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이중 잣대(2)
그녀는 타인에게 자신의 고통에 대해 말해본 적이 없었다. 고통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자기 내면의 이야기 자체를 잘 하지 않았다. 말수가 적지 않았던 그녀는 그런 이야기 대신 자신의 감각이나 취향에 관해서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가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고, 오히려 자기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중학교 시절에는 헤세, 고등학교 시절에는 카프카를 좋아한다고 떠벌렸다. 그녀가 사이키델릭 락과 애시드 재즈를 좋아하고 새벽에 라디오를 들으며 책을 읽느라 잠을 거의 못 잔다는 것을 그녀와 친하지 않은 아이들도 다 알고 있었다. 친하다고 해서 그 이상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더 아는 것은 그녀가 생각보다 자기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과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한다는 사실뿐이었다. 친해질수록 그들은 그녀가 음흉하다고 느꼈고, 그녀의 외로움을 손잡이 삼아 잡고 휘두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녀는 남에게 자신을 보여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뚜껑을 단단히 걸어잠갔지만, 그녀의 외로움은 어떻게 밀봉해도 흘러나오는 김치 국물처럼 뚜껑 밖으로 줄줄 새어 나가곤 했다.
젊은 날의 승재는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알아챌 수밖에 없는 그녀의 외로움을 자기만 알고 있다고 착각했다. 그는 그 작은 단서로도 그녀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은 간파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도 그녀 못지않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는 취향이 한 사람을 보여주는 지표라고 생각했기에 그것을 드러내는 걸 꺼렸다. 그는 최대한 모호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고, 들여다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취향이 없는 사람처럼, 이것도 좋다, 저것도 좋다 하며 그녀에게 장단을 맞추곤 했다. 그러나 싫은 것을 좋다고 하지는 못해서, 결국 싫은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게 되었다. 둘이 싫어하는 게 비슷해 그는 그녀를 잘 알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더 깊이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도 그녀도 정의되지 않은 채 둥둥 떠다니길 바랐다. 그러나 그의 바람과는 달리 그녀는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그를 판단했다. 그녀는 그가 말은 없지만, 행동으로 보여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을 위해 벽화를 그려주고, 대문을 칠해주고, 냉동실에 물수건을 넣어주고, 옥수수를 삶아주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그가 꽤 다정하고 세심한 사람이어서 자신을 함부로 떠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발표한 이야기를 듣고, 발표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훔쳐본 그녀는 그가 애초에 자신이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다정함과 세심함은 사실 깊이가 없는 가벼움에서 온 것이었기에 하루아침에 증발해버리는 게 전혀 이상한 일도 아니었고 그토록 오래 집착할 가치도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승재는 여전히 그녀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크게 변하지 않았듯 남들이 크게 변해봤자 상상할 수 있는 범주 내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실 그녀가 어떻게 변했다 한들 상관없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녀를 만난 자신, 그녀를 만나 그간의 삶을 후회하게 된 자신, 그녀와 앞으로의 삶을 함께하고 싶은 자신이 중요한 거였다. 그녀는 처음에 그가 자기 집을 들락거리다가 정리를 핑계로 눌러앉았을 때, 사실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눈치챘다. 그녀는 그가 곁에 있는 것이 그의 욕구 때문이지, 자신과는 아무 관련 없다는 사실을 알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 미안하지만, 그의 입에서 함께 새로운 삶을 도모하자는 이야기를 들은 뒤 그녀는 헛웃음을 간신히 삼켰다. 회색에 가깝게 센 머리카락과 안으로 구부정하게 말린 어깨, 팔뚝과 옆구리에 두둑하게 붙은 군살이 그녀를 자기 나이 이상으로 보이게 했다. 그녀는 세상 누구도 자신을 아이 엄마가 아닌 여자로 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 사실이 아쉽지도 않았다. 아니, 이 문장 이전에 그런 종류의 생각조차 떠올려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녀가 가장 예뻤던 시절에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그가 다시 돌아왔다면 제정신이 아니거나 이상한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를 그냥 둔 것은 다른 삶을 꿈꾸어서가 아니라 어느 무엇도 신경쓸 여력이 없어 방치한 것뿐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를 그냥 두는 것은 그가 유재를 살아 있는 아이로 여기는 유일무이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의 일기를 몇 편 읽고, 그 내용의 진위를 분간하지 못했다. 첫 일기 때문에 그뒤의 모든 일기가 거짓말 같다며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기에 나오는 자신의 이야기도 조금 다른 것 같고, 그녀가 그토록 깊이 누군가를 미워할 사람도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게다가 저주가 정말 그런 식으로 작동된다는 것도 믿을 수가 없다고 하며, 그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그는 일기는 믿지 못하면서 유재가 살아 있는 듯 말하는 그녀를 의심 없이 믿었다. 그녀는 그가 진짜 믿는 것인지 믿고 싶어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으나, 그의 앞에서는 유재가 살아 있는 아이인 것처럼 이야기할 수 있어서 굳이 사실을 고쳐 말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에게 유재는 살아 있는 아이였다. 그는 유재를 궁금해했고, 보고 싶어했다. 그도 아이를 키워본 아빠라 그녀는 거짓말이라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 신경썼다.
