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공모
주아는 마흔이 되던 해 아이를 가졌다. 결혼한 지 십이 년 만에 어렵게 얻은 아이였다. 남들이 노력하지 않아도 당연하게 가지는 것들을 그녀는 쉽게 얻어본 적이 없었다. 노력하지 않고도 획득한 것은 생이 유일했다. 부모, 친구는 물론이고 연인을 얻기 위해 노력했으나 누구 하나 쉽게 잡을 수 없었다. 그녀는 세상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그것이 자신을 골탕 먹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죽도록 노력해도 되지 않아 포기하려 하면, 그제야 그것은 아주 작은 미끼를 툭 던져주곤 했다. 그녀는 그 미끼를 주워먹으며 겨우 삶을 유지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승재 말고 다른 사람에게 말해본 적 없었다. 젊은 날의 승재는 그녀에게 물었다. ‘너를 골탕 먹이는 그 재수 없는 놈이 던져주는 미끼가 정상적일 거라고 생각해? 미끼를 열심히 주워먹다가 마지막에 만나는 게 뭐일 것 같아? 생각만 해도 무섭지 않냐? 그러니까 열심히 살지 마.’ 그녀는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열심히 살지 않는 방법을 몰라 계속 살던 대로 살았다.
그녀가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된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아이를 갖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몇 년간은 학원 사업을 확장하느라 임신을 미루었다. 그녀는 아직 이십 대였고, 아이를 낳아 잘 키울 수 있을지 고민이 컸기에 남편과는 상의하지 않고 몰래 피임약을 먹었다. 그녀보다 열 살이 많은 남편은 더 늦기 전에 아이를 갖고 싶어했다. 투병 중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손자를 안겨주고 싶었으나 마음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의 어머니와 누이는 아이를 갖는 일이 쉬운 게 아니라고 둘을 위로하면서 임신에 좋다는 한약을 지어주곤 했다. 그녀는 그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었고, 출산은 개인의 의지라 생각했기에 그들에게 미안하지 않았다. 남편이 겨우 끌어나가던 학원을 그녀가 살렸을 뿐 아니라, 여러 지점으로 확장하며 지역 최고의 학원 체인으로 키웠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아버지의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게 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누이를 도와줄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덕택이었다. 그의 가족들은 그녀의 능력을 대단하게 여겼고, 따뜻한 마음 씀씀이를 고마워했다. 피나는 노력 끝에 그녀는 비로소 자기를 알아주는 진정한 가족을 얻은 기분이 들었다. 남편과 그의 가족들은 생각했던 것보다 좋은 사람들이었고, 자신 또한 예상했던 것보다 그들과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아 완벽하고 단단한 가정의 모양새를 갖추고 싶었고,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약을 끊기만 하면 아이가 금방 생길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이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약을 장기간 먹은 것과 난임은 관계가 없다고 했으나 몰래 먹은 약이 마음에 걸렸다. 더는 젊지 않아서인지, 과로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아이가 잘 생기지 않는 체질인 건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남편은 자기 나이가 많은 탓이라 생각했고, 가족들은 자신들이 스트레스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불임 전문 병원에도 다녔고, 유명한 한의원이라면 어디든 찾아갔다. 임신에 좋다는 것 중 해보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모두 헛수고였다. 삼십대 중반을 넘어서는 인공수정과 시험관 시술을ㄹ 여러번 시도했지만, 매번 실패했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쉽게 얻어온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고 끝까지 해보려 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가 혼자 겪어야 하는 육체적 고통을 계속 보고 있기 괴롭다고 했다. 