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책임 전가

11. 책임 전가

그녀는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자신이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깨어 있는 동안 기도하거나 그날을 복기했다. 그녀는 유재와 함께 하지 못해 알 수 없었던 시간을 유추하기 위해 등원 차량 시간에 맞춰 나가 아이들이 탑승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차량이 운행하는 도로를 따라 걸어 유치원에 갔다. 야외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어떤 날은 하원 무렵 유치원에 찾아가 아이들이 차량에 탑승하는 것을 지켜보았고, 또 다른 날은 아파트 단지 앞에서 차량을 기다리다가 아이들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았고, 놀이터에 앉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았다. 매일 유재가 보냈던 무사한 일상처럼 누구에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간혹 차량에 남아 꾸물거리는 아이가 있으면 차량 도우미가 유치원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선생님이 결근하기도 했으나 여러 명이 한꺼번에 빠지는 때는 없었고, 차량을 도우미 없이 그냥 내보내는 일은 없었다. 하원하는 아이를 데리러 나오지 않는 부모도 없었고, 뒤처지는 남의 아이를 그대로 두는 엄마들도 없었다. 그녀는 자기가 유치원과 놀이터를 맴도는 것 때문에 선생님이나 학부모들이 유독 더 조심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상이 원래 이렇게 흘러갔던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렇게 쉽게 사고가 일어날 수 없는 날들이라고 생각했다. 사고가 난 아파트 단지 앞 대로변을 걸을 때마다 그녀는 작고 연약한 유재가 겪었을 고통을 상상해 보려 했지만 겪어보지 않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기어이 차도로 내려서거나, 무단 횡단을 하는 사람처럼 뛰어들었다. 그러나 통행량도 적은데다 제한속도가 낮은 도로라 자동차들은 그녀를 쉽게 피해갔다. 그곳은 사고가 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도로였다.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왜 유재였을까? 우리가 무슨 잘못을 해서 벌을 받는 걸까? 내 죄는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린 것 말고는 없어.”

남편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 그녀는 그의 수심 가득한 얼굴에 언뜻 지나가는 혐오를 발견했다.

“왜 그렇게 쳐다봐? 나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말하고 싶은 거야? 당신은 뭘 그렇게 잘 살았어?”

“당신 탓이 아니야. 그건 운전자 과실인 사고잖아. 그것 말고 또 무슨 원인이 있다는 거야?”

그녀는 그것이 진짜 원인이라고 인정할 수 없었다. 설령 운전자가 잘못된 판단을 했다 하더라도 원장이 허락하지 않았다면, 아이 엄마들이 내리는 아이를 끝까지 보았다면, 망토가 끼지 않았다면, 엄마가 잠들지 않았다면, 드레스를 입히지 않았다면, 드레스를 사지 않았다면, 그중 단 하나만 피해갔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고였다.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아무도 제대로 된 사죄를 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의 일은 마치 누군가 설계한 것처럼 작위적이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 많은 사람을 조종해서 사건을 만들 수 있는 존재라는 게 있을 리가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유재가 그 표적이 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주아는 사고의 진짜 원인이 존재할 거라는 생각을 놓을 수 없었다. 상황을 여기까지 몰아온 불가항력의 힘이 있다고 느꼈다.

