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집착

 13. 집착
    그녀는 그의 불행이 자신으로부터 비롯되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둘이 함께 지낸 시간은 고작 반년이었고, 아무 사이도 아니었던데다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연락하거나 만난 적도 없었기에 그런 생각이 이상해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그녀가 놓지 못했던 그에 대한 마음을 고려한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가 그에게 가지는 감정은 단일하지도, 지속적이지도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다른 모양으로 변했기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그의 감정에 대해 물은 적이 없었고, 둘의 관계를 정의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둘이 함께 있다보면 자신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일렁이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그렇게 갑자기 떠나리라는 것을 상상이라도 했다면 그녀는 대책을 마련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도 계기도 없이 그가 떠난 뒤에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집을 떠난 이유를 고작해야 미술관과 멀어서라고 말하는 사람과 대화를 기대할 수 없었고, 어제까지 쓰던 소지품마저도 미련 없이 버리고 가버린 사람에게 남은 사람의 마음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아무 의미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지나가는 사람에 지나지 않았던 그에게 마음을 쉽게 줘버린 자신이 한심할 뿐이었다. 그런 마음과는 별개로 그녀는 그를 쉽게 떠나보낼 수 없었다. 스무 살이 넘는 동안 그렇게 밀접한 관계를 맺은 사람도, 사적인 대화를 나눈 사람도 그가 유일했기에 좀처럼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와 사귄 적이 없었으므로 헤어지지 못했다. 그는 망령처럼 언제나 그녀를 따라 다녔다. 아니, 그녀가 그를 매번 소환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나 나쁜 일이 있을 때, 언제든 그를 불러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집들을 보러 다니던 그녀는 멀쩡한 집을 두고 먼 곳까지 떠나와 손바닥만한 원룸을 전전하는 신세가 마치 그 때문인 것처럼 그를 원망했다. ‘네가 말없이 떠나지 않았더라면 그곳에서 어떻게든 버텼겠지. 남들이 뭐라든, 네 말만 듣고, 너만 믿고, 너만 세상에 있는 것처럼 살아보려고 노력했겠지. 앞으로 너도 믿는 사람에게 배신당해 이 마음을 알게 될 거야.’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을 때도 그녀는 그를 불러냈다. ‘좋은 곳이 있어도 나는 너 같은 애만 떠올리지. 소중한 게 뭔지도 모르는 사람을 소중한 사람인 것처럼 말이야. 너도 소중한 게 뭔지 모르고 살아갈 거야. 소중한 것들이 다 떠나가도 너는 눈치채지 못할 거야.’ 피자의 피망을 걷어내면서도 그를 떠올렸다. 노랗고 빨간 파프리카는 먹으면서 피망은 안 먹었던 둘의 공통점을 기억하자, 함께 싫어했던 것들의 목록이 뒤따라 나왔다. 좋아하는 건 달라도 싫어하는 건 같았던 둘을,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게 많았던 둘을, 그리고 그 아무것도 아닌 마음조차 남에게 말하지 않았던 둘을 기억했다. ‘앞으로 너는 싫어하는 일만 하게 될 거야. 싫어하는 것만 먹을 거야. 모든 걸 꾸역꾸역 견디며 살아야 할 거야.’ 그 도시에서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혼자 밥을 먹을 때, 우산 없이 걸을 때, 고열에 시달려도 약을 사다줄 사람이 없었을 때, 명절에 문 닫은 상점 앞에서 갈 곳을 잃었을 때, 창밖에서 취객의 고함이 들려올 때, 자신의 생일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가 불러 낼 사람은 그뿐이었다. ‘너는 영원히 외로울 거야. 혼자 있어도 누구와 있어도 외로울 거야. 아무도 너를 이해하지 않을 거야. 너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그녀는 자신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시간 그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가끔 생각했다. 길가에 그려진 벽화를 보거나, 옥수수를 쪄서 파는 리어카를 보았을 때, 열대야에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일 때, 그를 생각했다. 사실 생각만 한 것은 아니고 전화를 들어 그의 호출기 번호를 눌렀다. 하지만 그를 호출하거나 메시지를 남긴 적은 없었고 그의 음성사서함에 몰래 들어갔다. 그녀는 그가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을 우연히 어깨너머로 본 적이 있는데, 허술하게도 1111이라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었다. 처음 알았을 때 그녀는 더러운 호기심을 못 이기고 음성사서함에 들어가 가득찬 메시지를 몰래 들었다. 찾아 나서기 전에 집에 들어오든지 연락하라는, 그의 어머니의 화가 가득한 목소리가 대부분이었고, 동아리 회원들의 메시지가 녹음되어 있었다. 그녀는 다른 사람의 은밀한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것이 불쾌하고 부끄러운 일임을 알았다. 그와 함께 지내는 동안 그녀는 다시 그의 사서함에 들어간 적은 없었다.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본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껴서가 아니라, 그에게 오는 호출 대부분이 전화번호나 숫자 암호였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다시 음성사서함을 들어간 것은 그가 들어오지 않았던 날 밤이었다. 그런 음침한 짓을 다시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굳이 호출해서 왜 안 오느냐 묻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있을까 싶어 음성사서함을 확인했다. 
