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몰지각
아들이 사라졌다. 아내의 전화를 받기 전까지 나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아들이 내 인생에서 사라진 지 오래전이어서인지 아이가 사라졌다는 말이 그다지 충격적으로 와닿지 않은 건 놀라웠다. 나와 아내가 지은 아들의 이름은 민준이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 한 반에 두세 명씩은 꼭 있던 그 이름을 싫어했던 민준이는 그 이름을 영영 버리고 브랜든이 되었다. 아들이 사라졌다는 말을 들은 아빠가 가장 먼저 떠올릴 생각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민준이는 제 이름을 바꾸듯 제 삶도 바꾸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내가 아들을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고등학생이 되기 전의 여름방학이었다. 처음에 아들은 시차 따위는 문제가 아니라는 듯 내게 매일 전화를 했고, 내가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사실 나는 그들의 집이 불편했다. 아내에게서 이미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터라 아들을 보기 위해 갔던 것인데, 여행도 하루 이틀이지 셋만 붙어 있는 것이 몹시 답답했다. 아들과 둘이 있는 것도 성가셨고, 아내와 둘이 있으면 숨이 막혔다. 나를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갑갑해 밖으로 나가면, 아는 사람도 하나 없었고 말도 잘 통하지 않았기에 그 드넓은 곳에서 고립감을 느꼈다. 결국 나는 오래 머물지 못하고 카페 핑계를 대고 서둘러 돌아오곤 했는데, 그때마다 아들은 그곳도 싫고, 나와 떨어지기도 싫다며 울곤 했다. 아들을 힘껏 안아주고 돌아올 때, 도망치는 느낌이 들어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버지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홀가분했다.
처음에는 방학 때마다 아들을 보러 가곤 했지만, 곧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방문 횟수를 줄였다. 공교롭게도 카페 공사나 부모님의 입원 같은 문제들이 아들의 방학과 맞물리게 되어 방문을 조금씩 미루다가 팬데믹을 맞았다. 만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내가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아들은 더는 그러지 않게 되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아들은 아빠 없는 삶에 완전히 적응했고, 점점 할말이 없어져 통화도 거의 하지 않았다. 아들은 중요한 일은 엄마와 상의했고, 중요하지 않은 일은 아예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들과의 연락이 완전히 끊어진 뒤에야 나는 아내에게 아들이 그러는 이유가 무엇이며,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건지 물었다. 아내는 아들이 고등학생일 때까지도 아직 사춘기라 그런다며 크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으나 대학에 간 뒤에도 관계는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평범한 부자들처럼 별다른 이유가 없이도 연락하고 싶었지만, 아들은 한 번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아내는 아들이 먼 곳에 위치한 대학에 진학해 그애가 어떻게 지내는지 자세히는 모른다고 하면서 아들의 새로운 SNS 계정을 알려주었다. 내가 알고 있던 계정은 아들이 어렸을 때 사용하던 것이었는데, 괜히 댓글을 달고 내용에 대해 참견하다가 차단당해 내용을 볼 수 없었기에 여전히 그곳에 새 글이 올라가고 있을 줄만 알았다. 나는 아내가 알려준 새 계정으로 들어가 아들의 최근 얼굴을 볼 수 있었고, 아들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자주 새 글이 올라오는지 확인하고, 아들이 어떤 댓글을 쓰는지도 확인했다. 나도 댓글도 남기고 메시지도 보내고 싶었으나 다시 차단당할까 싶어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그냥 보기만 했다. 아내는 나에게 성인이 된 아들의 사생활에 관여하지 말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라며 너무 노여워 말고 졸업할 때까지 뒷바라지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내의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내 감정이 노여움인지도 몰랐고, 뒷바라지하지 않는다는 선택지가 있는 줄 몰랐다. 생각해보니, 나를 여기에 돈 통처럼 처박아두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아내와 고마운 줄 모르는 아들에게 나는 오랫동안 화가 나 있었다. 나는 대학 시절 집을 나와 부모의 연락을 받지 않았던 일을 떠올렸다. 내 아들도 나처럼 제 부모를, 아니 아버지를 혐오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아들은 나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을 텐데 대체 뭘 혐오하는 것인지는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래도 나는 내 부모와는 달랐다. 내 부모는 남을 등쳐먹은 양심 없는 인간이었지만, 나는 지질할 뿐이지 혐오할 정도의 인간은 아닌 것 같아서 억울했다. 그래도 나는 돈줄을 끊어버리면 굴복하게 된다는 것을 부모에게 배운 사람이었다. 내가 돈을 보내지 않는다면 태어나서부터 부유하게 살아온 아들은 삶의 질이 점차 떨어지고,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면 나를 찾지 않고는 못 배길 아이였다. 하지만 돈으로 굴복시키는 일은 부모 된 자로서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끝까지 참으려 했다.