옥선의 부고를 전해들었을 때 그녀는 엄마를 죽인 것이 자신의 원망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는 찰나에 스친 그 생각을 금세 떨쳐버렸다. 그녀가 전해 들은, 유재 사고의 방관자들에게 생긴 불행이 그녀의 저주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일에서 비롯되었거나 혹은 우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듯, 옥선의 죽음 역시 그런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해버렸다. 옥선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도 남편은 옥선과 계속 연락을 이어나갔다. 그는 옥선 또한 손녀를 잃은 할머니라는 것을 잊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고, 충분히 애도할 시간이 필요했을 텐데 계속 원망하며 괴롭히다가 쫓아낸 것 같아 미안했다. 그래도 옥선이 문자 메시지를 보내면 빨리 답장을 하고, 전화를 걸면 밝은 목소리로 받곤 해 그는 안심할 수 있었다. 먼저 그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그는 옥선이 그곳에서 나름대로 바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이 갈수록 옥선은 시끄러운 곳에 나가 있다며 전화를 잘 받지 않았고, 이런저런 모임에 다녀오느라 확인이 늦었다며 문자메시지에도 늦게 답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매일 이어지는 아내의 기도와 기이한 행동으로 인한 말다툼에 온통 신경을 빼앗겨 한동안 옥선에게 연락하지 못했다. 두 달 가까이 연락하지 않고 지내다가 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받고서야 옥선이 잘못된 것을 알았다. 그는 자주 연락했더라면 옥선이 혼자 쓸쓸하게 죽어가는 일은 없었을 거라고 자책했다. 그러나 주아는 그러지 않았다. 유재의 죽음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자책하고 복기했지만, 옥선의 죽음 앞에서는 자신의 원망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하고 한 번 생각해본 것이 다였다. 세상에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저주가 실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주아는 옥선을 그렇게 만든 것이 자신의 저주가 아니라 타인들의 저주가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저주가 자식을 잃어야만 생기는 능력인지 확실히 모르겠으나 큰 고통이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면 그러기에 충분했다. 옥선이 고통을 준 사람은 주아가 알고 있는 경우만 해도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였다. 대학 시절 그녀가 끼어들어 망쳐놓은 커플이 셀 수 없이 많았다는 이야기는 경미 이모에게 들어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대놓고 나쁘게 이야기한 게 아니라 엄마가 남자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것과 하고자 하는 것은 꼭 이루고 마는 성격을 이야기하면서 새어나온 이야기였다. 옥선은 다른 여자와 연애중인 남자의 행복한 웃음에 끌리곤 했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는 대부분 하룻밤이면 충분했다. 남자친구에게 일방적으로 결별을 통보받은 여자들의 원망과 여자친구를 버리고 난 뒤 곧바로 차인 남자들의 황망한 분노는 아마도 가장 약한 축에 들 것이다. 그 약한 것들의 군집이 옥선의 불행 중 하나 정도는 가져왔을 거라고 주아는 생각했다. 훗날 이어지는 옥선의 외도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그 연장선상일 뿐이었다.

주아는 갓난아이를 안고 집을 찾아와 울며 남편과 제발 헤어져 달라던 젊은 여자를 기억했다. 주아는 옥선이 여자를 대문 밖에 세워 둔 채, 네 남편이나 잡으라고 조용히 윽박지르던 음성과 뒤돌아섰을 때 옥선의 입술에 감돌던 사악한 미소를 떠올렸다. 옥선이 집을 나가 있는 사이 가끔 낯선 여자들이 찾아와 행방을 물으며, 너의 엄마가 어떤 가정을 어떻게 박살 낸 것인지 말해주었던 일들도 주아는 다 기억하고 있었다. 남자 형제를 데리고 뭐라도 부술 기세로 찾아왔다가 여자아이 혼자 있는 것을 보고 난처하게 돌아선 사람도, 그냥 가려니 분통이 터졌는지 마당에 놓인 의자를 발로 차 부순 사람도 잊지 않고 있었다. 대문을 박차고 들어온 머리가 허연 아줌마가 머리카락이라도 뜯을 기세로 옥선을 찾아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다가 냉골에 엉망진창인 집안 꼴을 보고는, 중학생 여자아이가 한데나 마찬가지 같은 집에 혼자 있는 게 걱정된다며 자신이 망가뜨린 대문 고리를 고쳐주고 현관에 걸쇠를 달아주고 간 일도 있었다. 우는 여자, 화내는 여자, 다 죽어가는 것처럼 힘없는 여자, 아이를 안고 업고 온 여자 등 많은 여자들이 찾아왔지만, 모두 옥선을 만나보지도 못한 채 돌아갔다. 여자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음에도 옥선보다 좋은 사람처럼 보였는데, 그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옥선 같은 사람을 선택한 남자들이 괜찮을 리 없다고 주아는 생각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곧 헤어질 거예요.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어디에 살림을 차렸는지 모를 엄마 대신 그런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주아는 구역질 날 정도로 싫었지만, 영문도 모르고 당했을 여자들이 불쌍했다. 주아는 옥선이 언젠가 큰 벌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했다. 주아는 많은 여자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누구의 저주가 가장 클 것인지 가늠해보았다.

