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저주
유재가 세상을 떠난 뒤 그녀는 유재의 침대에 종일 누워 유재의 동영상과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있다보면 유재가 방문을 열고 들어와 까르르 웃으며 자신의 품으로 뛰어들 것 같았다. 그녀는 기어이 희미해지고 말 유재의 흔적을 영원히 남기고 싶었다. 유재의 노란색 애착 이불과 한쪽 귀가 너덜거리는 젤리캣 인형을, 레이스 달린 프랜치캣 원피스와 은빛 펄 구두, 유재가 매일 자기 전 읽었던 안녕달의 그림책을, 스케치북 더미 속 그림들, 휴지통에 구겨 버린 종이 속 그림들을 모두 사진 찍었다. 글자마다 각각 다른 색으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쓴 어버이날 편지와 선물 상자에 가득 담긴 색종이로 접은 하트와 리본을, 장식장 옆면에 몰래 다닥다닥 붙여놓은 스티커를, 물 묻은 발로 뛰어나와 마룻바닥에 찍어놓은 발자국을, 침 냄새가 배어 있는 얼룩덜룩한 베갯잇을, 책상 밑에 몰래 붙여놓은 코딱지를, 유재의 손길이 닿은 것이라면 사소한 것 하나 빼놓지 않고 사진에 담아두었다.
만 육 년도 채워 살지 못한 유재의 흔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집안에 남은 흔적을 더 찾지 못한 주아는 유치원에 두고 온 유재의 물건을 찾으러 갔다. 그녀를 마주한 선생님들은 난감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원장과 어떻게든 마주치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그녀는 눈치챘지만 참고 말았다. 교실에 있는 유재의 사물함이 아니라 비품이 담긴 복도의 사물함에 유재의 가방을 넣어놓은 것을 보고 주아는 분노를 느꼈으나 그것 또한 견뎠다. 교실에서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주아의 가슴을 비수처럼 찔렀다. 함께 놀던 아이들은 모두 무사한데 왜 내 아이만 세상에 없는가, 내 아이는 무슨 이유로 그런 일을 겪어야 했는가,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주어졌는가…… 분노인지 슬픔일지 모르는 감정이 폭발하기 직전에 가방을 들고나와 집을 향해 빠르게 걸었다. 그녀는 유재가 유치원 버스를 타고 어디를 지나다녔는지, 할머니와 어떤 길로 걸어 다녔는지, 어디쯤에서 쉬곤 했는지, 어느 곳에서 한눈을 팔았는지, 어느 장소를 좋아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낳아놓기만 했지, 제 손으로 키우지 않아 유재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 그녀는 마음 아팠다. 그 작은 아이가 매일 재잘거리던 사소한 이야기들을 피곤하다는 이유로 귀기울이지 못한 것을 후회했고, 아이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했지만 과연 그게 진실이었던 것인지 스스로를 의심했다.
주아는 함께 가까운 숲에 갔다가 유재가 주워 들고 온 가느다란 나뭇가지를 기억해냈다. 주아가 지저분하다며 버리고 들어가자고 해도 유재는 그새 정이 들어 ‘꽃님이’라고 이름을 붙이고는 집에 가지고 들어가겠다고 떼를 부렸다. 남편과 주아가 아무리 구슬려도 더러운 ‘꽃님이’를 버릴 수 없다고 해 놀이터 화단에 꽂아놓았다. 매일 오가며 안녕, 인사하고 물도 주며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하고 꽃이 피기를 기다렸던 다정한 마음을 주아는 갑자기 떠올렸다. 미친 사람처럼 급히 밖으로 뛰어나가 화단을 뒤져봤지만 ‘꽃님이’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게 얼마나 더러운 거라고 거기에 두고 가게 했는지, 아이와의 쓸데없는 힘겨루기에서 이겼던 자신이 싫었다. 가슴이 먹먹해져 가만히 서 있는 그녀에게 유재의 친구인 경빈이와 엄마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언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운전사가 집행유예를 받았다는데 어째요. 원장은 찾아오지도 않았죠?”
주아는 경빈 엄마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당신이 유재가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기다려주었다면, 옷이 낀 것을 알아채고 버스 뒷문을 두드려주었다면, 유재는 여기서 경빈이와 놀고 있을 텐데. 하지만 당신은 죄가 없지. 그렇지만 당신이 어려울 때 도울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주아는 속으로 생각만 하면서 경빈이를 내려다보았다.
