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만각

6. 만각 
    그는 그동안 인생을 잘못 살아왔다. 이 집에 다시 들어서기 전까지 그는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잘못 살았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잘 살았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고, 살아간다는 게 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는 삶을 돌아보지 않았고, 미래를 전망하지 않았다. 아침이 오면 일어나고 저녁이 되면 잠을 자는 것 말고는 아무런 규칙 없이 살았다. 그는 속된 말로 그저 똥 만드는 기계일 뿐이었다. 그는 잘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건 그가 가진 단 하나의 규칙이자 최소의 양심이었다. 
    어린 시절 그는 손이 가지 않는 아이였다. 부모가 돈을 버는데 미쳐있던 시절에도 밥상만 차려두고 나가면 그는 종일 알아서 먹고 잘 놀다가 낮잠을 잤다. 늦도록 혼자 있는 그를 이웃들이 데려다 저녁밥을 먹이면 그는 설거지를 도왔다. 부모가 오기 전까지 있으라고 하면 윗목에 그림자처럼 앉아 형들의 교과서나 만화책, 소설책을 읽었다. 어느 날엔 이웃 동생에게 책을 읽어주었고, 누나에게 산수를 배우고, 형에게 발차기도 배웠다. 그에게는 온 동네가 친척 집이고, 학원인 동시에 무대였다. 그는 누구나 아들처럼 사랑하는 이웃 아이, 심부름 잘하는 동생, 다정한 오빠, 놀이를 많이 아는 형, 웃긴 친구를 연기하며 자기 자리를 만들어 지켜냈다. 잠든 그를 업고 집에 돌아오는 것과 가끔 이웃들에게 선물을 안기는 것 말고는 한 게 없었던 부모는 낮 동안 그가 뭐를 하는지, 어떤 노력을 하며 살아가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부모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들에 대한 칭찬뿐이었다. 유치원도 보내지 않았는데 혼자 한글을 떼고 책을 줄줄 읽는 아이, 다른 사내애들처럼 나대지 않는 유순한 아이, 예의 바르고 인정 많은 아이, 똑똑하고 성격까지 좋은 아이라는 말을 들으면 부모는 자신들이 열심히 살아서 복덩어리를 선물 받은 거라고 기뻐했다. 
    그는 복덩어리가 맞았다. 자라는 동안 그는 여러 번의 전학에도 군소리 없이 적응했고, 공부도 잘했다. 지각, 결석도 한 번 하지 않았고, 누군가와 다툰 적도 없었다. 부모에게도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말대꾸 한 번 하지 않고 조용히 잘 자랐다. 그러나 그건 부모의 생각일 뿐이었다. 그가 관심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욕구를 표출했던 적이 없었고 집안의 마치 가구들처럼 제자리에서 제 기능을 하고 있었으므로 부모는 궁금한 것이 없었다. 아들이 어떤 아이인지, 무엇이 되고 싶어하는지, 힘든 일이 무엇인지 알려고 해본 적도 없었다. 