가장 큰 저주는 아마도 경미 이모부터 왔을 것이다. 주아는 처음에 이런 일이 있었을 때 이모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이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엄마에 대한 경멸만 커지는 것 같아 주아는 혼자 감당하고 말았다. 이모가 엄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상관없었지만, 행여 자신까지 싫어하게 될까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이모는 옥선이 돌아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내내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보수적이고 성실한 이모가 왜 옥선의 친구로 남아 있는 건지 주아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 관계가 깨지지 않았으면 했다. 다행스럽게도 경미 이모는 주아의 가족 곁을 떠나지 않았고, 가장 근거리에서 도와주었다. 경미 이모의 가족은 주아를 세상에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 동시에, 혼자라고 느끼게 만드는 사람들이었다. 그 가족과 함께 있으면 배가 고프거나 무섭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나 남인지 알게 되곤 했다. 이모부가 쓰던 충청도 사투리에서 영향을 받은 가족들의 말투와 그들의 이닦는 습관이나 옷을 정리하는 방법 같은 것을 보고 주아는 자신이 부모에게서 배운 게 아무것도 없으며, 자신이 속한 가족 따위는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야 주아는 경미 이모가 엄마 곁에 있는 것이 우정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동경했던 부잣집 딸이 몰락하는 것을 맨 앞줄에서 관람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눈치챘다.

주아 가족의 몰락과는 반대로 경미 이모의 가족은 점점 사정이 좋아졌다. 가진 게 없어도 화목했던 경미 이모네 집은 가진 게 늘어갔다. 공무원이었던 이모부는 차근차근 승진했고, 이모도 틈틈이 주방일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돈을 모아 학군지의 소형 아파트를 사두었다. 이모네 부부는 아이들이 원하는 거라면 다 사줄 기세였다. 테이프 복사가 가능한 더블 데크 오디오와 업라이트 피아노, 러닝머신도 놔 주었다.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 이모는 수학을 어려워했던 주연이에게 과외를 시켰다. 늘 주아보다 낮은 등수였던 주연은 전교권으로 급상승해 주아를 위협했다. 효과를 본 이모는 본격적으로 보험회사에 취직하면서 두 딸에게 수학과 영어 과외를 시키기 시작했다. 주연이의 성적은 주아를 훌쩍 넘어섰고, 가연이는 중학교 진도를 거의 다 나간 상태로 중학교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경미 이모 부부는 아이들 교육을 생각해 학군지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옥선이 잠깐 집에 돌아왔을 때, 경미 이모 가족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분에 넘치는 대형 텔레비전을 선물하겠다고 했다. 주아는 경미 이모가 고마워하는 것이 아니라 샐쭉해하며 기분이 상하는 것을 눈치챘다.

“너도 빨리 돈 벌어서 이 동네 탈출해야지. 지금 아니면 평생 여기 살게 돼. 애를 이런 데 그냥 놔두지 말고 공부시키는 동네로 가야지. 안 그러면 서울 안에 있는 대학 못 보낸다. 네 형편에 텔레비전이 다 뭐니. 놔뒀다 주아 학원이나 보내.”

주아는 경미 이모가 옥선의 자존심을 뭉개고 싶어 몸부림친다고 생각했다. 옥선이 전혀 부러워하지도 기죽지도 않는 바람에 경미 이모는 기분이 상한 채 돌아갔다. 옥선은 경미 이모가 처음으로 적의를 드러낸 것에 불쾌했지만 내색하지 않느라 고생했다며 주아에게 말했다. 그날, 옥선은 경미 이모가 가진 질투와 적의를, 그녀가 없는 말을 지어내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를 모조리 끊어버린 이야기를 해주었다. 놀라운 것은 이모부도 엄마가 먼저 소개받은 사람이었는데, 두번째 만남의 약속 장소가 바뀐 것을 전달하지 않고 이모가 대신 나가 둘의 만남이 시작된 거라고 했다. 경미 이모는 옥선에게 너는 가난한 남자 싫어하니까 괜찮을 거 아니야? 라고 한마디 한 게 다라고 했다. 그때 옥선은 경미의 본심을 알았다고 했다. 주아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태어나 엄마보다 경미 이모와 나눈 이야기가 훨씬 더 많았기에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다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돼버렸다. 옥선은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가장 앞줄에 있는 게 경미일 거라며, 이제 연락이 오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녀가 옥선을 싫어하는 진짜 이유를 묻자, 열등감 때문인 것 같기도 한데, 사실 잘 모르겠다고, 그러니 이제부터 그 이유를 만들어주겠다고 농담처럼 툭 던졌다. 주아는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돌봐준 경미 이모에게서 정을 뗄 수는 없었다. 이모가 이사 간 집으로 불러주기를 바랐지만, 훗날 주연이 집에 찾아오기 전까지 연락이 온 적은 없었다.