적어도 내가 이 집에 돌아오기 전에는 그럴 계획이었다. 오래 전 주아의 집에 두고 갔던 가방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내가 그동안 잘못 살아왔고, 아주 불행하다는 것을 알았다. 더는 그렇게 살지 않기로 결심한 나는 집을 떠나면서 부모님의 집에 들러 아내에게 가겠다고 했다. 아주 오래 있다가 돌아올 예정이고,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어머니는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떠나면 우리는 어떻게 하라는 거냐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돈이 있는데 힘들게 뭐가 있냐고 대답하자, 아버지는 배은망덕한 놈이라며 소리를 질렀다. 어머니는 너를 위해서 우리가 무슨 짓까지 했는데, 하고 죄책감을 건드리려고 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또 여자한테 미쳐서 부모를 내다버린다고 막말하는 아버지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통곡하는 어머니를 내버려두고 집을 나왔다. 결혼해 분가한 지 오래되었는데도, 그제야 부모에게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기분이 들었다.
부모님에게 말한 것과는 달리 나는 아내에게 가지 않았다. 아내는 다시 한국에 돌아올 생각도 전혀 없었고, 내가 미국에가 함께 살고 싶다고 한 뒤로는 전화도 잘 하지 않았다. 평소 우리는 통화를 자주 하는 사이도 아니고 필요한 이야기만 문자메시지로 나누었기에 그녀는 내가 다른 삶을 시작했다는 것을 쉽게 알지 못할 것이었다. 혹시 알게 되더라도 잘됐다고 생각할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아내가 이미 다른 사람과 새로운 삶을 꾸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는 미안한 마음도 느끼지 않았다. 사실 아내가 나의 출국을 막는 이유가 남자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내의 페이스북에는 이웃이나, 브랜든 친구의 부모, 학교, 직장 사람들의 사진이 함께 올라오곤 했는데, 자주 함께 찍히곤 하는 남자가 영 거슬렸다. 턱수염에 뒤덮여 어떤 인종인지 통 알아보기 힘든 그는 이웃에 사는 브랜든 친구의 아버지라고 했다. 아들이 먼 도시에 있는 대학에 간 뒤 아내는 그가 운영하는 베이커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을 뒤적여보니, 그와 이혼한 아내는 이탈리아에 살고 있었고, 그의 아들도 그곳으로 공부하러 떠나 그 역시 혼자였다. 나는 아내와 그 남자가 어떤 관계인지 알기 위해 더 파고들고 싶지는 않았다. 어차피 끝난 관계나 다름없는데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해야 할지 골치가 아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홀가분하게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집을 나오고 보니 그게 오랫동안 내가 염원하던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주아를 만나지 않아도 언젠가는 이렇게 되었을 것이다. 새로운 삶의 첫발은 과거의 끈을 자르는 일이었다. 다른 끈은 이미 다 잘려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돈만 끊으면 그만이었다. 아내와 아들에게로 보내던 돈을 보내지 않으면 리모델링 비용은 충분했고, 부모에게 이리저리 불려가 했던 뒤치다꺼리의 반만 해도 주아에게는 좋은 남자가 될 수 있었다. 다들 내가 없어도 살아가는 데 부족함 없이 충분했지만, 주아는 내가 아니면 안 될 사람이었다.