    그후 그녀는 상습적으로 그의 음성사서함을 도청했다. 새로운 메시지를 그녀가 먼저 확인하면 그가 도청당하는 것을 알게 될 테지만 상관없었다. 그가 자신을 의심할 것 같지도 않고 의심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연락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음성사서함에는 집에 언제 오냐, 집으로 전화하라는 부모의 메시지만 남아 있었다. 그를 사랑하는 여자가 그에게 고백을 하거나, 그에게 이별을 통고하거나, 그런 드라마 같은 일은 없었고, 하다못해 친구들에게서 오는 메시지도 거의 없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그가 입대한 뒤에 들어온 메시지를 통해 그가 그녀의 집에서 나간 뒤로 누구와 친하게 지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그녀는 새로운 메시지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틈만 나면 사서함을 확인했다. 자기가 확인하지 못하는 사이에 그가 먼저 메시지를 듣고 지우기라도 할까 싶어 불안했다. 메시지가 들어오면 그게 누구의 음성인지 생각하느라 정신을 팔았고, 자기가 알지 못하는 내용을 듣고 나면 이상한 소외감이 몰려와 괴로워했다. 그녀는 도청과 그에 대한 집착이 도를 넘어서고 있음을 깨달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호출기는 그가 제대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지되었다. 이 번호는 없는 번호라는 메시지를 들은 날, 그녀는 드디어 그를 놓아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고, 한동안은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일에 전념하며 살았다. 학원을 확장하면서 전투적으로 살아갈 때는 그를 떠올리지 않았지만, 상황이 안정되고 나니 슬그머니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무엇이 불안한지도 모르는 그녀는 그의 근황을 인터넷에서 추적했다. 개인정보 보안이 허술했던 시절이라 출신 고등학교와 대학 동아리 활동으로 검색해 그의 메일 주소를 알아낼 수 있었고, 그의 메일 주소를 검색해 몇 개의 게시판에 그가 남긴 글들을 찾았다. 자료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가 남긴 문장들 사이에 행복이 있는지 찾아내려 애썼다. 행복이 깃든 문장에서는 괴로웠고, 불행이 깃든 문장에서도 괴로웠다. 다만 그 괴로움이 불안을 몰아냈으므로, 그녀는 그 일을 멈출 수 없었다. 가끔 그에게 메일을 보내거나 그의 미니 홈피, 블로그에 댓글을 달고 싶어졌지만 염탐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승재는 그녀가 남편을 만난 뒤, 둘의 관계가 연인으로 발전하기 전까지 계속 그녀의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 남편이 학원을 제대로 꾸려나가지 못할 때, 그녀는 무능한 남자 밑에서 일하게 된 것이 승재 탓이라고 생각했다. ‘네가 아니었다면 이런 촌구석에서, 이런 아저씨 밑에서 고생하는 일은 없었겠지. 너도 쉬운 게 없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거야.’ 남편의 마음을 알 수 없었을 때, 그녀는 관계에 서툰 것이 승재의 탓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했다. ‘너 같은 애를 만나 사람을 못 믿게 된 거야. 너도 좋은 사람은 만나지 말아라. 네가 믿지 못할 사람을 만나서 꼭 버려지길 바란다.’ 그녀가 남편을 만난 지 사 년 만에 갑작스럽게 사랑을 느끼면서, 승재는 그녀의 인생에서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그에 대한 집요한 집착은 모양새를 바꿔 남편에게로 그대로 옮겨갔다. 