“유재 이모. 유재는 언제 와요?”
어린 경빈이는 유재가 왜 여기 없는지 모르는 게 당연했다.
“너도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야.”
경빈 엄마는 그 대답을 듣고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주아가 아이를 보지 못하도록 옆에 끼고 그 자리를 서둘러 떠났다.
그날 밤, 그녀는 가슴 한가운데 뭉쳐 있던 멍울 같은 열 덩어리가 온몸을 헤집고 옮겨 다니고 있는 것을 느꼈다. 얼음물을 마시고, 찬바람을 맞아도 좀처럼 식지 않던 열 덩어리는 유재의 침대에 눕자 정수리를 뚫고 나갈 기세로 솟구쳐올랐다. 그녀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엎드린 채 헛구역질했다. 계속되는 통증을 참을 수 없어 이리저리 구르다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끙끙 앓던 그녀는 열 덩어리가 입 밖으로 툭 튀어 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마치 아이를 낳은 뒤 따라 나오는 태반처럼, 오래 묵은 생각들이 뒤이어 나오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엎드린 채 그녀는 머리를 감쌌던 양손을 맞잡고 생각에 빠져들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며 수많은 생각을 문장으로 완성했으나 대부분이 끔찍한 것들이라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도록 간신히 견뎠지만 입술 밖으로 끅끅거리는 소리가 새어나가는 것은 어쩌지 못했다.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었던 남편은 이상한 소리에 놀라 유재의 방으로 달려왔다. 그는 절을 하는지 기도를 하는지 알 수 없는 모습으로 웅크린 채 몸을 들썩이는 그녀를 보고도 놀라지는 않았고, 고통과 슬픔이 그녀의 몸을 뚫고 나와 울음으로 바뀌고 있는 거라고만 생각했다. 그 무렵 둘은 따로 울거나, 함께 울거나, 싸우다가 울거나, 밥을 먹다가 울거나, 방문을 열다가 울거나 했기에 누가 운다고 해서 그다지 걱정하지는 않았다. 울음은 일상적인 일이어서 그는 그녀의 모습을 잠자코 지켜보다가 끝내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함께 울고 말았을 뿐이다.
그녀는 태어난 이래로 그토록 간절한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신을 믿어본 적 없는 그녀는 간절한 마음을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에너지가 있어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반드시 그만큼의 고통을 돌려받기를 바랐다. 그녀는 그 거대한 에너지를 향해 자신도 모르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들을 수도 없이 반복해 중얼거렸다. 너희들이 한 일을 그대로 돌려받기를, 그 이상으로 돌려받기를, 너희들의 자식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기를, 너희들의 가정이 부서지기를, 너희들이 제명대로 못 살기를, 끝없이 불행해지기를, 죽어서도 고통받기를, 그 고통을 모두가 방관하기를 염원했다. 그 염원은 그녀가 유재를 낳고 느낀 기쁨과 고통보다 더 큰 폭발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종교가 없어도, 누군가에게 배우지 않아도, 방법을 몰라도 스스로 터득할 수 있는 저주의 기도였다. 그녀의 기도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절도 아니고 기도도 아닌 동작을 할때도 있지만, 그냥 식탁 앞에 앉아서, 화장실에 앉아서, 침대에 누워서 언제든 할 수도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게 앉아 있는 듯 보이긴 했으나, 가끔 입 밖으로 새어나가는 소리 때문에 옥선은 그녀가 무언가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뭘 그렇게 중얼거리냐고 옥선이 물으면 주아는 유재에게 못한 말을 생각하고 있다든지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고 둘러댔다. 그러나 옥선은 주아가 이상한 생각에 빠져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기도한 지 한 달쯤 되는 날, 주아는 거실 창가에 서서 아파트 단지 안까지 들어와 멈춰 선 유치원 차량을 내려다보았다. 차량에서 내리는 아이들을 엄마들이 차례로 맞이했고, 차량 지도 선생님도 함께 내려 아이들과 보호자가 함께 있는지 확인하고 차를 탔다. 그것을 지켜 보던 그녀는 급히 밖으로 나갔다. 옥선이 뒤따라 내려갔을 때 주아는 경빈이의 엄마와 서로의 머리채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팽팽하게 버티다가 주아가 먼저 손을 놓치고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미친년이. 누구한테 손을 대?”
“경빈 엄마, 일단 놓고 말해요.”