    야반도주 이후 그는 그동안 만들어온 자기 삶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고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에게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오랜 친구도 없었고, 좋아하던 장소에 다시 갈 수도 없었다. 전학할 때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사실 너무 힘들었다. 아이들과 선생님 앞에서 좋은 사람인 척하느라 괜찮지 않은 것을 괜찮다고 하고, 어울리고 싶지 않은 아이들과 아무렇지 않은 듯 잘 지내다보면 자기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는 자신을 연기하고 있는 것이지 진짜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겪는 사춘기의 정체성 혼란일 수도 있었다. 그는 진짜 자신을 찾는 과정에서 사기꾼 부모와 자꾸 맞닥뜨렸다. 겉보기엔 그럴싸한 그들이 상상 이상의 혐오스러운 인간이었듯, 남들이 괜찮게 보는 자신의 실체도 다를 바 없으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는 진짜 자신을 찾을 수 없었다. 오랜 가장과 연기로 인해 실체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이웃들이 부모에게 천벌을 받을 거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자기가 부모의 복덩어리가 되어준 죄로 천벌을 받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비록 그는 텅 빈 인간이었지만 인생의 목표 정도는 가지고 살고 싶었다. 그것은 부모처럼 되지 않는 것, 부모가 원하는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전자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후자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부모가 그에게 원하는 건 단 하나였다. 일류대학에 진학해 좋은 직업을 갖는 것, 그래서 자기들이 일군 부를 지키고 확장해 대대손손 물려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편법과 탈세를 일삼았으므로 아들이 법이나 세무, 회계를 공부하길 바랐다. 정치병, 사업병에 걸리지만 않으면 재산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는 부모의 말을 듣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을 뿐, 어떤 생각이나 기분도 내비치지 않았다. 부모는 아들의 혐오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고, 좀처럼 자기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과묵한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는 부모의 꿈을 이뤄줄 생각이 없었다. 그것은 부모가 저지른 사기 범죄에 동조하는 것이며 그들이 배신한 사람들을 다시 죽이는 일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 선에서 할 수 있는 속죄와 응징은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상위권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그는 공부에서 손을 뗐다. 그래도 선생님들과 갈등 상황을 만드는 것이 싫어 수업 시간에 졸지 않고 앉아 있었고, 자율학습도 빠지지 않았다. 부모와도 부딪히고 싶지 않았기에 학원에 다니라면 다니고, 독서실을 다니라면 다녔다. 지각도 결석도 하지 않고 수업 태도가 나쁘지 않았기에 별문제 없어 보였으나, 그는 눈만 멀뚱히 뜨고 있었고 만화책이나 소설책만 줄곧 읽었다. 성적이 단번에 곤두박질쳤으면 그의 변화가 드러났을 텐데, 그동안 누적된 실력은 금방 허물어지지 않았고, 수업 시간에 들은 걸 잊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성적은 아주 서서히 떨어졌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어려워지는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양새였기에 그의 불성실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걱정하는 선생님과 부모가 한마디씩 하면 어쩔 줄 모르는 척 굽신거리며 열심히 했지만 능력이 안 돼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고 미안해했다. 결국 그는 부모가 염원하던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의 부모는 그가 합격한 학교의 이름을 듣고 얼굴을 찌푸렸다. 부모가 보기엔 능력 부족으로 입시에 실패한 것이지만, 그의 입장에선 장기 계획 하에 그의 목표를 이뤄낸 것이었다. 비록 마음에 들지 않는 학교여도 원하던 전공이었더라면 부모는 만족했을 테지만, 듣도 보도 못한 터무니없는 과로 진학해 부모는 그에게 완전히 실망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며칠이 지나자 그들은 좌절감에서 벗어나, 잘못 온 길은 돌아가면 되는 거라고 그를 응원했다. 어디서 들었는지 재수, 복수 전공, 전과, 편입 같은 여러 가지 길이 있다며 어떤 결정을 하든 끝까지 믿고 지원하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어떻게든 아들을 자기들이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들의 집념을 그가 이기기는 불가능해 보였다. 