    그녀는 남편에게 오래 사귀어온 연인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그녀는 승재를 추적하던 방식으로 남편에 대해 검색했다. 그에게 직접 물어봐도 되는 것조차 인터넷을 찾아보거나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그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지만 그와 잘 맞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연인을 만나는 것만 생각해도 견딜 수가 없는 지경이 되어 둘이 쉽게 만나지 못하도록 일을 벌였다. 지점을 확장을 위해 함께 부지를 보러 다녔고, 수강생과 강사 관리를 위한 시스템을 개발하고, 자기 주도 학습을 위한 시스템을 만든다며 매일 붙어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녀는 열 살이 훌쩍 넘게 차이 나는 그의 세대가 좋아하는 음악을 무심하게 틀어놓았고 그가 좋아하는 영화를 열 번 가까이 봤다며 그와 함께 다시 보고 싶다고 했다. 사실 노력하지 않아도 남편의 마음은 이미 그녀에게 다가와 있었다. 그의 행동은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보였으나 마음을 고백하지도 관계를 규정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 학원 업무뿐 아니라, 그의 일상까지 관여했다. 원장이면 무릇 이래야 한다는 식으로, 그의 옷차림과 소지품 하나까지 모두 자신의 취향대로 골라주며 처음과는 사뭇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았다. 그녀는 그의 연인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기를 바랐다. 남편은 영영 알지 못할 테지만, 사실 그녀는 그의 연인에게 익명으로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을 보냈다. 연인과의 약속을 취소하고 일을 했던 휴일의 날짜가 찍혀 있는 사진이었는데, 점심을 먹으러 갔던 곳 인근의 공원에서 찍은 거였다. 주아는 그녀가 자신의 존재를 명확히 알기를 원했고, 이 사건으로 둘의 관계에 균열이 일어나길 원했지만, 그녀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 남편도 그녀가 주아의 존재를 알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는 연인을 자주 만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헤어질 용기도 없어 보였다. 그녀는 그에게서 떠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건 진심이 아니었고, 그가 자신을 놓치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두고 한 일이었다. 그는 연인과 헤어지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그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의 연인도 그를 쉽게 놓아줄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주아는 그의 연인을 만나지 않고서는 끝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주아는 그의 연인의 불룩한 배 앞에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했던 남자가 어떻게 다른 여자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 배신감이 들었다. 그 자리에서 화를 낸 건 주아였고, 소리를 지른 것도 주아였다. 눈물을 흘린 것도 주아였고, 욕설을 내뱉은 것도 주아였다. 그의 연인은 통증을 느끼는 것처럼 미간을 찌푸리며 배를 만져댔다. 주아는 임신한 걸로 위세를 떨고 있다고 생각하고 불쾌감을 드러내면서, 아기의 생명을 운운하는, 차마 입에 다시 올릴 수 없는 말들을 퍼부어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녀를 떼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난리를 치는 주아에게 그녀는 조용하게 한마디하고 자리를 떴다. 
    “오늘 한 말들은 당신이 다 고스란히 돌려받을 거야.”
    주아는 자기가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도 다 기억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 그의 연인에게 저지른 일들이 다 뭐였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 주아는 그녀에게 매일 전화를 했고, 받지 않으면 문자 메시지를 반복해서 보냈다. 그와 헤어지라는, 아이를 지워달라는, 낳을 거라면 자기가 키울 수 있다는 그런 메시지 말고는 확실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을 만나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자신의 뺨을 때린 그녀의 엄마와 멱살을 끌고 나가 집 밖으로 내친 오빠를 신고했다. 그런 시간을 겪으며 그의 연인은 아이를 잃었다. 그녀는 전화를 건 주아에게 아주 짧게 말했다. 
    “네가 원하는 대로 됐어. 이것도 다 돌려받게 될 거야. 네가 잘못되면 내 원한 때문이라고 생각해라.” 
    남편은 두 여자 사이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아이가 잘못된 것이 다 자기 때문인 것 같다는 주아에게 그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말했던 것을 보아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주아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둘은 자기들이 잘 사는 것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 거라며 서로 도닥였다. 그녀는 결혼과 함께 그동안 끊임없이 해왔던 집착을 내려놓았다. 이제 자기 곁을 떠나는 사람이 없으리라는 믿음이 생기자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았을 수 있었다. 가지고 싶은 것은 가지면 되고, 원하는 것을 자신의 곁에 두면 그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집착이 외로운 사람의 궁기 같은 거였다고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집착의 대상은 다 사랑했던 사람들이었고,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사람들이었다. 남편은 그녀가 다시는 불안에 잠식되지 않게 해주었다. 