경빈 엄마는 다른 아이 엄마들과 옥선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아의 머리채를 그대로 잡은 채 대답했다.
“갑자기 튀어나와 애를 끌어안으면 어떻게 해? 애가 놀랐잖아요.”
“아이고, 미안해요. 그래도 머리채까지 잡을 일은 아니잖아요. 유재 생각나서 그러는 거예요. 둘이 제일 친했잖아요. 설마 해코지하려고 그랬겠어요?”
“내 머리채를 유재 엄마가 먼저 잡았어요.”
옥선은 경빈 엄마의 손을 놓게 하고 주아를 일으켜 자리를 떴다. 주아는 누가 봐도 미친 사람이라 오해할 정도로 눈의 초점도 흐릿했고,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오묘한 표정을 지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이를 잃은 엄마가 정신줄을 놓은 것 같다고 등뒤에서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집으로 돌아간 주아는 손에 움켜쥐고 있던 것을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흰 테이블 위에 가느다랗고 짧은 머리카락 두 개와 길고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카락 여러 가닥이 놓였다. 주아는 가만히 앉아 그것을 지켜보다가, 긴 머리카락을 자신의 구두 깔창 밑과 실내 슬리퍼 밑창에 하나씩 넣었다. 옥선은 이것이 주아가 하는 기도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옥선이 저주하는 거냐고 물었을 때, 주아는 부정하지 않고 대답했다.
“잘은 몰라요. 하지만 기도만으로는 너무 오래 걸려요.”
“그러지 말아. 모두 자기한테 돌아오게 돼.”
옥선이 말리자 주아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다 해도 어쩔 수 없어요. 다 돌려받아도 상관없어요.”
“아기 엄마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러니.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잖아. 다 내 잘못이야. 너도 다 알면서 이러는 거잖아.”
주아는 그렇지 않다고 하며 마음에 없는 말을 해서 옥선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 엄마들은 자기가 잘못했다고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운전기사도 원장도 큰 죄를 지었다며 용서를 비는 척했지만, 제대로 처벌받지는 않았잖아요. 입으로 용서를 비는 게 뭐가 어렵겠어요, 돈으로 보상하고 사과하고 나면 내가 용서를 하든 말든 자기 할일은 다 했겠다고 생각할 거예요. 그리고 재수 없었던 일이라 생각하고 곧 잊어버리겠지요. 그 사람들도 그런데 쟤들은 오죽하겠어요?”
“엉뚱한데 힘쓰지 말고, 다 잊고 네 삶을 살아야지. 여기서 끝이 아니잖니.”
“제 삶은 여기서 끝이고, 이제 기도하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엄마는 자식을 잃어본 적이 없어서 이 고통을 몰라요. 아마 내가 죽어도 절대로 이해 못할 거예요.”
“그게 엄마한테 할 말이니? 내가 왜 모를 거라 생각해?”
“엄마는 사랑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이제 제발 가세요. 유재도 없는데 여기 왜 있는 거예요?”
옥선을 기어이 혼자 집으로 돌려보내고 주아는 마음껏 기도했다. 옥선과 함께 말리던 남편은 주아가 그렇게 해서라도 마음이 조금이라도 나아진다면 그냥 두는 게 맞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내의 광기 가득한 염원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그녀의 집념이 무서웠고, 언젠가 상상도 못한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주아는 투명한 그의 표정에서 그런 마음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를 위해 멈출 수는 없었다. 남편은 세 다리만 건너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좁은 도시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흉흉한 소문을 주아에게 전했다.
유치원 차량 운전사가 운전 실수로 인도로 뛰어들어 길을 걷던 모자를 사망하게 하고 구속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유치원 원장의 횡령이 발각되고 남편의 도박 문제라는 악재가 겹쳐 파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주아는 그것이 사필귀정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경빈 엄마가 경빈이의 어린 여동생을 학대해 구속된 사건이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회자되었을 때는 그 여자의 못된 성질머리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장난이 심했던 시율이가 그네에서 떨어져 장기 입원 중이며, 준영이 엄마의 외도가 들통나 가정이 풍비박산 나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주아는 그 모든 사건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한편 어쩌면 자신의 기도로 인해 그들이 불행해졌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원 원장 모임의 멤버인 나윤이 아빠가 퇴근길 운전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주아는 머리카락이 다 곤두서는 것 같았다. 남편이 장례식에서 만나 이야기를 듣기로는 그동안 학원 수강생이 급격히 줄어들고 강사들이 한꺼번에 그만두는 바람에 스트레스가 말도 못했고, 임대료를 제때 내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학원을 운영하다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기에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주아는 유재의 죽음과 조금이라도 연결된 사람은 모두 흉한 꼴을 면하지 못했음을 눈치챘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것임을 알면서도 주아는 모든 게 저주 기도의 결과물처럼 느껴졌다. 나윤 아빠의 장례식에 다녀왔던 날 경준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처음으로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당신이 하는 기도랑 이런 일들이 연관이 있는 거야? 매일 하는 게 저주 기도라는 거, 사실 나도 알고 있어.”