    부모의 염원과는 관계없이 그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찾고 싶었다. 그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 해야만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는 잘 알았지만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성적에 맞춰 적당히 들어온 학교에도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부모가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력했는데, 자신이 원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학교는 너무 작았고, 학생들은 자신과 수준이 맞지 않았다. 동기들 역시 너도나도 자기가 이런 학교에 올 사람이 아닌데 실수로 온 거라며 반수를 시작할 거다, 자퇴를 할 거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를 경멸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예전의 그였다면 어떻게든 웃으며 분위기를 좋게 만들려고 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고 그들에게 똑같은 시선을 돌려주었다. 그런 행동을 한 건 처음이었는데, 의외로 할 만했고 마음도 편했다. 그는 서서히 남의 비위를 맞추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는 매일 학교에 가긴 했으나 수업은 거의 들어가지 않았고, 과방에도 가지 않았다. 도서관에 앉아 책을 읽다가 고등학교 때와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에 밖으로 뛰쳐나가 아무 무리에나 끼어 농구를 하거나 족구를 했다. 미대생들 무리에 끼어 놀다가 얼떨결에 벽화 동아리에 들어가게 되었다. 미대생들이 주축이 되고 다른 단과대생도 포함된 동아리였는데,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상관이 없었다. 그들은 힘을 잘 쓰거나, 성격이 좋으면 무조건 합격이라고 하며 그를 끌어들였다. 그는 당연히 성격이 좋아 보여 합격했다고 생각했으나 그를 보는 선배들마다 힘을 잘 쓰게 생긴 인재가 들어왔다며 반겼다. 그는 남들에게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표정과 말투에 신경을 쓰긴 했지만, 정작 남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을 주변 눈치나 보는 지질하고 소심한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힘을 잘 쓰게 생겼다는 말에 무척 놀랐다. 그리고 그 말이 마음에 꼭 들었다. 
     벽화 동아리 활동은 그가 학교에 다니는 이유였고, 그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동아리는 학교와 학교 주변 공원이나, 상가의 담장에 그림을 그렸다. 동아리가 생긴 지는 오 년 정도 되었는데, 그릴 만큼 그려서 더는 그릴 공간을 찾지 못해 고군분투하는 중이었다. 그는 짐을 나르고, 벽에 젯소 바르는 일을 주로 하다가 주변의 집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직접 찾아다니거나, 통장을 통해 반상회에 참가했다. 주민들은 처음엔 학생들의 방문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였는데, 그는 그런 어른들의 비위를 잘 맞춰 구슬리는데 소질이 있었다. 처음에 학생들에 대한 경계심이 제일 강했던 통장의 허락을 받고, 종국에는 이모라고 부르며 간식까지 얻어냈다. 결과물에 만족한 통장은 그뒤에도 여러 집을 소개해주어서 다행히 작업이 끊기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남의 집을 전전했기 때문에 어른들의 비위를 잘 맞추는 것인지 아니면 타고나길 원래 그런 사람인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뭐 어느 쪽이건 괜찮았다. 그는 처음으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 집에 처음 오게 된 것도 벽화 때문이었다. 통장 이모님이 소개해준 이 집은 조금 거리가 있는 우범지대에 있었다. 기찻길 건널목의 건너편에 서서 보면 이 집의 하얀 담장이 눈에 띄었다. 다른 집보다 조금 더 높고 긴 담이어서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지만 벽화를 그리고 나면 풍경이 완전히 달라질 것 같아 기대됐다. 건널목을 지나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동아리 회원들은 이 집의 담을 새 학기 첫 작업으로 선택했다. 집주인은 사범대에 다니는 성실한 학생으로 그와 같은 학번이었다. 그녀는 집에 혼자 살고 있었다. 그녀는 혼자 지내는 게 무서워 아침 일찍 나가 밤에 들어온다고 했다. 벽에 그림이라도 그려놓으면 무서움이 덜할 것 같다며 흔쾌히 동의했다. 기찻길을 향한 외벽에 그리는 거라 학교를 오가는 길에서는 보이지는 않을 거라고 했지만 그녀는 작업하는 동안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 것만으로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섭외하는 자리에 함께 가지 못했던 그는 그 말을 전해 듣고는, 겁이 엄청나게 많은 조그만 여자아이를 상상했다. 그는 그녀가 왜 그런 집에 혼자 사는 건지, 어떤 집이기에 그리 무서움을 타는 건지 궁금했다. 
