니 후자인 것 같아서 거실에 깔아놓은 이부자리를 소파 옆으로 대충 밀어버리고 주방에 남편이 쌓아놓고 간 간편식 죽과 밥, 국들을 개수대 안에 집어넣었다. 치우다보니 집이 이상하게 깨끗하다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엄마는 집안일을 하는 데 관심이 없었고 보이는 곳만 대충 치우고 사는 사람이었는데 개수대는 물론 냉장고 안까지 깨끗했다. 이상하다고 느낀 건 청결과는 별개로 물건이 별로 없어서였다. 엄마는 그야말로 맥시멀리스트여서 조리도구며 그릇, 양념 같은 것들을 종류별로 사들였다. 그릇장이 넘쳐나도, 밥을 제대로 해먹지 않아도, 심지어 여기 살지 않아도 엄마는 물건을 사들였다. 그런데 그 많던 물건이 하나도 없는 게 이상했다. 청소 업체는 오염된 방만 치우고 갔다고 했는데 엄마의 물건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지 의아했다.
나는 화면에 잡히지 않도록 구석에 어정쩡하게 서서 그가 집안 곳곳을 찍는 것을 바라보았다. 혼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집은 심령 체험을 하는 흉가라 해도 무색할 정도로 낡아 있었다. 창틀과 문틀이 모두 뒤틀려 아귀가 맞지 않았고, 집안의 벽지는 원래 색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누렇게 절어 있었다. 왁스를 발라 반들반들했던 마룻바닥은 미세하게 갈라져 거스러미가 잔뜩 일어나 광택을 잃었다. 시신을 수습하러 여러 사람이 신발을 신은 채 드나들었는지 마루 틈새마다 흙과 먼지가 끼어 있었다. 나는 그것을 눈으로 보고도 치울만한 여력이 없어 그냥 둔 채, 그 위에 이불을 깔고 지냈다.
“생각보다 좋은데요? 싱크대도 현대식이고 양변기와 욕조가 있는 걸 보면 손을 한 번 대신 것 같네요.”
생각해보니 엄마와 헤어진 뒤 아빠는 혼자 밥을 차려 먹는 나를 위해 싱크대를 새로 해주고 가스레인지를 놔주었다. 잘 씻고 편안하게 일을 보라며 화장실도 고쳐주었다. 나는 그것을 당연히 여겼던 나머지 완전히 잊고 있었다. 집을 고치는 일주일 동안 아빠와 둘이 지냈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 시간은 하나의 지층을 이루어 집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거나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간도 이곳에 여러 지층을 이루고 있는 듯해 가슴이 덜컥했다.
“오래되긴 했지만, 말씀처럼 튼튼하긴 하네요. 리모델링해서 임대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득일 텐데, 고려해보시겠어요?”
“아뇨. 이런 일에 신경쓸 여력이 없어서요.”