    그녀는 유재를 힘들게 얻었지만 특별히 집착하지는 않았다. 그애가 제 곁을 떠날 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자신이 죽고 난 뒤에도 세상을 계속 살아갈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유재에게 영양가 있는 것을 먹이고, 좋은 옷을 입히고, 양질의 교육을 하고, 항상 옆에 있어 줄 수 있기를 바랐을 뿐, 오래 살기를 특별히 바란 적은 없었다. 그런 건 굳이 바라지 않아도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지, 세상 어느 누가 일곱 살짜리의 만수무강을 빌겠는가. 돌잡이에서 명주실이 아니라 다른 물건을 잡기 원하는 건 자기 자식이 당연히 건강하게 자라리라 믿어 그러는 게 아니겠는가. 그녀가 손대지 않아도 유재는 영특하고 건강한 아이로 자랐고, 어머니가 알아서 키워주었기에 그녀는 유재가 가장 소중한 것, 자신의 꿈이라고 말하기만 하면 되었고, 특별히 노력할 것도 없었다. 그녀가 노력하기 시작한 것은 유재가 세상을 떠난 뒤부터였다. 그녀의 집착은 노력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품었던 집착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크고 강했다. 그녀는 식음을 전폐하고 오로지 유재에 관한 생각만을 했다. 그리고 유재가 살아보지 못한 날을 버젓이 살아가고 있는 그것들, 가해자나 방관자라고도 이름 붙일 수도 없는 그것들의 아무렇지 않은 일상을 생각했다. 그녀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불행을 꿈꾸어서 자기가 원하는 게 인류의 멸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만큼 그녀의 원한과 원망, 저주는 사람을 여럿 해치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다. 남편도 어머니도 자신마저도 설마설마했지만, 저주는 분명 존재했다. 
    그녀의 저주는 아마도 집착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착이 강한 사람에게 생기는 깊은 원한, 그것이 응집되어 저주의 능력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처음에는 유재를 잃은 슬픔과 고통이 불러온 힘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러기엔 그전부터 저주가 작동되었던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집착이 승재를 망쳤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에게 한 일은 그녀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것일 뿐이지, 그녀가 그에게 직접 물리력을 행사한 건 아니었다. 다시 만난 승재가 불행을 말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자신의 원망은 별 힘이 없으며, 단순히 상상과 말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염원과는 별개로 그가 당연히 잘살아왔으리라 추측했다. 그러나 승재는 놀랍게도 그녀가 끊임없이 되풀이 했던 말을 실행한 것처럼 불행하게 살아온 것 같았다. 어쩌면 그의 생각처럼 아내의 저주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자신의 저주는 깊고도 오래되었기에 그에게 먼저 도달해 그를 서서히 망쳤을 것이라 확신했다. 생각해보면 자기가 승재를 떠올리며 했던 말이나 유재를 생각하며 자기도 모르게 하는 기도가 크게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세상이 저주를 서로 나누며 살아가는 곳처럼 느껴졌다. 자신의 저주가 승재를 불행에 빠뜨리는 데 한몫을 한 것처럼, 누군가의 저주가 엄마를, 그녀의 저주가 쌍둥 이모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처럼, 남편의 옛 연인의 말이 저주가 되어 남편과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간 것 같았다. 그녀는 정말 그 여자의 저주가 유재를 데려갔다면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아이를 낳아보지도 못하고 잃은 승재의 아내나 남편의 옛 연인이 느꼈을 고통을 상상해보았다. ‘일곱 살이 되기까지 키운 나와 그녀들의 고통을 비교할 수 있을까? 당신들은 아이가 두 시간 마다 젖을 빨던 일을 모르지 않는가, 더워서, 기저귀가 젖어서, 배고파서, 졸려서 우는 소리를 구별도 못하지 않는가, 꼭 쥔 주먹 안에서 나는 쉰내를 모르지 않는가, 첫걸음을 걷던 날의 기쁨과 변기 사용에 성공한 날의 기특함을, 어린이집에 가기 싫어 울던 얼굴을, 유치원에 좋아하는 아이가 있다고 수줍게 말하던 순간을 모르지 않는가. 그런데, 그런 각자의 불행과 고통을 과연 비교할 수 있는 걸까. 그것을 비교할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 걸까. 그러면, 내 아이 하나의 죽음과 그것들 모두의 불행을 맞바꾸는 건 정당한가. 아니면 나의 아이를 빼앗아간 저주가 또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또 무슨 잘못을 해 저주를 받고 있는 것일까.’ 그녀는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잘못을 하고 살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