    당초 계획은 4월 첫주에 작업을 시작해 중간고사 이전에 끝내는 거였다. 그런데 그 계획은 완전히 어긋나버렸다. 밑그림 작업을 시작했던 날, 집주인이 일찍 돌아와 동아리 회원들에게 음료와 간식을 주고, 라면을 끓여주고, 술판까지 벌였다. 일주일 안에 끝낼 수 있는 일인데 매일 마당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낮술을 마시느라 일이 진행되지 않았다. 밑그림도 다 완성하지 못했는데 중간고사 기간이 임박해져 작업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다시 작업을 시작한 건 중간고사가 모두 끝난 5월 초였다. 2학년이 되고 동아리의 부회장을 맡은 그는 학사경고를 한번 더 받으면 퇴학당하게 될 위기여서 활동을 잠시 쉬었다가 중간고사가 끝나고야 합류할 수 있었다. 그는 작업이 더 늦어지지 않도록 쓴소리를 할 준비를 하고 그 집을 찾아갔다. 
    그는 마당에 처음 들어섰던 순간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마당 안에는 초여름의 햇빛이 가득했고, 동아리 회원들은 그늘 속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모두 웃고 있는 건 아니었는데도 집이 웃음소리로 가득한 것 같았다. 푸른 철 대문, 마당 안쪽의 화단과 감나무와 그 밑의 작은 연못, 마당을 향해 열려 있는 대청마루. 처음 본 풍경이었지만 오래전에 떠났던 곳으로 다시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 집은 어린 시절 그가 떠나온 동네의 집들과 비슷했다. 그는 향수와도 비슷한 이상한 기분을 떨쳐버리려 두팔을 휘휘 돌리다가 방에서 나오는 집주인과 마주쳤다. 그가 상상했던 작은 소녀가 아니라 키가 크고 눈매도 매서운 여자여서 살짝 놀랐다. 그녀는 부회장이라고 소개하는 그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차가워 보였던 그녀가 자신을 향해 활짝 웃는 모습을 보자 온 세상이 따뜻해지는 듯했는데, 왠지 그는 울고 싶어졌다. 알고 지내던 사람을 완전히 잊고 남인 줄 알고 지나치려다 뒤늦게 기억해낸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 바보 같은 마음을 그녀가 알아챌까 싶어 그는 씩씩한 척, 회원들을 잘 챙기는 부회장인 척 그럴싸한 말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에서 흘러나온 건 고작 ‘우리 얼른 끝내고 고기나 먹으러 가자’ 같은 소리뿐이었다. 집주인은 마당에서 구워 먹자며 불판을 꺼내고, 고기를 사왔다. 회원들은 작업을 하다 말고 다들 마당에 모여앉아 나무젓가락을 쪽쪽 빨며 고기가 구워지기를 기다렸다. 안에서는 밥짓는 냄새와 된장찌개 냄새가 풍겨왔고, 남자애들 몇 명이 냉장고에서 맥주를 잔뜩 꺼내 들고 나왔다. 이래서 작업이 안 끝났던 거구나, 라는 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며 웃었다. 
    그는 대체 왜 집주인이 이렇게까지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아주 오래 전 자기에게 굳이 밥을 떠먹여주던 이웃들을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더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것보다 설거지와 청소를 해주고, 냉장고를 채워주는 게 훨씬 나은 것 같았다. 청소하고 쓰레기를 치우느라 막차 시간을 놓친 사람들에게 그녀는 자고 가도 된다고 하며 거실과 방 하나에 이불을 펴주었다. 그렇게까지 하는 건 민폐 같다고 하자, 그녀는 시끄럽다가 한꺼번에 갑자기 조용해지는 게 더 민폐라고 하며 마음의 짐을 덜어주었다. 이런 날들이 자주 반복되자 동아리 회원 중 일부는 그녀의 지나친 친절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일부는 불편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마치 그 집을 빨리 뜨고 싶은 사람들처럼, 작업이 더 지연되지 않도록 모두 벽에 매달려 열심히 그림을 완성시켰다. 그는 그때 담장 밖에 그렸던 그림이 무엇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대문을 나가 모퉁이를 돌아야 볼 수 있었던 그 그림을 직접 본 것인지, 사진으로 본 것인지조차 도통 알 수가 없다. 