그가 아이를 포기하자고 해도 그녀는 쉽게 설득당하지 않았다. 해볼 때까지 해보고 몸과 마음이 모두 만신창이가 되고 난 뒤에야 그녀는 포기했다. 그들이 미리 사놓은 출산 용품과 만들어놓은 아이 방을 정리하고 난 뒤, 기적처럼 자연 임신에 성공했다. 그녀는 세상을 지켜보던 무언가가 또 자신을 끝내 골탕 먹였구나 싶었지만, 어쨌건 아이가 생겼으니 다 괜찮았다. 아이가 태어나기까지 그녀는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안정기에 접어든 이십 주 차에 갑작스러운 출혈로 유산 방지 주사를 맞고 한동안 누워지내야 했고, 삼십 주 차에 산도가 짧아지고 조기 자궁 수축이 와 입원해서 한 달을 버티다가 삼십사 주 차에 조기 출산했다. 아이는 아주 작았지만 건강한 편이었다. 그녀는 겨우 이 킬로그램 남짓 되는 아이를 얻었을 뿐인데,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그녀는 미끼를 주워먹으며 따라온 끝이 바로 여기이며, 이제 더 가지고 싶은 것도 바라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주아와 남편은 아이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이름을 있을 유에 있을 재 자를 써서 유재라고 지었다. 유재는 일곱 살이 될 때까지 큰 병에 걸리거나 다친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 흔하게 걸리는 수족구병이나 독감 같은 것을 앓은 적도 없었고, 장염이나 폐렴으로 입원한 적도 없었다. 유재는 건강할 뿐 아니라 영특하기도 했다. 세 살에 한글을 뗐고, 네 살에 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유재는 낯가림도 없고 붙임성이 좋았고, 길 가는 사람이 돌아볼 정도로 예쁜 아이였다. 그녀는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다 가져다 섞어도 유재 같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유재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싶었고, 줄 수 없는 것도 주고 싶었다. 자신이 겪은 외로움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다. 유재에게 한계가 없는 미래를 주고 싶었다. 유재가 어떤 사람으로 자라는지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만이 그녀의 꿈이었다.
그러나 그런 미래도 꿈도 실현될 수 없었다. 유재는 일곱 살의 가을 그녀의 곁을 떠났다.
유재는 공주 캐릭터가 그려진 드레스를 입고 싶어했다. 열매반의 여자아이 중에 공주 캐릭터가 그려진 드레스를 입고 오지 않은 사람은 자기뿐이라며 옥선에게 몇 날 며칠을 사달라고 졸라댔다. 옥선은 딸과 사위에게 드레스를 사줘야겠다고 이야기했으나, 중간고사 준비 기간이라 바빴던 그들은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유재는 늘 뭔가를 사달라고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품목으로 바뀌곤 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옥선은 자기가 사줬다가는 딸에게 좋은 소리를 못 들을 게 뻔했기에 컴퓨터를 켜고 유재와 함께 드레스를 고르기만 했다. 유재는 다른 아이들처럼 허리까지 내려오는 짤막한 망토가 아니라, 바닥까지 닿는 긴 망토를 원했다. 핑크색 원피스는 다섯 살짜리나 입는 거라며 민트색이나 라벤더색으로 사야 한다고 했다. 옥선은 유재가 고른 드레스의 사진을 찍어 딸에게 전달했다. 주아는 메시지를 받고도 금세 잊어버렸다가 유재가 드레스가 아직 오지 않았다며 우는 걸 보고서야 뒤늦게 드레스 쇼핑을 시작했다. 그녀는 유재가 고른 드레스가 아니라 다른 아이들이 모두 부러워할 만한 드레스를 찾기 시작했다. 그녀가 고른 민트색 공단에 캐릭터가 자수로 새겨진 드레스는 다른 보급형 드레스보다 세 배 이상 비쌌다. 어깨에 달린 촘촘한 망사에 별을 뿌려놓은 것처럼 보이는 망토는 온몸을 감쌀 정도로 풍성하고 길었다. 불빛 아래서 온몸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후기를 읽고 그녀는 상품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그녀는 몇 개를 더 보고 비교한 뒤에 살 생각으로 결제하지 않고 잠들어버렸다. 남편은 장바구니에 담긴 드레스를 발견했다. 그도 유재에게 드레스 때문에 며칠째 시달렸던지라 더 늦어지기 전에 그녀가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드레스를 주문했다.