옥선은 타인들의 저주를 받아 불행하게 살다가 비참한 죽음에 이른 게 분명한 것 같았다. 그런데, 저주를 받은 것이 비단 그녀뿐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모든 저주가 옥선을 향해 정확하게 전달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저주를 직접적으로 행하는 무속인이 아니고서야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도 옥선을 향한 저주가 흘러넘쳐 주아의 삶을 망쳐놓은 것도 모자라, 유재까지 죽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도달했다. 옥선에게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한 유재를 빼앗음으로써, 상실감과 고통을 느끼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으로 저주가 완성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주아는 남편에게 전화 걸어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이야기했다.

“사고의 원인을 알아냈어. 아무래도 누군가의 저주가 그 원인인 것 같아. 그건 엄마의 죽음도 마찬가지야. 여기서 저주의 힘이 진짜 존재한다는 걸 알았어.”

주아는 모임에 대해 더 말할 수 있을 것 같았으나, 전화기 너머에서는 숨소리 섞인 침묵만 돌아와 쓸데없이 화를 내버렸다.

“왜 아무 말 하지 않는 거야? 그것도 나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 그래서 당신은 무고해?”

그는 주아 탓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고, 조용히 흐느꼈다. 주아는 흐느낌 속에서 역시 혐오의 감정을 느꼈다. 혐오는 그녀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그녀는 사고 이후부터 그가 둘의 만남부터 후회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그러했으므로 그도 그러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그 도시까지 밀려가지 않았더라면 유재를 만날 수 없었겠지만, 유재에게 그런 고통을 당하게 만들지도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주아가 먼 도시로 떠난 것도 불운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 불운도 엄마를 향한 저주 때문에 생겨난 것일지 모른다. 그녀는 승재가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을 그만두었고,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자 했다. 고등학교 시절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에 대한 억울한 소문이 학과 내에 퍼져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얼마 뒤 어느 날 과 사무실 앞과 과방 복도, 단과대학 입구에 대자보가 붙었다. 사범대 수학교육과 재학생이 과거 저질렀던 만행에 대한 고발이었다. 그 학생은 고등학교 시절 동급생을 원조교제 시켜 금전을 갈취했고, 불량 학생들의 집단 비행을 방관했으며, 자기 친구까지 끌어들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학생은 현재에도 남자와 동거하고 있는데, 그토록 문란하고 도덕적으로 결함이 큰 인간이 교사가 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이름을 공개하기 전에 자발적으로 학교를 나가라는 경고문이었다. 주아는 그 대자보가 자신을 지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고등학교 시절 따라다녔던 그 소문을 모르는 동창생이 없었기에 누가 썼는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녀는 자기 이름이 쓰여 있는 것도 아닌데 대자보를 떼어내다가 그 주인공이 자신이라는 것을 들키기라도 할까 두려워 손도 대지 못했다. 다른 학생들이 떼 버려도 다음날 같은 자리에 같은 대자보가 붙어 있었다. 반복해서 떼어내자 결국 그녀의 실명과 출신 고등학교 이름이 명시된 대자보가 붙었다.