    그가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마당 안쪽 담장에 그녀와 둘이 그린 그림이다. 벽화가 완성되고 모두 떠난 뒤, 집에 남은 것은 페인트 통과 붓, 그리고 그였다. 그는 마루에 앉으면 마주 보이는 빈 벽에 그녀와 함께 벽화를 그려넣고 싶었다. 그는 혼자 벽화를 그릴 능력이 없었지만 혼자 있는 것을 무서워하는 그녀를 혼자 두고 가는 것도 신경이 쓰였고, 그것을 핑계 삼아 조금 더 이 집에 머물고 싶기도 했다. 그녀는 그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둘이 새로운 그림을 창작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명화를 따라 그리기로 했다. 둘은 도서관에서 도록을 찾아보며 그림을 정했다. 그녀는 마루에 앉았을 때 물빛이 보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모네의 수련 연작 중 <초록 그림자>를 선택했다. 가로로 긴 그림이라 사이즈도 맞을 것 같고 마침 보라색과 녹색, 파란색 페인트가 많이 남아 있었기에 적당했다. 그는 그녀가 색칠할 수 있도록 밑그림을 그리려 했지만, 그게 불가능한 그림이었다. 처음에는 물위의 연꽃과 물 밑의 그림자를 색칠할 자리에 표시해 놓고, 원화와 비슷한 느낌이 나도록 페인트를 중첩해 칠해보려 했지만, 색채의 넓은 스펙트럼을 흉내낼 수 없었기에 비슷하게 그리기도 어려웠다. 
    둘은 한참을 그림에 매달렸다. 그녀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그는 동아리 회원들이 벽화 그리는 것을 도와주고 돌아와 간단한 저녁을 준비했다. 그녀가 돌아오면 함께 저녁을 먹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누구도 빨리 서두르지 않았고, 끊임없이 덧칠하느라 완성시키지 못할 것 같았다. 어쩌면 둘 다 그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던 건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거실의 불을 밝게 켜놓고 그려야 했는데, 끝나갈 무렵에는 낮이 길어져서 조명 없이도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담장은 여러 종류의 푸른색 모자이크로 뒤덮여 원작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둘의 눈에는 그것이 모네의 그림과 똑 닮아 보였고, 영락없이 커다란 연못으로 보였다. 그는 홀로 남아 있던 시간에 남은 페인트를 모조리 섞어 대문을 칠했다. 대문은 검은색에 가까운 청보라빛이었다. 혹시 대문색이 벗겨지기라도 하면 색깔을 만들지 못해 전체를 새로 칠해야 할 텐데 그녀를 오히려 귀찮게 만드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과 지문이라도 찍힐까 조심스러웠던 마음, 그녀가 돌아와 깨끗해진 대문을 보고 기뻐했으면 했던 기대감을 그는 인제 와서 기억한다. 
    벽화를 완성하고 난 뒤에도 그는 돌아가지 않았고, 그녀의 방을 빌려 월세를 내고 살기로 했다. 그녀는 세를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그녀도 형편이 넉넉하지는 않은 것 같아 그럴 수 없었다. 집은 남루했지만 그녀의 방은 깨끗했다. 그녀는 침대 시트와 이불을 새것으로 갈아주었고, 서랍장을 비워주었다. 그녀는 엄마의 방을 쓰겠다고 했는데, 그는 그때 그녀에게 엄마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는 부모에게 집이 너무 멀어 종강까지 과방에서 지내겠다고 하며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학교 앞의 아파트를 사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부모의 연락에 답하지 않았다. 부모는 그가 학교에 다니는 내내 수능 시험을 다시 보기를 권유했다. 그들은 아들이 다니는 학교를 남에게 알리기 부끄러웠고, 학교에 열심히 다니며 현실에 안주하는 아들에게도 실망했다. 그는 경제적으로 자립해 집을 나올 계획이었는데 생각보다 좀 빠른 감이 있었지만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는 부모의 부정한 돈에 기대 살고 싶지 않았다. 