유재는 매일 택배 기사를 기다렸다. 평소라면 이틀이면 받았을 텐데, 택배 기사가 다른 동으로 배달하는 바람에 직접 찾아오느라 하루가 더 걸렸다. 유치원에 다녀와 할머니가 들여놓은 택배 상자를 열어본 유재는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진짜 드레스를 끌어안고 빙빙 돌며 온 집을 헤집고 다녔다. 마음에 드는 옷을 입으면 잘 때까지 벗지 않았던 유재는 입고 놀다가 구겨지거나 찢어지기라도 할까봐 한 번 입어보고 조심스럽게 벗어서 걸어두었다. 그날 유재는 다른 놀이를 하다가도 한 번씩 드레스를 조심스럽게 쓸어보았다. 옥선은 그게 너무 사랑스러워서 사진을 찍어 주아에게 보내주었다. 주아와 남편이 돌아온 뒤 유재는 한차례 패션쇼를 했고, 이렇게 예쁜 옷을 사줘서 고맙다며 배꼽 인사를 했다. 이 어린 애가 고마움을 느끼고, 그걸 또 표현까지 할 만큼 자랐다는 사실에 감동하여 어른 셋은 눈가가 촉촉해졌다.
잊을 수 없는 그날의 아침은 다른 날보다 분주했다. 옥선은 새벽부터 일어나 치렁치렁한 옷을 입고 흥분해서 돌아다니는 유재의 얼굴과 손발을 물수건으로 닦아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아는 흥분해 밥을 안 먹으려는 아이의 입에 밥을 떠넣어주었고, 남편은 도망 다니는 아이를 붙잡아 양치질을 시켰다. 유재가 머리를 묶어서 올려라, 땋아서 리본을 묶어라, 그런 매듭이 아니다, 오른쪽으로 비뚤어진 걸 고쳐달라 투정을 부리는 통에 옥선은 진땀을 흘렸다. 그녀는 땀범벅이 된 채로 오만상을 쓰고 입이 튀어나온 유재와 계속 티격태격했다. 보다 못한 주아가 유재의 요구대로 해보려 했지만, 계속 그게 아니라고 징징거려 결국엔 남편까지 가세했다. 유재는 아빠가 해준 머리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눈치였으나 그래도 그중 최선이라는 생각을 했는지 포기하는 것 같았다. 유재는 거울 앞에 서서 빙그르르 돌더니 공주가 된 자신의 모습을 믿을 수 없다는 듯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땀범벅이 된 어른들은 그런 유재를 보고 금세 웃음지었다. 등원 준비를 다 해놓고도 유재는 스타킹과 구두가 마음에 안 든다면서 현관에서 거실로 들락날락하며 신었다 벗었다 하느라 결국 유치원 버스를 놓쳤다.
아빠가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하자, 유재는 아빠 차를 타고 가면 자기가 드레스 입은 것을 유치원 친구들밖에 못 보기 때문에 걸어가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은 어른들은 어이가 없어 웃기만 했다. 주아와 남편은 별 상관없었지만, 등원시키는 옥선으로서는 매우 번거로운 일이었다. 아파트 입구에서 버스를 타면 간단한 일인데, 걸어서 이십 분 정도 되는 거리를 걸어가야 할 판이었다. 게다가 자기 전에 마신 술의 취기가 남아 있어 힘이 들었지만, 옥선도 한껏 꾸민 손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팔불출 같은 마음에 흔쾌히 길을 나섰다. 유재는 불어오는 바람에 망토가 펄럭이면 바람을 가르며 달렸고, 바람의 방향이 반대로 바뀌면 뒤돌아 내달리곤 했다. 꽃이 탐스럽게 핀 화단 앞에서, 카페 앞에서, 건널목에서 유재의 사진을 찍느라 유치원에 도착하기까지 삼십 분이 넘게 걸렸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옥선은 조금 지쳐 있었으나 딸 내외를 출근시키고 식기 세척기와 청소기를 돌린 뒤, 등원길에 찍은 유재의 사진과 동영상을 SNS에 올렸다. 사진을 올리고 두 시간이 넘도록 아무도 댓글을 달지 않자 옥선은 유재와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아 울적해졌다. 유재가 아기였을 때부터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그렇게 애를 써도 간식과 놀이 장소를 제공하지 않으면 끝자리도 내주지 않던 젊은 에미년들을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었다. 저들끼리만 하트를 눌러대고, 귀엽지도 않은 제 자식들을 서로 추켜세워주는 꼴이 보기도 싫었다. 옥선은 거기에 악플을 달아버리고 싶었지만, 손녀를 생각하고, 자식을 생각해서 겨우 참아내고 있었다. 옥선은 분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한 잔, 악플을 참느라 한 잔, 술 한잔 함께 마실 사람이 없는 신세가 처량해 또 한 잔, 점점 배경이 되어가다가 저세상으로 가는 건가 싶어 또 한 잔 마셨다. 그렇게 마시다보니 두 병을 넘게 마셨고 자기도 모르게 까무룩 잠이 들었다.