그는 내 호구조사를 하더니 잘돼서 나간 집터가 아니냐며, 생각보다 좋은 조건으로 빠르게 매매 가능할 것 같다고 장담하고 돌아갔다. 나는 굳이 그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엄마는 집터가 나빠 우리 가족이 이 모양 이 꼴이 나버렸다고, 이 집에서 살게 된 뒤로 우리 가족에게 좋은 일은 없었다고 했다. 엄마가 아빠와 만나고 좋은 일은 내가 태어난 것밖에 없었다고 했는데, 그것도 이 집에서의 일이 아니었으니 집에서 생긴 좋은 일은 전혀 없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엄마는 재수 옴 붙은 이 집을 팔기 위해 여러 번 부동산에 내놓았지만, 보러 오는 사람조차 없었다. 그때마다 엄마는 아빠가 가치 없는 것을 고르는 재주가 있다고 투덜거리곤 했다. 나는 그중 최고가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불경한 생각이 입 밖으로 새어나갈까봐 재빨리 다른 생각으로 덮어버리려 애쓰곤 했다. 그 시절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올라버린 이 동네의 시세를 엄마가 알았더라면 아빠의 안목에 대해 뭐라고 말했을지 생각하다가 이내 허무해졌다. 그러나저러나 모두 오래전의 일이고 세상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중개인이 매수자를 데리고 온 건 짧은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기 전이었다. 초인종소리와 문 두드리는 소리가 한참 울리고서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귀찮은 마음에 없는 척하고 싶었으나 내가 몸을 일으키는 것을 대문 밖에서 보았는지 중개인은 내가 없는 줄 알고 돌아갈 뻔했다고, 가계약금은 확인했는지 큰 소리로 물었다. 자던 옷을 그대로 입은 채 퉁퉁 부은 얼굴로 문을 열자 그가 한 남자를 데리고 들어왔다. 내가 잠든 사이 휴대폰에는 그가 보낸 문자 메시지 여러 통과 가계약금 입금 내역이 들어와 있었다. 집을 보러 올 사람이 있다는 문자로부터 한 시간도 되지 않아 가계약금을 넣은 걸 보면 중개인이 부채질한 것 같았다.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하자 중개인은 나나 다른 사람들처럼 거실 창으로 들어왔지만 남자는 창 옆, 있으나 마나 한 현관을 열고 들어왔다. 경첩이 헐거워 문을 살짝 들어야 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조심스럽게 여닫았다. 그는 집안을 살펴보는 게 아니라 거실에 서서 마당을 바라보았다.
중개인은 나에게 오늘 계약할 거라고 속삭이고는 그에게 이보다 좋은 집터는 없을 거라고 했다. 그는 오늘 계약하면 언제 집을 비워줄 수 있는지, 일주일 내에 가능한지 물었다. 아무 계획도 없던 내가 우물쭈물하자 중개인은 잘 맞춰보자며 그를 소파에 앉혔다. 중개인은 아직 등기부등본의 소유자가 엄마로 되어 있더라며 상속 등기를 해야 소유권 이전이 된다고 했다. 남자는 나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눈이 커지더니, 주인이 아직 너였구나, 라며 환하게 웃었다. 나는 승재라는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나오기까지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다음 생에 만나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십 년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도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우리가 반가울 것 없는 관계라고 기억하는 나와 달리 그는 진심으로 반가워하는 것 같았다. 그는 이 동네에 매물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SNS를 보고 얼른 연락했다고 했다. 오기 전까지는 긴가민가했는데 진짜 이 집이어서 놀랐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쩌면 친근하게 굴며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거래를 성사시키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내게 엄마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을 뿐, 안방에 오래 방치되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그를 오랫동안 생각했다거나 미워했다는 것도 말하지 않았고, 그와 헤어진 뒤에 내가 가지게 된 것들과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속이려는 의도는 없었고, 그저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물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굳이 말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애도의 말을 몇 마디 했으나 나는 그런 겉치레가 달갑지 않아 얼른 계약에 관한 말로 화제를 돌렸다.
계약하기로 했으나 계약서를 쓰진 않았다. 그는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재건축 공사를 시작하기를 원했지만, 나는 서류와 짐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한 달 뒤 중도금을 받고 두 달 뒤 잔금을 받았으면 했으나 승재는 중도금 없이 한 달 뒤에 한꺼번에 돈을 지불하겠다고 했다. 혹시 그전에 정리가 끝나면 더 빨리도 가능하다고 했다. 엄마의 사망신고도 내 손으로 하지 않았는데, 상속 등기를 당장 해야 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나는 당장 움직일 수 없어서 계약을 취소하겠다고 했다. 승재는 처음 내가 제안한 대로 두 달을 기다리겠다고 꼬리를 내렸지만 나는 매매 의사가 사라졌다고 미안하다고 했다. 승재와 중개인은 기막혀하는 표정으로 마주보다가, 내가 충분히 정리할 때까지 기다리면 어떻겠냐고 회유했다. 나는 일단 정리한 뒤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하며 마무리지었다. 사실 재고의 여지는 없었다. 곤란한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협상하는 척한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