그뒤로 그녀는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미묘하게 바뀌어 있음을 눈치챘다. 네가 아무리 좋은 사람인 척해도 우리는 다 알고 있다. 그들의 표정에서 그런 마음이 느껴졌다. 해명하고 싶었으나 아무도 묻지 않았기에 아무나 붙잡고 말할 수도 없었다. 학과장이 그녀를 불러 소문의 진위를 물었을 때, 주아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따라다니던 헛소문이며 얼마 전 집에 들어온 세입자가 남학생이라 동거라고 오해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학과장에게는 진위가 아니라 지저분한 소문으로 학과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학교를 시끄럽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학과장은 소문이 사라질 때까지 학교를 쉬는 게 어떠냐고 권고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녀는 이미 학교에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고, 이전 학기의 장학금을 놓쳐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던 상태였다. 등록금을 낼 수 없을 정도로 어렵지는 않았으나, 장학금은 그녀의 자존심이자 옥선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옥선는 그녀가 자기가 나온 대학에 가지 못한 것에 실망하고, 하고 싶어한다는 일이 고작 선생질이냐고 빈정대는 것으로 주아에게 좌절을 안겨주었다. 그래도 장학금을 받았다는 핑계로 오랜만에 연락하면 인색한 칭찬이라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명예와 자존감이 모두 실추된 그녀는 인생을 완전히 망쳐버린 기분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던 그녀는 학교도 도서관도 거의 가지 않았다. 명절에도 쉬지 않고 공부했던 그녀는 태어나 처음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루를 보냈다. 집에 돌아가면 그가 있었던 것처럼, 집에 있으면 그가 돌아왔다. 그에게 자신이 겪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고, 쓸데없이 이 음악이 어떻고, 저 그림이 어떻고 떠들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자기에게 무엇을 해주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저 함께 있어 주어서 좋았다. 승재는 과가 달랐던데다 학교에 잘 가지 않아 소문에 대해 모르는 눈치라 오히려 다행이었다. 대문을 닫고 둘이 앉아 있으면 집안으로 어떤 불행도 침범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는 승재에게 더 많이 의지하게 되었고, 둘이 있는 그 안온한 시간이 영원하길 바랐다. 그가 학교에 가거나 일하러 나갈 때면 그녀는 그 없이 살아가는 게 불가능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돌아오면 헤어진 연인을 오랜만에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다. 둘이 함께 마시는 맥주 캔이 늘어났고, 함께 아무 말 없이 부둥켜안고 있는 시간도 늘어났다. 둘은 서로 그루밍하는 고양이들처럼 소중하게 서로를 쓰다듬어주곤 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그에 대한 집착과 열망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의 대문 안으로, 마루로, 안방으로 그를 끌어들이고 싶었고, 영원히 가둬두고 싶었다. 그녀는 그가 궁금해졌다. 나가서 누구를 만나는지, 여자를 만나는 건 아닌지, 언제 집으로 돌아갈 계획인지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진 것인지, 다정하게 구는 것이 사랑인지 배려인지, 왜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면서도 갑자기 커진 자기의 마음을 그가 알아채고 부담스러워 도망가기라도 할까봐 무심한 듯 행동했다. 그가 없는 시간에는 마루에 앉아 둘이 함께 그린 벽화를 사랑의 징표라도 되는 것처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을 위해 굳이 남아서 벽화를 그려준 그 마음의 소중함과 그림을 함께 고르고 밑그림을 그린 뒤 색칠했던 다정한 시간을 떠올리면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해가 지도록 그가 돌아오지 않으면 혹시 떠난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살며시 들기도 했지만, 그는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주아는 둘의 미래 같은 건 그리지 않았다. 이전에 그의 어머니가 찾아와서 말했던 하층민이라는 표현이 처음에는 얼토당토않다고 생각해 헛웃음이 났다. 