공교롭게도 아내에게서 전화가 오기 시작한 건 내가 돈을 보내지 않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내가 굳이 매달 보내지 않아도 유학 초기에 아내가 가져간 돈이 충분한데다, 아내의 수입도 있어 사는 데 지장 없을 게 분명한데도 금세 전화를 걸어대는 모양새에 화가 났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시차를 따지지도 않고 낮이건 새벽이건 시도 때도 없이 걸어왔다. 나는 평소 같지 않게 집요하게 전화를 거는 이유가 돈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번호를 차단했다. 전화와 메시지가 알림음 없이 계속 들어와도 나는 확인하지 않은 채로 며칠을 버텼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에게서도 전화가 오기 시작해 그 번호 역시 차단했다. 아내의 문자메시지를 읽기 전까지 그들이 나를 속박하려는 거라고 생각했고, 곧 전화번호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내의 전화를 받은 건 실수였다. 아내는 자신의 전화가 차단되었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다른 전화기로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새벽에 울리는 벨소리에 놀라 번호도 확인하지 않고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아내는 아들이 사라졌는데 대체 전화도 안 받고 뭘 하는 거냐고 화를 냈다. 아들은 신검을 받기 위해 한국에 다녀오겠다며 5월 중순에 미국을 떠났는데, 공항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한 뒤 연락이 두절되었다. 아들이 나를 만나지 않고 외가에 머물다 돌아가고 싶다고 해서 아내는 굳이 나에게 미리 연락하지 않았다. 아들이 외가에 도착하지 않았을 때도 아내는 곧바로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아들이 훌쩍 사라져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나타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래도 이전에는 보름을 넘기지 않았던 터라 한 달이 넘어가서야 초조해진 아내는 나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아들에게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어 당황스러웠다. 생각해보니 걱정되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브랜든이 확인할 필요도 없는 진짜 내 아들이라고 그제야 믿을 수 있었다. 아내에게 나도 그 무렵에 집을 나간 적이 있다고, 그걸 그냥 두어야 제대로 된 인간으로 자립할 수 있다고, 잡아와서 네 기준에 맞춰 살게 하면 나 같은 인간이 되는 거라고 말했다. 아내는 아이의 생사도 모르는데 속 편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찾기 귀찮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믿는 게 아니냐고 소리질렀다. ‘당신 몸뚱이만 편하면 그만이니까 하는 소리잖아. 당장 브랜든을 찾아내. 엄마가 실종 신고는 했어. 당신은 직접 나가서 찾아. 애 잃어버리고 당신 혼자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나는 아내가 억지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가까이서 애가 그렇게 되도록 뭘 했어? 그리고 브랜든은 이제 애가 아니야. 정신 차려.’ 이 말은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내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묻지 않았다.
어머니에게서 온 전화도 백 통이 넘게 기록되어 있어 마음이 약해진 나는 결국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는 애가 군대는 가기 싫었나보다고, 아직 나이가 어리니 얼러서 나중에 보내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너도 군대 가기 전에 그러지 않았느냐고, 제 아비랑 똑 닮은 걸 어쩌냐고 했다. 어머니는 브랜든보다 나의 행방을 더 궁금해했다. 내가 대답하지 않으니, 어머니는 아내에게 내가 사라진 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하며, 어디고 간에 있고 싶은 만큼 있다가 돌아오기만 하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어머니의 그런 말이 나를 한평생 어린애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브랜든과 내가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브랜든이 이토록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내와 대화를 하면서 진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몸이 끈적거려 다시 잘 수 없었다. 아내에게 소리라도 한 번 질렀다면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조금 사그라들었을 텐데, 속으로만 화를 삭인 것을 후회했다. 나는 샤워를 하려고 방을 나가다가 거실 한쪽에 앉아서 키보드를 타닥타닥 두드리며 일기를 쓰는 주아와 맞닥뜨렸다. 주아는 일기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써댔다. 처음에는 일기장에 볼펜으로 쓰다가, 양이 늘자 노트북으로 바꿔 쓰기 시작했다. 열심히 썼지만 발표할 수 없는 이야기가 많다고 하며 읽기를 꺼렸다. 나도 더는 발표를 하지 않아 모임에서 다들 가족이라고 알려진 우리는 곧 퇴출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여전히 모임의 목적을 잘 모르겠고, 저주라는 것도 그다지 와닿지 않아 주아를 위해 마지못해 왔다갔다하는 거였으니, 잘린다고 해도 별 상관없었다. 나는 명백히 불행하지만, 누군가의 저주로 이렇게 되었다고 하기엔 이토록 저주받을 정도로 나쁜 짓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얼마나 잘못해야 이렇게 불행할 수 있을까 싶었다.