    운이 좋았던 그는 돈을 벌 기회를 얻었다. 그녀의 집 담에 그린 그림이 패션지와 문화예술무크지 실리면서 벽화 동아리가 명성을 얻었다. 벽화가 우범지역의 범죄율을 낮추는 데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실린 기사가 뒤따라 나오자 동아리가 할일이 많아졌다. 학교에서 받는 동아리 지원금 외에, 구청과 시민단체에서도 지원을 받아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환경 개선 사업과 지역 축제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그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겠다는 생각에 벽화가 필요한 곳을 찾아 일감을 따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동아리 회원들은 그가 너무 많은 일을 벌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들은 학생 신분이었고, 일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기에 그와 함께 일을 하겠다는 회원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는 팀을 따로 꾸려 사업을 해볼 생각이었는데,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있는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일하고 싶지 않아했고, 재주는 없고 부지런한 사람들만 그의 곁에 남았다. 그래도 어깨너머로 본 것이 있어 그들끼리 어찌해보려 했지만, 그릴 수 있는 것이 한정적이어서, 늘 똑같은 그림을 그린다는 평판을 듣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한여름이 되자 일감은 줄어들었고, 일을 하겠다는 회원도 남지 않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녀는 아침 일찍 도서관에 나가 저녁에 들어왔다. 그는 후텁지근한 집에 남아 뒹굴뒹굴하며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가끔 지나가는 기차 소리를 들었고, 비가 오면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었다. 완벽한 방음 새시가 달린 집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바깥의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해가 지고 낮의 열기가 식을 때쯤 화단에 물을 주고 마당에 나와 앉아 푸른 벽화 위로 노을이 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오기 전 고구마나 옥수수를 삶아두고 냉동실에 물수건을 넣어두었다. 둘은 에어컨도 없는 집에서 선풍기 한 대로 열대야를 함께 보냈다. 매미가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울어댔고, 담장 너머 기찻길 옆에서 술판을 벌인 젊은이들도 밤낮을 모르고 노래를 불렀다. 둘은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나와 앉아 얼려둔 물수건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집안의 더위가 식을 때까지 라디오를 틀어놓고 맥주를 마셨다. 둘은 마주보며 웃고 노래하는 것 말고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둘은 좋아하는 것은 달랐지만 싫어하는 것이 같았다. 그들은 달달한 음악이나 로맨틱 코미디, 달콤한 음식을 싫어했다. 듣기 좋은 거짓말이나 다정한 위로의 말도 싫어했다. 그는 자신에 대해서는 거기까지만 이야기했다. 텅 빈 인간이라 그것 말고는 할말이 없어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다른 이야기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녀는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는 다른 건 몰라도 미워할 사람은 정확히 미워해 줘야 한다고 하며 욕을 가르쳤다. 둘은 허공에 대고 큰 소리로 욕을 했다. 그녀는 점점 마음을 열기 시작해 외로움과 무서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도 그런 감정을 잘 알고 있었으나 모르는 척했다. 그는 느슨한 유대가 팽팽하게 당겨지는 것이 두려웠다. 자신을 돌봐준 이웃들에게 느낀 것 이상의 감정을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부모로부터 떨어져나와 이 집에 속해 있는 시간이 좋았고, 진짜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섣부른 행동으로 그 시간을 오염시키거나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2학기가 되자 부모는 경제적 지원을 완전히 끊었다. 카드도 정지시켰고, 등록금도 내주지 않았다. 어차피 군대에 가야 했으므로 휴학을 하면 그만이었으나 살아가는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었다. 다행히 벽화 작업 의뢰가 다시 들어오긴 했지만, 그녀에게 월세를 주면 겨우 밥을 먹을 정도였다. 다른 아르바이트는 벽화 작업 때문에 구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월세를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계속 신세를 질 수는 없었다. 그는 경제적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겨울이 끝나갈 무렵 부모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뒤로 그는 이 집에 다시 온 적도 없었고, 그녀를 다시 만난 적도 없었다.