옥선은 결국 유치원 하원 버스 시간에 맞춰 나가지 못했다. 방과 후 활동을 하지 않는 7세 반일 반 아이들 다섯 명만 탑승하는 그 시간에는 등원 시간처럼 버스가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지 않고 큰길가에 서곤 해서 조금 일찍 나가야 했다. 그날은 병가를 낸 교사가 한 명, 조퇴를 한 교사가 한 명이어서 차량에 탑승할 수 있는 지도교사가 없었다. 원장이 탑승하겠다고 하자 운전기사는 7세면 말귀를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아이들이고, 단 한 곳에 고작 다섯 명을 내려주는 거라 자기가 잘 지켜보면 아무 문제 없다고 했다. 운전기사는 원장이 자신에게 운전을 거칠게 한다느니, 아이들에게 무뚝뚝하게 대한다느니, 목소리가 너무 크다느니 하면서 잔소리를 해대 함께 차를 타고 싶지 않았기에 적극적으로 자기 의견을 피력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런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원장이 차를 탔겠지만, 5세 반 아이의 엄마가 찾아와 아이 화장실 뒤처리를 문제 삼으며 유치원을 발칵 뒤집고 간 뒤여서 못이기는 척 기사의 말을 들었다.
기사는 아이들이 내릴 때마다 발밑을 잘 보고 천천히 내리라고 말했다. 저희끼리 앉아 있던 아이들은 장난에 정신이 팔려 그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밖으로 쏟아지듯 우르르 내렸다. 그날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실수로 치맛자락과 망토를 자꾸 밟는 통에 유재는 여러 번 넘어졌다. 평소라면 앞장서서 내렸을 유재는 치맛자락이 밟히는 게 싫어서 아이들이 다 내린 뒤 마지막으로 내렸다. 다른 아이의 엄마들은 유재 할머니가 나오지 않은 것을 알았지만, 가끔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옥선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엄마들도 가끔 늦곤 했다. 어차피 아이들 모두가 놀이터로 몰려가 해가 질 때까지 놀기 때문에 남의 아이들도 내 아이와 함께 데리고 가곤 했기에 한 명 정도 늦는다고 해도 별 지장은 없었다. 아이들은 놀이터로 달려가 그네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문이 열리자마자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가장 먼저 내린 것은 준영이와 몸을 부딪치며 장난치던 시율이였다. 시율이가 가장 먼저 빨간 그네는 내꺼라고 외치며 놀이터로 뛰어갔고, 준영이도 질세라 뒤를 따라갔다. 그뒤에 조용한 나윤이가 천천히 내렸고, 성격 급한 경빈이가 남자애들이 그네를 다 차지할까 봐 나윤이를 제치고 한달음에 놀이터로 달려갔다. 유재가 버스 안에 서 있을 때 엄마들은 드레스를 입은 유재를 봤고, ‘유재가 오늘의 공주님이었구나. 우리 얼른 가자’라고 말했다. 그리고 냅다 달리는 자기 아이들의 뒤를 바쁘게 좇았다. 버스에서 유재가 마지막으로 내리는 것을 확인한 것은 경빈이의 엄마였다. 그녀는 처음에 유재가 인도에 올라선 뒤에 버스의 문이 닫히는 것까지 확인했다고 말했지만, 여러 번 물어보자 그녀는 자신이 본 것을 확신하지 못했다. 아무튼 경빈이의 엄마는 앞서 달려가는 경빈이를 따라갔고, 유재는 경빈이의 엄마를 따라가지 못했다. 망토는 등뒤에 달려있었고, 문에 끼인 채 버스에 딸려가는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다. 운전기사는 사이드미러에 보이던 아이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평소처럼 밟았는데도 이상하게 잘 나가지 않아 조금 더 세게 밟았다. 친구들과 엄마들이 보지 못한 사이 유재는 버스에 한참 끌려가다가 바퀴 밑으로 빨려들어갔다. 지나가는 행인들이 소리를 지르고 상황을 파악한 차가 버스 앞을 막아서기까지 운전기사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백미터나 더 가서야 차를 세웠다. 길에 멈춰 서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처참한 광경이었다. 뒤늦게 연락을 받은 옥선이 뛰쳐나갔을 때, 구급대원들이 유재의 상태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옥선은 온 힘을 다해 무사하기를 기도했으나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유재의 숨은 멈춰있었다.