“기도하는 게 아니라 유재한테 다 못한 말을 하는 거야. 저주가 그렇게 쉬울 것 같으면 세상 사람 중에 멀쩡한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그 사람들은 그냥 자연의 순리대로 자기가 한 것만큼 돌려받은 거야.”
그녀는 그 기이한 우연을 다 믿을 수는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저주가 유효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좀 더 열심히 기도했다. 그와 그녀를 채우고 있던 온기가 빠져나간 자리에 복수의 열망과 공포가 들어찼다. 모두가 불행해졌음에도 그녀는 기도를 멈출 수 없었다. 주아의 집을 담당했던 택배 기사가 바뀌고, 그가 교통사고로 장애를 얻어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결근했던 유치원 선생님이 연인의 파산으로 파혼해 그 지역을 떠났고, 조퇴했던 선생님은 학부모의 잦은 항의 전화로 인한 스트레스로 휴직했다는 소문이 귀에 들려왔다. 그것이 기도의 결과임을 확신할 수 없었으므로 주아에게는 반성이란 없었고, 모두가 좀 더 불행해져 회생하지 못할 때까지 기도를 계속할 생각이었다. 남편은 남에게 나쁜 마음을 품어본 적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었는데, 사람들의 불행에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그보다 더 큰 불행이 덮쳐주길 바라는 자신의 민낯을 마주한 것이 힘들다고 했다. 주아는 그 이야기에 동요하지 않았고, 한마디로 일갈했다.
“약해 빠져서는…… 당신이 그러고도 아빠야? 당신의 양심이 더 중요한 거야? 좀 솔직해져봐.”
“그래. 그래보자. 네가 아니었다면, 내가 아니었다면, 네 엄마만 아니었다면 유재는 그렇게 되지 않았을 거야. 우리 엄마가 유재를 맡아줬더라면, 내 동생이 돌봤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야. 그래. 앞으로 우린 서로를 미워하면서 제대로 살아가지 못할 거야. 우리가 다 죽을 때까지 이 고통이 끝나지 않을 거라고.”
남편 역시 마음속으로 모두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주아는 오히려 시원해졌다. 그녀는 집에 이제 사람 같은 건 아무것도 없고, 모두 고통의 숙주로만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복수를 할 수만 있다면 다 괜찮았다.
집으로 돌아간 옥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분 백골화가 진행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손상 없이 침상에 얌전히 누운 상태였고, 외부 침입 흔적이 없어 자연사로 추정되었다. 주아는 유재가 시집갈 때까지 오래오래 살겠다며 영양제와 건강식품을 열심히 먹고 매일 유산소운동과 근력 운동을 빼놓지 않았던 옥선이 그렇게 쉽게 세상을 떠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매일 술을 마시는 게 문제였으나 집 어디에서도 술의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생각하다보니 어쩌면 자기 부부의 저주가 그녀를 죽음까지 몰아넣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세상에 저주 같은 게 통할 리가 없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여기까지가 수요모임에 나가기 전까지의 생각이었다.
모임에 나간 주아는 자녀를 잃은 고통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사람이 기막힌 이유로 자녀와 이별했고, 그것을 어디서도 위로받거나 보상받지 못했다. 그녀는 서로 비슷한 처지들끼리 모여 마음을 보듬으며 치유해 나가는 것이 모임의 목적이며, 옥선에게도 이런 모임이 필요했으리라 생각했다. 옥선은 매일 함께 살을 맞대고 지냈던 손녀를 다시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다는 것을 형벌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딸과 사위 앞에서 마음대로 슬퍼하지도 아파하지도 못했다. 유재와 지내던 도시에서 옥선은 만나거나 소통하는 사람이 전혀 없었고, 오랜 친구들은 인연이 끊겼기에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오로지 술뿐이었던 옥선은 맨정신으로 그 고통과 슬픔을 견뎠다. 주아는 집으로 돌아온 옥선이 힘든 마음을 혼자 견뎌내지 않고 모임을 찾았다는 것에 분노를 느낀 동시에 그래도 마지막까지 쓸쓸하게 지낸 건 아닌 듯해 안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도 다른 사람의 일기를 듣고 나면 자신과 비슷하거나 더 나쁜 처지인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미안하게도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모임의 목적이 그게 다인 줄만 알았다.