이야기 속에서 유재는 멀리서 엄마 없이 잘 크고 있었다. 키는 백삼십오 센티미터에 몸무게는 이십오 킬로그램으로, 평균보다 많이 크고, 조금 마른 아이다. 아빠가 무엇을 해주든 다 잘 먹고 있으며 특히 돈가스와 우동을 좋아하지만, 급식에 나오는 나물도 잘 먹는다. 그림을 잘 그리고, 노래를 잘했고, 달리기를 못해 체육을 싫어한다. 이제 핑크나 민트색은 싫어하고 라벤더를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속으로는 여전히 진한 핑크색을 좋아한다. 영어, 수학, 수영을 배우러 다니고, 일주일에 두 번 발레도 배운다. 그녀는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보지 못해 학교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있을 법한 이야기를 지어냈다. 승재는 딸을 키워보지 않아 다 새롭게 들린다고 했다. 그리고 품 안에서 뛰쳐나가려는 대방어처럼 펄떡거리던 자기 아들과 달리 친구 딸을 안았을 때 말랑한 찹쌀떡 같은 게 폭하고 안겨왔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딸이 생기길 바랐던 사람처럼 유재의 이야기에 눈을 반짝였다. 유재가 그녀를 닮았는지, 아빠를 닮았는지, 엄마와 친한지 아빠와 친한지, 할머니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물었다. 그녀는 그가 그렇게 무언가를 궁금해하는 건 처음이라 낯설었다.
그와 이야기하다보면 그 시간에 유재가 그녀의 집, 유재의 방에 앉아 있는 것 같았고, 전화를 걸면 금방 받아서 엄마, 하고 소리칠 것 같은 환영에 사로잡혔다. 유재가 엄마는 언제 오느냐고, 보고 싶다고 훌쩍일 것 같았다. 학교 공개수업도 가야하고, 학부모 상담도 가야 하는데 왜 안 오냐고 투정을 부릴 것 같았다. 주아는 나쁜 엄마라 자신이 더 중요해서, 일이 더 중요해서, 얼른 갈 수가 없다고, 아빠가 가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할 게 분명했다. 다정하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법을 몰라서 기어이 아이를 울리고 말 것이었다. 그녀는 그런 날이 진짜 있었던 것을 기억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자신의 엄마와 아이를 한 팀으로 묶어 두고, 자신은 그 팀과 관계없는 것처럼 행동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모든 것을 엄마와 하겠다며 목놓아 우는 아이가 귀찮았고, 그런 아이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고 전화를 걸어대는 엄마도 원망스러웠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그녀가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는 남편에게도 분노를 느꼈다. 일을 방해하는 그들이 모두 적처럼 느껴져 원하는 것을 어느 하나도 해주지 않고 싶었던 심술궂은 마음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그녀가 아이에게 잘못한 것에 대한 후회를 승재에게 말하자, 승재가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아들이 태어났을 때, 사실 그는 기쁘지 않았다. 아무리 계산해봐도 자기 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얼굴을 가만 들여다보면, 아내의 옛 사진에서 본 다른 남자의 얼굴을 닮은 것도 같았다. 자기를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아이의 유전자 검사를 하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데, 그에게는 그럴 용기가 전혀 없었다. 아내에게 들키지 않고 실행에 옮길 자신도 없었고, 그뒤의 결과를 감당할 능력도 없었다. 마음속에 의심을 품은 채로 꾸역꾸역 아이가 크는 것을 보았다. 아이를 제대로 안아준 적도, 기저귀를 갈아준 적도, 목욕을 시킨 적도 없었다. 분유를 타주거나, 젖병을 세척기에 넣어주는 것 말고는 한 일이 없었다. 아이가 눅눅한 손으로 자신의 손이나 얼굴을 만지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서도 아내에게 자신의 의심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내색한 적이 없었다. 아내는 아이를 예뻐하지 않는 그에게 서운함을 포현했으나, 그는 그저 시험 공부에 미친 수험생,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키덜트 행세를 하면 그만이었다. 그의 부모는 아이가 자라면서 제 아비 어렸을 때와 쌍둥이처럼 닮았다며 신기해했다. 부모는 가난 때문에 아기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었던 자신들 덕으로 그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된 거라며 자화자찬했다. 부모의 이야기와는 관계없이 그는 아이가 네 살이 된 뒤에야 비로소 자기 아들이라는 걸 믿게 되었다. 그는 그녀의 모든 후회가 이 이야기 속으로 사라질 거라는 듯, 자신의 어리석음에 관한 이야기를 마쳤다. 그녀는 그에 비하면 자신의 잘못에 대한 후회는 상대적으로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유재에 대한 생각은 매번 비관적으로 흘렀다. 