    돌아간 이후 부모가 그를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이전에 그의 부모는 그에게 이래라저래라 한 적이 없었고, 그가 무엇을 하든 다 알아서 하려니 믿었다. 그러나 돌아간 후에는 모자란 자식 대하듯 사사건건 잔소리가 심해졌고, 온갖 일에 참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가 먹는 것, 입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가 불규칙하게 자고 깨는 것도, 늦게 나가 늦게 들어오는 것도 불만이었다. 집을 나간 사이 혹시 도박에 손이라도 댔던 건 아닌지, 여자 문제라도 생긴 건 아닌지, 사채라도 끌어다 쓴 건 아닌지 의심스러워하며 그의 뒤를 캤다. 그는 기가 막혔다. 어린 시절 밥을 혼자 차려 먹던 나에게 할 소리인가, 장롱에서 계절에 맞지 않는 옷들을 아무렇게나 꺼내 입고 다녔던 나에게 할 말인가, 어린애를 혼자 두고 자기들끼리 여행을 다니던 양반들이 할 말인가, 내가 자기들처럼 부도덕한 사람으로 보이는 건가. 그는 그 말을 속으로 곱씹기만 할 뿐 겉으로는 아무 내색하지 않았다. 돈으로 그를 통제해본 그들은 그를 자기들 마음대로 휘두르려 했다. 그는 전과 마찬가지로 아무 노력하지 않지 않았으나 일부러 실패하려고도 하지 않았고, 부모의 희망을 꺾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이미 그는 실패한 사람이고 희망과는 먼 사람이었으므로 굳이 힘들여 그럴 필요가 없었다. 부모는 그의 환경이었고, 그는 그 환경을 벗어나 살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그는 복덩어리였을 때처럼 고분고분 자기 할일을 해냈다. 그리고 조용히 부모의 재산을 축냈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무노력이 그의 양심이듯 소비는 그의 정의였다. 

    그가 다시 이 집에 돌아온 것은 우연이었다. 부동산 블로그에 올라온 동영상을 보았을 때도, 골목에 제 발로 걸어들어와 대문 앞까지 오고도 여기가 어디인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집은 그대로였는데도 주변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서 어디가 어딘지 천지분간을 못했다. 어차피 부수고 재건축할 계획이라 집을 보지 않아도 별 상관없었지만, 연락이 닿지 않는 주인을 만나 한시라도 빨리 계약하기 위해 찾아간 거였다. 밖에서 중개인이 대문을 두드리고 소리 친 뒤에야 집주인은 귀찮아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고 대문을 열어주었다. 그는 마당에 발을 들이고 난 뒤에야 이 집을 알아보았다. 대문 안 풍경은 이십여 년 전 그가 처음 그곳에 들어선 날과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전체적으로 훨씬 더 낡아 있었다. 색이 군데군데 벗겨지고 녹이 슨 대문과 비바람에 닦여 나가 흔적만 남은 벽화를 보니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있었다. 동아리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지고 시간이 빠져나가버린 그 곳에서 그는 이십여 년 전 처음 느낀 것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 그때는 알 수 없었던 오묘한 감정은 이제 와서 보니 오래된 그리움이었다. 떠났다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돌아온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는데, 처음에 그는 왜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곳을 떠난 뒤 그가 이 집을 다시 떠올린 적이 단 한번도 없었음에도 왠지 계속 그리워하며 살아왔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는 어쩌면 그것이 지금이 아니라 훗날 느끼게 될 감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집 안에 모든 시간이 담겨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는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에야 집주인이 그녀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야위고 생기 없는 모습이었는데 낡아버린 집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때 그는 계약하는데 혈안이 되어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누지 못했다. 협상만 하다가 결국 계약서를 쓰지도 못하고 끝내버린 자리였다. 