주아는 부주의한 운전기사를, 그날따라 결근했던 교사들을, 지도교사를 태우지 않고 직접 타지 않은 원장을, 원장이 제 일을 못 하도록 터무니없이 진상을 부린 5세 아이의 엄마를, 자기 아이들만 데리고 돌아간 네 명의 엄마들을 원망했다. 제시간에 나가지 않은 옥선을, 유난스럽게 긴 망토와 치렁치렁한 치마를 고른 자신을, 자기가 담아둔 드레스를 아무 생각없이 마음대로 결제해버린 남편을, 하필이면 그날 드레스를 배송한 택배 기사를 원망했다. 어린아이를 남에게 맡기고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만든 무능하고 물러터진 남편을, 아이를 봐주지도 못할 거면서 아이를 은근히 바랐던 시집 식구들을, 아이를 책임질만한 주제도 아니면서 외로운 마음에 아이를 맡은 옥선을, 아이를 돌보면서도 술을 끊지 못한 옥선을, 그런 옥선에게 술을 마시게 만든 에미년들을,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면서 결국 무책임한 엄마를 불러들인 자기 자신을 죽도록 원망했다. 만약 저들 중 한 명이라도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저 일 중 하나라도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유재가 죽는 일은 없었으리라 믿었다.
주아는 이 모든 것이 치밀하게 짜인 계략 같았다. 세상을 움직이는 알 수 없는 그 무자비한 놈은 그녀에게 외로운 유년을 살게 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외로움 속에서 죽게 되리라는 엄포를 놓고, 노력하다 지쳐 포기할 때쯤 미끼를 던져주며 너도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달래고, 완벽한 가족을 꿈꾸게 하고 아이까지 주고, 그것이 노력의 결과물이고 인생의 완성이라고 착각하게 했다. 한창 행복했을 때 주아는 승재에게 말하고 싶었다. 미끼를 열심히 주워먹으며 따라간 길에서 마지막으로 만난 건 무서운 게 아니라 완벽한 행복이라고, 나는 노력의 끝을 보았다고, 너 같은 인간과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유재를 잃고 난 뒤에야 그녀는 승재의 말처럼 이상한 미끼를 주워먹고 무서운 결말을 마주하기 위해 달려왔다는 것을 알아챘다. 소중한 것이 없었던 그녀에게 굳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은 존재를 만들 기회를 준 뒤, 그것을 한꺼번에 가져가버리는 것이 그 무자비한 놈의 완벽한 계략이었던 것이다.
주아는 그날, 자신의 모든 것인 아이 하나를 빼앗는 계략을 완성시키기 위해 온 우주가 공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 많은 사람의 사소한 잘못들과 방관, 선택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아이를 죽음까지 몰고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거기에 가장 큰 몫을 한 가담자는 자기 자신이며, 유재가 희생당한 것도 결국 누구도 아닌 자신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짧은 글로 자신의 미안함, 슬픔, 고통을 표현하는 것이 큰 죄인 것 같아 더 글을 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