낡은 집에 살고 있어서 가난해 보일 뿐이지 아버지가 남긴 재산과 보험금도 꽤 가지고 있었고, 학벌 좋은 엄마 밑에서 배울 만큼 배운 자신이 그런 말을 들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보살핌은 부족했지만, 엄마의 수입도 나쁘지 않았기에 경제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자신이 직업을 가지고 이 집을 나가 독립하게 되면 그런 모욕적인 말을 들을 일도 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열심히 꾸려온 삶이 이놈의 집구석마냥 다 무너져가는 마당에 생각해보니 자신이 진정한 하층민이 맞는 것 같았다. 하층민 따위가 귀한 집 도련님과 미래를 꿈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래 자체가 없는데 꿀 꿈이 과연 있을까 생각했으나 그래도 그와 함께 있어 쓰러져 있지만은 않았다. 학교와 집이 세상 전부였던 그녀는 그 덕택에 미술관에서 일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그 겨울 승재가 갑자기 떠났을 때 그녀에게서 사라진 건 사람 하나가 아니었다. 그는 상상하지 못했거나 외면했을 테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잃은 거나 진배없었다. 그녀는 그에게 가졌던 집착과 열망을 증오로 치환시켰다. 사실 그와 사귄 것도 아니고, 어떤 관계로든 규정한 것도 아닌데, 게다가 자기 마음을 표현한 적도 없고, 그의 마음에 대해 물어본 적도 없는데 실연당한 사람처럼 배신감을 느꼈다. 어쩌면 그녀가 누군가를 저주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가 어디서라도 잘살기를 바랐고, 언제고 다시 만나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웃으리라 다짐했다. 진짜 아무 일 없었으니 그게 맞았다. 그러나 함께 아르바이트 했던 여자 후배가 대신 그의 가방을 가지러 찾아왔을 때, 그녀는 가방을 넘겨주지 않았다. 엄마를 찾아오곤 했던 여자들처럼 성내며 그를 내 앞에 가져다 놓으라고 발광하고 싶었으나, 어찌된 상황인지 알 수도 없었고 그럴 자격도 없었기에 가방을 못 찾겠다고 거짓말하며 지질하게 허둥거렸다. 그리고 가방을 찾아놓을 테니 나중에 들러 찾아가라고 전해달라는 미련 가득한 말을 내뱉었다. 후배는 그는 안 올거라고, 자기를 보낸 거 보면 모르겠냐고 하며 피식 웃었다. 그녀는 그를 마음속으로 저주했다. 앞으로 외로워지기를, 무용해지기를, 아무 꿈 꾸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는 그 말을 밖으로 내뱉지 않아 죄가 아닌 줄 알았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최소한의 것들마저 모두 잃어버린 도시에서는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그녀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 자신이 가장 바닥에 있는 약자라고 생각했고, 더는 바보같이 살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니까 집을 떠나온 것은 소문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때문이기도 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남편을 만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가 마지막까지 살았던 도시로 떠났다. 통장과 카드, 당장 필요한 것 말고는 아무 짐도 가져가지 않았고, 속옷부터 겉옷까지 모조리 새로 사 입었다. 그동안 입지 않았던 정장풍의 옷을 여러 벌 구입했다. 긴 생머리를 중단발로 자르고 나이가 들어 보이도록 굵은 웨이브 펌을 했다. 옥선이 보잘것없다고 깎아내렸던 그녀의 학벌은 그곳에서 매우 환대받았고, 서울 말씨와 단정한 웃는 얼굴 역시 다들 좋아했기에 면접을 보는 족족 합격했다. 유명 대형 학원에서는 경력이 없는 점을 마음에 걸려 하며 보조 강사로 수습 기간을 갖도록 권유했다. 그녀는 남편이 운영하던 작은 학원을 첫번째 직장으로 선택했다. 영어 강사인 남편은 강의에는 소질이 있었으나 학원 운영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녀는 그가 샌님처럼 잇속을 못 차리게 생긴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녀는 수학 강사로 일하면서 그를 도와 학원 운영을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었다. 자신의 힘으로 얼마나 사업을 키울 수 있는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커리큘럼을 새로 만들고, 홍보에 힘을 기울여 수강생을 늘렸고, 강의 과목도 늘려갔다. 유능한 강사가 있다고 하면 어디든 달려가서 스카웃해 왔고, 수강생까지 빼오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일년 남짓 지나 학원을 더 큰 건물로 옮겼고, 여러 분원을 확장하기 시작했다. 학원 밀집 지역뿐 아니라, 잘되는 학원이 있는 곳 어디든 분원을 내 주변의 작은 학원들을 고사시켰다. 남편은 배포가 작고 겁이 많았음에도 사업 확장 자금도 자기 명의로 대출받아 그녀가 하고 싶어하는 대로 놔두었다. 그녀의 확장 방식이 자신의 평판을 이미 깎아 먹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리지 않았다. 그녀를 믿어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그랬던 것이었으나, 마흔이 다 되어가는 그가 이십대 초반의 그녀에게 연정을 품는다는 것이 죄스러워 그 마음을 숨겼다.