주아는 사람들이 자신이 했던 악행을 쓰는데 열을 올리면서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아마 비슷한 경험을 하지 못했더라면 주아는 모두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픈 이야기를 다시 언급해 정말 미안하지만, 그녀의 생각을 바꾼 이야기를 불가피하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유학 중 약물 중독으로 사망한 딸을 둔 아버지가 그녀에게 약을 공급한 남자친구를 자신의 저주 능력을 동원해 총기 사고로 죽게 했다는 일기, 아파트에서 투신한 중학생 딸을 둔 어머니가 간절한 기도로 딸을 지속적으로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한 네 명의 아이들에게 차마 입에 올리기 힘든, 회복 불가능한 고통을 주었다는 일기를 들었을 때 주아는 저주 능력이라는 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라 모임의 멤버들 모두 가지고 있는 능력이었다. 그것은 종교나 무속의 영역이 아니며 망상이나 조현병 같은 정신병도 아니었고, 자녀를 잃은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의 에너지 덩어리가 만들어 낸 진짜 능력이었다. 자신의 능력을 알아챈 사람들은 처음에는 두려워하면서도 기뻐했다. 할 수 있는 만큼 응징하고 복수하는 데 온 능력을 썼으나, 그것을 일관적으로 작동하는 법을 몰랐고, 그 위력의 한계도 알지 못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람들은 컨트롤 되지 않는 능력을 점점 버거워하게 되었고, 그것이 없어지기를 바라게 되었다. 모두들 그런 간절한 마음에 모임을 찾아온 것이라고 했다. 주아는 그런 능력이 있을 리 없었던 옥선이 모임에 참여한 이유가 자신을 어떻게든 말려보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았다.
주아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의 능력이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토록 힘들게 획득한 능력을 없애고 싶어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모두를 응징하는데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써보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유재의 죽음과 관련된 사람들을 끝없이 고통으로 밀어넣고 싶었다. 모임에 계속 참여한다고 해서 그 능력이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모임에서 하는 것은 일기를 읽는 것뿐이니 말이다. 그녀는 사람들의 일기를 통해 능력을 어떻게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건지, 그 힘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알아내고 싶었으나, 그것은 개인마다 전혀 다른 형태로 발현되었고, 그 힘 역시 각기 달라 알아낼 수 없었다. 그녀는 작은 원망이 커다란 응징을 불러온 이야기와 일상적인 자책이 자신에게 큰 해를 입힌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를 제대로 지켜보지 않은 남편을 책망하다가 그 저주로 인해 남편까지 사고로 잃게 된 젊은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아는 공교롭게도 또 하나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었다.
쌍둥 이모가 죽었다. 주아는 그녀가 싸움에 져서 전의를 잃고 오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다. 싸울 때는 신나게 악담을 퍼부었지만 모든 게 진심은 아니었고 다시 찾아와 귀찮게 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골목으로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악취를 이웃 식당 사장이 곧바로 알아채고 신고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 전 옥선의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경찰이 쌍둥 이모의 집을 찾아갔을 때, 이모는 신발을 벗지 못한 채 현관 앞에 엎드린 자세로 사망한 상태였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노환으로 인한 자연사라고 했지만, 주아는 쌍둥 이모를 죽인 것이 자신의 악담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의 저주 능력이 엉뚱하게 아이의 죽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쌍둥 이모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이 능력을 없애고 싶어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이 반복하곤 했던 기나긴 저주 기도의 내용을 복기했다 그녀가 자신과 남편, 엄마의 잘못까지 끊임없이 되새김질했던 것을 기억했다. 엄마를 죽인 것이 자신의 저주인지, 아니, 엄마의 삶을 돌아보면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닐 텐데, 누가 엄마를 저주한 것인지, 자신은 또 누구의 저주로 이렇게 불행해졌는지, 그리고 앞으로 누구를 더 상하게 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