주아는 나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나에게 생긴 일종의 불행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껏 내가 아무리 그녀의 불행과 고통이 더 큰 것들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그녀에게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일이라면 다를 것 같았다. 이 정도면 내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감각적으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전화 소리에 시끄러워서 깬 건 아니지? 방금 아들이 실종된 것 같다는 전화를 받았어. 들어온다고 했는데 연락이 끊겼다네.”
쉴새없이 타닥거리던 그녀의 키보드 소리가 단번에 멈췄다. 그녀는 금세 사색이 되어 자기 자식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했다. 그녀의 고통을 작게 느껴지도록 하려고 한 말이 오히려 그녀를 힘들게 할 줄은 몰랐다. 나는 그녀가 이토록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여긴다는 것을 처음 알고 당황스러웠다. 그녀는 아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걸 확인했냐, 해외에서 실종된 건 아니냐, 당장 실종 신고를 하고 입국 확인을 하러 가자며 혼이 빠진 사람처럼 허둥댔다. 나는 그녀를 자리에 앉힌 뒤 이미 신고를 했다고 하며 그녀를 진정시켰다. 나는 그 나이쯤 내가 이 집에 들어오게 된 이야기를 상기시키면서 브랜든 역시 그러고 있을 거라고, 이번이 처음은 아니라고 하니 큰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안심시켰다. 그러나 주아는 더 흥분해서는,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안심하고 있냐고, 다 네 맘 편해지자고 좋게 좋게 생각하는 거 아니냐며 질책했다. 나는 순간 주아의 얼굴 위로 아내가 겹쳐 보여 등골이 서늘했다. 주아는 아내와 함께 아들을 찾을 생각을 해야지 여기서 뭐하는 거냐고 해가 뜨면 떠나라고 했다. 내가 가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아들은 나를 거부하고 내 연락을 모두 차단했다고 했다. 주아는 나에게 그게 아빠가 되어 할 소리냐고 화를 내더니, 아들을 찾을 때까지 아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며 나를 달래려는 듯 작은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아 흔들었다.
나는 주아에게 아이의 실종을 이야기한 것을 후회했다. 주아는 귓구멍이 막힌 사람처럼 나와 내 아내와의 관계, 그러니까 이미 모두 끝나버렸고 그녀에게 남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무조건 나를 보내려고 했다. 나는 아들은 돌아올 거고, 아내는 이 혼자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여자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이야기만 듣고도 심하게 무너진 건 아내가 아니라 너라고, 내가 어디에 있어야겠냐고 되물었다. 아내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우리 같은 사람들과는 태생이 다르다고 말했다. 아내가 시부모에게 더 당하지 않고 그곳으로 아이만 데리고 당차게 떠날 수 있었던 것도, 그곳에서 혼자 아이를 대학에 성공적으로 진학시킨 것도 그녀의 단단한 내면 때문이라고 했다. 아무리 내 자식이라도 그런 여자가 양육을 하고 그런 혈통의 반을 타고났으니 나보다는 나을 거라고 했다. 내가 있는 것이 오히려 그녀에게는 방해가 될 게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평소에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나의 불필요성을 이해시키고 여기 붙어 있기 위해 안간힘을 써 말하다보니, 아내를 실제보다 훨씬 더 번지르르하게 포장했다는 생각에 아차 싶었다. 내 말을 듣던 주아의 얼굴 위로 조금 전과는 다른 절망감이 스치는 것 같았다. 아내를 쓸데없이 과하게 칭찬해 기분이 상했나 싶어 말을 덧붙였다.