주아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 도시에서 의지할 사람이 그밖에 없었다. 그녀는 아는 사람이 많은 도시에서 의지할 사람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인생을 통틀어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도, 무조건 잘했다고 믿고 칭찬해준 사람도 그뿐이었다. 그 도시에 정착한 뒤, 전처럼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던 것은 그 때문임을 깨달았다. 사 년 간 일에 미쳐 있었던 그녀는 그에게 난데없이 사랑을 느꼈다. 깨달음과도 같은 그 느낌을 놓칠 수 없었기에 그를 반드시 가져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팔 년을 사귄 연인이 있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그녀도 알고 있었으나, 짐짓 모르는 척했다. 그가 말한 적도 소개해 준 적도 없었으니 자기에게는 없는 사람인 거라고 자기 암시를 걸었다. 그에게 연인이 있건 말건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으나 그는 모호하게 자신의 마음을 숨겼다. 주아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과 애매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녀는 외로워지기 전에 떠날 결심을 했다. 어차피 다른 곳에서 와서 이만큼 살아냈으므로 다른 곳으로 가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게 그녀가 아는 유일한 문제 해결 방식이었다.

그녀가 곧 떠나겠다며 새로운 강사를 소개하고 난 뒤에야 그는 그동안 참아왔던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그녀를 붙잡았다. 그는 주아에게는 연인과 헤어지겠다고 약속해놓고도 이별을 말하지 못했다. 그는 한동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그녀를 만나면서 어쩔 줄 모르고 괴로워했다. 주아는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배신감은 느끼지는 않았다. 모든 게 다 그의 우유부단함이 만들어 낸 결과라고 생각했기에 연인에게 직접 연락했다. 그가 알게 된다면 자신에게 정이 떨어져버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렇게 될 관계라면 이쯤에서 정리하는 게 낫다는 생각에서 그녀를 혼자 만나기로 했다. 주아의 계획은 아주 짧고 건조하게 이별을 통보하는 것이었으나, 그녀와 막상 마주앉게 되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놀랍게도 임신중이었고, 오동통하고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아는 그녀에게 진실을 말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아주 짧은 시간 갈등한 끝에 최선을 다하는 게 자신과 그녀를 속이지 않는 거라고 판단했다. 계획처럼 짧고 건조하게 말하지는 못하고, 길고 질척하게 말했다. 언성이 높아지고, 고성이 오갔으며, 눈물이 튀는 대화였다. 결국 그 자리에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뒤로 오랫동안 복잡한 일들이 있었다. 헤어졌다가 다시 만났던 일도 있었고,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가 돌아간 일도 있었다. 주아는 이게 다 무슨 일인가 싶다가도 그에 대한 집착을 놓을 수 없어 괴로웠다. 그와 잠시 떨어져 있는 동안 그녀는 연인의 유산 소식을 들었다. 주아는 그가 죄책감 때문에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아는 한 그는 그런 사람이었고, 그런 점 때문에 그를 사랑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와 헤어지고 득달같이 달려왔다. 주아는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와의 재회를 기뻐했다. 둘은 당신은 잘못이 없다고, 우리는 사랑한 죄밖에 없다고, 서로를 위로했다. 유산은 불운했던 거지 누구의 책임도 아니라고 합리화했다. 그녀는 그게 나쁜 짓이라고 생각했지만 세상을 그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어리석게도 그때는 그게 행복의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녀를 먼 도시까지 끌고 가 남편을 만나게 하고, 아이를 주었다가 다시 빼앗아 간 것이 옥선이 아니라 자신에게 내려진 저주임을 깨달았다. 그녀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유재의 죽음 자체가 아니라, 유재가 죽을 때까지 끔찍한 고통을 겪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 고통은 자신이 평생 겪어본 통증만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그 고통에 가닿을 수 없다는 것이 괴로웠다. 그녀는 부모에게 내려진 저주를 자식이 받는 거라면, 자신의 죄가 옥선의 죄보다 훨씬 크다는 생각을 그제야 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동안 자신이 온 세상에 책임 전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일기를 쓰던 중 알아챘다. 아직 깨달음에 다다르지 못했으므로 아마도 이 글은 발표할 수 없을 것이다. 차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