그녀는 즐거운 이야기를 하다가도 결국에는 슬프거나 후회되는 이야기로 끝내곤 했다. 그래도 말하는 동안에는 유재가 살아 있는 듯한 기분에 괜찮기도 해 마음을 종잡을 수 없었다. 승재는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그녀가 걱정스러워, 유재를 보고 오거나 잠시 데리고 오는 건 어떨지 물었다. 그녀는 자기가 유재를 키우지 않아 사실 유재가 자신에게 큰 정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유재가 할머니를 잃은 슬픔에 잠겨있어 데려올 수는 없다고 했다. 거기에 유재와 할머니의 흔적이 고스란히 있어서, 라고 말하다가 터져나오는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승재는 그녀를 위로하려고 자신의 이야기를 또 꺼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의 이야기도 듣기 편한 것은 아니어서 고통이 배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유재 이야기를 끝도 없이 해대면서 그의 입을 막는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라는 것쯤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승재는 자기 이야기를 들으면 그녀의 고통은 날아가버릴 거라는 듯,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긴 말도 필요 없었다. 그의 아들은 사춘기 시절 SNS에서 아버지가 죽은 아이 행세를 하고 있었다. 아들은 부모의 젊은 시절 사진과 자신의 사진을 올리는 유행에 동참했는데, 외국 학생들이 알 리가 없는 옛날 무명 배우 사진을 도용해 생몰년을 쓰고 마치 죽은 아버지의 사진인 것처럼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의 밴드 자작곡의 가사나, 그가 올린 글 곳곳에 아버지의 죽음이 암시되어 있어서 그는 무척 충격을 받았다. 그때 그는 아들에게 왜 그런 글을 올렸는지 물었으나, 아무 답도 들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그와 연락할 수 있는 채널을 모두 차단당했다. 그뒤로 아들은 아버지와 이야기하지 않으려 했고 만날 수도 없었다. 그는 그 이유를 알지 못해 괴로웠다.
“이런 일이 있어서 모임 사람들의 고통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 아이가 살아 있는데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그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어. 그래도 유재는 아직 어리고 너를 기다리잖아. 너무 힘들어하지 말라고.”
그녀는 자식이 죽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소로웠다. 유재가 세상에 없다는 것을 말한다면 그의 표정이 어떻게 변할까 하는 비뚤어진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유재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그 잠깐의 시간을 버릴 수가 없어 그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유재에 대한 회상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 끝에 승재는 매번 비슷한 사건을 가져오곤 했다. 그렇게 딱 대응되는 일이 있을까 싶을 정도여서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어낸 이야기인 것 같기도 했다. 그는 마치 자신의 일이 더 큰 일이라도 된다는 듯, 그러니 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하곤 했다. 그런 통에 그녀는 자기가 별것 아닌 일에 전전긍긍하는 소심한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알 수 없는 패배감에 사로잡혔다. 그때마다 그에게 유재의 죽음을 오늘 말할까, 내일 말할까 실룩거리는 자신의 입술이 징그럽게 느껴졌다. 기어이 일그러지고 말 그의 표정을 생각하면 이상한 승부욕이 돋아났다.
그의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던 그녀가 기어이 한마디한 것은 부모와 배우자의 이야기에서였다. 둘은 가족 때문에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박복함을 과시했다. 여느 때처럼 이야기의 끝에 그가 말했다.
“그래도 너희 부모님은 안 계시니 좀 나은 거 아니냐. 나는 언제까지 당할지 모른다고.”
그동안 대화의 패턴이 고정되어 꼭 그는 이런 식으로 대화를 종결하곤 했는데, 그날 그녀는 더 참지 못했다.
“그게 인간이 할 소리야? 넌 네 손톱 밑의 가시가 제일 아프지? 이 새끼야. 그럼 네 고통이 크면, 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닌 게 되니?”
그녀는 자기 안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기어이 튀어나간 그 말이 자신을 향해 되돌아오고 있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