    집으로 돌아간 그는 내내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를 빼먹은 것 같기도 하고, 잃어버린 것 같기도 하고, 두고 온 것 같기도 했다. 그게 다 계약서를 쓰지 못한 탓인 듯했다. 그는 그녀가 계약을 미루고 번복하는 것이 매수자가 자신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가도, 그녀가 굳이 그럴 이유가 있나 싶었다. 집을 정리할 여력이 없는 사람을 닦달한 것이 문제였다고 후회하다가 어떻게든 돌이키고 싶은 마음에 다시 집을 찾았다. 그녀는 몸이 좋지 않아 빨리 일을 할 수가 없어서 망설인 거라며 정리만 되면 반드시 계약서를 쓸 거라고 약속했다. 정리를 돕겠다고 하는 그를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다. 안방과 주방에는 짐이 거의 없었지만 그가 썼던 그녀의 방에는 짐이 가득 쌓여 있었다. 상자와 비닐봉지, 가방으로 빼곡해 무엇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그는 방 한구석에 학교 로고가 그려진 자기 가방을 발견했다. 그는 찜찜한 마음, 무언가 두고 온 것 같은 기분의 정체가 그것임을 깨달았다. 그는 그녀에게 인사도 설명도 하지 않고 갑자기 집을 떠났고, 짐도 그대로 두고 나왔다는 것을 기억했다. 이십 여년 전의 일을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변명하거나 사과하는 것도 이상했고, 그녀의 안부를 묻는 것도 어색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를 도와 집을 정리하는 것 말고는 없는 듯했다.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거실 한쪽에 앉아 그가 오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거나 바닥에 누워 졸았다. 그는 선풍기 한 대를 틀고 나란히 누워 겨우 잠들곤 했던 열대야를 푸른 벽화 너머로 붉게 물들던 저녁을 기억했다. 낡고 무너져가는 풍경으로 뭉뚱그려 보이던 것들이 하나하나 선명하게 보였다. 마당 안쪽에 선 커다란 감나무와 나무 밑의 아주 작은 연못, 그 속에 쌓인 나뭇잎, 연못 옆 수도꼭지, 그 밑에 놓인 대야, 대야 옆 작은 의자. 그 풍경은 옛날을 재현한 세트장처럼 그대로 있었다. 녹으로 뒤덮힌 대문의 청보랏빛과 벽화가 있던 자리에 남은 푸른색이 세월의 더께 밑에서 일렁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누군가가 오래 전의 일을 기억하냐고 물으면 무조건 기억나지 않는다,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곤 했는데, 진짜 기억을 못해서 그런 것이기도 했지만, 그런 질문을 하는 의도가 좋았던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계속 그런 식으로 살다보니 그는 진짜 기억을 잘 못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모든 사물과 추억이 원형처럼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모든 게 낡아 있지만, 그는 그때의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가방을 들고 돌아와도, 계약을 약속해도 찜찜한 기분은 계속 사라지지 않았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에 있는데, 자신만 빠져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빠져나간 건 자신인데 이상하게 추방당한 기분이 들었다. 자기를 제외한 것들이 모두 자신의 시간 속에서 잘 살아온 것 같았고, 자신만 제대로 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는 자기가 집보다도 더 누추하고 낡아 있다고 생각했다. 낡아서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한다면 제일 먼저 그 대상이 될 것은 자기 자신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진짜 두고 온 것은 젊은 시절의 자신, 진짜 자신의 삶을 살던 자신, 그리고 그때는 잘 몰랐었던 첫사랑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는 늘 뒤늦게 깨닫는, 아니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하는 멍청한 인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