“내가 더 필요한 건 너고, 나에게 필요한 건 너야. 네 곁에 있으면 내가 좀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거든. 내가 뭐라도 할 수 있게 해줘.”
이건 나의 진심이었다. 주아는 낮고 차갑게 대답했다.
“내가 형편없으니까, 네가 상대적으로 나아 보여 좋은 거야? 봉사하는 기분으로 살고 싶은 거야?”
그녀의 말에 나는 뺨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게 아니라고 하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진심이 드러나면 드러날수록 수습할 수 없이 꼬여버리는 것 같았다. 나는 솔직하게 다시 말했다.
“나는 그냥 너랑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뿐이야. 나에게 아내와 아들보다 너와 유재가 더 내 가족 같아. 믿어지지 않겠지만 진심이야.”
주아는 나를 딱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네 마음은 알겠다만, 어떻게 하지? 나에게는 새로운 삶 같은 건 없어. 유재도 세상에 없어. 너는 믿지 않았던 것 같지만, 일기에 쓴 그대로야.”
주아의 말을 이해하는 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나누었던 이야기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있던 아이,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내가 사랑하게 된 아이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어려웠다. 내가 만들고자 했던 채광이 좋은 아이의 공부방, 마당 나무그늘에 매어주려던 그네, 셋이 함께 그릴 벽화가 모두 미래에서 지워졌다. 우리가 함께 산책할 오후, 마당에서 불멍을 하려던 밤, 별을 세려 했던 새벽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 생각해보면 아홉 살이라면서 일곱 살 정도 되는 작은 아이 사진만을 보여주었을 때, 조금 의심스럽긴 했다. 그 성격에 아이의 공부에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도 의아했고, 아이를 그렇게 사랑한다면서 자주 연락하지 않는 것도 이상했다. 남편과 가끔 통화할 때 아이의 안부를 묻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그 행동들과 일기를 통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충분히 추측할 수 있었는데도 모르는 척하려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에겐 유재의 죽음이 현재 일어난 일처럼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처음 느끼는 상실감과 고통이었다. 내 눈물이 그칠 때까지 보고만 있던 주아가 내가 운 이유를 물었다. 주아는 내 마음을 이해해줄 거라는 생각에 솔직하게 대답했다. 주아는 의아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정말 소중한 게 뭔지 모르는 거야? 어떻게 네 아들의 실종에는 아무렇지 않을 수 있어?”
주아는 입 밖으로 소리 내지는 않았지만, 너 따위가 자식을 잃은 고통을 알겠느냐는 말이 내 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아들의 실종보다 유재의 죽음이 더 큰 상실감과 고통을 준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가 진짜 잃어버린 건 내 아들이고, 실종 전부터 이미 잃어버린 것과 다름없었는데도 어떻게 그동안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과거에 아내가 했던 질문에 답했던 것을 다시 떠올렸다. 아기였던 아들을 차갑게 대하던 나에게 아내는 왜 다정하지 않냐고, 네 자식이 아닌 것 같아 그러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나를 닮지 않은 아들을 보며 정말 그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이미 아내는 내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럴 리가 있겠냐고,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시치미를 뗐다. 그리고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남의 아들이거나 내 아들이거나 상관없다는 생각에 닿자, 내가 위선자인가 싶었다. 내가 남의 딸을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감안하고 보니 나는 적어도 위선자는 아니었고, 내 것과 네 것의 분별이 잘 안되는 인간인 동시에 그냥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일 뿐이었다. 내 아들이라고 해서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였다.
아무 대답하지 못하는 나에게 주아는 말했다. 언젠가 자신이 나에게 소중한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도록 저주를 퍼부었던 것을 기억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내가 이렇게 된 게 자기 탓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럴 리가 없지만, 나는 그녀가 가지는 부채감 역시 싫지 않았다. 그리고 주아에게 아이가 있어 좋았지만, 아이 없이 둘만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엇이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는 데 동의하긴 하지만, 어쨌건 나는 아들이 꼭 돌아올 것을 믿는다.